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목사/사도

사도행전 13

은바리라이프 2016. 1. 12. 13:42

27 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세하여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슬러

28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행4;27~28)


이 말씀을 공부하기 위해 한 부분을 더 찾아봅시다.


18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20 그는 창세전부터 미리 알린 바 되신이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21 너희는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벧전1;18~21)


 말씀에는 예수님이 창세전에 준비되었다고 나옵니다. "알리시다."라는 말은 사랑하여 택하셨다는 뜻으로, 창세전에 사랑으로 택하신 자가 예수란 말입니다. 그런데 왜 택하셨습니까?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을 제물로 바치려 한 것입니다. 이로써 우리는 역사가 시작되기 전에 십자가가 이미 준비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요한계시록에는 "창세전에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그 말은 창세전에 하나님의 계획 속에 예수의 죽음과 인류의 죄악 등이 이미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성경이 조금 다른 관점으로 보일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인간은 죄를 지었다.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는데 죄를 짓는 바람에 하나님의 계획이 갑자기 수정되어야 했고, 그 죄로 인해 예수가 보내심을 받아 죽어야 했고, 그로써 우리는 구원을 받았다."라는 식으로 성경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 몇 구절만 찾아봐도 그러한 모든 일이 하나님의 작정하심 가운데 있었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습니다. 게다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가리켜 "때가 이르렀다","때가 찼다."라고 표현합니다. 그 단어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그 시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시간대 속의 때를 말합니다.


 초막절이 되자 예수님의 동생들이 "형, 여기 있지 말고 성전에 올라가서 기적을 행해 봐. 그러면 사람들이 더 많이 올 거고 형이 더 일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을 거야"라고 합니다 그때 예수님이 싫다고 하면서 '때'를 이야기하고 동생들 모래 성전에 올라가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영원 속에서의 때가 이 세상에 들어왔고 그분이 정하신 일을 이루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가 되지 않아서 안 가고 때가 되어서 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원 속에서 일어난 일을 이 세상에서 경험하는 것이고, 그것을 시간이라고 합니다. 주기도문 기도를 할 때도,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시간대 영원 속에서는 모든 일이 이루어져 있습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통합된 개념이 영원이기 때문입니다. 즉, 그 속에서는 영원한 현재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기다림도 순서도 없다는 뜻입니다.


 아마존 강은 지구를 몇십 바퀴를 돌 만큼의 지류를 갖고 있고, 그 속에는 아직도 많은 부족이 원시인의 상태, 문명이 없는 상태로 아주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명이 쳐들어가 전염병을 옮겨서 70%를 다 죽여 버렸고 금광이나 자원들을 개발하려 하는데 원주민들이 방해가 되니까 총으로 다 죽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살아 있다는 증거가 없는 자들이었기 때문에, 죽음도 알지 못합니다. 근거가 없습니다. 그렇게 한 부족을 말살시키고 노예로 부리기도 했는데, 아직도 그런 일이 일어납니다.


 어떤 사람이 1월 1일에 그 아마존 강을 따라서 카누를 타고 출발했습니다. 또 어떤 이는 1월 2일에 카누를 타고 출발했습니다. 다른 이는 1월 3일에 출발했습니다. 각자 다른 시간대에 출발했고, 다른 공간대를 열심히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마어마한 상공에서 보면 그들을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것을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하늘이라 생각해 보십시오. 인류의 역사는 그런 판, 평면 위에 그려져 있어서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을 영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시간과 공간 속에서 아웅다웅하면서 살고 있지만, 사실은 전부 다 하나님 손바닥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분의 손안에서 인간의 선악과 사건이 제외되어 있다가 갑자기 튀어나올 수 있습니까?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없었는데, 갑자기 인간의 죄악된 행위로 갑자기 튀어나올 수 있습니까?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은 하나님의 약정 속에 다 들어 있는 것입니다.


 본문으로 다시 돌아가서, 말씀에는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와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서이 예수님을 죽인 것에 대해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라고 나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 일을 행하려 모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엄밀히 말하면 그들은 모두 그분의 뜻을 이루기 위한 소품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떠나는 자들은 정말 그분을 죽일 수밖에 없다는 죄악까지 폭로시켜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봐라. 너희가 떠나면 되겠어?"라고 물으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그렇게 소품으로 쓰이는 이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사람들이 재벌을 얼마나 부러워합니까? 한 달 용돈을 삼천만 원을 쓴다고 하는데, 그것은 일반 사람들이 받는 연봉입니다. 아니, 그렇게 버는 사람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대한민국의 평균 소득이 굉장히 높아졌다고 하지만 그것은 많이 버는 이들의 소득과 합쳐서 평균을 낸 것일 뿐 일반 사람들은 여전히 힘들게 벌면서 살아갑니다. 대학 학비는 계속 오르는데 한 달에 150만 원씩 버는 아버지는 아이들을 어떻게 학교에 보냅니까? 그런데 학교를 졸업하면 갈 데가 업서서 주유소에 기름 넣는 일에도 대졸자가 30명씩 대기하고 있답니다. 학자금 대출한 것을 어떻게 갚겠습니까? 결국 대학에서 신용불량자를 계속 만들어내는 꼴입니다.


 그러한 것은 다 죄악이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하나님 은혜를 떠나면 인간이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모두 자기만을 위해서 살기 때문에 돈이 지금 묶여 있습니다. 조금만 나눠주면 되는데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미국에서는 월드비전이나 적십자사 등으로 어려운 이웃을 돕자고 하면서, 실제로는 곡식 가격 변동을 막기 위해 창고에 쌓아놓았던 것들을 태평양에 갖다 버립니다. 그 많은 곡식이 풀리게 되면 곡식 가격을 잡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인간의 모습입니다.


 그 모든 것을 통해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먹고 쓰는 것보단 넘치도록 주었단다. 그런데 어떤 소수가 그것을 꼭 붙들고 있으니까 한쪽에서 말라죽는 것이다." 우리 몸도 마찬가지로, 영양이 돌고 돌아야 하는데 어떤 부분이 꽉 막혀 있으면 나머지가 비실비실대고 결국 암덩어리가 생겨 죽게 되지 않습니까? 결국 세상이 이와 똑같이 흘러간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어떻습니까? 노회에 가끔 가서 풍문처럼 들은 소식이 있습니다. LA에 국적도 알 수 없이 사역을 하지 않는 목사들이 삼천 명이나 있는데, 그중에 진짜 머리 좋은 이들이 이런 방법을 쓴다고 합니다. 사람은 몇 명 없는데 정사니 다 된 교회로 인자하고 박식한 모습으로 들어가서 그곳 실세를 하나씩 쫓아낸 이후에 그들이 다 나가면, 건물을 팔아서 그 교회의 이름으로 다시 부동산을 사고 서명자로 자기 혼자 들어간다고 합니다. 교회 이름으로 샀고 서명자가 자신이기 때문에, 법적으로 아무 이상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문 닫고 또 다른 교회와 합칩니다. 그 교회의 정산 완료가 얼마 안 남았거나 팔면 크게 이익을 남기는 곳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 안에 골치 아픈 사람들을 또 하나씩 쫓아내면 그 교회도 자신의 것이 됩니다. 실제로 그렇게 돌아다니면서 수백만 달러를 챙기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교회분이 상담을 한다고 찾아왔습니다. '누군가 교회를 팔아서 가지라고 해도 더럽고 무서워서 못 가질 텐데, 교회를 팔아서 자기 집을 몇 채씩 사고, 어떻게 그럴까?'싶었는데, 실제로 그렇게 당한 교인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설명을 쭉 하는데, 더럽고 지저분해서 더는 듣고 싶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왜 그런 이야기를 나에게 하느냐며 더는 하지 못하게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는 말이, 그 목사가 사비를 들여서 할머니 30명에게 금목걸이를 하나씩 다 선물하고 자기들이 뭐라고 들고일어나려 할 ㄸ마다 그 무리들이 난니를 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어떻게 전하느냐고 물었더니, 그런 것은 잘 모른다고 합니다.


 "당신이 잘못해서 그래! 말씀을 어떻게 전하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그냥 목사가 하는 설교를 받고 있으니 그 사람이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 아니겠느냐?" 성경에 대해 아느냐고 물었더니 아는 것 없다며 앞으로 공부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게 말이 됩니까? 자기들이 그렇게 해놓고 지금에 와서 목사가 집 팔아먹었다고 난리치는 것입니다. 그 목사는, 바보들이 앉아 있으니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계속해서 이해하지 못할 그런 소식들이 들리는데, 그런 짓을 하는 그들을 보면 '하나님이 없다'라는 것을 몸으로 증명하며 사는 사람들 같습니다. 그런 것을 보면서  교인이 '진짜 하나님이 없구나'하지 않겠습니까? 저에게 상담하러 온 사람들도 하나님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안 계신 것 같다며 왜 저을 찾아왔습니까?"라고 물으니, 말씀을 들었는데 새롭고 깨어 있는 것 같아서 그랬다고 합니다.

 그들의 말에, 말씀을 공부하라고 했습니다. 그렇지 않고는 누가 어떤 일을 했다는 둥 그런 이야기를 하지 말라며, 그렇게 만든 건 당신들 탓이라고 했습니다. 하루에 15시간씩 일해서 그 사람들 집 한 채씩 사는 데 보태는 꼴인 것입니다.


 "목사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그런 말을 하지 마십시오. 사탄이 목사인 행세를 하는 것입니다. 신학교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란 사실을 믿는 사람 손들어 보라고 하면 하난도 안 드는데, 그게 사탄 아닙니까? 그들이 전부 교회 개척해서 건강하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드러내놓고 말하면 이단으로 몰릴까 봐 숨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신학교 다닐 때 분명히 봤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했는데 아무도 손을 들지 않는 것입니다. 그게 무슨 사명감을 가진 종입니까? 그냥 성경을 믿지도 않고 어떤 집회서 불 한 번 받고 덜덜 떨다가 '아 이게 콜링이구나'하고 신학교에 몰려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와서 그런 짓들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 모습들이 이미 초대교회 때 있었습니다. 요한이 거짓 선지자, 거짓 사도가 말세 때는 어마어마하게 많을 텐데 이미 와 있다고 합니다. 지금은 얼마나 더 많이 와 않겠습니까? 그리고 그런 거짓 사도나 선지자가 절에 가 있겠습니까? 힌두교 사원에 있겠습니까? 그들은 바로 교회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그런데 '목사'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는 자에게 대적하면 저주받고 벌받는 줄 알고 그냥 슬금슬금 피하기만 하는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은 이미 하나님의 손바닥 안에 계획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떠난 자들은 그렇게 살 수밖에 없어. 그리고 교회야, 너희들 교회 안에서도 한 번 봐라. 하나님의 이름이 불림을 받지만 그분의 이름이 만홀히 여김을 당하고 있는 꼴을 한 번 봐라. 그러면 이제 너희는 어떻게 살아야 하겠니? 내 말을 들어야지." 바로 우리에게 그것을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에 의해 작정된 것으로, 그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배워야 할 바를 잘 배우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분의 백성으로 택하기 위해 아들을 보내어 죽이는 손해를 감당하실 수밖에 없었다는 것, 하나님이 얼마나 큰 손해를 감수하고 우리를 작은 예수로 만들어냈는지를 가르쳐주시고자 죄와 그것이 왜 하나님이 죽어야 하는 큰 이유인지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더럽고 추악한 것들이 우리 눈에 보이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다 그렇게 사는 거지'가 아니라 '그것은 진짜 죽일 일인데'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그 안에 바로 내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우리는 언제든지 그 길로 갑니다. 제가 예전에 은행에서 일을 할 때 전두환 대통령 비자금 캐내고 있었는데, 상상할 수도 없는 돈이 계속 숨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몇 단계씩 걸쳐서 돌고 도니까 찾아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 사람은 재사니 28만 원 밖에 없다고 하니 답답할 노릇이었습니다.


 그런데 조사를 하다 보니 '그 정도 자리에서 이거밖에 못해 먹느냐? 나 같으면 이렇게 어수룩하게 해놓고 숨어 있고 그렇게 하진 않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분명 그리스도인임에도 그런 생각을 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돈을 떼어먹을 만한 여건을 만들어주지 않아서 그렇지, 만일 그 자리에 있고 사람들이 계속해서 돈을 내민다면 어느 누가 그것을 거절하겠습니까? 돈의 힘은 무시무시한 것입니다. 경험하면 할수록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대단한 부자가 아닌 것을 기쁘게 여겨야 합니다.


 인간이란 존재는 '나'밖에 모릅니다. 자기 안에 자꾸 쌓아놓지 말고 계속 털어서 남에게 주십시오. 하나님이 나의 노후대책이 되고 사후대책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도 불안하다고 하는데, 그럼 돈은 믿을 만하고 하나님은 믿을 만하지 않다는 것입니까? 그것은 하나님보다 돈을 더 의지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살지 마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청지기의 역할을 하라며 맡기는 것들 잘 털어서 성도로서의 구별된 삶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예정과 작정 속에 들어 있습니다. 그 말은 우리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우리의 인생 또한 그 안에서 못 빠져나온다는 것입니다. 어차피 정해져 있고 하나님이 이끌어가시는 삶인데, 불쌍한 사람도 도우면서 팍팍 쓰고 사십시오. 그렇게 쓰면서 사는 것이나 꽁꽁 싸 들고 곰팡이 생길 때까지 놓아두면서 사는 것이나 세 끼 먹는 것은 똑같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예정을 잘 공부하고 그에 맞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은혜에 감사합니다. 하나님 이렇게 말씀을 들으려 모이게 하셨는데 우리가 날마다 하나님의 백성다운 삶을 잘 살아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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