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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서5장(박윤선)

은바리라이프 2019. 1. 24. 11:04

 

 

5:1

 

나의 누이 나의 신부야 내가 내 동산에 들어와서 나의몰약과 향 재료를 거두고 나

의 꿀송이와 꿀을 먹고 내 포도주와 내 젖을 마셨으니 나의 친구들아 먹으라 나의 사

랑하는 사람들아 마시고 많이 마시라 - "나의 누이"란 말에 대하여는 4:9의 같은 말

해석을 참조하여라. 신랑되신 그리스도께서는 신부된 교회의 초청(4:16)에 응하시어

그 은혜로운 일(회개, 신앙, 사랑)을 음식 잡수시듯이 즐기기 원하신다. "몰약"이나

"향 재료"는 교회(혹은 신자)의 아름다운 덕행을 가리키고(14:5-6), "꿀송이와 꿀"

은 그 은혜로운 말을 비유하고, "포도주"""은 그 전파하는 복음을 비유한다(

55:1). 그리스도께서 은혜로운 신자와 더불어 교제하기 원하시는 사실은 이렇게 먹고

마시는 일로 비유된다()3:20).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 여자에게 전도하시고 그와 그

동네 사람들이 자기에게로 나아오는 것을 바라보시면서 주릴 때에 음식을 잡수시는 것

과 같은 만족을 느끼셨다. 그는 말씀하시기를,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나"고 하셨다(4:34). 신랑으로 비유되신

그리스도께서는 천사들에게("나의 친구들",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이란 말의 의미)

께 먹고 마시자고 하셨으니 곧 천사들도 교회의 덕행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고 즐

거워 하게 됨을 가리킨다. 벧전 1:12 하반 참조. 그리스도에게 중요한 사건이 있을 때

마다 천사들이 나타났던 것을 보면(2:13-14, 22:43; 20:12; 1:10-11), 그들

이 그리스도의 구속(救贖)을 받아 누리는 교회(신자들)의 행복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고 역사함을 알 수 있다. 18:10에 말하기를, "삼가 이 소자 중에 하나도 업신

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

굴을 항상 뵈옵느니라"고 하였다.

 

 

 

5:2

 

내가 잘지라도 마음은 깨었는데 나의 사랑하는 자의 소리가 들리는구나 문을 두드

려 이르기를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 문 열어 다고 내

머리에는 이슬이, 내 머리털에는 밤 이슬이 가득하였다 하는구나 - 여기 "내가"란 말

은 신부로 비유된 교회(신자)자신을 가리킨다. "잘지라도 마음은 깨었다"고 함은 그

신앙 생활이 무력해진 것을 가리킨다. , 그 신자가 마음으로는 그리스도의 중요성을

알고 있으면서도 육신에 끌려서 그 생활은 잠자는 듯이 영적으로 무력해진 것을 가리

킨다. 이것이야 말로 그리스도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제자들의 자는 것을 보시고 하

신 말씀 곧,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라고 하신 그 말씀과 같다(26:41

하반). 어떤 때에는 진실한 신자도 신앙 생활에 긴장을 잃어 버리고 영적 피곤 가운에

잠기는 일도 있다. 열 처녀 중에 지혜로운 다섯 처녀도 "신랑이 더디 오므로 졸며 잣

"고 하였다(25:5). 그들이 그렇게 된 때에는 그리스도의 음성("나의 사랑하는 자

의 소리")곧 하나님의 말씀(성경)대로 살지 못하기 쉽다.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 "나의 누이"란 말에 대하

여는 4:9의 같은 말 해석을 참조하여라. "나의 비둘기"란 말은 온유하고 순결하여 하

나님께 제물이 될만한 자격을 가진(1:14) 교회(신자)를 비유하고, "완전한 자"

말은 교회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앞에 의()로 간주된 사실을 가리킨다(고후

5;21).

"문 열어다고." 이것은 회개하라는 말씀이다. 신랑으로 비유되신 그리스도께서 신

부로 비유된 교회(신자)를 찾아오셔서 회개하라고 독촉하신다. 3:19-20에 말하기

,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

하라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

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고 하였다.

그의 머리에 "이슬이 가득하였다"고 함은 그리스도께서 오랫 동안 신자의 회개를

기다리셨다는 뜻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밤 이슬도 개의치 않은시고 오래 동안 우리의

회개를 참아 기다리신다.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백성의 회개를 기다리시는데 있어서 이

토록 간절하신다. 13:34에 말하기를,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고 치는 암닭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너희의 자

녀늘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라고 하였다.

 

 

5:3

 

내가 옷을 벗었으니 어찌 다시 입겠으며 내가 발을 씻었으니 어찌 다시 더럽히랴마

- 이것은 신부로 비유된 교회가 안일주의(安逸主義)에 이끌려서 그리스도의 부르심

에 응하지 않는 모습을 비유하는 말씀이다. 교회를 비유하는 술람미 여인은 그리스도

를 비유하는 신랑의 부르심이 있는데도 자기의 평안을 위하여 침상에서 일어나려고 하

지 않는다. 신자들이 그 신앙 생활에 용단을 내리지 못하는 원인은 언제나 이와 같은

육신의 평안이나 혹은 그 마음이 세상으로 기울어짐에 있다. 천국 연회에 사람들을 청

하였을 때에도 그들은 모두 다 초청에 응하지 않고 "하나는 가로되 나는 밭을 샀으매

불가불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를 용서하도록 하라 하고 또 하나는 가로되 나

는 소 다석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 청컨대 나를 용서하도록 하고 하고 또 하나

는 가로되 나는 장가 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고 하였다(14:18-20).

 

 

 

5:4,5

 

나의 사랑하는 자가 문 틈으로 손을 들이밀때 내 마음이 동하여서 일어나서 나의

사랑하는 자 위하여 문을 열 때 몰약이 내 손에서, 몰약의 즙이 내 손가락에서 문빗장

에 듣는구나 - 이때까지 신랑으로 비유된 그리스도께서 문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정도

의 역사를 하셨다(2). 그러나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한 그의 간절한 역사는 마침내

신자의 심령 속을 찌른다. 그리스도께서는 문 틈으로 손을 들이미시기까지 하신다.

렇게까지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역사로 신자의 마음을 움직여 주시므로 그 감동을 받는

신자는 "내 마음이 동하여서"라고 한다. 루디아도 이와 같은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복음의 말씀을 받아 들이게 되었다(16:14). 우리 신자들은 언제나 생활의 외면을

닦아 아나가는데 치중함보다 심령에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해야 된다. 그러

므로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라고 하였다(6:18).

신부로 비유된 교회는 이때에 은혜를 받았으므로 "일어나서" 문을 열게 되었다.

체의 욕심을 버리고 결단성 있게 천국을 향하여 일어나게 되는 것은 큰 은혜이다.

15:11 이하에 지술된 탕자도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향하였으니(15:20), 그는 큰

결단을 내린 것이다.

"몰약이 내 손에서... 문빗장에 듣는구나." 이 말씀은, "몰약이 내 손에서... 문빗

장에 떨어졌구나"라고 개역되어야 한다. 술람미 여인은 문을 열어 주기 위하여 손에

몰약을 바르고 정성껏 환영의 표시를 하였다. 이것은 교회(신자0가 그 연약한 상태에

서 회개하고 성의를 다하여 주님을 영접하고자 하는 태도에 대한 비유이다.

 

 

 

5:6

 

내가 나의 사랑하는 자 위하여 문을 열었으나 그가 벌써 물러갔네 그가 말할때에

내 혼이 나갔구나 내가 그를 찾아도 못 만났고 불러도 응답이 없었구나 - 이 말씀을

보면 아가서가 하나의 역사적인 연애시고 멎어지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신령한 교제를 보여주는데 그 목적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만일 아가서가 하나의 연애

시로 그친다면 이 귀절과 같은 사건이 어떻게 있을 수 있었겠는가? 사랑하는 자가 찾

아 왔다가 어떻게 그 연인을 만나지 않고 쉽게 물러갔겠는가? 여기에 기록된 내용은

분명히 영적 교훈을 위한 비유의 말씀이다. 신부로 비유된 교회는 은혜를 받아 영적으

로 각성하고 이 때까지 자기의 신앙 생활이 침체 상태에 있었던 것을 통회 하면서 그

리스도를 간절히 사모한다. "내 혼이 나갔구나"란 말은 과거의 좋은 기회를 놓친데 대

한 그의 심한 자책이다.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는 자라면 이토록 자기를 통책하면서

180도 전환해야 한다. 그런 정도의 회개가 보통으로는 참된 회개이다. 그렇게 회개하

는 자라야 신앙의 결단을 가지며 희생을 무릅쓰고 주님께로 나아가게 된다. 그런회개

야말로 실족케한 오른눈을 빼어 버림과 같은(5:29)회개이다.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한 세리의 회개(18:13)

이와 같은 것이며, 또한 에베소에서 요술장이들이 회개하고 저희의 요술책을 불살라

버린 것(19:19)도 이와 같은 결단이다. 언제나 참되 회개자는 자기의 잘못을 아프

게 뉘우친다. 2:37; 고후 7:10-11 참조.

 

 

 

5:7

 

성중에서 행순하는 자들이 나를 만나매 나를 쳐서 상하게 하였고 성벽을 파수하는

자들이 나의 웃옷을 벗겨 취하였구나 - 일설에 의하면 이 말씀은 주님을 잃어버린 신

자가 회개하면서 자기의 잘못을 깨닫기도 하였지만 또 교회의 지도자들의 책망에 의하

여서도 더욱 깊이 자기의 잘못을 깨달아 부끄러움을 느꼈다는 의미라고 한다. 다시 말

하면 신자가 비록 자신의 잘못을 깨닫는다 할지라도 남들이 그의 과오를 바로 지적하

여 줄 때에 더욱 밝히 잘못과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것이다(Hudson Yaylor, They

appear to have appreciated the gravity of her declension more correctly than she

had done.-Union and Communion. 1914, p.53). 그러나 이 해석은 정당하다고 할 수 없

. 그 이유는 자기의 잘못을 바로 깨닫고 간절히 주님을 찾는 신자라면 그는 선한 교

역자들에게 강경한 취급을 받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다른 해석에 의하면 안일주의 때문에 주님을 잃어버리게 된 교회(신자)가 이제 회

개하고 주님을 다시 찾느라고 많이 힘쓰고 있다는 것이다(6). 이렇게 진실하게 주님

을 따르는 자는 어떤 때에 교회 지도자들에게 광신자(狂信者)라는 오해를 받는다. "

중에서 행순하는 자들"로 말미암아 상처를 받았다는 말씀이 그 뜻이다. 이런 실례가

성경에도 있으니, 예컨대 사무엘의 모친 한나의 당한 사건 같은 것이다. 한나는 간절

히 기도하면서 입술만 움직이고 음성은 내지 않았은데 그 모습을 바라보던 제사장 엘

리는 그를 오해하여 술 취한 여자라고 꾸짖었더(삼상 1:13-14). 이 세상에서는 의인들

이 종종 사람들에게서 섭섭함을 당한다(13:22). 16:1-3 참조.

이 귀절의 말씀을 보아도 아가서는 하나의 연애시가 아니고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

계에 대하여 영적 교훈을 주는데 치중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일 이것이 단순한 역사

적 기록 뿐이라면 거리를 지나는 여자에게 행순하는 자들이 폭행을 가하였다는 말씀이

성립될 수 있겠는가?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다.

 

 

 

5:8

 

예루살렘 여자들아 너희에게 내가 부탁한다 너희가 나의 사랑하는 자를 만나거든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났다고 하려무나 - 이 귀절에 대하여는 2:5의 해석을 참조하여

.

 

 

 

5:9

 

여자 중 극히 어여쁜 자야 너의 사항하는 자가 남의 사랑하는 자보다 나은 것이 무

엇인가 너의 사랑하는 자가 남의 사랑하는 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기에 이 같이 우리

에게 부탁하는가 - 이것은 예루살렘 여자들(피상적으로 교회에 출입하는 신자들)이 술

람미 여인(참된 신자)의 안타까와하는 모습을 보고 물어본 말이다. 피상적 신자들은

참된 신자가 주님을 사모함에 대하여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들은 참된 신자들이

믿는 주님("너의 사랑하는 자")이 어떠한 분인가 하고 의문을 가지게 된다. 곧 그들은

술람미 여인(참된 신자)에게 "남의 사랑하는 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인가"하고 물어본

. 성경은 증거하기를, 간절한 신자의 태도를 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그를 향하여 냉

(冷談)하는 자들이 많이 있다고 한다. 42:1-3에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뵈올꼬 사

람들이 종일 나더러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

식이 되었도다"라고 하였고, 4:6에 말하기를, "여러 사람의 말이 우리에게 선을 보

일 자 누구뇨 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취소서"라고 하였다.

 

 

 

5:10

 

나의 사랑하는 자는 희고도 붉어 만 사람에 뛰어난다 - 이 말씀은 진실한 신자가

사모하고 따르는 주님의 영적 모슴을 비유한다. 이 말씀을 가지고 다만 어떤 자연인

(自然人)의 잘난 모습을 가리킨다고 생각하기에는 그 표현들이 너무도 고상하다.

"희고도 붉어." "희다"는 것은 주님의 성결과 신성(神性)을 비유하고(요일 1:5;

17:2), "붉다"는 것은 주님의 인성(人性)과 그의 속죄하여 주시는 보혈(寶血)을 암시

한다. 그리스도(고전 15:45)는 그의 붉은 피로써 우리의 죄를 대속하여 주셨다(

23:24-25).

"만 사람에 뛰어난다." 이것은 모든 인류의 머리라고 할 수 있는 메시야 곧 그리스

도를 말함이다. 1;22; 1;18 참조.

 

 

 

5:11

 

머리는 정금 같고 머리털은 고불고불하고 까마귀 같이 검구나 - "머리는 정금 같

"고 함은 여기서 자연 인간을 가리킨 말이라고 할 수 없다. 이것은 만왕의 왕이신

그리스도에 대하여 사용된 표현이다. 21:3 참조. ""은 쇠하지 않고 하늘나라의

영원성을 비유한다. 3:18, 21:18,21 참조.

유대인 주석가 긴스벅(C.D.Ginsburg)은 말하기를, "성경 또는 세속 문학의 저작자

들은 모두 완전한 선과 아름다움을 가리킬 때에 황금이란 말을 사용하였다."라고 한다

(Gold is frequently used, both in Scripture and in protannne writers, tp denote

consummate excellency and beauty.-The Song of Songs and Coheleth, 1970, p.168).

"머리털은 고불고불하고... 검구나." 이것은 그리스도에게는 노쇠함이 없음을 비유

한 말씀이다. 13:8에 말하기를,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

하시니라"고 하였다.

 

 

 

5:12

 

눈은 시냇가의 비둘기 같은데 젖으로 씻은 듯하고 아름답게도 박혔구나 - 여기서

""은 성령을 상징하는데(5:6), (성령)"비둘기 같다"고 함은 비둘기 같이 온

유하고 순결하신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 귀절에서 또 포함적으로 말하는 것은 성령이

그리스도에게 비둘기 같이 임하실 것을 내다보기도 하였다는 것이다(3:16).

"아름답게도 박혔구나."이 말은 "충만하게(* )박혔구나"라고 번역될

수 있다(C.D.Ginsburg). 그러면 충만하게 박혔다는 것은 성령님의 무소부재(無所不在)

하심을 가리킨다. 5:6 하반에 말하기를,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고 하였다.

 

 

 

5:13

 

뺨은 향기로운 꽃밭 같고 향기로운 풀 언덕과도 같고 입술은 백합화 같고 몰약의

즙이 뚝뚝 떨어진다 - "빰은 향기로운 꽃밭 같고 향기로운 풀 언덕과도 같다"고 함은

그리스도의 얼굴이 언제나 평화로우시고 온유하시고 은혜로우신 것을 비유한다.

45:2, 85:8; 14:24-27; 5:36; 8:48 참조.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한 베드로는

주님의 얼굴을 쳐다보고 통회하게 되었다. 22:61-62에 말하기를,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닌 베드로가 주의 말씀 곧 오는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

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고 하였다.

"입술은 백합화 같고." 이것은 그리스도의 입술의 은혜로우심을 비유함이다(

35:1-2). "몰약의 즙이 뚝뚝 떨어진다"고 함은, 그 가르치시는 말씀을 받는 자가 몰약

과 같이 부패하지 않게 됨을 가리킨다. 이것은, 그 말씀을 받는 자의 영생할 것을 비

유한다.

 

 

 

5:14

 

손은 황옥을 물린 황금 노리개 같고 몸은 아로새긴 상아에 청옥을 입힌듯 하구나 -

, 신랑으로 비유되신 그리스도의 손의 행사는 "황옥"처럼 성결하고 "황금"처럼 견실

한 것을 비유한다. 성경에 하나님의 성결은 옥이나 보석의 빛갈로 비유되고(

21:11,20), 그의 신성(神性)과 견실성(堅實性)은 금으로 비유된다(21:18,21). 여기

""이란 말은 내장을 가리키는데, 내장은 성경에서 긍휼(내장이란 의미가 있음)이란

말은 그리스도의 긍휼을 가리킨다. 주님의 긍휼은"상아"와 같이 결백하고 "청옥"과 같

이 성결하가. "청옥"은 보통으로 하나님의 성결의 영광을 상징한다. 54:11;

4:7; 1;26; 21:20 참조.

 

 

5:15

 

다리는 정금 받침에 세운 화반석 기둥 같고 형상은 레바논 같고 백향목처럼 보기

좋고 - 여기 "다리"에 대한 묘사는 "정금" 또는 "화반석" 으로 비유되었는데, 이것은

우주보다 우거운 속죄의 사명을 부담하실만한 그리스도의 능력을 상징한다. 55;22

에 말하기를,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노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라고 하였다.

"형상은 레바논 같고 백향목처럼 보기 좋고." " 레바논 같다"고 함은 포도와 백향

목이 풍성한 레바논처럼 그리스도에게서 무수한 의인이 자라날 것을 가리키고(

92:12), "백향목처럼 보기 좋다'고 함은 그가 구원자로서 견고하여 요동치 않을 실 것

을 비유한다.

 

 

 

5:16

 

입은 심히 다니 그전체가 사랑스럽구나 예루살렘 여자들아 나의 사랑하는 자요 나

의 친구일다 - "입은 심히 다니"란 말은 주님의 말씀의 맛의 단것을 비유한다.

119:103 참조. "예루살렘 여자들"이란 말에 대하여는 1:5의 같은 말 해석을 참조하여

. "나의 친구"그리스도는 교회의 친구란 말씀이다. 본래 교회는 그리스도의 친구될

만한 자격이 없지만 그리스도께서 친구로 삼아 주셨음으로 말미암아 그를 친구로 모실

수 있게 되었다(15:15). 11;1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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