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목사/히브리서

히브리서 40강

은바리라이프 2016. 1. 13. 20:38

히브리서 40강 

 


<말씀:히브리서 11:1 ~ 11:4> 

히브리서 11장 

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2.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4.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다. 그러니까 믿음이란 건 3절에 보면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것이다.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다.그래요. 그러니까 믿음의 증거는 눈에 보이는 것으로 우리가 볼 수 없는 것 맞습니까. 믿음의 증거가 우리 눈에 보이는 것으로 판별이 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성도의 삶에서 자꾸 믿음의 증거를 찾으려고 하죠. 그게 뭡니까? 성격의 변화,행위,성숙 뭐 이딴 것들 그런 걸로 믿음의 증거들을 본다 그렇게 얘기를 한단 말이죠. 그런게 과학이죠? 증명을 통하여 내가 깨달음을 얻고 내가 인식했다 그러는 거. 여러분, 그건 과학이지. 믿음이 아니란 말이에요. 그래서 믿음은 눈에 보이는 것으로 어떻게 증명해 낼 수가 없어요. 




그럼 한번 여러분께 여쭤보겠습니다. 예수님 옆의 강도가 한 사람은 믿음이 있었고 한 사람은 믿음이 없었죠. 맞아요? 그러니까 낙원엘 들어간 거 아닙니까 한 사람이 믿음이 있었으니까. 그러면 그 믿음이 그 강도에게서 어떤 증거를 나타냈어요? 잘 생각해 보세요. 한 사람이 믿음이 있었고 이게 지금 온 세상에 딱 두 부류로 갈라지는 온 세상의 모습을 십자가를 가운데 두고 좌우로 갈라논 거거든요? 자, 믿음이 있는 자와 없는 자. 한 사람은 그날 바로 죽자마자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로 들어갔어요. 그러면 그는 믿음이 있는 잔데 믿음이 이 세상 속에서 역사 속에서 어떤 증거를 남긴다 그래요? 그건 예수님과 함께 죽는 거예요. 그거 밖에 없어요. 예수님과 함께 죽는 것이 믿음의 증거예요. 요한계시록으로 가서 봅니다. 요한계시록 6장으로 가보자구요. 




요한계시록 6장 

9.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어 




뭐를 가졌다고 그래요? 증거를 가졌다고 그러죠? 자 증거를 가진 이들이 있는데 뭐했다는 거예요?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그래요. 그죠? 증거를 가지면 뭐 어떻게 된다구요? 죽임을 당하게 돼요. 그래놓구는 이 땅에서 흘린 피를 신원해 달라 그러죠 그죠? 그랬더니 뭐라 그래요? 예수님이 가만 있어~ 니 형제들이 다 죽을 때까지 기달려야 돼.그런단 말이에요. 그러면 어러분들은 지금 믿음의 증거를 갖고 계신 분들입니다. 예수를 믿으니까~ 그죠? 




예수를 믿는다는 게 뭐예요. 그러니까 예수를 믿는다는 것 자체가 나의 전존재를 내 밖의 어떤 대상에게 의존하는 게 믿음이잖아요. 내가 나를 믿을 구석이 요만큼이라도 있다면 내가 누구를 믿을 필요가 없죠. 그런데~ 우리가 뭘 믿는다 그러면 나라는 존재자체를 다른,내 밖의 어떤 대상에게 의존하는,그러니까 그건 곧 나의 육의 부정이란 말입니다. 그게 죽음이에요. 그 죽음,그게 믿음의 증거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믿음은 절대로 이렇게 믿음의 증거를 가진 이들이 하늘에 올라가 봤더니 다 죽어있어요. 점점 역사 속에서 죽고 간단 말이에요.이렇게. 한사람도 빠짐없이. 예수님이 그러잖아요. 다 죽을 때 까지 기다려야 돼 그런단 말이에요. 하나라도 살아있으면 안돼요. 역사 속에서 다 죽어야 된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 믿음이 이 세상속에서 믿음을 가진 이들에게 어떻게 감지가 되겠어요? 어? 저 사람도 죽고있네? 이 사람도 죽고있네? 이걸로 밖에 감지가 안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세상사람들은 그걸 보면서 야~참 너는 뭐냐? 넌 어떻게 인간들이 추구하고 가치라고 상정해 놓은 것과는 완전히 딴 곳으로,딴 방향으로만 흘러가는 거야? 그게 인제 가인과 아벨이라는 거죠. 창세기에. 




가인과 아벨이라는 이제 죄인이 낳은 두 아이가 이 세상에 분리로 나타나는 거예요. 나타나서 둘이 뭐 무슨 착한 일을 했다, 나쁜 일을 했다 이런 말이 없어요. 그냥 한 사람에게는 믿음이 주어지고 예수님의 이 옆에 강도처럼 믿음이 주어지고 한 사람에게는 믿음이 안 주어진 거예요 그냥. 그러니까 왼편 강도 오른편 강도가 아담의 첫 자식들에게서부터 또 나타나는 거예요, 분리가 일어나는 거예요. 




이걸 창세기 1장에서 어둠과 빛, 궁창 위와 아래, 물과 뭍 이렇게 분리가 일어남과 똑같은. 분리가 일어나는 거예요. 이제 주일날 자세히 설명해 드릴텐데. 그렇게 분리가 일어나서 믿음이 있는 자는 어떻게 사냐면 당시에는 고기를 안먹던 때였단 말이에요? 노아의 홍수이후에 고기를 먹었으니까. 당시에는 아무 짝에 쓸모없는 양을 치고 있단 말이에요. 믿음을 받은 자는. 근데 믿음이 없는 자는 이 인간들이 저주받은 땅에서 나는 소산으로 먹고 에너지를 삼아서 인간됨을 추구해야 되는데 바로 그 인간됨의 추구를 삶의 목적으로 삼아 사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뭐라 그러냐면 아담과 하와에게 너는 니 근본된 토지를 갈아라.라고 농사를 명령해 주세요. 근데 그게 뭐냐면, 농사져서 잘먹고 잘 살아라가 아니라 근본된 토지가 뭐예요. 니가 나온 흙! 이란 거예요. 그 흙을 농사를 지으면서 거기에서 가시와 엉겅퀴라는 소산이 날텐데 땅이 흘르고? 가시와 엉겅퀴라는 소산이 날텐데 '그게 진짜 가치이겠느냐'를 보라는 거예요. 그런데 왜 흙인 니가 내 앞에서 가치를 주장하느냐. 이게 근본된 토지를 갈아라.거든요? 그리고는 농사의 이야기가 나오는 거예요,바로. 그러구는 가인이 이제 농사를 짓는데 어떻게 농사를 짓냐면 하나님은 근본된 토지를 갈면서 너희들의 처음자리를 확인하라고 농사를 명령했더니 이 가인이라는 존재가 근본된 토지에서 나온 걸 갖고 '하나님 먹어요.' 이러고 주는 거예요. 먹으라구. 가치있는 거니까 먹으라구. 그걸 어떻게 압니까. '줬는데 왜 안먹어?' 화를 낸단 말이죠. 내가 애써서 이 땅에서 뭔가를 만들어냈어요. 만들어내서 하나님을 드렸더니 하나님이 안먹어, 안받으세요. 그러니까 이 가인이 화가 났어요. 하나님이 찾아와서 그러죠. '너 왜 화내니?' 그래요. 하나님이 오셔서.. '너 왜 화내니?' 가인이 '아니 내가 왜 내 제사는 안 받습니까?' 그 안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이 행간에 들어가 있는 거예요. 




자, 제사를 드린다는 거 자체가 나는 죄인입니다. 그래서 제사를 통해서만 하나님과 가까이 할 수 있습니다, 화목할 수 있습니다.가 제사잖아요. 그러니까 가인과 아벨이 벌써 그때 제사를 드리고 있었다는 건 하나님은 그 제사를 통하지 않고는 인간들과 상관하지 않겠다는 뜻이었어요. 근데 제사를 드리는데 그 제사가 담고있는 게 바로 어린양의 그 피! 아들의 피. 하나님은 하늘의 것만 받으시거든요.? 땅의 것은 안 받으신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이 둘이 믿음을 받은 자는 하나님이 하늘의 것을 받는다는 것을 알게되는 거고 믿음을 받지못한 자는 고작, 그러니까 우리가 보이지 않는 것을 본다는 건 추.상.을 본다는 거거든요. 추상화가 뭐예요. 어떤 그림 속에서 상을 버려 버리면,버릴 [추]니까. 상을 버려버리고 그 안에 있는 내용만 남긴 거예요. 그래서 피카소가 같은 거 그림보면 아무 것도 모르죠. 그러니까 피카소 자기는 알았을 거 아니에요? 그것도 모르겠는데. 하여튼 상을 버려버리면 인간은 못 알아봐요. 그러니까 그게 묵시라고 추상이라고요. 그러니까 보이는 실체는 내가 인식할 수 있으니까 모든 인간이 다 실체는 본단 말이에요. 근데 믿음을 받으면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무얼 좋아하시는지를 알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이 밥상을 딱 놓고 차려와라. 라고 한게 제사란 말입니다. 그런데 가인도 차려왔고 아벨도 차려왔어요. 근데 한 사람은 아버지가 너무너무 싫어하는 걸 차려왔고 굴같은 거~ ^^ 한 사람은 아버지가 너무 좋아하는 걸 차려왔어요. 어떻게 아냐면 믿음으로 제사를 지낸다는 거예요. 아버지가 좋아하는 제사, 더 나은 제사가 옳은 제사란 뜻이에요. 정.답.이란 뜻이에요. 가인의 것과 비교하여 아벨은 정답을 썼는데 어떻게 정답을 썼냐면 '믿음으로'라고 이야기한단 말이에요. 믿음으로.그러니까 그 믿음이 주어지면 아버지가 뭘 좋아하는지를 알게 된다.이런 뜻이란 말이죠? 




근데 아버지가 뭘 좋아해요. 창세기 4장으로 가면은 이 아벨이 뭘로 드렸냐면 '양의 첫 새끼를 기름으로 드렸다'고 그런다고요. 근데 레위기에 가면 무슨 말이 있냐면. 둘다 모세가 쓴 거예요. 창세기도 그렇고 레위기도 그렇고 그러니까 그 안에서는 맥이 통하게 돼 있어요. 반드시. 모세오경 안에서는. 한 저자가 쓴 거기 때문에. 레위기로 가면 기름은 다 하나님의 것이다.그러죠. 그리고 첫 것은 다 하나님의 것이다.그러죠. 




그럼 창세기 4장에서 모세가 굳이 아벨이 첫 새끼의 기름을 드렸다.라고 쓴 것은 아벨이 지금 하나님이 뭘 좋아하는지 알았다는 거고 그 하나님이 좋아하는 건 하나님의 것!이라는 걸 알았다는 뜻이죠. 하나님의 것!이 아닌 건 안 좋아해요. 근데 하나님의 것!은 뭐예요? 예수밖에 없단 말이에요.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것! 그것만 하나님이 받으신단 말입니다. 




그래서 기름. 기름이 뭐예요? 메시아예요 기름이란 단어가. 기름을 부은 자가 메시아,그리스도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첫 것,장자인 예수 그리고 이 땅에 메시아로 오시는 바로 그 예수만 예물로 받겠다는 뜻이에요. 그래서 첫 것과 기름이란 말입니다. 근데 아벨이 그걸 알았단 말예요. 어떻게 알았어요? 믿음으로 알았어요. 




근데 믿음으로 그걸 알게된 자들이 자기의 의지로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 그 믿음이라는 것 자체가 에베소서 2장으로 가면 선물로 주어지는 거죠. 그러니까 내 의지나 뜻과 상관없이 홀로 일을 하는 거예요 믿음으로. 내 밖에서 홀로 일을 하셔 나에게 들어온 거니까~. 선물이라 면서요. 은혜라면서요~. 그러니까 믿음이라는 것 자체가 나에게 사유되는 게 아니라 홀로 일을 하신 거예요. 그래서 믿음이 와요. 믿음이 와서 그 '믿음으로'가 '믿음이 나를 끌고가서~' 란 뜻이에요. 어디로 끌고 가는지를 보여 주는 게 히브리서11장이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믿음이 들어와서 그 믿음이 나를 어디로 끌고가냐..이게 아벨이야긴데 죽음으로 끌고 가더라는 거예요. 요게 증거예요. 이게 요한계시록하고 연결이 되는 거예요. 믿음의 증거를 가진 자들이 제단 아래서 죽임을 당하는 영혼으로 존재하잖아요. 그러니까 믿음이 우리 안에 들어오면 우리를 반드시 죽여야 되는데 그게 무슨 말이냐면, 예수님의 옆에 달렸던 구원받은 강도처럼 믿음이 강도에게 들어가더니 도저히 나를 구원할 것 같지 않은, 그럴 힘이 없는 것 같은, 세상적 관점으로 봤을 때. 지금 죽고 있잖아요. 죽고 있는 이에게 뭘 부탁하냐구 같이 죽구 있는데. 그 양으로 죽고 있는 그에게 나를 부탁해 버리는거. 그러니까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그의 눈에는 아무 것도 아닌 나를 구원해줄 수 있는 이가 역사 속에서 그렇게 죽는 양으로 오는 게 맞군요.라는 게 도저히 세상과는 다른 시각으로 묵시가 보여지는 거예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으로. 예수님께만 매달리게 되는 거예요. 믿음으로. 믿음에 의해. 




그러니까 그 믿음이 있는 자는 반드시 나그네들을, 나그네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죠? 하늘의 나그네로 오셨잖아요. 그 나그네로 오신 그 예수를 영접한단 말이에요. 예수님이 이 땅에 나그네로 오셨어요. 원래는 빛인데~ 나그네로 왔더니 자기 백성이 아무도 영접지 아니하더라.그러죠. 1장에서도 그러고 5장에서도 그러고 나오잖아요. 영접지 아니하더라. 왜? 꼴같지 않은 모습으로 왔단 말이에요,이 땅에~. 이사야서 53장에 양이 왔는데 이건 도대체가 의지할만한 구석이 하나도 없대. 근데 그 양이 하나님의 구세주가 이 땅에 양의 모습으로 나그네로 오는데 믿음을 가진 자가 정말 보잘것 없는 나그네에게 자기를 의탁하는 거예요. 영접한다는 게 자기를 의존하고 의탁한다는 뜻이거든요. 그러면 자기는 그 나그네에게까지 의존을 할만큼 없는 존재란 뜻이란 말이에요 그게요. 그게 나그네를 대접하는 거예요.응? 




그래서 나중에 마태복음에 가면 이게 심판의 이야기의 결론으로 양과 염소의 구별이 나오는데 그들의 구별을 하는 근거가 뭐냐면 어린아이같은 그 소자 하나를 대접했느냐 아니냐로 양과 염소를 분별이 된단 말이에요. 다른 게 없어요. 도대체 그 사람을,나그네를, 소자를 대접하는 게 뭐 그렇게 대단한 거냐!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 그래서 사람들이 목사들이 자꾸 그걸 뭐~ 지나가다가 보면 거지가 앉아있는데 예수님이 바로 그 거지로 와 있다가 우리가 예수를 믿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냥 먹을 것도 안주고 도와주지도 않고 계속 그냥 지나가버리면 예수님은 하루종일 벌벌 떨며 굶고 있고.. 이렇게 설교하잖아요. 고런 게 또 예화집으로 나와서 그거 보면서 눈물흘렸던 적이 얼마나 ㅇ되겠어요. 그죠? 




또 실지로 간증도 있어요. 그 누구야? 그 사람 그.. 의사면서 방언 열심히 하면서 돌아다니는 의사..원 누구? 그 양반.. 뭐 지나가다 무슨 병자를 하나 데리고 와서 집에서 잘 씻겨서 밥을 먹였더니 아니, 예수님으로 변하더래요 그 사람이. 나 그사람 정신병자같애 아무래두.. 그러면서 그 얘기를 돌아다니면서 간증을 하고 다니는데 아주 그냥 스케쥴을 낼 수가 없어갖구 초청이 불가능. 




여러분,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여러분에게 어떤 부담이 와요. 아.. 지나가다가 혹시 지나가 예수님이 변해있는 거면 어떡하지? 아 지나가다 다시 와서 돈이나 뭐를 주고 갔다고요. 아. 마음이 너무 불편해.. 왜냐면 들었거든요. 누군가가 예수님이 거지로 와 있는거를 경험했대니까~. 그렇게 부담이 되어서 착한 일을 하잖아요? 그럼 반드시 그건 내 것으로 남게 돼 있어요. 부담스러워서 한 거기 때문에... 겁나서 한 거거든요. 그런데 그건 결국 뭐예요. 내~가 해꼬지 당하지 않기 위해 한거죠. 결국 그건 구제고 뭐고 아무 것도 아니고 나를 위해 행한,죄예요. 그거는요. 피조물이 자기를 위해서 무엇을 행하는 걸 그걸 죄라고 하잖아요,성경이. 그러니깐 그렇게 행한 건 내 기억에 다 남아요. 그리고 하나님 앞에 가서 '아니,예수님 내가 그때 그런 이야기를 듣구~ 내가 분명히 부담이 되어서 만나는 족족 정말 길거리에 있는 그지들 뭐 이런 거 다 데려다가 집에서 밥멕이구 다 했는데 아니 왜 이걸 내가 안했다고 그럽니까? 나 했다니깐요.' '아니 분명히 얘기들어서 예수님이 뭐 옥에 갇힌 자라 그러구 예수님이 굶주린 자로 그렇게 온다그래서~ 내가 그 사람들 혹시 예수님일까봐 했대니깐요?' 그래요.^^ 이게 누구예요. 염소라구요, 이게요. 근데 요 얘기를 하고 다니면 감동을 한다니깐~ 교회들이. 뭐냔 말이에요? 다 거꾸로 가고 있죠? 




양은 누구(뭐)예요? 양은 '내가 예수님을 언제.........?' 




굶주리고 병들고 옥에 갇히고 헐벗고 이게 다 뭐냐면, 이게 원래 우리의 모습이에요. 헐벗었다라는 건 에덴동산의 아담의 모습을 이야기하는 거고 부끄러운 자. 굶주렸다 이거는 니가 생명의 떡을 먹지않으면 도저히 살아날 수 없는 자. 그래서 내가 떡이다.라고 하신 거잖아요.목말랐을 때? 우리가 목마르잖아요. 하늘의 생수,예수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죽을 수 밖에 없는 이라고. 옥에 갇혀 있는 자? 성경이 이 세상을 종종 감옥이라 그러죠? 옥에 있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했다.그렇게 얘기를 하는데.. 땅에 갇혀 있는 자. 이게 다 우리의 모습,병든 자. 병든 자야 다 내게 오라 내가 그 니들의 병, 사망의 증상이잖아요. 사망을 짊어지었다 그러잖아요. 말씀을 보면. 그러니까 이거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행하신 일인데 그 예수님이 우리에게 행하신, 메시아로서 우리에게 행하신 그 일을 내가 믿는 거예요. 내가 믿고 그렇게 오신, 나 때문에 그렇게 병든 자가 되시고 헐벗은 자가 되시고 빨가벗겨져서 십자가에 못박혔단 말이에요. 목마른 자가 되시고 내가 목마르다 그랬단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 죽으신,십자가 저주받은 나무에 매달려서 무화과 나무에 열매가 없어서 굶어죽은 거란 말이에요. 그거랑 똑같은 모습이란 말이에요.그것이요. 이렇게~ 그렇게 나 때문에 그런 소자가 되어서 죽으신 그 분이 내 구세주입니다.라고 그 분을 대접하는 거~ 이것이 바로 내가 헐벗었을때 니가 나를 대접했다. 예! 내가 벗은 예수가 구세주가 맞네요. 이게 대접이란 말입니다.@@

길거리에 거지로 변장해 있는 예수를 데려다가 밥먹이는 게 대접한 게 아니라. 




그러니까 ^^ 목사님이 옛날에 무슨 거지를 데려다가 밥을 드렸는데 아버지가 뭐 그랬다고..기억이 나잖아요. ㅇㅇ거는 한 거는. 그게 아니라~ 예수가 나에게 한 걸 그걸 믿는 거예요. 그게 소자를 대접한 거고 그 소자를 대접한 것이 예수에게 행한 거란 말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양이라고 하는 거예요. 




생각해 보세요. 양과 염소가, 교회 안에 가라지와 알곡이 있다 그러죠? 가라지에게 비료주고 잘 닦아주고 이렇게 보살펴주면 그게 알곡으로 바껴요? 어떻게 해야 가라지가 알곡으로 바껴요. 종자가 다른 건 뭘 어떻게 해도 그냥 가라지예요. 이미 종자가 다르게 사과나무,밤나무,배나무 이렇게 종자가 다르게 이 땅에 온다니까요? 그러면 그 나무는 반드시 그 열매를 맺게 돼 있어요. 그런데 어떤 열매를 맺냐면, 가라지는? 항상 나를 근거로 하여 나를 증명하는 열매를 맺고, 가인이잖아요 이게. 왜 안받어요? 내 제사를.이렇게 되는 거죠. 알곡들은 내가 언제 했어요? 하나님, 참 지금 이 예물이 그때 당시에는 아무 쓸모가 없는 거였잖아요 그게. 유일하게 쓸모가 있었던 건 엄마한테 들었던 얘기. 내가 그때 그렇게 선악과 따먹고 아주 식겁했는데 아버지가 양을 죽여갖고 그거갖고 옷 만들어 주더라. 그! 그 쓸모밖에 없었어요, 당시에는. 그러니까 죄를 가리는 어떤 존재,나 밖에 있는 어떤 존재,나를 도와줄 수 있던, 어떤 존재에게만 관심이 있는, 믿음이 있는 사람. 그게 알곡의 열매란 말입니다. 




그러니까..참..믿음이 없으면 아무리 이렇게 복음을 설명해도 못 알아듣는 거예요. 지난 주에 설교를 했더니 어떤 사람이 나가면서 아! 어떻게 하늘과 땅이 이렇게 뚫리죠? ㅇㅇ디 ㅇ하고 나갔어요. 근데 어떤 사람은 나가면서 아 이제 더이상 못듣겠네요. 오늘로 끝입니다. 이러고 나갔어요. 참...그런 일을 겪을 때마다 야..정말 목사는 아무렇지않지 않아요. 목사도 힘들어요. 




남서울 교회에 지금 화종두목사라고 코스타에 저랑 같이 강사도 했던 목사가 담임목사가 돼가지구 갔어요. ----로. 남서울 교회로 갔다구요. 근데 그 제자들 교회라는 데가 옛날 김선택 목사가 개척해갖구 목회하다가 대구에서 있는 큰~ 교회가 홀랑 옮겨 간 교회고 거기가 화종두 목사가 목회하다가 또 이제. 젊은이들만 모이니까... 그랬더니 강남의 큰 교회가 홀랑 또 뺏어간 거예요. 목사들을.. 그러니까 이 젊은이들이 두번을 그렇게 겪고 나니까 화가 난 거죠. 아. 다른 건 괜찮대요, 무슨 다른 이유가 있어서 그러면 괜찮은데 큰 교회, 부자교회가 오란다구 맨날 입이 침이 마르게 내 양, 하나님이 나에게 허락하신 양 맨날 그러더니 어떻게 큰 교회가 오라 그런다고 그냥 낼름 가냐. 이렇게 갖구 젊은 애들이 화가 나갖구. 인터넷 게시판에 가 봤더니 점령을 해 가지고 말이죠. 제일 언짢어..남서울교회 막 부셔버린다고 그러구 막 이렇게 된 거예요. 그래갖구 이제 뭐 그 남서울 교회 장로님들이 저에게 전화를 해갖구.. 그 교회 교인들이 우리교회 설교를 많이 듣는다고 그러면서 저한테 뭐 중재의 메세지를 한번 올려달라고 이러는 거예요. 미쳤어요? 내가 또 거기에 휘말리게? 지금 여기 이 문제도 아주 힘들어 죽겠구만. 사실은 내가 갈려고 했던건데 내가 뭐 ..했구 이렇게.. 해서 뭐 암튼... 해달라 그러.. 

그러면 그 중에 제일 지금 아주 극렬하게 그런 인터넷 도배를 하고 있는 한 리더, 그분도 장로님이더라구요? 그 분을 저와 연결시켜줄테니 한번 얘기를 해봐라.. 그래가지구 제 이메일을 줬대요. 이메일이 왔어요. 뭐~~~!! 똑같은 얘기죠. 자기가 평생 했던 말과는 그렇게 다르게 말이야. 큰 교회가 오라 그런다고..뭐 워낙 월급을 두배로 준다고 그랬대나 뭐 기사도 쓴다고 그러고 이제부터.. 갔다고. 그래서 그 사정을 진짜 다 알고 하는 얘기냐고? 아니면 추측해서 하는 얘기냐고? 그랬어요. 그랬더니 반은 추측이고 반은 들은 얘기래. 제가 그랬죠. 그러면 화종두 목사만 뭐라 그럴게 아니라 배신감 때문에 그렇게 힘들고 괴로워한다고 지금 당신이 나한테 말을 하는데, 그 화종두 목사가 십년간 그 교회에서 목회를 하면서 화종두 목사를 배신하고 나간 사람은 몇 명 될 거 같냐고. 몇 백명될 거라구.. 그 사람은 거기서 그걸 다 겪은 사람이다. 당신이 뭔~데 당신이 겪은 배신감때문에 지금 이제 다시 목회하러 가서 새로운 교회 가서 목회를 하겠다고 나선 사람을 이렇게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죽이려고 하느냐. 전화로 하믄 하여튼 쌍노무 새끼야 욕이라도 해줄라고 그랬는데? 자제를 하면서 그냥 글을 써서~. 




여러분. 목사들은요. 평생 정문 앞에 서서 매~주 배신을 당해요. 그리고 강대상에 설 때마다 빈 자리를 보면서 배신감을 느낀다니까요? 근데도 마치 지들은 절~대 그렇지 않은 것처럼. 그거 아니 그럼 큰 교회...가서 그사람은 행복할지 안 행복할지 나는 모르겠지만 뭐 비위 잘 맞추는 사람이니까 행복하긴 하겠죠‥. 남북 쌀돕기 이런 거나 하는 교회니까..교인들한테 돈이 남아갖구 어 이거 육십 억이 남았는데 어디다가 써야되나... 뭐냐구 교회발전기금 사람들이 모은 거. 교회를 어떻게 발전시킬려고 돈을 그렇게 모았는지 모르겠어요. 

괜히 그 반포에다가 큰 건물하나 지어놓구 부목사들 아파트 하나씩 다~ 그 지점에 그정도 평수 오십평짜리 하나씩 줬다는데 그러면 한 이십억 되거든요? 반포 자이 바로 앞에다 줬으니까. 그러니까 이 부목사들이 배떼기가 불러갖구 말이죠. 아니 웬만하면 못 사는 데예요. 그 지역은. 근데 돈이 남아 도니까. 그냥 그렇게 이백 억원을 들여서 뭘 지었다고 그러대...그러니까는 몸바쳐 충성이죠. 쫓겨가면 안되니까 어디가서 그런 대우를 받아요. 차 줘~ 애들 학비 다 해줘~응? 심지어 미국 유학 가 있는 부목사 딸래미 학비까지 다 대줘. 아니 그러니 거기에서 짤리면 무슨 사명감이며 무슨 올바른 이야길 할 수 있어요. 거기서 목사가. 짤리면 큰 일 나는데.....? 




그러니까 한번 잘 생각해 보세요.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하나님의 종이 있는지? 그리고 정말 복음이 이 시대에 교회에 복음이 있는지 한번 잘 생각해 보라구요. 생각해 보시라구요. 예수와 십자가를 이야기하는 게 저런 설교를 준비하고 저런 설교를 할 때!까지 이 말씀의.. 그 바다 속에서 어쩔 줄을 모르겠어요. 이 풍성함과 이 깊이와 이 넓음, 그리고 이 비밀~. 그러니까 설교를 하면 어떤 사람들은 이게 등대고 앉아 있다가 점점점점 이렇게 빨려와서 제 눈과 거의 정말 1mm 이 간격을 두고 이렇게 쭉! 빨려 오는 게 보이는데. 이 듣기싫은 사람들은 딱 보여요. 눈을 감았다가 떳다가 언제 끝나나 시계도 봤다가. 나는 말씀을 준비하면서 어떻게 성경이 이렇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하나로 되는지 놀래 가지구 이걸, 오늘 어떻게 설교를 해줄까? 그냥 오늘 세 시간을 해 버려? 이렇게 이러고 보는데. 들을 사람이 없네.. 




여러분. 믿음은 눈에 보이는 이 세상 것이나 아니면 여러분들이 기대하고 상정해 놓은 그런,인간다움,변화 이런 것만 드러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그런, 양 키우는 일을 하는 그리구 그걸 갖구. 이걸 하나님이 받으신대~ 이런 취급을 받는 그런 모습. 야 너 그렇게 살아갖구 하나님이 기뻐하시겠니? 이런 모습 때문에...야 그 사람도 안먹는 그걸 하나님을 드려? 그랬을 거 아니에요? 야! 어떻게 니 삶을 하나님이 받아? 이런 거. 그러나 믿음이 있는 자들은 그 믿음이 끌고 간다고 그랬어요. 근데 반드시 죽여요. 믿음이. 

믿음이 이긴다.그러죠? 여러분 안에 있는 믿음이 오늘 상황을 이긴다는 게 아니라 믿음이 여러분을 이긴다는 뜻이에요. 여러분을 죽여낸다는 뜻이라구요. 그러니까.. 

그래서 그냥 무력한 자로 하.벨.이 맞아 죽는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이 그 예물로 증거한다 그러죠. 그러니까 예물, 아벨이 드렸던 예물이 뭐예요. 믿음으로 그는 바라는 것들, 보지 못하는 것들 이게 로마서 8장에 가면 예수로 말미암아 얻을 우리의 구.속.이라 그래요. 바라고,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고.란 단어랑 똑같은 단어가 나오거든요 거기? 근데 그게 예수로 말미암아 얻을 우리의 구.속.이라 그래요. 




그러니까 이 아벨이 예수로 말미암아 얻을 우리가 구속을 받아야 된다는 걸 알았고 그게 예순지 누군지는 몰랐을 거라고요. 이 사람이. 그러니까 나 때문,나로 인해서 구원이 오지는 않는다는 거를 아는 거예요. 이 사람이요. 그리고는 믿음이 그냥 예수의 삶을 선취적으로 그 사람 속에서 그려버린 거예요. 세상에게 맞아 죽는 모습으로. 그래서 믿음이 있는 사람은 그 증거를 갖고 가인에게,세상이라는 가인에게 계속 맞아 죽는 거예요. 역사 속에서 다! 하나님이 그 예물로 증거하신다 그래요. 그가 드렸던 예물은 보잘 것 없는 거였고 세상이 보기에 그런 거였지만 이게 예수였단 말이에요.그래서 예물로 증거하는 거예요. 그랬더니 믿음으로 그 아벨이 땅 속에서 계~속 이야기를 하더라 뭘? 믿음이 무언지를. 




믿음이 뭐예요? 가인에게 맞아 죽는 거.그래서 악! 소리 내면서 빨리 꿈 깼으면 좋겠다... 하나님 나라로 빨리 올라가야 되는데... 그러니까 믿음의 증거, 여러분 속에서 믿음의 증거가 나타나려면 반드시 그 예물의 삶이 나타나야 되고 그 예물의 삶은 가인에게 맞아죽는 거예요.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은혜를 감사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저희들에게 믿음이 무엇인지 또 믿음의 역할이 무엇인지 ----고 하나님 그 믿음이 하는 우리의 삶, 그 믿음을 갖고 다를 이들을 정죄하고 때려 부수려고 하는 이 마귀같은 삶을 ---서 ,하나님 내가 죽고 내가 파괴당하고 하는 그 삶이 옳은 삶이라는 거를 인정하며 그게 열심히 ---- 데 끌려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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