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목사/히브리서

히브리서 51강

은바리라이프 2016. 1. 13. 21:25

히브리서 51강

 

 

<말씀 ; 히브리서 11:23>

히브리서 11:23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아니하였으며

 

<기도>

**** 이 아침에도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꼭 들려주어야만 하는 그 하늘의 계시만이 당신의 백성들의 마음속에 새겨지게 하옵소서.

 

어제 우리는 요셉의 이야기를 히브리서에 기록된 요셉의 이야기를 보았습니다. 요셉이 임종 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을 떠날 것을 말하고 자기 해골을 위하여 염하였다 이렇게 이야기한 다 말이죠 요셉이 죽은 다음에도 거의 400년 ,360년 가까이 이스라엘은 그냥 애굽에서 살아버렸습니다. 근데 나중에 하나님께서 보다 못해 핍박을 던지셔서 쫓아내는 거죠. 근데 성경을 보면 요셉이 애굽에 들어가갖고 또 거기에서 총리가 되고 한 것들을 이 세상 속에서 우리가 열심히 인내하고 신앙생활을 잘하면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총리가 되는 그런, 거기에 버금가는 복을 주신다. 이렇게들 얘기하죠. 그래서 많은 유명한 목사님들이나 신학자들이 요셉을 꿈꾸는 자, 비전을 품은 자로 이해를 하고 설명을 합니다. “꿈꾸는 자가 오는 도다” 이렇게.. 책들도 베스트셀러가 되고 그랬는데.. 요셉이 스스로 미래에 대해서 꿈을 꾸어서 총리가 되고 그런 거 아니죠?! 꿈을 자기가 꾸고 싶다고 마음대로 만들어서 꾸는 사람이 있습니까? 꿈은 하나님이 꾸게 해주는 거라고요. 우리의 밤에 꾸는 그런 개꿈들 말구요. 우리의 삶에서 빚어내시는..그런 모든 것들은 다 하나님의 꿈이요 하나님의 뜻이라고요. 하나님의 뜻이 우리에게 그려지는 것인데. 그걸 인제 요셉의 꿈으로 그렇게 그려낸 거죠. 그런데 요셉이 나중에 가면 형들에게 뭐라 그러냐면 내가 애굽에 들어온 건 그리고 여기서 총리가 된 건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게 하기위해 하나님께서 보내신 거다 그래요. 요셉이 자기가 꿈을 꾸고 비젼을 갖고 해서 들어온 게 아니라 하나님이 그렇게 시켰다, 그렇게 만들었다는 거예요.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서라는 말은 단순히 굶어 죽을 위기를 모면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에요. 그걸 거면은 아예 기근을 안주면 되는 건데.. 그죠. 근데 기근을 주어서 뭔가를 가르치려고 한거죠. 생명이라는 건..그 형제들이 어떤 생명을 받았어요. 어떤 생명을 보존을 받았습니까?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의 조상이 되는 건데 그들이.. 이스라엘이 어떻게 하여 살아나는가 볼 수 있는 거죠. 아버지 아들을 잃은, 그 형제들을 구원하기 위해 목숨을 잃게 되는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마음을 나머지들이 알게 되는 거예요.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마음.. 가장 사랑했던 아들이었죠. 가장 사랑했던 아들을 잃은 아버지가 그 세월을 얼마나 힘들고 어렵게 살았겠습니까! 나머지 아들들이 그것 아들들이 요셉을 통하여 그 아버지의 마음을 아는 거예요 그리고 그렇게 우리가 죽인 거예요 그건.. 우리가 죽인 내 형제로 말미암아 내가 살아난다는 복음을 알게 되는 게 생명이 보존되는 거죠.  그래서 그걸 믿음이 그렇게 했다라는 거예요. 요셉의 삶에 믿음이라는 것이 들어오더니 요셉을 그렇게 자기 맘대로 막 사용하더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잘 생각해 보세요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고 뭐가 되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요셉은 믿음에게 자기 인생을 뺏긴 거죠. 하나님이 뭔가를 그려 내기 위해 요셉의 인생 자체를 하나님이 그려가고 계시는 거란 말입니다.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된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게 요셉에게 행복이었다면 여러분, 부모형제에게 팔려서 저기 다른 나라 영국이나 독일에 가서 거기서 수상 시켜준다 하면은 하겠어요?! 부모형제랑은 원수가 되어버렸고 심지어 자기가 믿었던 형들이 나를 죽이려고 했다라는 그 상처를 안고 무슨 수상이나 국무총리 되는 게 그렇게 행복하겠습니까? 우리는 자꾸 그런걸 복으로 여겨요. 그리고 수상이나 이런게 어떤 모임에 리더나 지도자가 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게 쉬운 게 아녜요. 어렵다니까요. 그렇다고 해서 밥을 하루에 다섯 끼를 먹어요! 여섯 끼를 먹어요. 오히려 바빠서 밥도 못 먹는 게 일국의 수상, 국무총리, 왕들의 삶이라고요. 그래서 조선 왕조 500년 그 왕들의 평균 수명이 30살도 안 된게. 그 사람들이 모든지 할 수 있어서 밤마다 부어라 마셔라 열심히 놀아서 그렇게 일찍 죽은 게 아니라 스트레스 받아서 밤마다 술이 아니면 살수가 없어서 그래서 일찍 죽은 거예요. 근데 우리는 그런 것들이 우리의 로망이잖아요. 거기에 올라가면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 같고 그렇지 않아요. 그러면 뭐 하러 그룹 회장들이 자기 직무실에서 목을 매달고 사무실에서 뛰어 내려서 죽고 그럽니까! 돈이면 뭐든지 다할 수 있다면 그게 진짜 인간들의 행복과 평안을 갖다 줄 수 있다면 그들이 왜 그 어마어마한 재산을 놓고 ..그리고 그 돈은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항상 명예와 직결이 되기 때문에 ..뭐 개차반처럼 살았더라도 갑자기 돈 벌면 그냥.. 돈과 인기.. 세상 왕처럼 대하죠.

 

저는 ㅇㅇㅇ이라는 그 친구가 원래 중이었거든요. 옛날에,,중도 사이비 중이지 뭐. 근데 오늘날 예수를 믿는다. 그래서 참 내가 이게 웬일이냐 그랬더니 .완전 거지처럼 살 때는 예수가 보이는 거예요. 필요 했던 거겠죠. 근데 어느 날 갑자기 인기가 올라가갖고 거의 무슨 가신이라 그러던가. 노래의 신이라고. 몇 백억을 벌고.. 근데 그 옆에 친구가 하나도 없었거든요. 그렇게 가난하게 살 땐.. 왜냐면 성질도 더럽고 옆에 있어 봐야 욕이나 얻어먹고 매나 맞고 그러니까 친구도 없고 거기다가 가까이 있어봐야 밥이나 사줘야 되고 그러니까.. 근데 그렇게 돈을 좀 벌고 인기가 올라가니까 세상에 어디에 사라졌던 이 친구들이 다 모여 갖고. 그 옆에 바글 바글 모여 있네. 제가 그걸 이렇게 보면서 예전에 힘들 땐 가끔 연락도 하더니 요즘 연락도 없고 와도 전화도 안하고. 그게 과연 걔한테 복이 됐을까 그렇게 아내가 사랑스럽고 암이 4개씩 걸리고 부인 때문에 위대한 결단을 내렸다고 하는데 그런데 그 부인을 놓고 집을 나가고 그리고 미국을 돌아다니면서 방송을 찍고 그게 가능할까요. 진짜 이 여자가 나 때문에 암이 걸려서 힘드는데 .. 그러면 오히려 돈이나 그런 거보다 곁에서 그동안 못 해준 거 사랑해주고 위로해주고. 그게..원래 인지상정 아니에요.

 

그러니까 그런 어떤 세상의 것들을 하나님께서 믿음이 좋은 성도들에게 축복으로 준다고 하는데 엄밀히 말하면 마귀가 주는 저주.. 그 친구가 옛날처럼 아무것도 할 일이 없어서 집에서 성경이나 뒤져서 읽으면서 하는 이런 삶을 살 수가 있을 것 같으세요? 이제..? 못삽니다. 그리고 그가 믿는 하나님은 이제 이렇게 열심히 참고 인내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말씀을 붙들었더니 하나님이 큰 복을 주셨다고.. 요새 말끝마다 하나님이 도우셔서..하늘이 도우셔서..이런 말들을 쓰는데 보면 그에게는 이제 하나님이 그렇게 고정화 되어 버린 거죠. 그러면 이제 또 다른 어떤 어려움이나 힘든 일이 닥치게 되면 또 자기의 이성과 상식으로 하나님을 재단하고 판단하고 자기 맘대로 정의하겠죠. 아..내가 이래서 그런 건가 저래서 그런 건가. 아니요, 하나님은 십자가 예수로만 이해를 할 수 있어요. 우리가... 이 세상의 어떤 현상이나 눈에 보이는 어떤 그런 걸로 하나님을 함부로 평가하거나 어떻게 공식화하여 규정지으면 안 돼요.

 

오죽하면 요셉이 여기서는 빨리 나가야 되는 거야 죽으면서까지 ..아니 내가 여기에서 오래오래 너희들이 잘살 수 있도록  어떤 법이나 장치를 그럴 수 있는 위치였으니까 만들어놓고 갈 테니까 자자손손 여기서 잘 살다가 애굽을 접수해 버려라. 이럴 수도 있었던 거라고요. 그가 본인의 입으로 자기가 바로의 아비라 그랬다고요 바로까지도 자기가 조정할 수 있는 위치였어요. 그런데 형제들에게 여기서 나가..여기서 나가..

 

그리고는 모세 부모의 이야기로 넘어가는데 모세가 낳을 때 부모가 아름다운 애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겼다. 이게 무슨 믿음이 꼭 있어야지만 있을 수 있는 일이예요?  부모가 자식 사랑해서 자식 안 죽이려고 하는 게 당연한 거지. 이게 믿음이 가입했을 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말은 다른 말로 당시의 모세의 부모 이외에 다른 부모는 애굽왕 바로의 명령이 무서워서 남자애를 낳는 데로 족족 죽였다는 얘기예요. 근데 믿음이 가입한 모세만 살렸다 그러니까 기록이 된 거란 말이에요. 도대체 그게 무슨 이야기 길래 여기에 히브리서에 기록이 되어있냐 말입니다.. 그리고 애가 낳자마자 준수해요? 아름답습니까? 이거 보면 부모가 만약에 아름답지 않았으면 어떻게 할 거예요. 죽여요? 애는 낳으면 다 원숭이 같아요. 낳아봐서 아시겠지만.. 날 때부터 배용준인 애가 어디 있어요. 커서 준수한 애들은 날 때 보통 다 찌그러지고 우굴 쭈굴하고 그래요. 근데 낳았을 때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봤다  이런 말이 성경에 왜 들어가 있냐 말 이예요.

 

지금 22절에서 요셉의 이야기를 하면서  아버지의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마음을 아는 것이 생명이다를 이야기하는 히브리서 기자가 그 아버지가 이 세상의 모세는 중보자인 예수의 모형으로 온 거죠? 그래서 그가 첫째 돌판 둘째 돌판에서 중보자로 서고 광야에서 죽는 거란 말이에요. 그리고는 이스라엘이 새로운 세대가 은혜로 만들어진 새로운 세대가 거저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거란 말입니다. 모세라는 존재 자체가 아버지가 가장 사랑하는 아름다운 아들 예수를 모형하는 거예요. 그 아버지가 그 준수하고 아름다운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는 것을 주지시키는 거란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 맏아들의 밑에 쭉 따라 올라오는 하나님의 다른 아들들, 그 아들들을 이 세상의 그 어떤 왕, 그 어떤 것들이 참소를 하고 죽이려고 해도 그 부모는 그 아들들의 준수함 예수로 옷 입었기 때문에 그걸 보고 지켜낸다는 걸 보여주는 거예요. 모세의 삶을 통해서..

 

여러분, 우리가 모성애를 칭찬하고 칭송하고 하는데 731부대에서 아기와 엄마의 모성애를 시험하기 위해서 애기를 낳은 엄마를 지글 지글 끓는 방에다가 넣어서 실험을 해봤다 그러죠. 그래서 뜨끈뜨끈하게 온돌을 만들 정도가 아니라 불타서 죽을 만큼 열을 가하는 거예요 방에..처음엔 아기를 꼭 안고 있던 엄마들이 진짜 죽음에 직면하게 되니까 애기를 다 밟고 올라갔다는 거죠. 100%.. 죽음은 그렇게 무서운 거예요. 고통이라는 건.. 여러분, 인간들의 생존 본능이라는 건 모성애를 뛰어넘습니다. 근데 이 아이들을 살려 두면은 내가 죽을지 모르는데 아이를 살려둔, 그건 믿음만이 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근데 그게 무슨 이야기냐면 단순히 애기를 살리는 거 그게 아니라 오늘날 이 모세가 지금 모형 하는 게 예수였잖아요.

이게 오늘날 독자인 우리가 읽을 때 어떻게 읽어야 되겠어요. 중보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기 위해 내가 목숨을 거는 자로 사는 게 성도라는 거예요. 내 목숨이 쇠하여지고 망하여지고 예수가 살아나고 드러나는, 그분의 은혜와 십자가가 살아나고 드러나는 이 삶을 사는 게 성도의 삶이다를 보여주는 거예요.

그래서 믿음을 받은 성도의 그 대열에 모세의 부모가 들어가 있는 거예요 이게 성도의 이야기잖아요 다 이게.. 그죠 그러니 여러분은 그 지점으로 끌려 내려간다는 뜻이에요 예수를 위하여 여러분이 희생당하는 거예요 예수를 드러내기 위해 여러분이 죄인으로 폭로되고 그런 삶을 살게 되는 거라구요.

 

잘 한번 생각해보세요. 여러분, 오늘날 인기있는 설교, 인기있는 교회 이런데 공통점이 뭐예요? 교인들의 기를 살려주는 거죠. 어떤 방법으로든. 그리고 그들의 열심만큼 그들에게 하늘에서의 상이든 이 세상에서의 축복이든 반대의 급부가 반드시 돌아온다라고 그들의 행위를 독려하는 곳은 다 커져요. 입만 열면 말도 안 되는 그런 얘기 하는 사람이 아니면 그렇게 가르치면 뭐 대단하게 커지진 않아도 맹종하는 자들이 생기게 된다니까요. 그래서 그 사람이 반말 짓거리하고 등짝을 두들겨 패고 그래도 오히려 행복해하죠. 주의 종님께서, 나에게  이렇게 관심을 가져주시고 나에게 욕지거리까지 이렇게 친밀하고, 날 대해주다니..이렇게

 

그러니까 고린도후서에서 바울이 그러죠. 어떻게 나는 그렇게 두들겨 패서 쫓아냈으면서 가짜들이 와서 너희들의 뺨을 때리고 너희들의 것을 노략질을 하고 그런데도 너희들은 그렇게 잘 참니? 그러는 거예요.

 

사도바울이 그러죠. 고린도 후서 2장에서..야 어떻게 걔네들은 와서 뺨을 때리고 니들 것을 노략질을 하고 니들을 죽이려고 하는데도. 모든 인간들은 이걸 피학증 ..마조키스트적인 성향들이 있어갖고.막 패주면 좋아하는 거예요. 그게 자기하고 굉장히 친밀한 관계임을 증명하는 이런 거처럼 생각해갖고..

 

절대로 아니에요, 여러분. 여러분의 행위라든지 뭐 여러분의 업적이나 공로 등을 근거로 하여 여러분에게 반대급부를 이야기하는 모든 것은 거짓이에요.

 

하나님은 여러분의 인생을 가치 있게 성숙하게 만들어 내어서 하나님을 기쁘게 해봐라 라고 우리에게 여기다가 경연장을 만들어 주신 게 아니라고요. 하나님이 당신의 뜻을 우리가 살면서 그려내시면서 당신의 믿음을 선물 받은 그 자들에게 하늘의 창조의 원리, 하나님 나라의 현실을 이해시키고 설명하는 게 역사라고요.

 

근데 우리는 자기의 존재가 부정되고 부인되는 그것만큼은 참을 수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렇게 그들이 행한 행위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폄하하는 이야기 그런 뉘앙스를 풍기면은 난리들을 치는 거죠. 도대체 우리가 얼마나 고생하면서 살고 있는데 네가 감히 우리의 그 삶을 우리의 힘든 삶을 그런 식으로 평가하냐.. 그런단 말예요.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자꾸 우리의 행위를 돌아보면서 그런 것들이 지향성으로 나타나지만 그것을 갖고 자꾸 자기의 자격 운운하고 거기서 불안해하고 두려워하고 하는 자체가 하나님 앞에서 그 하나님을 모독하는 거예요.

 

 

갓난 애기가 아버지 앞에서 오줌 쌌다고 가방 싸들고 엉금엉금 기어서 가출하면 아버지가 보고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이 자식 참 그래도 양심은 있어갖고 지가 잘못했다고 저렇게 가방 싸서 집을 나가네.. 칭찬해줘요? 애기는 그러고도 아빠하고 달려와야 아들인거에요 자식인거예요 그게.. 자식이 쪼금 뭐 잘못했다고 방구석에 들어가서 밥도 안 먹고 문도 안 열어주고 저 혼자 금식하고 거기서 그러고 있으면 부모가 대견스러워 하냐고요 그것을.. 그래도 부모는 어떻게 해서든지 먹여 보려고 문 잠그고 있는 애 방 앞에다가 도시락 싸놓고 가고 그런 게 부모 아닙니까!

 

 도대체 우리 하나님을 어떻게 보길래 ..내가 저질른거 내가 책임진다. 이러고 있냐고요. 우리는 그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니까여 아예. 아버지를 너무 오해하고 있는 거예요. 곡해하고 있는 거라니까요.

여러분, 히브리서 앞에 2장으로 한번 가보세요

 

(히2:14-15)

14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15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예수께서 이 땅에 인간으로 오셔서 죽으시고 십자가를 지신 이유가 뭐냐면 사망으로 사람들을 자꾸 두렵게 하고 무섭게 하는..이게 마귀의 세력이죠. 그죠. 근데 우리가 왜 자꾸 내 꼴을 보고 불안해하고 이래도 되나 왜 그러죠! 사망이 무서운 거죠? 아직도..

 

근데 그 사망은 하나님이 예수 안에서 죽여 버렸다 그런다고요. 그래서 그 사망에서 풀어졌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이미 예수 안에서 십자가에서 죽었기 때문에 그 어떤 사망도 여러분을 두렵게 해서는 안 되는 거예요. 그게 믿어진다면.. 그게 예수 믿는 거예요. 그게 복음이라니까요 “Good News”

 

사망을 갖고 마귀가 와서.. 죄가 와서  자꾸 너 이러면 죽어 이렇게 하면 죽어 계속 나를 협박하는데 그 사망을 하나님이 이미 없이 하셨다 그래요. 성도에게 있어서..그게 십자가란 말이에요 그런데 그걸 믿는 게 성도라며.. 근데 뭐가 두렵냐고요 도대체. 그리고 내 존재가 없으면 나라는 존재가 없으면 그 나라는 존재가 하는 행위가 도대체 나의 묵시 속의 삶에 무슨 영향을 주냐고요.

 

여러분 “나" 라는 그 자체가 하나님께서 우리의 형상.."우리" 는 말을 자주 쓰시죠. 사도 바울도 "우리". "우리" 는 단어 자체 안에 그게 하나님과 연합의 언어거든요 “우리” 우리라는 것 안에 너라는 대상이 객체가 존재 할 수 없어요. 그 개념 안에..우리라는 건 다 .나..나..나...모임이 우리라고요. 그 우리 안에 너라는 객체가 있으면 안 돼요. 그러면 우리 아니에요. 그러면 이 나가 모여서 우리라는 하나님과의 연합 속으로 들어가려면 하나님이 너라고 얘기할 수 있는 객체가 죽어야 우리 안으로 들어 갈수 있는 거예요. 그 너가 육이라고요. 우리 육.. 그럼 그걸 죽여내야 하나님이 예수라는 하나님이잖아요. 그래서 하나님이어야 되는 거예요. 예수는..예수 안으로 들어가서 다 나..하나님..성자하나님..성령하나님..예수..다 나..나..나...나잖아요. 그걸 연합이라 그런다고요. 그분들은 각자 떨어져서 나를 주장하지 않아요. 그래서 너가 없다고요. 삼위일체라는 그 자체가..그러면 나라는 지금 이 역사 속에 선악과를 물고 하나님이 봤을 때 너라는 대상 객체로 이 땅에 내려온 사람이 해야 할 유일한건 내가 죽고 내안에 사는 예수 안으로 쑥 들어가는 거 밖에 없다니까요.

 

기독교가 얼마나 유치한 수준에서 지금 머물러 있냐고요. 그냥 신앙생활에서 복 받고 잘 먹고 잘살고 재수 좋으면 천국가고 이런 수준이에요. 죄가 뭔지 그게 무섭지도 않고 천국이 왜 가야 되는 것인지.. 이런 이해도 없는 거예요. 여러분, 마귀라는 것 이런 것들을 그냥 이게 불교나 아니면  다른 기독교이외에 다른 종교들의 어떤 조로아스터교나 이런 거에 영향을 받아서.. 성경은 그렇게 쓰여 있지 않은데 우리가 이해를, 그런 안경을 보고 성경을 이해해요. 그래서 마귀도 머리에 뿔 달려 갖고 언제든지 호시탐탐 우리를 막 죽일려고 달려드는 어떤..그런, 입에 케찹 질질 흘리면서..그런 식의 조로아스터교적인 마귀론 귀신론 갖고 있단 말이예요. 여러분, 귀신이 죽은 시체로 들어가는 거 보셨어요? 강시영화 그런 거 떠올리고 그런 얘기 하지 마시고. 귀신이 시체 안에 들어가겠습니까? 걔두 바쁜데.^^. 시체 안에 들어가서 뭐 하겠느냐고요. 귀신이.. 귀신은 죽은 자에게 못 들어가요. 안 들어가요. 그래서 하나님이 여러분을 죽여 버리는 거예요. 귀신은 살아있다고 펄떡 뛰는 놈들한테 들어가서 지 의도대로 움직여내는 거란 말이 예요 그게 마귀란 말이에요.

 

 

 마귀라는 그 자체가 생각해보세요? 도대체 걔가 하나님을 상대하고 응전을 하기위해 존재하는 존재라면 왜 하나님의 어전 회의 때마다 거기서 고개 숙이고 요러고 앉아 있냐고요. 마귀가..욥기에도 나오고 .스가랴서에서도 나오고..마귀가 하나님의 어전 회의 때마다 요렇게 들어가 있대니까요.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내려가서 움직이잖아요. 그럼 마귀라는 것 자체가 뭐겠냐고요. 하나님이 한시적으로 당신의 백성들이 이 역사 속에서 뭔가. 하나님 나라에는 마귀 없어요. 그럼 역사 속에서 뭔가 성도들에게 교훈하고 가르치기 위해 하나님이 한시적으로 사용하는 어떤 것이란 말이에요, 그거는요. 근데 그게 뭐냐면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하는 장면이 나오죠. 산상수훈 바로 전에..마귀가 시험한다구요. 뭐라고..시험해요 “돌로 떡이 되게 해라” 그러니까 복음을 말씀으로 곡해 시켜 내는 거예요. 이게 마귀란 말이에요. 율법으로.. 인간의 가치를 챙기는 어떤 그런 것으로 이 말씀을 곡해시켜 내는 거예요.

 

예수님은 산돌이에요. 모퉁이돌이죠. 돌이 생명의 떡 요한복음 6장. 돌이 떡이 되어 먹혀야 사는 거 맞아요! 맞는 이야기인데 마귀는 이것을 인간 중심으로 다시 이해를 시켜 버린다니까요? 돌이 떡이 되야..이게 십자가란 말이에요. 원래 맞는 복음이란 말이에요. 말씀이라니까요.  이게..

 

근데 마귀는 이것을 인간의 유익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어떤 것으로 곡해 시켜버리는 거예요. 그걸 예수님이 부셔버리는 거예요. 천하 만민을 내가 다 줄 테니까 절만 해라.  실지로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죽는 모습이 이 마귀에게 지는 모습이잖아요. 그러나 그게 지는 게 아니란 말이에요. 예수님은 천하만국을 우리에게 선물해주기 위해 그렇게 십자가진 게 아니라니까요. 하나님 나라를 선물해주기 위해서라고요.

 

근데 마귀는 거짓 선지자 적그리스도 이렇게 자꾸 요한계시록에서도 마귀를 그렇게 설명하는 게.. 하나님의 백성 아닌 자들은 상관도 없고 예배당 안에서 그걸 인본주의나 율법주의로 오도하여 설명하는 거 그게 마귀예요.

 

그러니까 대부분의 마귀는 목사들에게 들어가 있다고 보시면 되는 거예요. 말씀을 풀어서 가르치고 설명하고 하는 그런 이들이 마귀의 도구로 가장 훌륭하게 쓰이는 게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그들의 모습이 광명한 천사의 모습들이에요. 잘 들으셔야 돼요. 건강한 교회, 건전한 신앙생활, 이런 걸 이야기 한다고 여러분이 개혁교회니 개혁주의니 그렇게 먹힐 수 있어요. 오히려 거기에 더 무섭고 교묘하고 간사한 마귀의 궤계가 숨어 있을 수 있어요. 십자가로 그걸 이해하지 못하면 거기에도 속을 수 있어요. 물론 건강하고 좋은 일이죠 그런 것들이.. 그런데 그걸로 말미암아 마귀는 인간을 얼마든지 죽일 수 있어요. 여러분 조심하셔야 되는 거예요.

 

성도는 이 세상에서 그냥 사라지는 거예요. 죽는 거예요. 점점점점 그런 것들이 이제 나에게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렇게 이해가 되어지면 예수를 흥하게 하기 위해 내가 내 목숨을 초개처럼 여기는 쪽으로 끌려가는 거예요. 이게 모세 부모의 믿음이었어요.

 

라합같은 여자 자기가 속해야 할 나라, 그 나라가 믿음으로 보이니까 자기가 속한 나라를 죽음을 무릅쓰고 팔아 버린 거예요. 그게 나거든요 내가 속한 나라가 나거든요 나..나. 국가의 형성 과정과 개인의 인격형성 과정이 똑같아요. 정확하게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예요. 믿음의 선지자들은 다 그 길을 가는 거예요 그냥 그렇게 점 점 점 쇠하여지고 인기도 더 없어지는 것 같고 그렇게 해서 사라지는 게 맞아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또 사역을 하시기 위해 전면에 내세워서 또 다른 방법으로 쓰실 수야 있겠지만 그것 자체가 그 사람의 명예나 보람이나 이런 게 되지 않아요. 힘들다니까요. 고통스럽습니다. 여러분이 그 길을 똑같이 가셔야 돼요.

 

에스겔서 18장에 보면 세 사람이 나오는데.. 한 할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고 너무 너무 거룩하게 하나님만을 위해서 산 사람, 그 밑에 개차반처럼 산 사람, 또 그 밑에 아주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고 산 사람. 그러면서 하나님이 물어봐요. 이 중에 누가 살겠냐? 당연히 가운데 있는 놈이 죽죠. 왜냐면 그 위에서 이렇게 살면 죽고 이렇게 살면 산다고 이야기 해놓고 세 사람을 예를 들거든요. 당연히 죽어요! 왜. 전제가 뭐냐면 아비가 신포도 먹었다고 아들이 절대로 이가 시리지 않는 게 맞는 거다. 근데 이들은 이스라엘이 지금 어떻게 생각했냐면 우리가 이렇게 바벨론에게 공격당하고 하는 것이 조상들이 잘못해서 그런 거라고 하나님의 공평하심을 갖고 막 난리를 피우고 있었단 말이에요. 그 때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 그러는 거예요 그래 공평이 뭔지 알려줄게. 할아버지 아들 손자 쭉 해놓고 뭐가 공평이냐 얘가 죽어야 되지? 그 가운데 사람 죽어야 돼요. 그게 이스라엘이란 말이에요. 그런데 이게 공평인데 죽어야 되는데 나를 낳으신 교회를 낳은 예수, 위의 할아버지 그리고 교회가 낳는 예수, 이것을 바울은 내 안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라고 표현하는 거예요. 그러면 나는 안팎으로 예수로 이렇게 포위당하는 거예요. 나는 공평으로 하면 난 죽어야 되요 그런데 내가 신 포도를 먹었단 말이예요 지금 근데 내 이가 시리는게 아니라 나를 낳은 예수. 내가 낳는 예수의 이가 시리는게 십자가다를 설명하는 거예요. 공평하기로 하면 다 죽어야 되는데 너희들이 먹은 신포도. 그것 때문에 내 아들의 이가 시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들이 사는 거야  그 이야기 하는 거예요.

 

 그래서 예레미야 31장에 가면 에스겔 18장의 이야기를 고대로 따다가 아비, 아들의 신포도 이야기 이가 시린 이야기를 따다가 딱 적어놓고 밑에다가 새 언약을 쭉 설명하는 거예요. 새 언약을..

 

그러니까 새 언약을 모르고 어설피 예수가 떡이고 예수가 십자가고 이거는 마귀도 아는 거예요. 여러분, 디아블로..마귀라는 단어가 돌로 떡을 만들어 먹어라 이거 한 마귀라는 단어가 어디에서 똑같이 쓰이냐면 예수님의 마지막 성만찬 때 그 때 내가 찍어주는 놈 마귀다 그러죠. 똑같은 단어예요. 그런 그 때 유다가 뭘 했냐고요. 떡까지 받아먹었다니까요? 떡을 먹었는데 어느 지점 앞에서 나가냐면 잔을 주시기 전에 나간다구요. 그럼 마귀는 말씀과 예수.. 아무 상관없는 게 아니라 예수님이 잔을 주면서 뭐라고 그러냐면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다 그러죠. 새 언약 앞에서 어설프게 성경 갖고 십자가니 뭐니 하는 그런 놈이 마귀인 거예요.

 

여러분, 마귀는 절 같은데 이런데 안 가 있다니까요, 거기 왜 가요? 마귀가. 절에 뭐한다고 거기.. 그리고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사용하는 마귀는 그러한 종류의 눈알 부라리고 무슨 망나니들이 드는 큰 칼 옆에 차고 이런 식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흐리는 모든 게 다.. 마귀예요. 그게 내 안에 존재하고 그것들을 세력화하여 형상화시킨 게 사단이라는 존재이고 그걸 하나님이 사용하는 거예요. 지금..

 

아마겟돈 전쟁이니 뭐 무깃도 전쟁이니 이러니까.. 나중에 마귀와 우리가 무슨 벤허에 나오는 무슨 결전을 치를 것이다라고..이렇게 소설들을 써서 ..그런 얘기가 아니란 말이에요. 내 안에 있는 마귀, 내 안에서 일차적으로 성경의 모든 전투가 일어나는 거예요. 그리고  예수는 철창을 갖고 들어오셔서 나의 육을 죽여내시는 거예요. 그리고는 너희들은 내 은혜로만 사는 거고 은혜로만 살아갈 수 있다. 가르쳐주시는 거예요. 우리한테.. 여러분의 인생의 목적은 그거 이외에 아무것도 없어요.

 

죄는 암 같은 거예요. 암은 숙주가 살아 있을 때만 힘을 발휘하죠. 이 숙주가 죽으면 어떻게 돼요. 암도 같이 죽어요. 그래서 죄를 죽여내기 위해선 여러분의 육을 하나님이  반드시 죽여야 하는 거예요. 그게 이미 십자가에서 일어난 거고 그걸 역사 속에서 경험하는 거예요. 반드시 여러분은 여러분의 죄를 직시하게 되어 있어요. 그리고 체감하게 되어 있어요. 이게 어떻게 죽어야 되지 이런 고민을 하게 된다니까요. 그런데 하나님이 죽여 주셨다니까 그 속에서 힘들고 어렵지만 내 본래의 모습을 보는 게 얼마나 힘들어요. 거기에서 복음으로 말미암아 찬송하는 거예요. 그걸 기독교라 그래요 다른 거 없어요.

 

엘에이 개혁교회라는게 모여 갖고 웨스트민스터 출신들이 모여서 "열린 말씀 컨퍼런스' 하면서 어떻게 하면 돈을 똥처럼 볼 수 있는 삶을 살까 어떻게 하면 기독교인다운 삶을 살까 이런걸 갖다가 토론도 하고 강의도 하고 하는데 제가 보기에는 다 쇼하는 거에요.

 

 여러분은 죽을 때까지 돈을 돌처럼 못 봐요. 벌 가망성이 없어서 포기한 걸 내가 성숙했다 착각하지 마세요.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니까 포기한 거를 나는 황금보기를 돌같이 한다. 그렇게 .아주 위장을 해갖고 말이죠. 가능성이 조금만 있어 봐요. 그거 매달리고. 거기에는 어떤 방법이 있는 게 아니에요. 우리가 논의해서 무슨 그걸 연습하고 실천할 수 있는 내용들이 아니라 예수님이 드러나기 위해 내가 죽어야 된다는데. .. 예수를 설명해야 된다는데. 예수를 수호하고 십자가를 수호하기 위해서 내가 어떻게 평가를 받든 이걸 감수하는 자리로 끌려 내려가는 거예요. 그게 모세의 부모니까

 

 그러니까 여러분은 그렇게 모여가지고 개혁주의 목사들이 뭐 하면 일간지들이 다 칭찬해 주잖아요. 드디어 교회가 자정 운동을 시작했고 이렇게 해서 훌륭한 목사들이 나타났다 이게 아니라니까요. 이런 평가가..

 . 그런 평가를 받아 내는 게 교회의 목적 목회자의 목적이 아니라구요. 근데 우리는 참.. 그렇게 열심히 해서 그게 됐어요? 진짜로 그게 살아져요? 열심히 연구하고 노력해서 여러 가지 방안들을 만들어 내구 이렇게 이렇게 해서 성경공부하자..제자 훈련하자 그래서 우리는 성도다운 삶을 살고 하나님의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멸시 당하지 않고 조롱당하지 않는 그런 교회를 만들자 그래갖고 됐냐고요 그게.. 아니 일단 다른 거 다 집어 치우고 내 삶속에서 그게 돼요? 세상이 합의하여 이건 나쁜 거.. 이렇게 해놓은 거는 나도 내 체면이 있으니까 안 할 수 있어요. 근데 여러분의 가족들이 진짜 가장 가까이에서 여러분의 홀딱 벗은 거 볼 수 있는 여러분의 가족이 여러분의 변화를 인정해줍니까? 더욱더 불편해하고 심지어 재수 없어하고 그러지 않아요?

 

근데 다른 사람들은 다 속일 수 있을 거라고 자기가 생각하는 거예요. 이 인간들이요. 하나님은 그런 거 하라고 우리에게 이 성경을 주신 거 아니라니까요.

 

진짜 미션을 하나씩 드리고 싶어요. 집에서 몰래 남편이건 아내건 일주일간 비디오로 다 이렇게 모르게 찍어갖고 다 갖고 오라고..그러고도 자기의 삶을 딱 일주일만 폭로 당하고도 그렇게 자신 있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는가!

근데 우리는 예수를 믿고 그걸 목적으로 삼냐고요. 하나님이 그렇게 이끌고 가고 우리의 삶에 지향성으로 주시긴 하지만 그 속에서 우리는 또 다시 내가 죄인 맞습니다를 인정하고 고백해야 되는 거란 말이예요. 근데 이렇게 가르치는 사람이 없냐고요. 나는 도대체가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모르겠어요.

 

 

여러분은 이 역사 속에서 왜 하나님이 육신의 죽음을 우리에게 맛보게 하겠어요. 그렇게 죽고 죽고 하다가 결국 죽어야 산다라는 걸 하나님이 가르치기 위해서 그래요. 성도는 이 세상에서 세상을 이긴다 그러죠.  요한1서 5장에서 그러잖아요! 근데 이김은 우리가 세상을 이긴대요. 믿음이다 그러잖아요 성도의 믿음이다 이김은.. 예수를 믿는 자가 되어서 죽는 게 이기는 거예요. 그걸 믿음이라고 해요

 

근데 점점점점 나를 신뢰하고 이정도면 됐나? 이게 지는 거예요. 이게 마귀가 여러분을 사용하는 거라니까요. 마귀가 전부 말씀을 갖고 시험을 한다는 건 잊지 말아요.

 

 여러분의 인생의 목적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거. 그 떡을 오해하지 않고 인간을 위한 떡이 아니에요 그거는요. 예수.. 내가 말씀으로 산다는 건 요한복음에서 말씀이 예수라니까 갈라디아서 2장 20절 내 안에 사는 예수로 산다를 알고 가는 게 신명기에서 말하는 떡으로만 사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는 거란 말입니다. 예수를 믿으시라고요. 십자가만 붙드셔야 되요. 다른 거는 의지할 게 없어요!

 

<기도>

하나님 은혜를 감사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오늘도 그 예수만 붙들게 하시고 예수만 의지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래서 진정한 자유와 진정한 행복과 기쁨이 무엇인지 조금만이라도 맛볼 수 있게 도와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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