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목사/산상수훈

산상수훈(30)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마5:47-6:4)

은바리라이프 2013. 10. 17. 09:19

산상수훈(30)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5:47-6:4)

47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 하라

1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 하느니라

2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3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4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우리는 지난주에 사랑으로 완성이 되는 율법의 진의에 대해 자세하게 공부를 했습니다모든 율법은 사랑으로 수렴이 되고 그 사랑은 하나님의 택한 자들에게 흘러 거룩한 사랑의 계보를 잇고 있는 것이라 했습니다하늘의 사랑은 그렇게 진리를 가진 자들에 의해 역사 내내 흘러내리고 있는 것입니다그건 사랑이 된 자들에게 주어진 임무요 역할이기도 합니다하나님은 당신의 발과 손이 된 자들을 통해 그 사랑을 흘려보내신다고 스스로 약속을 하셨기 때문입니다그런데 그러한 이들이 자기들끼리만 진리를 논하고 있는 것은 안 되는 일이라는 내용이 47절입니다친구(휠로스)끼리만 문안을 하면 사랑이 흐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세리는 절대 그 같이 아니한다는 것입니다. 47절에서 이방인으로 번역이 된 단어가 우리가 46절에서 공부한 세리(텔로네스)’라는 단어입니다그 단어는 좋은 의미로 쓰인 거라 했지요?

그리고 문안(아스파조마이)이라는 말은 안녕을 묻다라는 말입니다우리가 흔히 안녕 하세요라고 인사를 하지요안녕이라는 말은 안식이 이루어진 자유의 상태를 말합니다그 인사를 하려면 그 상대에게 안녕에 이를 수 있는 진리를 전해주고 나서 해야 하는 것입니다그렇지 않고 그냥 말로만 묻는 것은 피상교에 불과합니다그래서 바울이 자기가 복음을 전한 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항상 문안 한다라는 말을 쓴 것입니다내가 안녕에 대해 전했는데 지금도 그 안녕을 잘 지키고 있느냐고 묻는 것이 문안 한다라는 말입니다그 문안은 자꾸 아래로 흘러야 하는 것이지 자기들끼리만 주고받아서는 안 된다는 그런 말입니다그렇게 안녕에 관한 말을 전해 주지도 못하고 말로만 진리진리 하는 자들의 그러한 피상교에 불과한 문안을 야고보 사도는 이렇게 경고합니다. 

 

(2:14~18)

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15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더웁게 하라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18 혹이 가로되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형제가 헐벗고 양식도 없어요이건 단순히 가난한 사람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의의 겉옷을 입지 못하고 하늘의 양식인 말씀을 제대로 먹지 못한 영적 가난에 처한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한 마디로 마음이 가난한자입니다그들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제공하지 못하고 말로만 평안히 가라더웁게 하라배부르게 하라고 하면서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못하면 그 말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그런 말입니다그러니까 그런 이들을 만나면 정말 그들이 필요한 의의 겉옷과 하늘의 양식을 제공해 주라는 말입니다그걸 야고보가 행함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그러한 행함이 없는 자가 무슨 믿음을 논할 수 있느냐는 것이지요그건 죽은 믿음이라는 겁니다머리로만 알고 입으로만 지껄이는 허위라는 겁니다그러나 자기는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겁니다그들이 입을 옷과 먹을 양식을 제공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진리를 전해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그게 사랑입니다.

 

그렇게 모든 계명모든 말씀을 사랑으로 깨달아 그 사랑을 전해주는 이들을 온전하다라고 선언을 해 주신다는 말씀이 5장 마지막 절인 것입니다우리는 이런 구절을 대할 때 너무 섣불리 하나님의 온전에까지 이르도록 최선을 다하라는 말로 이해를 해 버립니다하나님의 온전이 뭡니까창조의 권능도 행하고 무소부재의 기능도 획득하고 완전한 선을 행하는 그런 자가 되라는 겁니까그게 가능한가요아니면 어떤 주석가들의 말처럼 다른 기능과 능력은 차치하고 하나님의 도덕적윤리적 온전에 이르도록 노력하라는 말일까요성경 어디에 그런 제한을 이야기하고 있나요아닙니다성경은 말 그대로 하나님의 온전하심처럼 너희도 온전하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그 말은 하나님이 이 땅에서 우리가 온전에 이르는 수준을 정해 놓으셨다는 그런 말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를 한다고 했을 때 우리는 고등학교 수준의 공부를 하고 고등학교 수준의 시험을 봅니다그러면 대학에 들여보내 줍니다대학에서 공부할 것을 다 습득하고 이해해야 대학에 들여보내 주는 게 아닙니다마찬가지입니다하늘의 온전이라는 것이 있습니다그러나 이 땅에서는 그 하늘의 온전에 도달할 수 있는 존재가 아예 없어요그래서 하나님은 땅의 수준의 온전을 제시하시고 거기에 도달하면 넌 온전해라고 선언해 주시는 것입니다 

 

(13:8~10)

8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9 간음하지 말라살인하지 말라도적질 하지 말라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 이니라  

 

율법이 뭡니까죄가 무엇인지를 알게 해주어 하나님을 알게 해주기 위해 주어진 외적으로 나타난 하늘입니다그것으로 하늘을 알면 복이요 그것을 문자로만 보게 되면 그게 바로 저주인 것입니다.그렇다면 그 하나님과 하늘을 설명하기 위해 주어진 그 율법을 사랑으로 깨달아 안 사람은 무엇을 안 것입니까하나님을 안 것입니다그런데 보시다시피 성경이 그 율법을 사랑으로 온전히 깨달아 안 자 들을 다 이룬 자완성이라고 부릅니다그게 오늘 본문이 말하는 하나님의 온전하심처럼 온전해 진자인 것입니다.

쉽게 말해 진리를 안 자 들을 온전한 자라 부르는 것입니다그 온전은 그들의 차후 행위 여하에 따라 바뀌기도 하는 그런 온전이 아닙니다마음입니다.

 

그렇게 그 말씀의 진의를 아가페의 사랑으로 깨닫고 그것을 흘려주는 이가 온전한 자라면 그가 그 사랑의 행위즉 말씀을 흘려줄 때에 조심할 것이 무엇인가가 6장의 구제의 이야기입니다아니 조금 더 쉽게 말하면그 사랑을 안 자 들이 그 사랑을 흘려보낼 때에 어떠한 방법으로 흘려보내 주어야 하는 가를 설명해 주는 것이 6장 본문입니다그걸 구제의 이야기로 풀어낸 것입니다.

 

원문 성경을 보면 6장 1절의 처음 시작이 주의 하라(프로세코)’입니다헬라어나 히브리어는 항상 가장 중요한 단어를 제일 앞에 씁니다그러니까 6장의 내용은 사랑을 전하는 자들이 주의해야 할 것을 기록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단어가 호 엘레모수네입니다그 단어는 구제라는 의미로 번역이 되어 있지만 일반적 구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영적 구제를 가리키는 말입니다말씀을 제대로 전해주어 그 대상을 어둠에서 건져내는 구제를 말합니다의의 겉옷을 주고 생명의 양식을 주어 하늘 적 존재로 살려내는 일을 말하는 것입니다적어도 성경에서는 그렇게 쓰입니다그 엘레모수네의 구제에 의해 그 대상이 진리를 깨닫고 그 진리와 합일이 되면 그 상태를 에이레네(평강)’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런 겁니다히브리 사람들은 쥐고스라는 멍에 아래 두 마리의 소를 묶어 밭을 갈거나 짐을 옮기거나 했습니다그렇게 두 소가 하나가 되어 한 방향으로 가는 것을 형상화한 글자가 에이레네입니다그런데 하늘의 진리이신 하늘의 소가 이 땅에 내려 오셨는데 함께 멍에를 맬 소가 없어요그래서 진리의 영을 보내셔서 당신과 함께 멍에를 맬 다른 소들을 부르시는 것입니다그 사역을 구제(엘레모수네)’라고 하는 것이고 그 구제에 의해 진리가 되면 그 상태를 에이레네(평강)’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6장 본문의 이야기는 진리를 받아서 사랑을 전하는 이들이 주의해야 할 이야기라는 것이 확실한 것입니다그 구제(엘레모수네)에 관한 구절을 몇 개 찾아보고 넘어 가겠습니다. 

 

(11:37~43)

37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한 바리새인이 자기와 함께 점심 잡수시기를 청하므로

들어가 앉으셨더니

38 잡수시기 전에 손 씻지 아니하심을 이 바리새인이 보고 이상히 여기는지라

39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인즉 탐욕과 악독이 가득 하도다

40 어리석은 자들아 밖을 만드신 이가 속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41 오직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이 너희에게 깨끗하리라

42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를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아니하여야 할지니라

43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을 기뻐하는도다  

 

예수께서 바리새인과 식사를 하시면서 손을 안 씻으셨던 모양입니다그랬더니 바리새인이 깜짝 놀랐습니다(다우마조). 그건 유대인들의 정결예식 중 하나였거든요율법이 진리를 대하면 그렇게 깜짝 놀라게 됩니다그때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율법지킴은 겉의 일이라는 것입니다겉을 깨끗하게 한다고 속까지 깨끗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그런데 하나님은 속을 보신다고 했어요그러니 큰일 난거지요주님이 계속해서 말씀하십니다(율법호 코스모스)을 만드신 분이 그 겉이 의미하는 속을 그 안에 담아 놓으셨다는 것입니다겉을 만드신 분이 속도 만드셨다그런데 그 속은 알지 못하고 왜 겉의 것만 신경을 쓰느냐는 것입니다속이 먼저 깨끗해지면진리가 되면 그 겉의 것은 아무 문제가 안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고 하시지요거기에 쓰인 단어가 엘레모수네입니다안에 있는속의 것으로 넘겨주어야 진짜 깨끗해지는 것이라는 말입니다진리를 모르는 율법적 행위는 평토장한 무덤에 불과한 것입니다.

 

거기에 예를 하나 더하시는데 그게 십일조의 예입니다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채소(herb)의 십일조는 드리면서 정작 그 속에 담겨 있는 의와 사랑은 소멸시켰다고 합니다박하와 운향과 채소(herb)는 전부 분향 단에 향을 피울 때 쓰이는 재료입니다율법의 행위를 상징적으로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율법적 십일조는 그것이 담고 있던 내용이 있었다는 것입니다그게 하나님의 의와 사랑입니다그런데 왜 껍데기로서의 십일조는 하면서 그 진짜 내용인 의와 사랑속의 것은 모르느냐는 말입니다그러니까 너희는 율법적 십일조를 열심히 하면서 여전히 더러운 존재로 사는 것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그때는 아직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전이고 성령이 오시기 전이지요따라서 율법적 십일조즉 겉의 것을 열심히 하면서 그게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지도 함께 알아먹으라는 말입니다그래서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속옷을 가지고 겉옷을 덧 입으라는 그런 말입니다.

 

당연합니다원래 십일조라는 것은 10의 대표라는 말입니다. 10은 당연히 십계명을 가리킵니다그 십계명이라는 말은 직역을 하면 계명의 10이라는 말입니다계명은 0부터 9까지 열 개의 숫자의 조합으로 무수하게 많이 제시되어질 수 있습니다그게 레위기의 율법입니다그러나 그건 전부 10으로 수렴이 된다는 말입니다그래서 십계명(계명의 10)이라 부르는 것입니다그 모든 계명이 전부 계명의 10을 설명하기 위한 세목들이라는 것입니다그런데 그 10은 하나로 축약이 됩니다그 10의 대표가 십일조라는 말입니다그런데 그 십일조가 뭐라고 해요의와 사랑이래요의와 사랑은 하나님의 속성입니다쉬운 말로 하나님입니다그러면 진짜 십일조가 뭡니까하나님입니다다르게 말해 우리가 계명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고 그 하나님을 내 안에 진리로 품게 되면 내가 십일조가 되는 것입니다그래서 성경에서는 십일조가 되라고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그대로 몸으로 보여주신 것이 십일조(성전에 바쳐져야 할 장자의 속전)로 드려지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내가 십일조라는 겁니다. 

 

(3:8-10)

8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9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고 번역이 되어 있는데 그 어구는 하나님의 것이 아니라하나님을입니다그 뒤의 나의 것도 나를입니다율법을 열심히 지키고 제사를 열심히 지내고 있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 일갈을 하십니다너희가 를 도적질하고 있다그 말은 이스라엘이 율법이 담고 있는 하나님은 버리고 율법만 붙들고 있더라는 것입니다그게 하나님을 도적질하는 일이라는 겁니다그렇게 하나님을 도적질하는 행위를 구체적으로 제시하는데 그게 십일조와 헌물이랍니다십일조와 헌물은 제물로 바쳐져 마땅한 가짜 장자인 우리를 대신해 하나님께 바쳐진 하나님 자신을 말하는 겁니다십일조라고 번역이 된 마아세르가 남성 단수이고헌물이라고 번역이 된 테루마가 여성 단수입니다십이라는 것의 대표로 하나의 제물이 드려지는 것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그게 바로 하나님을 도둑질 하는 자들을 살려내는 하나님의 십일조입니다그런데 이스라엘은 껍데기 십일조껍데기 제물만 드리면서 자기들이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 십일조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등장하는 인물이 있지요멜기세덱입니다그 이름은 말라크짜다크의 합성어인데 그 뜻은 의의 사자평강의 사자’ 혹은 의의 왕평강의 왕이라는 뜻입니다.의의 사자가 되면 그가 바로 십의 대표인 십일조(마아세르)가 되는 것입니다.

 

그걸 주님은 의와 사랑이라고 하신 겁니다성도는 십일조와 헌물을 통해 그 하나님의 의와 사랑을 깨달아야 했던 것인데 십일조에만 묶여서 열심히 희생제사만 드리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제발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즉 성전에 들이라는 것입니다성전인 너희 안에 온전한 십일조이신 하나님진리를 채우라는 것입니다그게 양식이라는 겁니다그게 바로 복이라는 것입니다그 진리를 알게 된 사람은 그 속에 복으로양식으로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율법이 말하고자 하는 진의를 제대로 온전하게 넘겨주는 것을 구제(엘레모수네)라고 하는 것입니다그걸 다른 말로 이웃을 사랑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그때 주의하라는 겁니다.

 

그런데 그 주의도 문제입니다주의하라고 한다고 해서 아무나 주의할 수 있나요아닙니다. ‘주의하라고 할 때 그 말을 알아듣고 주의할 수 있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아요. 

 

(16:6,11-12)

6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신대

11 어찌 내 말한 것이 떡에 관함이 아닌 줄을 깨닫지 못하느냐 오직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12 그제야 제자들이 떡의 누룩이 아니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을 삼가라고

말씀하신 줄을 깨달으니라 

 

6절에 삼가라고 번역이 된 단어가 호라오입니다헬라어에서 보다라는 단어가 네가지가 있다고 했지요? ‘옵타노마이에이돈블레포호라오입니다. ‘옵타노마이는 그냥 보여서 보는 것이고 에이돈은 어떤 대상이 목적을 가지고 보여주어서 보는 것이고 블레포는 그것을 어떻게 보는가 훈련을 할 때의 을 말하는 것이고 호라오는 비로소 그 진의를 보게 되는 것을 말한다고 했습니다.주님께서 그 단어를 쓰신 겁니다너희가 호라오하면 바리새인들의 누룩이 뭔지를 알고 주의(프로세코)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11절도 마찬가지입니다너희가 깨달으면 주의가 가능하다고 하시지요그러니까 진리를 깨닫지 못한 사람은 절대로 주의가 불가능해요그래서 열심히 율법만 지키다가 멸망의 자리로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갑니다구제할 때 조심하라고 말씀하신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을 이으십니다.본문 1절을 다시 보세요. 

 

(6:1)

1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 하느니라    

 

사람에게 보이려고 자비를 베풀지 말라고 하십니다이것을 우리는 착한 일을 할 때 사람들에게 자랑하기 위해서 하지 말라는 말로 알아듣습니다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 칭찬 받는 일인 줄 알고 열심히 행해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그런데 잘 안되지요아주 작은 일을 해 놓고도 누가 알아주지 않으면 굉장히 마음이 안 좋잖아요이 말은 그런 말이 아닙니다.

 

여기에서 보이다라고 번역이 된 데아오마이는 밖의 것으로만 보는 것을 말합니다예를 들어 성전을 보면서 그 성전의 내용인 진리를 보지 못하고 그 성전의 표피적 의미인 율법만을 보는 것을데아오마이라고 해요. 

 

(요일4:12~14)

12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13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14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거 하노니  

 

12절에 어느 때에도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다라고 할 때 그 단어가 데아오마이입니다하나님을 눈에 보이는 형상으로 본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는 말입니다아담아브라함모세바울그 누구도 그 하나님을 나타난 형상으로 보지는 못했다는 말입니다어떻게 봅니까성령을 주시므로 마음으로 보고 간직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그런데 그 하나님을 담은 육신이 이 땅에 오셨지요그 분은 우리가 눈으로 보았다는 것입니다그러나 그 분도 그 하나님은 아닌 것입니다하나님은 우리의 눈에 담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성경이 말하는 겁니다하나님을 본 자는 죽임을 당한다고요그 말은 인간이 하나님을 볼 수 있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을 봤다고 하는 자는 죽은 자라는 말입니다그건 거짓말이니까요.

 

그렇게 표피적으로 보는 것내용을 모르고 나타난 것으로만 보는 것을 데아오마이라고 합니다주님이 말씀하십니다사람들에게 진리를 전하여 구제를 할 때에 그 겉의 것만 보여주려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그게 사람에게 보이려고라는 어구의 진의입니다그러니까 지금 신사도 운동이나 신비주의 사역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전부 하나님의 말을 거스려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인 것입니다그들은 반드시 사람들 눈에 뭘 보여주어 일을 하려 해요그게 데아오마이입니다율법주의와 인본주의도 마찬가지입니다눈에 보이는 그것만 가르쳐요그리고 그것만 행하려고 합니다하나님은 눈에 보이는 호 코스모스의 것들을 통해 진리를 깨닫고 그것을 마음으로 가지라고 하시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행해버려요그래서 망합니다그게 사람 눈에 좋게 보이거든요마음은 보이지 않으니까.그거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그렇게 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겁니다 

 

(12:37~40)

37 이렇게 많은 표적을 저희 앞에서 행하셨으나 저를 믿지 아니하니

38 이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가로되 주여 우리에게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뉘게 나타났나이까 하였더라

39 저희가 능히 믿지 못한 것은 이 까닭이니 곧 이사야가 다시 일렀으되

40 저희 눈을 멀게 하시고 저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였음이더라  

 

주님께서 눈에 보이는 많은 표적들을 행하셨습니다그런데 아무도 주님을 믿지 않았습니다그건 당연한 것입니다아직 진리의 성령이 오시기 전인데 누가 주님의 표적을 알아보면 안 되지요그런데 그것이 이미 이사야서에서 예언이 된 것이라는 말입니다하나님께서 저희 눈을 멀게 하셨고 하나님께서 저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다는 겁니다이유가 뭡니까? ‘눈으로 보고 깨달아 고침을 받는 일이 없도록 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그건 하나님이 세우신 원칙이라니까요그런데 작금의 교회는 전부 눈에 보이는 것을 요구해요그리고 눈에 보이는 것으로 행하려 하고 있어요그래야 안심이 되기 때문입니다마음에 진리가 없으니까 그런 겁니다.

 

그렇게 눈에 보이는 것만 전하고 행하는 자들은 상이 없답니다상이 뭐라고 했지요바울이 자기 상이 뭐라고 합니까복음을 거짓 없이 올바로 전하는 그것이 자기 상이라고 합니다자기는 원래 그 복음과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이었거든요그리고 그 복음 전하는 자의 삶은 그리스도의 삶이며 더 나아가 하나님의 일입니다그런데 그 일에 자기가 동참하고 있는 겁니다바울은 그거 이상의 상이 없다고 했습니다그렇다면 그 진리를 못 전해주고 엉뚱한 표피적 율법만 전하는 이들은 상이 없는 거지요본문 1절이 바로 그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2절도 같은 말입니다. 

 

(6:2)

2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구제할 때에진리를 전할 때에사랑을 흘려 줄 때에외식하는 자(배우처럼 그 사람이 아님에도 그 사람인 척 하는 자)처럼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교회)에서 나팔을 불지 말라는 것입니다.외식이 뭡니까진리도 모르는 자가 성경을 전한답시고 그 성경을 인간의 선악구조로 해석해서 전해주는 것을 말합니다껍질만 전해주는 겁니다그건 배우의 연극과 같은 것입니다아무런 내용도 없고 앵무새처럼 지껄이는 잘못된 가르침에 불과합니다.

그들은 사람의 영광을 얻으려고 하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영광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것이 눈에 보이는 것으로 나타나고 설명이 되어 질 때 쓰는 말입니다그래서 주님께서도 영광은 아버지가 내게 돌리는 것이라 말씀하셨던 것입니다영광은 사람이 돌리는 것이 아닙니다. 

 

(5:41)

41 나는 사람에게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그렇지요영광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먼저 돌리시는 것입니다그리고 그것이 올바로 깨달아져서 그로부터 그 진리가 선포되어지고 살아질 때 그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낸다고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그것을 굳이 영광을 돌린다고 표현을 해도 무방합니다.

 

그런데 사람의 영광이라는 것이 있습니다하나님의 영광이 하나님의 것이 가시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라면 사람의 영광은 무엇이겠어요? ‘하나님처럼되고 싶은 피조물의 헛된 망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그래서 사람은 사람을 칭송하고 칭송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처럼의 호사를 마음껏 누리는 것입니다 

 

(12:43)

43 저희는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 

 

이렇게 사람의 영광을 사랑하는 자들은 서로 서로 영광을 주고받습니다말씀을 주는 자도 받는 자도 모두 서로의 영광만을 추구합니다그러기위해서는 쌍방이 서로 좋아하는 것을 주어야 합니다.주는 쪽에서는 사람이 듣기 좋아하고 보람도 느끼고 자기가치 상승의 욕구도 해결이 되는 그러한 종류의 말을 주어야 하고(사람의 영광그러한 듣기 좋은 말을 전해들은 자들은 그 전해준 자가 좋아하는 인간적 칭찬과 박수를 주어야 합니다아니 당연히 좋아하게 되어 있어요자기가 원하는 것을 열심히 말해 주고 있으니까요주님은 그들처럼 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러한 자들처럼 나팔을 불지 말라고 하시지요그 나팔의 의미를 몇 군데만 보고 가겠습니다. 

 

(58:1)

1 크게 외치라 아끼지 말라 네 목소리를 나팔 같이 날려 내 백성에게 그 허물을,

야곱 집에 그 죄를 고하라

(고전14:8~9)

8 만일 나팔이 분명치 못한 소리를 내면 누가 전쟁을 예비하리요

9 이와 같이 너희도 혀로서 알아듣기 쉬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그 말하는 것을 어찌 알리요 이는 허공에다 말하는 것이라 

 

이렇게 나팔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구제하는 일사랑을 흘려주는 일을 가리키는 것입니다.그거 할 때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외식하는 자들처럼 나팔을 불면 어떻게 되나요? 

 

(10:1-2,7)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2 은 나팔 둘을 만들되 쳐서 만들어서 그것으로 회중을 소집하며 진을 진행케 할

것이라

7 또 회중을 모을 때에도 나팔을 불 것이나 소리를 울려 불지 말 것이며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나팔을 만들어서 회중을 소집하고 진행케 하라고 하십니다그 나팔 소리에 따라 회중은 모이게 되고 그 나팔소리로 진행을 하게 되는 겁니다말씀입니다그런데 7절을 보면 나팔을 불되 소리를 울려 불지 말라고 하십니다불라는 거예요말라는 거예요그 루아라는 말은소리로 귀를 먹게 하다라는 말입니다사전이 있으신 분은 히브리어 스트롱 코드 7321번을 찾아보세요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나팔을 불되 그 나팔 소리로 귀를 먹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그런데 예수님이 오셨을 때 모든 자들이 귀가 먹어 있었습니다그래서 주님께서 귀머거리를 고치시는 사역을 통해 진리가 전해졌을 때 그들의 귀가 어떻게 열리게 되는가를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그건 오늘날도 마찬가지인 거 같아요사방에서 나팔을 붑니다그리고 모두들 듣고 있다고 이야기를 해요그런데 제가 보기엔 거의 다 귀를 먹게 하는 나팔소리를 내고 있고 듣는 이들도 전부 그 나팔 소리 때문에 들을 귀를 상실해 버렸어요엉뚱한 나팔소리를 들으면 귀가 먹어요명심하세요.

 

그리고 이어서 본문 3절이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6:3)

3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할 수 있나요정 그렇게 하고 싶으면 왼손을 잠깐 어디다 두고 와야 하는데 그건 불가능하잖아요여기에서 오른 손’ 그리고 왼 손이라고 번역이 된 덱시오스아리스테로스는 그냥 오른 편왼 편이라고 번역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성경에서 오른편은 늘 진리의 편을 말하고 왼편은 비 진리의 편즉 멸망의 편을 가리킵니다. ‘옳은 편’ ‘그른 편으로 이해를 하시면 좋습니다.

그래서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두 아들을 데리고 와서 주님께 하나는 왼편에 하나는 오른편에 앉혀달라고 요구했다가 혼이 났던 것입니다. ‘너는 네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그 말은 둘 중 하나는 멸망으로 보내달라는 말과 같은 것인데 어떻게 그런 것을 요구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그건 하나님께서 결정하실 일이라는 것입니다 

 

(25:32~33,41)

32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같이 하여

33 양은 그 오른편에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34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4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여기에서 오른편이라고 번역이 된 단어가 덱시오스입니다오른편의 사람들은 오른손의 역할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하나님의 오른손은 늘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니까요.그들과 왼편의 사람들은 완전히 달라요그런데 마태복음25장을 잘 보시면 그 왼편의 사람들이 자기들을 왜 불로 집어넣느냐고 항의를 합니다뭐라고 항의를 해요자기들은 이러저러한 훌륭한 행위를 열심히 했다는 것입니다율법입니다그렇게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은 율법주의자들밖에 없어요다른 사람들은 긴가민가해서 그렇게 자신 있게 말 못해요율법주의자들은 소신과 확신을 가지고 종교행위를 하기 때문에 자기들은 분명 옳은 일을 했다고 굳게 믿는다는 말입니다반면에 오른편의 덱시오스들은 자기들이 내어 놓을 것이 없어요그래서 머리만 긁고 있는 겁니다. ‘우리가 언제 그런 일을 했지요?’ 그들에게는 모든 것이 은혜이기 때문입니다자기가 한 일이 전혀 없어요혹 하나님이 보시기에 기특해 보이는 일이 자기에게서 나왔다 할지라도 그건 내 안의 하나님이 행하신 일이지 자기 것이 아니란 걸압니다그들은 진리를 깨닫고 진리를 전하는 일을 합니다그 오른 편의 덱시오스들의 일을 왼편의 염소들이 알 수 있습니까몰라요그 말 하는 겁니다오른 편의 덱시오스들아왼편도 다 알아먹는 그런 거 하지 말라는 겁니다내가 원하는 것은 그런 수준의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4절이 이렇게 결론을 맺습니다. 

 

(6:4)

4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역시 엘레모수네가 주제입니다하나님의 말씀으로 긍휼을 전할 때에 은밀한 것으로 하라고 합니다그 은밀한 구제, ‘크루프토스는 외적인 것과 대조되는 내적인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표피가 율법이라면 그 내용인 진리가 크루프토스입니다구제를 할 때에는 그 내적인 것을 흘려주라는 것입니다그리고 보시는이라고 번역이 된 블레포는 하나님께서 보게 하시는 이라 했지요따라서 그 두 어구를 이으면 네 구제함을 은밀한 것으로 하라은밀한 것을 보게 하시는 너의 아버지가입니다그 분이 무엇을 넘겨주신다고 합니다한글 개역 성경에는 번역이 되어 있지 않지만 원어 성경에는 수 엔 호 파네이로스라는 어구가 붙어 있습니다. ‘네 안에 외적인 것을 분명한 것으로 넘겨주다라는 말입니다은밀한 것내적인 것표피적 율법에 머문 거짓말이 아니라 내적인 진리를 제대로 넘겨주어 구제를 하면 그 은밀한 것을 보게 하시는 아버지가 그 외적인 것을 분명한 것으로 완전하게 넘겨주신다는 그런 말입니다 

 

(2:28~29)

28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29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여기에서 표면적 유대인이라는 어구에 쓰인 단어가 파네이로스이고 이면적 유대인이라는 어구에 쓰인 단어가 크루프토스입니다표피적 유대의 것(이우다이오스유다에 속한 것)은 진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그 내용(파네이로스)이 진짜 유다의 것(이우다이오스)이라는 말입니다그러니까 말씀을 법으로 전하면 안 된다는 그런 말입니다진리를 잘 전하라는 말입니다그러면 그 외적인 것도 내적인 것으로 분명하게 넘겨주시겠다는 말입니다다시 한 번 말씀 드리지만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동양학에 위(무위(無爲)라는 말이 있지요그 말은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행함이 아닌 영원한 그것()을 하라는 말입니다진리를 깨닫고 진리가 되어 진리를 전하는 진리의 사람이 되라는 말인 것입니다그런 사람이 어떻게 난 이제 마음대로 살아도 된대하면서 말도 안 되는 시정잡배들의 엉터리 자유를 외칠 수 있단 말입니까아닙니다우리도 할 일이 있어요무위(無爲),하늘의 일을 하는 겁니다.

 

구제 할 때하늘의 사랑을 깨달아 그 사랑을 흘려 줄 때 어떠한 자세와 방법으로 전해 주어야 하는지 잘 아시겠지요그런 진짜 구제를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