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의 강으로 보는 예수 그리스도
에덴은 천국의 모형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만드셨다. 에덴은 아름답고 모든 것이 잘 구비된 곳, 천국의 모형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에덴에서 선악과를 따먹고 범죄하는 바람에 실낙원 한 것을 애석해 한다. “그놈의 뱀 때문에 우리가 이 고생을 한다”, “내가 아담이었으면 뱀탕을 끓여 먹었을 텐데...” 하면서.
그러나 이후의 성경 이야기를 보면 결코 에덴은 최후의 종착역이 아니었다. 그곳은 단지 천국의 모형이었을 뿐, 우리는 가야할 길이 더 있었다. 훗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해서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만 그곳도 역시 천국의 모형이었던 것처럼.
천국, 약속의 땅은 예수님이 부활 승천 하신 후, 성령이 내려오시면서 이 땅을 사는 성도의 몸이 약속의 땅이 됐다. 예수님은 천국이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며,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할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다고 말씀하셨다.(눅17:20-21)
성도의 몸이 천국이고, 성령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다. 하나님이 나를 다스릴 때 내가 천국이 되는 것이다. 비록 육을 입고 이 땅을 살지만 ‘내 안에서 천국이 이루어졌는가, 성전이 되었는가, 하나님이 다스리고 계신가?’에 관심을 집중하는 자가 성도다.
에덴에서 발원한 네 강
강이 에덴에서 발원하여 동산을 적신다. 천국의 모형인 에덴 가운데, 곧 천국의 가운데, 하나님 보좌에서부터 강물이 발원되어 네 갈래로 뻗어나간다. 하나님 보좌에서 솟아나 네 갈래로 하늘의 생명수가 온 세상을 적시며 생명을 소성케 한다. 네 갈래의 방향은 온 세상을 의미한다.
이 내용이 에스겔서에 잘 나타나 있다. 에스겔은 환상 중에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수를 본다. 발목을 적시고 무릎을 오르고 허리에 오르다가 마침내 크게 창일해진 물은 강이 되어 바다에 이르고, 그 물에 의해 바다의 물이 소성함을 얻는다. 성경에서 바다는 저주의 상징이다.
바다는 요한계시록에서 음녀가 앉은 곳이고, 사단을 상징하는 용이 하늘에서 쫓겨난 후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하나님이 승리하는 모습을 묘사할 때 그 무대로 바다가 등장한다. 새롭게 열리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이 저주의 바다는 다시 있지 않게 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온 세상에 생명을 주고, 저주의 바다까지 소성케 할 강이 에덴에서는 이름이 없다가 사방으로 뻗어나가면서 비손, 기혼, 힛데겔, 유브라데라는 이름을 갖는다. 이는 하나님 나라에서 굳이 이름이 필요없던 성자 하나님이 세상에 오시면서 예수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과 같다.
내가 생명의 물이다
예수님은 자신이 생명의 물의 근원임을 직접 밝히셨다.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4:14)’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하신 말씀이다. 그녀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무시하는 이방의 땅 사마리아, 그 중에서도 손가락질 받는 허물 많은 여자였다. 그 사마리아 여자는 우리를 가리킨다. 무시 받는 이방인 중에서도 손가락질 받는 여자, 죄인 중의 괴수인 우리다. 예수님은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찾으러 오셨다고 했다. 자기 부인을 하고, 자기의 실존을 깨달은 자, 내가 죽은 흙이라는 걸 깨달은 자에게만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가 부어진다.
죄와 허물로 죽은 흙, 마른 뼈 상태인 신부, 교회, 우리에게 생명의 물을 주어 되살아나게 하시려고 우리의 남편이신 예수께서 부지런히, 열심히 한낮의 무더위를 무릅쓰고 달려오신 것이다. 예수께서 신부를 살릴 생명의 물을 주시니 성령에 의해 눈과 귀가 열린 신부가 알아 듣는다. “주여, 그 물을 내게 주사 다시 목마르지 않게 하옵소서.”
소경을 눈 뜨게
예수님이 날 때부터 소경된 자를 침에 진흙을 이겨 눈 뜨게 하시는 장면이 있다. 이는 죽은 흙인 인간에게 예수의 생명수가 더해져 생명이 탄생하는 창조의 모습을 보여주신 것이다. 예수님은 본다고 하는 자를 소경이고 죄인이라 하셨다.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되게 하려 함이라(요9:39)’
내가 죽은 흙, 마른 뼈, 소경, 죄인 중의 괴수임을 깨닫고 나의 불가능을 진정으로 토설하는 자만이 하나님의 긍휼을 얻을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은 값없이 은혜로 주어진다. 그 값없는 은혜를 나의 행위로 보답하고, 내 구원 내가 이루겠다고 하는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독사의 자식, 마귀 자식’이라는 비판을 받게 된다.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전도자인 사도 바울이 말년에 “내가 죄인 중의 괴수”라고 자복한 뜻을 잘 새겨보아야 한다. 구원은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는다. 믿음이란 ‘피조물이 창조주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는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 천국은 내가 뭔가 잘 해서, 점수 따서 가는 곳이 아니다.
죽은 흙을 보석으로
그렇게 잠잠히 죽은 흙이 되어 오직 은혜만 구하는 자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수가 부어지면 그는 생명을 얻고 빛나는 보석이 된다. ‘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에 둘렸으며 그 땅의 금은 정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창2:11-12)’
생명수가 닿는 곳의 흙이 정금이 되고, 베델리엄, 호마노 보석이 된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자는 죽은 흙에서 하나님의 아들로 변모한다. 제사장의 흉패에 하나님의 아들을 상징하는 ‘홍보석, 황옥, 녹주옥, 석류석, 남보석, 홍마노...’ 등 12 보석이 달리는 것이 그런 의미다. ‘이 보석들은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대로 열 둘이라(출28:21)’
뱀처럼 이 땅의 가치를 온몸으로 껴안고 사는 삶에서 떠나 하늘을 소망하며 하늘의 가치로 살게 될 때,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며, 하늘에서 영원히 빛나는 하늘의 보석, 별이 된다.
조정현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