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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문학 산책] 폐허 속에 핀 아가페 사랑

은바리라이프 2009. 6. 11. 18:00

[기독교 문학 산책] 폐허 속에 핀 아가페 사랑
⑤ 정연희의 ‘내 잔이 넘치나이다’
2008년 11월 03일 (월) 12:01:29 조준영 joshua@kidok.com

   
온실 속에서 고이 자란 꽃과 온갖 비바람을 견디어 낸 광야의 꽃은 향기가 다른 법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의 삶 또한 그렇다. 평화와 자유로움 속에서 제자도를 실천하는 삶조차 쉽지 않은 것을 알기에, 전쟁의 폐허와 죽음의 공포 속에서 행해지는 사랑의 실천은 비록 60여 년 전의 이야기일지라도 향기롭다.

정연희(1936∼)의 ‘내 잔이 넘치나이다’는 찬송가 작곡가로 널리 알려진 박재훈 선생이 1981년 작가에게 한 통의 편지를 보내면서부터 움을 맺기 시작했다. 맹의순이라는 한 친구의 이야기를 담은 그 편지는 숨 쉴 틈 없이 작가를 몰아붙였고, 결국 작가로 하여금 움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수고를 감당하게 했다.

소설의 주인공이자 실존인물이기도 한 맹의순은 구한말과 광복, 6·25전쟁을 거쳐 오는 우리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참다운 사랑의 실천이 어떤 것인지 고스란히 보여준다. 신실한 어머니, 형제자매들과 사별하는 아픔을 겪은 맹의순은 6·25전쟁이 발발한 후 북한군에 붙잡혀 온갖 고초를 당하고, 그것도 모자라 북한군으로 오인돼 거제리 포로수용소에 갇히게 된다. 연이은 고난 앞에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하련만, 맹의순은 도리어 포로수용소를 자신의 선교지로 삼는다. 자신의 고난을 피고름을 흘리며 죽어가는 전쟁 부상자들을 돌보는 일로 승화시킨 것이다. 그러다 마침내 석방 하루 전 중공군 환자를 씻기다 과로로 쓰러진다.

   
  ▲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에 있는 전시모형.  
참담한 포로수용소에서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의 위협을 마다않고 북한군은 물론 중공군 중환자를 씻기고 돌보고, 위로하는 힘을 무엇이라 설명할 수 있을까? 작가는 맹의순의 절망과 대비되는 지고지순한 삶의 대비를 여과 없이 고스란히 독자에게 떠안긴다. 담담히 역사의 희생물로 쓰러져가는 주인공의 삶 속에서 아가페적 사랑을 찾아내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소설은 맹의순의 행적에만 초점을 맞춘 탓에 자칫 지루한 위인전으로 여겨질 수도 있으나, 그러나 시대와 여건만 다를 뿐 시련과 위기의 순간이 없는 인생이 없기에, 제자도를 찾는 젊은 크리스천들에게 하나의 표상이 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