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목사/사도

사도행전 19

은바리라이프 2016. 1. 12. 13:46

1.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 아내 삽비라로 더불어 소유를 팔아
2.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를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3. 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4.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임의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5.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6. 젊은 사람들이 일어나 시신을 싸서 메고 나가 장사하니라

 


 본문에 중요한 단어 '마음'이 나옵니다. 많은 이들이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서 참 무지합니다. 대부분 세상 사람들은 도대체 왜 이 세상은 공허하며 끊임없이 전쟁과 가난과 다툼이 있는지를 잘 모릅니다. 그렇다면 인류의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입니까?


 인간은 마음속으로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세 가지 질문을 한다고 합니다. 첫 번째 '인간은 도대체 무엇이냐?'입니다. 인간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이며 왜 사는 것인지에 대한 것입니다. 두 번째는 '도대체 우리의 문제는 무엇인가?'입니다. '우리의 문제가 무엇이기에 이렇게 우리에게 만족이 없을까?'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돈을 많이 모으고 자녀들이 잘 되어도 공허함과 무기력함이 우리에게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만족이 없는지 고민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하는 것입니다.


 누구나 이러한 질문을 다 품고 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그에 대한 답을 내립니다. 그것을 세계관이라고 합니다. 세계관이란 것은 굉장히 어려운 말이 아닙니다. 세계를 바라보는 눈이 어떠한가에 대한 것으로, 이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가 세계관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이 세상을 이해하고 자신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습니까? 이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사람이 그것을 모르고 태어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많은 사람이 그에 대한 해답을 내놓습니다. 더 나은 삶이 무엇인지 못 배웠기 때문에 못 사는 것이므로 교육을 시키자고 합니다. 더 낫고 좋은 삶을 배우고 알게 되면 인간은 반드시 그것을 추구할 것이라며 가르치자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르네상스, 계몽운동입니다. 다른 이들은 사회적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빈부의 격차를 줄이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면 문제는 없어질 거라며 여러가지 대안을 내놓습니다.

그것은 이념을 나타내며 공산주의입니다.


 그러나 전자인 교육과 후자의 이념이 인간들의 세상을 바꾸지 못했습니다. 예전에 비해 우리는 얼마나 많이 배웠습니까? 지금 우리는 고등교육을 거의 다 받고 TV나 다양한 매체를 통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데 그렇게 많은 정보와 교육 혜택을 받는 우리가 전쟁과 분열과 다툼이 없는 곳에서 평안과 행복을 누리고 있습니까? 안타깝지만 세상ㅇ른 더 흉악해지고 있습니다. 10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범죄들이 너무나 많이 나타납니다. 근친상간, 불륜 등이 TV에도 넘쳐납니다.


 그것은 인간이 교육과 여러 이념과 선행과 체계 등으로 살기 좋게 만들어 보겠다고 발전시켜 온 역사가 쏟아내는 배설물입니다. 이 세상은 점점 흉악해지고 진짜 전쟁같은 전쟁이 터지면 이 세상에는 영화에서나 보았던 황폐가 찾아올 것입니다. 지금은 무기가 발달해서 화학무기는 작은 것 하나가 터져도 도시 하나를 건물이나 다른 물건은 아무 손상 입히지 않고 숨 쉬는 생물만 싹 죽여 버립니다. 세상이 뒤엉켜서 3차 대전 같은 전쟁이 일어난다면 그런 무기들을 다 사용할 것입니다.


 그런 것이 하나 터지면 원자탄 안 쓰겠습니까? 인간의 마음은 만물보다 심히 부패하여 그것보다 더러운 게 없다고 했습니다. 히틀러 같은 전쟁광들이 미쳐서 수백만 명을 죽였겠습니까?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떠난 우리 인간의 모습입니다. 그렇게 누군가 원자탄 하나를 눌러 버리면 거기서 세상은 끝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극과 북극에 떠다니는 핵잠수함 하나만 터지면 지구는 끝나는 것입니다.


 만물보다 심히 부패한 인간의 마음이 이러한 일들을 유발하는 것이지, 다른게 문제가 아닙니다. 결국 인류가 봉착한 문제는 죄입니다.

그것을 해결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겉만 번지르르한 것처럼 보이는 것뿐이지, 안은 흉측하게 썩어 들어가는 꼴입니다. 좀비 영화 같은 데 보면 그들은 겉으로는 멀쩡하게 다니다가 정체를 드러낼 때가 되면 갑자기 썩은 시체가 되어 다닙니다. 바로 그것이 이 세상의 모습입니다.

온통 썩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멀쩡하게 가면을 씌워 놓으니까 사람들은 이 세상을 살만하다고 여깁니다. 어떤 이는 120세까지 살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고 좋아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오래 살고 건강을 잘 챙기는 것이 우리의 공허를 채워줍니까? 예전에 한국에서 야학을 7~8년 했는데, 그곳은 지금은 물론 아파트가 들어서 잘 되어 있지만 그 당시만 해도 판자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의 아이들은 어떠한 교육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후배들과 함께 전세 하나를 얻어서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공부뿐 아니라 태권도도 가르쳤습니다.


 제가 가르치던 아이들은 정신지체아들이었습니다. 그 동네에는 알코올중독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죽어라고 일해도 극빈에서 벗어날 수 없는 그들이 견딜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를 낳으면 기형아들이 많은 것입니다. 그 아이들을 목욕시키는 것도 제 임무였습니다. 그때 아이들을 데리고 가면 제가 굉장히 좋은 차를 타고 다녔기 때문에 목욕탕 주인이 나오는데, 차에서 거지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일단 나왔는데 들어오라고 하지 어떡하겠습니까? 그래서 아이들과 함께 들어갔습니다. 창에 몸을 담그면 정말 시궁창 물이 되고 맙니다. 그렇게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가정 방문을 하게 되는데 할아버지나 할머니 손에 길러지는 아이들이 반 이상입니다. 부모가 다 이혼하고 떠나고 죽어서, 독거노인들이 정부에서 받는 몇 만원을 갖고 손자손녀를 데리고 힘겹게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 어르신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이구동성으로 어르신들이 하는 말이 이 세상 힘들게 살았는데 죽으려 해도 맘대로 죽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 은혜를 떠난 인생의 실제 모습입니다. 마귀가 좋은 집, 좋은 차, 자식들의 효도 같은 것으로 살짝 가려 놓아서 인생의 실체를 못 보도록 한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서에 보면 마귀가 우리의 눈을 가려서 마음을 혼미케 한다고 합니다. 그 말은 단지 복음만을 못 알아듣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과 죄의 실체를 못 보게 함으로써 복음의 필요성과 필연성을 못 알아듣게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살기 좋고 살 만한 곳이라는 마음을 자꾸 인간의 마음에 심어줘서, 왜 우리가 여기서 벗어나야 하며 우리에게 해결되어야 할 죄가 무엇인지 이해 못 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인류가 당면한 모든 문제는 인간의 마음이 죄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아나니아와 삽비라에게 "왜 너의 마음에 사탄을 두었니?"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에스겔 36장에 보면 새 언약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내가 너희 가운데 새 마음을 주리라"고 하십니다. 그 새 마음이 우리 안에 이미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죄로 가득 찬 마음이 확 밀려나가지 못하고 오염의 형체로 공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헌 마음과 새 마음을 동시에 지니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어떻게 인생이 이렇지? 예수를 믿었는데도 왜 이렇게 공허하지?'라고 헌 마음을 수시로 폭로당하지만, 그럼에도 내 안에 새 마음이 있으니 헌 마음이 다 밀려나갈 거라는 그 은혜의 복음을 꼭 붙들고 구원의 필요성과 죄의 추악함을 잘 배우고 하나님 나라에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엉뚱한 것을 추구하느라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붙들고 있는 죄의 정체를 알게 되면 우리가 진짜 추구하면서 살아야 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것들을 초개처럼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실상은 우리 자신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삶을 살거나 유익을 보면 부러워합니다. 저 어렸을 때만 해도 아이들이 순진해서 장래희망 적으라고 하면 대통령이나 장군을 적었는데, 요즘에는 연예인이나 운동선수가 많다고 합니다. 인기 1위가 연예인입니다. TV에 나와서 슬슬 놀다 가는 것 같아도 돈은 제일 많이 벌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모두 일확천금을 꿈꾸고 있는 것입니다.


 국민 생산량은 점점 낮아지고 건설현장에는 일손이 모자라서 전전긍긍하고 있는데 한쪽에서는 실업률이 높아졌다고 데모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일손이 모자라는 곳으로 가라고 해도 그것은 싫다고 합니다. 돈을 쉽게 버는 이들을 너무 많이 본 것입니다. 왜 자신이, 외국인 노동자가 일하는 그곳에 가서 일해야 하느냐며 자신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합니다.


 전부 목표 지점만 높게 잡아 놓고 그것이 되지 않았을 때 절망하고 낙심하고 목매달아 죽는 것입니다. 목매달아 죽는 것은 자시을 너무나 사랑하는 인간이 이 세상 전체에 대해 폭력을 휘두르는 것입니다. '내가 추국하고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가 있는데 왜 나라는 존재가 도달하지 못하는 거지? 나는 나를 너무나 사랑하는데 왜 내가 나를 실망시킬까?'하며 자신을 죽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기 사랑에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새 마음을 받아 돌아서야 합니다. 우리가 나을 사랑하는 것을 조금이라도 놓게 되면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무식하고 연약하게 산다 해도 별로 불평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그 삶을 요구하십니다. 그게 증인입니다. '진짜 하나님이 살아 계시는구나, 그들을 간섭하는 어떤 존재가 진짜 있구나'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에서도 누가 조금 잘되었다고 하면 계속 부러워하고 자기보다 못난 사람이 어떤 직분이라도 받으면 '저런 인간이 받았는데 나는 안 준단 말이야'하면서 그를 깎아내리며 폄하합니다. 점점 사람과 세상이 유치해집니다.


 성경에 깊이 빠져 보십시오. 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습니다. 저는 일주일 내내 만나는 사람이라고는 교인들이 다입니다. 어떤 날에는 사무실에 있으면서 사람 얼굴을 하나도 못 보고 반나절이 지나도록 그날 해가 떴는지 비가 오는 지도 모르기도 합니다. 아예 나오질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해석하는 것이 이제는 점점 더 힘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알면 알수록 '이것은 아닐 것 같다'라는 생각이 더 많이 드니까 옛날에는 주제를 한 번 정하면 서너 시간 만에 원고를 썼는데 이제는 그것이 어렵습니다.


 학자들의 해석도 그렇고 다른 것을 참고해 봐도 성경에 대한 이해가 너무 얕습니다. 비유를 해석하면서 참고할 수 있는 책을 한 권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냥 착하게 잘 살자, 하나님이 주신 은사로 최선을 다하며 살자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앞뒤 문맥으로 들어가 보면 그 내용이 아닌 게 드러납니다. 그런데 설교자들과 신학자들이 그 정도의 노력조차 하지 않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 외로움 속에서도, 사무실에 혼자 쭉 앉아 있어도 그 어떤 재벌이 안 부럽습니다. 워렌 버핏이나 빌 게이츠 같은 사람이 하나도 부럽지 않습니다. 미국에 와서 일반 사람들이 유흥을 즐기거나 사치를 누리는 장소를 한 번도 가 보지 못했습니다. 그저 예전 기억을 더듬으며 짐작할 뿐입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에 전혀 관심이 생기지 않습니다. 상상도 할 수 없는 하나님 나라가 내 앞에 다가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끔 TV에서 연예인이나 부자에 광분하는 이들을 보면 참 불쌍하고 유치합니다. 요즘 연예인들이 나오는 것을 보면 바보같은 이야기를 하고 몇 천만원을 갖고 가는데, 사람들이 그 앞에 앉아서 깔깔대고 웃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 세상입니다. 삶의 교훈이나 유익한 정보도 아닌데 그것을 보며 즐거워하며 그들을 부러워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끊임없이 자해하는 것과 같습니다. 자기를 죽여가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을 죽이는 것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귀한 것을 소모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나를 죽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그렇게 자살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부러워합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모든 인간은 자살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부인 또한 자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새 생명을 살려내기 위한 것으로, 세상이 죽어가는 것과는 다릅니다. 세상은 전부 사망을 향해 가는데, 유독 성도만 자기를 스스로 부인하며 생명으로 부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상화에 있는데 무엇이 그리 부럽겠습니까? 방이 여러 개 있는 집이 있으면 각 방에 내 몸의 각 부분을 하나씩 놓고 잡니까? 결국 자는 건 작은 침대 위입니다. 그리고 누군가 와서 부러워하기 전까지  그 집은 청소할 곳만 많은 애물단지입니다. 그런데 가끔 부러워하는 그 순간을 즐기기 위해 그러한 집을 바라는 것입니다. 어떤 그룹이 실제로 무인도를 사서 성을 지었고 그곳에서 황제처럼 살았습니다. 하지만 몇 달 안 지나서 다시 팔았습니다. 아무도 부러워하는 이가 없었던 것입니다.


 인간은 그것을 못 견디는 것입니다. 결국 모든 인간이 원하는 것은 자기 자랑입니다. 저는 차를 타고 갈 데가 없으니까 좋은 차에 관심이 없습니다. 한국에서는 차를 많이 타고 다녔는데, 차 때문에 차별도  많이 당했습니다. 조그만 차를 타고 가면 호텔에서는 문도 안 열어줍니다. 그래서 그들이 열어 주는 대우를 받으려고 멋진 차를 타는 것입니다. 그런데 미국에 와서는 갈 데가 하나도 없고, 아무도 부러워해 줄 사람이 없으니까 관심이 없습니다. 결국 그것은 우리를 만족시켜 줄 수 있는 본질이 아닌 것입니다. 그저 세상이 정해 놓은 틀 속ㅇ레서 모든 인간이 속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까지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죄를 해결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쳐주신 것이라 아예 새 마음을 부어주셨습니다. 그것을 믿는 사람이 하나님 나라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가 무엇을 해결하러 이 땅에 오셨는지, 그리고 구원받은 우리는 어떤 삶을 추구하며 살아야 하는지를 잘 생각하고 명심해야 합니다. 엉뚱한 것 부러워하며 스스로 자해하지 마십시오. 정말 굻어죽을 지경이라면 저한테라도 오십시오.

이 풍요의 땅에서 굶어죽지 않습니다. 추우면 교회로 오십시오. 무엇이 걱정입니까?


 하나님이 살아 있으라고 하신 그때까지 살고 하나님이 자라라고 하신 그 자리까지 잘 자라서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따듯한 사람을 살아가기 바랍니다. 이 땅에서 괜히 헛된 따듯함 추구하다가 진짜 따듯함을 잃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 은혜에 감사합니다. 복음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이 새대에, 하나님의 말씀이 실종된 이 시대에, 교회가 오히려 세상을 부러워하고 있는 바보 같은 시대에, 말씀이 살아서 움직이고 그 말씀의 역동성이 눈으로 감지되는 교회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적어도 우리는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모습을 세상에 보여주고 자랑할 수 있는 참된 하나님의 공동체를 이루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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