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나단선교사/성경 순례여행

순례여행7-베다니

은바리라이프 2014. 7. 4. 16:58

순례여행7-베다니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곳

베다니는 예루살렘의 동쪽 약 2.7되는 감람 산의 동남 기슭에 있던 작은 마을이다. 이곳은 세례 요한이 세례를 베풀던 요단강 건너편 지역으로써 세례요한이 그리스도를 증거한 곳이며, 마르다, 마리아, 그리고 그의 오빠 나사로가 살던 곳이다. 또 문둥병 환자 시몬의 집이 있었으며, 예수님의 승천 장소도 여기서 가까웠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의 마지막 시기에 종종 여기에 오셨다. 현재 베다니에 사는 사람들은 거의가 1948년 이후에 정착한 아랍사람들이며 대부분이 가까운 예루살렘에서 일하고 있다.

베다니는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를 살리는 이적을 행하신 곳으로 유명하다. 나사로의 무덤을 나와 밑으로 20m정도를 내려가면 은색 둥근 지붕의 프란치스카 교회가 있다. 이 교회는 1954년 이탈리아의 유명한 건축가 발루지(Barluzzi)에 의해서 세워졌다. 교회의 전체구조는 가운데 둥근 지붕을 중심으로 십자가 모양을 하고 있다. 교회 앞 정면에는 장식된 모자이크가 있고 좌측에 종탑이 있다.

둥근 지붕 안에는 비둘기를 모자이크한 48개의 금도금한 접시가 장식되어 있다. 교회 안에는 북쪽과 남쪽에 두개의 제단이 있는데, 관의 모양을 한 돌에는 나사로의 죽음과 부찰의 장면이 조각되어 있다. 그리고 윗벽에는 무덤에서 나오는 나사로의 모습, 예수님을 맞이하는 마리아와 마르다, 예수님의 발 아래서 말씀을 듣는 마리아, 그리고 예수님의 머리에 기름을 붓는 여자의 장면이 네 벽에 모자이크로 그려져 있다.

교회앞 뜰에는 1964년에 이곳을 방문한 교황 피우스 6(Pope Pius VI)을 기념해서 동상이 있다. 교회를 나와서 다시 나사로 무덤을 지나 언덕으로 올라가면 좌측에 1965년에 십자군 시대의 교회터 위에 세워진 그리스 정교회 소속 나사로 교회가 있고, 골목을 끼고 맞은편에는 교회와 고아원이 있다. 그리고 골목을 따라 들어가면 우뚝 솟은 십자군 시대의 탑이 있다.

 

사망 권세를 부정하심

예수님이 나사로를 살리는 것은 7번째 표적이다. 예수님은 나사로를 살리러 가시기 전에 제자들과 함께 요단강 동편으로 가신다. 이는 요단강을 동에서 서로 건너기 위해 이동하신 것이다. 이 모습은 출애굽 때 예수를 모형하는 여호수와와 이스라엘 열 두 지파가 요단 동편에서 요단강을 건너는 것과 같은 모습이다.

예수님은 열두 지파를 상징하는 열두 제자들과 함께 요단강을 건너 이 세상 그 누구도 무너뜨릴 수 없는 철옹성 여리고와 같은 사망을 무너뜨리기 위해 행군해 오시는 것이다. 예수님이 나사로가 위독함을 듣고 이틀을 더 유하신 후 사흘째에 요단강을 건너는 것은 여호수아가 요단강을 앞에 두고 3일 동안 건너지 않고 유숙하는 모습과 같은 맥락이다.

여호수아는 요단강을 건너는 것이 홍해를 건너는 것과 같은 사건이라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설명한다. 홍해 도하 사건은 세례의 의미를 가진 사건이기도 하다(고전10:2). 세례는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으로 재탄생하는 일이다. 세상에 대하여 죽고, 하늘 백성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사건이다. 옛사람이 죽은 자, 자기부인의 죽음을 죽은 자는 더 이상 죽음과 관계없는 자다.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 (그러므로)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11:5-6)

‘(그러므로)’는 원어에는 있지만 우리 성경에는 없다. 예수님은 나사로 남매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나사로가 완전히 죽기를 기다리셨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십자가의 죽음을 죽은 자다. 그는 완전한 자기부인의 죽음을 죽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만 사는 자다. 더 이상 자기를 주장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로 사는 그를 하나님이 되살려 부활의 생명을 주시는 것이 구원의 메카니즘이다(2:20). 그때 그는 이제 죽음과 관계없는 자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성도는 에녹처럼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죽음을 보지 않고 올라가는 자다. 스데반 집사가 돌에 맞아 죽을 때 성경에서 잠잔다고 표현한 것이 그런 연유다.

예수님은 이 세상 그 누구도 상대할 수도 없고 이길 수도 없는 사망과 세상 권세를 나사로를 살리는 사건으로 부정해 버리셨다. 그래서 나사로의 부활사건 바로 다음에 유월절이 등장하는 것이다.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우리가 사망에서 건짐을 받았기 때문이다.

조나단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