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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운세가 궁금하세요?

은바리라이프 2010. 4. 5. 19:37

신년운세가 궁금하세요?

-일상이 된 술법(術法)

 

은바리애비

 

 

 

 

 

점괘를 신봉한 검찰총장

과거 어떤 정권 때 일이다. 인사청문회에서 검찰총장 지명자가 20년 이상 부인과 ‘주민등록상’ 별거를 한 사실이 드러나 세간의 화제가 된 일이 있다. 생활은 함께 하면서 부인의 주민등록만 친정 쪽에 남겨져 있던 것인데, 그 이유는 ‘부인이 친정을 떠나면 안된다’는 역술인의 점괘 때문이었다고 한다. 덕분에 그 지명자는 ‘일국의 검찰총장이 미신을 따라서야 되겠느냐’ ‘범인의 구속·불구속도 점을 쳐서 결정하라’ 등등 많은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그것은 비난이라기보다 야유에 가까웠다. 손가락질하는 이들의 표정이 ‘그럴 수도 있지’ 하며 웃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들도 별반 다를 게 없었기 때문이다.

 

 

지명자는 실제 가정사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별다른 대과(大過)도 없어 무사히 청문회를 통과했다. 모르긴 해도 그 검찰총장은 자신의 출세가 역술인의 점괘를 신봉한 덕이라고생각했을 것이다. 사실 필부필부(匹夫匹婦)에서 지도층 인사까지 미신과 역술이 만연한 한국 사회에서 이 검찰총장의 예는 약과에 속한다.

 

 

 

국가행사 택일도 역술로

한국인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략 50~80%가 점을 믿는다. 활동 중인 역술인·무속인이 40만명을 상회하고, 역술산업의 규모도 무려 2~4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요즘 거리를 다녀보면 교통편 안과 밖이나 각종 매체에 운세 관련 광고가 많이 눈에 띈다. 쇼핑하듯 여기저기 점을 보러 다니는 젊은 사람들도 많이 볼 수 있다.

점은 주역(周易)에서 나왔다. 주역은 역경(易經)이라고도 하는데, 점친 결과를 기록해둔 책이다. 경험의 누적이 만든 법칙성으로 볼 수 있다. 그러니까 주역은 경험의 누적으로 법칙을 만들고, 그 법칙으로 인간의 경험을 '선택'하고자 하는 것이다. 

주역에서 점이란 크게  상(相) 명(命) 점(占)으로 구분된다. 상은 관상(觀相) 수상(手相)과 같이 운명으로 정해진 인간의 일생을 미리 엿보려는 것이며, 명은 사주팔자(四柱八字 )와 같은 타고난 천명, 운명을 살피는 것이다. 상과 명은 결정되어 있는데 비해 점은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다.

즉, 점은 인간의 지혜와 도리를 다한 후에 찾는 방법이다. 

주역의 기록 자체는 경험누적이므로 미신은 아니다. 그것을 점으로 풀고 해석하는 과정에서 개입하는 자의성이 미신이며, 거기에 기대려는 마음이 미신이라고 할 수 있다. 

역술자격증 위한 강좌

 

공중파 방송에 무속인이 주인공인 드라마가 등장해 큰 인기를 모으기도 했다.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시절 탓인지 요즘엔 기독교인조차 시속(時俗)을 따르는 일에 열심이라고 한다.

 

 

과거 한국엔 주요 국가행사의 택일을 특정 역술인이 도맡아 하던 시절이 있었다. 미국 프랑스 등 서구의 여러 국가 원수들도 점성술사의 도움을 받으며 국가를 통치한 바 있다. 이 세상이 ‘공중의 권세 잡은 자’(엡2:2), ‘이 세상 신’(고후4:4)의 것이라는 성경 말씀이 실감난다.

 

 

 

사람의 가는 것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나니

‘내가 또 복술을 너의 손에서 끊으리니 네게 다시는 점장이가 없게 될 것이며’(미5:12). 성경에는 복술자(점쟁이), 무당 혹은 박수, 주문을 외우는 진언자, 귀신을 불러 물어보는 신접자 등이 많이 언급돼 있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이 자신의 앞날을 결코 알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며 점술을 금하고 있다. ‘사람의 가는 것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나니 사람이 어찌 자기의 길을 알 수 있으랴’(잠 20:24). 그래서 점술가를 찾아가는 사람은 쉽게 속을 것이며 하나님의 충고에 귀 기울이라고 가르친다. 마치 오늘의 우리들을 예측하고 걱정하는 듯하다.

 

 

 

생존과 안전을 위해 태어난 술법

인간이 처해 있는 실존적 상황 중에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인간이 고통 가운데 있다는 것이다. 인간에겐 무엇보다 생존과 안전을 위한 고달픔이 있다. 에덴을 쫓겨나면서 종신토록 수고하고 땀 흘리는 고통이 부과됐고, 살인하고 유리하는 자가 되면서 안전의 문제가 부각됐다.

 

 

생존과 안전의 문제에 대비하고 미래를 예측하려는 욕구가 점이니 역술이니 하는 술법들을 낳았다. 이 술법들의 탄생 순간을 돌이켜보면, 그것들은 명백히 인간의 원초적인 욕구와 관련된 왜곡된 종교성의 발로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인간이 하나님께 죄를 진 죄인이 되어 하나님 앞에 바로 서지 못하고 직접 의뢰할 수도 없어 궁리한 것이 이 술법인 것이다.

 

 

 

술법은 사단의 역사(役事)

술법의 가장 큰 문제는 인도하는 대상 설정이 잘못됐다는 점이다. 사울이 엔돌의 신접한 여인을 통해 죽은 사무엘을 불러낼 때 사울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사무엘이 아닌, 사무엘을 흉내낸 사단이었다. 사단은 궁지에 빠진 사울에게 파멸을 예언하여 완전히 자포자기하게 만들었다. ‘거짓의 아비’ 사단에게 이런 일은 매우 쉬운 일이다.

 

오늘날에도 죽은 자의 목소리를 흉내내고 과거를 맞추는 사단과 마귀의 역사는 도도하게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미래에 대해서는 예언할 수 없다. 하나님이 장래사를 알지 못하게 하셨기 때문이다. 마귀에게 속지 말라. 그들의 정체는 타락한 천사일 뿐 결코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닌 것이다. 죄인 된 인간이 하나님을 제대로 바라볼 수가 없어 나름대로 생존법이라고 강구한 것이 마귀의 역사라니 하나님 보시기에 참으로 가증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하나님께 의뢰하고 경청하자

사실 사주나 명리 등 갖가지 술법의 근거 여부는 자세히 알 수 없지만, 문제는 미래에 대해 하나님께 맡기지 못하고 스스로 길하고 복된 길을 찾겠다는 불순한 발상이다. 하긴, 따지고 보면 ‘혼자서도 잘 해요’ 하며 하나님을 떠나 불순종의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인류의 역사이긴 하다.

 

그러나 분명히 기억하자. 하나님은 장래사를 알지 못하게 하셨고, 길흉화복을 점치는 술수와 점성술을 금지하셨으며, 예기치 못하는 일에 대해서는 하나님께 의뢰하도록 하셨다.(사41:21-24 신18:10-12 시55:22)

 

기독교는 세상의 타종교들에 비해 믿음의 정도가 매우 치열하다. 신앙의 출발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되기 때문이다.

 

‘너는 네 하나님 앞에 완전하라 네가 쫓아낼 이 민족들은 길흉을 말하는 자나 복술자의 말을 듣거니와

네게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런 일을 용납지 아니하시느니라’(신 18:13-14)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조용히 경청하고 순종할 필요가 있다. 어린 아이처럼 머릿속에 떠오르는 모든 문제에 대해 합당한 이유를 대야만 겨우 인정하고 따르는 것은 미숙한 믿음이다. 신년의 운세를 찾아 두리번거릴 것이 아니라 순전(純全)한 마음으로 복음을 믿자. 이는 한 해의 길흉화복이 아니라 지상을 넘어 영원까지 좌우될 문제이다.

 

GGnews 200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