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목사/산상수훈

산상수훈(33)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아라 (마6:5~6)

은바리라이프 2013. 10. 17. 09:20

산상수훈(33)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아라

 

(6:5~6)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우리는 지난 두 주간에 걸쳐 기도란 무엇인가에 관한 개괄적 내용을 공부해보았습니다기도라는 것은 일차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우리에게로 흘러나오는 것이라 했습니다원래 존재도 아니었던 죽은 흙들에게 원함이라는 개념은 가당치도 않은 것입니다원함이 있기 위해서는 마음과 뜻이라는 것이 있어야 하는데 인간이라는 존재는 진리를 마음으로 갖기 이전에는 짐승에 불과한 것이라 참 마음과 참 뜻이 있을 수 없다고 성경은 진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따라서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으로 갖기 이전에는 올바른 원함올바른 기도를 내어 놓을 수 없는 것이 이 인간세상 아담 군상들의 현실인 것입니다마음이 있어야 원함이 생길 수 있지요?

그래서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마음과 뜻과 거기에서 발출된 하나님의 원함이 먼저 있고 그 원함에 의해 그 원함의 과정 속으로 함몰되어 들어간 어떤 존재들이 하나님의 원함을 자기의 원함으로 전이 받아(그것이 바로 진리라는 것을 깨달아서자기 자신과 하나님과 자기 이웃에게 흘려보내는 그 원함의 내용이 바로 기도(프로슈코마이)라 했습니다그래서 주님은 너희가 내 이름(말씀)으로 구하는 모든 것은 아버지가 다 이루어주신다고 말씀을 하셨던 것입니다그것은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니까요당연히 아버지가 계획하시고 뜻으로 세우셨던 것은 성취가 되어야지요.

 

그런 면에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기의 마음으로 갖지 못한 자들의 기도는 성경이 말하는 항상 기도하라의 그 기도가 아닌 것입니다그냥 짐승들의 육적 욕망에 의한 사악한 부르짖음일 뿐입니다.생각해 보세요하나님과 아무 상관없는 이 세상 모든 종교에 기도라는 것이 있습니다심지어 무신론자들도 무심결에 자기의 원함을 누군가에게 빌곤 합니다그런데 기독교인들이 모여 있다는 교회 안에서의 기도가 그들의 기도와 조금도 다르지 않아요형식도 똑같고 내용도 똑같아요성경은 분명 인간이라는 존재 안에서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먼저 기도하지 않으면 인간이라는 존재는 기도를 할 수 없는 존재라고 반복하여 말하고 있는데 이 세상 모든 인간들이 기도라는 것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그렇다면 성경이 틀린 말을 하고 있는 것이던지 이 세상의 기독교가 정의하고 있는 기도라는 것의 내용이 틀린 것이던지 둘 중 하나일 거 아닙니까?

 

당연히 이 세상 사람들특히 기독교가 정의하고 있는 기도라는 것의 개념이 잘 못되어 있는 것입니다기도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내 마음으로 가져 그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내 안에서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고그것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나와 내 이웃을 향하여 들려주고 너도 제발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원함을 갖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의 기도들이 하나같이 복음을 담고 있는 것이며 그 기도는 자기 자신에게 들려주는 독백의 형식을 갖기도 하고 다른 이들에게 들려주는 형식을 갖기도 하며 하나님께 아뢰는 형식을 갖기도 하는 것입니다.

 

기도라는 것이 바로 그러한 것임에도 불구하고세상 사람들과 하나도 다른 것 없이 이 눈에 보이는 현상계에서의 자기 마음(에피두미아)을 좇아 외적 세계 속에서의 육신과 그 육신의 원함을 기도라는 것으로 내어놓는 이들을 오늘 본문이 외식하는 자라고 일컫는 것입니다.

 

주님은 절대 그들처럼 기도하지 말라고 하세요그건 기도도 아니라는 것입니다그들은 사람의 눈에 보이려고 기도를 한다고 하지요그 어구는 이미 우리가 앞에서 공부한 내용입니다. 6장 1절에서사람의 눈에 보이려고 의를 행하는 것이라는 어구를 공부할 때 자세하게 설명을 해 드렸습니다그 어구는 단순히 사람들에게 잘난 척을 하기 위해서라는 의미가 아니라 눈에 보이는 나타난 것을 의로 규정하고 행하는 것을 가리키는 어구라 했습니다.

 

예를 들어 네 이웃을 사랑하라라는 성경의 진술을 문자적으로만 이해를 하여 이 인간 세상이 정의해 놓은 그런 종류의 사랑을 하려고 애를 쓰는 것그것이 바로 외식이라는 것입니다하나님의 말씀은 눈에 보이는 대로 봐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그 행간에 숨어 있는 메시지로 읽어서 그 메시지를 깨달으면 되는 것입니다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보이는 대로 읽어서 보이는 행위로 낳아버리면 그게 바로 외식인 것입니다사람들은 그것을 의로운 행위라 우기지만 주님은 그런 거 하지 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6장 1절이 그런 내용입니다.

 

사랑이라는 헬라어 단어 아가페는 고유명사로 사용이 됩니다그건 사랑이란 단어가 갖고 있는 내용이 어떤 감정과 보이지 않는 실체의 추상적 흐름을 진단하는 추상명사가 아니라 고유한 한 대상,혹은 대상으로 인식될 수 있는 하나의 이름을 가진 고유명사라는 의미입니다그런데 그 고유명사로서의 사랑을 담고 있다는 성경은 그 가리킴의 대상을 단 하나의 대상으로 압축해 줍니다사랑은 곧 하나님이시라고.(요일 4: 16)

그러면 성경이 말하는 사랑하라는 사랑이신 하나님으로 교제(코이노니아)하라는 말이 되겠지요?그런데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도 열심히 사랑의 삶을 실천하겠다고 부산들을 떨고 있습니다성경은 그런 것을 외식이라 합니다. ‘아가페라는 헬라어 단어가 히브리어 아하바를 그대로 옮겨 적은 것인데 아하바는 하나님의 말씀이 성전으로 말해지는 것을 뜻합니다하나님의 진리가 아래의 것을 수단과 방법으로 그려지고 전해질 때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릅니다따라서 사랑은 감정의 개념 이전에 진리라는 컨텐츠로 이해를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하나님께서 성경을 처음 주셨을 때 왜 모음을 함께 주시지 않으셨을까요그리고 왜 띄어쓰기나 문법적 해석을 시도조차 못하게 하셨을까요성경을 소리로 읽지 말라고 그렇게 주신 것입니다너희들이 너희의 소리로 읽어 버리면 너희는 반드시 그것으로 망하게 된다는 것을 암시해 주신 것입니다그러니 읽지 말고 마음으로 받으라고 성경을 그렇게 주신 것입니다그러니까 나타난 문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내용에 대한 이해가 중요한 것입니다그래서 제가 그 문자 뒤에 숨은 내용을 찾아 드리기 위해 원어니 뭐니 하면서 시간과 공을 들이고 있는 것입니다오해하지 마세요원어를 모르면 진리에 도달 할 수 없다는 말씀이 아닙니다진리는 성령에 의해 바람처럼 찾아오는 것입니다.

 

제가 히브리어나 아람어나 헬라어를 가지고 성경을 분석하고 연구하고 하는 것은 여러분이 이미 마음으로 갖고 계신 그 진리에 대한 증거를 대 드리기 위함인 것이지 그것을 통하지 않으면 절대 진리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닌 것입니다하나님의 백성은 성령에 의해 진리에 도달하게 됩니다.그런데 그들이 육을 입고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그 진리 위에 굳게 서 있을 수가 없어요그래서 하나님은 설교자들을 통해 그 진리가 참 진리임을 반복하여 확증하게 하시는 것입니다거기에 원어 연구도 필요한 것이고 신학적 학습과 연습이 필요한 것입니다원어 같은 거 몰라도 돼요아니 한글도 모르셨던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들도 그 상태에서 진리를 알고 가신 분들이 계시다니까요그건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능력에서 기인한 것입니다그런데 현대 사회는 이러저러한 이단 사설들이 너무 많이 들어와 있을 뿐 아니라 신학도 너무 많이 왜곡되어 있어서 진리가 홀대를 당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그래서 성경의 내용이 진짜 참 진리만을 말하고 있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훨씬 힘들어졌어요그런 연유에서 원어까지 동원해서 하나하나 증거를 대드리는 것이지 그 길만이 생명에 이르는 길이 아닌 것을 명심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무튼 그렇게 외식하는 기도에 대해 엄중히 경고를 하신 주님께서 그 외식하는 기도가 행해지는 장소까지 말씀해 주십니다회당과 성전마당(플라테이아큰 길모퉁이입니다회당은 하나님의 말씀이 율법으로 전해지는 장소였고 성전마당 모퉁이는가운데즉 지성소로 이해되어지지 못하는 성전마당 적(희생제사말씀이해를 상징하는 것입니다나중에 살펴보겠지만 성경은 모퉁이와 가운데를 분명하게 가릅니다모퉁이 적인 것은 전부 멸망에 이를 것으로 묘사가 되고 가운데 것이 생명에 이르게 한다는 것을 여러 곳에서 진술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회당과 성전 마당 모퉁이에서 사람들 눈에 보이기 위해 기도하는 외식하는 자들은 자기의 상을 이미 받았다고 하지요그 상은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서 나오는 너는 세상에서 좋은 것을 받았잖니?’의 그 좋은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하나님과 그 분의 나라에 대해 관심이 없는 이들은 온통 이 세상의 것에만 집중하여 살아갑니다그들이 구하는 것은 뻔 하지요전부 나 하나님 되기에 필요한 재료 들 뿐입니다그러한 가짜 기도는 응답을 받은 만큼 손해입니다그만큼 저주의 길에 가까워지는 것이니까요.

 

재미있는 것은 이미 받았다라고 번역이 된 헬라어 단어 아페쿠신이 멀어졌다’, ‘멀리 떠났다는 뜻을 함께 갖는다는 것입니다우리는 여기에서 이 세상에서 육적 차원의 상을 이미 받은 자들은 하나님의 상에서 그만큼 멀어지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여기서 예수가 언급하고 계신 은 생명 차원에서 최종적으로 나타나게 될 그 날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증여하시는 무한적 속성하나님 생명으로의 참여를 상징하는 것입니다그 상으로부터 멀리 떠난다는 의미는우리 자신이 위선자들과 같이땅의 차원에 생명 차원의 말씀을 설정해 버릴 경우우리는 결코 하나님 차원으로의 합류이른바 천국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이런 것입니다하나님의 말씀을 표피적으로인간들의 두 마음으로선악과 패러다임으로 오해를 하여 사랑과 구제와 기도 등을 땅의 차원의 것들로 행해버리면 그게 바로 오난과 같은 땅에로의 배설이 되는 것입니다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을 진리의 영생명의 씨로 주십니다하나님의 백성은 그 말씀을 생명의 씨로 잘 받아서 그 씨가 필요한 이들에게 전달해 주면 됩니다그런데 그 말씀이 땅 적 차원의 것으로 이해되어지고 전달되어지면 그 자는 하나님의 귀한 생명의 씨를 땅에다 배설해 버리는 오난과 같은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그는 죽습니다.

 

지금 성경이 구제와 기도를 사랑의 방법론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것을 놓치시면 안 됩니다. ‘살인하지 마간음하지 마거짓증거하지 마그리고 그것을 잘 깨달아 이웃에게 전해주는 그 사랑을 해,그러면 그게 온전함이야라고 말씀하신 주님께서 구제와 기도를 그 사랑 해라는 명령의 연장선상에서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그러니까 구제와 기도는 그 사랑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로 올바로 이해를 하여 제대로 흘려주는 것에 관한 이야기여야 하는 것입니다그런데 그것을 땅 적 차원의 것으로 곡해를 하고 그것으로 흘려버리면 그게 바로 외식이라는 것입니다.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과 그들의 가르침에만 경도되어 있었던 유대인들은 바로 이러한생명 본향에 이르도록 하는 생명의 말씀을그저 땅의 차원에서 시작해 땅의 차원으로 마무리 짓는 일반론의 순환에만 머무르도록 했습니다그리고 이러한 일반론의 순환을 통해서만이 메시야그리스도를 대망하게 되는 선민으로서의 자격을 얻게 된다고 가르쳤습니다지금의 기독교도 별반 다를 바가 없고요주님은 바로 그러한 가르침을 휘포크리타이’, 위선자들의 행태라고 통렬히 폭로하셨던 것입니다.

 

그렇게 기도는 보이는 세계에서 보이는 세계로 순환되는 단순한 배설의 역사가 아니고 보이는 세계에서 시작해 보이지 않는 세계로 몰입되는 거룩한 영적 상승의 역사인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기도를 하려거든 골방 안으로 들어가라고 말씀을 이으시는 것입니다이 말씀을 곡해하여 기도원마다 기도 굴을 파 놓고 그 속에 들어가 기도하면 응답이 빠르다고 사기를 치는 것입니다그리고 교회 안에서 한 열심 하는 사람들 집에 가보면 꼭 기도 방이라는 것이 있어요벽에다가 커다란 십자가 하나 걸어놓고 큰 성경책 앞에 방석하나 깔아 놓은 뒤 꼭 그 방에 들어가서 기도하는 사람들 있지요그런데 그 방의 성경은 대부분 펴진 그 자리에서 한 장도 움직이지 않더군요.기도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만 가능한 것인데 하나님의 말씀에는 먼지가 뽀얗게 쌓여 있고 사람의 욕심만 그 방에 가득 차 있는 꼴입니다.

 

여기에서 골방이라고 번역이 된 타메이온이라는 것은 성전 마당즉 현상계의 외부세계와 대조되는 은밀한 내부세계의 진리를 상징하는 개념인 것입니다성전 마당에서 율법적 신앙 행위로 외식하지 말고 은밀한 내부 세계진리의 가운데로 들어가라는 말입니다.

그 타메이온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작은 방밀폐된 방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약국조제실이라는 의미로 쓰이는 단어입니다성전에는 마당 안쪽인 성소 내부에 여러 개의 골방들이 있었습니다그 골방에서는 성전에서 제사 시에 사용하는 향이라든지 떡 상의 떡이라든지 기름등을 제조하고 준비하는 그런 일이 행해집니다향단의 향이라든지 떡 상 위의 떡이라든지 등대 위의 등잔불이나타난 모양으로서의 율법을 상징한다면 그것을 그렇게 있게 하는 차서와 준비가 행해지는 골방은 그 내용이라 할 수 있지요그런데 그 골방에는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성전 마당에서 멀리서 보고그건 그런 것일 거야라는 식의 추측으로 신앙생활을 하면 그게 바로 외식이 된다는 것을 경고하고 계신 것입니다.

 

예를 들어 떡 상위의 12개의 떡은 누룩을 넣지 않은 무교병으로 여섯 개씩 진설하게 되어 있습니다.그러한 떡 상위의 떡을 보고 그 떡이 왜 무교병이어야 하는지왜 그 떡은 여섯 개씩 양쪽으로 진설이 되어야 하는지를 내용으로 알지 못한 채 눈에 보이는 떡으로만 인식을 하면 그 인식이 엉뚱한 신앙의 행위를 생산하게 만들어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떡 상 위의 떡이 생명의 떡으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상징이라는 것을 잘 압니다그 분은 죄가 없으신 분입니다순결하고 거룩한 진리 그 자체셨습니다그래서 누룩이 들어가지 않은 떡무교병으로 오시는 것입니다그러나 떡에 누룩이 들어가지 않으면 그 떡은 좋은 맛을 낼 수 없습니다예수라는 떡을 이 광야 인생길에서 만나면 그다지 좋은 맛이 나지 않는 것을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그런데 그 예수라는 떡이 어떤 이들에게는 저주의 떡이 되고 어떤 이들에게는 생명의 떡이 됩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열두지파를 여섯씩 나누어서 반은 그리심산으로 올라가게 하고 반은 에발산으로 올라가게 했었지요그리고 그리심산에서는 축복을에발산에서는 저주를 외치게 했습니다하나님의 말씀을 법으로 받는 자들은 그 하늘의 만나가 저주의 떡이 될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로 받는 이들은 그 만나가 생명의 떡이 될 것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입니다떡 상 위의 떡이 갖고 있는 그러한 진리의 내용은 골방(테메이온안에서 그 떡이 조제되고 만들어질 때 내용으로 보여 지게 되는 것입니다그런데 그 골방의 내용을 알지 못하고 성전 마당 모퉁이에 서서땅 적 차원의 것으로 말씀을 받게 되면 그것이 바로 멸망에 이르게 되는 외식이 된다는 것입니다 

 

(12:1~3)

그 동안에 무리 수만 명이 모여 서로 밟힐 만큼 되었더니 예수께서 먼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외식을 주의하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나니

이러므로 너희가 어두운데서 말한 모든 것이 광명한데서 들리고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말한 것이 집 위에서 전파되리라 

 

주님께서 외식이라는 것을 경고하시면서 감추어진 것과 숨은 것에 관해 말씀을 하십니다감추어진 것은 드러나기 위해 감추어진 것이고 숨은 것은 열려지기 위해 숨어 있는 것이라 하시지요그건 감추어진 것과 숨어 있는 것 안에 그 진짜 내용이 담겨 있다는 그런 말씀인 것입니다그리고는 어두운 데서의 말과 골방에서의 말이 나옵니다그것이 감추어지고 숨어있는 말이라는 겁니다그런데 그것이 어떻게 될 거라고 하십니까광명한 데에서 들려지고 집 위에서 전파될 것이라고 합니다그러기 위해서는 그 어둡고 은밀한 곳으로골방 안으로 들어가 그것을 잘 들어야 하겠지요그래서 골방이 어떤 말을 듣는 곳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그 골방에서 들어야 나타난 것의 진의를 집 위에서성전 위에서 전파 할 수 있다는 그런 말입니다그리로 들어가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골방들의 총화는 결국 성전 한 가운데에 있는 골방지성소를 가리키는 것입니다그러면 우리는 지금 이 시점에서 어디로 들어가야 하는 것일까요예수님 당시에는 눈에 보이는 율법 성전이 예루살렘에 서 있었지만 지금은 없잖아요그럼 우리는 지금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어디로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까?

 

네 골방으로라고 번역된 에이스 토 타미에온 수는 네가 소유하고 있는 그 골방 안으로 들어가라입니다이는 곧 우리 존재가 모두 각자의 골방을 소유하고 있다는 뜻입니다말씀드린 것처럼골방은 단지 보이는 골방혹은 아무도 보지 않는 외부 세계의 장소를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산상수훈 메시지의 가르침이 벌어지고 있는 장소로서의 산이 의미하는 영적 상징성과 같이 내부 세계의 신비를 지향하고 있는 것입니다그 골방을 오늘 본문에 나오는 다른 단어로 치환을 하면 은밀함 안입니다. ‘엔 토 크립토’ 그 은밀함은 우리 안에 들어와 우리의 마음이 되어버린 사랑의 결정체이며그 사랑의 유일한 빛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이를 수 있는 유일한 영적 공간으로서의 내부 세계를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쉽게 말할게요그 골방은 우리의 마음이 된 진리입니다.그 진리의 골방에서 성전즉 성경과 역사와 우주 만물의 진의를 올바로 깨달아 올바로 이해하고 흘려주면 그게 올바른 기도가 되는 것이고 올바른 구제가 되는 것이며 그것이 바로 올바른 사랑하기인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그 내부 세계의 은밀한 골방으로 제대로 들어가게 되면 그 안에서 우리 유한의 존재는 사실상 외부 세계의 차원에 아무런 매력도흥미도 느낄 수 없게 됩니다물론 그건 우리 육의 죽음으로 완성이 될 일입니다그러나 우리가 날마다 죽는 그 죽음 안에서 그러한 묵시 속 성도의 현실은 문득문득 경험이 되어 지기도 하는 것입니다그것은 곧 생명 차원으로 나아가게 되는혹은 나아가고자 하는 존재가내부 세계의 은밀함 안에 거하게 될 때 체험하게 되며 불가항력적으로 체험할 수밖에 없는 존재의 신비입니다.

 

땅의 차원인과율과 보응의 잔혹함만이 활개 치는 토대에서 생명의 말씀을 소비하는 존재들은결코 이러한 존재의 신비를 느낄 수 없습니다그들은 이러한 존재의 신비로부터는 철저히 죽어 있는 것입니다주님은 우리가 그 영적 죽음으로부터 부활하기를다시 살아나기를간절히 바라고 계십니다그래서 주님은 기도하는 자들아제발 골방으로 들어가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골방의 의미가 무엇인지 잘 아시겠지요가시적으로 나타난 것성전 마당 적인 것율법거기에 머물러 그것을 섬기느라 육의 행함에만 착념하지 말고 그 안의 은밀한 것그 내부 세계의 내용으로 들어가 그 사랑이라는 인격을 만나라는 것입니다.

 

그럼 이제 두 번째 단어인 에이스에르코마이’, ‘들어가라라는 단어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이 에이스에르코마이라는 단어는 주님께서 아주 즐겨 쓰시던 단어입니다그리고 사도들도 서신 서에서 아주 많이 사용합니다그런데 그 단어와 함께 사용되는 단어들이 몇 개 안 됩니다. ‘어느 곳 안으로 들어가라는 말이 에이스에르코마이인데 성경에서 성도의 지향점으로 제시된 곳이 몇 곳 안 됩니다그리고 그 곳들은 전부 하나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몇 군데만 살펴보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4:4~6)

제 칠일에 관하여는 어디 이렇게 일렀으되 하나님은 제 칠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하였으며

또 다시 거기 저희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면 거기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치

아니함을 인하여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 

 

여기에서 반복하여 나오는 들어가다가 에이스에르코마이입니다어디로 들어가라고 해요안식으로 들어가라고 합니다그런데 누가 그 안식으로 들어가지 못한다고 합니까순종하지 않는 자들이 그 안식으로 들어갈 수 없다고 해요그렇다면 그 순종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겠지요그래야 골방으로 들어가기 위해 우리가 필연적으로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될 테니까요.

 

순종이라는 것은 단순히 시키는 일에 복종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히브리어에서 순종이라는 말의 의미를 찾아보면 그 말은 듣다라는 말입니다우리말에도 너 말 잘 들어라는 말이 단순히 내 말을 주의 깊게 들으라는 말로 쓰이기보다는 너 나에게 순종해라는 말로 쓰이잖아요그렇게 순종이라는 말은 들음과 연관이 있는 단어입니다여러분이 너무 잘 아시는 사무엘상 15장으로 가서 안식에 들어갈 수 없는 자의 불순종이 무엇인지 보도록 하지요. 

 

(삼상15:19~23)

19 어찌하여 왕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고 탈취하기에만 급하여 여호와의

악하게 여기시는 것을 행하였나이까

20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나는 실로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여 여호와께서 보내신 길로 가서 아말렉 왕 아각을 끌어 왔고 아말렉 사람을 진멸하였으나

21 다만 백성이 그 마땅히 멸할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길갈에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양과 소를 취하였나이다

22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23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사울이 여호와의 말을 좇아 아멜렉과의 전쟁에서 크게 승리를 하고 돌아왔을 때의 일입니다잘 보시면 계속해서 말청종들음버림청종치 않음등의 에 관한 단어들이 반복되어 나옵니다.그러니까 이 순종의 이야기는 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사울은 자기가 여호와의 말을 청종했다고 우기고사무엘은 사울이 여호와의 말을 듣지 않았다고 야단을 칩니다하나님의 말씀은 인간 세상의 상식과 도리로 이해를 하면 반드시 곡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여기에서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사울은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었다고 생각했습니다거짓말하는 거 아닙니다자신은 하나님을 잘 섬기기 위해 살찐 제물들을 살려서 데리고 왔습니다그건 하나님께 칭찬받을 일이지 야단맞을 일이라 꿈에도 생각하지 않은 것입니다그런데 사무엘이 말합니다. ‘넌 하나님의 말을 잘 못 들은 것이다그래서 넌 이제 왕의 자리에서 폐위될 것이다.’ 이게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리입니까?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전쟁을 해서 크게 승리를 했고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제물까지 준비해 왔는데 자기더러 하나님의 말을 버렸다고 야단을 치는 겁니다그러더니 왕의 자리까지 내려놓으랍니다.

 

중요한 것은 22절입니다사무엘이 순종이라는 것을 이야기하면서 그 순종을 목소리 듣는 것이라고 합니다그리고 그 순종과 대조되는 개념으로 등장하는 것이 숫양의 기름’, 즉 제사입니다그러니까 순종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법으로 들어서 그 말씀으로 희생 제사를 해 버리는 것의 반대 개념인 것입니다굳이 우리말로 옮겨보면 잘 들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그 순종이라고 번역이 된 히브리어 샤마라는 단어가 들음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단어입니다그 샤마라는 단어를 헬라어가 반대적 개념인 아페이데이아로 받은 것입니다그 단어는 불순종이라는 뜻과 함께 불신이라는 의미로도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불신은 안 믿음이 아니라 잘못 들음인 것입니다저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데 잘못 듣고 잘못 믿고 있어요그걸 불신불순종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듣고 열심히 땅 적 차원의 일을 행위로 쏟아 내 버리면 그게 곧 뭐라는 겁니까불순종입니다그들이 안식에 못 들어가는 사람들이라는 말입니다당연하지요율법의 행위를 끊임없이 생산해 내야 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안식에 들어갑니까못 들어갑니다그들은 죽어라고 수고를 해서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있는 격입니다따라서 골방에 들어가지 못하고 쏟아내는 기도는 욕심이요욕정이요자기 하나님 되기에 필요한 자원 구하기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그건 멸망의 기도일 뿐입니다골방에 들어가 하나님의 은밀한 것을 잘 듣는 사람은 절대 그런 외식적인 기도를 하지 않는다는 그런 말입니다.

우리가 바로 위에서 공부한 구제도 그런 것이었잖아요그 구제도 은밀한 것으로 하라고 하셨지요?오른 편이 하는 것은 왼 편이 모르는 것으로 하라고 하셨습니다손이라는 단어는 나오지도 않아요.거기서도 그 구제란 단어가 동사형이 아닌 명사형으로 쓰였습니다그 명사가 2인칭 소유격인 (your)’와 함께 쓰였고 현재형 가정법 동사 가 함께 쓰여 지금 네가 소유하고 있는 구제라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지금 우리는 그 구제를 소유하고 있다고 주님이 말씀하셨던 것입니다네가 갖고 있는 그 구제를 가난한 자들에게 넘겨 주라는 것입니다그게 진짜 구제라는 말입니다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구제라는 것이 무엇이겠어요그것은 바로 우리의 유한적 한계를 불쌍히 여기셨던 주님의 말씀 그 자체그 말씀을 이루신 그 분의 공생애십자가 죽음과 부활승천과 오순절 성령의 임재의 영적 사건들로 제시된 진리의 모형들그 자체가 구제의 컨텐츠가 되는 것입니다그리고 그것을 흘려주는 것을 구제 한다라고 하는 것입니다그런데 그것을 그냥 도덕과 윤리로선악의 패러다임 안에서 읽어버리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요가난한 사람들에게 땅 적 차원의 양식과 편의를 제공하는 일에만 전념하게 되는 것입니다그걸 성경이 불순종이라고 한다니까요그래서 구제할 때기도할 때은밀한 것이 있는 곳으로골방으로안식으로들어가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한 구제를 신앙의 행위라고 착각하고 있는 자들에게 불순종의 판결을 내려 유죄를 선고해 버린 에피소드가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이야기입니다당시 유대인 남자들은 유대인의 삼대 절기에는 반드시 예루살렘 성전으로 모이도록 되어 있었습니다그런데 그때는 교통편이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았던 때이라 디아스포라로 퍼져있던 유대인 남자들이 유월절부터 오순절까지 50일 정도를 아예 예루살렘에서 머물며 회당과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곤 했었습니다그렇게 유월절 예수의 죽음에서 출발한 오순절이 왔습니다이제 오순절 절기만 끝나면 각자 집으로 돌아갈 판입니다그런데 그 때 성령이 임해버렸습니다성령이 임하자 하늘의 진리가 사도들의 입을 통해 올바로 전해지게 되었습니다그랬더니 창세전에 택함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귀가 그 즉시 뚫리는 대 역사가 일어났습니다그들이 집으로 돌아갔을까요아닙니다그들이 그 진리의 말씀을 전하는 사도들 곁에서 떠날 줄을 몰랐습니다그게 예루살렘 교회입니다그들이 나중에 스데반의 순교로 인한 예루살렘 교회의 핍박 때에 각자 자기들의 집으로 돌아가 작은 교회를 세웠고 사도들이 그 교회들을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했던 것입니다.

문제는 스데반의 순교 이전에 예루살렘 교회에서 말씀을 듣고 진리로 함몰되어 들어온 디아스포라 교회들이 노자가 떨어진 것입니다그럴 거 아니에요오순절까지의 노자만 준비해 갖고 온 사람들이 계속해서 예루살렘에 머물며 말씀을 듣고 공부하고 하는 데에 돈이 필요할 거 아닙니까그래서 예루살렘 교회 일원 중에 부동산이 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부동산을 팔고 자신들의 소유를 교회 앞에 내어 놓아 함께 교회를 꾸려 간 것입니다그들이 밭과 집땅과 집을 팔았다고 나와요그건 하나의 상징이었던 것이지 그러한 유무상통의 행위가 신앙생활의 본질은 아니었습니다진짜 중요한 것은 그러한 유무상통의 행위로 얻어진 육적 양식이 아니라 사도들의 입을 통하여 제공되는 하늘의 양식이었습니다내적인 은밀함즉 골방에서의 들음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안 자 들에게 있어서 외적 세계의 가치들이 그 빛을 잃어가는 모습이 그 속에 들어 있었던 것입니다그래서 그들이 자신들의 밭과 집을 팔아 교회의 사도들 발 앞에 내려놓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밭과 집땅은 성전을 상징하지요옛 성전즉 율법적 신앙의 결과물들을 다 팔아 교회를 먹이는 형국입니다그 대표가 요셉이라는 사람인데 그 이름이 바나바’, ‘위로의 아들입니다그는 바울과 함께 하나님의 진리를 온 세상으로 나르던 사람입니다요셉이라는 사람이 진리를 알게 되자위로의 아들로 낳아지는 모습입니다그가 위로의 아들로 낳아지자 그의 세상 적 재산인 율법의 성전이 다 팔아의 대상이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 대척점에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있는 것입니다그들은 아직 골방에 들어가지 못한 자들입니다.그래서 외적 세계를 놓지 못한 자들로 등장합니다그들도 땅을 팝니다그런데 그 땅이 아직도 너무 좋습니다그래서 그 땅 판 돈을 감추어 둡니다하나님을 의지하는 겁니까땅 판 돈을 의지하는 겁니까땅 판돈을 의지합니다그러면서 근사한 행위를 내어 놓습니다땅 판 돈의 일부를 내어 놓으면서 나도 선한 행위를 내어 놓는 신자라고 너스레를 떤 것입니다그들은 저주 받을 이 세상 땅을 판 것이 아니라 땅을 판 척하는 그 행위로 더 멋진 세상 땅을 소유하고 싶었던 것입니다그때 사도가 뭐라고 합니까? ‘너는 일을 마음에 둔 자다라고 합니다진리를 마음에 두어야 하는데 일을 마음에 둔 자그것이 죽어야 할 자라는 뜻입니다.

그리고는 너는 성령을 속였다라고 합니다그 어구를 직역하면 진리의 영에 대해 거짓말 하다라는 뜻입니다그건 진리의 행위가 아니라는 그런 말입니다그리고는 계속해서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속이는 일이라고 합니다그걸 불순종이라고 해요그래서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그 즉시 절명하는 것입니다. ‘혼이 떠나갔다라고 번역이 된 에크프쉬코라는 말은 호흡이 밖으로 빠져 나갔다라는 말입니다그의 호흡이 그를 살리는 호흡이 아니더라는 것입니다그를 숨 쉬게 하고 살게 했던 그 생기는 가짜 생기였던 것입니다그 안에 진짜 영진짜 말이 없었다는 그런 말입니다그게 죽음입니다하나님의 말씀을 성전 마당에서 들으면 그런 결과가 초래 되는 것입니다골방 안으로 들어가 하나님의 은밀한 것을 마음으로 품지 못하면 엉뚱한 것을 원하게 되고 엉뚱한 것을 향하여 육신을 곤비케 하게 되어 결국에는 호흡을 잃어버린 죽은 자로 끝나게 된다는 것입니다하나님의 말씀은 그 내용으로 들어가서 이해를 해야 합니다겉에서 맴돌면 죽음입니다여러분도 골방으로 들어가십시오은밀함 안으로 들어가십시오양의 문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셔야 합니다그 예수라는 문을 통과해야 그리스도라는 은밀함을 만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 문이 닫힙니다오늘 본문을 잘 보시면 기도를 하기 위해 골방으로 들어가면 문이 닫힌다고 합니다진리 안으로 들어가면 다시는 나올 수가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출애굽한 자들이 다시 홍해를 되 건너 갈 수 없도록 홍해를 닫아 버리신 것처럼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하나님의 진리를 올바로 알아듣게 된 자들은 절대로 예전의 엉터리 신앙으로 못 돌아 갑니다문이 닫혀 버리거든요.그래서 열면 닫을 자가 없고 닫으면 열자가 없다는 말씀이 있는 것입니다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이 당신의 집으로 들어오기를 오매불망 기다리시며 문을 열어 놓으십니다그래서 옛 성전에도 들어가는 입구의 문이 아예 없었던 것입니다활짝 열어 놓습니다그리고 제대로 들어가면 문이 닫힌다는 것입니다골방으로 들어가면 절대로 밖으로 나갈 수가 없어요그게 하나님의 거룩한 열심입니다거기부터는 다음 시간에 계속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