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55강
<말씀; 히브리서11;28>
히브리서 11장
28. 믿음으로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식을 정하였으니 이는 장자를 멸하는 자로 그들을 건드리지 않게 하려 한 것이며
<기도>
하나님 은혜를 감사합니다. 이 아침에도 우리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보혈의 능력, 우리의 마음 속에 그 진의대로 제대로 이해되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그 복음이 우리를 살리고 또 살게 한다라는 것을 마음 속에 깊이 깨달아 오늘도 그 복음으로 하루를 이기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믿음으로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식을 정하였으니" 이게 누가 한 거죠? 모세가 한 겁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우리가 모세의 제자다 라고 예수님 앞에서 자기들이 당당하게 이야기할 정도로 모세를 굉장히 큰 인물로 떠 받들죠. 왜냐면, 이스라엘 자체가 율법의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 율법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율법을 직접 받은 사람이니까... 모세를 그렇게 큰 인물로 떠받들 수 밖에 없어요. 그리고 모세의 제자, 율법의 자기들이 그.. 후예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죠? 선민입니다. 그들은요 그래서. 스스로 평가하기를.
아.. 근데 왜 유월절의 규례, 이게 유월절의 규례가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첫번째 규롑니다. 왜 그 첫번째 규례로 하나님께서 유월절 예식을 주셨으며 왜 이게 믿음으로 밖에 안되는 것일까? 한번 생각해 보세요.
믿음으로, 여태까지 우리가 11장을 히브리서 11장을 봤을때 '믿음으로'가 들어가면 그 뒤의 것은 전부 인간들이 스스로 행위로 할 수 없는 것이었어요. 그죠? 그래서 '믿음으로'가 들어가는 거죠. 그래서 믿음이 그들을 그렇게 시키더라. 그랬어요. 그러면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식을 정한 게 믿음이 가입하지 않으면 인간들이 도저히 할 수없는 것이다란 뜻인데 그게 도대체 어떤 류의 것인가.
자,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식. 아..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으로 보내시고 그 애굽에서 모세를 시켜서 건져내는데 애굽왕 바로가 이스라엘을 놓지 않죠. 심지어 아홉가지 재앙 뒤에는 모세한테 협박하기를 너 한번만 더 나타나면은 죽인다라고 협박까지 했습니다.
근데 모세가 하나님 앞에서 (두려웠겠죠. 모세도요.)
근데~ 하나님께서 어린양을 하나 잡으래요. 근데 그 어린양이 어떤 양이냐면 점도 없고 흠도 없는 양이어야 돼요. 그리고 그 양무리에서 꺼내야 돼요. 그러니까 양무리의대표여야지 어디서 사오면 안돼요. 양무리의 대표이며 점도 없고 흠도 없는 그 양을 하나 잡아서.. 그러니까 양무리로부터 분리를 시키는 거죠? 분리를 시켜서 죽입니다.아 그리고 태우죠. 요거는 하나님의 진노를 이제 아주 적절하게 표현한 거예요. 죽여서 태워요. 그리고 하나도 남김없이 다 먹으라고 그래요. 그거는 예수 그리스도, 오직예수 그리스도만으로만! 구원이,생명의 양식이 주어지게 된다..라는 것을 이제 상징하는 거예요. 그래서 "다 먹어라" "하나도 빠짐없이 다 먹어라." (ㅇㅇ...안들림)
그렇게 이제 하나도 빠짐없이 어린양을 먹게 되면 그들이 양을 잡을때 했던, 그 피있죠. 그걸 갖다가 바르는 거예요~. 인방과 문설주에~ 문지방에.. 양을 (문지방에서) 잡았으니까 사방에 어린양의 피가 발리는 거죠. 그러니까 어린양의 피가 발리면 즉음과 관계되는, 그 어떤 것도 그 안으로 통과하지 못하게 되어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거를~ 그들의 행위와 아무 상관이 없이, 오직 어린양의 피로만! 우리에게 구원이 이루어진다..라는 걸 믿음이 가입하지 않았을 때는 그 누구도 이해할 수가 없다..라는 뜻이 바로 이거예요. 그러니까 믿음이 가입하여 성도에게 이루어 내는 게 뭐냐면 너희들은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살았다. 다른 거, 그 어떤 것도 거기에 보태지거나 가입이 될 수 없다! 라는 거예요. 예?
우리는 신앙을 자꾸 어떤 열심의 문제로 구별을 하죠. 근데 신앙은 열심의 문제가 아니라 열심이라는 게 나쁘다는 게 아니라, 올바른 열심이어야 되는 거죠. 그러니까 열심의 문제가 아니라 옳음의 문제인 거예요. 그러니까 어떻게..우리가..예수를 믿는 믿음 안에서 자기가 조금씩 부인이 되어지고 내가 진짜 어떤 존재인지.. 죄인 중의 괴수라는 그 자각이 조금씩 조금씩 선명해 지면서.
여러분,사실 우리의 상황과 환경같은 게 뭐 그닥 굉장히 아프고 부끄럽고 불쾌하고 슬픈 것이, 그렇게 여겨지지 않는 경험을 하죠,그죠?
왜냐면 내가 뭔가 행복해야만 하는 어떤 가치가 있고 그런 것이 나에게 당연한 거라고 여겨질 때, 그러니까 우리는 우리의 구원, 우리의 천국, 우리의 행복, 우리의 쾌락,우리의 기쁨 이런 것만 쫓아사는 거죠. 그죠? 나는 그렇게 살아도 당연히 자격이 있는 자라고 생각하니까..
근데 말씀에 의해서 내가 얼마만한 죄인인지를 점차점차 깨달아 가면서 내가 이런 대우를 받는게 사실은 이것도 감지덕지다라는 하게 돼요, 조금씩. 그러니까 처음엔 굉장히 불쾌하고 기분나쁘고 그런 상황과 환경이 나에게 주어졌을 때도 조금 이렇게 말씀 안으로 깊이 들어가서 나의 처음자리를 확인하면 아니 이게 원래 당연한건데.. 그리고 이나마 살게 해주시는 게 이게 은혠데라는 그런 자각이 생긴다구요.
분명히 그런 변화가 있고 그리고 거기에서 우리는 아.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보다 더 성실하고 좀 더 깨끗하고 그런 삶을 하나님 편에서 살아야 되겠다 라는 열심이 생겨요, 당연히 생겨요. 당연히 생겨요.
근데 그러한 올바른 열심이 아닌, 그냥 엉터리 열심. 로마서 10장 1-2절에서 사도바울이 이야기한 것처럼 자기가 열심은 부렸는데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인간의 의를 좇아오히려 하나님의 의를 부정하고 십자가를 모독하는 열심, 그런 열심이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는 이제 그걸 경계하자는 거죠. 그죠?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우리의 됨됨이나 자격같은 것들을 자꾸 그걸 갖고 구원의 확신같은 것들을 이렇게 생각을 하니까 의외로 많은 분들이 우리 교회 설교를 듣고 있다고 하면서도 '목사님 내가 하나님에 의해 선택받았다는 거~ 그 약속 안에 들어가 있다는 거~ 그거 어떻게 확인할 수 있어요?' 이렇게 자꾸 물어요. 불안하니까 그런 질문들을 많이 해요. 이메일로도 많이 오고 한국에 가서 집회하는데 끝나고 많은 분들이 그 똑같은 질문을 하더라구요? 그럼, 도대체 내가 창세전에 구원을 받았다라는 걸 어떻게 확인할 수 있냐는 거예요. 그러니까 자기들의 됨됨이를 이렇게 .. 본인들은 아니까~ 아무리 봐도 아닌 것 같거든요. 그러니까. 근데 저 목사는 창세전에무슨 예정이 됐다 그러고 뭐 완료가 됐다 그러고 묵시 속에서 하나님의 교회는 완성이 됐다고 그러고 그러니까. 이거 어떻게 해야 알 수 있는 거야? 이렇게 되는 거죠.
여러분,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인들이 구원의 확신이 있었을까요, 없었을까요? 백프로 100% 있었습니다. 응? 바리새인들,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인들은 구원의 확신 100%있었어요. 그들은 자기들은 선민이고 이미 구원은 따놓은 당상이라는 구원의 확신이 100% 있었다니까요? 아니, 백이십프로 120% 있었어요. 근데 다 지옥갔습니다.
여러분, 구원의 확신으로 천국가는 거 아니에요.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로 가는 거라니까요? 그럼 내가 하나님의 은혜, 약속 안에 들어있는 존재인지 아닌지 그거는 어떻게확인할 수 있는가. 하나 밖에 없어요.
예수님이 그 약속으로 묶어서 (그 약속이라는 단어 자체가 묶다라는 뜻이거든요?) 묶어서 니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벧세메스로 가는 암소 둘처럼, 그 암소 위의 멍에는하나로 걸린다 그랬죠? 두 암소예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내 멍에를 지라 그런 거예요. 같이 가자는 거예요. 내가 니들과 같이 가겠다. 그 말은 '내가 간 십자가의 길을 니들도 가게 하겠다' 라는 거거든요.
여러분이 약속 안에 들어 있다 라는 분명한 증거는? 모든 일이 여러분의 뜻대로 안될 때. 그 때 밖에 없어요.모든 일이 여러분의 뜻대로 생각대로 되어지면, 예수님이 어떤 삶을 사셨어요? 이 땅에 오셔서 그 첫번째 암소가. 응? 젖나는 암소가.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의 삶을 살았단 말이에요.
이 세상에서 여러분은 나가는 자로 부름을 받은 거예요. 애굽에서 그냥 잘 살 수 있었어요. 거기서 그냥 열심히 그냥 왕 바로가 시키는 것만 종의 삶만 열심히 살면 그들이광야에서 먹을 수 없는 거.. 부추와 마늘과 고기~ 그거 얼마든지 먹으면서 살 수 있는 곳이었어요. 그러니까 그들이 그렇게 고생을 했는데 광야에서 '다시 돌아가자' 라고한 거예요.
그곳에서 하나님이 모세를 보내어 그냥 자기들이 왜 거기서 태어났는지 어떻게 우리가 이리로 들어오게 됐는지도 모르는데 그냥 나 보니까 애굽이에요.
근데 하나님은 굳이 또 거기서 끌어내서 광야로 옮겨버리는 거예요. 애굽의 삼각주에서 천수답 농사를 져야, 하늘만 바라보아야 하는, 가나안으로 옮겨 버리는 거예요. 어디를 거쳐서? 광야를 거쳐서. 근데 광야에는 집도 질 수 없고. 왜냐하면 거기서 살 일이 없으니깐요. 농사를 져요? 어떻게 져요. 광야에서. 아무 것도 없는데. 거기다가 농사도 못져요. 수시로 옮겨야 되니까. 자기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곳이에요.
그리고? 뭔가 얻을 것이 있으면 전부 이 야곱의 후예들이 이스라엘의 후예니까.. 에서의 후예들이 다 갖고 있네? 그리고 하나님은 또 거기다가 그 에서의 후예들에게 사서써라. 그런다고요. '니들한테 그 땅 주지 않았으니까 그 땅으로 질러가지도 말고 필요한 거 있으면 그들에게 사서 써라.'
자, 이리로 끄집어 내는 삶이 여러분의 인생이란 말이에요. 성도의 인생.
그러니까 성도는 그런 거예요.
여러분, 예수 안에만 생명이 있다 그랬어요. 근데 그 예수 안에 들어있는 자만! 산 자예요 그러면~. 그러면 이 세상의 도덕과 윤리는 누가 만들었어요? 착한 삶이라는 거는누가 규정한 거죠? 하나님이 만들었나요? 인간들이 인간들 자신의 보편적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규정해 놓은 게 도덕과 윤리며 사회법이에요, 예?
그러면 그런 것들은 죽은 자들이 만들어 놓은 거죠? 죽은 자들이 만들어 놓은 그 어떤 것을 갖고 이 사람은 성숙한 자, 변화된 자, 착한 자,아니면 뭐 나쁜 자 이렇게 나누어서 저 사람은 천국에 갈 자격이 있는 자, 상 받을 자격이 있는 자. 이렇게 나누는 게 옳아요? 틀려요?
우리는 근데 교회에서도 그렇게 죽은 자들이 합의해 놓은, 고작 인간들의 보편적 자존심을 챙길려고 만들어 놓은, 그런 것들로 성숙을 이야기하고 변화를 이야기하고 성화를 이야기해요.
여러분, 개혁주의가 뭐예요? 진짜 개혁주의가 뭐예요. reformed가 뭐냐고. 중세에 온 유럽이 다~ 기독교화 되었을 때 기독교의 역사는 중세의 암흑기라 그래요. 아니, 왜온 유럽이 다 기독교화 됐는데 온 세상이 다 기독교가 된 거예요. 그거는요~. 근데 왜 암흑기라 그러냐고요?
인간의 행위가 하나님의 그 구원, 진짜 그 구원을 인간의 행위로 아주 그냥 범벅을 시켜갖고. 인간들이 면죄부를 사도 그게 구원에 영향을 미치고 인간들이 열심을 부리면그게 또 영향을 미치고 인간들의 어떤 공로. 성인, 성자들의 공로가 남들에게 또 나누어지기도 하고. 이런 게 로만 캐톨릭이었어요. 기독교였어요. 이게.
그러니까 '이거 아니다' 이거 아니니까 우리 원래의 form으로 돌아가자~. reformed 그게 개혁이에요. 어디루. 쏠라 스크립트라 sola scriptra, 쏠라 피데 sola fide, 쏠라 그라시아 sola gracia.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말씀으로 돌아가자가 개혁주의잖아요.
근데 오늘날 개혁주의는 어떠냐고요. 또 다시 하나님의 구원에 그 십자가 은혜에다가 인간들의 행위, 성화해야 돼, 뭐 해야 돼, 이렇게 또 붙여 놓은 거죠. 그래서 그걸로사람들이 자기들의 어떤 수준이나 성숙의 정도를 판가름하게 하고 그걸로 사람들에게 그런 삶을 독려하여.
왜냐하면 그래야 교회가 돌아가요. 열심을 부리고 그렇게 희생을 하고 헌신을 해야 교회가 헌금도 쌓이고 봉사하는 자도 많아지고 이러니까~.
그래서 저는 다시 이야기하는 거예요. 이 왜곡된, 이 개혁주의말고 잔짜 reformed 리폼드로 다시 돌아가자고 얘기하는 거예요.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말씀으로 다시돌아가자~ 개혁주의 자체를 부정하는 게 아니라~. 진짜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이 했던 그 개혁으로 다시 돌아가자 reformed. 다시, 다시 또 곁가지로 중세 로만 캐톨릭처럼 기독교가 그렇게 돼 버렸으니까 이제 다시 돌아가자~.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자, 바퀴벌레나 뱀들의 집단 안에도 그들의 규율과 규범과 도덕과 윤리가 있습니다. 우리가 인간이 바퀴벌레나 뱀을 볼 때 그들이 그들의 사회에서 통용되는, 바퀴벌레의 도덕과 바퀴벌레의 윤리로 잘 살면 걔가 이뻐 보입니까? 뱀은 어때요. 뱀들이 뱀들의 규율을 잘 지키고 살면 참 이쁜 뱀이네. 그럽니까?
아담 안에 들어 있는 죽은 자들이 아무리 자기들이 규정해 놓은 도덕과 윤리와 사회법으로 자기들을 치장한다 해도 하나님 앞에선 그냥 아담이에요. 뱀이에요 아세요? 우리는 그러한 송장들이 그렇게 만들어 놓은, 그런 것에 영향을 받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에요. 바퀴벌레들의 도덕과 윤리에 여러분이 영향 받아요? 그거 안 지키면~ '아니너 왜 바퀴벌레들의 도덕과 윤리를 안 지켜' 누가 이렇게 욕합니까?
우리는 예수 안에서 예수의 피 '믿어서' 천국 가는 거예요. 말씀은 이스라엘이 출애굽한 뒤에 주어졌다니깐요? 율법은? 이미 건져놓고 그걸 줬어요. 왜 줬어요? 니들의 처음 자리가 니들의 진짜 모습이 뭔지 한번 봐라 이렇게 거울로 준 거예요. 그걸 지켜서 나에게 칭찬받는 자들이 되라가 아니라. 그게 아니라면, 율법을 먼저 주고 그걸 잘지키는 자격이 있는 자만 출애굽 시켰어야 돼요.
그래 자기들의 처음 자리가 뭔지를 너희들은 왜 예수의 그 십자가, 은혜, 그 피로 구원할 수 밖에 없는지를 니들의 처음 자리를 보라고 거울로 줬더니 그걸 보고 깜짝 놀라면서 '하나님 어떻게 이런 자를 구원하셨어요?' 가 아니라 그 거울을 보면서 화장을 하는게 오늘날 기독교입니다. 계~속 가릴려구. 어떻게 해서든지 가려야 돼.
아닙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서 구원받는 게 아니에요. 지켜서 성화하는 게 아니에요.
구원이라는 건 연합이란 말이에요. 하나님과 도저히 불가능한 티끌들과의 연합. 이거는 안되는 거예요. 이거는요~. 어떻게 창조주인 하나님과 없음인 티끌들이 연합이 되어서 하나님의 삶과 방불한 삶을 살게 되냐구요. 이게 하나님 나라란 말입니다. 이건 안되는 거란 말이에요. 애시당초에~.
근데 이 티끌들이 예수를 닮겠다고 하는 거예요. 하나님 흉내를 내 보겠다고 하는 거예요. 엄밀히 말해 이게 '선악과 입에 문 하와'인 거예요. 그건 아니라니까요. 우린 예수를 믿는 거예요.
그러면 왜 성도들에게 경건한 삶이 요구되는가? 사도바울 보세요. '야 그까짓 제물먹는 거~ 그거 뭐 먹어두 돼~. 야 하나님말구 신이 어딨니. 우상이 어딨니. 그런 건 없어. 그러니까 우상에게 뭘 바쳤다 이건 아무 것도 아니야~ 이건. 그니까 먹어~.', '그러나 나는 내가 그걸 먹음으로 말미암아 넌 어떻게 우상에게 드린 걸 먹니? 이렇게 아직 믿음이 연약한 자 그들이 혹시 상처받을까봐 안 먹어야 된다면 난 죽을 때까지 안 먹을 수 있다!?' 왜. 나는 죄인 중의 괴수거든. 그까짓 고기 그건 나에게 호사라는 걸아는 거예요. 이 사람은요.
그러니까 '나'만을 위해서 살면 아무데나 돌아다니면서 술 쳐먹고 이래도 상관없어요~. 술 먹는다고 여러분 뭐. 이미 기관차는 방향이 정해져 있고 달려가고 있어요. 그 안에 여러분이 방주 안에 들어가 있다니깐요? 그 안에서 여러분이 술을 먹든 뭐를 하든 그 열차의 방향을 바꿀 수는 없어요.
그러나! 도저히 이 길로 갈 수 없는 나를 어떻게 이 예수라는 열차에 담아서 나를 이리로 보내주시나...라는 이 자각이 있으니까 그냥 다른 이들이 혹시 상처 받을까봐 감추고 몰래 숨어서 하는 거예요.^ 들키지 말라니까. 숨어서 하세요. 그러나 '아이 그 까짓것도 별 거 아니구만' 이라는 그 자리까지 우리는 가게 돼 있어요. 그런 것들이 결코우리에게 행복과 기쁨과 쾌락을 주지 않는다 라는 걸 우리는 말씀을 통하여 배우고 알게 돼요.
여러분, 예수 안에 있는 자만 산 자예요.'예수 안에 들어있다' 라는 것 자체가 개별적 자아, 각자의 개체성을 차압당하는 거예요. 없는 거예요. 예수 안이니까요. '예수 안'은그 안에서 경쟁이나 차이나 성숙의 정도나 이런 게 비교가 되는 곳이 아니에요. 그냥 예수 안이에요. 아무 자격없는 자들이 예수 안에서 구원 받는 거예요.
예수 밖은 어때요. 죽은 자들이에요. 예수 밖에서는 반드시 경쟁이 있고 차이가 있고 비교가 있어요.
왜. 예수 안이라는 울타리가 없으니깐요.
구원은 예수를 머리로 하여 그냥 지체로 우리가 구원받는 거예요. 그러니까 예수와 우리는 하나라니까요? 근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냥 여전히 예수 안, 이게 교회라고 하면서도 여전히 사람들을 그들의 외모 What is seen. 외모로 보는 거예요. 보이는 것으로, 드러나는 것으로 차이를 만들어 내고 비교하고 거기에서 상대적 우월감을느끼고 이러는 거죠.
그러니까 이걸 예수 안, 십자가의 피 이걸 제대로 알아 듣는 이들은 이거 이외의 다른 소리를 들을 수가 없어요. 그 어떤 좋은 이야기를 해 줘도 믿음이 가입한 자는 알아들어요. 믿음이 가입한 자..
그런데 예수님이 뭐라 그러냐면 '혹이 가로되' 그러죠? 성경이. '혹이 가로되 주님 구원을 얻는 자가 적으니이까?' 그래요. 거기서 '적으니이까'가 '거의 없다'라는 헬라어예요. 거의 없다. 구원받는 자가 거의 없습니까? 그렇게 물었어요. 예수님이 그렇게 이야기를 하셨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혹이 가로되 그러면 예수님 구원 받는 자가 거의 없습니까?' 그랬드니 예수님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그러면서 아무리 애써도 못 들어가는 자가 많다 그래요.애쓴다는 건 예배당 안이라는 뜻이에요 여러분.
어디 저기 사마리아인이나 이런 사람들이 이방인들이 애쓰진 않을 거 아니에요~ 좁은 문으로 들어가려고..
구원받는 자가 거의 없습니까? 그랬더니 예수님이 거의 없는 정도가 아니라 그중에서도.. 못 들어가는 자가 있다라는 거예요. 거의 없는 중에도.. few라고. 거의 없다.
그러니까 여러분, 보세요. 예수님의 십자가와 은혜를 이야기하면.
여러분 좀 이상하지 않아요? 너무~ 좋아서 사람들이 벌떼처럼 모여들 것 같지 않아요? 난 너무 너무 자유롭고 야! 어떻게 그 예수가 이런 미친 인간 같은 나를 구원을 해갖구 그 예수라는, 방주라는 열차, 객차에 태워서 천국으로 끌고 가시나~? 거기에 동의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은데.
아니..저.. 있는 사람들이 떨어져 나가는 거예요. 그거 아니라는 거예요. 왜 인간들의 이 능력을 무시하며 하나님처럼 된 우리의 자존심을 묵살하느냐고. 거의 없어요.
그래서 예수님이 내가 세상에 다시 올 때 믿음을 보겠느냐 그랬어요. 그거는 우리들은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이 믿음을 던져놓은 자가 얼마 없단 뜻이에요. 믿음은 하나님거니까.. 응? 하나님 거니까. 믿음을 보겠느냐? 별로 없어.. 그런 뜻이에요. 별로 없어..
계시록13;10절에 보면 예수님을 '죽임 당한 어린양'이라고 개역성경이 그렇게 해 놨는데 창세전에 ('아포'라는 그 전치사가 붙어갖고) '창세전에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이에요. 정확히 번역하면요.
예수님은 창세전에 죽임을 당했어요. 성경이 말하는 바예요, 그게.
창세 전에 죽임을 당했다는 건 그 예수님에 의해 살 자들이 이미 그때 정해져 있다는 뜻이에요. 그러면 그들은 이 땅에 내려와서 바로 그 예수 때문에, 예수의 죽음으로 내가 산 자라는 것. 이것 이외에는.
그래서 바울이 그러는 거예요. 나는 십자가 이외에는 알려고 하지도 않고 이야기하려고 하지도 않겠다 라고 이야기한 거예요. 그 똑똑한 사람이. 그래서 저도 성경을 점점이렇게 읽으면 읽을 수록 얘기할 게 없어요. 그러니까 어떤 때는 '또 가서 이 얘기를 해야 되나?' 이런 생각, '오늘 이렇게 다 얘기했는데 다음 주에 무슨 얘기를 또 해야 되지?' 이런 거.
그리로 자꾸 가게 돼요.
그렇게 삽시다, 저렇게 삽시다, 훌륭한 사람이 됩시다, 성숙한 사람이 됩시다 그거 다~ 허공에 날리는 공염불이라는 거 알기 때문에.
제가 그 신학생들한테 가서 강의를 하는데 신학생들이 어플리케이션을 어디까지 해야 되냐고 물어 보더라고요? 그러니까 어느 지점 정도까지 우리가 목회자가 이렇게 응?가르쳐야 되는 거냐고 물어요.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어플리케이션은 너희들이 건드려서는 안되는 영역이니까 아예 빼 버려라, 설교에서 아예 빼 버려라. 어떻게 해서 이렇게 사세요, 저렇게 사세요.
우리 교회서도 저에게 그걸 요구하는 분들이 굉장히 많았어요.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를 좀 알려달라고. 그걸 얘기 안 해주니까 사람들이 지 멋대로 산다고 저한테 막 항의를 하고 그랬는데. 뭘 어떻게 살아요. 예수 믿고 살아요. 응? 예수 믿고 사시라니까요?
성경에 보면 이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각 시대마다. 제가 이렇게 성경을 보다 보니까, 이거는 세상과 성도의 이야기가 아니라 교회 안에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중에 하나님 백성과 아닌 자들의 이야기예요. 성경이 세상에 관해선 아무 관심도 없어요. 그런데 예수를 알고 예수를 올바로 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이고 그 중에 아_주 소수가 진짠데 그들은 대다수에 의해 어떤 취급을 받게 되는가를 설명해 놓은 게 이거더라고요. 보니까.
요즘 제가 인제 헬라어나 히브리어 원어로 이제 좀 더 공부를, 힘을 기울이는 편이에요. 왜냐면은 그게 오히려 설교가 더 많이 어려워질까봐 그동안 많이 자제를 했던 편이었는데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아무리 봐도. 그래서 헬라어. 히브리어 사전도 새로 사고 좋은 걸로. ㅎㅎ 그리고 그와 연관된 사전들을 많이 사서 요즘 이제 그렇게 봐요.그러니까 하루종일 봐도 한 2절 정도밖에 못보겠더라구. 쪼금씩 인제 속도가 붙겠죠. 그걸 파싱을 해서 그 연관되는 단어들 그 당시에 이것들이 어떻게 쓰였나를 이렇게계속 찾아보기 시작하니까..... 우리가 성경을 얼마나 표피적으로 보고 있는지를 지금의 제 상태도 '야 이건 너무 깊이가 없었구나' 라는 것을 하나님이 깨닫게 해 주시더라고요.
사람들도 별로 없으니까 시간도 많아 갖구 공부할 시간이 많아요. 그래서 보니까 우리는 성경을 너무 껍데기로만 본 거예요, 그동안에. 세상에 그 구약과~.
그니까 신약은요. 구약을 하나님이 복음으로 주신 거거든요? 구약도 복음이에요, 여러분. 율법이 원래 복음이에요. 복음을 주셨는데 못 알아 먹으니까 신약의 새 그림으로이렇게 그려준 것 뿐이지.
그러니까 신약의 언어들을 헬라어를요. 히브리어에서, 이렇게 구약에 있는 히브리어에서 찾아 들어가다 보면,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구약은 율법이고 신약은 은혜고 이것도 아니에요. 그냥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근데 예수님이 오셔서 다시 한번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는 게 신약이에요.
시몬 베드로를 베드로로 이름을 바꿔주는 거, 그것도 하나하나가 다~ 그냥 단어 하나 하나가 메세지를 담고 있어요.
시몬이 광야, 사막이거든요? 기근이에요. 말씀의 기근이 오는 거. 그러니까 시몬이란 존재가 계속해서 예수님의 말씀을 곡해하는 존재로 앞장 서는 거죠.
너는 오늘 날 세번 부인할거야. 아니에요. 난 예수님을 위해서 죽을 수도 있어요. 이런 식으로.
근데 하나님이 그를 믿음을 주어 반석, 고린도전서로 가 보면 생수를 내놓는, 하나님의 말씀, 진짜 말씀을 내놓는, 반석으로 바꾸는 거예요. 이게 시몬이 베드로로 바뀌는거예요. 그러니까 그의 인생이, 그 과정을 설명할 수 밖에 없는 거예요.
마찬가지예요 여러분. 우리도 성도도 이 세상에서 그 말씀을 그냥 육신으로 설명해내는 삶을 살아요. 그게 말씀이 육신이 되는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 안에 들어가게 되면 여러분의 육신이 말씀을 설명해 내요.
마치 에스겔 24장으로 에스겔의 아내가 죽어요. 근데 에스겔의 아내가 어떤 아내냐면 에스겔이 가장 '기뻐하는 여자'라고 그래요. 근데 하나님이 왜 에스겔의 아내를 죽이냐면, 내가 기뻐해야 하는, 그리고 이스라엘이 기뻐하고 자랑하는 예루살렘과 이 성전이 너무 패역했기 때문에 요걸 다 멸망시키고 부숴버릴 거다.라는 것을 에스겔의 아내를, 에스겔이 가장 사랑하는 아내를 뺏아가는 것으로 미리 '예고'하시는 거예요.
아니 꼭 그러셔야 되냐구요, 하나님이. 꼭 그런 방법으로 해야 되냐고요. 그래놓곤 에스겔에게 뭐라 그러냐면 '너 사람들 앞에서 울지도 말고 그걸로 원망도 말어.'
아니, 그 사람은 뭐냐구요. 가만 있었는데 하나님이 찾아 오더니 엉뚱하게 사람들한테 욕이나 먹고 뺨이나 맞고 수염이나 뽑히는 이런 일을 시키더니 마누라 뺏아가, 벙어리 만들어, 그리고는 예수의 십자가가 뭔지 그 삶으로 그냥 설명해 내는 거예요.
그런데 에스겔이 자기의 가장 사랑하는 걸 뺏기고 울지도 못하는 그 상황이 사실은 하나님 것이었어요.
하나님이 가장 사랑하는 아들을 거기서 그렇게 예루살렘이 되어 죽어야 하는 우리를 위해. (그게 율법주의거든요.) 그 아들을 죽이고 하나님이 눈물을 참으신 거예요. 그걸그냥 삶을 통해 보여 주세요. 에스겔의 삶을 통해서.
그래갖구 구약에서는 너희들은 이 패역한 거, 이게 무너지는 거? 그런 걸로 울면 안돼! 왜! 이건 없어져서 마땅한 거니까!
그러고는 신약으로 가서는 어떻게 바뀌죠? 아내 있는 자는 아내 없는 것 같이 하라. 똑같이 나오죠. 그죠? 그리고 죽은 자들은 죽은 자들에게 장사지내게 하라. 라고 이야길 해요.
에스겔서와 똑같은 이야긴데 이게 어떻게 바뀌냐면 왜! 너희에게는 이미 완료된 하나님 나라가 있음으로.. 이렇게 바뀌는 거예요. 십자가가 그 앞에 딱 서 있는 거죠. 그 삶이 여러분의 삶에 그대로 드러나는 거예요. 똑같이.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소중하고 귀한 것들 하나하나 차압하고 뺏어 가시면서 그렇게 구원의길로 우리를 이끄시는 거예요.
어저께 제가 예전에 다니던 교회에서 같이 신앙생활했던 어떤 집사님한테 전화를 받았는데 서울대 치대를 한국에서 굉장히, 천재였어요. 천재. 수석으로 들어가서 뭐 수석으로 졸업했으니까..
근데 치대를 다니면서 음악을 또 얼마나 잘했는지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에 키보드디스트도 했어요. 서울대 치대 수석합격한 사람이요. 그러니까 제가 미국 에 와 봤더니그분이 그 온누리교회에서 키보드치고 있더라구요? 그러니 대학도 한참 후배에다가 음악한 후배고 그러니까 거들떠도 안 보더구만요? ㅎㅎㅎ 저런 전도사 나부랭이가 이러면서. ^^
어제 갑자기 전활 받아서 어떻게 된.. 이 분이 왜 나한테 전화했지? 그랬더니 인제 우리 교회 김영남집사님이 치과 의사잖아요? 같이 무슨 모임이 있나봐요? 그분이 예전에시디를 하나하나를 줬는데 그걸 듣고 이분이 '이건 모야' 이렇게 된거죠. 그리고 이 사람은 이거 내가 아는 후밴데? 이렇게 된거죠.
그리고는 몰_래 들었다는 거예요. 예? ㅎㅎㅎㅎ 손바닥에다가 물고기 그리면서 너두 들어? 나두 들어. 이러면서 다니는, 우리 서머나 인터넷 가족들처럼 ㅎㅎ 한국에 갔더니 그래 가갖구.. ㅎㅎ 뉴저지, 뉴욕 그분들처럼 뭐 한국에 장안중앙교회 라고 있대요. 거기도 말씀을 올바로 가르친다고 유명한 교회라는데? 갑자기 또 목사님이 헷가닥해가지구 딴소리 해갖구 그분들이 그 안에서 많이들 듣나봐요. 그러면서 이제 성경책에다가 물고기를 ㅎㅎ 요렇게 그린다고 그래요. 그러면 어떻게 되냐면은 아. 쟤도 듣는구나?
근데 이 분도 그런 거예요. 근데 갑자기 직장암이 걸렸대는 거예요. 여러분 직장암이 암 중에 가장 고통스러운 암이라는 거 아시죠. 인조 항문을 만들어야 되고 불쾌하고치욕스러워서 가장 암에 걸린 담에 우울증에 쉽게 걸린다는 게 직장암이라고 그래요. 아파요, 고통스럽다고.. 직장암이 딱 걸렸어요. 수술을 했대요. 그리고 이제 지금 키모(chemotheapy)받는데 자기는 얼마 못 살거 같다는 거죠.
근데, 목사님..
그니까 본인은 똑똑했죠? 재력있었죠? 거기다가 하고 싶은 음악 뭐 윤복희씨나 이런 사람을 보면 항상 그분 찾아서 같이 협연하고 막 이랬었으니까. 하고 싶은 거 다~ 할수 있었, 즐거움 다~ 누리며 살았어요.
근데 건강 하나가 딱 문제가 생기니까 모든 게 다 아무 것도 아닌 게 되는 거예요. 모든 게 다. 그리고 이제 나는 곧 간다 라는 이 생각이..그 백악관에 무슨 공무 수석인가뭘루 있었던, 강영우 박사 맹인, 한국인 맹인박사 있죠? 그분도 지금 췌장암으로 한 달밖에 못산다고 그러더라구? 갑자기! 췌장암 같은 건 한달이면 가나 봐요.
그렇게 되니까 예수의 십자가 이거 아니면 안 되겠다 라는 이 말을 내가 꼭! 해 주고 싶어서 전화를 했다는 거예요. 어저께.
목사님! 그거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거예요. 내가 여태까지 신앙생활 한 거 뭐 착한 일 한 거. 죽음이 눈 앞에 오니까 그것들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거예요. 기억에나지도 않구 내가 이제 어떡할 것인가라고 생각할 거 아니에요. 수술하러 들어갈 때도 생각했구 나오면서도 생각했구 지금 키모를 받으면서 고통스러운 과정을 통과하면서 지금 내가 생각하는 건 '예수님이 나 구원해 주지 않으면 큰일날 뻔 했구나' 이거 밖에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몇개월 전의 그 설교 시디를 전해준 그 분한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지금 목사님한테 내가 죽음을 앞두고 꼭 할 수 있는 말, 이거 하나, '나에게 십자가 예수 전해줘서 감사하다'는 이 말 전하고 가고 싶어서 전화했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힘이 있고 그리고 지금 내 삶에 죽음이 언제 닥치겠어~ 이런 막연한 때에는 그 예수가 그렇게 절박하게, 십자가가 그렇게 나에게 절박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을거예요.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여러분의 삶 속에서 하나하나 끊어내 가시면서 진짜 니꺼 중에 내가 기뻐받을 게 뭐가 있니? 한 번 내 놔 봐라 하는 이 질문을 말씀 속에서 던질때제가 드릴건 예수 밖에 없네요. 예수님 드리는 거예요. 내 안에 있는 예수.
그래서 아브라함,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모노게네스, 독생자, 예수를 드렸다라고 하는 거예요. 이삭을 드린 게 아니에요. 예수를 드렸다 그러는 거예요. 말이 되냐고 아브라함이 어떻게 하나님을 하나님께 드려요. 모노게네스 스스로 있는 잔데. 성도의 마지막 고백이 그건 거예요. 난 예수땜에 살았어요. 이게 예수 드리는 거예요. 예수님 아니면 안돼요. 이게 예수 드리는 거예요.
교회는 그 예수의 피로 범벅이 되는 곳이에요. 그래서 벧세메스로 가는 두 젖나는 소가 여호수아의 밭, 하겔다마, 피밭, 하나님이 예수님의 핏값으로 주고 산 그 교회에 와서 죽는 거예오.
예수가 죽고 그 예수가 죽음으로 내가 살았군요 하고 또 내가 죽고.
이게 교회예요.
여기를 무슨 친목계처럼 그렇게 만들어서 여기서 행복하려고 하지 마시고 여기에서 무슨 따뜻함이나 그런 거 챙길려고 하지 마세요.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과 성도가 화목한 곳이지 그냥 예수도 모르는 가라지들과 다같이 화합하여 하나가 되어 이 세상 사람들이 이렇게 원하는 그런 것들을 해내고 그런,그런 곳이 아니에요, 여러분.
예수를 믿으세요. 믿음을 주셔야 믿을 수 있지만 목사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거 밖에 없네요. 예수를 믿으세요.
하나님이 믿음을 주신 성도들만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있어요. 하나님은 여러분을 징계하고 두들겨 패서 버릇을 고쳐 예수와 비슷한 사람한 사람으로 만들어 내려고 이 땅에 오신 거 아니에요.
여러분, 강아지들 맨날 두들겨 패갖구 방안에서 오줌 못 누게 한다. 야 그래서 참 훌륭한 강아지네? 그렇다고 그 강아지가 사람 되는거 아니에요.
그 강아지들 한번 잘 보세요. 방안에서 오줌눌라 그러다 주인 들어오면은 깜짝 놀래갖구 그냥 소스라치듯 놀라며 밖으로 나가는 그 모습이 하나님과 백성의 모습이겠어요? 두들겨 패갖구 아 이제 고만 맞아야지.. 나 이제 고만할래..이래갖고 성숙해지는 성도들이 천국 가 갖고 하나님 목소리만 들으면 경끼 일으키면서 ㅎ 그렇게 사는 곳이천국이겠어요? 아 저 양반 또 나타났네^^ㅎㅎ 아이 씨... 내가 살고 싶은대로 막 살고 싶은대로 막 살고 싶은데 그냥 또 나타나갖구 또. 옛날에 저기 저 지구에 있을 때처럼 두들겨 패가지고 또. 아이 그런 곳이 천국이겠냐구요.
하나님이 창조의 말씀으로 창조해서 이제 더이상 그 어떤 성숙도 필요없는, 완전한 존재로 만들어 내는 곳이 천국이란 말이에요. 그 하나님을 신뢰하라니깐요? 그러기 위해선 육을 가진 우리가 우리 자신을 위해서 사는 이 인생이 얼마나 더럽고 추악하며 어두운 삶인지를 잘 경험하고 가세요.
그러자면 여러분이 많이 아프셔야 되고 많이 당황스러워야 되고 세상 사람들로부터 별다른 대접도 평가도 못 받는 그런 삶을 살게 될 거예요. 그러니까 하여튼 하나님이여러분이 그렇게 원치 않아도 그렇게 끌고 가실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영락교회 이명천 목사가 이제 한국으로 간다고 신문에 낫다고 어저께 머리 깎으러 갔더니 거기 있는 사람들이 어휴 목사님도 한국에 대단한 꿈이 있으셔서 그 분들처럼가는 거냐고. ㅎㅎ 아, 그런 취급을 받게 될 줄이야. ㅎㅎ. 아니 여기는.. 뭐 인터넷에 뭐 사람들이 많이 오고 어우. 서울 서머나교회 부흥회 하는데 몇백 명이 이렇게 오고 홍콩에서, 호주에서, 영국에서 또 지방 울산에서, 양산에서 제가 온대니까 격려해 주고 위로해 줄려고 사람들이 온 거지~ 서울에 사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 않아요. 거기다가 뭐 예배할 장소가 있어요~, 그렇다고 무슨 죄 망한 사람들만 와 갖구 ㅎㅎ 월세, 보증금이 있어요~. 그렇다고 뭐 우리 식구들이 가서 살 집이 있어요~. 아무 것도 없어요. 저는 그 분들, 웹? 찾는다는 몇만 명되는 교회로 그렇게 영전하여 꿈을 펼치러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벧세메스로 또 끌려가는 거예요. 그렇게요.
ㅎㅎ 어저께, 그 아는 분들은 알죠. 머리깎아 주는 집사님이 아유.. 목사님은 무슨 팔자가 그래요? ㅎㅎ 이제 쪼끔 ㅇㅇ하고 다시 봤더니 또 끌려가시네.. 근데 그게 맞아요. 맞는 거예요. 여러분.
아니 저도 그렇더라구요. 진짜 이제 풀타임. 미국에 와갖구 죽도록 고생하다가 풀타임 사역자 돼 갖구 담임목사되서 한 거 이제 칠년인데 또 다시 이제 맨 땅에 시멘트 바닥에 헤딩하러 또 지금 이제 나이 오십인데요. 거기가서 오십이면 제 친구들은 명예퇴직 해갖구 저기 지리산에 가서 농사지면서 노후를~ 은퇴한 삶을 즐기고 있는데~ 이제 또 뭘 시작해야 된다는, 가족들은 또 얼마나 불안하겠으며.
그러나 에스겔만 하겠어요? 예레미야만큼 하겠습니까? 사도바울만큼 하겠어요? 다 떠나구 너만 남았으니까 잠바 좀 갖다 줘라. 여기까진 아니잖아요, 아직. 죽도록 돌아다니면서 텐트 메이커로 복음 전했더니 저 새끼 이단이라구.. 응? 그랬더니 사도바울이 '아니다~ 거기다가 율법,행위를 강조하는 건 다른 복음이다.' 편지 썼더니 사람들 몇십 명, 사십 명 보내서 죽여버릴라고 막. 암살단을 조직해서 보내고 교회가 그런 거예요. 교회가.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이 그런 게 아니라~ 하나님 섬기겠다는, 구원의 확신있었던 그 사람들이 자기들의 확신을 흔들어 버리는. 나는 여태까지 잘 살았어요, 교회 열심히 다녔고 십일조 열심히 했다고 집팔아서 헌금까지 했는데! 저 새끼가 그거 아니라니까 죽일려고 사십 명을 암살단을 조직해서 보낸 거란 말이에요. 그래놓구? 내가 쟤가 죽기까지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겠다 라는, 그런 맹세까지 했다니까요? 그러니 그렇게 쫓겨 다니다가 결국 마지막엔 그것두 감옥에서.
그때 당시 고대 시대의 감옥은 지금처럼 뭐 이렇게 훌륭한 시설이 있는 곳이 아니지 않아요. 만조 때는 물이 여기까지 차구 빠지면은 진흙이고 그 안에서 소변,대소변 다해결해야 되고. 또 물 들어오면 그 몸을 일으키고 안 죽으려고 까치발 들고 서 있어야 되고 물 빠지면 또 진흙탕에서 널브러져 자야되고. 하나님이 마지막까지 사도바울을거기다가 쳐 넣고.
사도요한, 밧모섬에 유배보내고. 결국 아무도 없는 고립무원의 지경에서 하나님만 바라보게 하는 거예요. 그걸 구원이라 그래요.
다른 좋은 이야기를 해주는 곳을 원하시면 여러분도 그곳으로 가세요. 저는 아_무리 연구하고 생각해 보고 고민하고 공부를 해봐도 내가 할 얘기는 그 십자가 밖에는, 난할 얘기가 없어요. 왜냐면 내가 살아야 돼요.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가 살 수 있는 길은 예수 믿는 길 밖에 없어요. 그거 말고 다른 거 하나님이 나에게 요만큼이라도 요구하시면 저는 그것 때문에 백 프로 지옥가요. 그래서 나는 예수 믿는 길밖에 없어요. 무슨 수모를 당하고 더이상 어떤 배신을 당하든 난 관계 없어요ㅡ.
저는 그냥 예수만 믿을 거고 그 예수 믿으라고 전할 거예요. 저도 여러분들이 듣기 좋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뭐 이딴거 갖고 여러분의 이 지적호기심을 충족시켜주는 그 성경공부 해 드릴수 있어요. 왜냐면 그게 제 전공이니까. 우리 청년 아이들 우리 보름이나 여기 다 그걸로 처음에 시작했거든요? 고건 말짱 꽝이에요. 그런 거 말구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돼요.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예수만! 발견해 내시고 그 예수만 붙드시면 되는 거예요.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은혜를 감사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저희들에게 하나님이 가장 이뻐하시고 사랑하시는 예수를 주셨습니다. 그것도 먹이로, 짐승의 구유에 던지셨습니다. 그 예수가 냄새나는 우리의 마음에오셔서 그 냄새나는 마음을 깨끗이 정화하라고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 냄새나는 너희들의 마음, 이 생각, 이 죄 때문에 너희들에게 먹이로 왔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복음입니다. 근데 하나님, 우리는 그 예수의 십자가를 모독하는 것을 신앙생활이라고 착각하며 살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 하나님의 백성들의 눈과 귀를 활짝 열어주셔서 그 예수의 은혜만이 찬송되고 하나님의 영광만이 찬송되어지는 그런 하나님의 교회, 서머나 교회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