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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하늘과 새 땅을 찾아서-나로호

은바리라이프 2010. 5. 27. 23:29

새 하늘과 새 땅을 찾아서

-나로호

 

 

 

 

 

우주로 가는 한국

부분성공? 완전실패? 한국의 첫 우주발사체 나로호에 대해 평가가 엇갈린다. 발사체의 미션 미완수에 따른 아쉬움이 조금은 더 커보인다. 그러나 러시아가 50년대 말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할 때 한국은 폐허 속에서 당장의 끼니를 걱정하던 처지였던 걸 기억한다면 그리 비관적인 상황도 아니리라. 세계의 우주전문가들도 고작 10여년의 역사를 가진 한국의 우주도전과 그 성과에 적잖이 놀라는 눈치다.

발사체 추적시스템만 보면 우주강국인 프랑스·러시아보다 낫다. 그들은 레이더로 발사체의 궤적만을 추적하는 수준인데, 우주 새내기인 한국은 IT와 무선통신 기술을 활용해 비행궤적 뿐 아니라, 속도, 위치정보 등을 파악하는 ‘첨단 우주내비게이션 시스템’을 선보였다. 우주센터도 섰으니 이제 발사체 문제만 해결하면 된다.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문제이긴 하지만 우리의 창의력과 열의로 보아 곧 해결될 것이다.

그나저나 우리는 왜 우주로 가고자 하는가? 국가의 명예, 기술력 과시, 우주개발 선점 등 많은 답을 할 수 있겠지만 인간의 본능 속에 내재된 존재의 근원을 향한 탐구심 탓도 있지 않을까. 그것이 진화론자들이 찾는 새로운 생명체인지, 바울이 목격한 삼층천인지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우주의 시작과 빅뱅이론의 허구

에드윈 허블이 자신의 이름을 딴 망원경으로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자, 인간은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아주 작으면서 격렬한, 뜨거운 우주의 시작을 상상해냈다. 우주가 팽창하고 있으므로 역으로 아주 작게 수축되었던 때를 상상하는 것은 자연스럽기도 하다.

 

“우주의 시작에는 은하들이 한 장소, 아, 우주는 끝없이 넓으니 여러 장소일 수도 있겠네. 아무튼 거기에 은하들이 모여 있었지. 중력은 무한대고 에너지는 강력하고 뜨거웠어. 마침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대폭발, 즉, 빅뱅이 일어난 거야. 우주의 시작은 말야, 시뻘건 불덩이와 재와 자욱한 연기를 남긴 불꽃놀이의 장관이었을 거야. 와우! 이거야말로 숨막히게 멋진 우주의 추억이 아닌가!”

 

참으로 기발하고 낭만적인 이 추억 같은 상상은, 그러나 별과 은하의 기원을 설명하는 데는 영 젬병이다. 대폭발이 있었다면 우주는 폭발의 잔해가 사방으로 날아가는 형태를 띠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어느 방향으로 보나 거의 균일하게 수억 개의 은하들이 골고루 흩어져 있다. 어디에도 팽창하는 껍질 형태의 은하 밀집 지역은 없다. 인간의 조상이 원숭이라는 진화론만큼이나 이 우주진화론도 오류투성인 것이다.

 

성경의 우주

80년대 초, 미국의 천문학자들은 북쪽 하늘에서 지름이 3억 광년이나 되는 텅 빈 공간을 발견했다. 약 1천억 개의 별로 구성된 은하계가 2천 개쯤 들어 갈 수 있는 크기였다. 그것은 빅뱅이론으로도, 인간의 모든 이해로도 도달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공간이었다.

그러나 북편 하늘에 허공을 펴신 하나님은 이미 오래전에 욥을 통해 그 사실을 우리로 알게 하셨다(욥26:7). 또한 하나님은 하늘을 차일이나 천막같이 쭉 펴셨으며 이를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으로 확인했다(사40:22). 20세기에나 알 수 있는 일들을 성경은 이미 오래전에 밝히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한 천문학자는 무신론의 천문학자는 만난 적이 없다고 고백했다. 천문학자는 무신론자가 되기 어렵다. 우주를 살펴보면 위대한 설계자인 하나님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사야는 눈을 들어 하늘을 보라고 권한다.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사40:26)’.

하늘은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은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고 있다(시19:1).

 

하나님의 우주적 사랑

별의 숫자는 과학의 발전에 따라 증가해왔다. 육안으로 관측할 수 있는 별의 숫자는 약 4000개. 망원경이 없던 고대인에겐 별 4000이 전(全)우주였다. 오늘날 별의 숫자는 천체망원경 덕에 ‘약 10의 25승 개’로 늘어났다. 헤아릴 길 없는 이 수는 또한 바다의 모래알 수이기도 하다.

‘하늘의 만상은 셀 수 없으며 바다의 모래는 측량할 수 없나니(렘33:22)’.

하나님은 셀 수 없이 많은 별들의 숫자를 일일이 계수하시고, 또 하나하나의 이름을 부르신다. ‘저가 별의 수효를 계수하시고 저희를 다 이름대로 부르시는도다(시147:4)’. 하나님이 모래알처럼 많은 별의 이름을 짓고 부르시는 이유는 다름 아닌 인간에 대한 사랑 때문이다. 인간의 수효가 무수하여 얼핏 그 존재가 보잘 것 없어 보여도 하나님은 우리를 일일이 복중에서 구별하시고, 친히 지으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다!’며 기뻐하신다. 하나님도, 사랑도 아는 만큼 보인다. 칭찬과 자고(自高)의 욕구에서 벗어난 곳, 존재가 잊혀진 자신만의 고독한 우주에서 하나님의 크신 ‘우주적 사랑’을 발견해 보라.

 

‘새 하늘, 새 땅’, 찾아야할 우주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1:1-3)’.

하나님의 말씀이 우주를 창조하셨으며,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주를 붙잡고 그의 운명을 이끌고 계시다. 우주의 기원과 본질과 운명은 이처럼 분명하게 성경에 새겨져 있다. 우주는 무한하나 영원하진 않다. 언젠가 본연의 목적을 달성한 후 폐기될 것이다. 그 후엔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릴 것이니 우리가 전심으로 찾아야할 궁극적인 우주는 바로 이것이다.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사 6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