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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서6장(박윤선)

은바리라이프 2019. 1. 24. 11:05

 

 

 

6:1

 

여자 중 극히 어여쁜 자야 너의 사랑하는 자가 어디로 갔는가 너의 사랑하는 자가

어디로 돌이켰는가 우리가 너와 함께 찾으리라 - 여기 "우리가 너와 함께 찾으리라"

한 말씀은 중요하다. 예루살렘 여자들 곧, 피상적으로 주님을 따르던 자들이 이제 술

람미 여인으로 비유된 진실한 신자의 증거하는 말을 듣고 자기들도 가까이 한다는 것

이다. 인간은 그리스도에 대하여 듣는 것이 절대로 중요하다. 10:17에 말하기를,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하였다 인간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음으로 주님의 영광을 깨닫게 되어진다. 주님의 신적(神的)영과

에 대하여는 인간이 감각으로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말씀을 통한 성령의 감동에

의해서만 알게 되어진다. 언제든지 성령의 감동은 진실한 신자들의 증거 운동에 의하

여 임하는 것이다. 성령의 감동이 인간에게 임할 때에 인간은 보이지 않는 주님의 영

광을 깨달으며, 또 믿게 되어진다. 고전 12:3에 말하기를,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

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하였다. 고전 2:10-16 참조. 사마리아 여자가 그리스도

에게 대하여 증거한 결과로 많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주님에게 나아와 그를 믿게 되었

(4:39-42).

 

 

 

6:2

 

나의 사랑하는 자가 자기 동산으로 내려가 향기로운 꽃밭에 이르러서 동산 가운데

서 양 떼를 먹이며 백합화를 꺾는구나 - 이것은 신부로 비유된 교회(신자)가 증거하는

말이다. , 그리스도께서는 교회 안에("자기 동산으로"란 말)서 하나님의 양 떼를 먹

이시고 계시다는 것이다. "동산"이란 말은 여기서는 양 떼를 먹인다는 말씀과 관련되

어 있는 것만큼 확실히 은혜로운 교회를 비유한다. "향기로운 꽃밭"이란 말도 역시 은

혜로운 환경을 비유하는 것이 분명하다(35:1-2). 주님께서는 은혜로운 교회("향기

로운 꽃밭")와 함께 하신다. 11:5-6에 말하기를,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

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

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하였다.

"백합화를 꺾는구나." 이는 주님께서 진실한 신자들의 믿음과 덕의 아름다움을 기

뻐하심에 대한 비유적 표현이다. 14:5-6 참조.

 

 

 

6:3

 

나는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고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다 그가 백합

화 가운데서 그 양 떼를 먹이는구나 - 이것은 진실한 교회(신자)가 그리스도에게 대한

자기의 신앙을 고백하는 말씀이다. 여기서 교회는 자기와 그리스도가 일체(一體)라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교회와 그리스도가 일체되기는 그리스도의 구원의 결과이다.

17:21-23에 말하기를,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

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것 같이 저

희도 하나가 되게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것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

하심 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라고 하였다.

16:33 참조. 이와 같은 사상은 결국 진실한 신자가 그리스도에게서 영원히 끊어지지

않는다는 놀라운 구원에 대한 신념인 것이다. 8:31-34에 말하기를, "그런즉 이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

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겠느뇨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

신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

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

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고 하였다.

 

 

 

6:4

 

내 사랑아 너의 어여쁨이 디르사 같고 너의 고움이 예루살렘 같고 엄위함이 가치를

벌인 군대 같구나 - 여기서는 굳센 신앙을 고백한 교회(신자)에 대하여 신랑으로 비유

되신 그리스도께서 칭찬하는 언사를 발한다. "디르사"란 말은 즐겁다는 뜻이다. 그러

나 여기서는 이것이 이스라엘에 있는 아름다운 도시의 이름으로서 이스라엘 왕들이 별

궁을 두었던 곳이라고 한다(왕상 14:17,16:23). 그러므로 "내 사랑아 너의 어여쁨이

디르사 같고"란 말은 교회의 아름다움을 묘사한 것이다.

"예루살렘 같고." 예루살렘이 아름답다는 사상은 시 48:2에 있다. 이 말씀을 보아

도 아가서에서 말하는 신부(新婦)는 교회를 비유한 것이 분명하다. 그러면 교회의 아

름다움을 예루살렘으로 비유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거기 있는 성전에서 하나님

을 공경하는 거룩한 행사가 거행되기 때문이다(122:3-4). 진정한 아름다움은 그 무

엇이든지 하나님 중심한 것이다.

"엄위함이 기치를 벌인 군대 같구나." 이것은 술람미 여인의 아름다움이 정복력을

지녔다는 뜻인데, 이는 신부로 비유된 교회의 위엄을 비유한다. 교회는 세상에서 끊임

없이 죄악으로 더불어 싸워 이기고 있다. 구약 시대에 광야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계속적으로 하나님의 원수들로 더불어 전쟁하였으며, 또 승리

하였다. 진정한 교회의 능력은 마침내 음부를 이긴다. 16:18 참조.

 

 

 

6:5

 

네 눈에 나를 놀래니 돌이켜 나를 보지 말라 네 머리털은 길르앗산 기슭에 누운 염

소 떼 같고 - "돌이켜 나를 보지 말라." 어떤 학자들은 이 문구를 다음과 같이 개역한

. , "네 눈은 나를 향하여 돌리라"라고 이것은 신앙과 사랑으로 주님을 바라보라

는 의미일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신자의 신앙과 사랑을 보시고 매우 기뻐하신다.

는 백부장의 신앙을 보시고 놀라신 일도 있으니 곧, 8:10을 보면, "예수께서 들으

시고 기이히 여겨 좇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고 하였다.

"네 머리털은 길르앗 산 기슭에 누운 염소 떼 같고." 이 말씀에 대하여는 4:1 하반

에 대한 해석을 참조하라.

 

 

 

6:6

 

네 이는 목욕장에서 나온 암양 떼 곧 새끼 없는 것은 하나도 없이 각각 쌍태를 낳

은 양 같고 - 이 말씀에 대하여는 4:2 의 해석을 참조하라.

 

 

 

6:7

 

너울 속의 너의 뺨은 석류 한 쪽 같구나 - 이 말씀에 대하여는 4:3에 있는 같은 문

귀의 해석을 참조하라.

 

 

 

6:8

 

왕후가 육십이요 비빈이 팔십이요 시녀가 무수하되 - 왕상 11:3에는, "왕은 후비

(왕후들)가 칠백인이요 빈장(비빈)이 삼백인라고"고 하였으니, 이 귀절의 수효와 다르

. 그러나 이것은 문제될 것 없다. 옛날에 임금들은 그 왕비들의 수효를 반드시 일정

하게 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솔로몬이 아가서를 저술하던 때로 말하면 처첩을

많이 두고 지내던 자기의 과거 생활을 회개하는 그의 말년이라고 짐작된다. , 그는

말년에 이르러 처첩을 두지 않았던 젊은 시절 즉, 술람미 여인만을 참된 아내로 사랑

하던 그 시절을 회고하면서 이 글을 썼다고 생각된다. 일설에 여기 "왕후", "비빈", "

시녀"등은 천사들을 비유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술람미 여인으로 비유된 참된 교회(

된 신자)가 하나님 보시기에 천사의 무리보다 아름답다는 의미일 것이다(다음절 참

). 사실상 천사들은 구속(救贖)의 사랑을 맛보지 못하였으나 참된 신자(교회)는 그

것을 체험한다. 하나님의 가장 깊은 사랑을 깨닫고 그를 극히 사랑하는 마음으로 경외

(敬畏)하는 자들은 성도들 뿐이다. 하나님은 죄인들을 불러서 회개케 하여 사죄의 깊

은 사랑을 깨닫게 함으로 그를 경외하게 하신다. 130:3-4은 말하기를, "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 감찰하실진대 주여 누가 서리이까 그러나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 주를

경외케 하심이니이다"라고 하였다.

 

 

 

6:9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는 하나 뿐이로구나 그는 그 어미의 외딸이요 그 낳은

자의 귀중히 여기는 자로구나 여자들이 그를 보고 복된 자라 하고 왕후와 비빈들도 그

를 칭찬하는구나 - 여기 이른바 "나의 비둘기"란 말에 대하여 2:14의 해석을 참조하

, "완전한 자"란 말에 대하여는 4:7의 해석을 참조하라.

"하나 뿐이로구나." 이것은 신자들의 수효를 의미함이 아니고, 다만 비교적으로 가

장 성결한 신자들의 대표자로서 한 사람을 들어 말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고전

9:24-25은 말하기를,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 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 하라 이기기

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

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고 하였다.

"그 어미의 외딸"이란 말도 같은 뜻으로서 그 독특성을 지적한 것이다. "그 어미"

또는 "그 낳은 자"란 말은 신약 교회의 모체(母體)라고 할 수 있는 이스라엘 교회를

비유한다. "여자들이 그를 보고 복된 자라 하고 왕후와 비빈들도 그를 칭찬하는구나."

위의 말씀과 같이 일반 신자들("여자들")이 성결면에 있어서 특스한 신자를 부러워하

고 천사들("왕후와 비련")도 성결면에 있어서 특수한 신자를 흠모한다는 뜻이다. 벧전

1:10-12의 말씀 중에 특별히 12절 끝에 있는 말씀을 참조하라.

 

 

 

6:10

 

아침 빛 같이 뚜렷하고 달 같이 아름답고 해 같이 맑고 기치를 벌인 군대 같이 엄

위한 여자가 누구인가 - 이 말씀도 신랑으로 비유되신 그리스도께서 신부로 비유된 교

(신자)를 칭찬하는 말씀이다. 여기 이른바 "아침 빛", 그리고 """"는 술람미

여인(참된 교회 혹은 신자)의 성결의 덕()을 비유한 것이다. ""은 순결하여 하나

님만 사랑하는 신자의 특징이다. 하나님을 사모하고 사랑하는 자들 만이 그 심령의 눈

이 빛과 같이 밝아져서 하나님을 보게 된다. 5:8에 말하기를,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라고 하였고, 6:21-24에는 말하기를, "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

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

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고 하였다. 12:1에도 교회의 아름다움

을 빛으로 비유하고 말하기를,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글 발 아래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 두 별의 면류관을 썼더라"고 하였다.

"기치를 벌인 군대 같이 엄위한 여자." 이 말씀에 대하여는 앞에 있는 4절에 있는

같은 말 해석을 참조하라.

 

 

 

6:11,12

 

골짜기의 푸른 초목을 보려고 포도나무가 순이 났는가 석류나무가 꽃이 피었는가

알려고 내가 호도 동산으로 내려갔을 때에 부지중에 내 마음이 나로 내 귀한 백성의

수레 가운데 이르게 하였구나 - 이 말씀은 신랑으로 비유된 그리스도의 말씀의 계속이

. 그리스도는, 그를 떠난 교회(신자)를 당분간 그대로 놓아두고 새로운 신자를 기르

는데 주력하신다. 여기 이른바 "골짜기"는 겸손한 마음을 비유한다. 보통으로 새로운

신자들에게는 영적 교만이 없다. 그들은 아직 백향목과 같지 못하고 푸른 초목 같으

, 포도나무 순과 같으며 석류나무의 꽃과도 같다. 기성 교회가 과오를 범할 때에 하

나님께서는 또 다시 다른 방면으로 역사하셔서 새로운 신자들의 단체를 이루신다.

그러나 하나님은 택한 백성을 아주 버리시지 않고 어떤 시기에 이르러 그들을 다시

권고하신다. 그 때에는 그들이 일깨어서 회개하고 주님을 간절히 찾게 된다. 따라서

주님은 그들을 급속히 찾아 오시게 된다. 요셉이 일시 동안 그 형들을 냉정하게 대하

면서 모르는 체 하였으나 나중에는 그들에게 통정하고 울기까지 하였다(42:7,

45:1-45). 요셉의 이와 같은 행위는 죄인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처사의 모형이다.

"내 귀한 백성의 수레 가운데 이르게" 하였다는 것은, 위에 말한 바와 같이 주님께서

신자들의 회개와 기도와 신앙에 이끌려 신속히 찾아 오신다는 뜻이다(Matthew Henry).

그들의 신앙 태도는 불수레의 빠른 것과 같이 주님을 신속히 모시는 묘책이다.

 

 

 

6:13

 

돌아오고 돌아오라 술람미 여자야 돌아오고 돌아오라 우리로 너를 보게 하라 -

기 발언자는 솔로몬왕의 시녀(侍女)들이다. "술람미 여자"란 말의 히브리어(*

)는 헤르몬 산 기슭에 있는 작은 도시의 이름과 관련되어 있다(왕상 1:3; 왕하 4:12,

25). 일설에 의하면 다윗의 말년에 그를 돕던 아비삭이 이곳 여자였는데(왕상 1:15),

그녀가 본서의 "술람미 여자" , 솔로몬의 애인인 듯하다고 한다(J.H. Kroeze). 그러

나 이것은 하나의 추측에 불과하다.

"돌아오고 돌아오라." 신자의 신앙 생활이 일시 동안 약해졌을지라도 그가 회개하

기만 하면 주님은 물론 천사들도 그를 극히 환영한다. 9:12-13; 15:7 참조.

 

 

 

6:14

 

너희가 어찌하여 마하나임의 춤추는 것을 보는 것처럼 술람미 여자를 보려느냐 -

이 귀절은 다음과 같이 개역되어야 한다. , "너희가 술람미 여자에게 무엇을 보려고

하는가? 마하나임의 춤추는 것과 같은 것이지."라고 이것은 술람미 여인의 아름다움을

칭찬하는 솔로몬의 말이다(L.H. Van Der Meiden, Het Hooglied, p.168).

"마하나임"(* )"천사의 두 무리"란 뜻이다(32:1-2). 천사의 "

추는 것"이란 물론 고상하고도 아름다움을 말함인데, 솔로몬의 보기에 술람미 여인의

아름다움이 그와 같다는 것이다. 술람미 여인으로 비유된 신자들의 회개는 하나님 보

시기에 천사들의 춤추는 것처럼 고상하고도 아름답다. 천사들도 그것을 보고 즐거워한

. 15:10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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