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목사/사도

사도행전 07

은바리라이프 2016. 1. 12. 13:37
사도행전 4;11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지금 사도들이 안은뱅이를 일으켰더니 사람들이 누구의 권세로 이렇게 이 사람을 살렸느냐? 하고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사도들이 예수님이 건강하게 만드신거다 하고 이야기했어요. 근데 예수님은 그들이 죽인분 아닙니까?  근데 거기다 대놓고 살인자들 앞에 예수님은 살아있다! 라고 이야기 하는거나 똑같은 이야깁니다. 그래놓고 본문 11절에서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이렇게 이야기 해요. 시편 118편 인용한거죠?  여기에서 중요한 단어가 너희에요. 너희가 누구입니까? 여기 모여있는 사두개인, 바리세인,관원들,  대 제사장, 또 제사장들 이러한 사람들을 이야기하는 거죠?  너희에요 그 너희를 누구라고 불러요?  건축자 시편 118편에는 너희라는 말이 없어요. 그런데 그걸 인용해서 너희가 바로 건축자다 이야기 하는 거에요. 너희가 버렸다! 라는 거죠. 그렇죠?
 
예수님도 똑같은 인용을 하시죠.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  라고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에 인용을 하시는데 여기서 건축자 라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가 있는 거죠. 건축하면 생각나는게 창세기에 가인의 성 건축과 바벨탑 건축한 죄인들의 사건 그것을 이야기 하는 거죠. 건축 하면 세상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 말고 에덴에서 쫒겨난 이후에 자기들이 원하는 자기들의 이상향을 건축하는 모든 사고와 행위를 이야기하는 거에요. 그걸 건축이라 해요.지금 세상에 모든 사람들이 지금 하고있는게 바로 그 건축이에요. 자기들이 원하는 행복과 자기들이 원하는 유토피아 그걸 건축하고 있는 거죠. 그래서 많은 이데올로기도 나오고 교육과 여러가지 과학문명 이런 것들이 계속 나오고 있는데, 그런것들로 인간들은 계속해서 행복에 도달 하려고 건축을 하고 있는 거죠. 그런데 그 건축자들이 미련하게 진짜 제대로 행복에 집을 지을 수 있는 진짜 모퉁이돌인 예수가 오셨는데 그 돌을 버렸다는 거에요. 그 예수를 의지하지않고 엉뚱한 것들로 계속해서 그들의 건축물을 짓고있다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한번 보세요 과학이라는거 아니면 학문이라는거 이런 교육 이라는거 이런것들이 인간을 정말 행복하게 하는 그 유토피아 그 행복의 집을 지을 수있었나요?  지금 여러분은 행복하십니까? 아니면 과거에 여러분이 정말 피죽도 못먹던 보릿고개있던 그 시절과 비교해서 지금 여러분은 얼마만큼 더 행복하세요? 옛날 그 보릿고개 있던 시절에 살던 분들은 밥먹는 속도가 굉장히 빨라요. 그쵸?왭니까? 그저 조금 미적거리면 형제가 다 먹어버리기때문에 그냥 물말아서 훌훌 마셔버리기도 하고 그랬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냥 다이어트하느라고 애쓰는 쓰레기통에는 음식물 쓰레기가 가득차있는그런시대가 되었어요. 근데 여러분이 행복하세요?
 
그때보다 여러분은 굉장히 많은 지식을 얻었고 많은 정보들을 지금 머릿속에 갖고있습니다. 근데 그게 여러분을 행복하게 하냐구요? 저즌 가끔 요즘도 예전에 제가 자라던 그 시골 그 상태로 다시 돌아갔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절박할때가 많아요. 그때는 정말 먹을 것도별로 없었고 겨울철 간식이라고는 장독에 잔득 묻어놓은 김장김치와 고구마 감자 이런게 전부였어요. 그리고 밥이라고는 잡곡이라 그래서 늘 할머니가 밀가루로 칼국수를 해줬어요.호박썰어넣고 그리고 뭐 밥이래봐야 보리밥에다가 고추장에 비벼서 짱아지같은거랑 한 그릇 뚝딱 먹고 마는 그런 때였는데, 그리고 뭐 재미난게 있었어요? 뭐가 있었어요? 인터넷이있었습니까? 티비가 있었어요? 저 어렸을때는 저희집은 전기도 안들어왔었어요. 심지어.그러니까 늘 그런 호롱불 아니면은 유리관에 이렇게 올리면 불이 쏙 올라오고 줄이면 내려가고 그것도 불 많이 올리면 그 안에 석유가 많이 닳는다고 그걸 항상 밑으로 내려놔서 글을 못읽을 정도로 할머니는 그렇게 해놓고 바느질을 하고 그러셨거든요?  요즈음 양말 기워신는사람 없잖아요? 근데 그때는 양말 깊는게 아낙네들의 소일거리였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 시절이 아련히 그리워요. 그래서 저는 어느정도 목회를 하고 난 다음에는 그런 시골로 갈 생각입니다. 시골에가서 어르신들하고 막걸리도 한 잔 하고 동네사람들 모아서 성경도 가르치고 그런..여기서 대단히 유명해지고 그러는거 딱 질색이에요.
 
사람들이 자꾸 그냥 서머나교회 서머나교회 하는데 아..이거 이렇게 되선 안되는데..하는 생각이 참..교회는 그렇게 사람들한테 유명해지면 안되요. 원래가 교회자체가 좋은 교회가 되는건 바람직한거 아닙니다. 여러분, 그거 잘 이해하셔야 되는데... 교회자체를 우리가 착하게 열심히 살고 성경을 열심히 공부를 하고 해서 어떤 것으로 내가 우리교회는 이름을 날리겠다는 시도들 선교하면 그교회, 말씀 하면 그교회, 봉사하면 그 교회 그렇게 교회를 특징을 만들어서 특화 하고 싶은데 그자체가 죄입니다.  내가 그 속에 들어가서 내가 그 교회 다니고 있는 이이기때문에 나는 나를 자랑스럽게 생각해!라는 그게 범죄에요. 하나님앞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교회와 목사를 우상화시키죠. 계속해서그래서 어떤 이들은 가서 우리교회 목사는 김성수 목사다라고 자랑하는 사람이있어요 그 사람 서울대 나왔단다. 근데 뭐 어쩌라구요? 그래서 나도 그 사람한테 배우고 있기때문에 나도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은 거죠? 사실은? 천만에 말씀 입니다. 그걸 죄라고 합니다. 그건 온 세상이 추구하고 있는 잘못된 건축입니다.
 
우리가 인간들이 건축해야하는 건축은 예수 그리스도라 하는 터와 예수 그리스도라는 모퉁이와 예수로 지어진 집이어야 되요. 그거 이외에 다른 집은 다 헛겁니다. 그래서 고린도서에 보면 모든 공력이 다 불타는 그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리고 나중에 오직예수 그리스도라는 터만 남죠. 예수가 지은 집만 남는 것입니다. 거기다 우린 자꾸 치장을 하죠 이것저것 커텐도 걸고 색도 이쁘게 칠하고 하는데, 그런 것들은 마지막때에 하나님이 다 태워버릴 것들이라는 것들이라는 거에요. 그래서 다 태우고 예수와 예수가 지은 집만 남겨요. 그렇게 우리는 예수님만 의지하여 예수님만 믿는 목사도 아니고 교회도 아니고 어떤 교리, 개혁주의라는 교리도 아고 예수만 믿는 예수가 나의 의지가 되는 그예수만 믿어야 된다라는건 나는 완전히 부족한 자로 폭로가 된다는 것이거든요?  그런 자리로 자꾸 내려가는 거에요. 그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세상에서 자꾸 어떤 끈을 붙들려고 하는 거죠?
 
만약에 그런 것들이 절대적인 어떤 행복의 근거가 된다면, 여러분 교과서 같은 거는 끊임없이 개정이되면 안되요. 뭐가 좀 잘못되있으니까 계속 개정이되고있어요. 제가 한국에있는 중학생아이들의 교과서를 한번 본 적 이있는데 저희가 배웠던때 들어가 있던 내용이 거의 없어요.  그럼 우리가 배웠던건 뭐라는 거에요?  도대체 그렇게 인간의 지식이나 지성이나 과학 문명이나 이런 것들은 그 자체로 절대적인게 없어요. 계속해서 발전 하고 발달되어져 가고 변해간다 말이죠. 근데 그것이 어떻게 우리를 행복에 도달하게 할 수가 있어요?  없단 말입니다. 과학? 마찬가집니다. 그게 무슨 우리를 행복하게 해요. 편리하고 편안하게는 살게 할 수 있어요. 그렇지만 편리하고 편안하게 지옥가게 만드는 것입니다.
 
편리하고 편안한데 여러분 지금 삶이 옛날 보다 더 행복지수가 낮아졌잖아요? 뭘로 알 수 있어요? 자살률이 높아졌잖습니까? 조금 높아진게 아니라 상상 할 수 도 없을 만큼 높아졌어요. 그건 그만큼 자살률이 높아졌다 하지만 행복지수가 낮아졌다는 뜻이에요.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잘 사는 나라에 자살률이 훨씬높지 못사는 나라 뭐 바누아투나 아이티같은 데에 방글라데시 거기 행복지수는 여러분 80 프로가 넘어요. 미국 사람들의 행복지수가 얼마인줄 아십니까?  25프로에요. 그럼 누가 행복하다는 거에요?  진흙을 떡으로 게어 먹는 그 사람들이 우리보다 더 행복하다는 거에요. 바누아투 사람들은요 그냥 길에서 진흙같은데서 사는 게 같은거 있죠? 그런거 잡아 씻어서 구워 먹고 이런거 간식으로 먹고 살아요. 그리고 졸리면 야자나무 밑에서 자고 일하고 싶으면 나가서 고기나 몇마리 잡아다 먹고, 그러니까 매일의 양식에 대해서 걱정없는 이들이있죠..그들이 행복해요. 근데 우리는 지금 노후까지 걱정하고 있어요. 은퇴이후에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까지 걱정하고 살고있으니까 불행한거에요. 안될거 같거든요?  자기는 그 이후에는 어떻게 될지 가늠이 안되요. 그러니까 우리는 예수가 왜 나의 행복의 근원인지를 끊임없이 배워야되요.끊임없이 배워야되요.. 그리고 끊임없이 실패해야되요.
 
지난 주일에 제가 전도사때 아주 힘들고 어렵게 살때 저희 교회 권사님이셨던 분이 방문하셨어요. 근데 그 권사님이 저희를 먹여 살렸다 해도 과언이아니에요.굉장히 부자고 저희가 조그만 아파트를 얻어서 이사를 갔더니 거기 냉장고가 있어요? 뭐가 있어요? 근데 비싼건 아니지만 살림을 다 채워 놓으셨어요. 근데 그때 당시에 그 교회 대장이었어요. 장로님과 그 권사님 부부가  돈도 많고 교회를 세우신 분이기때문에 목사님도 그 앞에서는 무릎꿇고 엉엉울 정도였어요. 그리고 그런 분이 딱 끌고 가니까 사람들이 꼼짝을 못해요. 대부분이 그분에게 떡고물이라도 얻어먹고 사는 사람들이 모여있었고.그리고 그분이 하자 그러는데 반기라도 들게되면 당장 왕따 되서쫒겨나게 되는 그런 거였어요. 그러니까 교회가 평안해요. 아무 문제가 없어요. 힘있는 사람이 하나가 딱 끌고 가니까아무 문제가 없어요. 그러나 여러분 그게 진짜 올바른 교회였을까요?
 
그분이 이제 그렇게 교회를 좌지우지하면서 그 교회에서 행해지는 설교또한 본인에 맘에 들지않으면 당장 그날  쫒아가서 이건 아니다 라고 목사님한테 이야기 할 정도였어요. 그러면 그 다음주 설교는 그 분이 하신 말씀에 맞게 나와요. 예수 믿으면 부자되고 병도 낫고 소원도 이루어지고 이런 식으로 되요 왜냐면 본인이 부자니까..어느날 암이 걸렸어요 유방암이 걸렸어요. 한쪽은 잘라내버렸어요. 내가 이렇게 내것을 손해보고 그리고 내 시간을 다 드려 교회를 섬겼는데 하나님이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요... 그때 그 암을극복하기위해 **에있는 어마어마한 집과 건물을 본인들이 거의 반값에 내버렸어요. 그리고 교회 예배당을 샀어요 나머지는 그냥 들러리에요 그러니 더 혼자... 교회는 굉장히 부흥 했습니다. 교회는 건물 이쁘게 지어 놓으면요 예배당이 전도를 해요. 그리고 교육 시설만 잘 해놓으면 말씀이야 어떻든말든 그냥 거기에 있어요. 그런 사람들은 신앙인이라고 해도 되는지 난 모르겠지만 하여튼 교육 프로그렘 찾아 쫒아다니는 사람들 그리고 자식들이 거기에 익숙하고 거기에 친구들이 많다고 그냥 거기 머물러있는 사람들 보면 글쎄... 그들이 정말 생명의 양식이 뭔줄 아나? 이런 생각이 들때가 있어요. 그 상태가 됐는데 이혼을 했었어요. 나이가 육십이 훨씬 넘으신 나이에 깜짝 놀랬습니다. 그걸 그저께 들었습니다. 근데 그 후에 이분이 그렇게 권세를 갖고 세상적 권세를 갖고 뭐든지 자기가 할 수 있었던 그분이 이혼을 당해갖고 어떻게 된건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여집사님이랑 둘이 사시더라구요. 그때가 되니까 비로서 말씀이 들리는 거에요.
 
원래 초창기에 저를 도와주시겠다고 첫번째 창립예배때 오셨었어요. 목사님은 내가 뒷바라지 해갖고 완전히 예배당도 사주고 다 해주겠다고. 근데 제가 그날 설교를 당신들은 전부 가짜다 라고 이야기 했더니 그러니까 그냥 가 버렸어요. 예수님은 그런거 당신들한테 주기위해 오신분 아니라고 그냥 난리를 쳤더니 그 다음주 부터 안오기 시작 하셨는데 그런데 자기가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서 가장 의지했던 그 남편 장로님 까지 떠나고 나니까 병든 몸에 가난한 삶속에서 예수만을 붙들게 되더라는 거에요. 그때부터 그때 딱 한 번 들었던 그 이후로는 재수 없어서 안들었던 제 설교가 생각 나더라는 거에요. 그래서 인터넷으로 듣기 시작 한거에요. 여러분 보통 그렇게 해서 가신 분은 챙피해서 제앞에 다시 안나타납니다.
 
주일날 오셨어요. 그리고 설교를 듣는 내내 통곡을 하고 우세요. 내 삶이 왜 이 모양으로 끌려가나 자기는 너무 너무 궁금했는데 오늘 목사님의 말씀을 통해서 다 대답을 해 줬다는 거에요. 여러분 그분의 삶속에있어서 그분을 그렇게 지어간 분이 누구에요? 하나님입니다. 그분은 지금 훌륭한 건축물로 건축 되어져 가고 있는 거에요. 세상 사람들은 그가 지금 허물어지고 있다 라고 보고있어요.그게 세상이에요 너희들은 그러니까 예수를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 버려버리는 거야 이야기 하고 있는 거에요 베드로가 지금 너희들이 거기에 목적을 두고있는 한 너희들은 언제까지나 예수를 버릴수 밖에 없어. 그러나 그 예수가 지금 다시 이땅에 오셔서 이 앉은 뱅이를 살리시고 계시다! 너희들은 끊임없이 버리지만 예수는 계속 살아오신다! 너희들이 십자가에서 아무리 골백번 죽여봐라 아무리 골백번 장사지내봐라 그분은 다시오셔서 기필코 당신이 지으실 건축물을 완성 해 내고 마신다! 하는것을 베드로가 이야기 하는 겁니다.
 
이 이야기를 들었던 여기에 모여있던 서기관들 바리세인들 이사람들 중에 분명히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나왔을 것입니다. 분명히 여기서는 너희 건축자들 이라고 지칭 되었던 그분들 그 사람들 속에서 진짜 그들은 예수를 버렸지만 예수가 다시 찾아오셔서 그들을예수 그리스도에 히브리서에 나오는 하나님이 경영하시고 지으시는터! 그 터로 만들어 내신 사람들이 있을 거란 말입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에요. 여러분은 지금 돈이나 명예나 자식이나 부모나 이런 관계들을 통하여 여러분이 원하는 행복이라는 집을 짓고 싶어하세요. 그러니까 예수가 자꾸 들어와서 여러분의 삶속에 들어와서 십자가를 지고 너를 부인해라 그러면은 기분이 나쁩니다. 심지어 설교시간에 그런 설교를 들으면 목사가 미워지기도 하죠.  그게 예수를 죽이는 겁니다. 자기들의 기득권과 행복을 위해서 예수가 생명의 양식인 예수가 하늘에서 내려왔는데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잖아요. 거기에 대한 집착이 너무 크니까. 우리앞에 예수가 나타났을때 우리가 안 죽이리라는 보장이 있어요?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행복이있어요. 근데 예수가 와서 그거 아니라고 자꾸 그런다고 생각해 보세요. 아무도 안보고 아무도 죄를 묻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생겼을때 들키지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을때 여러분 그 사람 안죽이겠어요? 그러니 우리는 끊임없이 예수를 죽이고 있는 거에요 지금. 세상것이 나의 관심에 대상이되는 그 순간 마다 예수는 죽고있는 것입니다. 내손에..근데 그 예수는 계속 살아오세요. 그리고는 앉은뱅이에 불과한 나를 일으켜 세우시는 것입니다. 그게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너희 집 모퉁이에 머릿돌로 삼으셨다! 우리 라는 이 새집을 짓는 모퉁이돌이 되신 거에요. 우리는 계속 버리는데 그분이 오셔서 이 건축물의 모퉁이돌과 터가 되어버리시는 것입니다. 그걸 복음이라 하는 거에요. 그러니까 여러분의 상황이라든지 여러분이 처한 현실이라든지 이런걸 보고 그걸 갖고 무슨 축복과 저주로 판단 한다던지 아니면 그걸로 길흉화복으로 규정하는 그런 미련한 짓은 하지 마세요. 그 상태, 그 현실, 그 사건이 예수께서 지금 다시 살아오셔서 여러분을 일으키고 있는,사건인지 모르는 거에요. 그러니까 잘 이기시고 잘 견디십시요.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은혜를 감사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이땅에서 예수에 의해
예수로 지어져 가는 이들입니다.
하나님 그 길에서 벗어난 모든 관심과 집착은 다죄인데도
하나님 우리는 오히려 예수를 버리고 우리의 관심과 집착에
목을 매달고 있습니다. 하나님 우리가 추구하는 그 행복
이제 전부 부정 할 수 있는 실력자 되게 해 주시고
예수로 말미암은 그 행복, 더욱더 선명하게 우리 마음 속에 각인되어
그것만을 추구 하는 성숙한 성도들 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아멘!

'김성수 목사 > 사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도행전 09  (0) 2016.01.12
사도행전 08  (0) 2016.01.12
사도행전 06  (0) 2016.01.12
사도행전 05   (0) 2016.01.12
사도행전 4  (0) 2016.0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