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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서4장(박윤선)

은바리라이프 2019. 1. 24. 11:03

 

 

 

4:1

 

내 사랑 너는 어여쁘고도 어여쁘다 너울 속에 있는 네 눈이 비둘기 같고 네 머리털

은 길르앗산 기슭에 누운 무리 염소 같구나 - 솔로몬은 여기서 그 애인 술람미 여인의

아름다움을 칭찬한다. 이것은 교회(혹은 신자)의 경건미(敬虔美)에 대한 그리스도의

칭찬을 비유한다.

"눈이 비둘기 같다"고 함은 무슨 뜻인가? 그것은, (1) 온유하여 주님을 잘 배운다

는 뜻이며(5:8), (2) 또한 순결하여(10:16) 하나님을 본다는 뜻이며(5;8),

(3) 정절(貞節)이 있다는 뜻이다. 비둘기는 까마귀와 달라서 노아 홍수 때에 인류를

위하여 봉사한 일이 있다(8:8-11).

"머리털은 길르앗산 기슭에 누운 무리 염소 같구나" 이 말씀은 머리털이 길다는 뜻

이다. "길르앗"은 요단강 건너 무수한 골짜기가 있는 산줄기로서 목축하기에 적당한

땅인데(32;1), 거기서 자라난 염소는 털이 길다 여자가 머리털을 길게 가짐으로 그

의 순종의 덕을 표상으로 보여준다. 그러므로 그의 긴 머리는 도덕적 의미에 있어서

아름다운 것이다(고전 11:10,15), 딤전 2:11; 벧전 3;4 참조.

 

 

 

4:2

 

네 이는 목욕장에서 나온 털 깎인 암양 곧 새끼 없는 것은 하나도 없이 각각 쌍태

를 낳은 양 같구나 - "이는 ... 양 같구나." 이 말씀은 이빨이 양의 이빨과 같다는 뜻

이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은 영적 의미를 취하는 학설이 있다. , 양의 이빨은 사람

의 이빨 같아서 날카롭지도 않고 또 그 높이도 다 가지런하다고 한다. 이와 같은 이빨

은 상대방을 해라려는 목적이 없고 다만 식물을 씹기 위하여서만 사용될 뿐이다. 이런

의미에서 탈굼역(Targum)은 이것이 교역자들을 비유한다는 의미로 해석하였다.

(HJohn Gill)이란 주석가는 여기 ""란 말이 교역자들을 비유한다고 말할 만한 여러

가지 이유를 제시하였다. 그 대표적인 이유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1) 이빨

들의 높이가 균등하다는 것이며,(2) 교역자들이 그 받은 은사(恩賜)는 각각 달라도 그

들의 사역의 목표는 같다는 사실에서 ""는 교역자를 비유한다는 것이다(Song of

Solomon, 1854, p.138).

그러나 위의 해석보다는 다음과 같이 해석함이 자연스럽다. , 이빨이 양 같다고

하였으니(그것이 양의 이빨과 같다는 뜻이 아님), 그저 양의 모양과 같다는 것이다.

"쌍태를 낳은"이란 말(* )"한 쌍씩 있는"(to be pairs)으로 개역

되어야 한다(C.D.Ginsburg). 그러므로 이 귀절의 뜻은 결국 술람미 여인의 윗이빨이

그 아랫이빨과 잘 맞추어져서 한 쌍이 되어 있음이 마치 한 쌍의 양과 같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교회(혹은 신자)의 순결함과 질서 정연함을 비유한다고 함이 옳다.

 

 

 

4:3

 

네 입술은 홍색 실 같고 네 입은 어여쁘고 너울 속의 네 뺨은 석류 한 쪽 같구나 -

"홍색 실"은 여리고성이 멸망 당할 때에 라합이 구원 받기 위하여 자기 집 창에 달아

놓았던 것을 연상케 한다(2:18,21). 이것은 또한 애굽에서 이스라엘의 장자들이 구

원 받기 위하여 문설주에 발랐던 양의 피(12:7)와 관련되어 있다. 그러므로 입술이

"홍색 실 같다"고 함은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의 복음을 말하는 입술이다. 그래서 그

아랫 말씀에 그"입은 어여쁘다"라고 한다. 복음 전하는 발이나(10:15; 52:7)

음 전하는 입은 다 같이 아름답다.

"너울 속의 네 뺨은 한 쪽 같구나." 일설에 의하면 여기 "너울"은 머리털을 의미하

, ""은 부드러움을 나타내는 부분이라고 하며, 뺨이 "석류 한 쪽 같다"고 함은 하

나님의 교회가 죄악을 부끄러워하며 멀리하며, 또 혹은 과오를 범할 경우에 그것을 아

프게 여기며 부끄럽게 여겨 회개하는 것을 주님이 기뻐하신다고 한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해석이 적합하다. , 석류는 그 속이 아름다움과 같이 주님에게 대한신자의 중

심이 아름다와야 할 것을 비유한다(51:6). 그러므로 "뺨은 석류 한 쪽 같다"고 함

은 신자의 중심에 있는 믿음, 소망, 사랑이 주님 보시기에 아름답다는 것이다. 이와같

은 신자는 기쁨이 충만하여 그 얼굴도 아름답다.

 

 

 

4:4

 

네 목은 군기를 두려고 건축한 다윗의 망대 곧 일천 방패, 용사의 모든 방패가 달

린 망대 같고 - 사람이 악을 고집하여 회개치 않는데 완강하면 그는 "목이 곧은"자라

고 불리운다(7:51). 그는 좋지 않은 일에 굳센 자이다. 그와 반면에 우리 본문은

신앙 생활에 전투적이고 굳센 자를 가리켜 그 목이 "다윗의 망대"와 같다고 한다.

은 머리와 몸을 붙게 하는 부분인 것처럼 진실하고 굳센 신앙은 교회(혹은 신자)로 하

여금 머리되신 그리스도에게 부속하도록 만든다.

 

 

 

4:5

 

네 두 유방은 백합화 가운데서 꼴을 먹는 쌍태 노루 새끼 같구나 - "유방"은 교회

의 참된 교역자가 신자들에게 힘과 위로의 방편임을 비유한다. 66:11에 말하기를,

"너희가 젖을 빠는 것 같이 그 위로하는 품에서 만족 하겠고 젖을 넉넉히 빤 것 같이

그 영광의 풍성함을 인하여 즐거워하리라"고 하였다. 60:16 참조. 그러므로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두 유방"은 하나님의 말씀을 신자들에게 올바로 먹여주는 방편으

로서의 교역자들을 비유한다(살전 2:7-8). 여기 유방이 두 개라는 것이 역시 증인의

수효(, 두 증인)를 성립시키는 것만큼 유방은 교역자(복음의 증인)를 비유한다는 해

석이 정당화 된다(19:15; 10:1; 8:17). 유방에서 나는 젖은 음식을 소화시켜

만든 영양분이다. 이와 같이 교역자의 전해주는 진리의 말씀은 그가 친히 성경 말씀을

먹고 소화해서 내어주는 것이어야 한다 벧전 2:1-2 참조.

"백합화"는 하나님의 은혜를 비유하고(35:1-2). "노루 새끼"는 빨리 뛰는 것이

특징인데 이는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하기 위하여 거룩하고 높은 차원에서 부지런히 활

약하는 성도를 비유한다. 3:19 참조.

"꼴을 먹는 쌍태 노루 새끼 같구나." 이 비유의 요점은 그 두 개의 유방의 균형과

생명력을 묘사하는데 있다(G.Ch. Aalders, Von Der Meiden). "유방"이란 말이 교역자

를 비유한 경우에 그 인격의 균형과 영적 생명력은 교역자의 자격을 성립시킨다.

 

 

 

4:6

 

날이 기울고 그림자가 갈 때에 내가 몰약 산과 유향의 작은 산으로 가리라 - 이것

은 그리스도로 비유된 신라의 말씀이다. 이 귀절은 신약 시대에 복음 운동이 전개될

것을 내다보게 한다. 그 뜻은 이러하니 곧, 복음 운동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향기

같이(고후 2:15) 기쁜 관계를 성립시킨다는 것이다. 신약 신대에는 하나님과 참된 싸

자들 사이에 영적 교통(靈的交通)이 열린다(1;51).

"날이 기울고 그림자가 갈 때"란 말은 새 날이 온다는 말씀이다. 1:2 참조.

것은 신약의 새로운 시대를 내다보는 말씀이다. "몰약산과 유향의 작은 산"이란 말이

모리아산의 성전을 가리킨다고 하는 해석이 있고, 또는 성령으로 깨어 기도하는 자리

를 비유한다는 해석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일반적으로 신약 시대의 복음 운동을 상징

하는 말씀이다.

 

 

4:7

 

나의 사랑 너는 순전히 어여뻐서 아무 흠이 없구나 - 교회를 향하여 "나의 사랑"

라고 부른 것은 신약에도 있다(요일 2;7, 4:1; 요삼 1:2.5). "아무 흠이 없구나."

세상에 있는 신자들의 인격은 아직도 불완전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보시는 때에 그들을 무흠하게 보신다. 그들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롭다고 간주된다. 고후 5:21에 말하기를,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

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였다."

 

 

 

4:8

 

나의 신부야 너는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하고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가자

아마나와 스닐과 헤르몬 꼭대기에서 사자굴과 표범 산에서 내려다 보아라 - 술람미 여

인이 솔로몬을 따라가기 위하여는 그 고향이었던 팔레스틴 북쪽 지방(레바논, 아마나,

스린, 헤르몬 산등이 있는 지방)에서 떠나야 될 것이었다. 술람미 여인의 고향은 헤르

몬 산근처였으나 여기에는 시문학적(詩文學的)인 자유로운 표현에 의하여 헤르몬 산과

관련된 다른 산들의 이름도 언급되었다. 이 문구에 대한 영적 해석은 다음과 같다.

, 신랑으로 비유되신 그리스도께서 "몰약산과 유향의 작은 산"(6)과 같은 은혜 충

만 한 곳에 가시려고 할 때에 신부된 교회는 레바논산 같은 험한 죄에서 떠나 그와 동

(同伴)해야 된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와 함께 가자"고 하시니 이것은 그가

신자로 하여금 죄에서 떠나도록 적극적으로 도와 주실 것을 약속하심이다. 사실상 신

자가 주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죄에서 떠날 수 없다.

일설에 의하면 "레바논"은 예루살렘 성전을 가리킨다고 한다. 그 이유로서는 예루

살렘 성전이 레바논에서 가져온 목재로 건축되었으므로 "레바논"이란 별명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11:1 참조. 그러나 여기서는 문자 그대로 레바논 산을 의미할 뿐

이다.

"아마나와 스닐과 헤르몬 꼭대기에서 사자굴과 표범 산에서 내려다보아라." 여기

"내려다 보아라"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떠나라"라고 개역(改譯)되어야

한다. "아마나(레바논 산의 일부)와 스닐(헤르몬산의 별명)과 헤르몬"은 죄악의 소굴

이라고 할만큼 그곳에는 잔인무도한 악당들(이들은 사자로 비유됨, 12:8)이 살았다

(Strabo,Geograph. 1. 14. p.465, Cicero, Ad. Attic. 1.5,20. Plutarch, In Vita

Ciceron, p.879).이런 의미에서도 이산들을 "사자굴과 표범산"이라고 할 수 있다.

자가 주님이 계신 곳("몰약산과 유향의 작은 산"-6)에 가려면 그 생활에 있어서 이

런 험악한 죄악의 소굴에 속해 있지 말고 거기서 떠나야 된다.

우리가 이 점에 있어서 한가지 주의 할것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이런 험한 곳을

떠나 나오는 그 때부터 주님이 함께하여 주신다는 것이다. "...에서부터 나와 함께"(8

절 상반)란 말씀이 그 뜻이다. 예수님은 세상 끝날까지 복음을 전하는 신자와 함께 하

시겠다고 약속하셨다(28:20).

이 부분(6-8)의 말씀은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에게 그의 고향과 부모를 떠나 자기와

함께 가자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께서 신부로 비유된 신자들에게 그들의 부

모 처자보다 그리스도를 더 사랑해야 된다고 말씀하심이다.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말씀

을 따라가기 위하여는 그의 본토와 친적과 아비집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12:1).

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부모와 자식이나 전토를 버

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고 하셨다(19:29). 14:26,33

. 주님을 따르는 자가 자기의 사랑하는 자들을 버려야 된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해

석해야 한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주님을 더 사랑해야 된다는 의미이다. 이 점에 대하

여 고전 7:29-31이 밝혀준다. 거기 말하기르,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때가 단

축하여진 고로 이 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 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형적은 지나감

이니라"고 하였다.

 

 

 

4:9,10

 

나의 누이 나의 신부야 네가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네 눈으로 한 번 보는 것과 네

목의 구슬 한 꿰미로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나의 누이 나의 신부야 네 사랑이 어찌 그

리 아름다운지 네 사랑은 포도주에 지나고 네 기름의 향기는 각양 향품보다 승하구나

-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가리켜 "누이"라고 할 수 있는 이유는 몇 가지 있다. (1) 그가

우리와 같은 혈육을 받으신 까닭이며(2:11,14), (2)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우리들의 아버지이신 계약 관계 때문이며(20:17), (3) 신자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12:50).

"네 눈으로 한 번 보는 것"이란 문구의 영적 의미는 신자가 신앙으로 주님을 보는

것을 가리킨다. 주님은 우리의 신앙을 기뻐하신다(11:6), 혈루증으로 12 년 동안

앓던 여자가 예수님의 뒤로 와서 그 옷 가를 만졌을 때에 예수님은 그 여자의 신앙적

행위를 아시고 기뻐하셨다(9:20-22).

"네 사랑은 포도주에 지나고." 포도주는 그것을 마시는 자에게 기쁨을 준다. 그리

스도는 신부된 교회의 사랑을 기뻐하신다. 그 이유는 교회가 그를 믿고 사랑하므로 구

원을 받기 때문이다. 벧전 1:8-9에 말하기를,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

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 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고 하였다.

"네 기름의 향기"란 말은 신부된 교회가 지니고 있는 성령님의 역사를 말함이다(

2:20).

 

 

 

4:11

 

내 신부야 네 입술에서는 꿀 방울이 떨어지고 네 혀 밑에는 꿀과 젖이 있고 네 의

복의 향기는 레바논의 향기 같구나 - 이 말씀은, 그리스도를 비유하신 신랑이 교회를

비유하신 신부의 행위를 기뻐하며 칭찬함이다. ""은 지혜를 비유하는데(

24:13-14), 이것은 하나님의 지혜 곧, 복음을 가리킨다(고전 1:21,24). "의복의 향기"

는 성도의 옳은 행실을 비유한다(19:7-8). 14:6 참조. 주님께서는 성도들이 입

술로 복음을 전할 때에 기뻐하시며, 또 그들이 구원의 은혜를 찬송할 때에 기뻐하신다

(13:15). 그는 또 성도들의 선한 행실을 기뻐하신다(13:16).

 

 

 

4:12

 

나의 누이, 나의 신부는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로구가나 - "나의

누이"란 말에 대하여는 위의 9절에 해석을 참조하여라. "잠근 동산"은 교회의 성격을

보여준다. (1) 교회는 그리스도만능 위하여 있어야 한다는 것. 교회는 모든 향기로

운 열매와 보배로운 나무와같은 영적 산물로 부요하지만 그것은 모두 다 그리스도만을

위하여 있다는 것이다. (2) 교회는 성별(聖別)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 "잠근 동산"

란 말은 교회가 세상의 악한 풍조로 더불어 타협하지 않고(4:14) 성별되어 있어야

할 책임도 보여준다.

"덮은 우물"이란 말과 "봉한 샘"이란 말은 서로 같은 뜻을 가진다. , 교회가 소

유한 하나님의 은혜는 오직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서만 사용될 것이고 인간의 사욕을

위할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그 뿐 아니라 교회가 이 은혜를 잘 파수하여 보존시켜야

될 것도 이 말씀이 가르친다. 3:10에 말하기를,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

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

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고 하였고, 2:25에는 말하기를, "다만 너희에게 있

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고 하였고, 고전 15:2에는 말하기를, "너희가 만

일 나의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이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였다.

 

 

 

4:13,14

 

네게서 나는 것은 석류나무와 각종 아름다운 과수와 고벧화와 나도초와 나도와 번

흥화와 창포와 계수와 각종 유항목과 몰약과 침향과 모든 귀한 향품이요 - 여기에 열

거된 각종 실과나무와 꽃과 향품은 신자의 심령에 있어야 할 거룩한 은혜를 비유한다.

이런 은혜로운 심령은 예수님이 함께 하신 결과이다. 여기에 맹수(猛獸)에 대한 말은

전연 없으니, 그 이유는, 맹수는 하나님께 제물이 될만한 것이 못되므로 믿음이나 사

랑 같은 은혜로운 덕을 비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4:15

 

너는 동산의 샘이요 생수의 우물이요 레바논에서부터 흐르는 시내로구나 - "동산의

"이나 "생수의 우물"이나 "레바논에서부터 흐르는 시내"는 실과나무와 화초를 살리

는 물의 원천들이다. 이 물은 고여 있는 물이 아니고 끊임 없이 흘러 내리는 샘물이라

고 한다. 이와같은 교회가 소유한 성결의 능력은 무한하신 성령를 근원으로 하고있다.

"레바논에서부터 흐르는 시내로구나." 여행자들의 말에 의하면, 레바논 산골짜기에

는 깨끗한 물이 힘차게 흘러 내린다고 한다. 이렇게 흘러 내리는 물이 먼 곳에 이르도

록 시원한 물을 공급한다. 18:14에 말하기를, "레바논의 눈이 어찌 들의 반석을 떠

나겠으며 원방에서 흘러 내리는 찬 물이 어찌 마르겠느냐"라고 한다. 그러므로 레바논

산에서 흐르는 물은 다함이 없는 성령의 생명력을 비유할 만하다(4:14, 7:37-39).

 

 

 

4:16

 

북풍아 일어나라 남풍아 오라 나의 동산에 불어서 향기를 날리라 나의 사랑 하는

자가 그 동산에 들어가서 그 아름다운 실과 먹기를 원하노라 - 이것은 신부로 비유된

교회의 말이다. "북풍"은 구름을 몰아쳐서 하늘을 맑아지게 하고, "남풍"은 기후를 따

뜻하게 만들어 실과를 익도록 한다. 바람은 언제나 성령의 표상이다(3;8). 성령께

서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의심과 두려움과 죄악을 소멸하여 맑게 하시고, 또 남풍과

같이 완악한 마음을 부드럽게도 해 주신다. "나의 사랑하는 자가 그 동산에 들어가서

그 아름다운 실과 먹기를 원하노라." 교회의 소원은 "사랑하는 자" , 주님께서 오셔

서 성령의 아름다운 각종 열매를 잡수시듯이 즐겨 주시기를 원한다. 교회는 이렇게 되

어야 한다. 5:22-23에 말하기를, "오직 성령의 열매를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고 하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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