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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문학 산책④] 깊고 탁월한 영혼의 울림

은바리라이프 2009. 6. 11. 17:57

[기독교 문학 산책④] 깊고 탁월한 영혼의 울림
엔도 슈사쿠의 ‘침묵’
2008년 10월 09일 (목) 18:57:10 조준영 기자 joshua@kidok.com

   
기둥에 묶여 두 명의 신도가 수형(水刑)에 처해졌는데도 바다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고요했다. 당신을 배신할 수 없어 신음하고 괴로워하다가 죽은 절망의 끝은 희망으로 연결되기는커녕 오히려 더 큰 절망을 남겨놓았을 뿐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침묵이다.

17세기 초 일본의 가톨릭 박해시대를 배경으로 한 엔도 슈사쿠(1923∼1996)의 ‘침묵’은 ‘하나님은 무엇 때문에 시련을 주시는가’와 ‘택한 자들의 비애 앞에서 하나님은 왜 침묵하시가’를 정면으로 캐묻고 있다.

소설은 30년 넘게 일본에서 열정적으로 포교활동을 해 오던 예수회 출신 페레이라 신부가 나가사키에서 고문 끝에 배교(背敎)를 맹세했다는 소식에, 소문의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 페레이라의 제자였던 세 명의 젊은 신부들이 일본을 찾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 로드리고 신부는 일본 관리들에 의해 붙잡히고, 스승이 걸어간 고난의 여정을 뒤따라가게 된다. 고상한 순교의 길이라면 그나마 다행이겠으나, 고난의 마지막은 일본인 신도를 죽게 내버려 두겠느냐 아니면 성화(聖畵)를 밟겠느냐는 선택의 순간이다. 잔혹한 고문으로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신도들을 살리기 위해, 로드리고 신부가 거무스름한 발자국 흔적이 가득한 볼품없는 성화 위로 한 발을 내딛었을 때, 새벽이 밝아왔고 멀리서 닭이 울었다.

“밟아라. 나는 너희에게 밟히기 위해 존재하느니라. 밟는 너의 발이 아플 것이니, 그 아픔만으로 충분하느니라.”

   
  ▲ 일본 오이타현에 있는 순교기념벽화.  
하나님의 침묵이 하나님의 부재가 아니라 동행이며, 절대 사랑의 또 다른 표현이라는 메시지 외에 작가는 로드리고의 행위를 통해 독자들에게 또 한 번 진지하게 묻는다. “로드리고는 진정 배교자인가?”

소설은 세련된 심리묘사 외에 객관, 주관, 객관으로 이어지는 3단 구성이 이채롭다. 먼저 사건 배경을 크게 바라본 다음 주인공의 시점을 따라 내면을 훑고, 이어 주인공이 파국으로 치닫는 상황을 멀찍이 바라보며 극적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진지하고 가치 있는 주제를 품위 있게 감싸는 맛이 탁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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