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48강
<말씀: 히브리서 11:20>
히브리서 11: 20절부터.
20.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있을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으며
<기도>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현실에도 말씀 속에 감추어진 하늘의 묵시가 하나님의 백성들의 마음팍에 명료하게 그리고 실체로 새겨지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삭이 본문으로 나왔습니다.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있을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했다. 근데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이삭이 진짜 믿음으로, 야곱과 에서에게 믿음으로 올바른 축복권을 행사하려고 했나요? 이삭이? 창세기 25장에 보면 나오죠. 어떻게 했죠? 원래 에서에게 축복을 부을려고 그러죠? 이삭이. 예? 이삭이 야곱에게 관심이 없었습니다. 창세기에 보면. 근데~ 이삭이 백서른 네살쯤 됐을 거예요. 야곱이 그때 이미 일흔 일곱이었어요. 그때까지 창세기에 보면 야곱은 종용했다.라고 하는데 종용했다라는 것은 완전히 비워지고 끝장난 상태, 근데 그걸 히브리 사람들은 또 완전함이라는 단어로 또 쓰거든요? 그러니까 인간은 완전히 끝장나고 비워진, 세상적으로 봤을 때 가장 그 미말에 놓여있는 상태가 사실은 그게 완전한 상태인 거예요. 거기에 하나님이 부어질 수 있으니까. 근데 이제 야곱이 그랬다 그래요.
에서는 그 자체가 능력이 있었고 육신의 아버지 이삭이 자랑할 만한,그런 힘을 갖고 있었어요. 힘의 원리가 통치의 원리인 이 세상에서 에서는 당연히 큰 자죠? 그죠? 그게이 세상의 힘의 원리 속에서의 승리자의 모습이에요. 뭐든지 할 수 있있고. 그러니까 아버지는 당연히 가문의, 장자의 축복을 해준다는 건 가문의 기업을 무른다는 뜻이에요. 기업을 잇게 해 준다는 뜻이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가문은 힘있는 너같은 자가 맡아서 계속 이어 내려가야 된다. 이렇게 이야기한 거예요. 사실은..... 그런 마음을먹었단 말이에요, 이삭이. 죽기 전에요.
근데 이삭이 누굽니까? 이삭이라는 인물 자체가 아버지 아브라함과 어머니 사라의 불신앙을 지적하는,그런 용도로 이 땅에 태어난 사람이에요. 그 자는요. 아브라함과 사라는 이삭을 볼 때마다 야~ 우리는 진짜 믿음없는 인간들이었지? 아브라함과 사라..다 비웃었으니까~ 그거를 보고... 그러니까 없는 데서 있게 하시는 그 하나님을 드러내기 위한 증거물이 이삭이었단 말이에요? 그게 이렇게 복으로 아브라함이 복의 근원이라는 건 아브라함이 나중에 죽고 난 다음에 이삭에게 하나님이 복을 주셨다 그러죠?복이 이어져 내려가는 거예요. 아브라함이 복의 근원이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복받은 자는 이 세상에서 어떻게 되는 거예요? 그 복에 의해 역사 속에서 죽는 거예요. 아무 것도 아닌 자가 되는 거예요. 아 나는 믿음없는 자 맞네요,이게. 그러니까 이삭이 그 복을 받았으니까 또 어떻게 돼야 돼요? 역시 아브라함처럼 믿음없는 자로 폭로가 돼야 되는 거예요. 그 복이 왔기 때문에..그러니까 이삭이 죽을 때가 이제 다 됐는데도 불구하고 자기는 없음에서 태어난 약속의 후손인데 약속이 낳은 자인데 또다시 힘의 원리속으로 들어가서 이 힘이 우리 가문을 이어갈 것이다라는 또 다른 마귀의 발상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이삭이.
그런데 히브리서기자가 왜 굳이 이삭의 이야기를 꺼내냐면 믿음으로라는 주어가 또 등장한단 말이에요. 이삭은 그렇게 에서에게 축복을 하려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믿음이어떻게 했다는 거예요? 안 놔두더라는 거예요~.그렇게~. 그러니까 이삭이 뭘 했다가 중요한 게 아니라 믿음이! 그러니까 여태까지 나왔던 히브리서 11장의 인물들은 다그러죠? 원래 구약에서 그들의 모습은 전혀 아닌데 믿음이 그들을 이렇게 만들었다가 히브리서 11장의 믿음의 선진들의 이야기였잖아요. 다~~. 이거 새벽에 굉장히 중요한 거 한 거예요. 여러분.
그 믿음이 이삭을 비롯하여 뭐..아벨도 그렇고 다~. 그들은 그렇게 불가능한 존재였는데 믿음이 결국은 개입을 해서 그들을 이 역사 속에서 죽여 내더라. 이것이 히브리서11장의 주제란 말이에요. 이것이요.
그러니까 그 이삭의 이야기를 보면 이삭이 이제 눈이 침침해졌다. 그게 그거예요, 예수님께서 신약때 오셔서 이 세상 사람들을 보고 너희들이 소경이다라고 했던, 그 모형으로 이삭이 지금 서 있는 거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눈이 침침하니까 이 역사속에서 교회라는 인간들이 역사 속에서도 항상 이 역사가 크다. 세다. 강하다. 아름답다라고하는 것을 그거를 갖다가 선으로 여기며 살아간단 말이에요. 예?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지금도. 머리로는 아닌데 삶은 그렇게 쫓아간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삭이란 존재가 자기가 그 모리아산에서 그 엄청난 경험을 했잖아요. 예수의 역할을 했던 사람이란 말이에요. 거기서~. 그리고 여호와 이레라는 그 다음. 거기서 딱 한번 나오는 단어인데 그게 하나님이 준비하신 제물에 의해. 그러니까 하나님이 준비하신 제물, 아브라함에게 그러죠? 아빠,제물은 어딨어요? 하나님이 준비하실거야. 그러니까 그 말 자체가 모리아산에 그 이삭을 드리는 제사가 하나님의 제사, 십자가를 의미하는 거였단 말이에요. 알았단 말이에요.
근데 믿음이 그를 장악하여 접촉점을 이룰 때에는, 그가 아는데 이들의 인생은 그 후로도 아브라함은 그두라를 첩으로, 사무엘서인가요? 보면은 아브라함이 첩으로 취했다 그러죠? 첩을. 그뒤에도 힌두죠와 하여튼. 그래 가지고 여섯 명을 또 낳고.응?
이 이삭도 마찬가지예요. 그런 모리아산의 엄청난 경험을 하고 하나님이 어린 양을 대신 준비하셔서 드리는 그 제사로 말미암아 우리는 구원받는다. 예수님이 그러잖아요. '아브라함이 나의 때가 기다리다 올 것을 보고'가 그 시점이란 말이에요. 그러면 예수를 믿음으로 본 상태에서 또 이삭이 이런 행위를 하는 거란 말입니다. 금방 잊어버리는 거예요. 인간은.
그러니까 큰 아들한테 야, 이제 내가 죽을 때가 다 된 거 같은데 이제 장자의 축복을 내릴 테니까 가서 맛있는 거 해 갖고 와라. 그래요. 자기 입으로 한다니까요,이삭이? 분명히 리브가가 얘네들이 뱃속에 있을 때 칠십칠 년 전에 (세월이 너무 흘러서 잊어버렸나. 아니잖아요. 엄마들은 태몽을 다 기억하잖아요.) 칠십칠 년 전에 하나님이 큰자가 작은 자를 섬길 거다. 그리고 내가 복중에서 이미 사랑할 자를 택했다.라고 리브가에게 이야기를 했단 말이에요. 로마서에 나오잖아요. 9 장에ㅇㅇ에.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삭이 그걸 다_ 잊어버린 거예요. 하나님은 이미 그의 마음 속에서 떠나 버린 거예요. 떠나고 그냥 세상의 힘의 원리 속에서의 그냥 인간으로서의 죄인으로서의 이삭만 또 이렇게 남아 있는거죠. 근데 믿음이 그를 끌고가는 거예요. 그니까 에서가 나왔습니다. 뭐 그건 쉬운 거였어요. 이 세상 속에서 자기는 큰 자였고 사람들이, 사람이 좋아하고 기뻐할 만한 것은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는 자. 이게 율법주의의 모형이에요,이게, 에서는요. 왜 착한 사람,훌륭한 사람,깨끗한 사람 이 세상이다 기뻐하고 좋아하고 칭찬해주잖아요. 고 능력이 있는 자가 에서라니까요? 에서가 뭔 큰 죄졌다는 말이 성경에 나와요? 아니란 말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에서를 그렇게 에서는 나쁜 놈. 그래요.?
그러니까 성경이 말하는 죄나 악은 우리가 상정하고 정의해 놓은 거랑은 완전히 다른 거란 말입니다.
근데 야곱은? 얘는 너무 종용하여 막장에 밀려서. 얘도 아니고 다 할아버지였어요 이미. 애가 아니라 ...ㅎㅎ 일흔일곱 살된 할아버지가 엄마한테 엄마치마 폭에 그때까지말이죠. 아이그 나.참.말...참..
장가도 안가고 그때까지~ 그 치마 폭에서 그냥. 장막에만 거했다고 그러죠? 텐트 안에서 나가지도 않은 거예요. 나가봐야 뭐 사람들이 놀아주지도 않고 꼴같지도 않아 가지고 그냥. 너무 비리비리하고 그러니까. 당시에는 힘이, 고대사회에서는 힘은 아...그야말로 최고의 가치였단 말이에요. 그때에는. 근데 얘는 힘도 없구. 그러니까는 엄마가옆에서 보다 못해서 얘,엄마가 밀어줄게. 그래서 엄마가 양을 잡아오라 그래가지고 양을 잡아서 아빠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 그거는 엄마만 만들 수 있다를 보여 주는 거예요. 그리고 뭐라 그러냐면 아우, 아버지가 이거 알면 어떡해요. 그랬더니 그 저주를 내게 돌리리라.그래요. 예수의 역할을 하신 거예요.
야곱이라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그런 비리비리한 자, 약자예요. 그게 이스라엘이잖아요, 교회예요. 우리,우리.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그 자를 어머니가, 아버지가 제일 좋아하는 제물,양을~ 예수란 말예요. 잡아서 "아버지 갖다드려..."그러는 거예요. 그리고는 그 양의 옷으로 입히는 거예요. 왜? 그게 요한계시록 19장 8절인가? 가 보면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세마포를 입.히.셨.다.그래요. 수동태예요. 근데 그 세마포가 뭐라 그래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 그러죠? 그러니까 성도들의 옳은 행실은여러분이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입혀주는 거라니깐요?
그러니까 단어 하나 하나에 성경에는 예수만 담고 있어요.근데 우리가 자꾸 그걸 율법으로 도덕으로 보기 시작하니까 전~부 우리가 해야 할 바를 거기서 찾아내는 거죠.
그래서 엄마가 만들어 준, 제 아버지가 기뻐하는 그 제물을 갖고 가는 거예요. 그런데 이삭이 아니, 목소리는 야곱이네? 그런다고요. 그러더니 만져보면서 아유, 입은 거는장자의 옷이네? 그런단 말이에요. 그리고는 그 옷의 냄새를 맡고 축복한다. 그래요. 이삭이.
예수라는 제물의 그 향기만 흠향하는 거예요,우리 아버지는.
그러니까 옷을 보고 예수라는 옷을 보고 우리가 하늘의 장자가 된거지. 여러분이 뭘 만들어갖고 가서 그걸 갖다가 뭐 아버지가 기뻐하고. 이거 아니란 말입니다. 그거는불교입니다.여러분? 반야심경에 '마하 반야 바라 밀다'라는 게 있죠. 마하가 절대자,신, 반야가 지혜. 바라밀다가 극락으로 넘어가다. 지혜, 깨달음을 얻어서 신이 되어 극락으로 넘어가자.가 불교의 핵심교리입니다. 그리고 그걸 하기 위해서 여섯 가지 계가 있죠? 수행,계,육계라고 그러죠. 그게 다 십계명의 내용하고 똑같아요.응? 불교의 육계가 성경의 십계명하고 똑같다니까요?그리고 불교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불교신자들의 행동규범이라 그럴까요? 그게 자기이탈, 동체자비심이라고 그러나요? 네 이웃을네 몸처럼 사랑하라.예요. 그게... 그러니까 불교는 그것을 이루어서 극락으로 넘어가는 게 불교라고,응?
근데 오늘날 건강한 교회라고 하는 개혁주의가 주장하는 게 뭐예요. 똑같은 거예요. 불교와. 그러니까 오늘날 이 교회는 뭐다? 절. 응? 여긴 다 불자들. 그렇게 깨달음을 얻어서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는 것을 보살이라 그래요. 불교에서는. 그러니 보살님들이 다 앉아 가지고..열심히 보살되는거죠. 그리고 여기서는 막 여러분, 보살이됩시다! 그러는 거죠. 착하게 살아서 보살이 됩시다. 그러니까 불교, 중들이 신도들 보면은 성불하세요. 그거나.... 여기에서 인간들의 자존심을 열심히 챙겨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훌륭한 사람이 되자나 뭐가 달라요.
그래서 조용기목사가 동국대학교 대학원에 가 갖구 그 얘기한 거예요. 불교나 기독교의 추구하는 목적지가 똑같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가 돼야 된다.그랬고 이제 나는은퇴를 하면 종교의 통합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래갖구 중들이 다 일어나서 기립박수 쳤잖아요?
그 때 거기서 한, 강연회 녹취록을 그 자리에서 다.. 제 후배가 다 녹음해서 녹취를 해서 저한테 보내준 게 있는데 그렇게 얘기했다고요. 얼마나 그 참 포용력 있어 보이고좋아요. 그러니까 교회에서는 석가탄신일 날 연등 달아주고 부처님 오심을 감축합니단가? 뭐 이렇게 그런 것도 달아주더라고요? 그리고 절에서는 성탄절날 크리스마스 트리 딱 만들어 놓고 예수님의 오심을 축하합니다. 뭐 그렇게. 자주 쓰는거 보셨죠? 여러분,뉴스에서도 보고..
에큐메니컬 운동이라는 게 여러분, 굉장히 이렇게 일면 훌륭해 보이지만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분리를, 부모와 형제가 갈라지고 민족과 민족이 갈라지고 가족이 갈라지고. 예수님은 갈라놓고 가셨거든요? 근데 이 웬수들이 그걸 다 교회가 그거를 통합하겠다는 거예요 그거를. 예수님이 갈라놓은 거를.
예수의 십자가로 갈라놨더니 십자가를 쏙 빼버리고 이걸 다 율법과 도덕으로 만들어 갖고 그냥 종교가 통합이 된 거예요. 이게 불굔지 기독굔지.. 이게 도대체가. 그렇잖아요. 불교랑 뭐가 달라요? 동체자비심,자기이타.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건, 그 말씀을 하시고 예수님이 무슨 비유를 붙였냐고 거기다가.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그럼 가서 그렇게 해라. 그럼 영생을 얻을 수 있으니까 그랬어요. 예수님이 . 그랬더니 얘가 뭐라 그랬냐면, 서기관이 그럼 내 이웃이 누구예요? 가르쳐만 주세요. 내가 가서 확! 사랑할테니깐. 그랬더니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준거죠. 내 이웃이 누굽니까라고 했을 때 예수님이 그 비유를 해놓고 누가 강도만난 자의 이웃이냐? 그랬어요. 그러면 너가 뭐라는 거예요? 너가 강도 만난 자라는 거예요. 너는. 그러면 너는 선한 사마리아인, 이 세상이 도저히 이해할 수도 없고 만지면은 이렇게 더러워서 너무 연약해 보이고. 이건뭐 그런 존재로 온 예수에게 사랑을 받아야할 존재지 니가 네 이웃을 사랑해서 영생을 얻을 수 있는 자가 아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거예요.
그러면 누가 이웃이냐라고 했을때 선한 사마리아인이 이웃입니다라고 했잖아요. 그럼 이웃이 누구예요. 이웃은 예수란 말이에요. 예수! 그러니까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건, 내가 지금 나만을 위해서 살죠? 우리는요. 우리는 나만을 위해서 살아요. 아니라고 하지만 결국 파 갖고 들어가 보면 여전히 나만을 위해서 사는데 그 나만을 위해서 사는 내가 이건 신뢰할 존재도 못되고 이건 완전히 쓰레기인 양 예수의 은혜가 아니면 분토에 불과하다라는 것을 알게 됐을때 그렇게 나를 신뢰하던, 나는 예수에 의해서 산 존재가 맞습니다. 라는 이 믿음이 내 몸처럼 예수를 사랑하는 거라니까요? 그랬을때 그런 고백을 하는 이들 사이에서 횡적으로 그러한 사랑,예수가 주고 받게 되는 거예요. 이걸 이웃사랑이라 그래요.
그러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건 하나님 앞에 납작 엎드리라는 뜻이에요. 개과천선해서 천국가는 게 아니라 예수 믿어서 천국가는 거예요. 성경은 우리에게 개과천선하라고 하지 않고 너희는 개과천선이 안되는 자이기 때문에 예수가 죽었다를 가르치는 거예요.
그런데 오늘날은 기독교가 불교보다도 어떻게 더 심해져 가지고 말이죠? 그냥 이 세상에서의 어떤 인간들의 해야할 일,해야 할 바. 이런 것만 가르치는 거예요.
예수가 없어요. 십자가가 없어요.
그러니까 참.. 교회에 와도 무거~운 짐만 얹고 가는 거예요. 어깨에 그냥 무거~운 짐 하나씩 얹거든요. 일주일 동안 또 어떻게 살아야 하나. 그러니까 맨날 우울증 걸리고, 되지 않는거 자긴 아니까. 그리고 어떻게 하면 이걸 위장해내서 감출까. 이 이런.
고런 스킬만 늘어가는 거예요. 기술만 진보되는 거지요. 어떻게 하면 감출까.
여러분, 그 창세기에 보면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긴다라는 말은 이 세상에서 진짜 큰 자이신 예수가 작은 자인 우리, 이건 아무 것도 아닌 거예요. 작은 자를 섬기는 방식으로 구원이 일어난다를 보여주는 거예요. 그래서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는 방식으로 구원이 일어나는데 역사 속에서는. 역사 속에서는 진짜 큰 자가 작은 자로 오게 되고정말 작은 자가 큰 자의 모습으로 역사 속에서는 드러나게 된다를 보여주는 게 야곱과 에서의 이야기예요.
그래서 창세기도 로마서하고 히브리서하고 같이 이렇게 보지 않으면 얼마든지 오해가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성경 신학적인 방법으로 성경을 보지 못하고 그리고 설교하지 못하는 건 그거는 오히려 그냥 도덕 강연이다..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성경은 그렇게 그냥 다 예수만 이야기하고 있어요. 그거를 찾아내서 설교하는 걸 성경신학이라고 합니다.
근데 우리는그냥 표피적인,그런 이해에만 머물러 있으니까 또 그렇게 설교를 하는 사람들이 또, 왜냐하면 인간들이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너희들은 가능성이있어. 할 수 있어. 이게 인간들이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이 설교 잘하는 사람이 되는 거고 그게 이게 건강한 교회되는 거예요,그리고 훌륭한 설교자가 되는 거예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의 목적을 전도서 기자가 뭐라 그래요. 하나님이 너희를 시험하시는데 그 시험의 목적이 뭐냐면 너희들이 짐승이라는 걸 깨닫게 하기 위해서라고 그러잖아요. 전도서 3장 8절인가요?
근데 여기에서 큰 자,작은 자를 가르고 야. 나는 이미- 에서가 이스라엘의 모형이니까.. 구약의 이스라엘의 모형,그죠? 나는 이미 장자로 나왔기 때문에 장자권같은 거는 팥죽같은 거랑 바꿔 먹어도 돼~. 이거! 이거죠. 그죠? 그니까 이게,이게 구약이란 말이에요.
근데 우리가 여기에서 그렇게 큰 자, 작은 자를 자기들의 선악구조로 나누고 하는 것 자체가.... 그런 생각을 해봤어요. 우리는 다 짐승이란 말이에요.그죠? 그래서 유다서에도 그러잖아요? 우리는 다 이성없는 짐승이다 그래요. 이성없는 짐승같아서 본능으로 망한다. 그러죠. 본능이 뭐냐면 선악과 따먹고 내가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 이게선악과 사건 이야기가 불교 이야기와 똑~같은 이야기예요. 마하반야바라밀다가 창세기 2장의 이야기라니까요. 그게? 내가 신이 되어 극락으로 넘어가리라 이게 바벨탑의이야기고. 근데 그렇게 우리의 인생의 목적이 아,우린 없음이 맞습니다. 짐승 맞습니다. 우리가 독사의 새끼 맞아요. 이게 우리가 고백하고 가야할 건데 우리가 여기에서자꾸 뭘 인간들의 어떤 행함을 비교를 하고 성숙의 정도를 비교를 하고 하는 거 자체가 뱀새끼들이 미인대회하는 거랑 똑같은 거예요.
한번 보시란 말이에요.산꼭대기에 올라갔더니 뱀들이 쭉 줄 서있고 수영복 하나 입구선 트로피를 들고 그중에 가장 멋진 뱀 막 뽑고있구 이러고 있는 거예요. 뱀 중에 가장 멋진 뱀은? 화려한 무지개빛 옷을 입은 독사입니다. 뱀들이 미인경연대회 해갖고 뽑아놓은 가장 훌륭한 인물이 하나님 나라에서 가장 극악한 존재입니다, 여러분. 아세요? 그들은 반드시 인간들의 칭찬을 얻고 거들먹거리며 하나님께 가게 되어 있어요. 나 이거 갖고 왔는데.. 칭찬해주세요. 상 주세요. 이렇게. 아니 뱀새끼들이 이렇게 나는뱀의, 뱀의 후손이며 나는 독사의 자식인데 하나님이 어떻게 나 대신 독사가 되셔서 이게 놋뱀사건이잖아요. 어떻게 독사가 되셔서 그렇게 죽으시고 내가 하늘의 아들이됩니까를 깨닫고 가는 거잖아요~. 복음은~.
그러면 나는 역사 속에서 뱀새끼라는 게 내가 철저하게 자각이 돼야 되는데 나에게. 아니, 그 뱀새끼들이 뭘해갖고 하나님 앞에 올라가서 상을 달라는 게 말이 되냐구요,이게~. 하나님이 그거 안 받는다니까요?
엄마가 만들어 준거. 우리의 중보자인 예수가 만들어 준, 예수라는 제물 그 양고기만 받으세요! 하나님은.
그러나 그렇게 그러한 자기가 부인되어지고 아무 것도 아닌 자라는 것이 점점점점 자각이 되고 그렇게 자기의 인식이 될 때,그런 이 역사 속에서 힘만을 추구하고 나만을위해서 사는, 그 지향성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자기가 비워져야 된다라는, 그래야 하나님이 나를 채울 수 있다라는, 요것으로 지향성이 바껴가는 게 그게 성도의 삶이라구요. 그러니까. 신실함도 나오고 열심도 나오고 하는 거예요. 그러나 결국은 마지막 자리에서 아..하나님이 나 건져주지 않으면 절~대 안되는 거구나. 그 지향성을 하나님이 보는 게 아니예요.
여러분, 다니엘도 그렇구 요한도 그렇고 모세도 그렇고 바울도 그렇고 전부 생명책 이야기를 하잖아요. 그 책에 이름이 적혀 있다니까요. 이미. 하나님이 들고 계신데 봉인이 돼 있다고. 그거는 누구도 거기다가 빼거나 쓸 수 없어요. 이미 결정된 거라구요. 그거는.
보세요. 야곱과 에서가 어머니 뱃속에서 이미 큰 자, 작은 자로 나누어 지고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리라.는 아버지의 묵시, 예언이 떨어졌으면 이미 태어나지도 않았을 때아버지가 이렇게 하겠다라고 한 건 하나님이 결정해 놓고 그들의 삶을 그렇게 끌고 가겠다는 거죠?
근데 인간이 무슨 주체성과 존재성을 챙겨갖냐고요?
여러분, 아브라함이 죽고나서 어디로 갔다 그래요? 열조에게 돌아갔다 그런단 말이에요. 그럼 그들이 이 집단적으로, 그니까 조상이라는 단어 자체가 아버지예요. 머리로아버지가 머리가 된, 그 한 무리, 어떤 집단이 있는 거예요. 천국에 묵시 속에.
근데 그들이 역사 속에 나왔다가 돌아가는 거예요. 그리로 다시.열조에게로 돌아갔다. 야곱도 열조에게로 돌아가요. 그러니까 열조에게 돌아간다 라는 건 천상에 완료된그 교회,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이 있어요. 그들이 내려와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창조해 주시고 하나님이 완료해 놓으신 게 하나님 나라이며 나의 신분이다 라는 것을 배우고 가는 거예요. 거기서 지워지거나 다시 또,너무너무 훌륭해서 하나님 아버지도 기대하지 못한, 어떤 또 새로운 인물들이 나와서 아이, 또 적어야 되겠네, 또 적어야 되겠네. 이게 아니라니깐요? 큰 자와 작은 자가 갈려서 나와요. 에서가 뭐 그렇게 잘못했냐구요?
그런데 보세요. 우리가 지난 시간에도 살펴봤지만 가나안 땅은 가는 그 길목의 광야는 전부 에서의 후손들이 다 갖고 있어요. 그리고 이스라엘은 땅도 못밟게 하고 필요한 게 있으면 거기서 사먹으라고 하나님이.
근데 야곱은 그렇게 복을 받자마자 그것도 나이 일흔일곱에, 연로하신 나이에 복을 받자마자 험악한 인생을 살기 시작했다니깐요? 나그네 인생길 참으로 험악한 경험을하는 거예요. 그때부터..
아니 일흔일곱에 외삼촌 집에 가 가지고 거기서 뭐 양치고 아무리 재산을 많이 모아봐야 그거 얼마나 쓰고 갔을 거 같으세요? 야곱이. 죽도록 벌어갖고.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썼을 것 같으세요? 아,썼으면은 나중에 기근이 들었을 때 야! 그동안 모아놓은 재산으로 잘먹고 잘살자 그래야되는데 왜 그지처럼 자식들 보내갖구 야,곡식 좀 얻어와라 그래요..이게 복받은 자의 삶 맞아요?
그리고는 결국 다 어디로 돌아가냐면 열조에게로 돌아간다고 그러는데 아브라함이 사놓은 그 밭에 무덤으로 다....들어가. 아브라함도 사라도 야곱도 다 무덤 속으로 들어가,... 피밭, 교회란 말입니다. 거기가 우리가 그렇게 교회 안에서 죽는 거예요. 흠흠. 그게 성도의 인생이란 말입니다.
아,착하게 사세요. 이왕이면..그리고 열심히 노력해보세요. 죄를 이기려고 애도 써 보시라구요. 당연히 지향성으로 나오죠. 그게. 그리고 그게 안될 때 고통스럽고 불안하고 두렵고.. 안 그러면 그건 성도 아니죠. 확~ 이거 목매달아 죽어버릴까? 아,왜 이러지? 그 생각 안 들어요? 든단 말이에요. 열심히 분명히 그렇게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세요. 그게 지향성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성령의 코드가 전원에서 쑥! 빠져버리면 속수무책으로 급류에, 세상이라는, 세상 풍속에 휩쓸려 내려간다구요. 그러다가 하나님이 또 쑥! 껴주면 쪼끔 올라가는 듯 하다가 쑥! 밀려내려가고. 그러면서 예수의 십자가... 그게 내게 던져지지 않으면 나는 죽는 거구나~. 깨닫게 되는 거예요. 다른 것 없어요. 성도의 삶에 이 세상에서 우리가 이루고 내려가야 할 것. 그런 거 없대니깐요?
세상의 이치를 깨달아 훌륭한 주님의 군사로 성도다운 삶을 살자. 요거를 한문으로 바꾸면 뭔지 아세요? 관세음보살이에요. 아세요? 요게. 아세요?그게 관세음보살의 의미예요.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그 이치를 깨달아서 보살이 되세요. 가 관세음보살이라니깐요? 그래서 그거 그냥 중얼중얼 중얼중얼 하는 거예요. 그게 교인들이 주기도문이 뭔지도 모르고 주기도문 중얼중얼대는 거랑 관세음보살이랑 똑같은 거예요. 하루는 여기서 사도신경할 때도 다 관세음보살 이렇게 들려요.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뭘 알고 중얼중얼 대든지 해야지.불교인들도 아무것도 모르고? 기독교인들도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마귀가 이끄는 대로 흘러가는..
여러분, 베드로가 예수님을 이렇게 부인하고 그리고 예수님 죽으면 안됩니다! 이게 마귀가 그런거죠?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그랬잖아요. 근데 그 사단을 부리는 분이누구냐구요. 하나님이란 말이에요. 욥 보세요. 욥기. 마귀가 그 하나님 나라의 어전회의에 올라와 갖구 이케 있다가 하나님이 뭐 시키나... 시키면 내려가서 마귀 짓하고 오는 거예요. 근데 무슨 짓을 하냐면?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다 마귀다라는 걸 이렇게 폭로시켜 내는 거예요. 다윗! 왜 하필 거기서 여자가 뻘거벗구 목욕을 하고있냐구~ 누가 했겠냐고요,그거? 성도의 삶에 우연이 있어요? 그래 갖구는 죄인으로 다 폭로시켜내요. 사울같은 사람. 누가 사위를 그렇게 죽이고 싶어서 안달을 떨겠습니까? 악신이 임하면? 꼭 그렇게 다윗을 죽이려고 쫓아다녀요. 악신은 누가 보냈냐고요. 하나님이 보낸 거예요. 여러분, 하나님의 의도와 상관없이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피조물은 단 한놈도 없어요.~
그러니까 마귀는 무슨 하나님과 상관없이 지금 하나님과 맞짱 뜨고 있는 존재로 우리가 이렇게 이해를 하니까. 그러다가 진짜 마귀가 이기면 어떡할 거예요. 예?^^ 마귀가 이기면 어떡할 거예요~? 하나님하고 힘이 빠져가지고 나중에~.. 어떻게 하나님과 대적하려는 피조물이 있어요. 마귀는 피조물이라고요. 피조물은 그냥 있어라 하면 있는거고 후~ 불면 없어지는 거예요. 창조주 앞에 피조물이라는 존재는.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않으면 그렇게 마귀이며 쓰레기다.라는 걸 마귀를 통하여 보여주는 거예요. 그러니까 내가 마귀래니깐요?
그러니까 우리는 그 사도들의 설교를 보면 항상 그런 대목이 들어 있어요. 너희가 죽인 예수가 주와 그리스도가 되었다.그래요. 근데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창조한 게 예수님이 주다.를 증명하기 위함이라 그런단 말이에요. 그러면 예수님이 주다. 너희들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는 분이에요. 주가! 그러면 그 앞에서 어떤 고백이 나와야 되냐면 너희들이 죽인 예수. 내가 예수 죽인 자가 맞아요. 이게 예수님, 당신이 주님입니다.라는 고백이라니깐요?
예수를 죽이는 게 뭐냐고요. 창조주잖아요. 예수가. 말씀이 창조했다며요. 세상을. 응? 요한복음 1장에 나오잖아요. 그 어떤 것도 그 말씀과 관계없이 창조되는 거는 없다고그러니깐. 그러면 그 말씀이 우리를 창조했다라는 것을 우리가 증명하고 드러내기 위해서는 내가 그 말씀이 아니면은 도대체 어떤 존재인지를 사람들에게 오히려 보여줘야 되는 거예요! 하나님이 누구신지 그리고 피조물이란 어떤 존재인지를 우리는 이렇게 드러내고 그려내는 캔버스란 말이에요. 우리가아. 훌륭한 도화지가 되는 게 아니라니깐요. 하나님은 그 어떤 도화지에도 당신의 계시를 그려내시는 분이에요. 도화지의 재질이 문제가 아니라니깐요?
그 예수를 드러내기 위해선 내가 예수죽인 자 맞습니다. 예수죽인 자가 뭐예요. 예수가 창조준데 아니에요~ 나두 어느정도 가능성이 있었고 뭐 아주 뭐 너무너무 겸손하게이야기하자면 뭐 나는 그냥 코아세르베이트 정도는 그래도 였지 않을까요? 어떻게 내가 없음에서 나와요? 요걸 죄라 그래요. 이게 창조주를 죽이는 거예요. 요렇게 난 요만큼이라도 있음입니다.가 창조라는 단어자체를 묵살해버리는 거니까.
하나님이 바다를 만드시는데 아무 것도 없네. 요만큼 물이 있었다. 요걸 창조라고 그래요? 그건 보수. 이거는 뭐. 창조가 아니라 수선. 보완, 보수 이렇게 얘기하는 거예요.요만큼이라도 있으면 안돼요. 태평양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라도. 위해서~ 요만큼이라도 있으면 안된다니까요? 그건 창조가 아니라구요.
그러면 내가 창조주를 창조주 대접을 한다라는 건 나는 죄인중의 괴수 맞습니다.라는 고백?을 우리가 진짜 할 수 있어야 하는 거라고요. 그래야 그 분이 정말 소중하고 귀하지 않아요? 그 분 놓치면 죽는 거니까. 그걸 사랑이라 그래요.하나님 사랑. 놓치면 죽는 거예요. 없음되는 거니까.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그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었다.라는 걸 믿음으로 알기 때문에 그게 얼마나 영광스러운 것인지 알기 때문에 예수님 놓치면 죽는 거예요. 그래야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나의 현실로 받아들이게 되는 거예요. 우리는그냥 눈에 보이는 이 사실들을 팩트를 현실이라고 착각한다고요. 모든 세상사람들이 . 그러나 사실과 현실은 달라요. L.A.에서 산불이 나면 사실이에요. FACT지만 한국에 있는 우리 아버님한테는 그냥 FACT예요.사실 불났지 뭐. 근데 거기에 내 사랑하는 이가 아들이 가 있을 경우에 그건 아부지의 현실이 되는 거예요. 일어나자마자 이 불이 어디까지 갔나... 우리아들 집까지 혹시 간거 아냐? 아들은 대피했나? 이게 현실이 된단 말이에요. 안보이는데. 하나님께서 이 미국 땅에 불도 안보이는데 사랑하는 이가 거기에 가 있으면 이게 현실이 되는 거예요.
여러분이 하나님의 나라를 산다라는 건 그걸 현실로 받아 들이고 그 묵시를 현실로 받아 들인다는 건 여러분이 예수를 사랑하지 않으면은 새빨간 거짓말이에요.____. 새빨간 거짓말이에요.
정말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이 그 없음에서 창조해주신 그 #나#,그리고 나를 품고 있는 예수. 그게 #나#이며 예수이기 때문에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는 거 거든요? 그게 묵시 속에 완료되어 있다라는 이게 여러분에게 은혜로 이해되어질 때 여러분이 하나님 나라를 살아요. 그게 현실이에요. 안그러면 눈에 보이는 이게 내 현실이 되기 때문에 여기서 늘 일희일비하게 돼요.
그렇게 살지 말라는 게 아니라 그렇게 살 수 밖에 없는, 우리의 모습을 보면서 믿음으로! 그래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죽으신 거구나. 그 나를 이렇게 죽도록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예수가 그 곳에 계시니 나에게 돌아갈 곳이 있다라는 이 사실이 얼마나 행복한가..쪼끔씩 맛보는 거예요. 쪼끔씩.
하나님이 나를 향한 확신을 갖고 나에 대한 믿음이잖아요. 확실한 믿음, 확신이. 그 확신을 갖고 나를 분명히 끌고 가신다라는 하나님의 믿음,하나님의 확신! 그게 우리의구원의 확신이지. 여러분이 여러분의 꼬라지를 보구서 내가 구원받은 거 맞어? 아니야? 그 구원의 확신은 하루에도 열두 번씩 흔들려요.
근데 자꾸 그런 어떤 확신을 얻기 위해서 자기 행위를 갈고 닦는다니까요? 그거는 불신이에요~. 확신이 아니라.
ㅎ 딴 나라 얘기한 거 같기도하고 참... 그러니까 참 이게... 바위를 계란으로 치는 것 같기도 하고 혼자서..내가 뭐하는 건가... 계속 그냥....온~통, 온~세상 기독교가 다 그렇게 가고 있으니까 얘기를 하면서도 이게 과연 이해가 될까? ---------욕은 욕대로 먹구. 그냥..
여러분. 예수믿는 건 그야말로 예수를 믿어야 돼요. 예수만. 예수를 믿으라니깐 왜 자꾸 예수를 닮겠다고 그래요? 예수를 닮겠다는건 나와 예수를 같은 동급으로 놓고 같은 체급으로 놓고 내가 한번 해 보겠다는 거에요. 그러면 예수를 닳겠다는건 예수를 그냥 어떤 스승정도로 우리가 취급을 하는 거예요.그거는 불경이라니까요 그게~. 그러니깐 뭘 닮을 거냐구요? 어떤 거? 남의 장삿집에 가 가지고 다 때려엎는거 이런 거? 남들 다 제사지내고 예배드리고 있는데 창녀랑 소주 마시는거? 뭐 어떤 거 본받을건데 어떤 거. 목숨을 버리고 여까지 용서를 해, 무슨 용서를 하셨는데요?
용서가 뭐냐구요. 아니 죄가 뭔지를 알게 되면. 우리가 용서라는 단어를 함부로 우리 입에 함부로 이렇게 회자할 수 있냐고요. 그니까 죄를 다 우리가 정의하고 있는 그 정도ㅡ. 이런 걸로 정리하고 있으니까 함부로 우리는 용서합시다~. 그리고 우리는 용서받아야 되고 용서,용서. 죄가 뭔데 함부로 용서를 하냐고요. 죄가 뭔데. 하나님 아닌 자가 하나님 흉내내는 게 죄예요. 없음이 있음의 흉내내는 게 죄라구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지않는 모든,숨쉬는 것까지가 다 죄인데 인간이 그거를 어떻게 용서를 하냐구요? 우리가. 자격이 있어요? 그걸 용서할 자격이. 내가 하나님이어야 용서를 할 수 있는 거예요!
근데 무슨 용서를 한다고 그래요? 되냐구요! 그게?!
아니, 나는 진짜 목회하기 전에는 그게 되는 줄 알았어요. 미운 사람이 없었어요. 그리구 화가 나면 그 다음 날이면 그냥 자구 일어나면 다 풀려졌어요. 하~나도 미운 사람이 없었어요. 근데 어떻게 목사가 되고나서 죽이고 싶은 사람이 하나씩 들어나냐구..ㅎㅎㅎ. 아직두 용서가 안돼. ㅎ
오히려 알게 해 주시니까 복음을 알게 되니까 용서는 니가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너한테 부어주는 거야.
성경에 나오는 그런 거를 다 그냥 우리가 지켜야 할 어떤 규범으로만 보면 그냥 우리는 불경을 읽는 게 낫죠, 차라리. 거긴 유식한 말이라도 많이 써있지, 거기는.
불교에, 그 석가모니가 태어나자마자 일곱 발 걸어가 갖구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했다 그러죠? 아흐. 불합리.. 진짜.어떻게 애기가 낳자마자 탯줄을 끊구 ^^ 일곱 발짝걸어서 천상천하 유아독존. 하늘과 땅 그 다 통털어서 가장 소중한 존재가 나란 뜻이에요. 왜? 불교의 교리는 우리가 브라만의 실체,내가 브라만의 실체라는 말이니까. 빨리 깨닫고 그리로. 나는 허상이란 말이에요. 투영이란 말이에요,이건. ILLUSION. 그러니까 돌아가야 되니까 내가 제일 소중한 존재죠. 이게 선악과 먹고 하나님처럼 된 아담이라니깐요?
근데 어떻게 기독교가 세상에서 가장 그렇게 누구도 존경할만한 훌륭한 사람이 되자. 이리로 흘러가냐구요. 난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혼자 지금 잘못가는 거 나만 마귀새끼 아닌가? 이러갖구 앉아갖구 너무너무 고민이 돼 갖구 생각해 봐도 아~무리 생각해도 아니에요. 난, 난 불교를 공부해봐서 알잖아요. 왜 나만 계속 이러지? 내가 마귀새끼 아닌가? 나혼자 지옥가는 거 아니야?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혼자 지옥간다 그래두. 난 할 수가 없어요,진짜.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예수 믿는 거 밖에 없기 때문에난 지옥보낸다 그래도 할 게 없어요. 할 수 있는 게. 그래서 나는 진짜 예수만 믿을 거예요. 십자가만 붙들거래니깐? 나는요? 아, 뭐, 할 수 있는 게 있어야지_. 나는 간디처럼 살 자신도 없어요_. 법정처럼 무슨 뭐, 다 버리고. 그럴 그릇도 못된다니깐요?
뭐, 사실 버린 것도 아니지만. 동자승이 뭐, 다 해줘. 산골의 맑은 약수 일어나서 탁! 대령해서 밥 다 해줘. 지글지글 끓는 온돌에서 푹 지지면서 ㅎㅎ. 일어나면 산새가 지저귀며 맑은 공기 쐬면서~. 그리고 내려가면 다 존경해 ㅇㅇㅇ 뭔 말만 하면은 저게 무슨 뜻이 있겠지. 이러구 다 존경해 주고 잠꼬대를 해도 다 그게 무슨 뜻이 있겠지그러구..
아니 근데 뭐가 필요하냐구요. 속옷하고 고무신 하나. 아.. 나 평생 소원이야. 나는 그렇게 하고 살아보는 게. ㅎㅎ. 아니. 그게 무소유라면 나는 그게 평~생 소원이야. 그게.그렇게 한 며칠만이라도 살아 봤으면 좋겠어요. 그 사람들은 평생을 그렇게 살았잖아요? 너무 부러워요. 아니, 일어나갖구 뭐,채마밭에 나가서 잠깐 뭐 이렇게 밭을 매도카메라가 와서 다 찍어가구 아 스승이 아니 저런 일 까지! 막 이러믄서~. 아우 나는 진짜 그거 하고 싶어요, 농사! 육체적으로 하는 이런 거.
근데 어떻게 기독교가 그런 걸 같이 존경해 주고.... 제가 예전에 법정 욕했을때 중들이 와갖구 그러고 가는건 내가 얼마든지 이해가 가요. 응? 우리 안목사님 머리같은, 그런 사람들이 열 명이 와 갖구 아! 광선을 나에게..^^ 하. 그건 얼마든지 이해가 가는데. 기독교인들이 저를 욕하고 무슨 아고라나 이런, 토론방에서 그냥 욕을 욕을 해대는데, 기독교인들이 말이죠! 그런 훌륭한 분을 욕했다구. 심지어 예전에 내가 스승이라구 모셨던, 그런, 플로리다에 계신, 그 목사님까지도 나를 그냥. 어~ 저거 저거 아직도치기를 못 버려갖구 그냥 저렇게.....
여러분. 나를 버리는 게 모순이에요. 나를 소유하려고 하는 게 마귀고 그면 내가 버려지는 이 모순을 향해가는 게 우리 성도의 삶이지 그렇게 가진 거 눈에 보이는 걸 버림으로 나라는 이 존재를 챙겨 갖는 게 이 무소유가 아니라니깐요. 이거는. 이게 진짜 버려야 할 소유, 이걸 못 버리고 있는 마귀의 모습인 거예요. (아유, 요 사람들만 데리고나가서 개척했으면 딱! 좋겠는데. 조는 사람도 없구 다 잘 알아듣는 거 같애갖구)
여러분. 천국 가셔야죠. 예수 믿어야 돼요.다른 거 없어요. 삶은 열심히 사시되 그 예수를 놓치지 마세요. 예수에 감격하세요. 다른거 없어요. 그 예수, 그 예수를 붙들고 의지하고 있는,그런 분들이 여기 이렇게....이 블랙 프라이데이에 쇼핑몰로 안가고 교회에 와서 ㅎㅎㅎ(모두웃음) 지금 열심히 가서 줄서야 되는데~. 여기 와 갖구 이렇게.
여튼 그 예수가 가장 가치있는 거예요. 놓치지 마세요.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은혜를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여전히 관세음보살을 외치고 있는,이 시대의 건강한 교회. 아버지 하나님 그게 정말 건강한 건지 다시 돌아보게 하옵소서. 하나님 예수는 믿으라고 보내신 것이지 본받으라고 보낸 게 아닌데 우리는 마치 불교인들이 스승을 스승 만들어 그들의 삶을 본받고 거기에서만 배우려고 하는 것처럼 이 시대의 교회가 예수를 그렇게 스승의 자리로 끌어내려 버렸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고 우리가 믿어야 할 대상인데 우리가 과연 그 하나님을 닮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 예수 믿게 하옵소서. 십자가가 이해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