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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의 一考察

은바리라이프 2009. 10. 12. 09:59

子不語 怪力亂神(자불어 괴력난신)

-제사(祭祀)

 

은바리애비 

 

화평이 아니라 검을 주러 왔노라

설을 위해 고향 가는 길이다. 길이 꽤 막힌다.

“당신이 말씀 드려요.”

아내가 말했다.

“...봐서.”

 

아내의 말인즉, 이제 더 이상 제사상에 절하지 않을 작정이니 그걸 부모님께 꼭 말씀드리라는 것이다. 내 대답은 긍정도 부정도 아닌 ‘봐서’였다. 말해야 할 시점의 분위기를 잘 판단한 후 결행하겠다, 뭐 이런 의미인데, 좋게는 ‘지혜롭다’고 나쁘게는 ‘기회주의‘였다.

 

“잘 하세요.”

답변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대가 명색이 남편이니 더 이상 토 달지 않고 지켜보겠노라,는 투다. 아, 숱하게 보아온 신파조의 ‘갈등의 레퍼토리’, 그걸 이제 내가 겪는구나.

 

문득 이웃의 한 부인이 떠올랐다. 그녀는 독실한 교인이면서 종갓집 종부다. 지난 추석 즈음에 마주쳤을 때, 그 사정을 아는 내가 "(추석이 다가오는데)기분이 어떠시냐?"고 농담조로 가볍게 안부를 물었더니 부인은 뜻밖에도 놀라 자빠질 답을 주었다.

“피가 말라요.”

 

다시 보니 그녀의 낯빛은 어둡고 핏기도 없었다. 시댁에 가기 한참 전부터 마음 고생이 심한 모양이었다.

독실한 교인과 종갓집 종부. 이 극과 극은 어떻게 만났을까. 결말은 어떠할지.

 

터널을 빠져나오자 갑자기 차들이 속도를 높이며 달려간다. 이제 나도 달려 볼거나. 강릉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으니, 이제부터 슬슬 내 피도 말려 볼거나. 하나님을 모를 땐 없던 문제가 하나님을 알게 되니 느닷없이 찾아왔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라 검을 주러 왔노라’(마 10:34).

 

오 마이 갓.

 

 

하나님은 상수(常數)다

세상사에는 상수(常數)와 변수(變數)가 있다. 상수는 변함이 없는 것이므로 일단 접어두고 변수 쪽을 다뤄야 한다. 문제는 항상 변수 쪽에 있다. 비행기가 산에 부딪히면 비행사나 안개를 탓하지, 산을 탓하지 않는 법이다. 이 경우엔 산이 상수고 안개가 변수니까. 하나님은 ‘나 이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하셨다.

 

“하나님, 신이 아니라 조상이라니까요. 예외 없는 규칙이 어디 있습니까? 조상은 예외로 해 주세요, 네?”

 

아무리 사정해 봐야 하나님은 요지부동이시다.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고전 10:20)

 

“이 나이에 내가 미주알고주알 이런 것까지 설명해 주랴, 이 답답아! 조상이 바로 귀신이래도!”

하나님은 언제나 상수(常數)시다.

 

변수 쪽을 살펴보자.

조상에게 제사하라는 것은 누구의 분부인가? 조상님? 천만의 말씀이다.

상고시대 조상님들은 지금의 우리보다 사상적 수준이 더 높고 순수하셨다.

 

단군은 신단수 제단에서 상제(上帝), 곧 하나님께 제사 드리던 제사장이었고,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 예의 무천 역시 추수를 마치고 하늘에 제사하는 제천의식이었다. 우리 조상들이 경배한 대상은 오직 하나님이셨다. 하나님에 대한 제사를 조상에 대한 제사로 변질시킨 것은 누구인가? 바로 유교다. 그러면 유교의 가르침을 만든 공자(孔子)가 조상에게 제사하라고 했는가?

 

 

공자

 

子不語 怪力亂神(공자는 괴이한 일과 난잡한 귀신에 관해 말하지 않았다)

공자는 춘추전국시대 노(魯)나라 사람으로 상(商)나라 -은(殷)나라로 부르기도 한다- 왕가의 혈통을 이어받고 있다. 공자가 태어나기 오래 전, 우리 민족인 동이(東夷)족과 장차 중국의 주인이 되는 하화(夏華)족은 중국 산동에서 서로 이웃하며 살았다.

 

하화의 첫 임금은 요(堯)였다. 요는 동이의 순(舜)에게 왕위를 물려주었고, 순은 다시 하화의 우(禹)에게 자리를 넘겼다. 훗날 14대 걸(桀)이 폭정을 일삼자 동이의 탕(湯)이 걸을 폐하고 새 나라를 세웠으니 이것이 상(商)이다. 상은 상제의 뜻을 극진히 받드는 신정(神政)국가였고, 공자의 조상은 이런 상의 왕족이었다.

 

논어의 술이(述而)편에 '子不語 怪力亂神(자불어 괴력난신)'이란 대목이 나온다. ‘공자는 괴이한 일과 난잡한 귀신에 관해 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중용(中庸)을 보면 ‘제사의 의미’를 묻는 제자들에게 공자는 이렇게 답하고 있다. "하늘과 땅에 드리는 모든 제사의식을 통해 사람이 상제를 섬긴다." 즉, 공자는 제사가 오직 ‘하나님을 모시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아는 공자의 사상은 공자의 참뜻과 거리가 멀다. 공자의 사상이 크게 훼손되고 왜곡된 것은 바로 저 유명한 ‘진시황의 분서갱유’ 탓이었다. 그 후 ‘반토막 공자’가 위정자들의 입맛에 맞게 포장되어 중국에 퍼지고 우리에게 전파됐다. 공자가 알면 통탄할 일이다.

 

 

하나님의 때가 있을 뿐

사정이 이러하므로 나는 이제 말해야 한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를 따라 제사상을 차리면서 망설이고 있다.

제사장 직분을 맡은 아버지는 평소보다 더 엄숙하고, 제때 제물(祭物)이 당도하지 않아 조금 언짢은 기색도 엿보인다.

 

 

내가 아버지의 안색을 살피는 사이 제사상이 다 차려졌다. 주방 일을 마친 할머니, 어머니가 제사를 위해 한복으로 갈아입는 동안 나는 잠시 거실로 나왔다. 아내가 제사상이 차려진 안방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잠시 후, 아내가 활짝 웃으며 나오더니 날듯이 내게로 다가왔다.

 

“다 됐어요.”

“으응, 뭐가?”

“아버님이 마음대로 하래요. 절을 하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래요.”

 

아내의 목소리가 감격에 겨워 붕붕 떠오르고 있었다. 나는 아차 싶었다. 내가 아버지 눈치만 보면서 우물쭈물하고 있으니 보다 못한 아내가 대신 나선 모양이었다.

 

“호호호, 이것도 있지요, 짜잔!”

 

아내는 노란 종이를 팔랑팔랑, 내 눈 앞에 흔들어 댔다. 그것은 놀랍게도 어머니가 아끼는 부적이었다. 어 어, 나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떼도 되냐고 여쭤보니 맘대로 하래요. 그래서 얼른 뗐죠, 호호호. 나 잘했죠?”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나는 아내의 깔끔하고도 완벽한 승리에 감탄하면서 한편으론 탄식했다.

이런 이런, 이렇게 간단한 것을. 나는 기쁘다 못해 조금 허탈했다.

이건 너무 쉽지 않은가.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견고한 성(城) 같던 아버지가 이토록 쉽게 허물어지다니.

 

이것이 믿음의 차이런가.

내가 바라본 것은 아버지였고, 아내가 바라본 것은 하나님이었구나.

하나님 앞에서는 누구나 여리고 성(城)인 것을 왜 몰랐던가.

 

여리고성

 

완전한 승전까지는 아직 갈 길이 더 남았겠지만 2008년 설날 아침의 이 ‘느닷없는 승전보’는 우리 가족에게 오래도록 은혜로운 기억으로 남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느닷없는’이란 말은 ‘무지한 말로 이치를 어둡게 하는’ 말이다. 믿고 순종하는 자에겐 오직 하나님의 때가 있을 뿐이다.

2008년 2월 은바리애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