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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20- 십계명1

은바리라이프 2015. 12. 29. 12:16

100호 특집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20- 십계명1


십계명1-하나님 사랑


오순절에 말씀을 받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올 때부터 제 삼월 곧 그 때에 그들이 시내 광야에 이르니라(출 19:1)’

이스라엘 백성들이 르비딤을 떠나 시내산 앞 시내광야에 진을 쳤다. 이때는 ‘애굽 땅에서 나올 때부터 제 삼월’인 때였다. 이는 출애굽 이후 90일이 지났다는 말이 아니라 세 번째 달이 됐다는 것이다. 즉, 애굽에서 유월절을 겪은 날이 1월 14일이므로 3월 1일은 유월절 이후 47일째가 된다. 그리고 제 3일을 정결하게 기다려 하나님께 십계명을 받았다.

따라서 십계명을 받은 날은 유월절 이후 정확하게 50일, 즉 오순(五旬)이 되는 날이고, 이스라엘은 이날을 오순절이라 불렀다. 오순절은 어린 양이 죽은 후 50일 후에 말씀을 받은 날이고, 이는 신약에서 예수님이 죽은 후 50일 후에 성령이 강림하시는 일의 모형이고 예표다.

그렇다면 ‘어린 양=예수’고 ‘말씀=성령’이라는 공식이 성립된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는 세례 요한의 말처럼 어린 양이 예수님을 가리키는 모형이라는 건 성경 곳곳에 나타난다. 그런데 ‘말씀이 곧 성령’이란 공식은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예수님은 ‘내 말이 영이고 생명’이라고 하셨다. ‘영’은 ‘프뉴마’로 ‘성령’을 가리킨다. 말씀이 곧 성령이며. 그 말씀은 성령에 의해서만 참된 말씀이 된다. 성령께서 당신의 백성에게 임하실 때 하나님이 하늘의 진리를 알라고 이 땅에 주신 모든 ‘말씀(로고스)’이 그 진리인 ‘참된 말씀(레마)’으로 깨달아지게 된다. 성령이 진리고 진리가 성령인 것이다. 성경의 모든 진리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을 향하고 있다.


십계명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주셨는데, 십계명은 크게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두 주제로 분류할 수 있다. 1~5계명이 하나님 사랑, 6~10계명이 이웃 사랑에 대한 계명이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제 5계명은 흔히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계명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 사랑에 대한 계명이다. 자세한 것은 뒤에서 설명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1~5계명에 대해서는 설명을 해주시는 반면, 6~10계명은 설명 없이 제목만 주셨다. 이것은 하나님이 ‘하나님 사랑’에 관한 부분을 설명해 주시고, 나머지 5계명은 예수님께 들으라고 남겨주신 것이다. 예수님은 ‘이웃 사랑’에 관한 부분을 산상수훈에서 자세하게 설명해 주신다. 먼저 1~5계명을 살펴본다.


1)제1계명-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십계명의 첫 번째는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는 말씀이다. 이것은 이상한 말씀이다. 신은 한 분 밖에 없는데, 전지전능하고 유일하신 하나님이 “나 말고 다른 신 믿으면 안 된다.”는 식으로 말씀하셨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원문을 직역해보면 의문이 풀린다. ‘너를 위하여 나를 다른 신으로 있게 하지 말라.’. 즉 제1계명의 참뜻은 ‘나를 다른 신으로 오해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이 계명에서 주목할 부분은 원문에 있지만 우리말 성경에는 나타나지 않는 ‘레카’라는 말이다. 이 말은 ‘너를 위하여’라는 뜻이다. 인간들이 멋대로 하나님을 다른 신으로 오해하는데, 그 이유가 ‘자기를 위해서’라는 것이다.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처럼 높아진 인간은 모든 것을 자기를 위하여 사용한다. 하나님 말씀조차도 자기 중심으로 받았다. 그 결과, 구원의 복음인 하나님 말씀은 ‘하라, 하지 말라’의 율법이 됐다. 그것이 구약 전체의 일이다.

자기가 하나님인 한, 인간은 언제나 이기심을 발휘하게 되어 있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자기를 먼저 위하고, 자기의 이익 중심으로 선악을 판단하게 되어 있다. 인간의 원죄는 스스로 선악 판단의 주체가 되어 자기 중심으로 모든 것의 선악을 판단하는 것이다. 즉‘피조물 주제에 하나님 노릇하는 것’이 죄의 근본이다. 그래서 성경에 ‘판단하지 말라, 비판하지 말라’는 말씀이 수시로 나오는 것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짓는 죄는 그 원죄의 증상들일 뿐이다. 참된 회개는 거기에서 빠져나와 모든 것을 하나님의 선하신 뜻 하나로 보는 ‘아들’이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을 하나님 중심으로 보고 그 뜻에 순복하고 기쁘게 따르는 아들. 그만이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하나님 나라가 된다.


2) 제2계명 -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라

‘너를 위하여’, 즉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들은 하나님을 오해할 수밖에 없고, 그들이 바라보는 하나님은 오해된 하나님인 우상이 된다.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자들이 하나님에 대해 하는 말이나 기록, 형상 등 모든 것이 우상이다. 그들은 비록 교회에 출석하는 기독교인이라고 해도 여전히 자기 중심의 신앙생활을 하고, 하나님의 말씀도 자기 중심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하게 되어 있다.

성도는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 나라로 지어지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되지만 자기를 위하는 자들의 인생목표는 ‘자기와 자기 가족의 행복과 안녕’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를 위하지 않는 말은 배척하고, 그 말을 한 설교자를 미워하게 된다. 그런 자들에게 하나님은 우상이 되고, 섬김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생각해 보라. 자기가 제대로 알지 못하는 신에 대해 인간은 어떤 생각을 하겠는가? ‘아, 신이면 나보다 센 존재로군. 잘 보여야지. 기분 나빠 하지 않도록 잘 섬겨야지.’ 이렇게 갈 수 밖에 없다.

오늘날 교회에서 열심 있다고 하는 자들의 마음은 대부분 이렇게 자신이 하나님을 섬겨보겠다는 것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이다. 그렇게 하면 그 하나님이 자기를 잘 봐 주어서 가정의 평화도 주시고, 가족들이 잘 되게 해 줄 거라고 믿고 있고, 그걸 믿음이라고 오해하고 있다.

‘레카(너를 위하여)’, 결국 자기를 위해 하나님을 우상으로 만든 것이다. 시내산 아래에서 모세를 기다리다 지친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면서 뭐라고 했는가? “우리를 인도할 신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자.” 우상의 정체는 결국 자기인 것이다.

그들은 만약 하나님이 자기의 행복과 안녕을 도와주지 못한다면 그 하나님마저도 미워하고 원망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것이다.

사실, 천국은 큰 자가 섬기는 곳이고, 그래서 모두가 하나님의 섬김을 받으면서 그 하나님의 은혜와 공로를 찬양하는 나라다. 그런데 하나님을 우상으로 보는 자들은 자기가 수고하여 업적과 공로를 쌓아서 자기가 찬양을 받겠다고 열심을 부리고 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3) 제3계명 -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이름은 성경에서 중요하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롬10:13)’고 한다. 그러나 아무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받을 수 있는가? 마귀들도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라고 소리쳤다. 이름을 부른다는 건 그 이름만으로 산다는 뜻이다.

‘또 내가 보니...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계14:1)’ 이름을 부른다는 건 내 이름이 없어지고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산다는 것이다. 즉, 내 이름이 없어지는 것, 자기가 부인되고 삭제되는 것이 구원이다. 그러나 성령 받지 못한 자는 절대로 그렇게 살 수가 없다. 모두가 자기 이름 높이기 위해 산다. 자기 가치를 높이고, 자기의 옳음을 증명하고, 자기가 인정받고 칭찬받기 위해 산다. 그러나 자기 이름을 버리고 어린 양의 이름을 붙잡는 것이 구원이다. 그래서 성도의 이름은 ‘그리스도인’이다.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계명을 원어로 살펴본다. ‘망령되이’는 ‘레 전치사+관사+샤우(거짓)’으로 ‘그 거짓을 위하여’이며, ‘일컫다’는 말 ‘나사’는 ‘들어올리다, 가지고 가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를 직역하면 ‘여호와의 이름을 그 거짓을 위해 들어올리지 말라, 또는 가지지 말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여호와의 ‘말씀’인 ‘솀’을 파자하면 ‘분석된 말씀, 거룩한 말씀’이란 뜻이 된다. 요한계시록에서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한다. 즉,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또 그 말씀은 말씀이 육신되어 오신 예수님을 가리킨다. 빛으로, 말씀으로 오신 그분을 눈과 귀가 막힌 어둠들이 어떻게 대우했는가? 거짓으로 몰아서 십자가에 달아 들어올렸다. 하나님이 주신 제3계명은, ‘당신의 말씀이신 예수님을 너희들의 거짓을 위하여 십자가에 달아 들어올리지 말라’는 말씀인 것이다.

모든 것이 말씀이고, 말씀은 반드시 구원의 복음으로 깨달아져야 하는데, 말씀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면 인간은 반드시 구원의 복음인 말씀을 ‘하라 하지 말라’의 율법으로 보게 된다. 그때 그들은 반드시 하나님보다 자기를 찬양하게 되어 있고, 그들은 반드시 그 말씀을 주신 하나님을 미워하면서 십자가에 달아 죽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4) 제4계명 -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하나님은 6일 동안 창조하시고 7일째에 안식하셨다. 인간은 안식일 직전인 여섯째 날에 창조됐다. 이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 아무 것도 보탤 것이 없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창세전에 택정하신 당신의 백성에게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주길 원하신다. 이 세상과 우리의 인생은 바로 그 ‘양육’을 목적으로 지어진 것이다. 인생의 목적은 행복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으로 자라나는 것, 곧 하나님 백성으로의 양육인 것이다.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히12:7)’

여기에서 ‘징계’라고 번역된 ‘파이데이아’가 ‘양육, 교육’이란 뜻이다. 성도가 인생을 사는 일이 마치 징계를 당하는 것처럼 힘이 들지만 그건 전적으로 하나님이 아들로 만들기 위한 양육의 과정인 것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말씀’을 통해 ‘구원의 복음, 안식’을 잘 깨달으면 그가 아들이 되는 것이다.

창세기 1장을 보면, 태초에 하나님의 ‘일곱’ 말씀이 떨어지는데, 그 한마디 한 마디가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이다. 빛과 어둠, 궁창 위의 물과 아래의 물, 땅과 물.., 말씀 하나 하나가 약속이다. 하나님이 일곱 번 말씀하신 것이고, 일곱으로 약속하신 것이다. 그 약속의 완성 지점이 ‘안식’이다. 창세기 1장이 하나님의 ‘약속’이 제시되는 곳이라면 그 성취는 십자가에서 이루어진다. 하나님의 참된 말씀이 거짓말에 의해 거짓으로 오해받고 들어올려진 것이다. 언약의 나무 위에서 말씀이신 예수님이 일곱의 말씀, 가상칠언(架上七言)을 하시는데, 그 마지막이 “다 이루었다!(요19:30)”이다.

하나님 나라의 완성인 안식은 말씀이 육신되어 오신 예수님의 육신이 언약의 기둥에서 죽는 것으로 성취가 된다. 반석이 맞아 죽고 생수가 흘러나옴으로써, 예수님의 육신이 죽고 진리의 성령이 오심으로써, 창세전에 택한 자들의 마음 속에 불가항력적인 은혜로 침노하심으로써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는 것이다.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렘 31:33)’

모든 육적인 것들이 폐해지고 그 말씀, 진리의 성령만 분명하게 남는 것이다. 질그릇이 깨지고 보화, 보물만 남는 것이다. 예수가 죽고 그리스도 예수가 부활하는 것이다. 내가 죽고 예수 그리스도만 사는 것이다. 성도의 안식은 자기부인의 십자가에 있다. 십자가에 달려죽는 죽음 속에 안식이 있다.

‘자금 이 후로 주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계14:13)’

‘주 안에서 죽는 자’, 예수님이 명하신 자기 부인의 죽음을 죽는 자가 복이 있다. 그가 수고를 그치고 안식하게 되는 것이다.


5) 제5계명-네 부모를 공경하라

흔히 1~4계명은 하나님에 대한 계명이고, 5~10계명을 사람에 대한 계명으로 분류를 하지만, 5계명도 하나님에 대한 계명이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이 왜 하나님에 대한 계명인가, 의문이 들 것이다. 성경을 표피적으로 보면 인간의 생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항상 그 속에 담긴 구원의 복음을 발견해야 한다. 말씀을 바르게 깨닫게 되면 성경은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자기를 위하는’ 인간은 생래적으로 자기의 유익을 추구함으로써 지상에서 자기의 천국을 이루고 싶어한다. 이러한 추구를 함축한 말이 ‘행복’이다. 그러나 인간의 참된 복(베라카)은 인간이 피조물로서의 자신을 바르게 깨닫고 창조주이신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그 은혜를 찬양하는 것이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복의 참뜻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려는 건 오직 ‘하나님 나라의 창조’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5계명까지 하나님이 설명해주고 계시다는 점을 유념하라. 인간의 생활에 대한 계명 같지만 하나님에 대한 말씀인 것이다.

5계명의 부모는 ‘아버지(아브)와 어머니(엠)’이다. 이 히브리어를 파자하면 ‘아브’는 ‘하나님의 성전’, ‘엠’은 ‘하나님의 말씀’을 뜻한다. 그런 점에서 ‘父兮生我(부혜생아)하시고 母兮鞠我(모혜국아)하시니‘ 즉, ’아버지 날 낳으시고 어머니 날 기르시니‘라는 시경 구절은 진리에 닿아 있다고 하겠다. 하나님의 성전인 아버지가 생명을 주어 태어나게 하고, 진리의 말씀이신 어머니가 성도를 양육하여 아들로 만들어 주시는 것이다.

‘공경하라’는 ‘카바드’는 ‘공경하다. 영화롭다’는 뜻과 함께 ‘무겁다, 짐이 되다’는 뜻이 있다. 즉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은 너희를 생명으로 태어나게 하는 그 부모, 그 말씀을 공경하되, 그 말씀이 오해되면 그건 반드시 너희에게 무거운 짐이 될 것이다,‘라는 말씀인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