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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떨기나무

은바리라이프 2015. 5. 2. 08:54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7

불타는 떨기나무 속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

여호와의 사자

모세가 양을 치러 호렙산에 갔다가 떨기나무가 불에 타는 광경을 보았다. 모세는 노아의 방주(hb;T 테바)와 같은 의미인 갈대상자에 실려 떠내려가다가 애굽 공주에 의해 건짐을 받았다. 그의 이름 모세는 ‘물에서 건진 자’라는 뜻이었다. 그는 애굽 궁정에서 공주의 양자로 살면서 애굽의 학술을 다 배웠고 말과 행사에 능했다(행7:22). 그러나 살인사건을 일으키고 미디안 땅으로 도피해 40년째 애굽인들이 가증하게 여기는 목축을 하면서 살고 있었다.

모세가 놀란 것은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지만 그 떨기나무가 타서 없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않는지 의아해하며 다가갔다가 불꽃 속에 현현한 여호와의 사자를 보았다.

성경 기자는 그를 여호와의 사자(말라크 야훼)라고도 칭하고, 여호와(야훼)라고도 하고, 하나님(엘로힘)이라고도 불렀다. 성경 기자가 다름아닌 모세 자신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호칭의 혼돈은 의미심장하다. 그렇다면 여호와라고도 하고, 하나님이라고도 하는 여호와의 사자는 누구를 말하는가? 사사기에도 이처럼 여호와의 사자에 대한 호칭이 뒤섞이는 장면이 있다. 기드온(6장)과 삼손의 부모(13장)에게 나타난 여호와의 사자 역시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 여호와의 사자 등 여러 호칭으로 불리고 있다.

‘하나님의 사자로 오신 하나님’은 바로 성자 하나님인 예수 그리스도이다. 예수님은 2000년 전에 한번 왔다 가신 것이 아니라 역사 내내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또한 2000년 전에 한 번 골고다에 선 것이 아니라 창세 이래, 역사 내내 서 있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성도는 십자가에 의해 구원을 받고 있다. 예수님 이전에는 십자가가 아닌 다른 무엇에 의해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모든 성도가 동일하게 십자가에 의해서 구원받고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떨기나무에 불이 붙고 있었지만 그 떨기나무는 타지 않았다. 성경에서 불은 심판의 상징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히12:29)’이라고 했다. 정결한 눈을 가지신 하나님은 패역을 참아 보지 못하시며 악을 보면 돌격하여 소멸시키는 분이다. 거룩하신 그분은 그분의 본질에 거스르는 것들은 모두 태워버리신다.

그런데도 이토록 우리를 오래 참으시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 이유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대신 받으셨기 때문이다. 불타는 떨기나무에 나타난 여호와의 사자는 하나님의 진노를 대신 받는 예수 그리스도를 메타포(metaphor 은유) 한다.

모세는 죽기 직전의 고별 설교에서 ‘가시떨기나무 가운데 거하시던 자의 은혜(신33:16)’를 말한다. 모세는 호렙산에서 만난 여호와의 사자의 계시와 은혜를 평생 잊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세네(hn<s]), 가시떨기나무는 창세기 3장의 저주를 생각나게 한다.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창3:17-18)

하나님의 저주를 상징하는 가시덤불 속에, 그 저주의 자리에 우리를 구원하시는 복된 대속물, 예수 그리스도께서 들어오신 형국이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고, 죄의 삯은 사망이므로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진노의 불에 소멸되어야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대신 그 불심판을 감당하셨으므로 우리가 건짐을 받은 것이다. 우리는 평생의 업적과 공로 덕분이 아니라 오직 그 대속(代贖)의 은혜로 산다. 그걸 깨닫는 자가 성도다.

가시덤불에 나타나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거룩한 진노의 불꽃, 맹렬한 화염에 삼켜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분은 우리가 받아야 할 저주의 자리에서 홀로 수난 받으면서도 우리의 구원을 말씀하고 계셨다.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았다.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데려갈 것이다(출3:7-8).”

‘내가 내려가서(dr'y 야라드)’라는 말은 ‘강림’을 담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예고의 말씀이다. '여호와께서 인생들의 쌓는 성과 대를 보시려고 강림하셨더라(창 11:5)'는 구절에도 야라드(dr'y)가 사용된다.

가시나무의 기름부음

가시떨기나무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이스라엘 민족을 뜻하기도 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모세에게 나타나신 때는 히브리 사람들이 '애굽의 불가마(신4:20)'에서 고생하던 때다. 사막의 뜨거움과 고난이 400년동안 그들을 태우고 있었지만 그들은 소멸되지 않았다. 핍박의 불이 뜨겁게 타올랐지만 그들은 보존됐다. 그리스도께서 스스로 불붙는 떨기나무에 계신 것 같이 이스라엘과 함께 계셨기 때문이다. 마치 바벨론의 불가마 속에서 세 히브리인과 함께 계셨던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우리와 함께, 우리 대신 고난을 겪어주시면서 불같은 시련의 모든 기간 동안 이스라엘을 보존해 주셨다.

또한, 가시떨기나무, 곧 가시나무는 아무 쓸모도 없고 저주받은 우리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가시나무는 땔감으로도 겨우 쓸까 말까 할 정도로 이용가치가 없다. 무익한 종이며, 죽은 흙, 마른 뼈 같은 존재다. 그런데 그 가시나무, 곧 조각목에 금이 둘러싸이면서 지성소에 들어가는 법궤가 되고 각종 기명이 됐다. 보잘 것 없고 쓸모없는 조각목이 금으로 인해 덩달아 금화(金化) 되는 것이다.

성경에서 금과 기름은 같은 의미이다. 왕이나 선지자에게 ‘기름 붓는다’고 한다. ‘기름 붓는다’는 말은 성령세례를 의미한다. 금과 기름은 공히 성령을 상징하는 소품이다. 가시나무를 금으로 싼다는 것은 성령과 말씀으로 우리를 덮어서 살려내는 것, 곧 구원을 설명하는 일이다. 쓸모없는 가시나무 같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부어지면 우리는 비록 무가치하지만 존귀하신 그분으로 인해 우리가 함께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늘의 백성이 되는 것이다.

보잘 것 없는 질그릇에 보물이 담기는 것과 같은 의미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가입(加入)이 없으면 우리는 다만 죽은 흙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라는 보물이 담길 때 그로 말미암아 덩달아 가치있는 존재가 되고, 그로 말미암아 덩달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 이것이 구원이다. 이는 전적으로 ‘가시떨기나무 가운데 거하시던 자의 은혜’다.

조정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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