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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모양처와 돕는 배필

은바리라이프 2010. 5. 27. 23:26

현모양처와 돕는 배필

-5만원권의 신사임당

 

 

고액권 발행

우리나라 최고액권인 5만원이 발행됐다. 현재 통용되는 세계 여러나라의 화폐 중 최고액권은 싱가포르 1만달러(약910만원)다. 워낙 고가여서 실생활에선 잘 쓰이지 않고, 분실 시 신고하면 수표처럼 무효 처리가 가능하다. 일상에서 유통되고 있는 최고액권은 스위스 1000프랑(약120만원)이다. 화폐의 가치가 아니라 단위로 따지면 터키의 2000만리라(약1만7000원), 짐바브웨의 10조달러(약4만3000원)가 가장 크다.

역대 최고액권은 60여년전 헝가리에서 발행된 1해(垓) 펜괴. 1해는 1 뒤에 ‘0’이 무려 20개가 붙는다. 그래봐야 미화 20센트에 불과했다. 이래서야 잉크값이 더 들지 않았을까.

 

‘현모양처’ 이미지의 신사임당

오늘날 화폐는 단순한 교환수단을 넘어 한 나라의 많은 부분-역사, 문화, 사상, 정치 등-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상징물이자 예술품으로 이해된다. 그 의미의 중요성 때문인지 5만원권의 화폐모델로 선정된 신사임당을 두고 여러 가지 의견이 분분하다.

‘표준영정과 다르다.’ ‘기생이나 주모 같다.’는 비난 의견에 한국은행 측은 ‘몰이해의 소치’ ‘사대부의 가채(올림머리)를 기생 주모 머리라고 하다니..’라며 언짢은 기색도 보이고 있다. 논란의 주된 쟁점은 일부 여성단체에서 제기한 사임당의 ‘가부장적 현모양처 이미지’일 것이다. ‘현모양처’ 자체는 좋은 말이지만 이를 강조하는 사상 속에 담긴 억압의 음모를 경계하는 것이다.

그들은 대학자 이율곡의 현모, 이원수의 양처로 평가되는 사임당이 ‘유교 가부장제가 만든 이상적 여성의 전형’으로 부각됨으로써 ‘일과 가정의 이중노동에 시달리는 여성의 왜곡된 노동착취구조를 심화시킨다’고 주장한다. 물론 비난의 대상은 사임당이 아니라 그의 현모양처 이미지일 터이다. 그러나 모든 논의의 이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우리들은 사임당을 제대로 알고 있을까?

 

사임당의 진면목

신사임당은 강원도 강릉 태생으로 오죽헌이 그의 생가다. 본관은 평산, 본명은 신인선, 율곡 이이(李珥)는 그의 3남이다. 사임당은 스스로 작명한 호인데 주 문왕의 어머니 태임(太任)에서 따왔다고 한다. 율곡은 모친의 일대기를 ‘선비행장(先妣行狀)’으로 남겼다.

이에 따르면, 사임당이 이원수와 결혼한 장소는 (외가인)강릉이며, 부친의 3년상 때문이지만, 혼인 3년 후에야 시어머니 홍씨를 만난다. 게다가 혼인 19년 만에 시모 홍씨가 거동이 불편해져서야 서울 시가로 올라온다. 이런 행적들은 ‘순종적’ 현모양처 이미지와 거리가 멀다. 게다가 ‘아버지께서 혹시 실수하는 일이 있으시면 반드시 옳은 도리로 간하셨다’는 대목에 이르면 사임당은 당당하게 소신을 따라 말하고 행하는 진취적인 여성의 이미지가 강하다.

거기에다 ‘뛰어난 묵적(墨迹)’과 ‘절묘한 산수도’의 예술가, ‘경전에 통달’한 학자의 이미지가 더해지면 사임당의 진면목이 대강은 바로 선다. 사임당의 현모양처 이미지는 우암 송시열이 쓴 ‘사임당이 그린 난초에 발하다’는 글에서 비롯되어 조선 후기 집권 노론의 필요로 만들어진 것이다. 사임당의 실상은 여성계가 오히려 쌍수를 들어 환영할 만한 인물이라 하겠다.

 

진정한 ‘돕는 배필’

동서고금 대부분 사회에서 남성우월주의가 만연했고 여성에 대한 차별도 심했다. 최근 자주 등장하는 ‘양성평등’은 차별의 존재를 역설적으로 증명하는 용어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민족을 구원하는데 남녀의 구분이 없었음을 알 수 있다.

가나안 왕 야빈이 20년간 이스라엘을 학대할 때, 여자 선지자 드보라가 바락에게 군사 1만으로 야빈을 격퇴하라는 하나님의 명을 전한다. 그때 바락은 ‘당신이 나와 함께 가면 내가 가려니와 당신이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나는 가지 않겠노라’(삿4:8)고 약한 소리를 한다. 이에 드보라는 바락을 독려해 전장으로 이끌어 승리를 거둔다.

 

또, 에스더는 하만의 모략으로 멸절의 위기에 처했던 이스라엘 민족을 구한다. 역사성이 의심되긴 하지만, 외경 ‘유딧서’의 유딧은 앗수르의 홀로페르네스 장군이 쳐들어오자 단신으로 위장 귀순해 적장의 목을 베어 이스라엘을 구한 기록도 있다.

하나님은 남자를 ‘머리’ 삼고 여자를 ‘돕는 배필’로 삼으셨다. 혹자는 이것이 남성우월의 근거라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질서를 위한 선후일 뿐 우열을 밝힌 것은 아니다. 우열을 말한다면 오히려 ‘돕는 배필’ 쪽이다. 어리석은 자는 지혜로운 자를 도울 수 없기 때문이다. ‘돕는 일’은 상대적으로 우월한 자에게나 가능한 행위인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창2:18)

 

사족: 장마철이다. 오죽헌은 비오는 날, 먹빛 기왓장에 부딪히는 빗소리, 오죽을 스치는 바람소리가 운치 있다. 봄이라면 연분홍 홍매(紅梅), 일명 율곡매의 분분한 낙화가 봄비에 섞일 때가 호사스럽다. 고향의 인물들이 화폐의 모델로 거듭 나오시니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