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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

은바리라이프 2015. 5. 2. 08:53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1


아담 속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



“성경은 나에 대해 증거하는 것”이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듯 성경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기록이며, 하나님이 당신의 아들을 죽여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언약을 실천하시는 기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상고하면서 항상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 구원의 은혜를 발견해야 합니다.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천지창조를 하시면서 계속 ‘보시기에 좋다’고 하시던 하나님이 여섯째 날에 이르러 처음으로 ‘좋지 않다‘고 하셨다. 하나님이 ’우리의 형상‘으로 사람을 만드신 직후의 일이다.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창 2:18)’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굳이 이런 말씀을 하실 필요가 있으셨을까?

“이런, 만들어 놓고 보니 외로워 보이는군. 어서 짝을 만들어 줘야겠어.”

마치 계획성 없는 엔지니어처럼 시행착오를 바로잡기 위해 서둘러 배필을 만들어 주시는 것 같지 않은가. 처음부터 남자와 여자를 만들어 놓고 “보기에 좋다!” 하셔도 될 텐데 말이다.

사실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라는 말씀 속에는 커다란 구원의 은혜가 담겨 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구원하기로 작정한 하나님 백성들을 반드시 구원하여 영원히 함께 하겠다는 약속을 하시는 것이다. 즉, 비록 영원 속에서 홀로 완전하신 하나님이지만 그의 백성들을 구원하여 하나가 되지 않으면 ‘악한 상태’가 되기로 작정하셨다는 의미이다.

이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자신의 거룩성과 존엄성을 극도로 낮추신 일이며, 예수님이 성육신 하시고 십자가에 달리신 것과 같은 의미이다.

옆구리를 뚫고 태어난 여자, 교회

그런 연유로 하나님은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고 그의 갈빗대 하나를 취해 여자를 만드셨다. 성경에서 잠을 잔다는 것은 늘 죽음을 은유한다. 하나님은 아담을 죽이고 여자를 탄생시킨 것이다. 2000년 전 자신의 신부를 탄생시키기 위해 옆구리가 뚫려 죽은 신랑이 있었다. 그는 바로 십자가에 달린 채 창에 찔려 옆구리에서 물과 피를 모두 쏟고 자기의 신부인 교회를 탄생시킨 예수 그리스도이다.

교회는 구원받은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가리킨다. 성도가 교회이고 성전이다(고전3:16). 예배당 건물을 교회, 성전이라고 오해하면 안 된다.

아담이 잠들고, 그에게서 적출된 갈빗대로 그의 신부인 하와가 탄생하는 장면은 정확하게 예수님이 죽으시며 교회를 탄생시키는 장면을 예표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아담만이 아니라 하와까지 만들고 안식하신 일은 교회, 곧 하나님 백성이 구원의 작정 속에 이미 들어 있다는 것을 확증해 준다.

우리의 형상으로 사람을 만들자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것이 그리스도라고 증거하고 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아담은 바로 그리스도의 모형이며, 하나님 보좌 ‘우리’에게서 나와서 여자에게로 가서 여자와 함께 죽고 여자와 함께 부활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희생에 의해 태어나는 여자는 바로 교회인 것이다.

그런데 사람이 독처하는 악한 상태(창2:18)와 그걸 해결하는 여자의 창조 사건(창2:21~25) 사이에 묘하게도 아담이 짐승의 이름을 짓는 사건(창2:18,19)이 삽입되어 있다. 왜 그 사건을 그 시점에 집어넣은 것일까?

짐승들의 이름을 짓는 일은 표면적으로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만물을 다스리는 인간의 위상을 보여준다. 그러나 더 깊이 들여다보면 역시 복음, 구원의 복된 소식이 담겨있다. 첫째, 수많은 짐승들이 아담 앞으로 왔지만 그들은 아담의 배필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성경은 택함 받지 못한 인간을 ‘잡혀 죽기 위하여 난 이성 없는 짐승’이라고 부른다. 둘째,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이 없는 자들과는 연합하지 않겠다는 구원과 심판의 약속 또한 담겨있다.

부모를 떠나 둘이 한 몸을 이룰 지로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결혼시키면서 ‘남자가 부모를 떠나 여자와 한 몸을 이룰지로다’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결혼하는 남녀가 부모의 간섭에서 떠나 독립성, 주체성을 가지고 행복하게 잘 살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 말씀 또한 깊디깊은 복음으로 하나님 아버지를 떠나 이 땅에 오셔서 신부인 교회와 혼인하여 하나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명령이다.

성경은 이 세상의 생활을 위한 지혜서가 아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구원, 영원한 생명에 대한 말씀만 하고 있다. 성경은 보이는 대로만 보면 안 된다.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 말씀의 진의를 잘 살펴야 구원의 복음이 제대로 보인다.

보시기에 심히 좋다

마침내 하나님이 여자까지 만드신 후 “보시기에 심히 좋다!”고 말씀하셨다. ‘좋다’고만 하시던 하나님이 처음으로 ‘심히 좋다’고 하시며 매우 기뻐하셨다. 여기에는 ‘나는 반드시 그러한 ‘좋은 상태’를 만들겠다. 반드시 너희들을 구원하겠다.’는 하나님의 다짐이 들어있다. 하나님의 그 절절한 다짐이 ‘심히’라는 말 속에서 느껴진다.

아담과 하와의 창조기사나 성경의 여러 구절들을 표면적, 문자적으로 보면 남성 우월주의로 보이기도 한다. 민수기에서는 하나님이 여자의 서원을 무시하기도 하신다. 그러나 이것은 남녀 차별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하나님은 예수님만 인정하시겠다는 것이다. “네 남편 예수 허락 받고 와! 나는 여자(사람)의 말 안 듣겠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만 하나님께로 이르는 길이며, 우리의 모든 기도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는 것이다.

조정현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