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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몬에게 빼앗긴 ‘몸’ -루키즘(lookism: 외모지상주의)

은바리라이프 2010. 4. 2. 12:36

맘몬에게 빼앗긴 ‘몸’

-루키즘(lookism: 외모지상주의)

 

은바리애비

 

 

거울 앞에 바로 서다 - ‘코람 미러’

 

얼마 전 중국과 한국의 얼짱거지가 인터넷을 통해 큰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강도 행각을 벌인 얼짱 여성에게 회원수 수만의 팬카페가 생기기도 했다. 그들의 처지나 역정은 그들의 외모에 가려졌고, 멀쩡한 사람들이 잠시나마 그들을 부러워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헷갈려 했다. 드라마에선 제작 취지나 내용을 알리기보다 남자 배우의 복근과 여배우의 수영복 몸매를 보여주는 것이 더 가치 있고 핵심적인 ‘초반 마케팅’이다.

 

 

 

 

헐리웃의 로브 마샬이란 감독이 ‘성형을 하지 않은 여배우만 캐스팅 하겠다’는 흥미로운 캐스팅 원칙을 발표했다. 허구의 본고장이자 성형의 천국인 할리우드에서 가장 귀한 것은 자연미라는 것이다. 헐리웃 뺨치는 성형천국 한국에서도 마샬 감독 같은 선언이 나오면 재미있을 것 같다. 아마 제대로 작품을 완성하기 어려울 지도 모르겠다.

 

가슴성형으로 캐스팅 불발된 키이라 나이틀리(좌)와 대신 물망에 오른 페넬로페 크루즈(우) 

 

요즘 성형은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투자’ 정도로 인식되어 연예인에겐 일상이, 일반인들에겐 필수와 선택 사이에서 다소 고민되는 일 정도로 받아들여진다. 여권사진과 다른 얼굴로 공항을 나서다 검색대에 걸리는 특이한 일이 비일비재한데도 성형은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니란다.

 

사상과 행위에 관계없이 외모에 몰두하는 비중이 날로 커진다. 몸은 물질과 연관되면서 물질주의의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됐고, 어느덧 얼굴과 몸매가 숭배의 대상이 되고 있다.

 

코람 데오(Coram Deo), 즉 ‘하나님 앞에서’라는 말이 있다. 하나님 앞에 온전하게 바로 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 안에서 그의 권위를 인정하며 사는 삶을 함축한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하나님보다 거울 앞에 서길 더 열심이다. 코람 데오가 아니라 코람 미러(Coram Mirror)다.

 

‘만일 너희가 외모로 사람을 취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죄자로 정하리라(약2:9)’

 

 

맘몬주의

오늘날과 같은 현상은 우리가 스스로의 몸에 대해서 잘못된 인식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몸이 물화(物化)된 배후에는 맘몬, 곧 사단이 존재한다. 맘몬은 돈의 신, 물질의 신이다. 예수께선 ‘하나님과 맘몬을 함께 섬길 수 없다’고 하셨다. 이 말씀을 역으로 보면 그만큼 (인간의 마음속에서)맘몬이 하나님과 맞설 만큼 강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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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몬의 덫에 걸린 인간의 마음속에는 물질만능주의가 생겨났다.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맘몬주의는 세상의 주종관계를 역전시켰다. 즉, 물질이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물질을 위해 존재하게 됐다. 인간의 가치는 그들이 획득하는 재화의 크기로 측정되고 있다.

 

하나님을 얼마나 닮았는지, 하나님과 얼마나 친밀한지는 천국의 주요관심사다. 그러나 지상의 인간은 외모도 물질로 환산하고, 성(性)을 돈으로 거래하는 음란의 죄를 저지르고, 심지어 천하보다 귀한 인간의 생명까지도 주판 위를 구르게 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믿음

성경은 외모보다 내적인 아름다움에 관심을 두고 있다. 이새와 그 아들들이 나타나자 사무엘은 그중에서도 특별히 눈에 띄는 엘리압을 보고 마음 속으로 감탄한다.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그 앞에 있도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달랐다.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16:6~7)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사람의 중심을 보시지만 작금의 세태는 하나님의 뜻에 도전적으로 어긋나고 있다. 오직 용모와 신장을 좇게 한다. ‘몸에 관심을 갖는 문화’의 문제는 눈에 보이는 것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데 있다. 믿음이 없으면 보이지 않는 것을 보지 못한다. 그래서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안목이며,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인 것이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 대신 보이는 몸을 우상으로 대체하고 있다. 얼짱, 몸짱, 식스팩, 꿀벅지 등의 문화는 우상숭배의 또 다른 변종이라 하겠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요일2:15)’

 

 

하나님과 친밀할수록 아름다운 존재

다윗의 아들들,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벽했던 압살롬, 체용이 심히 준수했던 아도니아는 외모만큼 마음이 높아져 왕위를 탐내다 비참하게 죽었다. 야곱의 맏아들 르우벤도 위광이 초등하고 권능이 탁월한 얼짱이었으나 서모 빌하를 범함으로써 아비의 침상을 더럽혔다. 남들보다 머리 하나가 컸던 몸짱 사울왕은 이스라엘의 승리를 자신의 치적으로 자랑하다 망했다.

 

인간의 몸이나 인생의 성취는 모두 하나님의 은혜로 얻은 것이다. 이를 자신의 소유로 오해하는 것이 교만이다. 우리의 몸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며, 성령의 전(殿)이다. 또한 우리의 몸은 예수의 피값으로 산 몸이다. 주께 소속된 몸은 경건해야 한다. 우리 몸을 보톡스와 성형의 모르모트로 내주지 말고 오직 의의 병기로 가다듬어야 한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몸의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진다.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하고, 한때 아름다웠던 미모와 육신은 썩어지되 하늘창고에 쌓은 보화, 곧 하나님의 사역만이 영원하다.

 

인간의 참된 아름다움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다. 그 관계가 친밀할수록 아름다운 존재가 된다. 예수를 보라. 그의 외모는 보잘 것 없었으나 하나님과 하나 됨으로써 가장 아름다운 존재가 됐다. 그 아름다운 향기가 오늘까지 가득하다.

 

‘그는..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움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싫어버린 바 되었으며..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사53:2-3)

 

은바리애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