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목사/사도

사도행전 08

은바리라이프 2016. 1. 12. 13:38
사도행전 4장 12절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우리가 오늘 함께 나눌 말씀이 사도행전 4장 12절인데 너무나 잘 아는 말씀 이죠? 여러분들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다. 다 아시는 말인데 여러분들 정말 그렇게 생각 하세요? 구원이라는게 뭡니까? 인간들이 생각하는 구원! 이 고통과 슬픔과 눈물의 고해 같은 인생에서 행복으로 이동을 하는걸 모든 인간은 구원이라고 이야기해요. 그걸 성경에서 간단한 단어로 `구원'이라고 표현을 한것이죠?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구원과 세상이 당도하려고하는 구원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그걸 올바로 분별 할 수 있는 그러한 눈을,분별력을 키워야 되요. 어디서? 교회에서. 여러분 구원이라는게 과연 우리가  이땅에서 모든 슬픔과 눈물과 고통 속에서 벗어나는 것만을 말하는 것일까요? 물론 그 구원이 완성 되는 순간 우리는 그 모든 것으로 부터 자유로워집니다. 왜? 성경이 요한 계시록에서 우리에게 약속을 했기때문에. 그렇지만 이땅에서도 우리는 구원을 얻었다.라고 하며 구원을  누릴 수 있다라고  하는데 이땅에서 우리가 구원을 누릴때, 이 죄속에 빠져있는 이세상에서 구원을 누릴 때에는 절대 슬픔과 눈물과 고통과 고해같은 그런 인생속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여기 보시면은 천하인간에 다른 이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 라고 이야기를  했어요. 근데 그 전구절에 뭐라고 나와 있냐면은 너희 건축자들에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에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라는 말 다음에 그 말이 붙어있단 말이에요. 근데 너희는 누구였어요? 그 앞에 사두개인 성전 맡은자 성전경찰에 수장이라 그랬죠? 그사람은요.거기다가 대 제사장 가야바와 안나스 두명이라 그랬어요. 그때는 하나는 로마가 잘랐는데 그럼에도불구하고 유대인들이 추앙했던  제사장이었고 하나는 로마가 세운 제사장 이었죠? 사위와 장인 사이였습니다. 가야바와 안나스, 그리고 여러 그 산헤드린 공회원 벼슬아치들이 모여있었단 말에요. 그들을 가리켜 `너희 건축자'라고 이야기 하고있죠? 시편 118편을 인용한거에요. 예수님도 인용한바 있는 바로 이 말씀 그러면 너희 건축자는 뭐라그랬어요? 너희들 건축자,너희들은 지금 뭔가를 건축 하고 있는 자들이란 뜻입니다.
 
뭘 건축하고 있어요? 그들이 세상의 힘을 가지고 이 세상에서 다윗왕국의 화려함을  꿈꾸던 자들이었고 자기들에게는 그런 유토피아를 만들 능력이 있다! 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니까 이세상에서 행복한 유토피아를 건축하던 자들이라는 뜻이에요. 그들이 다 그들이 예수를 때려.죽였잖아요. 지금 그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성전 미문에 앉아있던 앉은 뱅이를 일으킨 그 제자들을 또 똑같이 심판 하고 있는거에요. 산헤드린 공회에서 만장일치가 되면 사람 죽일 수 있습니다. 그들이 지금 모여있는 거에요. 그들에게 베드로가 지금 너희는 건축자들이다 라고 이야기 하고있어요. 세상을 건축하려고 하는 건축자들 그 창세기에서 건축자들에 대한 아주작은그림이 나오는데 가인이 제일 먼저 동생을 때려죽이고 하나님에게 쫒겨가 제일 먼저 한게 에녹성을 건축 한거에요.
 
자기를 지키고 자기를 보호하기위해서 세상것으로 자기 울타리를 쌓는자의  최초에 그런 원시 모형을 보여주는 거죠. 그리고 두번째는 자기들의 힘으로 하늘에 한번 이르러 보겠다고 했던 기특한 생각을 한 바벨탑을 건축 했던 이들이죠?  그런 건축자들이 지금까지 계속해서 바벨탑을 건축 하고 있고 자기를 둘러싸는 에녹성, 에녹성이란 말은 바치다라는 뜻이에요. 나에게 바치는 나를 안위하고 편안하게 만들고 보호 할 수 있는 이세상 모든 신들을 추구하며 나를 보호할려고 하는 그런 건축자들 그들이 예수를 어떻게 했어요? 죽였죠. 우리의 진정한 행복과 만족은 그 예수라는 모퉁이돌을 세워놓고 그 예수가 짓는 그 예수라는 집안에 들어가는 하나님나라에 들어가야 우리는 비로서 행복하고 만족 할 수 있는데 그들은 자기들이 힘이있다고 생각했고 성을 쌓아서 하늘까지 오르려고 했으니 그것들이  우리의 지금 실존이라는 말입니다.
 
나는 능력이 있고 가능성이있다! 라는 것이죠? 그런 자들이 예수님이 와서 너희들은 아니야. 자기십자가를 지고 너희들은 날마다 죽어야돼. 너희들 에게는 아무 능력이 없어! 너희들은 착하게 살아서 천국 갈 수 있는게 아니야! 도덕적 윤리적인 그런 어떤 규범을 지켜서 천국 가는게 아니라니까.. 제사지내서 ,십일조 많이해서 천국 가는게 아니야 나만 믿어야되! 라고 이야기 했어요. 나만 믿어야되! 그게 자존심을 건드린 거에요. 인본주의의 자존심을 건드린 거지요. 유대주의의 자존심을 건드려버린 것입니다. 그랬더니 그들이 예수를 못박아 죽여버렸어요. 그게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라는 뜻입니다. 건축자 이세상의 유토피아의 건축자들은 그 예수라는 모퉁이돌을 반드시 내다 버리게 되어있어요. 왜 내가 예수만 의지해야돼? 나도 열심히 교육받고 열심히 수양하고 열심히 착하게 살자고 애쓰면 나도 선한 인간이 될 수 있을것 같은데 왜 내가 예수만 믿어야돼? 예수를 믿어야 된다라는건 천하인간에 다른 이름을 준게 없다는건 이세상에 돈이나 착한 일이나 도덕이나 윤리나 사회법이나 아니면 우리가 맺고있는 관계나 이런 것들이 절대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하니까 그거전부 끊어내고 예수님만 나의 행복에 근원이군요...로 가야되는게 성도라는 뜻이라구요. 근데 우리가 하고있나요 지금? 그렇게 못 삽니다.
 
예수만 어떻게 의지하고 살아요.그래서 예수님이 우리안에 뚫고 들어오시는 거에요.뚫고 들어오셔서 뭘 하십니까? 내가 지금 힘으로 여기고 있는 것들을 예수가 하나하나 끊어내고 있는 거에요.그래서 예수가 검으로 오셨다!라고 이야기 하는 겁니다. 내가 너희에게 검을 주러왔다. 거기에는 가족 관계까지 들어가 있어요.어머니가 자식과 아비가 손자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부부관계가 예수라는 검에의해 찢겨나가요. 너무 매몰차다 생각하지 않으세요? 그것까지 어떻게 찢어내야 되는가?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요.우리가 구원의 완성지점인 하나님나라에서 이 세상에서 인간들이 자기들의 힘으로  쌓아놓고 성취해 놓은 것들을 하나라도 가지고가서 유용하게 쓸 수 있는게 있나요? 천국에 돈이 필요할까요? 천국에 여러분의 이땅에서의  명예 관직같은것이 거기에서도 통용이됩니까? 안되죠? 여러분의 이웃은? 힘이 안되요.
 
그러면 마지막것 우리가 절대 이것만은  놓을 수 없다라고 하는 가족관계라는걸 한번 보자구요. 거기에서 가족 관계가 있어요?없어요?부부 있습니까? 없다 그랬죠.부모자식 관계있어요? 없습니다. 하나님이라는  아버지와 하나님의 자녀라는 그 교회의 관계밖에는 없어요. 형제? 있습니다. 모든 존재가 그냥 평등하게 형제에요. 하나님의 백성, 그러면 이 세상에서 왜우리에게 관계라는걸 주셨을까요? 그게 지금 우리의 우상이되어있습니다. 그쵸? 나는 자식때문에 죽고 못살고 우리 아버지 때문에 죽고 못살고, 그래서 그 아버지가 죽으면 따라 죽을 거 같은마음이 들어요.
 
저는 우리 아버지가 제 인생에 최고의 인생의목표였어요.  군대갔을때 삼년동안 제밥을 삼년동안 밥상에 퍼놓고 항상 북쪽을 향해 오분간 묵념을 하고 밥을 드신거에요. 삼년동안 군대에서 못먹는 과일과 고기를 한입도 안드신 거에요. 우리 아들이 못먹는거 나도 안먹는다. 그런데 그 아버지가 죽었을때 내 존재가 어떻게 될까를 상상 해 봤는데 못살것같았어요. 그래서 참 한동안 거의한 십여년 간 저의  기도 제목은 뭐였냐면 하나님 우리 아버지에게 남은 인생과 저의 남은인생을 보태서 딱 반으로 나눠주세요. 그랬어요. 한날에 죽게. 도저히 그 관계를 끊어낼 수가 없었어요. 저의 우상이었던 거에요. 왜냐하면 아버지가 죽으면 내가 죽을 거 같다라는건 거기에 내 마음이 가 있고 그게 내 생명이라는 뜻입니다. 내 마음은 예수께 가 있어야되요.
 
우리 아버지도 죽고 내 자식도 죽습니다. 내 마음이 가 있는 곳이 죽으면 돈이 죽고 명예가죽으면 사람이 따라죽는게 그게 자기의 생명이기때문에 그래요 근데. 영원히 사는 분은 예수밖에 없어요.그래서 내 마음이 예수에게가면그게 영생인거에요. 영원히 사시기때문에  그걸 위해서 이세상에서 하나님이 관계를 끊어내기 위해 검으로 오세요. 절대 안되죠 저도 제 자식들과의 관계를 객관적으로 자꾸 보려고 애를 쓰는데 참 안되요 내거기때문에 그런데 여러분이 천국에 올라 갔어요. 분명히 여러분의 가족이라고해서 모두 천국에 못 가실 겁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분만 가세요. 그런데 천국에 올라가면 우리는 모든 존재를 알아볼 수 있습니다. 이모습 그대로 가는 건 아니지만 각기특성이있단 말입니다.그래서 예수님이 부활하셨는데 그리고 부활의 몸을 입고 이땅에 온 엘리야와 모세를 제자들이 알아봤다는 겁니다.
 
전부 배용준처럼 전부 최지우처럼 이렇게 변하는게 아니란 말입니다. 그리고 알아봐요. 그리고 지상에서 나와 무슨 관계였는지도 우리는 알수 있어요. 그러나 천상에서는 그 관계가 정리가 되요. 보세요 내가 죽도록 사랑했던 관계가 정리가 되지 않은 내 아이가 내가 천국에 있는데 지옥에서 불타고 있어요 그사람의 천국이 만족일 수 있을까요? 없습니다. 저는 그런 천국 안살아요. 지금 이 마음 이 관계를 그대로 갖고 올라갔는데 내가 사랑하는이가 지옥에서 불타고있는게 내눈에 보여요. 그 지옥은 영원히 영원 속에서 천국과 같이 존재해요. 왜? 하나님이 하나님나라의 백성들에게끊임 없는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위해 거기는 불도 꺼지지않는다고 그랬어요. 구더기도 안죽는다 그랬죠? 그게 영원이에요.그런데 내가 사랑하는 이가 거기서 불타고 있는것을 내가 아는데, 인식이 되는데 거기가 어떻게 천국이겠냐구요. 그러니까 이세상에서 우리의 구원은요 내가 죽도록 사랑하는 것들을 하나 하나 놓아가는 과정인거에요. 그리고 이것들이 궁극적으로 왜나를 행복에 도달 하게 해 줄 수 없는가를 깨닫고 가는 거에요.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에서 나의 힘이라고 내가 추구하고 있는 것들의정체를 하나하나 잘 생각해 보자구요.이 이야기가 지금 성전 미문에 앉아있는 앉은뱅이가 일어난 사건에 붙어있는것을 잊지마시란 말이에요. 성전 미문에 앉은 뱅이는 날때부터 앉은뱅이라 그랬죠? 도저히 자기힘으로는 움직일 수 없는 죄와 허물로 죽은자입니다. 그게 우리의 모습이에요 그런데 미문 아름다울 미,문문 아름다운 문에 앉아서 동냥을 하고 있는데 동냥그릇만 바라보고있어요. 그 동냥그릇이 자기를 행복하게 해 줄거라고 믿고있는 거에요. 그리고 자기는 화려한 아름 다운 문 앞에 앉아있다.라는 것으로 착각하고있어요 그게 삶이고 현실인줄 알아요. 근데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하러 올라가다가 그 거지한테 너 어딜보고있어?  나를 주목하라 동냥그릇 보지말고 나를 주목하라 그래서 그 거지가 동냥이라고 줄줄알고 쳐다봤더니 왠 비슷한 거지둘이 서있어요. 왜 제가 거지라고 그런줄 아세요?  갑자기 하는 소리가 은과 금은 내게 없으나 거지지뭐에요? 동냥을 바라고 있는 거지앞에 거지둘이 나타나서 은과 금은 내게 없으나..그럼 너 나한테 왜왔니? 이세상 모든 인간들이 추구하는 세상의 힘은 다 거지동냥인거에요. 그런데 거기에 은과 금이 없는자가 찾아와서 예수입니다. 일어나 걸어라 라고 했더니 미문에서 빠져나와 그 예수의 은혜를 찬양하는게 구원이란 말에요. 동냥그릇 팽게쳐두고 그동안 내가 추구했던 이세상 모든 동냥을 다 기각하고 부정한 이후에 하나님 예수님 당신만이 나의 행복에 근원이군요.  그리로 가는 거에요. 그걸 구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여러분에게 은과 금을소원을 들어주고  만사 형통으로 여러분의 문제를 해결 해주는게 아니란 말입니다. 오죽하면 그 퍼치라는 기독교 계간지에 레스키라는 사람이 논문을 하나썼는데 오늘날 현대의 기독교는 기독교가 아니다 라고 썼어요. 그럼 기독교가 아닌데 예배당  크게 지어놓고 이천억짜리  하나씩 지어놓고 바글 바글 그 안에 들어가 무당 굿하고 있는 거에요. 여러분 우리는 그냥 하나님 앞에서 납작 엎드려 하나님이 주는 생명력이 나에게 채워졌을때 그때 나는비로서 존재가 되는 군요를 깨닫고 가는 거에요.   여기서여러분은  대단히 착한일 많이 할 필요 없습니다. 천국가면 영원히 착한 일 선한일 `토브' 하나님 뜻에 맞는 일을 착한 일이라 하거든요? 그 일을 할거에요 그런데 하니님이 이땅에 우리를 내려보내서 궂이 천상의 교회를 이땅에시간차를 두고 내려보내서 착한일몇개  더 해보고와하고 이땅에 내려보냈겠습니까? 그거 아니란 말입니다 교회를 개혁한다고 하는 이들의 맹점이 그거에요.
 
사회복음 무슨 민중신학 이런 아이들 있죠? 아주 젊은 치기어린 아이들이 모여서 교회를 개혁하자! 걔네들이 다 민중신학 자유주의 신학에 빠져있는 아이들이에요. 제가 하도 뭐라그랬더니 제 설교는 이제 다 뺏더라구요 거기서 잘했어요. 원래 계네들과 저는 가는 길이 달라요. 그렇게해서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고 가난한이들을 평등으로 이끌어들이자가 교회가 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건 아직도 이세상에 소망을 두고 여기에서 사람들에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어 여기서  행복을 전해주겠다 라는 아주 악마적인 발상인거에요. 그거는요. 우리는 이땅에서 착하게 사는게 목적이 아니에요. 도덕과 윤리는 인간이 만들어놓은건데 어느때 그걸 인간이 만들었냐면 선악과를 따 먹고 선악을 자기스스로 판단하기시작한 이후 부터 인간들이 만들어내어 이걸 지키면 선한 사람 안지키면 악한 사람으로 가는것이 선악과로 상징이된 아주 악한거란 말이에요. 하나님의 선이라는건 하나님이 가서 다 때려 죽여 그러면 죽이는게 선입니다. 그게 착한 일입니다.
 
 거짓말 해! 그러면 사무엘 처럼 거짓말을 해버려야되요. 너 제사지내러 갔다고 거짓말 해!그러고 하나님이 시키면 거짓말 해야되요. 다말에게 너 시아버지 하고 가서 동침하고 애낳아 그러면 낳아야 `의'에요. 그래서 성경이 다말이 의로웠다 그래요 그게 무슨 의입니까? 근친 상간이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데 있어서 우리 삶속에 나타나는 모든걸 착한것 의라고 해요 그래서 착한일은 우리가 하는게 아닙니다. 그래서 바울이 그러는 거에요 너희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이가 이루시리라.  완성하시는 것도 하나님이에요. 우리는 우리의 인격을 계발하고 우리 국민교육헌장 하두 외워가지고, 저마다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계발하여 뭔 소질이있어요? 우리한테? 그게 불교라니까요? 우리안에있는걸 계발하여 내가 깨달음에 이르러 견성모드에 이르러닐바나 열반을 이루겠다 하는게 범신론 아닙니까? 근데 맨 교회에서 그나마 잘 간다는 교회에서도 착하게 잘 살자! 끝! 착하게 잘 사는게 아니에요. 우리는 우리를 하나님앞에서 완전히 폭로당하고 하나님 저는 하나님 아니면 큰일 날뻔 했군요...로 가야되는거에요. 확인해 드릴까요? 로마서 7장으로 가보세요.
 
로마서 7장 15절 보세요.
15 나의 행하는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
16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내가 이로 율법의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17 이제는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아니요 내속에 거하는 죄니라
18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19 내가 원하는바 선은 하지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 도다
20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속에 거하는 죄니라
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22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 내 지체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싸워 내 지체속에있는 죄의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것을 보는도다
 
여러분 이거는 속사람이라는 말이 여기에 가입을 한걸 봐서 사도바울이 거듭난이후에 자기의 심경을 토로한거에요. 내 속사람이있데요. 그리고 선을 원한데요.그렇게 구원을 받은 내 속에 마쿨라 오염의 형태로 육신이 남아있습니다. 죄에대한 집착과 중독,그것이 남아있어요. 왜 남겨두셨을까요? 하나님이 너희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떠나서 너희들 스스로 선악을 판단하고 너희들끼리 한번 행복에 도달하려고 살아갈때 어떠한 결과가 초래되는것인지를 구원 받은 너희들아 한번 너희들이 어디에서 구원을 받은건지 올바로 자각하고 인식하라고 그러니까 구원 받은 이후에 우리의 삶속에서 굉장히 악한 것들이 많이 나와요. 그런데 나를 정죄한 율법을 하나님이 십자가에서 도말해 죽여버렸어요. 나에대해서 죽었고 율법이 나에 대해서 죽었고 내가 율법에대해서 죽었다그래요. 그러면 율법안에는 도덕법이 들어가있습니다.
 
 사회법 시민법 제사법뿐만 아니라 율법안에는 도덕법이 들어가 있단 말입니다. 근데이 칼빈이 토마스 아퀴나스의 율법본을 그대로 받아들여가지고 도덕법은 남아있다고 했어요 그러면,그런데 그걸 토마스 아퀴나스가 그렇게 해 놓은걸 천주교에 기본 교리를 죤 칼빈이 기독교 강해에 써 놓는 바람에 개혁주의 교회가 전부 그걸 그냥 아무런 고민없이 받아들여요.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율법을 채무증서라그랬죠. 의무의 증서가 채무 증서에요 빚진 증서 안갚으면 죽는거에요 그걸 십자가에서 도말했다고 했는데 도덕법이 남아있다면 빚을 요만큼 남겨두고 간 거지요?  남아있는건 지켜야되니까 그러나 그걸 도말이라는 단어로 쓸 수 있습니까? 못씁니다. 다 도말 된거에요. 율법으로 죽었어요 죽었는데 죽은 율법을 어떻게 지킵니까? 그런데 중요한건 내속에 죄가 자꾸 나를 격동하여 나를 이 지옥같은 악함을 경험하게 해 주고 나의 이 무력함과 불가능 연약함을 폴로시키는데 내 속에 한 법 새생명이 잉태되어 그 새생명이 자꾸 날 내가 나의 실체를 인식하면서 내가자꾸 나에게 주는 점수를잃어가요. 신뢰를 잃어가요. 나한테대해서 니가 뭐야? 그래서 제가 그러는 거에요. 술 담배 끊었다고 예수믿고 술 담배 끊었다고 자랑하지말고 차라리 그게 너의 자랑이된다면 차라리 다시 먹고 하나님 저는 제 의지로는 담배하나 못끊는 인간이군요... 그리로 가는게 신앙의 성숙이다라고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성화의 절정은 하나님 저는 제 힘으로는 도저히 어떤 착한 일도 내 놓을 수 없는 존재군요.가 신앙의 절정이에요. 그렇게 비워졌을때 예수가 내안에 가득 채워지는 거니까.내것을 요만큼이라도 이렇게 쌓아서 인격을 계발하고 선한 삶을 훈련하여 내것을 요만큼 쌓아서 가면 예수가 요만큼 못들어온다는 말입니다. 내것이있기때문에 이걸 완전히 비우고 가는걸 인생이라그래요. 그러니까 그 상태에서 예수를 맞이하기위해선 내가 이땅에서 계속  부정되어야 되는 거에요. 난 아무것도 아닌자가 되어야 되는 거에요. 그게 성도에요. 그래서 누가 누구는 굉장히 예수 믿고 착해졌어 그럴수 있습니다. 왜냐면 내안에서 성령이 소원을 두고 하게하세요. 그게 진짜 열심이에요 근데 소원을두고 행하게 하는 성령의 음성이 들리는데 나는 계속 실패해요. 내 게으름과 내 이 무력함 때문에 계속 실패해요. 그러면서 나는 계속해서 나에대한 점수를 잃어가는 거에요.
 
제가 초창기 목회할때 정말 이세상 모든 사람들 다 날보고 본받아라! 내가 완벽하게 살 수 있다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설교도 그렇게 강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똑바로 살아라! 이 잠 하나도 못이기는 인간들... 어떻게 이렇게 불성실하게 살수 있냐고?저는 그때 제가 신앙의 경지에 올라가있는줄 알았어요. 대학교때까지 5일을 교회가서 살았으니까요. 그리고 목사까지됐어요 7년동안 죽도록 고생하면서 밥도 못먹고 죽만 먹으면서도... 그런데 성경을 공부하고 신앙 생활을 하면 할수록 그 자리가 깨져야 할 자리지 절대로 하나님이기뻐하실 자리가 아니라는걸 알게되었어요. 그러면서 그때부터 하나님이 저를 깨 가시는데 죽고싶은 생각이 하루에도 열두번씩 들었어요.그거 깨지는 거에요.
 
여러분 착한게 뭡니까? 여러분 아이들이 책상앞에 앉아서 열심히 공부하는것이 착한 거에요? 아이가 열심히 책상앞에앉아서 공부하고 엄마말 잘 듣고 엄마가 하라는거 다 하는거 요옆에서 어떤 아이는 하루종일 비디오게임만 하고있어요. 하지마라는 짓은 맨날 골라서해요. 먹지말라는 라면만 맨날 끓여먹고 두 아이가 그리 살다가 하나는 학교 집 도서관만 알다가 저처럼 좋은 대학교 들어갔다가 신앙생활도 엄청나게 경지에 오른자가 되어서 야! 다 나를 본받아 요런 사람이 됐어요. 얘는 비디오 게임만 하고 그러다가 결국 나중에 갱단에도 연루되고 이러면서 감옥까지 갔다왔어요. 누가봐도 착한 애고 얘는 악한 애입니다. 그런데 이안에는 하나님앞에서 하나님 제가 이정도에요 저 잘했죠? 이자리로 가 있고 얘는 하나님, 그래도 들은게 있어어저는 참 갱도 해보고  비디오 게임도 해보고 마약도 해보고 여러가지것으로 저를 행복하게 만들려고 노력을 해봤는데 그거 다 헛거네요. 하나님 저 어떻하면 좋죠? 이자리로 내려갔어요. 이 아이는요 이게 저였어요. 이걸하나님이 깨들어가는데 굉장히 엄청난 시간이 들어가요. 그리고 무지 막지한 철장이 가입이되거든요 그 삶속에 부셔야되거든요. 그게 `휘브리스' 교만인거에요. 이 아이가 비록 세상이 도덕과 윤리와 사회법으로 규정한 나쁜 일을 했지만, 그일을 통과하여 하나님 저는 정말 보잘것 없는 존재에요. 저는 예수님의 은혜만 꼭 붙들래요. 라는 자리로 내려갔다면, 그가 행한 모든 일이 착한 일인거에요.
 
여러분 세상이 규정해놓은 착한일과 선한일 선악과를 먹은 세상이규정해놓은 착한 일과 선한 일로  착함과 악함을 여러분이 나누시면 안됩니다. 예배당 다니면 항상 이정도의 수준에 이정도의 도덕성에 이정도에 깨끗함에 도달해야 된다. 누가 그걸 규정했습니까? 그리고 이렇게 못사는 저들은 다 연약하고 무지하고 악한 인간들 누가 그렇게 규정했죠? 세상이 규정한것 아닙니까? 왜 우리가 그것까지 쫓아가야되요? 만약에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도달해야할 성화의 목적지가 거기라면 간디나 슈바이쳐는 테레사 수녀같은 사람은 천국에 높은 자리에 올라앉아 있어야 되요. 박사학위 다섯개씩 다 버리고 아프리카에 가서 오십년 이상을 봉사했습니다. 간디, 힌두교인이었지만 아침마다 산상수훈을 눈뜨면 읽는게 산상수훈이었어요. 죽는날까지, 그리고 그 산상수훈 지킬라고 애 썼습니다. A.D 4 세기에 주상의 성자라는 시몬이라는 사람이있었죠? 음욕을 이기지 못해서 20미터짜리 기둥을 세우고 30년을 기둥위에서 살았어요. 그사람 생각만 하면 너무 불쌍해죽겠어요. 30년동안 기둥위에서 죄지은겁니다.
 
 내가 내힘을 발휘하여 한번 깨끗하게 살아 다른 사람과구별된 그런 모습을 보여보겠다! 라는게 `자기의'라는 거에요. 여러분 자유하십시요! 복음은 여러분에게 자유를 준다는데 내게와라 내가 너희를 자유케하리라! 말씀 하시는데 여러분 도대체 왜 아직도 그 도말됐다는 율법에 묶여계십니까? 천하인간에 예수라는 이름 이외에 구원에 다른 이름을 준적이없어요. 예수만 붙드세요. 그리고 그 안에서 자유를 느끼세요. 그리고 여러분의 마음에 쉼을 얻습니다. 수고하고 마음에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의 마음을 쉬게하리라  쉬는 거에요. 그렇게 차츰 차츰 내가 부인이되면 현실과 상황이 나로부터 붕 뜨게되요. 내가 집착하던 현실과 상황이 나로 부터 붕 떠요. 그때 여러분은 비로서 자유함을 느껴요. 돈이 별로 없어도 괜찮아요. 제가 창세기 팔아갖고 사도신경 강해집을 빨리 낼려구...신학생들이 그 사도신경 강해를 듣구 책으로..제가 책을 처음 찍으면 신학생들에게 8백권을 공짜로 주거든요.그걸 빨리 만들어달라그래서  차곡차곡 모아놨어요. 교회 어카운트에다가 아이티 지진이 터졌습니다.
 
책을 내야되는 거냐? 아니면 기독교인들이 저질러놓은 저 아이티의 참상을 도와야되는거냐? 여러분 아이티는 하나님의 성도들 기독교인들에게 불어주는 나팔소리입니다. 우리는요 어디까지 떨어져야 되냐면 내가 나를 인식할때 하나님,하나님이 오늘 저를 지옥에 보내도 저는 아무런 할 말없는 인간이네요. 까지 떨어져야되요. 난 죽은 흙입니다. 그렇잖아요? 하나님이 `네페쉬' 짐승들을 흙으로 만드셨을때 짐승들이 뛰어다녔습니다. 그때 `네페쉬'였어요 그게 그런데 하나님이 아담을 만들었을때도 히브리원어로 보면 아담이 네페쉬였어요. 하나님이 생기를 불어넣기 전에도 움직이던 사람이었습니다. 죽어있는 인형 아니었다니까요? 거기다 하나님의 생명력 `바라크' 복이 들어가니까 하나님과 관계가 있는 존재가 된거에요. 그걸 살았다 라고 하거든요? 그런데 하나님과 아직도 관계가 없는 이들은 그냥 흙이에요. 죽은 흙,그 흙들을 이용하여 하나님께서 교회야 살아있는 자들아 하나님의 은혜를 떠난 자들이 만들어 놓은 문명의 결국이 결국 어디로 수렴이 되는지 알아? 하고 보여주는게 바로 그런 자연재해들입니다. 천재지변인거죠.
 
그리고 기독교인들이 기독교를 전파하며 아이티를 얼마나 괴롭혔으면 식민지때, 아이티 사람들이 그 아이티라는 나라를1790 년에 사단에게 봉헌을 했어요. 저 기독교인들만 쫒아내주면 우리 당신 섬기며 잘 살겠다고.. 그러니까 급기야 프랑스가 나가니까 그들이 사단을 섬기면서 살았어요. 어떤 인간이 또 사단을 섬기며 살았기때문에 그들이 이렇게 됐다고 헛소리를 하는데, 우리는 사단 안섬기고 삽니까? 우리안에 반은 사단이잖아요? 마귀에요 나는요 그게 아닙니다. 이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과자도 진흙으로 만들어 먹어야 하는 그 나라에 지진까지 떨어져서 완전히 초토화시켜버리는게 이 역사의 종국이라는걸 우리에게 보여주는 거에요. 그러니까 기독교가 제 할일을 하지않아서 그런 일들이 일어났으니까 우리가 책임 져야죠.
 
그런데 낼름 보내고 나니까 큰일났어요. 책을 어떻게 내야될지...여러분 보세요 불쌍한 사람들이 재해를 입었기때문에 내가 도왔다! 라는 것을 드러내기위한 것은 악입니다. 그러나 성도의 입장에서 내가 하나님나라에 그 큰 그림안에서 이상황에서 어떤 일을 해야 할 것인가를 스스로 결정하여 말씀 안에서 결정하여 하는 일을 `선'이라고 하는 거에요. 그래서 제가 복음을 알지 못하고 함부로 홈리스들한테가서 빵 나눠주지말라고 이야기하는 거에요. 그게 자기의로 하나 하나 쌓이게 되면 하기싫은데도 나중에는 억지로 하게되요. 안하면 괜히 깨름직하기때문에 그걸 `죄'라고합니다.  그래서 하는게 아니에요. 우리는 그러니까 차라리 나는 왜 저 홈리스들이 하나도 불쌍해 보이지가 않을까? 이게 성화입니다. 하나님 도대체 어떻게된 인간이 저렇게 불쌍한 인간들이 하나도 불쌍해보이지 않아요? 를 깨닫는게 오히려 더 나아요. 그걸 내 의로 쌓는거 보다는 여러분 그게 기독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이름은 예수밖에 없다! 라고 하는 거에요. 그 예수만 붙드세요. 그리고 자유하십시요. be happy...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은혜를 감사합니다.
아버지하나님 저희들이 도대체무슨 능력과 힘을 발휘하여
하나님 마음에 드는 삶을 살겠습니까
하나님 그냥 하나님만 꼭 붙듭니다.
내 아버지니까  내아버지니까
내 아버지는 내이 연약함도 다 이해해주시니까
그리고 그 연약함 속에서 내아버지 붙듭니다.
하나님 나는 이 모양이라고 여전히 이모양이라고
그러니까 하나님 나 꼭 붙들고
끝까지 하나님 나라 데려가 달라고
그게 우리 성도의 올바른 자세입니다.
우리는 사회를 변혁시킬 필요도 없습니다.
사회를 개혁할 필요도 없습니다. 아니 그러한 힘도 없습니다
그냥 제자리에서 자꾸 나는 하나님의 은혜가 떠나면 죽은 흙에 불과하다는
그런 티끌됨 nothingness를 경험하고 가시면 됩니다.
아버지하나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그렇게 말씀해 주셨는데 우리는 아직도 나를 버리지못하여
이렇게 하나님앞에 괜찮은 존재로 서려고 하고있습니다.
아버지 도와주옵소서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아멘.

'김성수 목사 > 사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도행전10  (0) 2016.01.12
사도행전 09  (0) 2016.01.12
사도행전 07  (0) 2016.01.12
사도행전 06  (0) 2016.01.12
사도행전 05   (0) 2016.0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