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목사/히브리서

히브리서 66강

은바리라이프 2016. 1. 13. 22:17

히브리서 66강

 

<말씀; 히브리서 12장 18-29절>

 

히브리서 12장

18. 너희는 만질 수 있고 불이 붙는 산과 침침함과 흑암과 폭풍과

19. 나팔 소리와 말하는 소리가 있는 곳에 이른 것이 아니라 그 소리를 듣는 자들은 더 말씀하지 아니하시기를 구하였으니

20. 이는 짐승이라도 그 산에 들어가면 돌로 침을 당하리라 하신 명령을 그들이 견디지 못함이라

21. 그 보이는 바가 이렇듯 무섭기로 모세도 이르되 내가 심히 두렵고 떨린다 하였느니라

22.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23.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모임과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하게 된 의인의 영들과

24.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것을 말하는 뿌린 피니라

25. 너희는 삼가 말씀하신 이를 거역하지 말라 땅에서 경고하신 이를 거역한 그들이 피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하늘로부터 경고하신 이를 배반하는 우리일까보냐

26. 그 때에는 그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거니와 이제는 약속하여 이르시되 내가 또 한 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하셨느니라

27. 이 또 한 번이라 하심은 진동하지 아니하는 것을 영존하게 하기 위하여 진동할 것들 곧 만드신 것들이 변동될 것을 나타내심이라

28.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29.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

 

[기도]없이 바로 설교.

 

언뜻 보면은 똑바로 안 살면은 소멸하는 하나님, 소멸하는 불이신 하나님이 우리를 다 태워버릴 거다. (중얼중얼)

 

근데 여기서 대비가 되는게 뭐냐면, 시내산과 시온산이죠. 시내산과 시온산. 시내산에 모세의 이야기, 시온산의 예수의 이야기예요. 그래서 시내산은 말이 떨어지는데 그 말이 떨어질수록 사람들이 견디지 못하는 율법의 산이죠? 그래서 '말하지 말게 하라' 라는 말이 나오는 거예요. 거기서.

 

그 출애굽기에 보면 거기서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죠? '말하지 말게 하소서.' '하나님 우리에게 말하지 말게 하소서' 왜. 말씀이 구약에서는, 말씀이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인간들의 어깨에 짐이 얹혀지는 거기 때문에 그래요. 근데 신약에 시온산, 시온산은 골고다가 선 산이에요. 십자가가 선 산이 시온산이죠? 그래서 거기에 보면은 24절 보세요.

 

24.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것을 말하는 뿌린 피니라.

 

그죠? 뿌린 피, 뿌린 피가 있는 시온산이란 말이죠. 그러면서 뭐라 그러냐면은 25절에

 

25. 너희는 삼가 말씀하신 이를 거역하지 말라 땅에서 경고하신 이를 거역한 그들이 피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하늘로부터 경고하신 이를 배반하는 우리일까보냐?

 

그래요. 땅에서 경고한 이는 모세입니다. 율법으로 이제 이스라엘에게 이야기를 전했던,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던 모센데 그 (어린 짐승?)과 다 죽었다 얘기하는 거죠? 근데 시온산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어떤 말씀이 전해져요? 예수님이 뭘로 오셨죠? 말씀으로 오셨죠. 말씀으로 오신 예수님의 피가 말씀으로 떨어지는 곳이죠. 그러니까 그 피를 믿지않는 자들은 '확실히 죽는다' 이런 뜻이에요. 그게 이제 예수님의 피를 거역하는 일을 '하늘로부터 경고하신 이를 배반하는 우리' 라고 이렇게 이야기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러면서 '장자들의 총회' 라고 말을 거기서 하는데 거기 쭉 나오는 게 다 뭐냐면은 이 땅의 모형으로 주어진 것과 하늘에 실제 존재하는 것! 이렇게 이야기를 하죠. 너희가 있는 곳은 시온산, 시내산이 아니라 시온산이다. 시내산은 두렵고 떨리는 곳이었다. 불이, 소멸하는 불이~ 임하였던 곳이잖아요. 그죠? 그래서 너희들이 이른 곳은 시내산이 아니다. 율법의 산이 아니라 예수님의 피, 십자가가 선 시온산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거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이 하늘의 예루살렘' 이라 그러죠. 그럼 이땅의 예루살렘은 뭐겠어요. 율법주의의 총화, 땅의 예루살렘. 그죠? 성전이 있는 곳, 산 위의 동네~ 폴리스.

 

그리고 '장자들의 모임과' 장자들의 모임, 이 땅의 (예루살렘) 이스라엘이라는 하늘의 장자들이 있었죠? 이는 내 장자들이다 그러잖아요. 모형이라 그러잖아요 모형이라 그러는 거예요. 하늘에 진짜 장자들이 있다 이런 뜻이에요. 교회, 그 교회, 진짜 참 교회, 카톨릭 처치를 얘기하는 거예요. 묵시 속의 보편적 교회~ 이땅의 교회를 묵살하는 단어의 **이죠.

 

(만유의)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하게 된 의인의 영들과'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

우리를 사랑하고 우리를 도와주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심판자이신 하나님이  계신 곳이라 그래요.

 

'온전하게 된 의인의 영들과'

이 땅에서는 불완전하지만, 의인의 영들, 이땅에서의 의인이라고 하는 것들은 다 인간의   행위로 의인이다 아니다 이렇게 판단하지만, 하늘에는 어... 히브리서의 내용 전체가 네러티브가 뭐예요. '예수의 의로 우리가 의로워진다' 가 히브리서의 전체가 네러티브니까. 그죠? 온전하게 그리스도의 피. 멜기세댁의 반차를 좇아오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온전하게 된 그런 의인들의 영들..

.. 그리고 '피'! 언약의 피! 새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 예수의 피! 그 피에 우리가 이르른 거다. 라는 거죠.

 

근데 인간들은 어떻게 해요? 계속해서 자기들의 행위를 율법주의 안에서 행위를 의지하여 의에 이르려고 하는 거죠? 이게 히브리서의 전체의 내용인 거잖아요, 이것이.

 

그니깐 거기에 뭐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바로 그 앞에 뭐 있어요. 징계의 내용이 있었잖아요? 아들 만들기. 그러면 아들 만들기의 징계의 내용이 뭐라는 거예요? 예수의 피를 믿게하고 의지하게 하는 그 과정에 들어있는 모든 게 다 아들 만들기, 징계라는 뜻이에요, 그것이. 그래서 이제 그렇게 징계가 우리에게 떨어지게 되면 우리는 '아~ 어린 양의 피, 그거 거역하면 안되는 거구나?' 이렇게 우리가 알게 된다는 거죠?

 

근데 왜 '시내산은 진동하는 곳이고 시온산은 진동치 못할 나라' 라고 하냐면, 이 세상의 진리란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내가 진리다' 라고 하신 것처럼, 예수의 피 밖에 없어요. 우리의 행위는 어때요. 행위는 시간이 가거나 아니면 내가 자라가거나 성숙되어 지는 정도에 따라 행위는 늘 변하죠? 진동한단 말이에요. 그건 안된다는 거죠.

 

나중에 보면은, 하나님께서 마지막에 한번, '마지막 한번 더' 라는 뜻인데, 확! 진동시킨대요. 진동시킬때 뭐만 남기냐면 진동치 않는 것만 남긴다 그래요. 그게 뭐냐면? 예수 붙든 자만 남긴다는 뜻이에요. 그것이.

 

그러니까 인간들의 행위나 뭐 이런 진동할 것, 때나 상황에 따라 늘 변하고 이런 거~ 이런 걸 갖고 있던 자들은 하나님이 마지막에 확 진동시킬때 그게 마지막 땐데 그럴때 다각(?)당하고 그래서 하나님이 소멸하는 불이라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소멸하는 불이라는 건 지금 우리가 이 땅에서 그 불을 (만나? 남겨?)요 성도는. 그 불을 마지막에 소멸하는 불이 우리에게 미리 내려와서 그때 확 태워버렸을때 인간들의 행위나 이런 것들이 다 타면서 그 존재 자체가 타 버리듯이, 쓰레기로 타 버리잖아요. 마지막에. 그걸 지옥이라 그래요. 그래서 지옥의 이름이 '게헨나'라 그랬죠? 게헨나가 뭐라 그랬어요? '힌놈의 골짜기' 거기는 쓰레기 배설물을 태우는 곳이잖아요. 근데 사도바울이 자기의 모든 의로운 행위를 뭐라 그랬어요, 예수 만나기 전의 행위를. 배설물이라고 그랬잖아요. 그게 확 타버리는 게 게헨나, 지옥이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이 인생 속에서 여러분이 바로 그 배설물에 불과한, 그 행위. 여러분의 자아를 묵살당하고 이렇게.. 해체당하는, 도륙당하는, 그런 지옥을 경험하는 거예요. 그래야 마지막에 진동치 못할 나라 그거만 남는 거, 예수만 남는 거예요. 그래서 마지막에 하나님이 확 진동시켰을 때 그 사람만 딱! 거기 서는 거죠. 그게 천국이에요. 여러분, 예수만 붙들고 있는 게.

 

그래서 산상수훈 맨 마지막이 하나님께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내려오셔서 이제 율법의 진의를 설명해 주고 마지막에 뭐라 그러냐면, 그 전체가 다 예수라고 그랬어요~ 산상수훈 내용이. 그래놓고는 모래 위에 지은 집, 그리고 '와디' 라고 그랬죠? 모래위가 그냥 모래가 아니라.. 이스라엘에 가면은 이제 건기가 되었을때 마차가 다니고 이런 단단한, 단단하게 보이는 길. ** 으로 와디가 그냥 모래가. 근데 거기가 우기가 되면은 물길이 된다고요. 그 길이.

 

그러니까 비가 오면 겉으로 보기에는 딴딴하고 제일 안전한 것처럼 보이는데 진짜 마지막에 소멸하는 불로 확 내렸을때 보면은 거기가 멸망의 자리라는 거예요. 그 와디. 그러니까 인간들이 볼 때 굉장히 근사하고 멋지게 보이는 그런 것들이 결국 마지막에 가서는 와디로 변하는 거죠, 그죠? 그래서 모래 위에 지은 집, 반석 위에 지은 집 이거로 이제 대조를 하는 거예요.

 

근데 거기보면 반석 위에 지은 집을 뭐라 그러죠? 하나님이 교회를 어디다 세우셨다 그래요? '사도와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웠다' 그러죠. 사도와 선지자들의 터가 뭐예요? 사도와 선지자들이 뭘 증거해요? 말씀, 예수를 증거하는 거란 말이죠. 그들이 믿었던 거. (주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게 주만! '당신만이 우리를 그리스도인 되게 합니다.' 라고 이야기하는 게 우리의 신앙고백이잖아요. 당신이 주니까..  내가 주인이 아니라. 이걸 고백하는게 사도와 선지자들의 터라고 하는 거예요. 그리고는 음..  성경이 또 뭐라 그러냐면 그 터를 뭐라 그러냐면 '예수 그리스도다' 라고 이제. 예수 그리스도가 모퉁이 돌이고 사도들, 선지자들의 터가 말씀의 터, 예수의 터라고 얘길 한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예수 위에 세워진 그 집만 마지막에 소멸하는 불이 팍 내려왔을때 안타는 거예요. 근데 이제 다른 것들은 싹~ 다 날라간다는 거죠.

 

그러니까 여러분의 이 인생이 바로 그런 어떤 행위나 여러분의 어떤 자존심 챙기기 이런 삶을 부수고 들어오는 인생이 되는게 맞는 거예요. 그러니까는 참.. 이런 말씀을 또 누가 듣겠어요? 듣기 불편하고 사실. 근데 성경은 아무리 봐도 그 이야기 밖에 없어요.

 

그러니깐 지난 주에 인제 '역사 속 예수의 모형성' 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더니 이제 불트만이랑 몰트만 신학을 한 신학자들이나 목사들이 이냥 또 개떼처럼 달려 들어가지고.. ㅋ ㅎㅎ 역사 속 예수를 부정한다구.. ㅎ ㅎ 내가 무슨 역사 속 예수를 언제 부정했다구..

 

그게 '역사 속 예수가 모형의 역할을 한다' 라는건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다라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죠~ 예수님이. 십자가 이전의 예수님도 하나님의 아들이라니깐요?

 

그러니까 누가복음에 보면 족보가 쭉~ 그걸 제가 이번 주일날 설명해 드릴텐데 이번 주일날 설교가 진짜 하이라이트, 그거만 하고 진짜 끝낼 거예요. 이제. 설교 안할라고.

 

그 꼭대기로 올라가면 하나님이잖아요 족보의 처음이~ 누가복음에.. 그죠? 하나님의 아들이에요, 예수님이. 그런데 무슨 역할을 했냐면 죄인으로서 '없음'  으로 죽어야 하는 우리의 그 역할을 하러 오셨기 때문에 그 신성을 한번도 안 쓰셨기 때문에 그분은 죽어야 할 예수고 하나님에 의해 '살림'을 받은 그분이 이제 그리스도가 됩니다. 이렇게 설명했는데 그걸 이해를 못하고.

 

그러니까 몰트만이나 불트만같은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있어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다' 라고 우기는 사람들, 그러니까 그 사람들은 뭐만 붙들어야 돼요? 역사 속 예수만 붙들어야 돼요. 왜. 본받아야 될 롤 모델이니까~. 자유주의 신학에서는 예수는 본받아야 될 롤 모델이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기 때문에 역사 속 예수를 꼬옥 붙들수 밖에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몰트만파들이 저한테 그냥 이메일 해갖고. 어. 우울증이 도졌어..또.. 응? 그러니까!! 니가 이단이라고 ㅎㅎㅎ 말예요. 흠흠흠 그러면서 또 어떤 게시판을 하나 만들어갖고 또 거기다가 뭐 토론해 봅시다..해갖구 올려놓고 뭐.. 그러더라구요.

 

아니 제가 무슨 역사 속 예수님이 무슨 뭐 그냥 아무 것도 아닌 껍데기라 그랬대나 뭐라 그랬대나.. 하여튼 그런 단어같은 거 하나를 딱 끄집어내다가 응? 껍데기라 그랬다구 막~ 물고 뜯고 그러다가.

이제는 그러려니 해요. 어, 내가 되게 유명해졌나 부다.. 신학자들까지 이제 난리냐. 그러고 마는데 ..

제가 말씀드린 건 그런 거예요.

 

우리가 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지금 여기 분명히 얘기하잖아요. 장자들의 총회. 장자들은 하늘에 이미 완료돼 있단 말이에요. 그 장자들의 총회가 이미 모여 하늘에 있고 이 땅에서 그 장자들이 야곱과 같이 차자의 삶이 살면서 어떻게 인간들의 이 순리와 노력이 묵살되고 진짜 장자들이 되는가를 사는 거예요.

 

그래서 성경에 나오는 차자들이 자꾸 장자권을 이어 받는 거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이 땅은 장자들의 지옥이에요. 다 차자로 살아야 돼요, 장자들이. 그래서 야곱의 이야기도 우리가 장자들의 총회예요. 그니까 장자권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걸 히브리서가 이야기 하고 있죠? 지금. 근데 그 장자권을, 바로 그 앞에서 뭐라 그러냐면?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팔아버린 에서의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장자권이라는 게 그렇게 중요한 건데. 근데 그 장자권이 어떻게 주어져요? 야곱에게. 여러번 설명했으니까~. 장자권은 에서가 가지고 있는 그런 됨됨이나 열심이나 노력이나 그가 가진 특기나 이런 것으로 주어지지 않잖아요.

 

아버지가 별미를 만들어 와라. 분명히 아버지가 좋아하는 별미가 있어요. 있어야 돼요. 그거 가지고 가야 돼요, 우리가~. 맨손으로 덜렁덜렁 가는 게 아니라. 그런데 그 아버지가 좋아하는 별미가 뭔지를 아는 어떤 분이 있죠? 성령이에요.  아버지의 뜻을 감찰하시...저 속 깊은 뜻을  아시는 분은 성령 밖에 없다고요. 그러니까 리브가가 성령의 역할을 하는 거예요. 아~! 아버지가, 성부 하나님이 뭘 좋아하는지 어머니는 아는 거예요. 그러니까 알고 어머니가 만들어 주는 거예요. 성령께서 만들어 주는 거예요. 우리에게 뭘 줘요? 믿음을 줘요. 뭐에 대한 믿음? 예수의 피에 대한 믿음을 준다구요. 근데 예수의 피에 대한 믿음이 뭐냐면? 내 것을 갖고 가는 게 아니라 내꺼는 다~ 부정 당하고 예수의 피만 뒤집어 쓰고 가는 거예요. 그걸 요한계시록에서 흰 옷이라고 하잖아요. 야곱과 에서의 이야기는 그 흰 옷의 이야기란 말이에요. 그런데 그 흰 옷은 뭐냐하면 어린 양의 피에 빤 옷이라 그러죠. 그럼 내가 만든 옷이 아니에요. 어머니가 나에게 만들어준 옷인데 그 어린 양의 눈에는 하늘의 진짜 맏아들이에요. 장자란 말이에요. 그 맏아들의 옷을 입혀서 보냈더니 아버지가 '야, 진짜 내가 원하는 별미를 니가 갖구 왔구나' 라고 인정해 주는 걸 '구원'이라 그러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건 야곱이 갖는 것도 아니고 야곱에게서 나온 것도 아니에요. 그냥 야곱은 (리브가에게 하나님이 언약하셨죠. ) 그 약속 안에 있었어요. 그냥. 그러니까 로마서 8장에 보면 내가 야곱은 뱃속에서부터 사랑했고 에서는 뱃속에서부터 미워했다 그러죠. 이미 갈라져서 나와요, 역사 속에. 갈라져서 나오는데 그 미리 정하신, 그대로 그들이 삶을 살게 돼요.

 

어떻게 삶을 사냐면 에서는 장자처럼 맏아들처럼 살아요 이 세상에서. 아버지가 좋아하는 거 이런 것들을 지 힘으로 막 만들어서 갖다 바치면은 칭찬받고 세상 사람들에게도 칭찬받고. 왜. 야곱이 도망갔을 때 에서가 끝까지 아버지 모시고 살았단 말예요. 효자죠.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다하죠. 아버지가 원하는 거 다 만들어 오죠. 능력자예요. 능력자.

 

근데 야곱은 맨날 거짓말이나 시키죠. 이게 진짜 장자들의 모습이에요. 이게. 이 땅에서 지 껄로 가져갈 수 있는 걸 하나도 못 챙기는 그런 인간이에요.

 

근데 하나님이 내가 너와 함께 있을 거라고 하면서 어떻게 놔두냐면 그가 뭐 단풍나무 신풍나무 이용해갖고 그냥 임기응변, 권모술수로 이 세상의 것을 많이 모으게 도와주세요. 근데 도와주는 게 어떤 의미로 도와주냐면 '이게 아무것도 아니다' 라는 걸 알게 하기위해 도와줘요. 그렇게 도와줬는데 결국 거지 돼 갖고 애굽으로 가잖아요. 먹을 게 하나도 없어요. 거지예요 그거는. 그 기근에 뭐 하나 양식거리를 만들어낼 수 없는 그런 인간으로 하나님이 확 내던져 버리시는 거예요. 다_ 털어버리는 거예요. 그래놓구는 얍복강 가에서 환도뼈까지 치세요. 그거는, 전인의 죽음이에요. 전 존재.. 환도뼈가..

 

근데 환도뼈는 남자의 씨가 담긴 그릇이라는 뜻이 있다 그랬죠? 읽어보면은.. 파자해보면 그런 뜻이에요. 그러니까 남자의 씨가 담긴, 후손이 담긴 그릇. 그러니까 후손이 담긴 그릇이 뭐냐면 질그릇 안의 말씀, 보배를 가진 우리 이야기한 거예요. 그걸 치는데 그걸 치면 누가 죽느냐면 그 안의 보배가 죽는 거예요. 예수의 십자가 이야기하는 거예요.

 

예수님이 죽고 그 죽음에 야곱, 이스라엘이 연합되어 같이 죽는 거예요. 그게 우리 인생이라는 거예요. 다 털리는 거... 그리고는 지팡이 하나 의지하여, 하나님의 지팡이, 하나님의 인도하심, 은혜의 인도하심, 왕노릇이라고 그러죠? 그거를..  바울은.. 은혜의 왕노릇. 끌려가는 거예요.

 

은혜. 여기도 나오잖아요. 그러므로 '우리가 은혜를 받자' 그래요. 은혜를 받자. 다른 게 아니라 '은혜를 받자'. '은혜를 받자' 라는 건 '니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어.' 라는 뜻이에요. 이게 히브리서 12장의 결론이에요.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니까 그런 거 갖고 너희들의 행위같은 거 갖고 뭔가 쌓아서 하나님 앞에 가려고 하지마 다 태워 버릴꺼야 하나님이~. 고린도전서 3장의 그 얘기예요. 공력 태워 버리는 게 아니고. 다 태워버릴거야~! 그러니까 은혜를 받자. 이게 히브리서 12장. 거기에 징계도, 아들 만들기라는 개념도 사용이 되는 거고 다 그 이야기예요 이게~.

 

그래서 12장 처음이 믿음의 주! 온전케 하시는 믿음의 시작과 끝은 예수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쭉 설명해 나가는 거예요. 믿음은, 우리는 그 앞에서 그냥 온~전~히 부정되는 거예요. 주일날도 말씀드렸지만 하늘에 이미 완료돼 있는 어떤 것을 역사는 설명하고 사라지는 거란 말이에요. 그래서 소멸되는거예요. 그러니까 '베레쉬트' 예요. '인<엔> 아르케' 라고....

 

그러니까 그런 개념들을, 패러다임 쉬프트가 안되니까 신학자라는 사람들도 그냥 생경한 거예요. 처음 듣는 얘기고 유명하지도 않고 박사학위도 없는 새끼가 막 그런 얘기를 막 하니까 이걸 부정을 해야 자기들의 갖고 있는 이 신학이 이게 올바르다 라는 게 증명이 되니까 눈을 뜨고 난리를 치는거죠.

 

근데 성경 전체에 그 맥을, 많이 읽어 보셨잖아요 여러분 성경. 보통 십독 이상은 했잖아요. ㅎㅎ 찔려...

그러니까 그걸 머리 속에 다 떠올려 보세요. 그러면 성경이 일관성있게 그냥 쫙_ 뚫려요. 그런 관점으로 보기 시작하면. 나는 어디를 설교하라고 해도 이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시간만 조금 주면. 굉장히 고민했거든요?

 

그러니까 인간들의 깨달음이라는 것 조차도 불안해요. 흔들려요. 진리는 예수 밖에 없어요. 어린 양의 피 밖에.. 제가 팔년 전에 설교할 때 난 그게 진리인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잖아요, 보니까. 그러니까 우리의 깨달음이라는 게 죽을 때까지 이렇게 갈 거라구요. 그렇지만 그 깨달음이 그 때 필요없는 게 아니라 그 때에 그게 또 필요했던, 그 때에 우리에게 진리였던 거예요, 그거~언.  그럼 이 과정을 따라서 계속 가는 거예요. 이렇게. 그리고 그 말씀대로 우리의 삶이 살아지는 거예요. 자기부인과 십자가의 삶으로 계속 이렇게 살아지는 거예요. 그리고 그렇게 말씀을 전하는 그 와중에 같이 그 길을 걸려서 매달려서 가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게 신기한 거죠.

 

수많은, 수천 명, 수만 명이 저를 거쳐서 스쳐서 갔는데 그중에 이렇게 남는 사람들이 있다니까요. 이렇게. 줄줄줄줄 같이 끌려와 가지구. 과정 속에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근데 지금까지 경험으로 봐서 더 많이 털려 나가요.... 근데... 있어. 진짜로 있어. 흠흠. 그러니까 참.. 안할수도 없구. 그러는..

 

그러니까 하늘의 그런, 어떤 결정이 있었다 라는 것 그것 자체를 인간들이 인정하기 싫으니까 계_속 바벨탑을 쌓는 거죠.

 

그러니까 '하나님이 죄 속에 우리를 가뒀다'. '사망에 가뒀다' 그러는데 인간들은 '아니다. 우리는 살았다' 는 것을 증명하는 거..**

성도도 여러분, 죽어 있는 거예요~. 지금~. 역사 속에 있는 한 모든 건 다 죽어 있는 거예요. 내 안에 있는 예수, 말씀만 살아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말씀이 증거되기 위해 '내가 죽은 자'라는 것, '사망에 갇혀있다' 라는 것이 끊임없이 자각이 되어야 돼요.

 

그래서 엄밀히 말해서 우리의 어떤 변화나 성숙이나 우리가 행한, 어떤 선한 일이나 이런 거는 사실 하나님에게는 관심 밖의 대상이에요. 그거는요. 아#무#리# 생각해도 그래요. 하나님은 그거에 아무런 관심이 없어요. 그러한 우리의 도덕과 윤리가 양심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강박일 뿐이지 사실 하나님은 거기에 관심이 있는게 아니라, '니가 진! 짜! 예수를 아니? 내 은혜를 아니? ' 이걸 묻고 계세요. 끊임없이.

 

어제도 밤__새 고민을 했는데 하루종일 고민하고 밤새 고민하고 계속 고민을 했어요. '아, 진짜 왜 설교를 한 편만 하면 이렇게 개떼처럼 몰려드나... 진짜 이거 잘못 가는 거 아닌가..'

근데 성경을 펴서 말씀을 묵상하면 내가 마귀새끼라도 할 수가 없어. 할 수 없어요. 왜냐면 다른 게 안 보이는데 어떻게 해요. 아무리 다르게 설명을 하려고 해도 그러면 일관성이 깨지고~ 은혜가 깨지고~ 예수의 피가 깨지고~ 이러는데 어떻게 다릏게 설명을 해요. 아무리 돌아(?)보아도..

안돼요.

 

그러니까 여러분도 꼭~ 명심하세요.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 단 한가지 이유는 예수를 믿는 거예요. 예수만 전적으로 의존하게 되는 그 길. 그 길에 우리가 있는 거고 그걸 신앙생활이라고 하는 거지. 절대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무슨 굉장히 훌륭한 사람이 되고 이런 성화주의적인 삶이 우리에게 요구되는 거. 사실 그거는 부차적인 문제예요. 그렇게 살지 말자는 게 아니라 이왕이면 예수믿는 사람답게 사세요. 사는데~. 사실 저는 그거에 관심이 없어요.

 

그리고 그렇게 그냥 세상의 그 욕망에 끌려서 사는 삶이 얼마나 불행으로 결론이 나게 되는가 이거 열심히 배워보고. 남들은 그렇게 살면 행복하다는데 그게 불편하게 느껴지고 '야, 이게 지옥이구나.'  이런 것도 경험하고 그렇게 배우면서 가는 거지, 이 땅의 모든 거는 그런 의미에서 제가 가치가 없다는 거지. 삶 자체가 아예 무슨 뭐, (날아가는 하늘의 겨?)처럼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구요. 실체를 설명하기 위한 어떤 것이기 때문에 내가 '가치없는 겁니다.' 이렇게 말씀을 드리는 거지, 그게 뭐 막 살라는 거예요?  막 살지도 못하는 걸. 막 살라고 그래도 여러분의 양심이나 도덕성이나 이런 것들이 여러분을 막 살게 못해요. 왜. 인간들의 자존심을 챙겨야 되기 때문에. 그러면서도 또 막 살고. 이게 우리의 참.... ^^ 딜레만데. ㅎ^^

그러니까 그런 거에 마음을 두지 말고 예수를 아세요~. 그걸 배워야 된다니까요, 우리는. 다른 거 할 시간이 없어요, 우리는.

 

다니엘의 세 친구가 그 불 안으로, 풀무불 안으로 들어갔죠? 뭐 안한다고 거기에 들어간 거예요? 종교행위 안한다고 그리로 집어넣어 버린 거예요. 그 밖에서 신상에게 절만 하면 돼, 종교행위 열심히 하면 '아이고 괜찮은 사람~' 이렇게 칭찬받던 때였어요. 그때가. 뭐~ 우상에게 절하지 않기 위해 순교를 했다. 이런 거 얘기하려고 하는게 아니라.

 

그들에게 있어서는 어떤 종교행위가 중요한게 아니었어요. 그 불 안에 들어있는, 소멸하는 불 안에 들어있는 진짜 예수를 믿음이 그들로 하여금 바라보게 했던 거예요. 믿음이. 그래서 불 안으로 들어 갔더니 그 안에 예수가 있었어요. 네 사람이. 다녔다니까요? 안죽고.

그러니까 그들이 밖에서 봤을 때는 그들이 소멸하는 불 안에 들어가 있는 것 같은데, 이게 우리의 인생이잖아요, 그죠? 우리만! 이렇게 그냥 ㅎㅎ 욕먹고 조롱 당하고...망하고..

근데 그 안에서 밖을 보면 어떻게 될까요. '어,쟤네들 다 죽었네 이제' 왜. 예수 밖은 죽음이니까. '예수님은 여기 계신데 쟤네들은 어떡하냐?'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은 불 가까이 오면 다 타죽는 거예요. 거기.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데리고 온 사람들이 다 타 죽었다니깐요? 진짜 소멸하는 불이 되는 거예요. 그들에게는.

 

시내산 위에서도 마찬가지였죠. 시내산 위에 불이 붙었는데 아래서 봤을 때는 이게 올라가면 다 죽어요. 다 타죽어. 그죠. 그래서 하나님이 못 올라오게 하는 거예요. 짐승도 못 올라오게 했잖아요. 다 타 죽인다~. 다 타 죽는다~.

 

그러니까 아래에서 위를 볼 때 어떡하겠어요. '아, 저거 모세 어떡하냐 이제~?' 가까이 가기만 해도 다 타죽는데 '쟤는 아예 그 속에 들어가 있으니 저거 어떡하면 좋으니?'

근데 모세는 그 위에 말씀과 함께 있었죠! 말씀과 함께 아래를 봤을 땐 어떻게 보였겠어요. '어우 저것들이 다 죽었네. 저거 어떡하냐?' 이렇게 되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우리가 베드로도 그러고 사도바울도 그러고 불같은 시험, 맹렬한 불, 이런 거에 우리가 계속 탄다고 그러잖아요, 우리의 인생이. 우리의 인생만 그래요. 그렇게 타야 저 밖이 죽음이라는 걸 우리가 깨닫게 되는 거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힘든 거예요. 고난이.. 고난을, 그러한 고난을 겪고 있는 사람들은 요즘 그렇게 우리 교회 설교를 들으면서 막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요. (안들림****) 어쩔 줄을 몰라요. 그래요? 맞죠? 이게 맞는 거죠? 우리의 인생이 이게 제가 정말 저주받아 이렇게 힘든게 아니죠? 라고 이렇게 막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는데. 그런 불같은 시험, 징계, 파이데이야, 자식 만들기의 과정 속에 들어있지 않은 사람들은 '아.. 너땜에 재수 없으니까 이제 고만 하라' 그러구 아, 그럼 안 들으면 되지이~ 왜 듣긴 또 계속 들으면서 다른 얘기 해달라고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누가 뭐 들어달라고 애걸복걸을 했나?

 

그러니까 여러분의 삶을 한번 잘 돌아보세요. 그냥 승승장구, 일취월장 그렇게만 되어가고 있어요? 삶이? 안 그렇단 말이에요 그게. 아주 지긋지긋 하잖아요. 예? 사람들이 저보고 그래요. 야, 저 사람은 그냥 어려서부터 고생도 한번도 안해본거 같고 야~ 대학교도 그냥 쑥쑥 들어가구 졸업하고도 지 할거 다 해보구 목사까지 돼갖구 말씀까지 ㅎㅎ. 아니, 바꿔서 한 일주일만 살아보자니까? 아무나.  차라리 내 평생소원이에요. 내 평생 소원. 이 나의 삶속에서 일주일만 보내라구..(그 마음을 모르구..) 그냥 차라리 하나님이 칼을 이렇게 칼을 날카로운 칼로 껍데기를 그냥 벗겨서 포를 뜨는 게 차라리 덜 아플것 같아요. 내 인생이라는 게.. 말씀을 전하는데 왜 이렇게 만드냐구요 하나님이.

 

. 그 말씀.. 칼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우리를 포를 떠서 그렇게 예수만 의지하는, 은혜만 의지하는 자로 만들어 가는 게 맞기 때문에 그 말씀을 마음에 담은 자들은 그대로 반드시 살게 돼요.

 

다른 사람 기대하지 마세요. 우린 이렇게 그냥 끌려가다가 아휴. 이제 진짜! 더 이상은 못 견디겠다고 '하나님, 제발 좀 살려주세요' 그럴 때 이제 예수님이 손을 쑥 내밀때, 기쁘게~ 그냥 기쁘게~. 안 그러면 그 예수님 우리가 사랑할 수 없어요. 어..어떻게..

 

제가 그 인간극장을 보면 가끔 보는데.. 왜냐면 거기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오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의 그런 고생은 아니지만 하여튼 힘들게 그렇지만 꿋꿋하게 사는 사람들이 나오니까 가끔 봐요. 위로삼아..

 

근데 필리핀에서 얼마전에 이제 방영이 된 것 같은데. 그 오지를 돌아 다니면서 사람들을 이렇게 치료해 주고 다니는 박 누가라는 선교사라는 분이 있더라고요. 외과 의사대요. 근데 그분 자체가 췌장암을 벌써 수술을 했고, 췌장암은 그건 한번 걸리면 그냥 바로 가는 거거든요? 굉장히 고통스러운 거고. 근데 수술을 벌써 꽤 오래 전에 했는데 살았어요. 그리고 또, 위암 수술을 해갖고 위도 다 잘라냈어요. 얼마나 힘들고 고단하겠어요. 근데 이 필리핀에 가갖구 그 몸을 가지고 오지를. 걸어서.. 또.. 뭐..  덜덜덜덜 거리는 십육 년 된 차 그거 타고. 약같은 거 거기서 인제 공수받아 갖고 가서 사람들을 치료해 주는데, 참 그분도 대단하지만 그런 오지 마을에서 살아있는 사람들이 참 기적같더라고요, 저는. 세상에 약이라는 거는 생전 보질 못해서 무슨 손에 바르는 연고 하나 줬더니 이게 뭐냐구.. 사람이 다치면 이런 거를 바르는 거냐구 물어봐요.. 생전 약이라는 걸 못 본 사람들이 태반이더라구요, 보니까. 그리고 잠깐 앉아 있는데 모기가 말이죠, 산모기같은 것들이 얼마나 붙어 가지고 물어 뜯는지 그 선교사님 다리가 그... 막... 근데 그 사람들은 거기서 살잖아요. 먹을 물이 있어요~. 뭐가 있어요.

 

근데 원~래 우리의 처음자리는 그것보다 더~ 처참해야 맞아요. 우리는 '없음'인데. 그렇게 '있음' 의 삶을 잠깐 경험하는 것 조차도 우리에게는 사실 은혜거든요. 나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설명이 되어지기 시작하면은 오히려 그런 이들이 훨씬 더 하나님의 은혜를 절감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가져봐요.

 

그리고 박누가라는 선교사라는 그 분, 그 분도 살아있는 것 자체가, 난 그 분이 기도하는 거 방송에서 기도하고 이러는 거 잘 안 보내주는데 기도하는 걸 이렇게 보내줬는데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그냥 우리의 인생이 얼마나 허무하고 헛되다 라는 것을 아는 이의 절절한 기도. 하나님, 살려주세요. 이게 아니에요. 내가 얼마나 큰 사랑을 받았는지를 절절히 고백을 하더라구요. 절절히 고백을 하면서. 그렇게 큰 사랑을 받았음으로 나도 그 하나님을 증거하는 삶을 살다가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세상에 그 몸에 또 당뇨에. 밥을 먹는데 된장 한 덩어리 풀어서 그걸루 된장찌개 끓여서 김치하구 김치도 없어가지구 맨밥에다 이렇게 먹는데 말이에요.

 

근데 그걸 보면서 난 '아, 이 분은 진짜 사랑을 하시는구나.' 사람들을 막 도와주고 섬겨주고 이래서가 아니라 그 예수를, 자기가 받은 그 은혜와 사랑을~ 죽음 앞에서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거는 진실이란 말이에요. 그거를 어떻게든 이들에게 전해주고 싶고. 그리고 인생이 얼마나 비루한지를 아니까 그들이 너~무 불쌍해 보이는 거예요. 제가 보니까.

 

, 우리가 그렇게 가게 되겠구나~. 그게 진짜! 세상을 사랑하는 게 아닐까요, 여러분?

 

어우 근데 나는 나중에 여력이 좀 되면 그분한테 차를 하나 사주고 싶어. 가다가 서고 가다가 서고 하니까 아 나 짜증나 죽겠더라구요. ㅎㅎ 보는 내가. 그! 그 오지를 몇 시간씩 환자가, 자기가 환자잖아요. 별다른 수술도구도 없이 가 가지고 뭐 그냥 혹이 이만~한 걸 달고 있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거기엔 열어 보니까. 근데 평생을, 얼마나 여자인데 수치스럽고 그랬겠어요. 그런 사람들 찾아가서 살짝 열어갖고 수술해 주는데 말짱해지고 이러는 거예요. 그런데 그렇게 다녀야 되는, 그런 분이 차가 없어갖고 말이죠. 십 육년된 어디서 처음 *보는 그냥. 시동이 안 걸려서 고쳐갖고 왔더니 이제는 또 시동이 안 꺼져요. ^^ 그런 수도 있어요? ^^ 아니 시동을 켜 놨는데 그게 갔는데 이 시동이 이제 안 꺼지는 거예요. 얼마나 차가 오래 됐는지. 그러니까 그러더라구요? '아우 됐어! 안 꺼지는건 괜찮아. 안 걸리는 건 문젠데 안 꺼지는건 뭐 그냥 놔두면은 지가 피곤하면 꺼지겠지 ' 이런 식이에요. 그..

참 삶의 여유가 있고 아 너무 행복해 보이더라고요. 그분이. 가 갖구 조수를 할까.. 이런 생각이.. 얼마나 행복한지. 내 안에 있는 그 예수를 그렇게 불쌍한 사람들에게 전하고 다니면서 그중에 가_끔 한 명씩 살아 올라오는 걸 보고...

 

근데 여러분, 우리도~ 분명히 그런 삶을 지금 살고 있는 거고 살게 될 거예요. 제가 그런 생각을 했어요. 내가 이렇게 힘들다고 그러는데 저 분은 얼마나 힘들까.. 육체적인 고통도 고통이고. 그리고 아직 육신을 갖고 있으니까 그 죽음에 대한 공포같은 게 얼마나 심하겠어요. (안들림) 거기다가 또 이제 암이 재발하지 않을까.. 그런 거. 그러니 뭐 식구들은 한국에서 다 와이프가 일해가지구 그 자식들... 이제 곧 쉰 넷인가 그렇다는데 자식이 대단히 크겠어요? 자기는 자식 건사를 한번도 못했대요. 그냥 그렇게 사는 거예요.

 

근데 예수가 있는 거예요 그분 안에. 참 처절해 보이더라고요. 그렇지만 참 행복해 보이고.

 

여러분도 분명히 그런 삶을 살게 될 것이고 그렇게 이끌려 갈 것인데 그때 너~무 힘들어 하지 마시고. 모든 성도는 반드시 필연적으로 그런 삶을 살게 된다는 걸 잊지 마시고 잘 견뎌내세요.

그러면 정말 좋은 날이 올 거예요, 정말 좋은 날.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은혜를 감사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우리들은*** 이미 진노하는 불을 소멸하는 불을 ***이미 예수의 피로, 보혈로 받은 *** 이미 하나님 나라에서 완료된 장자들의 총회이고 하늘의 새예루살렘, 은혜의 도성입니다.

하나님, 그 피를 잊지 않게 해주시고 예수님의 피를 배신하여 십자가의 원수로 사는 그런 불쌍하고 비루한 인생되지않게 도와주옵소서. 예수만 믿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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