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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문학 산책③] 기독교 소설 가능성을 열다

은바리라이프 2009. 6. 11. 17:55

[기독교 문학 산책③] 기독교 소설 가능성을 열다
김성일의 ‘땅 끝에서 오다’
2008년 09월 12일 (금) 14:00:03 조준영 기자 joshua@kidok.com

   

자신의 재능을 아낌없이 쏟아 부은 ‘역작’이란 말은 이런 경우에 해당하는 말일 것이다. 1983년 한국일보 연재 당시 기독교인은 물론 비기독교인에게까지 큰 반향을 일으킨 ‘땅 끝에서 오다’는 작가 김성일이 자신이 가진 오병이어를 자신이 다시 찾은 절대자에게 바치는 마음으로 써내려간 작품이다. 오병이어를 바치는 계기가 간단한 것은 아니었다. 사도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빛에 눈이 먼 것처럼, 작가는 사랑하는 아내의 위암 선고라는 시련을 통해 유년시절 즐겨보던 성경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일반문단에서 인정받은 자신의 역량을 고스란히 소설에 쏟아 부어 대중성을 갖춘 기독교 문학을 탄생시켰다.

소설의 주인공은 리진물산 일본 동경지사에 근무하는 임준호로, 인생의 쾌락을 최고의 가치를 여기는 인물이다. 어느 날 파리에서 동경으로 출장오기로 한 친구 이세원이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임준호에게 이세원은 늘 질투의 대상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이세원에게 밀려 늘 2위에 만족해야 했고, 급기야 연인까지 이세원에게 빼앗기기도 했다. 임준호는 실종된 이세원을 대신해 회사의 중요 프로젝트를 맡게 되고, 그 과정에서 정체모를 인물들의 추격을 받게 된다.

소설에서는 이세원이 여행가방 속에 남긴 손때 묻은 관주성경이 비중 있는 소재로 등장한다. 실종된 이세원은 임준호 앞으로 이상한 암호문이 담긴 텔렉스를 보내는데, 임준호는 이세원이 남긴 성경 속에 암호를 풀 수 있는 해답이 있을 것이라 여기고 성경을 탐독한다. 그리고 성경을 읽는 과정에서 차츰 고아이면서도 자신을 늘 앞서갔던 이세원의 힘의 근원을 알게 되고, 반대로 허망된 것을 쫓아 살아온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독자 또한 임준호의 시선을 따라 자연스레 성경 속 복음을 접하게 된다.

소설이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한 기독교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대중문학으로서도 손색이 없는 것은 추리소설 형식이 큰 요인이다. 이세원의 피랍, 성경을 빼앗으려는 추격자들, 암호문 등이 등장하는 추리기법으로 독자들에게 긴장감과 속도감을 선사한다. 거기다 소설 무대도 동경과 서울, 파리와 아테네, 베이루트와 예루살렘까지 확대돼 독자들의 호기심을 만족시킨다. 그 여정은 마치 사도 바울의 전도 여행길과 닮아 있어, 기독교인들에게는 성지순례의 감흥마저 느끼게 한다.

우리나라 기독교 소설의 수준이 높지 못하고, 잘 읽히지 않는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였지만, 김성일은 그 같은 편견을 보기 좋게 비껴갔다. 소설로도 하나님의 뜻을 구현할 수 있다는 증거이자, 척박한 우리나라 기독교 소설계의 선도(先導)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