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자연신학의 신증명과 철학적 비판
신(神)인식이 이성의 반성과 논거를 통해서 획득되어야만 한다는 의미에서 ?자연신학?에 해당되는 문제라고 한다면 그 신인식은 궁극적으로 신증명에 기인한다. 그런데 이러한 자연신학은 신증명보다는 훨씬 포괄적이다. 즉 하나님에게 전가되어야할 특성에 대한 논의이며, 또한 이러한 특성에 대한 진술이 어떻게 형성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해명이다. 근대에 들어와서 하나님을 경배해야하는 인간의 의무는, 그리고 이것과 연관된 자연신학 개념의 다른 주제들은 중요하게 취급되었다. 이는 결국 이것이 자연종교 사상과 명백하게 구별되지 않았다는 말이다. 이러한 개별적 주제의 모든 중요성은 하나님의 현존을 전제하는 것에 달려 있다. 모든 신인식이 부단히 획득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현존에 대한 논거에 달려 있다. 이것은 이미 토마스 아퀴나스의 생각이었다. 비록 그가 자신의 합리적인 신론을 ?자연신학?이라고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그리고 인간을 최고선으로서의 하나님과 대립적으로 주제화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말이다. 즉 토마스에 따르면 인간은 세계경험을 넘어서야만 하나님을 알고 인식하고, 또한 하나님을 표상하는 데 도달할 수 있다. 분명히 우리의 현재적 삶에 있는 그 세계 경험을 말이다. 그런데 토마스에 따르면 그 어떤 신인식 형식은 인간 본성에 속한다. 그러나 이런 지상적 삶에서 그것에 이르려면 인간은 질료 세계의 인식을 넘어서는 길로 들어서야 한다. 즉 감각적으로 지각할 수 있는 사물에 대한 경험을 넘어서야 한다. 이런 견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경험주의와 맥을 같이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토마스는 보나벤추라, 또는 하인리히 폰 겐트같은 어거스틴 전통의 신학자들과 달리 세계 경험을 하나님 인식의 유일한 통로라고 보았다. 따라서 그에게는 세계경험에서 유출되는 신증명이 하나님을 인식하는 근본적 의미였다.
하나님 증명의 근본 기능은 철저하게 근대의 철학적 신학에 있는 특징이었다. 비록 이런 하나님 증명에 대한 관심이 토마스의 경우에서처럼 그렇게 배타적으로 세계로부터의 증명에 집중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 논의의 핵심에는 거의 2세기 동안 본체론적인 하나님 증명이 놓여 있는데, 이 증명은 하나님의 현존을 하나님의 본질개념과 필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서 추정해내는 방식이다. 데카르트는 안셀름에 의해서 공식화된, 즉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해서 획득된 본체론적(ontologisch) 증명에 새로운 기초를 놓았다. 그런데 그것은 인간 정신에 본유적인 하나님 이념이라는 주장과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특별히 18세기 내내 활기차게 일어난 본체론적 증명에 대한 논의는 이런 증명의 출발점이 우주론적 논증으로 뒷받침되지 않으면 충분한 토대를 갖출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밝혔다. 다른 한편 인간 정신의 모든 행위와 사유에 구성적이고 근원적인 신(神)관념에 대한 데카르트의 명제는 그 배경으로 자리를 잡았다.
세계 사물의 우연성으로부터 그 현존의 원인을 추론하는 우주론적 논거는 데카르트의 본체론적 증명에 관한 논의에서 중요성을 획득했다. 왜냐하면 그것이 필연유(ens necessarium) 개념으로 견인되기 때문이다. 이 개념은 이런 증명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핵심 개념을, 더구나 그것을 생산해낼 만한 형태에서 형성한 것을 말한다. 위에서 언급된 현존의 원인은 그 세계에 존재하기 위해서 다른 무엇을 필요로 하지 않고, 자기 자신이 바로 그 세계이기 때문에 현존은 필연적으로 그 원인의 본질개념에 속하는 것을 말한다. 우주론적 논거는 칸트가 인과율적 사상을 감각적 세계의 한계 너머에까지 적용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선언할 때까지 필연유 사상에 객관적인 타당성을 제공할 수 있었다.
이미 라이프니쯔는 자신의 단자론(Monadologie, 1714)에서 본체론적 증명을 우주론적 논거와 조화시켰다. 그렇다고 해서 라이프니쯔가 존재론적 증명의 토대를 그에 앞서 다루어진 우주론적 논거에서 찾으려 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라이프니쯔는 오히려 이 양자를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본질 개념에 이르는 상이한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완전하게 성취되는 본질로부터, 그리고 순수 아프리오리(apriori)로부터 모든 경험에 좌우되지 않고 이런 개념에 도달될 수 있다고 믿었다. 안셀름의 경우에 절대 완전이라는 사상은(aliquid quo maius cogitari nequit) 존재론적 증명의 출발점이었다. 그리고 애초부터 데카르트에게도 역시 그랬다. 왜냐하면 데카르트에게는 우리의 모든 표상에 토대하고 있는 무한자 이념이 절대 완전이라는 사유와 동일했기 때문이다. 데카르트는 본체론적 증명을 새롭게 공식화하는 논의 과정을 통해서 자신의 증명을 정확하게 하기 위해서 필연적 현존을 절대 완전의 순간으로 생각하는 것에 결정적인 의미가 주어진다고 인식했다. 그래서 사실상 필연적 현존 개념은 증명의 핵심이나 토대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 전제되는 것은 객관적 본질 개념이지 주관적 상상에 의한 산물이 아니다. 이러한 전제가 절대 완전이라고 생각될 때 이것이 몇몇 비판가들에 의해서 의심을 받았다. 필연적으로 실존하는 것을 말하는 경우에는 물론 이런 생각의 객관성은 유한한 사물의 우연성에 근거해서 필연적인 실존자를 수용하는 우주론적 논거를 통해서 확증되었다. 라이프니쯔 자신은 이런 길을 따르지 않았다. 비록 그가 필연적 존재자의 토대가 절대 완전이라는 사상에 놓이기 힘들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는 다른 길을 모색했다. 필연적 실존자를 수용해낼 수 있는 순수 개념적인 길을 모색했다. 그렇지만 볼프(Christian Wolff)의 경우에는 우주론적 논거가 사실상 자신의 자연신학의 토대였다(1736/37). 가장 완전한 본질(Wesen)이라는 신관은 부차적으로 덧붙여진다. 알렉산더 바움가르텐도 역시 이런 입장을 따랐다. 사실상 칸트도 순수 이성비판(1781, A 584-587)에서 사변적 신증명을 비판하고 있다. 물론 바움가르텐은 자기 자신 스스로 실존하는 근원을 향해서 우연하게 실존하는 사물에 대한 단순 추론으로서의 관습적 형태 안에서 신증명을 명백하게 하기 위해서 우주론적 논거를 결코 고수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럴 경우에 필연적 실존자가 물질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와 비슷한 견해가 이미 새뮤얼 클라크(Samuel Clarke)에 의해서 논의되었으며, 오늘날도 이런 논의가 적지 않다. 필연적 실존 개념은 바로 그 필연성에 대한 절대 완전이라는 생각을 통해서 보다 상세하게 규정될 필요가 있다. 모든 완전에 만족해하는 본질은 이런 필연성과 공존한다. 데카르트는 역으로 존재론적 논거를 위한 보다 확실한 출발점을 획득하기 위해서 필연적 실존자라는 사상을 통해서 절대 완전을 보다 상세하게 규정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라이프니쯔는 필연적 실존자라는 사상이 이미 신관과 동일하다고 생각했다. 후일 헤겔은 이와 비슷하게 판단했다. 즉 다음과 같은 사실을 철두철미하게 승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리고 하나님만이 절대 필연적 본질이다. 이런 규정이 기독교적 표상을 고갈시키지 않았다면 말이다. 이것은 소위 자연신학의 형이상학적 규정보다 훨씬 심원하다….? 칸트는 이런 점에서 필연적으로 실존하는 본질의 우연성이라는 결론이 ?그 어떤 필연적인 본질의 현존?만을 지향한다는 바움가르텐의 생각을 극도의 무비판적인 태도로 추종한 것일까? 그래야만 결국 신증명으로서의 우주론적 증명은 필연적 본질 개념에 이르는 단초를 뛰어넘어 ?그 어떤 본질의 무조건적인 필연성에 근거해서 그런 무한정적인 리얼리티?를 판단한다는, 그리고 ?절대 필연성과 최고 리얼리티의 결합?을 포함한다는(A 604) 칸트의 견해는 이해될 만하다. 이 최고 리얼리티는 존재론적 증명을 특징화하는 것이다. 칸트는 두 번째 단계로 추정되는 신증명을 비판했다(A 606ff.). 즉 이 두 번째 증명에 절대 완전으로부터 현존으로 나아가는 본체론적 논거가 토대하고 있다는 비판이었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우주론적 논거가 핵심이 아닐까? 헤겔은 우주론적 증명이 본체론적 증명에 기인한다는 칸트의 주장을 거부했다. 왜냐하면 이런 논증의 입구에서 이미 필연적 실존자라는 생각으로 인해서 (우연한 사물의 현존 조건으로서의) 그 실존하는 자의 현존이 획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로써 필연유(ens necessarium)의 현존을 추정하기 위해서 절대 완전이나 (무한한 실질) 사상에 이르는 과정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즉 ?우주론적 증명에서는 이런 존재가 이미 다른 곳으로부터 획득된다.?(a.a.O. 142).
칸트에게 우주론적인 증명은 신증명의 역사에서 결코 세계로부터 그것의 근원으로서의 하나님을 소급해서 추론하는 유일한 증명은 아니다. 그 증명은 오히려 자기 스스로 정당하게 구별된 그런 논거의 전체 일가(一家)에 속한다. 칸트 스스로 자신의 ?우주론적? 증명 이외에 ?물리신학적? 증명도 다루었다. 이 증명은 자연의 질서에 따라서 이런 질서의 지적인 창시자를, 즉 신적인 ?직공장?을 추론하는 것이다. 이런 한에서 이것은 분명히 ?우주론적? 성격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물리신학적 증명은 토마스 아퀴나스가 신학대전에서 당시 논의된 논거 중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할애한 하나님 현존의 증명에 이르는 ?다섯 가지 길? 중에서 마지막 항목에 해당된다. 유한한 사물의 우연성에 근거해서 자기 스스로 실존하는, 또한 이런 점에서 필연적으로 실존하는 자가 바로 세계 현존의 창시자인데, 이런 실존자에게 나아가는 논거는 세 번째 논거로서의 하나님 현존에 대한 논거와의 고전적 연관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물론 칸트에 의해서 전제된 우연증명을 통해서 라이프니쯔와 구별된 형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다섯 가지 길? 중에서 나머지 세 가지는 모두 우주론적 성격이다. 예컨대 네 번째 길은 사물에서 만나게되는 완전성의 여러 단계로부터 가장 완전한 것이 있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또한 완전성의 수준에 대한 척도로 작업할 수 있는 것이 있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추정한다. 이런 네 번째의 길은 절대 완전이라는 개념으로 전개된다. 이 개념은 본체론적 신증명의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다. 토마스의 경우에는 세계경험으로부터 토대가 잡혔다. 이런 논거는 자연 질서를 통해서 신적인 직공장을 추론하는 것과 비슷하게 그리스 철학에까지 소급되어야만 할 문제이다. 이것은 토마스에 의해서 거론된 ?다섯 가지 길? 중에서 첫 번째의 것에, 즉 아리스토텔레스(와 이미 플라톤)에게 소급되는 신증명에 해당되는데, 이것은 운동에 의한 신증명을 말한다. 토마스는 모든 피운동자가 무언인가 다른 것에 의해서 움직인다는 확증을 통해서 제일 운동자를 추정하는 이런 증명을 매우 확실한 것이라고(manifestior via) 주장했다. 그런데 이런 증명이 작용인(作用因)들의 등장에서 첫 작용인을 추론하는 그 두 번째 길의 유사한 논증과 마찬가지로 근대의 신증명 논의에서 아무런 역할을 감당하지 못했다는 점은 참으로 놀랍다. 대신에 토마스 아퀴나스의 세 번째 길은, 즉 우연으로부터의 증명은 물론 근대에 변화된 형태로 분명히 우주론적 증명이 되었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아직 여기서 검토될 수 없었던 역사적 연구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운동으로부터의 증명이나 일련의 작용인 첫 고리로부터의 증명이 근대 사유에서 아주 취약하다는 사실에 대한 조건들이 거론 될 수 있다. 양 증명은 우리가 늘 첫 고리로 다가가지 않고서는 일련의 원인에서 무한자에게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전제하고 있다. 이에 대한 근거는 첫 고리 없이는 전체 사슬이 스스로 붕괴될 수도 있다는, 즉 운동이나 작용인이 일어날 수 없을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펜대를 잡은 손이 무언가를 쓸 동안에는 이 펜대 운동을 멈출 수 없듯이 사슬의 첫 고리에 시작하는 기능만 있는 게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어 거기서 지속적인 운동의 작용과 또한 사슬의 모든 연속적인 고리의 작용이 필수적이라고 할 때 이것이 명확해진다. 이에 대해서 이미 빌헬름 옥캄이 주목한 바 있었다. 제1 원인은 일련의 생산에서 필수적인 게 아니라 생산된 것을 유지하기 위해서 필수적이라고 말이다. 이러한 일련의 생산에서 생산된 것이 존재하는 반면에 생산자는 이미 더 이상 실존하지 않는다. 인간의 세대가 흘러가는 데서 그 예를 보듯이 말이다. 그렇지만 현존에서 유지되는 것에 의존하는 경우에 제1의 유지 원리가 필연적이다. 왜냐하면 모든 중간 원인과 더불어 그 유지 작용의 지속이 그 원리의 행위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유한한 사물이 운동과 행위에서처럼 현존에서 유지되는 원리로서 하나님의 실존을 전제하는 것은, 데카르트를 통해서 관성의 원리가 도입되고 또한 뉴턴을 통해서 보다 확실하게 (선천적 힘으로, vis insita) 규정됨으로써 그 상태를 고수하려는 경향이, 그것이 휴지상태이든지 아니면 운동상태이든지 불문하고, 모든 사물에 적용된 이후로 과도한 것이 되었다. 이로써 신관은 기계적 세계상이라는 틀 가운데서 자연현상을 이해하는 데 아무 쓸모없게 되었다.
이런 기준에서 볼 때 운동의 제1 원인이라는 추론과 일련의 작용인에서 제1 고리라는 추론이 자연을 기계적으로 설명하는 그 토대에서 그 증거력을 상실했다면 세계 경험으로부터 하나님의 현존을 증명하려는 수고는 한편으로 자연의 합목적적인 정돈에 대한 반성에,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모든 궁극적 현존의 우연성이라는 관점에 착근되어야만 했다. 전자는 계몽주의 시대에 물리신학을 경험한 국면에서 발생했으며, 후자는 우주론적 신증명으로서의 우연성에 근거한 증명에 집중함으로써 발생했다.
라이프니쯔에게는 절대적으로 완전한 본질로서의 신관이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갖게되는, 가장 쓸모 있는 개념이며, 또한 가장 특징적인 개념?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신관은 토마스가 제4의 길로 제시한 단계적 증명을 말한다. 그러나 라이프니쯔의 경우에 이 신관에는 세계 안에서 만날 수 있는 단계로부터, 즉 보다 크거나 작은 완전의 단계로부터 더 이상 우주론적인 토대가 놓이지 않았다. 오히려 우연성에 근거한 증명을 통해서 그 토대가 놓였는데, 이 증명은 세계 사물의 우연한 현존에 대한 충분한 근거의 원리에 따라서 필연적 본질의 개념을 모색하는 것이다. 데카르트는 완전 본질로서의 신관을 대체로 세계 경험에서 모색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그 신관을 인간에게 각인된 무한자 이념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간주했다. 카터루스에 대한 답변에서 데카르트는 ?감각세계의 가시적 질서로부터? 하나님을 증명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이유를 인식시켜보려고 했다. 즉 원인의 열에서 무한한 상환청구의 불가능성을 반성하는 작업이 불확실하다고 말이다. 원인의 무한한 연속이라는 표상에서는 결코 그 어떤 제1 원인자가 있을 수 없는데, 이런 표상의 불가해성은 그 어떤 것이 제1 원인이어야만 했다는 사실을 결코 추론하지 못하게 한다. ?따라서 나는 내가 시도하는 증명의 출발점으로 차라리 그 어떤 원인 사슬에도 의존되어 있지 않은 나 자신의 현존을 선택하려고 한다. 그래서 아무 것도 분명한 게 없다는 사실이 나에게 너무나 자명하다… ? 이런 점에서 볼 때 데카르트에 의해서 이제 신증명이 우주론적 토대로부터 인간론적 토대로 방향을 잡은 셈이다.
그러나 데카르트는 이러한 인간론적 방향으로 인해서 신관의 객관성이 위태로워졌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신관이 인간 정신의 생산물로 이해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신관은 피조물을 무한정 초월하기 때문이다. 데카르트와의 대화에 나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이런 논거가 지속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의문을 표시했다. 데카르트도 절대적으로 완전한 본질로서의 신관이 우리 자신에 의해서 형성될 수 있다고 보긴 했지만 이런 능력이 이념의 객관적 내용에 적당한 원인을 획득하고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추정이 불확실하다는 점에서 새뮤얼 클라크와 라이프니쯔가 신관의 객관성을 보증하기 위해서 우주론적 논거로 소급했다는 사실은 당연하다. 여기서 주목할만한 점은 라이프니쯔가 수행한 형식의 우연성 증명이 원인의 열을 무한정 상환 청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데카르트의 반박도 없이 나오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라이프니쯔가 자기 사유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는 충분한 근거의 원리는 그 나름대로 세계 경험에 뿌리를 두지 않고, 오히려 인간 이성에 토대하고 있다. 그래서 라이프니쯔의 우연성 증명은 세계 경험과의 관계에서 이성의 결핍을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아주 간단히 파악된다. 따라서 이성의 해명 결핍으로 인해서 요청된 것의 객관적 타당성에 대한 질문이 새롭게 제기된다. 충분한 근거의 원리라는 객관적 타당성이 아니라 이성의 결핍이 설명될 수 있었기 때문에 라이프니쯔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우주론적 논거를 인간학적으로 해석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으며, 또한 이성이 결핍된 모든 합리적 신학에 대한 칸트의 비판적 해명을 인간학적으로 해석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그러나 기초가 되는 객관적인 타당성이 없었다.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지고(至高) 본질의 현존을 위한 ?사변 이성의 증명 근거?(A 583ff.)를 궤멸시켰다. 그러나 그가 동시에 이러한 지고 본질의 이성이념이 필연적이라고 주장했다는 점은 아주 간단히 간과된다. ?모든 경험적 리얼리티는 그 지고한 필연적 단일성의 토대를 이 이성이념에 놓는다. 우리는 만물의 원인이 이성률에 따라서 그것일 수밖에 없는 이성이념을 현실적인 실체의 유비와 다른 것으로 생각할 수 없다.?(A 675). 우리는 이런 표상을 포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포기는 ?우리의 인식에서 완전한 체계적 단일성을 획득하려는 목표와 연결될 수 없다.?(위의 곳, 또한 A 698f. 참조). 따라서 신관은 비록 내가 ?지고한 완전성의 내적인 가능성이나, 또는 그 현존의 필연성에 대해서 최소한의 개념화 작업을 펼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이성에서 포기될 수는 없다(A 675). 즉 경험 현실성의 단일성을 그 근거로부터 생각하는 이성이 거부될 수 없다는 것이다. 칸트는 인간론적 논증에서도 역시 도덕률이 ?지고 존재의 현존을 단지 전제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 도덕률이 … 반드시 필연적이기 때문에, 물론 실천적이라는 점에서, 당연히 요구된다는 것을?(A 634) 증명한다. 이는 곧 ?실천이성비판?이 증명하려는 것이었다. 이로써 칸트는 데카르트가 시도했던 바처럼 신관의 우주론적 자리매김으로부터 인간론적 자리매김으로 방향을 잡게 된 것이다. 신증명에 대한 헤겔의 갱신도 역시 이런 결과를 되돌릴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헤겔은 신증명을 더 이상 하나님 현존을 증명하는 고립된 이론적 구성으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신증명이 오히려 감각 소여와 유한 일반 너머에 있는 인간 정신을 무한과 보편 사상으로 고양시키는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소위 하나님 현존에 대한 증명은 내면적인 정신활동에 대한 서술과 분석일 뿐이다. 이 정신활동은 사유하는 활동인데, 감각적인 것을 사유한다. 감각적인 것에 대한 사유의 초월은, 그리고 유한을 뛰어넘어 무한으로 나아가는 … 이 모든 것은 사유 자체다. 이렇게 능가하는 것은 오직 사유(Denken)뿐이다.?
헤겔은 칸트와 더불어서 신관을 이성의 필연적 사상이라고 이해했다. 그렇지만 그는 칸트와는 달리 이성을 단순히 주관적인 것으로 간주하지 않았다. 그는 주관과 즉자존재(Ansichsein)의 구별을 오성의 주관적 사유 형식이라고 보았다. 이 사유형식은 이성 인식을 통해서 극복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겔도 역시 신증명 형식을 비판했다. 그 신증명이 유한한 사물을 고정된 출발점으로 다룸으로써 이제 하나님의 현존이 이런 출발점에 의존적인 결과인 것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말이다. 헤겔은 그 반대로 생각한다. ?우연한 것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비존재와 단지 그렇게 보이는 것 때문에, 즉 그것의 존재가 참된 현실성이 아니기 때문에 절대적인 필연성이 존재한다. 바로 이것은 그의 존재이며 그의 진리이다.? 유한은 신증명에서 극복되는데, 이것은 그 논증의 논리적 형식과 반대로 유한이 결코 궁극적으로 자명한 존재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헤겔에 따르면 신증명은 인간 정신이 유한을 뛰어넘어 무한으로 승화되는 것으로서 종교의 생명에 부합한다. 신증명은 신적인 현실성에 참여하기 위해서 종교적으로 승화하는 사유의 집중이다. 그러나 오성의 사유라는 형식으로 표현된다. 헤겔은 신증명의 여러 유형들을 종교가 발전하는 그 단계와 병렬시켜보고자 했다. 즉 우주론적 증명을 자연종교에, 물리신학적 증명을 정신적 주관성의 종교에, 본체론적 증명을 하나님의 자기계시라 할 계시종교에 병렬시키려는 것이었다. 헤겔은 이로써 철학적 신학이 종교의 구체적인 역사 형태에 의존되어 있다는 사실을 통찰하려는 것만이 아니라 신증명의 역사에 대한 새로운 연구의 결과를 선취해보려고 했다. 각각의 종교 형태는 종교 전승의 신(神)이해와 연관되어 있으며, 다른 종교문화의 전통 연관으로 넘어갈 때 심각하게 변화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운동의 제일 작용인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증명은 이슬람 철학과 중세기 기독교 사유에서 창조자 하나님에 대한 증명이 되었다. 이런 연관에 대한 보다 자세한 연구에는 헤겔이 자연종교에 병렬시켰던 증명의 교정도 포함된다. 즉 라이프니쯔에 의해서 발전된, 그리고 칸트에 의해서 비판받은 우주론적 논증 형식은 유한자의 우연성에서 출발하는 것인데, 이 논증형식은 유대 철학이나 기독교에서처럼 이슬람에서 결국 성서론적 창조신앙의 기초에서 비로소 가능해졌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증명과 신관 일반의 인간학적 해석은 신관을 단지 주관적 욕망의 표현이라고 한, 그리고 인간적-지상적 표상 형식이 무한자 사상에 투사된 생산물이라고 한 무신론적 논증의 기초가 될 수 있었다. 이러한 논증형식은 루드비히 포이에르바흐에게 이르러서야 발전된 게 아니었다. 이미 무신론 논쟁에 대한 피히테(Johann Gottlieb Fichte)의 문서에서 발견된다. 그는 무한자 사상에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로 실체와 인격으로서의 하나님 표상을 자가당착인 것으로 증명하려고 시도했다. 이런 예에서 우리는 신관이 내적으로 반박될 수 없다는 고전 형이상학의 강력한 요구가 포기되는 경우에 어떤 결과가 파생되는지 연구할 수 있다. 즉 고전 형이상학의 본질 순간이 오직 심리학적으로만 해명되어야 할 근거들에 의해서 이질적으로 합성된다는 의혹에 빠져드는 게 틀림없다는 말이다. 포이에르바흐와 그의 모든 후계자들의 심리학적 종교이론은 이런 길을 따랐다. 칸트에게서 볼 수 있는 바와 마찬가지로 신관이 더 이상 이성의 ?무오 이념?(fehlerfreies Ideal, Kr.r.Ⅴ A641)이 아니라고 해서 그 즉시 인간 이성의 본성의 표현이라고 간주할 수는 없다. 오히려 이성법칙을 잘못 사용함으로써 일어난 생산물로, 그리고 이로 인해서 근본적으로 극복되어야할 기만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인간학적 ?신증명?의 기능은 이와 달리 신관이 인간 이성을 고려한 채 인간 실존의 다른 일과 더불어서 인간의 타당한 자명성을 구성하는 본질적 요소라는 사실의 입증에 있다. 인식하는 의식이 진리의 빛에 의존되어 있다는 어거스틴의 입증은 신증명을 명확하게 인간적인 방식으로 논증하는 집단에 속해 있다. 여기서 이 진리의 빛은 인식하는 의식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인간의식에 선천적으로 보유된 하나님 이념이 무한자에 대한 지식에 있다고 지적하는 것도 역시 이 논증 집단에 속한다. 여기서 이 무한자에 대한 지식은 데카르트의 세 번째 명상에 나와있듯이 유한한 사물의 모든 표상에 앞서 가는 것이며 그것을 토대하고 있다. 더 나아가서 실천이성비판에서 칸트가 시도한 도덕적 신증명도 역시 이 논증 방식에 속한다. 또한 피히테의 후기 학문론에서 제시된 바처럼 절대 안에 근거됨(Gegründetsein)이라 할, 그리고 절대존재를 통해서 존재하는 자유라 할 자의식의 자기통찰도 역시 여기에 속한다. 더 나아가서 쉴라이에르마허가 지적하고 있는 인간 자의식의 기초로서 절대의존감정도 여기에 속한다 그리고 자의식이 무한자와 영원에 대해서 구성적으로 관계를 맺는다는 키에르케고르의 명제도 여기에 속한다. 이런 일련의 시도들은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칼 라너를 한 예로 들 수 있다. 그는 인간의 자기초월에서, 존재를 선취함으로써 하나님의 현존이 이미 ?긍정?된다고 했다. 또한 한스 큉에게서 볼 수 있는 대로 개인의 발달에서 원신뢰의 구성적 의미에 대한 신학적 해석도 그 한 예이다. 이 원신뢰의 구성적 의미는 에릭슨(H. Erikson)에 의해서 지적된 것이다.
이러한 인간학적 논증 중에서 그 어느 것도 완전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현존을 증명해낼 수 없다. 대개의 경우에 그런 증명이 요구되는 게 아니라 단지 인간으로 하여금 인간과 세계를 초월하게 만드는, 또한 어떤 식으로도 연구의 대상이 될 수 없는 현실성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이 주장된다. 따라서 인간적 자기 경험의 현실성에 대한 한 실마리가 종교전승의 신명(神名)에서 보장된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현존이 인간과의 연관에서만 증명되는 게 아니라 무엇보다도 세계 현실성과의 연관에서 증명되어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현존이 단지 하나의 증명으로만 다루어질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우주론적 증명에 상존하는 의미와 그것에 관한 흥미가 현대 사상의 토대를 이루고 있다. 더구나 단수 명사인 하나님에 대해서는 그가 세계의 근원으로서 사유될 수 있다는 조건에서만, 또한 세계 현실성이 그 하나님의 존재에 자리매김에 의존되어 있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조건에서만 의미 있게 언급될 수 있다. 이 세계 현실성은 자기 자신에게서 발견될 수 없으며, 그 조건이 우주론적 논거에서 형성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우주론적 논거는 그런 한에서 인간학적으로 토대가 잡힐 수 있다. 인간 이성이 세계 현존을 궁극적으로 설명해야할 필요성이 그런 논증에 토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라이프니쯔의 우연성 논증도 역시 하나님의 현존을 엄밀하게 보여줄 수는 없다. 오히려 인간 사유가 모든 유한자의 우연성을 뛰어넘어 자기 스스로 존재하는 근원이라는 사상으로 초월되어야만 할 필연성에 대한 입증일 뿐이다. 우주론적 논거는 우선 세계 사물의 비자명성에 대하여 인간이성이 알아야할 필요성에 대해서 진술한다. 이런 지적을 통해서 최소한 하나님에 대한 진술의 예지성이 촉진된다. 동시에 이미 칸트가 ?원본질?의 이성개념에 대해서 요청했던 것처럼 다음과 같은 중요한 기능이 보존되었다. 하나님에 대해서 다른 방식으로 형성된 진술을 ?바로잡고 … 원본질의 개념에 몹시 거슬리는 모든 것과, 또한 경험적으로 제한된 모든 혼합을 정화하는? 기능이 그것이다.
이것은 종교적 전승에 대립적이었던 고대 자연신학의 근원적 기능이었다. 분명히 그 당시에 철학적 반성의 기초에 토대하고 있는 철학적 신학이 이 자연신학에서 발전했다. 그 철학적 신학의 비판적 기능은 초기 기독교 신학에서도 역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신인식의 토대를 반드시 철학적 반성이라는 기초에만 두어야 한다는 요청은 아니었다.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을 통해서만 인식될 수 있다. 따라서 신인식은 신적인 현실성의 계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런 계시가 이미 세계에서 모든 이들에게 두루 발생했다는 주장은 하나님 현존에 대한 논쟁 앞에서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이 논쟁이 하나님의 현존을 증명하려는 수고에서 표현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신증명의 역사가 가져온 결과와 그 진술능력에 대한 논의가 가져온 결과는 하나님의 현존을 둘러싼 논쟁의 사태가 이러한 논거를 통해서 결정적으로 변화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논거들은 인간과 세계의 현실성을 서술한다는 의미가 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인간과 세계의 현실성은 하나님에 대한 언급에서 자신의 예지성을 확실하게 하며, 이로써 하나님에 대한 언급의 준거에 토대를 놓을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철학의 기독교 신학과 또한 철학적 신학의 기독교 신학은 하나님을 언급할 때 비판적 기능을 받아들여야만 할 것이다. 이런 해결책이 ?자연신학?의 개념과 그 방식에 대한 비판 앞에서도 고수될 수 있을까? 이런 비판에 대해서는 현대 개신교 신학이 진술한 바 있다. 아니면 이 해결책이 이런 비판에 의해서 문제가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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