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4:1
내 사랑 너는 어여쁘고도 어여쁘다 너울 속에 있는 네 눈이 비둘기 같고 네 머리털
은 길르앗산 기슭에 누운 무리 염소 같구나 - 솔로몬은 여기서 그 애인 술람미 여인의
아름다움을 칭찬한다. 이것은 교회(혹은 신자)의 경건미(敬虔美)에 대한 그리스도의
칭찬을 비유한다.
"눈이 비둘기 같다"고 함은 무슨 뜻인가? 그것은, (1) 온유하여 주님을 잘 배운다
는 뜻이며(마 5:8), (2) 또한 순결하여(마 10:16) 하나님을 본다는 뜻이며(마 5;8),
(3) 정절(貞節)이 있다는 뜻이다. 비둘기는 까마귀와 달라서 노아 홍수 때에 인류를
위하여 봉사한 일이 있다(창 8:8-11).
"머리털은 길르앗산 기슭에 누운 무리 염소 같구나" 이 말씀은 머리털이 길다는 뜻
이다. "길르앗"은 요단강 건너 무수한 골짜기가 있는 산줄기로서 목축하기에 적당한
땅인데(민 32;1), 거기서 자라난 염소는 털이 길다 여자가 머리털을 길게 가짐으로 그
의 순종의 덕을 표상으로 보여준다. 그러므로 그의 긴 머리는 도덕적 의미에 있어서
아름다운 것이다(고전 11:10,15), 딤전 2:11; 벧전 3;4 참조.
아 4:2
네 이는 목욕장에서 나온 털 깎인 암양 곧 새끼 없는 것은 하나도 없이 각각 쌍태
를 낳은 양 같구나 - "이는 ... 양 같구나." 이 말씀은 이빨이 양의 이빨과 같다는 뜻
이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은 영적 의미를 취하는 학설이 있다. 곧, 양의 이빨은 사람
의 이빨 같아서 날카롭지도 않고 또 그 높이도 다 가지런하다고 한다. 이와 같은 이빨
은 상대방을 해라려는 목적이 없고 다만 식물을 씹기 위하여서만 사용될 뿐이다. 이런
의미에서 탈굼역(Targum)은 이것이 교역자들을 비유한다는 의미로 해석하였다. 낄
(HJohn Gill)이란 주석가는 여기 "이"란 말이 교역자들을 비유한다고 말할 만한 여러
가지 이유를 제시하였다. 그 대표적인 이유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곧, (1) 이빨
들의 높이가 균등하다는 것이며,(2) 교역자들이 그 받은 은사(恩賜)는 각각 달라도 그
들의 사역의 목표는 같다는 사실에서 "이"는 교역자를 비유한다는 것이다(Song of
Solomon, 1854, p.138).
그러나 위의 해석보다는 다음과 같이 해석함이 자연스럽다. 곧, 이빨이 양 같다고
하였으니(그것이 양의 이빨과 같다는 뜻이 아님), 그저 양의 모양과 같다는 것이다.
또 "쌍태를 낳은"이란 말(* )은 "한 쌍씩 있는"(to be pairs)으로 개역
되어야 한다(C.D.Ginsburg). 그러므로 이 귀절의 뜻은 결국 술람미 여인의 윗이빨이
그 아랫이빨과 잘 맞추어져서 한 쌍이 되어 있음이 마치 한 쌍의 양과 같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교회(혹은 신자)의 순결함과 질서 정연함을 비유한다고 함이 옳다.
아 4:3
네 입술은 홍색 실 같고 네 입은 어여쁘고 너울 속의 네 뺨은 석류 한 쪽 같구나 -
"홍색 실"은 여리고성이 멸망 당할 때에 라합이 구원 받기 위하여 자기 집 창에 달아
놓았던 것을 연상케 한다(수 2:18,21). 이것은 또한 애굽에서 이스라엘의 장자들이 구
원 받기 위하여 문설주에 발랐던 양의 피(출 12:7)와 관련되어 있다. 그러므로 입술이
"홍색 실 같다"고 함은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의 복음을 말하는 입술이다. 그래서 그
아랫 말씀에 그"입은 어여쁘다"라고 한다. 복음 전하는 발이나(롬 10:15; 사 52:7) 복
음 전하는 입은 다 같이 아름답다.
"너울 속의 네 뺨은 한 쪽 같구나." 일설에 의하면 여기 "너울"은 머리털을 의미하
고, "뺨"은 부드러움을 나타내는 부분이라고 하며, 뺨이 "석류 한 쪽 같다"고 함은 하
나님의 교회가 죄악을 부끄러워하며 멀리하며, 또 혹은 과오를 범할 경우에 그것을 아
프게 여기며 부끄럽게 여겨 회개하는 것을 주님이 기뻐하신다고 한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해석이 적합하다. 곧, 석류는 그 속이 아름다움과 같이 주님에게 대한신자의 중
심이 아름다와야 할 것을 비유한다(시 51:6). 그러므로 "뺨은 석류 한 쪽 같다"고 함
은 신자의 중심에 있는 믿음, 소망, 사랑이 주님 보시기에 아름답다는 것이다. 이와같
은 신자는 기쁨이 충만하여 그 얼굴도 아름답다.
아 4:4
네 목은 군기를 두려고 건축한 다윗의 망대 곧 일천 방패, 용사의 모든 방패가 달
린 망대 같고 - 사람이 악을 고집하여 회개치 않는데 완강하면 그는 "목이 곧은"자라
고 불리운다(행 7:51). 그는 좋지 않은 일에 굳센 자이다. 그와 반면에 우리 본문은
신앙 생활에 전투적이고 굳센 자를 가리켜 그 목이 "다윗의 망대"와 같다고 한다. 목
은 머리와 몸을 붙게 하는 부분인 것처럼 진실하고 굳센 신앙은 교회(혹은 신자)로 하
여금 머리되신 그리스도에게 부속하도록 만든다.
아 4:5
네 두 유방은 백합화 가운데서 꼴을 먹는 쌍태 노루 새끼 같구나 - "유방"은 교회
의 참된 교역자가 신자들에게 힘과 위로의 방편임을 비유한다. 사 66:11에 말하기를,
"너희가 젖을 빠는 것 같이 그 위로하는 품에서 만족 하겠고 젖을 넉넉히 빤 것 같이
그 영광의 풍성함을 인하여 즐거워하리라"고 하였다. 사 60:16 참조. 그러므로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두 유방"은 하나님의 말씀을 신자들에게 올바로 먹여주는 방편으
로서의 교역자들을 비유한다(살전 2:7-8). 여기 유방이 두 개라는 것이 역시 증인의
수효(곧, 두 증인)를 성립시키는 것만큼 유방은 교역자(복음의 증인)를 비유한다는 해
석이 정당화 된다(신 19:15; 눅 10:1; 요 8:17). 유방에서 나는 젖은 음식을 소화시켜
만든 영양분이다. 이와 같이 교역자의 전해주는 진리의 말씀은 그가 친히 성경 말씀을
먹고 소화해서 내어주는 것이어야 한다 벧전 2:1-2 참조.
"백합화"는 하나님의 은혜를 비유하고(사 35:1-2). "노루 새끼"는 빨리 뛰는 것이
특징인데 이는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하기 위하여 거룩하고 높은 차원에서 부지런히 활
약하는 성도를 비유한다. 합 3:19 참조.
"꼴을 먹는 쌍태 노루 새끼 같구나." 이 비유의 요점은 그 두 개의 유방의 균형과
생명력을 묘사하는데 있다(G.Ch. Aalders, Von Der Meiden). "유방"이란 말이 교역자
를 비유한 경우에 그 인격의 균형과 영적 생명력은 교역자의 자격을 성립시킨다.
아 4:6
날이 기울고 그림자가 갈 때에 내가 몰약 산과 유향의 작은 산으로 가리라 - 이것
은 그리스도로 비유된 신라의 말씀이다. 이 귀절은 신약 시대에 복음 운동이 전개될
것을 내다보게 한다. 그 뜻은 이러하니 곧, 복음 운동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향기
같이(고후 2:15) 기쁜 관계를 성립시킨다는 것이다. 신약 신대에는 하나님과 참된 싸
자들 사이에 영적 교통(靈的交通)이 열린다(요 1;51).
"날이 기울고 그림자가 갈 때"란 말은 새 날이 온다는 말씀이다. 히 1:2 참조. 이
것은 신약의 새로운 시대를 내다보는 말씀이다. "몰약산과 유향의 작은 산"이란 말이
모리아산의 성전을 가리킨다고 하는 해석이 있고, 또는 성령으로 깨어 기도하는 자리
를 비유한다는 해석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일반적으로 신약 시대의 복음 운동을 상징
하는 말씀이다.
아 4:7
나의 사랑 너는 순전히 어여뻐서 아무 흠이 없구나 - 교회를 향하여 "나의 사랑"이
라고 부른 것은 신약에도 있다(요일 2;7, 4:1; 요삼 1:2.5). "아무 흠이 없구나." 이
세상에 있는 신자들의 인격은 아직도 불완전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보시는 때에 그들을 무흠하게 보신다. 그들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義)롭다고 간주된다. 고후 5:21에 말하기를,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
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였다."
아 4:8
나의 신부야 너는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하고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가자
아마나와 스닐과 헤르몬 꼭대기에서 사자굴과 표범 산에서 내려다 보아라 - 술람미 여
인이 솔로몬을 따라가기 위하여는 그 고향이었던 팔레스틴 북쪽 지방(레바논, 아마나,
스린, 헤르몬 산등이 있는 지방)에서 떠나야 될 것이었다. 술람미 여인의 고향은 헤르
몬 산근처였으나 여기에는 시문학적(詩文學的)인 자유로운 표현에 의하여 헤르몬 산과
관련된 다른 산들의 이름도 언급되었다. 이 문구에 대한 영적 해석은 다음과 같다.
곧, 신랑으로 비유되신 그리스도께서 "몰약산과 유향의 작은 산"(6절)과 같은 은혜 충
만 한 곳에 가시려고 할 때에 신부된 교회는 레바논산 같은 험한 죄에서 떠나 그와 동
반(同伴)해야 된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와 함께 가자"고 하시니 이것은 그가
신자로 하여금 죄에서 떠나도록 적극적으로 도와 주실 것을 약속하심이다. 사실상 신
자가 주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죄에서 떠날 수 없다.
일설에 의하면 "레바논"은 예루살렘 성전을 가리킨다고 한다. 그 이유로서는 예루
살렘 성전이 레바논에서 가져온 목재로 건축되었으므로 "레바논"이란 별명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11:1 참조. 그러나 여기서는 문자 그대로 레바논 산을 의미할 뿐
이다.
"아마나와 스닐과 헤르몬 꼭대기에서 사자굴과 표범 산에서 내려다보아라." 여기
"내려다 보아라"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는 "떠나라"라고 개역(改譯)되어야
한다. "아마나(레바논 산의 일부)와 스닐(헤르몬산의 별명)과 헤르몬"은 죄악의 소굴
이라고 할만큼 그곳에는 잔인무도한 악당들(이들은 사자로 비유됨, 렘 12:8)이 살았다
(Strabo,Geograph. 1. 14. p.465, Cicero, Ad. Attic. 1.5,20. Plutarch, In Vita
Ciceron, p.879).이런 의미에서도 이산들을 "사자굴과 표범산"이라고 할 수 있다. 신
자가 주님이 계신 곳("몰약산과 유향의 작은 산"-6절)에 가려면 그 생활에 있어서 이
런 험악한 죄악의 소굴에 속해 있지 말고 거기서 떠나야 된다.
우리가 이 점에 있어서 한가지 주의 할것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이런 험한 곳을
떠나 나오는 그 때부터 주님이 함께하여 주신다는 것이다. "...에서부터 나와 함께"(8
절 상반)란 말씀이 그 뜻이다. 예수님은 세상 끝날까지 복음을 전하는 신자와 함께 하
시겠다고 약속하셨다(마 28:20).
이 부분(6-8)의 말씀은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에게 그의 고향과 부모를 떠나 자기와
함께 가자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께서 신부로 비유된 신자들에게 그들의 부
모 처자보다 그리스도를 더 사랑해야 된다고 말씀하심이다.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말씀
을 따라가기 위하여는 그의 본토와 친적과 아비집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창 12:1). 예
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부모와 자식이나 전토를 버
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고 하셨다(마 19:29). 눅 14:26,33참
조. 주님을 따르는 자가 자기의 사랑하는 자들을 버려야 된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해
석해야 한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주님을 더 사랑해야 된다는 의미이다. 이 점에 대하
여 고전 7:29-31이 밝혀준다. 거기 말하기르,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때가 단
축하여진 고로 이 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 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형적은 지나감
이니라"고 하였다.
아 4:9,10
나의 누이 나의 신부야 네가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네 눈으로 한 번 보는 것과 네
목의 구슬 한 꿰미로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나의 누이 나의 신부야 네 사랑이 어찌 그
리 아름다운지 네 사랑은 포도주에 지나고 네 기름의 향기는 각양 향품보다 승하구나
-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가리켜 "누이"라고 할 수 있는 이유는 몇 가지 있다. (1) 그가
우리와 같은 혈육을 받으신 까닭이며(히 2:11,14), (2)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우리들의 아버지이신 계약 관계 때문이며(요 20:17), (3) 신자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마 12:50).
"네 눈으로 한 번 보는 것"이란 문구의 영적 의미는 신자가 신앙으로 주님을 보는
것을 가리킨다. 주님은 우리의 신앙을 기뻐하신다(히 11:6), 혈루증으로 12 년 동안
앓던 여자가 예수님의 뒤로 와서 그 옷 가를 만졌을 때에 예수님은 그 여자의 신앙적
행위를 아시고 기뻐하셨다(마 9:20-22).
"네 사랑은 포도주에 지나고." 포도주는 그것을 마시는 자에게 기쁨을 준다. 그리
스도는 신부된 교회의 사랑을 기뻐하신다. 그 이유는 교회가 그를 믿고 사랑하므로 구
원을 받기 때문이다. 벧전 1:8-9에 말하기를,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
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 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고 하였다.
"네 기름의 향기"란 말은 신부된 교회가 지니고 있는 성령님의 역사를 말함이다(요
일 2:20).
아 4:11
내 신부야 네 입술에서는 꿀 방울이 떨어지고 네 혀 밑에는 꿀과 젖이 있고 네 의
복의 향기는 레바논의 향기 같구나 - 이 말씀은, 그리스도를 비유하신 신랑이 교회를
비유하신 신부의 행위를 기뻐하며 칭찬함이다. "꿀"은 지혜를 비유하는데(잠
24:13-14), 이것은 하나님의 지혜 곧, 복음을 가리킨다(고전 1:21,24). "의복의 향기"
는 성도의 옳은 행실을 비유한다(계 19:7-8). 호 14:6 참조. 주님께서는 성도들이 입
술로 복음을 전할 때에 기뻐하시며, 또 그들이 구원의 은혜를 찬송할 때에 기뻐하신다
(히 13:15). 그는 또 성도들의 선한 행실을 기뻐하신다(히 13:16).
아 4:12
나의 누이, 나의 신부는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로구가나 - "나의
누이"란 말에 대하여는 위의 9절에 해석을 참조하여라. "잠근 동산"은 교회의 성격을
보여준다. 곧 (1) 교회는 그리스도만능 위하여 있어야 한다는 것. 교회는 모든 향기로
운 열매와 보배로운 나무와같은 영적 산물로 부요하지만 그것은 모두 다 그리스도만을
위하여 있다는 것이다. (2) 교회는 성별(聖別)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 "잠근 동산"이
란 말은 교회가 세상의 악한 풍조로 더불어 타협하지 않고(엡 4:14) 성별되어 있어야
할 책임도 보여준다.
"덮은 우물"이란 말과 "봉한 샘"이란 말은 서로 같은 뜻을 가진다. 곧, 교회가 소
유한 하나님의 은혜는 오직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서만 사용될 것이고 인간의 사욕을
위할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그 뿐 아니라 교회가 이 은혜를 잘 파수하여 보존시켜야
될 것도 이 말씀이 가르친다. 계 3:10에 말하기를,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
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
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고 하였고, 계 2:25에는 말하기를, "다만 너희에게 있
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고 하였고, 고전 15:2에는 말하기를, "너희가 만
일 나의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이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였다.
아 4:13,14
네게서 나는 것은 석류나무와 각종 아름다운 과수와 고벧화와 나도초와 나도와 번
흥화와 창포와 계수와 각종 유항목과 몰약과 침향과 모든 귀한 향품이요 - 여기에 열
거된 각종 실과나무와 꽃과 향품은 신자의 심령에 있어야 할 거룩한 은혜를 비유한다.
이런 은혜로운 심령은 예수님이 함께 하신 결과이다. 여기에 맹수(猛獸)에 대한 말은
전연 없으니, 그 이유는, 맹수는 하나님께 제물이 될만한 것이 못되므로 믿음이나 사
랑 같은 은혜로운 덕을 비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 4:15
너는 동산의 샘이요 생수의 우물이요 레바논에서부터 흐르는 시내로구나 - "동산의
샘"이나 "생수의 우물"이나 "레바논에서부터 흐르는 시내"는 실과나무와 화초를 살리
는 물의 원천들이다. 이 물은 고여 있는 물이 아니고 끊임 없이 흘러 내리는 샘물이라
고 한다. 이와같은 교회가 소유한 성결의 능력은 무한하신 성령를 근원으로 하고있다.
"레바논에서부터 흐르는 시내로구나." 여행자들의 말에 의하면, 레바논 산골짜기에
는 깨끗한 물이 힘차게 흘러 내린다고 한다. 이렇게 흘러 내리는 물이 먼 곳에 이르도
록 시원한 물을 공급한다. 렘 18:14에 말하기를, "레바논의 눈이 어찌 들의 반석을 떠
나겠으며 원방에서 흘러 내리는 찬 물이 어찌 마르겠느냐"라고 한다. 그러므로 레바논
산에서 흐르는 물은 다함이 없는 성령의 생명력을 비유할 만하다(요 4:14, 7:37-39).
아 4:16
북풍아 일어나라 남풍아 오라 나의 동산에 불어서 향기를 날리라 나의 사랑 하는
자가 그 동산에 들어가서 그 아름다운 실과 먹기를 원하노라 - 이것은 신부로 비유된
교회의 말이다. "북풍"은 구름을 몰아쳐서 하늘을 맑아지게 하고, "남풍"은 기후를 따
뜻하게 만들어 실과를 익도록 한다. 바람은 언제나 성령의 표상이다(요 3;8). 성령께
서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의심과 두려움과 죄악을 소멸하여 맑게 하시고, 또 남풍과
같이 완악한 마음을 부드럽게도 해 주신다. "나의 사랑하는 자가 그 동산에 들어가서
그 아름다운 실과 먹기를 원하노라." 교회의 소원은 "사랑하는 자" 곧, 주님께서 오셔
서 성령의 아름다운 각종 열매를 잡수시듯이 즐겨 주시기를 원한다. 교회는 이렇게 되
어야 한다. 갈 5:22-23에 말하기를, "오직 성령의 열매를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고 하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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