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목사/사도

사도행전10

은바리라이프 2016. 1. 12. 13:39

사도행전10#녹취

 

_우리가 세상에서 복이라고 여기고 있는 것들을 가차없이 가시는 하나님의 은혜, 세상사람들은 그것을 저주라 아니면 하나님의 무관심이다 이렇게 판단을 하지만 하나님, 복음을 아는 우리들은 바로 삶의 현실이 세상 사람들은 정말 어둡고 힘들고 고통스럽게만 여기는 그러한 현실들이 우리에겐 때때로 기쁨과 평안한,그러한 삶의 순간으로 다가오게 됨을 감사드립니다.

 

하나님 어찌 인간의  이성과 어찌 인간의 지식으로 어찌 삶을 그렇게 우리가 받아들일 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고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지금 일하고 계시다 라는 증거인 것입니다. 그래서 아침에도 우리는 하나님을 찬송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세상에서 그렇게 계속해서 우리는 계속해서 부인되게 해주시고 우리가 의지하고 있는 것들이 떨어져 나가게 주시옵고 오직 하나님과 오직 자신,단독자로. 올바른 관계 속에서 하늘의  안식과 평안을 누릴 있는 그런 자로 성숙되고 완성되어지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사도행전 4 17절부터 20절까지 봅니다. 제가 봉독하겠습니다.

 

사도행전 4

 

17. 이것이 민간에 퍼지지 못하게 저희를 위협하여 후에는 이름으로 아무 사람에게도 말하지 말게 하자 하고

 

18. 그들을 불러 경계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19.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20.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없다 하니

 

아멘

 

관원들이 재판장에 베드로와 요한을 세워놓고 예수의 이름으로 이제 절대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아라. 라고 요구를 했어요. 예수의 이름으로..

 

그랬더니 베드로와 요한이 하나님 앞에서 내가 니들이 가르치지 말라고 하는 니들 말을 들어야 되냐..  아니면 가서 가르치라고 나에게 말씀을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되냐?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에서 지금 중요한 것은 베드로와 요한은 자기들이 공부한 어떤 헬라의 철학이라든지 ( 사람들은 그런 것도 몰랐지만) 세상적,어떤 학식이라든지 정보, 여러가지 정보 이런 것들을 동원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하는 방법으로 가르친 아니라 그냥 '보고 들은 ' 가르쳤어요.

 

"보고 들은 "이라는 기독교의 역사성을 가리키는 거예요.역사성이라는 것은 실제로 일어난 ! "복음이 역사 속에 실제로 일어났다" 라는거에요.

 

..그러니까 영적으로 영원 속에서 하나님이 창세 전에 내가 요러요러한 백성들은 요렇게 구원해 내야지. 그걸로 그냥 완성이에요.

 

전지전능한 분이 영원 속에서 시간과 공간 위에 있는, 그런 영역 속에서 어떤 계획과 뜻을 펼쳤다는 자체로 완성이거든요? 그런데 시간과 공간이라는 역사 속에서 바로 복음의 현실이 액츄얼라이징되어서..이제  나타났다는거예요.

 

구약 창세기1장부터 시작해 가지고 말라기까지 계속 율법이 주어지고 제사가 주어지고 , 여러가지 전쟁이나 포로기 이런 것들을 동원을 해서 인간은 예수 만을 믿어야 하는가 그리고 예수 만을 의지하지 않을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를 역사로 보여주신거죠.그죠?

 

그래서 바벨론 포로나 앗수르의 공격,아람의 공격, 애굽의 공격 이런 것들을 들어서 하나님이 하나님만을 의지하지 않는 죄에 대해서 얼마나 진노하시는가를 보여주고 그게 [복음의 실제화] 라는거예요.

 

담에 말라기에서 "~이제 성전 문닫자" 그런다고요. . 인간의 힘으로 하나님 나라에 도달할 있는 방법으로 주신 성전이에요.(이따 저녁때 우리가 한번 자세히 살펴 보겠지만) 자체가 예수님의 삶이에요.성전이라는것이.

 

근데 이제 성전을 인간의 힘으로 도달하려고 하는, 그러한 시도들을 인간들이 했죠? 그래서 성전을 닫아 다오.하고 이제 성전, 성전을 헐어라.내가 사흘만에 성전을 짓는다 라고 하신 예수님.그것은 성전이신 자기 몸을 가리켜 말이다 그러잖아요?

 

성전의 진짜 원형이 오셔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어떻게 구원해 내는가를 액츄얼라이징해서 설명하는 거죠.

 

신약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신약에서도 빛이 왔는데 , 진리가 왔는데 죄인들이 알아보지 못하고 계속 배격해요. 쫓아 냅니다. 못박아 죽여버려요.

 

그럴 때에 예수님께서 자기를 못박아 죽이는그들을 위해 예수님이 쏟아붓는 사랑과 은혜의 (그러한)모습들을 계속해서 신약의 사복음서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서신서에서 계속 설명을 주는거죠. 그러니까 성경 전체는 그냥 예수에 관한 책이에요.

 

누가복음24장에 보면 엠마오 마을로 내려가는 제자에게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시죠? '성경이 기록한 바는 전부 나에 대해 기록된거다' 그래요. 때의 성경은 뭘까요? 구약이죠. 아직 신약이 써졌을 때니까.

 

구약 성경조차도 그렇게 나에 대해서, 예수에 대해서 기록한 것이라면 신약은 더할 나위가 없죠. 신약도 역시 예수에 관해서만 기록이 되어 있는거예요.

 

근데 그렇게 제자들에게 여러가지 복음의 현실이 예수님과의 동행하는 삶을 통하여 주어졌어요. 근데 제자들이 하나도 알아 먹었어요.그게 무슨 뜻인지.그죠? 혈루병 않던 여인을 일으킨 ,38년된 병자를 일으킨 여러분 전부 제가 설명을 해드려서 아시겠지만 전부 구원이 무엇인가를 설명하는 였잖아요? 그쵸?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들이 그냥 기적 만을 바라보고 예수님이 돌아가시기 얼마 전까지 누가 높으냐를 갖고 싸웠던 사람들이에요. 예수님이 나는 십자가에서 수난받고 죽어야 .  그랬는데 요한과 야고보, 형제가 다른 제자들 있는 데서 낯짝도 두껍게 우리들 영의정,좌의정 시켜주세요. 라고 얘기를 했죠. 근데 나머지 제자  어떻게 했다 그래요? 분노했다 그래요.  싸운 거예요.  자기들끼리 .  저것들 봐라 이거.  우리들 앞에서  지들이 높아지겠다고 하네?  그러니까 제자들은 예수님 돌아가실 때까지 그냥 자기 자신에 관해서만  관심을 두고 있었던 거예요. 우리랑 별반 다를 없죠? 그죠?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전부 우리는 자신을 우상삼아 살고 있지 않습니까? 아니라고 해도 부정되지 않는, 본인에게는 부정되지 않는 사실이잖아요. 그렇게 그러한 자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성경을 풀어 해석을 해줬어요. 그리고 성경을 그들이 겪은 일과 연결하여....이게 이거구나..라는 깨달음을 주기 위해 성령을 보내신 거예요.여러분에게도 성령이 오셨어요? 오셨어요? (아멘) 오셨죠?

 

 그럼 여러분의 지금 겪는 삶은 성령에 의해서 어떻게 해석이 되어야 됩니까. "복음이 액츄얼라이징, 실제화 되어져 속에서 이렇게 살아지는구나" 해석이 되야지. 문제는 이렇게 항상 막힐까. 나는 이렇게 예수 믿는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병이 걸릴까. 나는 이렇게 망하지? 현실만을 바라봐선 안되는거예요.

 

여러분은 복음을 그대로 살고 계세요. 예수의 삶을 여러분이 살고 계시는 거예요. 그리고 삶을 통하여 여러분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하나님의 말씀과 여러분의 삶을 통하여 계시를 받는 거고 그걸 통하여 여러분도 사도들과 똑같이, 똑같이 하나님께 받은 전하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을 열두 사도안에 넣어서 "너희들은 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리라" 라고 이렇게 증인이라고 말씀을 주시고 하나님이 올라가신거 거든요.

 

그러니까 여러분은 어떤, 누가 놓은 책이나 누가 써놓은 논문이나 누가 써놓은 주장이나..이런 것들.. 사람이   아무리 훌륭한 신학자요, 목회자요.그렇다 할지라도 그것을 가지고 전하는 아니라 여러분은 여러분 안에서 깨달아지고 여러분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주어진 바로 복음의 현실을 전하는거예요.

 

그러니까  논리적으로 무슨 교리나 신학을 정립을 해서 전할 생각을 마시고 여러분이 여러분의 속에 지금 예수의 십자가와 자기부인의 삶이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먼저 깨달으셔야 해요.

 

여러분이 예수의 십자가를 이야기하고 줄줄이 구약부터 신약까지를 줄줄이 꿰면서 복음을 설명하는 데도 사람들이 코도 찡끗 안하는줄 아십니까?

 

속에서 경험이 안됐기 때문에 그래요. 삶을 해석하는 눈이 아직도 나에게 없어요. 그런데 무슨, 전합니까? 전해지지 않아요.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 안에서 예수의 십자가를 경험하셔야 돼요. 여러분은 세상의 힘의 원리가 어떻게 십자가의 원리를 공격하는 지를 체험하고 계셔야 돼요. 지금요.

 

그리고 삶이 이게 패배의 삶이 아니라 저주의 삶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삶의 원리이고 이게 진짜 승리의 삶이구나 라는것을 여러분이 스스로 깨달으셔야 돼요. 때에 진짜 전도가 나오는 거예요.

 

전도라는 단어 자체가 "설교"라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여러분은 모두 설교를 하는 분이어야 돼요. 전도의 미련한 . 단어가 설교예요. 모든 인간은, 모든 하나님의 백성은 설교를 해야 되는데 사도들처럼. 설교는 자기의 속에 일어나는 복음의 현실을 성경과 연결시켜 이게 바로 이러한 거구나를 깨달은 다음에 생생한 계시를 갖고 나가는 전도,설교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목회자가 힘들다 라는 공부를 많이 해야 되고 기도를 많이 해야 되고 가정을 희생해야 되고 잠을 제대로 못자고. 이게 아니예요. 그건~ 세상에 나가서 일하는 분들이 많이 고생하죠.  하루에 열네 시간, 열다섯 시간씩 일하는 분도 계시잖아요.거기에 비하면 목사가 이케 대단히 고생하는 사람입니까? 하루종일 앉아서 공부만 하면 되요.  그리고 설교원고 쓰면 됩니다. 

 

그러나 속에서 십자가. 설교를 할라면 (적어도 제가 일주일에 8 설교를 하는데) 설교를 할라면  설교가 사람의 몸에서 살아져야 돼요. 하나님이 그렇게 검증을 다음에 위에 세우신다는 말입니다.

 

사랑을 설교할라고 때는 사랑이 뮌가를 절절히 경험하게끔 그리고 얼마나 인간은 사랑할 없는 존재라는 것을 폭로시킨 다음에 올려요. 인내를 설교할 때는 인내라는 것이, 예수님의 인내라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아픈 것이었는가를 경험하게 하고 올리세요.  예수님의 마음을 설교할 때는 분이 배신당했던 배신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아픈 것이었는가를 경험하고 올라가는 거예요. 목회자는 그래서 힘이 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단호하게 말씀드려요. 여기에 거지가 앉아 있다 할지라도 당신하고 나하고 삶을 바꾸라고 한다면 나는 오늘이라도 바꿉니다..라고 얘길 할래요. 당신하고 나하고 .  당신이 얼마나 처절하게 사는지 모르겠지만 당신과 나와 삶을 하루만 바꿔서 살아봅시다. 하루만 바꿔서 살아봅시다. 얘기하는 거예요.

 

마찬가지예요. 목회자 뿐만 아니라 여러분도 지금 하나님의 부탁의 말씀을 우리가 너무 경홀히 여겨서 그렇지 우리 모두가 전도하는 자요 증인이요,설교자예요. 그렇다면 여러분 자신도 바로 거기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으면 여러분 자신의 삶이 분명히 나타나게 되어 있어요. 강력하게!

 

근데 여러분은 듣고 나에게 유익만을 챙길려고 앉아 계시기 때문에 내가 나가서 나도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새창조에 기여를 하는 자로 부름을 받았다 라는 것을 전혀 인식하지 않고 이기적으로 나는 그냥 말씀을 계속 받아서 나는 세상에서 그거를 갖다가 교훈삼아, 아니면 삼아 남들에게 존경받고 그냥 평안하게 그리고 편안하게 살거야 . 상태에 머물러 있으니까 변화가 없는 것입니다.

 

겪으셔야 되는 거예요.  기독교는 다이내믹이 있는 거예요. 역동적인 거예요. 복음은..논리가 아니란 말입니다.

 

설교를 다음이나 아니면 네이버나 이런  인터넷 포털 사이트 있죠? 그런데 가면은 목회자들하고 신학생들이 만들어 놓은 카페들이 있어요. 양무리 마을이라든지 아니면 아고라에도 있고요.

 

회원이 명이 넘으니까 말씀에 대해서 관심이 있는, 전세계 한국 목회자,신학생들이, 여기 유학 있는 독일에, 스코틀랜드에  유학을 있는 그런 신학생들, 박사과정에 있는 사람들도 모여요.  그래서 신학에 대해서 토론을 하고 해요.  근데 저는 자주 들어가요. 거기에.

 

왜냐면 공부를 너무 열심히 사람들이 많아서 논쟁이 하나 붙으면 댓글이 수백개가 달리는데 그게 의견이 옳다 라는 argue 불과해요. 그래서 그런데 참여 안하는데..

 

어떤 신학생이 설교를 ~~ 갖다가 올렸어요. 그래서 거기 있는 신학생이나 목회자들이 계속 그걸 들었겠죠?  그니까 공부 많이 하고 지금 이제 논리적으로 학문적으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라는 신학자들이 있으니까 평을 아니예요. 그니까 평을 하다가 결국에는 저에게 인제 질문을 해와요. 그런 분들이.

 

  신학자가 저에게 그러더라고요? 당신의 설교는 인사이트가 있다. 그런데 어느 책에서 보구 그거를 갖다가 설교를 한거냐 . 라고 묻더라구요.

 

근까 그런 사람들의 사고는 뭐냐면요? 예전의 아주 훌륭한 신학자들이 설교해 놓은 테두리가 아니면 이거는 불안하다 라는 마음이 여전히 있는 거예요.  ? 복음이 자기의 삶으로 살아지지가 않았었기 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누가 쓴거냐 로이드존스의 이론이냐 조나단 에드워드의 이론이냐 게할더스 보스의 이론이냐? 아브라함 파이퍼의 이론이냐? 핼먼 바빙크의 이론이냐? 이런 거를 인제 어디서 보고 한거냐를 묻는 거예요. 저한테..

 

내가 참고하는 책은 하나 밖에 없다. 성경! 당신들이 말하는,그러한 훌륭한 신학자들은 나도 영적 스승으로 삼아 열심히 연구하고 공부한 분들이 맞다. 그러나 그들이 써놓은 책이나 논문은 그들의 신앙이고 그들의 신학이며 내가 설교를 적어도.

 

저는 초창기에 설교를 때는 그런 책들을 두루두루 정말 지금보다도 배는 연구를 하고 해서 짜집기를 해서 설교를 만들었어요. 그것도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립니다.  많이 걸려요. 왜냐면은 테두리에서 벗어나면 안되니까 일단. 초보 설교자가 자기 것을 내놔선 안돼요. 처음부터.

 

그런데 그렇게 연구를 하다가 사람들 것을 하나하나 내가 이제 갖게 되면 나에게는 신학의 울타리가 생기게 되는 거예요. 그리구 울타리 속에서 성경을 어떻게 설명해야 될까는 이제 몫이란 말입니다. 

 

설교자는 성경 66권을 머리 속에 ~ 떠올려 놓고요. 그리고서 오늘 내가 설교할 본문의 이야기를  성경 66 안에 들어 있는 구절들을 하나 하나 찾아내고 꿰어서 그걸 여기 앉아 있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성경은, 말씀은 어떻게 유기체적으로 연결이 되어 있는가를 설명하면 되요.

 

그런데~ 그걸 어느 책에서 보고 그렇게 한거냐구...묻는 아직도 자기는 권위있는 신학자나 권위있는 목회자의 그런 이론,그것만, 거기 안에서만 안전하게 전하고 배우고 하겠다는 거죠?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나중에 여러분이  성경 전체의 주제를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와 하나님 나라, 은혜라는 주제로 붙들고 하나로 있는 실력이 되면 다음부터 여러분은 다른 참고 도서를 필요가 없어요.

 

요한 웨슬리가 어마어마한 독서광이었습니다. 20 때까지 읽은 책이 삼천 권이 넘었으니까. 그런데 요한 웨슬리가 회심을 하고 요한 웨슬리는 평생 밖에 읽었어요. 성경!

 

사도 바울은요. 베드로나 요한과는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당시에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나 소크라테스같은 헬라의 철학에 능통한 사람이었고요.  아덴에 가서 실지로 그들이 거기에 있는 스토아학파나 에피크로스학파 사람들이 흔히 논쟁의 주제로 내놨던,그런 어떤 철학적 이야기를 갖고 설교를 적도 있잖아요. 엄청 깨졌죠? 근데.ㅎㅎ

 

갔다 와서 말이 뭐에요.  내가 예수님의 십자가 외에는 쓰레기처럼 여기겠다.라고 한거죠? 하나님의 복음은 그렇게 전해지지 않아요. 담부터는 예수님의 십자가만 이야기 했어요. 내가 십자가 외에는 알기를 원치 않는다. 라구.

 

그냥 신문에서 얘기,영화 얘기 이걸 갖고 어떤 사람은 진짜 지금 한국에, 워싱턴에 있는데 굉장히 존경받는 신학자였고 교수였고 지금도 거기에서 교회의 목회를 하는데 소설책 갖고 설교를 해요. '엄마를 부탁해' 갖고 여섯 , 신경숙의 소설을 갖고 여섯 편의 설교를 하더라구요? 아바타 갖구 몇개 설교를 하구. 여러분, 그런 것들은 설교의 주제가 수가 없어요. 그런데도 사람들이 전부 스크랩을 해다가 ' 이런 진리가 있어?' 라고 광분을 해요~ 

 

우리 사도들은 그렇게도 똑똑하고 명석한 사도 바울조차 아볼로같은 사람도 굉장히 훌륭한 사람인데 십자가 이외에는 다른 전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예수님이 자기에게 계시해 것만! 전했어요. 삶을 통하여 자기가 깨달은 것만!

 

그래서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서 어떤 평가를 받았습니까? 말에 졸하고 미련한 자라는 평가를 받았어요. 똑똑한 사람이요.  . 사람도 세상의 철학이나 아니면 자기가 배웠던 학식같은 놓으면서 다른 이들과 논쟁을 하고 설교를 그런 것들을 적당히 섞어서 썼으면 미련한 자라는 소리 절대 듣습니다.

 

가말리엘의 수제자였다니깐요? 쉴라이까 샤마임을 하나로 통합한, 철학으로 따지면 칸트같은 사람이에요 가말리엘이.. 사람의 수제자란 말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런데 그까짓 소크라테스,플라톤의 이론같은 몰랐겠어요? 플라톤은 대단한 사람인 아세요? 사람은 여러분 레슬링 선수였어요~.그리스 헬라에서 가장 유명한,레슬링 챔피언이었습니다. 그렇게 대단히 공부를 많이 했겠어요.

 

사도 바울은 적어도 사람보다 많은 깨달음이 있었을 거예요. 열심도 있었고 근데 미련하게 매일 똑같은 얘기만 하는 거예요.  너희들은 죄와 허물로 죽어 있었던 자들인데 그래서 아무런 소망이 없던 자들인데 예수님이, 말씀이신 분이,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내려오신 말씀이신 분이 너희들에게 맞아 죽었다. 그러므로 말미암아 너희 죄가 해결이 되었고 분이 사신 의가 너희에게 전가되어서 너희들은 이제 구원을 받게 된거야 그걸 믿기만 하면 . 더이상 너희들은 율법이나 제사에 묶여 있지 않아도 . 매일 똑같은 얘길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사람은 말이 저렇게 없냐? 그래서 '말에 졸했다' 말을 더듬었다가 아니예요.  십자가와 예수만 전하니까 말에 졸한 거예요. 그러고 미련하다 취급을 받았어요.  ? 배설물로 여겼어요. 그가 갖고 있던 철학적 지식,세상적, 인문과학적 사고 버렸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졸한 사도 바울의 설교를 통하여 초대교회가 성장해 나아간 것입니다.그런 거예요, 여러분.

 

설교는 목회자가 갖고 있는 어떤 지적 정보의 전시장이 되어서는 안돼요. 어렵고 힘든 단어들을 나열한다고 해서 '아우 목사님 똑똑해. 공부 많이 했어.' 이리로 가면 안돼요. 입에서 예수가 나오는지를 보셔야 됩니다. 십자가가 나오는지를 보셔야 되는 거예요. 그거 외의 거는 복음 아닙니다.

 

다른 정보는 책을 읽으세요. 좋은 비디오들 많으니까 비디오들 보세요. 교양비디오 같은 . 그냥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특히 공부 많이 하잖아요? 그니까 그들이,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인정하지도 않은 그들이 목사가 되고 신학사가 되어서 교회의 목회도 하고 신학교에서 교수도 하고 한단 말입니다. 그래놓고는 무슨 현대 설교자들의 설교를 비판하는 책도 내고 '설교는 이래야 된다. 기독교인은 이렇게 살아야 된다.' 근데 시대의 교회가 그것들을 베스트 셀러로 만들어 주고 있어요. 교회를 비판하면 옳은 알아요. 그게~.그걸 개혁이라고 생각한단 말입니다.

 

절대 아닙니다. 여러분, 정말 위험한 정용석 목사라고 대구성서 아카데미, 양반은 책을 두권을 냈는데 양반은 조직 신학자예요. 그리고 자유주의 신학자입니다. 절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인정하지 않아요. 그리고 근데 그런 말을 안하죠. 거기는요. 예배가 끝나면 장로님들하고 목사하고 앉아 가지고 식사시간에 동동주를 따라 마셔요. 자유하라는 거죠. 그건 만용입니다, 여러분.

 

그리고 그냥 속에서 예수라는 본을 좇아 깨끗하게 살면 된다. 이거에 머물러 있어요. 근데 양반이 다른,  한국의 유수의 목사들을 비판하는,그런 책을 썼다고 해서 사람이 무슨 개혁자인 알아요. 신학생들조차도. 양반이 비판했던 책을 제가 비판을 해서 사람 웹사이트에 올렸어요. '당신의 설교는 사람들의 설교의, 발톱의 만큼도 안된다' 라고 제가 아주 난도질을 했어요. 예수가 없어요~~. 적어도 신비나 기복을 외치는 사람들은 기본적인, 기본은 갖고 있는 사람들이 그래도 있어요. 그게 예수와 십자가와 보혈입니다. 심판!이예요. 그런 것도 없이 열심히 몸을 정신을 수련하고 공부해서 깨끗하게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사람들에게 인정 받으며 살자! 그게 무슨 성경 해석입니까. 그걸 복음이라고 합니까,여러분?

 

여러분이 분별하셔야 돼요. 속에서 여러분 복음을 사시면서 끊임없이 고민하셔야 돼요. 성도는 어떻게 살아야 되며 속에 이러한 일이 찾아오는가? 절대 멍하니 살지 마세요.

 

여러분, 하나님  언제 오실지 모릅니다.내일 오실지 모레 오실지도 몰라요. 사람들이 하나님 오실 쯤이 되면 무슨 대단한 징조가 보일 거라고 생각들 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노아의 때처럼 온다고 그랬어요. 사람들이 시집가고 장가가고 밭에 가서 밭도 갈아야 되고 소도 사야 되고 그래서 아무도 노아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잖아요. 불현듯 내려온 저주의 홍수였습니다. 여러분의 삶에 삶이 언제 닥칠지 어떻게 알아요.

 

여러분이 오늘 돌아가시다가 무슨 사고를 당해서 이제 경황없이 세상을 떠나게 된다면 자체! 날이 심판이거든요? 영원 속에서는 시간의 순서가 없기 때문에..근데 심판대 앞에서 자신있으시냐고요.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서 도대체 나는 천국에 들어가야 하는 지를 설명할 있을 만한 여러분의 경험과 체험과 여러분의 복음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여러분 하나님 나라에 가서 절대 천국못 들어갑니다. 복음을 열심히 사시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에서 벗어나서 하나님과 하나님이 사랑하는 다른 이들에게 '' 향했던 사랑을 어떻게 옮길까를 고민하시면서 그게 안될 엎드려서 기도하며 사는 거예요.

 

..오늘 하루 그런 하나님의 은혜와 은총이 임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아침에도 우리에게 말씀을 주셨습니다. 복음은 사는 거라고 복음은 경험하는 거라고 그리고 그렇게 보고 들은 것을 증거하는 것을 전도요, 설교라고 한다고...하나님. 우리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나님. 그런데 우리는 그런 십자가와 자기부인의 복음..그걸 살기보다는 그냥 십자가와 자기부인의 삶이 사라지고 소원이 이루어지는, 그런 편안한 삶만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그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증인이 되겠습니까..보고 듣고 경험한 없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증인이 되겠습니까.

 

아버지 하나님, 참담한 현실...불쌍히 여겨 주옵시고 땅에 다시   하나님의 부흥의 때를 허락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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