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8
유월절 어린 양 1
강퍅한 바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애굽의 바로에게 보내졌다. 그러나 9번의 재앙이 애굽에 내려졌지만 바로는 여전히 마음이 강퍅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주지 않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재앙으로 인해 애굽은 완전히 초토화가 됐다. 바로의 신하들은 애굽이 망했다며 빨리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낼 것을 바로에게 간청했다. 그러나 바로는 여전히 교만하여 신하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바로는 1차적으로 하나님 백성을 붙잡고 이 세상의 종 노릇 시키는 공중권세 잡은 자들, 사단과 마귀의 세력을 가리킨다. 그들은 하나님 백성의 출애굽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래서 10의 재앙, 완전한 재앙을 받고서야 이스라엘 백성을 놓아주는 것이다.
바로는 2차적으로 하나님을 떠나 스스로 왕이 되어 선악 판단의 주체가 된 나, 끝까지 나의 유익과 내 배(腹)만 생각하면서 우상을 섬기는 나, 주체성과 독립성을 주장하면서 내 자존심과 명예를 챙기는 나, 그리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멸망할 나를 가리킨다. 나의 강퍅함이 바로보다 덜한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을 것이다.
끝까지 나의 왕 됨, 나의 하나님 됨을 포기하지 못한 채 열심히 나만 사랑하면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는 나를 돌아보라. 애굽이 완전히 망한 것처럼 완전히 털리고, 완전한 자기부인의 상태로 굴러 떨어지고, 하나님께 멸망하고 항복해야 할 바로가 바로 나다.
애굽 신들의 죽음
지금까지의 재앙들은 애굽의 신과 관련된 재앙이었다. 피 재앙은 나일강의 신 하피와 크눔, 개구리 재앙은 개구리 형상의 생명과 다산의 여신 헤케트, 이 재앙은 땅과 사막의 신 세트, 파리 재앙은 파리의 신 우아티트, 질병을 치료하는 신 케페라, 생축 재앙은 수소의 신 아피스와 암소의 신 하토르, 독종 재앙은 대지의 신 타이폰, 의술의 신 임호텝, 질병의 신 세크멧, 우박 재앙은 대기의 신 슈와 하늘의 여신 누트, 생산의 신 오시리스, 메뚜기 재앙은 곡식의 수호신 세라피스와 곡물의 신 세트, 흑암 재앙은 태양신 라와 대기와 불의 신 호루스 등을 각각 무력화 시키고 조롱했다. 마지막 열 번째 초태생의 재앙은 생명의 신 프타아, 재생의 신 민, 출산시 여인을 돌보는 신 헤케트, 어린이 수호신 이시스, 다산의 신 오시리스를 싸잡아 조롱할 참이었다.
또한, 이러한 재앙의 대부분은 자연현상 속에서 실제로 가끔씩 일어났던 현상들이었다. 물이 피로 변한 재앙은 애굽의 술사들도 흉내낸 바 있고, 파리 재앙은 바벨론의 아트라-하시스 서사시에 언급되어 있다. 메뚜기 재앙은 요엘서에도 나와 있고, 아프리카, 유럽 등에 가끔씩 메뚜기떼가 출몰했다. 최근에는 우리나라에도 수십억 마리의 황충(蝗蟲)이 덮친 바 있다.
흑암의 재앙은 손으로 더듬어서 움직여야 할만큼 캄캄했다고 ‘더듬을만한 재앙’이라고 묘사했다. 지금도 중동의 사막지대에서는 봄과 여름의 환절기에 캄신이라는 모래폭풍이 불어 마을을 집어삼키기도 한다. 하나님은 이 땅의 자연현상들을 이용해서 인간이 만들고 숭배하는 우상이 실제는 무력하고 무의미하며, 오직 하나님만이 참신이란 걸 보여주셨다.
장자의 죽음과 유월절
하나님은 이제 마지막 열 번째 ‘초태생의 죽음, 곧 장자의 죽음’ 재앙을 내려시려 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재앙 직전에 달력을 바꾸게 하셨다. 이제부터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로 삼으라고 하셨다. 히브리력의 정월은 양력 3월과 4월 사이이고, 유월절이 들어있는 양력 3~4월에 1월이 된다. 성도의 인생은 출애굽으로부터, 회심한 날로부터 새롭게 시작된다는 걸 가르쳐 주시는 것이다.
온 애굽이 ‘장자의 죽음’ 재앙을 받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만 이 재앙에서 벗어났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 구원의 비책 덕분이었다. 그 비책이란 어린 양을 죽여 그 피를 문의 인방과 설주에 바르는 것이었다. 그 피를 우슬초에 묻혀 인방과 설주에 바른 집은 ‘멸하는 자’가 양의 피를 보고 그냥 넘어감으로써 해를 입지 않았다. 이것이 유월(逾越 넘어감)이며, 이를 기념하는 절기가 유월절(逾越節)이다.
이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흠 없고 1년 된 수컷 양을 취했다.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가리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했듯이, 이 흠 없는 어린 양은 무죄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하나님은 유월절 양을 잡아서 그 피로 양을 먹을 집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라고 하신다. 문에 바른 피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릴 피를 예표한다. 문 인방에 뿌린 피는 가시 면류관으로 인해 머리에 흐를 피, 좌우 설주에 뿌린 피는 못에 박힌 양손에서 흐를 피를 각각 예표한다.
그렇다면 이런 의문이 든다. 예수님의 발에도 피가 흘렀을 텐데 문지방에는 뿌리지 않는가? 그러나 문지방에는 피를 뿌릴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이미 피가 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출애굽기 12장을 보면 하나님은 우슬초로 ‘그릇에 담은 피’를 젹셔 문에 바르라고 명하신다(출12:22). 피가 담긴 ‘그릇’을 히브리어로 ‘사프’라고 하는데, 이 단어는 ‘문, 문지방’이란 뜻도 함께 가지고 있다. 유월절 양을 죽인 곳이 바로 문지방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거기에는 이미 피가 흥건하게 흘러 있었다.
유월절 어린 양의 죽음
하나님은 유월절 양을 10일에 취했다가 14일에 죽이라고 하셨다. 이 기간은 예수님의 공생애의 예표다. 예수님은 서른 살에 공생애를 시작해서 3년 반 동안 일하셨다. 하나님의 묵시 속에서 하루는 1년으로 계산한다. 예수님의 광야 40일이 이스라엘 민족의 광야 40년을 모형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또한 그 4일의 기간은 예수님의 최후의 4일을 모형하기도 한다. 예수님이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신 것은 니산월(유대력 정월) 11일이었다. 12일에 예수님은 제자들을 가르치셨고, 13일에는 최후의 만찬과 다락방 강화를 하셨다. 그리고 14일 유월절에 예수님은 십자기에 달리셨다.
그러면 예루살렘 입성 직전, 니산월 10일에 예수님은 무얼 하셨을까? 그날에는 베다니에서 마리아가 향유 옥합을 깨어 예수님께 붓는 사건이 있었다. 이는 죽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어린 양이 장례를 위해 기름부음을 받는 일이었다. 이미 유월절 어린 양은 하나님에 의해 취해져서 죽을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성경은 이처럼 한 치의 오차도 없다.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졌고, 성령께서 편집하신 책이 맞다.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에 대한 이야기만 하고 있다. 모두 구원의 말씀, 구원의 복음만 말씀하고 있다. 성경에서 ‘어떻게 하면 이 세상을 잘 살 수 있는가?’하는 방법이나 매뉴얼을 찾는다면 헛된 일이다. 그건 구원과 영생이 얼마나 크고 감사한 일인지 모르는 자들이 하는 일이다. 자기 아들을 죽여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하나님, 자기 몸을 대속의 제물로 내어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아는 자는 오직 그 은혜를 감사하고 찬양할 뿐이다.
조정현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