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58강
<말씀; 히브리서 11;30>
히브리서 11장 30. 믿음으로 칠 일 동안 여리고를 도니 성이 무너졌으며
[<기도>
하나님 아버지, 이 역사라는, **라는, 육신이라는 이 여리고가 인간들의 의지와 힘과 노력이 아닌 하나님의 나팔에 의해 무너진 것처럼 이 시간 말씀에 의해서 그러한 우리의 인간들의 가능성과 자존심과 개별적 자아 챙기기의 모든 시도들이 깨지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아, 믿음으로 칠 일 동안 여리고를 돌았다. 그랬더니 성이 무너졌다 그럽니다. 그 사람들이 칠 일 동안 여리고를 돌아서 무너진 건 아니죠. 그죠? 그니까 돈 행위가 어떤 힘이 되고 능력이 되어서 무너진 게 아니라 이스라엘이 칠 일 동안 여리고를 돈 거는, '너희들의 힘으로는 그 어떤 방법으로도 여리고는 무너지지 못한다' 를 오히려 가르쳐주는 것이지. 그 '돌았다' 라는 순종의 행위가 그 성 무너뜨린 거 아니예요. 그죠?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자 무너졌단 말이에요.
근데 이..인제..이 이야기는 사실 가나안을, 계시 사학적으로 보면, 가나안을 천국, 하나님 나라라고 보면 이 여리고라는 철옹성, 이 역사, 율법주의, 인본주의라는 그 역사가천국 앞에서 무너지는 그런 최후의 멸망사건. 그렇게 보시면 돼요. 그래서 가나안 앞에서 이렇게 무너지는 거예요.
근데 여기까지 오는게 어떻게 오게 되냐면 애굽에 있는, 아브라함이 창세기 15장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언약을 받아요. 어떤 언약을 받냐면 너희들 후손들이, 믿음의 후손이죠 인제 아브라함의 후손이니까. 믿음의 후손, 하나님의 백성을 상징하는 건데. '아.. 너희들은 내가 애굽으로 보낼거야' 하나님이 보내시는 거예요. '보내서 사백삼십 년을머물게 한 다음에 내가 빼내온다.' 얘기를 하세요.
그러니까 이 역사 자체가 그냥 다 하나님의 계획 속에 들어가 있는거지~ 인간들의 어떤 우발적 그런 행위나 추구에 의해 움직여 지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의 경륜에 의해움직여 지는 거죠. 경륜이라는 건 어떤 목표지점을 두고 그리고 달려가는 모든 걸 경륜이라 그래요.
그렇게 이제 하나님께서 계획을 짜 놓으시고 야곱의 때에 열두 아들이, 오늘 저녁때 제가 잠깐 짚어 드리겠지만, 열두 아들이라는 건 그 자체가 다 '아들' 이에요 '아들'. 열둘이라는 것 자체가 히브리 사람들의 개념에선 아들이거든요? 그래서 열두 지파, 열두 사도, 이렇게 열둘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그..열두.. (아브라함의, 아니) 야곱의 열두아들의 이름을 보면 나중에 그 베냐민으로 완료가 되죠? 열두 아들이, 막내가. 그러면서 엄마가 죽잖아요. 엄마가 죽음으로 말미암아 완성되는 오른손의 아들이에요, 베냐민이. 그래서 열두 아들인데~.
그니까 이 어떻게 해서 하나님의 아들로, 오른손의 아들,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그 아들이 되는가! 우리가. 그걸 설명하는 게 이제 야곱의 열두 아들이거든요. 그래서 나중에 보면은 베냐민 지파의 바울이 열둘을 완성하는 거예요. 신약으로 가면은...그래서.
그렇게 이제 열두 아들이 애굽으로 들어가서 아들이 들어가는 거예요. 하나님의 백성, 아들, 아들이 들어가는 거예요. 애굽으로 하나님이 보내는 거예요. 그러니까 예수가이 세상에 내려온 거랑 똑같은 거예요. 아들이 들어가서 거기에서 종이 돼요. 세상의 종이 돼요. 예수님이 마치 이 세상의, 맞아죽는 이 세상의 종처럼 이렇게 오신 것처럼우리가 오는 거예요. 그렇게 와서 어린양 예수, 그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상징하는, 그 유월절 피, 어린양의 피에 의해 거저 나오죠? 그러니까 아브라함의 언약으로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나오는 거예요~. 출애굽하는 거예요. 아브라함의 언약으로. 그죠?
그러니까 언약 안에 담겨서 나오는 거지 그들이 뭐가 자격이 있어서 나오는 거 아니라 그랬습니다. 언약 안에 담겨서 나오는데 그러면 일단 그들의 구원은 보장된 거예요.하나님의 약속 안에 들어있고 그 약속이 그들을 끌고 가고 있으니끼~ 그죠? 응..
그러니까 그런데 거기에서 1세대가 다 죽고 하는 거는 구원사적 관점에서 보면은 우리가. 상징이고 메세지를 주는 거지 그들이 뭐 천국 갔느냐 못 갔느냐 이런 거는 사실은 중요한 게 아니에요.
그렇게 나왔습니다. 나와서 하나님이 일단 모세를 부르세요. 부르셔서..
19장에서 부르죠? 출애굽기 19장에서. 불러서 이제 이야기를 하세요. 20-23장까지 이러,이러한 내용~ '이거 다 지킬건지 이스라엘한테 가서 물어봐~' 그래요. 응? '물어봐~!'
24장에 모세가 가서 '니네 다 지킬거야?' 그러고 피의 언약을 맺죠?
양재기.,, 양푼이에다가 피 뿌려 가지구.. '다 지키겠습니다.' 피로 언약을 맺었다는 건 '안 지키면 죽이는 거야~.' 약속한 거예요.
그리고는 25장부터 31장까지 율법이 주어지는 거예요. 그리고 32장에 시내산에서 내려오잖아요, 그죠? 그러니까 25장부터 31장까지는 하나님이 율법을 주는 건데~
그러면 20장부터 23장까지에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야기한 내용이 있잖아요. 십계명 응? 출애굽기 20장이 십계명이니까.
근데 와갖구 돌판이 쓰여 지기 전이에요. '니네 지킬거야?' 그랬더니 '지키겠다' 그랬어요.
그러면~ 25장부터 31장까지는 그 20장부터 23장까지에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일러주신, '가서 물어봐~ 니 백성들에게 물어봐~' 라는 내용이 들어가 있어야 돼잖아요?
근데 정작 출애굽기 25장부턴 뭐가 기록돼 있어요? 성막에 대해서 기록돼 있단 말이에요. 그니까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피로 언약을 맺은, (구약이에요, 첫번째 언약이죠?)피로 언약을 맺었을 때까지는 성막에 대한 내용이 안 들어가 있는 건데 모세가 정작 십계명 돌판을 받으러 올라가고 난 다음부터는 성막에 대한 설명이 되어 있단 말예요.
그 말은 니들은 이 성막, (그러니까 성전이신 예수를 이야기하는 거예요. 성막 자체가 예수를 설명하는 거니까, 다! 번제단부터 시작해서 다 예수란 말예요.) '니들은 이 예수가 아니면 이 첫번째 피로 맺은 언약에 의해서 다 죽어야 될 존재다' 를 보여주는 거죠? 그러나 그 언약 안에다가 이 성막을 끼어넣음으로 말미암아 '너희들에게 살 길이주어졌다' 를 보여주는 거예요. 응?
그래서,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이스라엘을 누가 끌고 가냐면 모세가 끌고 가지않고 성막이 끌고 가요, 성막 위에 구름이 멈춰서면 서야 되고 떠나면 가야 되고~ 막 이렇게되는 거예요. 응? 성막이 항상 앞에 서요. 그러니까 성막 전체를 축약을 해놓은 게 법궤니까..그죠? 이스라엘의 범죄, 법궤, 율법이 성막에 의해 이렇게 감싸져 있는 거예요.이스라엘이 (성~) 너희들을 모세가~ 그 홍해를 건넜을때 하나님은 이미 모세 안에 이스라엘을 다 집어 넣어 버리잖아요. 그게 고린도전서 10장 2절이잖아요. '너희는 구름과 바다에서 모세에게 속하여 세례를 받은 거다.' 라는 건 이미 홍해를 건널때 이스라엘을 모세 안에다 집어 넣어버린단 말입니다. 그래서 모세를 끌고 가는데 이 모세가누구의 상징이었는지를 보여주는게 이제 성막이 앞장서서 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성막, 예수의 모형이었었던 거예요~ 모세는~. 그래서 이 성막이 이스라엘을, 그 불순종하는 이스라엘을 품어 안는 거예요. IN MOSES가 아니라 IN 성막. 예? 성막 안에, 예수 안에, 이렇게 품어서 살려내는 구원, 하나님의 구원의 이야기를 하는 거란 말예요.
그래서 이제 데리고 올라가면서 음.. 그들이 왜 성막 안에, 예수 안에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를 가르쳐야 되니까~ 그러니까? 율법이 내려오는 거예요. 내려와서 그 율법이 어떤 역할을 해내냐면 이스라엘이 어떤 존재인지를 폭로하는 역할을 하죠. 그니까 사십 일간~ 하나님이 돌판에다 그걸 쓰는데 뭐 사십 일 걸렸겠어요? 그러구 그거얘기하는데 사십 일씩이나 걸렸겠어요? 왜 사십 일을 모세를 시내산에 붙들어 뒀냐면 모세가 사십 일동안 안 내려오니까 이스라엘이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잖아요? 두려웠단 말예요. 우리를 이끌어 온게 모세라고 생각하고 하나님이 아니라. 그니까 니들이 생각하는 하나님은 뭐냐? 너희들이 진짜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야? 이걸 폭로시켜내기 위해 사십 일을 모세를 붙들어 뒀더니 아니나 다를까 이놈들이 아래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었어요. 만들어 내놓고 그 풍요와 다산의 신,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의유익과 우리의 풍요를 위해 존재하는 분이다.라고 엉터리 하나님을 믿고 있는 거예요. 하나님의 백성이란 사람들이요.
그래서 이제 그렇게 끌고 가.. 이들이 어떤 존재인지를 폭로시켜내는 게 이제 돌판이에요. 그래서 심판, 율법, 첫번째 돌판이 내려와서 피로 언약 맺었으니까~ 죽여야 되는거죠, 그죠? 첫번째 돌판이 내려와서 깨지는 거 자체가 구약의 율법이라는 것~ 구약의 율법, 지켜서 너희들은 구원을 받아야 된다라는, 그 첫번째 율법, 구약은 하나님이부수어 버리겠다는 의미와 너희들은 그 율법에 의해서는 이렇게 심판받아 마땅한 자야 라는 이 두가지를 동시에 품고 있는 거란 말이에요. 첫번째 돌판이 깨지는 사건이.
그리고나서 이제 하나님이 죽여가기 시작하는데 삼천 명쯤 죽였을때 모세가 그 앞을 막아서는 거예요. 두번째 돌판이 모세가 되는 거예요. 모세가 중보자가 되어 서고 두번째 돌판이 이제 내려오는 거예요. 나를 죽이세요. 그러잖아요.
그러면 이 두번째 돌판은 모세가 죽음을 담보로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법이란 말이에요. 그게 야고보서에서 말하는 자유하게 하는 율법이라는 거예요. 두번째 돌판이.
그러니까 이제 두번째 돌판이 내려와서 어디에 담기냐면 법궤에 담기죠. 두번째 돌판이라는 거 자체가 우리 인간들의 패역함, 불가능함을 상징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두번째 돌판이 내려오고 첫번째 돌판은 깨지고~.
그거를 하나님이 법궤로 품어 안으신 거죠. 품어 안아서 살려내는 거예요. 그게 두번째 돌판은 우리 이야기 하는 거예요. 우리의 불가능함, 죄성 그걸 용서하는 예수. 그래서 예수를 두번째 돌판이라고도 이야기 하는 거고.
그렇게 품어서 가는 거란 말이에요. 그래서 품어 가다가 이제 그렇게 너희들은 죽어 마땅한 자라는 걸 실질적으로 체험케 하는 게 1세대가 광야에서 다 죽는 거예요. 너희들은 첫번째 돌판에 의하면 이렇게 다 죽어야 돼. 이거죠. 하나님이 삼천 명만 죽인 게 아니라 다 죽인 거예요, 거기서 사실은.
다 죽였는데..음.. 이제 2세대 그 2세대가 가나안으로 들어가는데 한번 보세요? 사도행전에서 스데반이 광야를 교회라고 그러죠? 광야교회. 응? 광야교회라고 하고.. 이 애굽에서 세상에서 구원받은 자들이 교회생활을 하면서 무슨 어떤 일을 겪게 될지를 보여주는 게 광야예요. 그리고 이 광야도 하나님 나라라고는 하지만 여기, 우리 교회를하나님 나라라고는 하지만 여기서도 우리는,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폭로당하고 또 그렇게 죽어 마땅한 자로서 드러남으로 말미암아 부정되는 과정, 부정되는 과정을 겪는다라는 의미에서 광야교회에서 1세대가 다 죽는 거란 말입니다.
그리고 가나안으로 들어가면서 그 초입에서 또 다른 홍해가 가로막고 서 있잖아요. 그게 요단이에요. 왜냐면은 이 2세대들은 홍해 이후에 태어난 자들이니까 그니까 이들이 또다시 두번째 홍해를 건너면서 '아, 우리는 이렇게 구원받는 거구나.' 를 또 배우는 거란 말이에요. 그런데 첫번째 홍해에서는 모세의 지팡이가 홍해를 가르죠? 근데 그지팡이가 무슨 지팡이에요. 모세가 하나님의 말 안듣고 안가요~ 안가요 그럴때 하나님이 뱀으로 만들었다가 다시 준, 역시 불순종의 상징이에요. 그거는요.
그렇게 홍해가 갈라졌어요. 갈라졌는데 두번째 여리고도 역시 법궤에 의해 갈라지죠. 법궤가 뭐라 그랬어요. 인간의 불순종의 증거예요. 그래서 증거궤라고 하는 거예요.법궤를. 그걸 모세의 손에 들린 지팡이 그리고 대제사장의 어깨의 얹어진 법궤. 그러니까 불순종이 모세에게 속하여 구원을 받는 거고 불순종이 법궤, 예수 안에 속하여 홍해, (여리고가 갈라지는 거예요. 아고 여리고랜다.) 요단강이 갈라지는 거예요. 응?
그러니까 다 예수를 이야기 하는 거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대제사장이 그 법궤, 인간의 불순종을 끌어안고 물에 빠지자? 그죠? 제사장이 법궤를 짊어지고 물에 빠지자 갈라지는 거잖아요. 빠져 죽는 거예요. 제사장이 죽음으로 말미암아 그 불가능한 이스라엘이 그냥 은혜로 구원받는 거예요. 그게 이제 요단 도하 사건이란 말이에요. 그게 홍해 도하 사건이었음을 보여주는 거예요.
그래서 가나안에 들어가서 할례를 한다고요. 가장 그 초입에 앉아가지구 하나님이 할례를 행하게 하세요. 그 할례라는 건 뭐예요. 육적자아의 죽음이죠? 왜냐면 예수가 십자가로 우리를 살렸습니다. 예수의 십자가 할례로 우리가 살았습니다. 우리의 육적자아의 모든 가능성을 부정해 버리는 거니까 우리의 역사, 육이 죽는 거예요. 그게 할례라는 거 자체가. 너희들은 이렇게 구원받은 거야. 가르쳐주기 위해서 할례를 행하라 그래요.
그 할례를 행하라고 하면서 '애굽의 수치가 굴러갔다'. 그러면 애굽은 뭐겠어요? 이 세상이죠. 그죠? 뭐예요. 세상이 뭐예요. 역사의 모형이니까. 애굽의 수치가 굴려 보내는 거예요. 천국 앞에서 그러니까 천국 앞에서 여러분 자신이 완전히 죽는다를 설명해 주는게 바로 그 할례사건, 이스라엘의 할례사건. 애굽의 수치, 이 역사에 어떤 가치를 두려고 하고 인간의 가능성을 붙들려고 하는 모든 것이 거기서 이제 죽어, 온전히 죽는 거예요. 그것이요. 그래서 율법의 일점 일획이 천지가 사라질 때, 완성된다라고이야기하는 거예요. 이따가 산상수훈을 보면 알게 되겠지만~.
그렇게 인간의 육이 죽었을때 이제 바로 앞에 나타난게 도~저히 이스라엘의 힘으로는 깰 수 없는, 그 성벽 위로 마차가 두 대가 동시에 다닐 수 있었다니까 뭐 얼마나 넓었겠어요, 그거. 그거는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깰 수 없는 거예요. 더더군다나 고대 시대땐.
그러니까 이들의 육의 죽음, 역사의 죽음이라는 건 바로 그렇게 인간들의 노력으로 될 수 있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다를 보여주기 위해 천사가 먼저 나타나는 거예요,여리고에서. 천사가 나타나..군대장관이 나타나잖아요? 음. 그때 이 여호수아가 까불면서 칼을 뽑아들고 오더니 '누구 편이냐?' 그랬잖아요. 그랬더니 '네 편도 아니고 뭐..저 편도 아니고 난 하나님 편이다!' 그런다고요. 그러니까 그러면서 이제 이 여리고와 모든걸 너에게 부쳤다 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이제. 내가 깰 테니까 늬네는 걱정말고너희들이 얼마나 쓸모없는 인간인지만 요기에서 배우면 된다..라고 하는. 그게 여리고예요.
그래갖구 여리고를 그냥 뱅뱅 도는거예요, 이렇게. 그 여리고 안의 사람들이 그걸 보면서 뭐라고 생각했을까요?
'아 저 병신들 뭐하는 거야, 저거...맨날 와 갖구 한 바퀴씩 왜 돌구 가' 이랬을 거 아니에요? 공격을 하려면 공격을 하든지 아니면 망치를 좀, 망치를 갖고 와서 한번 쳐 보기를 하든지~ 그냥 와갖구 계_속 거기를 빙~빙~ 도는 거예요. 몇 백만 명이..
그러니까 아무런 쓸모가 없는 존재임을 칠일 동안, 그러니까 창조잖아요. 창조의 수~ 응? 그 칠 일간 도는 거예요.
근데 여러분, 그 요한계시록에 보면 나중에 일곱 번째 천사가 나팔을 불자 세상이 두루마리가 이렇게 종이 말리듯 휙! 말려서 다 사라지고 멸망되죠? 고 이야기 하는 거예요. 일곱째 날, 대제사장이 나팔을 분단 말이에요. 응? 근데 계시록 10장인가요? 가보면 그 나팔소리는 곧 복음이다 그렇게 얘기를 해요, 또~. '복음이다. 말씀이다.' 이야기한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 예수죠? 그 말씀이 이 마지막 날 이제 온전히 '아 진짜 예수 맞구나, 예수에 의해 창조돼야 되는 거고 모든 역사의 결론은 예수여야 되는구나!' 이게 이제 복음, 나팔에 의해 역사가 멸망하는 거란 말이에요, 그게. 그게 이제 여리고예요.
제사장이 일곱 번째 날에 나팔을 불자 그 나팔소리에 성이 무너지는 게 말이 되냐구요 그게.. 무너진단 말이에요. 뭐예요 이게? 말씀의 능력(?)을 보여주는 거예요. 여러분의 육, 철옹성같은 역사 이것이 그 복음 나팔소리, 말씀에 의해 그 말씀의 완료, 율법의 완성, (예수잖아요. 율법이)에 의해 육과 역사가 멸망돼요. 부서져요. 부서진다. 그거를 여러분이 인생 동안에 이렇게 말씀을 들으면서 경험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 교회처럼 이 말씀에 의해 그냥 내 육적자아가 열심히 부서지는 교회가 어딨어요. ^^ 응? 다른 데는 전부 그 말씀으로 그 육을 살찌워 주고 육의 가능성을이렇게 제시해 주고 이러잖아요. 성경은 절_대 그 반대로 이야기하고 있다니깐요?
무슨 뭐...번영의 신학이니 뭐니 이런 게 어디서 나와요..도대체가. 그러니까 조엘 오스틴이나 이런 사람, 그걸 쫓아서 한국 교회들이 말이죠. 어떻게 해서든지 인간들의 비위를 맞춰주기 위해, 그들의 그 육적자아의 그 낙타됨을 오히려 부추겨 주고 독려하는 게 교회가 됐어... 낙타 다이어트를 하는게 이게 신앙인데 더 큰 낙타로 만들어 주겠다고 거예요. 몬스터가 되는 거예요.
심지어 성경지식을 갖고도 말씀을 배웠다고 하는, 그 말씀을 갖고도 자기를 낙타로 만들어 내는 게 인간들이라고요. 안 그래요? 가끔 서머나 교회 이렇게 보면은 머리만큰~ 이 성경지식이 많은 낙타들이, 몬스터들이 이렇게 앉아있는 거 같은,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말씀은 많이 아는데 그 말씀이 도대체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해 그 사람, 그 자아에게.. 그럼 그 괜히 해 준 거예요, 그게. 그러니까 그러한 것을 누가 해냈다? 믿음이 해냈다. 이게 오늘 본문의 이야기예요.
그러니까 믿음은, 믿음이라는 건 여러분이 원치 않는 방향으로 끌고 가는, 여러분 밖의 어떤 객관적 실체인 거예요. 믿음은. 여러분에게 사유되어서 여러분이 뭐 무슨 능력을 발휘하고 하는 게 아니라 믿음이 끌고 가는 거라니깐요? 그래서 결국 믿음이 여리고를 부수어 내는 거예요. 말씀을 싣고 여러가지 교훈을 하먼서 성령이 믿음으로 우리에게 부으셔서 여러분의 그 육, 철옹성같은 육, 부수어 내는 거예요. 여리고.
결국 그게 부수어져야, 역사가 부수어져야 묵시가 열리는 거예요. 하나님 나라가 열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 기독교는 실지로 하나님이 눈과 귀를 열어주지 않으면 되게 어려운 거예요.
그게..그런 거죠.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 그 비유도 마찬가지예요. 다섯 달란트 그러니까 모세오경, 우리에게 주어진 율법이 있죠? 두 달란트 예수님이 이제 공생애 동안에 우리에게 요구했던, '그래 율법 있어~ 있는데~ 뭐냐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니 이웃을 사랑해라!' 실천하라 그랬단 말이에요. 예수님이.. 그죠? 그 두가지.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이거는 반드시 다섯 달란트는 피로 맺은 언약이기 때문에 지켜야 돼요. 그래서 다섯 달란트 남겨야 돼요. 두 달란트 마찬가지예요. 남겨야 돼요.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근데 인간들 중에는 그걸, 다섯 달란트를 다섯 달란트로 남길 수 있는, 두 달란트를 두 달란트로 남길 수 있는 이가 없어요. 그래서 그 다섯 달란트, 모세오경은 예수가 완성시키는 거고 두 달란트 마찬가지예요. 예수님이.
그리고 십자가 지시는 거예요.
그 다음에~ 그 다음에 하나님을 열심히 사랑하고 뭐 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해라 라는 말이 나와요? 십자가 이후에? 부활,승천 이후에? 그 다음에는 예수로 완료되는 거예요. 그래서 한 달란트예요.
근데 한 달란트가 우리에게 주어지잖아요? 그 교회에게 주어지면 이 빛이 이 무식한 육들이 받으면 이해가 안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전달을 못하고 꽁꽁 감취두는 거예요.싸두는 거예요.
그때 하나님이 그러는 거죠. 니가 전하지 못하겠으면 데리고 와서 '듣게라도 해라', '변리라도 받게 하라' 라고 이야길 하는거...
그러니까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예수가 지키는 거예요. 한 달란트? 우리에게 거저 주어지는 거예요. 그걸 성경에서 하나님의 온전함, 아가페, 사랑, 빛, 이렇게 이야기해요. '열심히 재능을 받아갖고 열심히 뭘 해서 남겨라.' 이게 아니라니깐요. 성경은. 다~.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에요. 그 아가페, 이는 내 사랑하는 자요, 내 기뻐하는 아들이다. 내 사랑하는, THIS IS MY AGAPE, THIS IS MY SON. 그러니까 아가페가 Son 이에요. 아들이에요. 그 하나님의 하나! 아가페를 갖고 나오는 게, 갖고 오신 분이 가고 있는 분이 모노게네스, 하나만 가졌다, 스스로 존재한다, 하나님이신 하나님의아들, 독생자란 말이에요. 그게요. 모노게네스란 단어가..
그러니까 여러분이 그 아들을 가졌을 때 여러분도 모노게네스가 되어서 아들이 되는 거예요. 그게 열두 아들의 이름 속에 다 들어 있어요. (아휴 얘기하고 싶은게 너무 많아 가지구 요즘 왜 이렇게 하나님이 계시를 ㅎㅎ 내려 주시는지.)
근데 이천 년 기독교 역사가 그런 걸 풀어 낸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어요. 보니까. 어디도 참고서도 없고 아무 것도 없고.
아무튼~ 여러분은 모든 성경이 예수로 결론나야 된다는 걸 아시죠? 그러면 그 어떤 것에서도 예수가 나와야 되는 거예요. 그냥 그게 성경이 말씀이 어떠한 어플리케이션으로 절~대 풀면 안돼요. 이렇게 사세요. 저렇게 사세요. 사랑합시다, 뭐 합시다. 사랑은 예순데 하나님인데 도대체 뭐, 어떻게 사랑을 하라는 거야. 여러분, 사랑이 뭐냐구요? 도대체가. 그 사랑에 대한 정의도 제대로 모르면서. 그냥, 고작 알고 있는 사랑에 대한 정의는 인간들이 합의해 놓은, 그런, 그런 정도의 사랑. 이걸 교회에서 자꾸 키우자, 내놓자 이렇게 얘기들을 하는데.
그러니까 말씀을 그냥 인간중심, 인간의 관점으로만! 볼 수가 없는 거예요, 다! 그게 그냥 육이에요. 살리는 게 아닌, 그러니까 미련한 육. 죽이는 거예요, 그거는요. 그냥 이걸 규례와 법규로만 보면 보게 되면은, 그냥 성경말씀은 우리를 죽이는 거예요.
아, 생각해 보세요. 이걸 다 해라.. 그러면은 도대체 이걸 지켜서 살 사람이 어딨어 다 죽는 거지요.
그러니까~ 여러분 하여튼.
모든 성경말씀은 율법과 선지자, 즉 나에 대해서 기록한 것! 이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예수로. 그리고 여러분의 인생 또한 예수로.
결론이 나야 돼요.
그래서 역사가 여자가 예수를 낳는 거예요.
율법이 예수를 낳는 거예요. 그래서 몽학선생이라고도 하는 거고 ( 흠흠! 담이 들려갖고 오늘 이렇게.어휴 고개를 못 드네.)
아무튼 믿음은 여러분의 여리고를, 육을 반드시 부수어 내는 거예요. 그 제사장의 나팔, 역사가 두루마리처럼 휙! 말려 올라 가더라는 거 자체가 이 역사는 묵시의 두루마리를 쭉! 펼쳐놓은 거에 불과한 거예요. 그래서 나중에 이 역사는 결국 쭉 말려 올라가 묵시로 완료가 되는 거예요. 그게 요한계시록이잖아요.
그니까 이미 완료된 세상이 있다라는 건 여기에서 인간들이나 역사가 그 묵시에 어떤 영향을 못 미친다는 그런 의미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걸 알고 있을 때, 여러분은 자유로와지는 거예요. 그렇다고 막 사는게 아니라.
예수를 자꾸 알아가고 그, 예수가 나의 삶에 간섭을 한다는 걸 아는데 도대체 어떻게 우리가 막 살아요.
히브리서 나오죠? 너희들이 피흘리기까지 싸워라 그러죠? 죄와 피 흘리기까지 싸워라. 죄와 피 흘리기까지 싸워서 이겨본 사람 있어요?
죄는 뭐예요? 그러면. 고작! 나 오늘 담배 이거 피 흘리기까지 싸워서 담배 끊어야지 ㅎㅎ 이 얘기하는 거예요? 피 흘리기까지 싸워서 담배 끊어라? 피 흘리기까지 싸워서도둑질 하지 말아라? 이런 얘긴가요?
거기 보시면 피 흘리기까지 싸워라 라고 하면서 뭐라 그러냐면 '온전케하시는 예수를 바라보자~' 그런단 말이에요~ 그 뒤까지 읽으셔야죠~.
여러분이 예수를 알고 예수를 바라보게 될 때, 죄가 끊어지는 거고 그게 피 흘리기까지 싸우는 거예요. 왜. '아이구 나는 아니네?' 내 피가 흐르는 거예요. 이 육이 해체되는거예요. 죽는 거예요. 그거 "피 흘리기까지" 예요, 이것이. 예수만 바라보게 되는 건 나의 육적자아의 가능성이 무너지는 것이기 때문에 피 흘리기까지 싸우는 거예요, 그것이요. 근데 그 싸움도 보시다시피 믿음이 다 해준다니깐요? 이 히브리서에 나오는 모든, 11장에 나오는 모든, 그 사람들의 기록들을 보시라구요. 이들이 한 거예요? 아니에요. 지금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을 설명하기 위해 사람들을 동원한 거지. 이 사람들의 위대함을 설명하기 위해 어떤 믿음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예요. 그들이 가졌던 믿음을이야기하는 게 아니잖아요. 봤잖아요. 우리는.
하나님이 인간들에게 당신의 백성들에게 해주신 믿음이 어떤 것인지를 설명하기 위해 이 사람들의 인생을 끌어들이고 있는 거란 말예요. 그게 우리의 인생인 거예요~. 이역사가 갖고 있는 본질인 것이에요. 그것이요. 다른 게 아니라..
그러니까 그 예수의 앞에 무릎을 꿇는 자가 돼야 돼요. 그리고 그 예수에게 자_꾸 그렇게 무릎이 꿇려지게 되면 우리의 삶도 변하게 돼 있어요. 실제로. 아_무런 흔적이 없는 게 아니에요. 예수가 끌고 가는 그 길에 왜 흔적이 안 남아요. 흔적 남아요.
그러나 그걸 자꾸 공식화해서 이 정도 수준에서는 이 정도 흔적을 남겨야 되고. 저 정도 수준에서는 저렇게 남겨야 되고. 이게 아니라 그냥 우리의 육적자아가 부정되는흔적 이야기 하는 거예요. 도덕과 윤리로 계산되는 흔적이 아니라~. 아니 기독교가 얼마나 심플한데~ . ㅎ 금방 또 눈과 귀가 안 열리면 못 알아 듣는 다고 해놓고 또 심플하다고 그러니까 사람들이....
아니 알기만 하면 모~든, 고거 고것만 열리면 모~든게 다 예수로 결론이 나는데 뭐가 그렇게 어렵냐고요. 응?
이제는 여러분, 마지막 때이기 때문에 정말 그 완료의 자리로 나가는 어떤 법궤 맨 대제사장들이 있어야 돼요. 이 시대에도. 그들은 죽어요 반드시. 그러나 그들이 있어야나머지 교회가 살아요. 그걸 여러분과 제가 해야 되는 거예요.
그래야 육이 무너져요. 여리고가 무너지고 그래야 요단이 갈라져요. 그러니 서머나교회가 이 정도의 환란을 통과하는 건 이건 아직도 새발의 피인 거예요. 그러니까 이냥두렵죠.. 사도바울이 왜 이렇게 발발발발 떨었는지 아시겠죠? '아..도대체 뭐야 이건. 아무리 찰나같은 인생이라지만 이렇게 힘들어야 돼?' 그러나 곧 이 인생이 끝난다는것을 알기 때문에 찬송도 하고 때로는, 찬송하다가 더~~ 발버둥떨고 뭐 이러면서 끌려가는 거예요. 결국에는 그 안에서 예수만 영광받는, 그런 기적같은 일들이 일어나는거예요.
여러분은 항상 쇠해야 되고 예수만 흥해야 되는 거예요. 그러나 오늘날 기독교는 이 인간의 흥함, 인간의 위대함, 인간의 가능성 이런걸 위해 예수를 죽여가고 있는 거 아닙니까.. 뭐가 진리인지는.. 여러분 안에 아들이 있으면 여러분이 그 한 달란트, 모노게네스 가졌으면 여러분 분명히 아실 거예요.
그게 빛이에요. 그래서 성막 안에 등대가 한 달란트로 만들어진 거에요. 금 한 달란트. 그리고 빛이 일곱 개가 있죠? 그거를 요한계시록에서는 '성령'이라 그래요. 기름이끊임없이 공급되는 그 등대, 거기에는 기름이 떨어지면 안되는 거든요. (세상 사람들이 ** 기름이 떨어졌다 라고 그냥.) 고걸 대접이라고 하는데 그 일곱대접이 쏟아지면마지막이죠. 요한계시록에서.
그 성령이 끊임없이 여러분에게 빛, 말씀의 빛을 조명하기 위해 여러분에게 기름 그래서 그 기름을 준비하지 않는 자가 죽는 거예요.
그 기름은? 여자들이 준비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준비케 해 준거란 말이에요. 기름을 부어주는.
근데 그 대접을 싹 쏟아버리면 어떻게 돼요. 그게 멸망이에요. 근데 여러분은 기름을 가진 자란 말예요. 메시아, 그리스도에 의해서.
그러니까 그런 어떤 뭐.. 그 일곱 대접이 쏟아져가지고 뭐 세상이 멸망하고 뭐 이런 것에 대해서 여러분은 두려워할 게 아니라 아, 이제 세상의 실체, 기름이 확 다 이제 쏟아지면, 대접이 쏟아져 버리게 되면은 인제 이 역사가 어떤 존재이며 어떻게 결론이 날 것인지가 분명히 드러나게 될 거니까 오히려 기대하면서 기다릴 수 있어야죠.
그리고 그 역사가 그렇게 대접이 쏟아져서 두루마리 축이 말려올라 가도록 그렇게 멸망하게 될 때 우리는 완성이 되는 거예요. 지점으로 거기가 예수로 완성이 되는 지점,그러니까 그러면 또 찬송이 터지잖아요. '그렇지. 맞아. 이 좋은 걸'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죽어서 죽는 거고 우린 그렇게 죽어서 사는 거니까.
아무튼 예수 믿으십시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은혜를 감사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모든 건 예수로 시작되어 예수로 결론이 나고 예수에게서 나와 예수로 돌아간다고 했습니다. 그 의미가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기독교는 특히, 건강한 기독교는 오히려 그 예수가 아닌, 인간을 복음의 중심에 올려놓고 있습니다. 인간들은 세상을 정화할 수도 있고 자기의 몸을 개발할 수도 있고 그리하여 이 역사를 끌어안고 생명으로 쟁취할 수 있다고 가르치지 않습니까.
하나님,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백성들의 눈과 귀가 활짝 열려 예수와 십자가와 보혈이 그들의 마음 속에 한껏 부어지는, 그런 기적이, 역사가 일어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