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목사/사도

사도행전 17

은바리라이프 2016. 1. 12. 13:45

31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32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33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행5;31~33)


 초대교회 사람들이 기도를 했더니 모인 곳이 진동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진동과 함께 33절에 '은혜'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진동'이라는 단어는 항상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합니다. 그 말은 구약의 시내산 사건에서 인상 깊게 쓰였습니다.

출애굽기 19장 18절에 나옵니다. "시내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 가마 연기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이처럼 진동은 하나님의 현현으로, 그것이 죄인들에게 임하면 심판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현현이 그분의 선택된 백성에게 임하게 될 때는 은혜로 나오는 것입니다.

 

 지옥의 불이 어떤 불입니까? 지옥은 하나님이 다스리십니다. 흔히 사탄이 다스린다고 오해하는데 그들은 불타는 존재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지옥에도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불로 임재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선택을 경험하지 못한 이들은 성령의 불을 지옥 불로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옥에 가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그곳에 보내시기 전에 그분의 영광의 빛을 감당해낼 수가 없습니다. 그들 자신이 너무 더럽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그들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하나님의 생명의 빛이 비칠 때, 믿음으로 '나의 더러움이 저 빛에 의해 깨끗해졌지'하며 그 빛을 품어 안는 것입니다. 그것이 빛과 어두움이 연합하는 상태이며, 은혜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두움에 빛을 비추면

어떻게 됩니까?


 옛날 시골에서 묘지를 옮기는 이장을 했습니다. 제가 살던 곳이 서해안 개발에 들어가서, 산에 있는 묘지를 이장하는데, 어떤 무덤에는 시체가 거의 썩지 않고 관도 썩지 않았습니다. 아마 토질의 영향이 있는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부패가 덜 된 시신들을 파내면 벌레들이 새카맣게 관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더러워서 못 볼 지경입니다. 삽으로 아무리 찍어도 벌레들이 도망가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어두컴컴한 데에 햇빛이 쫙 내리쬐면 그 벌레들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립니다. 그 관을 새카맣게 덮고 있던 벌레들이 빛에 의해 다 사라지는 것입니다.


 이처럼 어두움은 빛의 능력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성령의 불이 악인들에게 임할 때 그것이 고통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결국 지옥도 성령의 불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천국도 빛이 있는데 태양이 필요 없는 빛, 하나님의 빛이 있다고 합니다. 똑같은 빛, 똑같은 성령의 불이 비취는데 한쪽에서는 견딜수가 없어서 그 불에 타고, 다른 쪽에서는 그 빛이 너무나 고마워서 그 빛을 품어 안아버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빛과의 연합이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진동과 심판은 선택을 입은 자들에게는 은혜로 오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도 심판이 일어나는 진동이 일어났는데 거기 모인 무리가 은혜를 입었다고 합니다.


히브리서 말씀을 봅시다.


25. 너희는 삼가 말하신 자를 거역하지 말라 땅에서 경고하신 자를 거역한 저희가 피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하늘로 좇아 경고하신 자를 배반하는 우리일까보냐
26. 그 때에는 그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거니와 이제는 약속하여 가라사대 내가 또 한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하셨느니라
27. 이 또 한번이라 하심은 진동치 아니하는 것을 영존케 하기 위하여 진동할 것들 곧 만든 것들의 변동될 것을 나타내심이니라
28. 그러므로 우리가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29.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니라


 여기서 진동은 최후의 심판으로 쓰입니다. 최후 심판은 진동할 것들을 흔들어서 그들이 어떤 존재인지 폭로시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세상 권세자들의 협박을 받고 있는 그들의 집을 진동시켰다는 것은 "권세자들이 아무리 너희를 권고하고 핍박하지만, 그들은 결국 이렇게 흔들려서 죽을 거야. 걱정하지 마"라는 의미를 진동과 함께 기도하는 그 무리에게 심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 이 진동이 얼마나 많이 임하는지 생각해 봅시다. 구원받은 이후 내 삶 속에는 전쟁이나 아픔 같은 것이 없을 거 같은데, 하나님의 심판이나 징계 같은 것이 임하는 것같이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맞습니다. 히브리서 논리에 따르면 하나님은 우리를 계속 징계하십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진짜 아들, 적자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징계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징계 받지 않는 이들을 사생아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란 말입니다.


 그래서 시편 72편에 보면 그렇게 하나님과 관계없는 이들이 너무나 세상을 즐깁니다. 돈을 벌려 하지도 않는데 몇 배로 들어오고 살이 너무 찌고 죽을 때도 때깔이 곱게 죽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 삶 속에 징계가 없는 것입니다. 그냥 재수 없거나 불성실해서, 그들 스스로 자초한 어려움과 슬픔과 고난이 있을 수는 있지만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 그들에게 내리는 징계는 없습니다. 진짜 심판과 징계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성도는 이 세상에서 믿지 않는 자들이 받지 않는 그 심판을 계속 받습니다. 진짜 심판을 면하게 해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게 우리 삶을 계속 진동시켜서 "너희가 이것을 붙들어야 하는 게 아니다"라는 것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돈이나 명예 같은 것을 붙들고 얼마나 의지하고 있습니까? 그때 그것을 흔들어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거 아니야"라고 하십니다.


 제가 전도사로 사역하며 가장 힘들게 살던 시절, 그 교회에 물질로 저를 많이 도와주시던 권사님이 있었습니다. 그 권사님의 남편은 어마어마한 부자였는데, 60대 남편이 바람이 나서 재산을 다 처분해 한국으로 도망갔습니다. 그래서 권사님은 남편이 갖고 있는 힘을 그대로 다 갖고 있었는데, 남편과 돈이 확 빠져나가자 그냥 초라한 할머니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런데 그제야 말씀이 들리더라는 것입니다.


 지난주에 1시간 40분을 설교했는데 설교 내내 그 권사님은 울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아는 자들이 깜짝 놀랄 그 내용을 알아듣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식사하면서 "권사님, 어떻게 그렇게 설교 내내 울고 계셨나요?"라고 물으니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의 긍휼과 은혜와 사랑만 드러나고 있는데 어떻게 안 울겠느냐고 했습니다. 그래서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알아듣는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고 그 권사님의 간증에 너무 감동했습니다.


 제 설교를 듣는 사람 중에는 신학을 공부한 이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알아들을 수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뭔가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서 듣기는 하지만 이해는 못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사실이 너무 답답합니다. 성경을 공부하고 성경을 믿어야 합니다. 어떤 이들이 공부한 논리와 신학에 갇혀 있으면 안 됩니다. 신학을 한 사람들도 그 정도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멍한 것입니다. 그중에도 '아, 이게 성경이구나. 복음이구나'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굉장히 길고 어려운 설교임에도 많은 사람이 통곡합니다. 도대체 그 이야기를 어떻게 알아듣고 우는 것입니까?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설교 내내 우리의 죄를 지적하고 심판을 말하며 그 모든 것을 덮어버리는 하나님의 은혜만 이야기했습니다. 제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계속해서 흔들고 진동시킨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여러분에게 은혜로 들어와서 감격의 눈물이 쏟아진 것입니다.


 그냥 유명한 목사가 설교하는 곳, 교육 프로그램과 시설이 잘 되어 있는 곳, 20~30분 내로 설교를 짤막하게 끝내주는 곳에 멍하니 앉아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너무 답답합니다. 그들은 교회만 가면 신앙생활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식에게 묶여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정말 하나님의 자녀가 맞다면, 분명히 그분이 그 자식에게 손을 대실 것입니다. 그 자식을 치시고 진동시킴으로써 그 진동 속에서 은혜를 얻을 수 있게 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내 살과 뼈가 떨어져 나가는 고통이 수반됩니다. 그래서 말씀을 근거로 하여 자꾸 놓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저주받은 자라면 끝까지 자식을 하나님 삼아 살게 내버려 두실 것입니다.


 이 시대에는 신앙에 대한 진지함이 너무 없습니다. "이 시대 교회에 앉아 있는 사람 중 90%가 가짜다"라는 말이 있는데, 어거스틴은 목숨걸고 신앙생활하던 초대교회 사람 중 95%가 가짜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말씀을 못 알아듣는다는 의미로, 사람들이 자기의 의와 평판과 인기를 위해 앉아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순교도 우리의 자존심을 세워 주는 것입니다. 순교자들을 떠받들지 마십시오. 불교나 이슬람교에도 순교자는 많습니다. 자기가 섬기는 신을 위해 목숨을 버린 그 행위가 고귀하고 아름답고 위대한 것이라며 그렇게 죽는 것입니다. 인간은 명분을 주면 목숨도 버립니다. '민주주의'라는 명분을 주니까 서울대 학생들이 옥상에서 뛰어내려 죽었습니다. 심지어 할복을 하고 창자를 꺼내 목에 건 다음에 떨어져 내려 죽는 사람도 봤습니다.


 복음은 그런 게 아닙니다. 오히려 '나는 왜 이렇게 연약하며 두려워 떨며 힘이 없는 존재인가'를 폭로당하고 그럼에도 그것을 덮고 나를 끌고 가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끊임없이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아는 자가 주위에 얼마나 있습니까? 그래서 "이 시대에 믿는 자가 어디 있느냐"라고 하는 것입니다. 진짜 믿는 자는 거의 없고 다 지옥 갈 인간들이 예배당에 앉아서 "할렐루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편하고 듣기 좋은 말만 해주는 곳에 헌금을 보험료로 지급하고 앉아 있는 꼴입니다. 그런 것에 절대 속지 마십시오.

근사하고 좋은 말은 불신자들이 쓴 책에서도 얻을 수 있습니다.


 저도 머리 좀 식힐 겸 소설책 몇 권을 사서 읽는데 너무 재미있습니다. 그렇게 편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안에 복음이 없고 그저 권선징악의 내용뿐입니다. 그것이 선한 삶입니까? 또한 부모나 자식에게 벗어나지 못하는 삶은 악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악임을 깨닫고 객관적으로 보기 시작하면 진짜 효도와 자식을 향한 사랑이 나옵니다. 그전까지는 집착입니다. 그것은 상대방을 죽이는 것입니다. 사랑이 아닌 집착을 할 때, 애인이 변심을 하면 그를 쫓아가 죽여버립니다. 하지만 사랑은, 내가 마음 아파도 그를 살려내는 것입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집착을 하면서 그것을 사랑이라고 착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 세상에 와서 그것을 흔들고 진동시켜 버리는 것입니다. 거기서 하나님의 선택에 들어 있는 자들은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성숙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올바른 성도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제발 복음을 알아듣고 천국 가십시오. 착하고 선하게 살아서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던 이들이 천국에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들의 삶을 쫓지 말고 예수의 삶을 쫓아 그분을 배우십시오.

구구절절 말씀에 숨어 있는 그 예수를 배우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읽은 책을 모아둔 게 수천 권 정도 되는데, 예전에는 그것이 나의 '보화'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요즘에 그 책들을 보면 쓰레기 같습니다. 로이드 존스나 조나단 에드워드가 쓴 책이라도, 저에게는 그저 그들이 성숙하지 못했을 때 쓴 쓰레기일 뿐입니다. 예전에는 제 울타리로 삼고 신학의 근거로 삼았던 그러한 것들을 성경을 깊이 공부하고 알아가면서 쓰레기라 여기게 되었습니다. 차라리 소설책은 믿지 않는 자가 믿지 않는 세상을 썼기에 일관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써놓은 쓰레기들을 보면 더 답답합니다. 그 정도로 이 세상에는 믿음이 없고 복음과 신앙이 사라졌습니다.


 지금 알고 있는 그것이 진리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늘 시험하고 돌아보고 발전해야 합니다. 지옥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 기억하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만이라도 자기의를 쌓는 데 열심을 쓰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붙드는 데 쓰십시오. 성경을 읽고 그것이 이해가 되지 않으면 무릎 꿇고 통곡하며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진동시키실 때 그 속에 들어 있는 은혜를 꼭 붙들고 낙담하지 않는 성도가 되기 바랍니다.


 하나님 은혜에 감사합니다. 하나님, 내가 은혜를 압니까? 긍휼을 압니까? 복음을 압니까? 예수를 압니까? 하나님 나라를 압니까? 그저 '나'라는 우상 속에 갇혀서 내 부모, 내 자식, 내 돈, 내 명예, 내 인기를 챙기느라 하나님을 외롭게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럼에도 예수를 믿고 있다고 확신하는 이들에게 찾아가셔서 말씀해 주옵소서. 이 시대에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진동, 하나님의 부흥, 하나님의 위로가 임하게 도와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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