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목사/산상수훈

산상수훈(32)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서 하는 기도(마6:5~6)

은바리라이프 2013. 10. 17. 09:20

산상수훈(32)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서 하는 기도

 

 

 

(6:5~6)

5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우리는 지난주에 기도란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여(프로스원하시는 그 뜻(마음)을 올바로 알아 그 뜻이 이루어지기를 구하고 그것을 자기 자신에게 혹은 이웃에게 흘려주는 것임을 배웠습니다그래서 히브리 사람들은 기도(프로슈코마이)’라는 단어를 신앙고백하다중보하다중재하다라는 뜻으로 쓴다고 했지요유대의 많은 학파와 종파들이 전부 기도문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기도문이 바로 자기들이 믿고 신앙하는 바에 관한 신앙 고백서였음도 말씀을 드렸습니다그러니까 기도는 하나님이 나를 향하여 가지고 계신 뜻이 나의 원함이 되어 나로부터 흘러나오는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단순히 나의 육적 필요를 구하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그런 연유에서 주의 하라(프로세코)’로 시작이 되는 6장의 서두에 이 기도에 관한 주의 사항이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그러면 이제 그 기도라는 것을 할 때에 어떻게 주의하여 해야 하는지를 주님께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제시를 해 주셨는지 한절 한 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5절을 보시면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는 말씀을 하십니다그 말씀은 위의 구제(엘레모수네)에 관한 주의 사항에도 동일하게 주어졌던 말씀입니다거기에서 외식하는 자(휘포크리테스)는 연기자라는 뜻이라 했습니다그러므로 구제할 때 외식하는 자처럼 하지 말라는 말의 의미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 진의도 모른 채 연기자의 대사처럼 소리로만 전하는 것입니다그렇게 하면 영 안에서 가난한 자(프토코스)를 진짜 구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마찬가지입니다기도라는 것이 엄밀히 말해 구제와 다를 바 없는 것이잖아요하나님의 말씀을 사랑으로 완성하여 그것으로 전해 주는 것이 구제요 기도니까요그런데 그 말씀을 진의도 담지 못한 소리로 전해주게 되면 그게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그래서 기도할 때 그것을 주의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세요산상수훈의 첫 번째 말씀이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입니다거기에서 심령이라는 말로 번역이 된 단어가 호 프뉴마인데 여격입니다여격은 항상 ‘~안에서로 번역이 되어야 합니다. ‘프뉴마’ 앞에 관사가 붙으면 그 단어는 마음이나 심령으로 번역을 해서는 안 됩니다. ‘성령이나 진리의 말씀으로 해석을 해야 합니다그리고 가난한 자라고 번역이 된 단어가 프토코스입니다상대적 가난을 가리키는 페네스와는 다른 절대적 가난그거 없으면 죽음에 이르는 그런 가난을 말하는 겁니다따라서 심령이 가난한 자라는 말은 진리의 말씀 안에서 그거 없으면 이 세상 그 무엇으로도 살 수 없음을 진정으로 고백하는 자라는 말입니다그들이 복을 받은 자들이라는 겁니다그들은 하늘의 통치를 저희의 것으로 가진 자라는 말입니다그게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라는 어구가 가진 뜻입니다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의 통치섬김 안에 들어 있는 자는 심령이 가난할 수밖에 없다는 그런 말입니다그러면 그러한 복된 가난 속에 들어 있는 자들에게 무엇으로 구제하고 무엇으로 기도해 주어야 합니까진리로 구제하고 진리로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그래야 그들이 그 절대적 가난에서 하늘의 풍요로 채워질 수 있는 것입니다그런데 정작 구제를 하고 기도를 해 주어야 하는 사람이 그 진리를 갖고 있지 못하면 어떻게 됩니까먹어서는 안 될 치명적 독을 주어서 멸망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6:27)

27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 치신 자니라  

 

여기에서 썩는 양식이라고 번역이 된 단어가 아폴루미인데 그 단어는 완전히 파괴하다멸망하다라는 뜻입니다그러니까 썩는 양식이란 완전히 멸망하게 하는 양식이라는 말입니다그러면 멸망에 이르는 양식이 아닌영생에 이르게 하는 진정한 구제와 기도의 양식은 뭐라는 겁니까? 

 

(6:48~50,55,62-63)

48 내가 곧 생명의 떡 이로라

49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50 이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 이니라

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만나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붙인 이름입니다. ‘이게 뭐지?’라는 뜻입니다하늘에서 하나님이 내리시는 양식이 떨어지는데 그게 뭔지 모르면 그걸 먹기는 먹는데 죽음으로 먹습니다만나는 떡으로 먹으면 안 됩니다말씀으로 깨달아 먹어야 합니다그래서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하는 장면에서 이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는 대목이 나오는 것입니다마귀는 거기에서 멈추라고 합니다말씀을 떡으로 먹고 그것을 에너지로 삼아 열심히 육의 행사를 내 놓으라는 것입니다예수님께서 깔끔하게 정리를 해 주십니다. ‘사람이 떡으로 사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사는 것이다.’ 말씀은 떡이 되면 안 됩니다진리로 이해되어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그래서 바로 뒤에 나오는 구절이 참된 양식(알레데스 브로시스)과 참된 음료(알레데스 포시스), 즉 진리의 양식과 진리의 음료로 그것을 먹고 마시는 자들은 그것을 먹고 살아난다는 말씀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말씀을 만나로 먹느냐진리로 받느냐에 의해 생명과 죽음으로 갈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 말은 예수(율법호 코스모스)를 섬김의 대상으로만 받아들이느냐아니면 진리로 깨달아 마음으로 가지느냐에 의해 생명과 죽음이 갈리게 된다는 말과 같습니다그런데 당시 예수를 좇던 사람들은 예수님이 행하시는 기적이나 표적에만 관심을 가졌고그러한 일을 행하시는 능력의 예수를 자기들의 왕을 삼으려고 열심히 쫓아다녔던 것입니다그건 예수님의 기능과 능력에 반한 것이지 그 예수 안에 들어 있는 진리를 좇은 것이 아니었습니다주님은 그것을 가리켜 말씀을 만나로 먹는 것이라 하시는 겁니다마찬가지입니다오늘날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나를 구원해 주시는 주님나의 필요를 채우시는 주님으로서의 예수를 믿고 있다면 그것이 곧 예수의 기능과 능력만을 믿는 가짜 믿음인 것입니다그건 구원에 이르는 믿음이 아닙니다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기능과 능력이 가리키는 것은 영생이 무엇인가를 가르치시는 시청각 교재였습니다그런데 그 속에서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그 기능과 능력만을 바라보면 그 기능과 능력이 사라진 예수를 죽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그게 죽은 믿음이라는 겁니다그래서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을 이으셨던 것입니다. 

 

(6:62-63)

62 그러면 너희가 인자의 이전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볼 것 같으면 어찌 하려느냐

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 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주님께서 이전에 있던 곳즉 하늘로 올라가시면(아나바이노너희가 믿고 따르던 그 능력의 예수,훌륭한 기능을 가진 예수는 사라지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너희는 누구를 왕 삼아 살 것이냐는 말입니다. ‘지금 너희가 왕을 삼으려고 하는 자는 능력이 있고 너희의 육적 세상의 삶에 유익이 되는 자 아니냐그런데 진짜 중요한 것은 하늘의 풍요요 하늘의 생명이기 때문에 난 너희가 원하는 것을 줄 수가 없다그때도 너희가 날 왕 삼으려 할까너희가 생각할 때 아무런 가치도 없어 보이는 하늘 생명과 하늘 풍요를 주겠다고 하는 나를 그때도 이렇게 열광하며 따를까?’

 

주님은 살리는 것은 그 예수의 기능과 능력과 표적이 아니라 그 속에 담겨 있는 영즉 진리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그것을 보지 못하고 무조건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것은 멸망에 이르는 양식을 먹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말입니다주님께서 올라가시면(아나바이노진리의 성령으로 내려오신다고 했지요그러니까 예수 안에 담겨 있는 살리는 말살리는 영을 깨달아 알라는 것입니다그런데 그건 인간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그래서 어렵습니다차라리 목숨 걸어 예수를 섬기라고네가 가진 모든 것을 다 희생하여 예수를 위해 살라고 하면 그건 할 수 있어요그런데 그 죽음 말고 진리로 죽는 죽음자기 부인의 죽음을 죽으라고 말을 하면 성령을 받지 못한 이들은 고개만 갸우뚱하게 되는 것입니다주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자 어떤 일이 벌어졌나요?    

 

(6:60~61,66)

60 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한대

61 예수께서 스스로 제자들이 이 말씀에 대하여 수군거리는 줄 아시고 가라사대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  

66 이러므로 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 하더라 

 

보세요제자들이 그 말을 듣고는 이 말씀은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다라고 했습니다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내 말이 너희를 걸려 넘어지게 할 거야오직 성령을 받은 자만 내 말을 알아들을 거니까.’ 그랬더니 제자들이 거의 다 떠나버렸답니다그리고 다시는(우케티주님과 함께하지 않았답니다그들은 그들을 멸망케 할 양식이 더 좋았기 때문입니다육으로 먹고 육으로 행하는 그런 것이 훨씬 더 익숙했기 때문에 진리영 운운하는 예수님이 오히려 걸림돌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심령이 가난한 자는 어떤 말로 살아나게 되는 거지요당연히 진리의 말씀으로 살아납니다그런데 그 말씀이 만나(what is this?)로 들리는 사람은 절대 살아나지 못합니다그들은프토코스한 자가 아니라 페네스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여전히 육의 필요와 육의 가치 향상과 육의 확장에만 집중하고 있는 자들입니다그들에게는 법이 훨씬 좋습니다말씀을 법으로 받아서 육의 열심으로 육의 열매를 맺어가며 보람과 환희를 느끼고 싶어 합니다기복주의나 신비주의 율법주의는 사실 같은 뿌리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하나님은 돌비에 새긴 말씀을 심비에 새기라고 하셨습니다그 말은 주어진 말씀을 마음으로 가지라는 말입니다진리가 되라는 것입니다그런데 그 말씀을 그냥 법으로 가지면 그게 돌비에 새긴 율법이 되는 겁니다 

 

(고후3:3)

3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며 또 돌비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심비에 한 것이라 

 

그렇지요그런데 말씀을 돌비에 쓴 것으로만 가지고 있으면 그것이 그를 멸망으로 밀어 버린다는 말입니다따라서 말씀을 표피적인 수준으로만 전하게 되면 그것이 곧 외식하는 자의 말이요그 말씀을 받은 자들을 죽이는 것이 되는 것이므로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처럼 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신 것입니다.

 

그 다음 내용을 보시면 좀 더 확실하게 이해가 가실 것입니다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처럼 하지 말라고 하신 주님께서 외식하는 자들의 유형을 회당과 큰 거리에 서서 기도하는 자라고 지적해 주십니다. ‘회당은 유대인들이 모여 말씀을 나누던 곳이었습니다그 회당에서 어떤 말씀이 흘러 다녔겠습니까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이 율법적 의미로 회자되던 곳이겠지요그게 외식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눈에 보이기 위해 큰 거리 모퉁이에 서서 기도를 한다고 합니다그건 단순히 사람들에게 난 기도하는 사람이다라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길 거리에 서서 기도하는 걸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제사장들이 그렇게 유치한 사람들이 아닙니다그 사람들도 인간세상의 겸손이 무엇인지 겸양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었던 사람들입니다그들도 남모르게 구제를 했고 남모르게 선행을 했던 사람들입니다그런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떠벌리며 했겠습니까그들이 저마다 큰 길 거리에 서서 기도를 했겠어요그런 말이 아닙니다여기에서 큰 길 가는 플라테이아’, 광장이라는 말입니다그 단어는 성전 마당을 가리킬 때 사용되던 단어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두 증인이 죽는 곳이 큰 성 길가라고 하지요그 단어가 오늘 본문의 큰 거리와 같은 단어입니다그런데 계시록에서는 거기가 바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고애굽이고소돔이라고 합니다그 큰 거리는 예루샬라임즉 옛 성전을 가리키는 것입니다성도는 그 옛 성전의 마당에서 죽는 것입니다성전 마당에서는 매일같이 희생제사가 드려집니다예수가 그 곳에서 제물이 되어 하나님께 드려졌습니다그런데 반드시 죽임을 당한 후 드려져야 합니다성도가 거기에서 죽어 하나님의 아들로 받아들여지는 것입니다율법에 대하여율법이 되어서 죽으신 예수님과 동일한 죽음을 죽는 것입니다그런데 거기에 서서 그 마당 적인 것으로 말씀을 흘려주면 어떻게 되겠어요?

 

생각해 보세요성전은 그 가운데의 지성소를 내용으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그런데 그 성전이 모퉁이(고니아)로 이해되어지면 그건 안 되는 겁니다그런데 외식하는 자는 성전 마당의 어귀에서 기도를 한다는 것입니다말씀을 내용으로 전해 주지 못하는 형국입니다그런데 서서라고 번역이 된 단어를 원어로 보면 이스테미입니다. ‘똑바로 세우다라는 뜻이라 했습니다그 단어에서 스타우로스언약십자가라는 단어가 나온 것이라 했지요

 

하나님께서 하늘을 설명하시기 위해 이 땅의 보이는 것으로 주신 모든 것을 통해 진리를 깨닫게 되면 위로 똑바로 서게 되는 것입니다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위로 똑바로 서게 되면 그게 바로 언약의 성취요 하늘 백성으로의 완성인 것입니다그런데 외식하는 자는 어떤 다른 것으로 똑바로 세우려 한다는 것입니다그게 뭡니까눈에 보이는 것성전 마당의 모퉁이 것으로 세우려 한다는 것입니다그건 절대로 똑바로 설 수 없는 것입니다그래서 주님께서 주의 시키시는 겁니다회당에서 성전 마당의 모퉁이에서 눈에 보이는 외적인 것으로표피적인 것으로 똑바로 세우려는 것이 바로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는 거니까 절대로 주의하라는 것입니다.    

 

(13:23~27)

23 혹이 여짜오되 주여 구원을 얻는 자가 적으니이까 저희에게 이르시되

24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25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저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너희가 어디로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 

26 그 때에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나

27 저가 너희에게 일러 가로되 나는 너희가 어디로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가라 하리라   

 

예수라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지 못한 하늘 성전 밖의 죽은 흙들에게 주님이 말씀을 하십니다한번 문이 닫히면 절대로 못 들어간다는 것입니다그런데 그들이 뭐라고 소리를 지릅니까우리가 주님 앞에서 먹고 마셨다고 합니다주님께서 말씀하신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셨다는 겁니다그런데 그 뒤의 말이 걸작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길거리에서 가르치셨잖아요?’라고 합니다그 길거리가플라테이아입니다맞습니다주님은 성전 마당과 회당에서 진리를 설파하셨습니다그런데 아무도 그 진의를 알아먹지 못했습니다여기에 바로 그 단어가 쓰였다는 것은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셨다고 하는데 그 살과 피가 성전 마당에서 이해되는 차원의 살과 피라는 것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뭐라고 하세요행악하는 자라고 하십니다너희는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은 게 아니라 악을 행한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세요.

 

이렇게 성전 마당의 모퉁이 것눈에 보이는 표피적인 것그런 것으로 세우려고(이스테미)하는 것이 바로 외식하는 자의 행위(행악)이니 주의하라는 말씀입니다절대로 세워지지 않으니까요. 

 

(21:21)

21 그 열 두 문은 열 두 진주니 문마다 한 진주요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  

 

여기에서 이라고 번역이 된 단어가 플라테이아입니다성전입니다그런데 그 성전이 하늘에서는 어떤 성전입니까유리 같은 정금이라고 합니다. ‘유리라는 단어는 휘알로스라는 단어인데 그 단어는 비처럼 투명한 것이라는 의미입니다그 단어는 히브리어 자쿠키트를 헬라어로 그대로 옮긴 것인데 그 자쿠키트라는 단어는 욥기에 나오는 단어입니다그런데 욥은 창세기 시대 사람이잖아요그때 무슨 유리가 있어요성경에 나오는 유리는 지금 우리가 태풍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열십자로 테잎을 붙여 놓는 그런 유리가 아닙니다그 단어는 무죄하다순결하다깨끗하다라는 뜻입니다그래서 맑은 수정을 가리킬 때도 그 단어를 씁니다그리고 정금은 여러분이 잘 아시는 것처럼 기름이라는 단어와 함께 진리의 말씀을 가리키는 것입니다그래서 금과 기름이라는 단어가 같은 단어라 했지요금으로 싸는 것이나 기름을 바르는 것은 진리의 말씀으로 옷을 입는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유리 같은 정금이 뭘까요순수하고 깨끗한 진리의 말씀을 가리키는 것입니다하늘에 있다는 유리바다도 마찬가지입니다이 땅의 바다가 하늘의 물인 진리를 설명하기 위해 주어진 모형의 바다잖아요그 모형의 바다로 하늘의 바다를 알게 되면 그 땅의 바다는 다시는 필요치가 않습니다.그래서 하늘의 새 예루살렘을 설명하면서 바다도 다시 있지 않겠고라고 설명을 했던 것입니다왜 바다가 다시 있지 않지요그 아래의 바다가 위의 바다즉 유리 바다로 깨달아지면 그 아래의 바다는 더 이상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그래서 하늘의 성전이 유리 성전인 것이고 하늘의 진리가 유리 바다인 것입니다.

 

그러면 8로 부활하신 주님께서 8의 날에 제자들에게 찾아오셔서 평강을 설교하시는 그 때는 어떻게 묘사가 되어 있는지 보세요. 

 

(20:19)

19 이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    

 

8의 날에 제자들이 모여 있는데 그 모여 있는 곳의 문이 닫혔습니다.(수동태제자들이 닫은 게 아닙니다오늘 본문에 보면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기도하라는 말이 나오지요같은 말입니다말씀이 진리로 전해지는 곳은 문이 닫힌 곳입니다다시 돌아 나갈 수 없는 곳이라는 상징입니다지성소에서 돌아나가면 성전마당밖에 없어요그래서 양들이 들어간 문은 반드시 닫혀야 하는 것입니다그런데 주님께서 그 장소에서 제자들에게 평강을 설교하시는데 가운데 한복판(메소스)에서 세우십니다.(이스테미오늘 본문의 서서라는 단어와 같은 단어입니다가운데 것으로 세운다는 말은 당연히 지성소의 진리로 제자를 세우는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그래야 진짜 중보(프로슈코마이)가 되는 것입니다외식하는 자들은성전 마당의 모퉁이의 것으로 세운다는 겁니다율법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신앙생활의 핵심인 말씀을 엉뚱한 것으로 가지고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그리고 그것을 전하겠다고 목숨까지 겁니다그런데 산을 넘고 물을 건너는 열심을 부려 하나를 만나면 배나 지옥자식으로 만들어 버리는 결과를 낳습니다그게 문제인 것입니다. 

 

 

(11:9-10)

9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낮이 열두시가 아니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10 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 고로 실족 하느니라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고치시려고 유대로 다시 가려 하실 때 제자들이 말렸습니다금방 돌로 치려고 했던 자들을 피해서 이리로 온 것인데 다시 그리로 들어가면 어떻게 하냐는 것입니다그때 주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낮이 열두시라고 하시지요그 말은 빛으로 와계신 주님의 날을 가리키는 것입니다(프호스)이 있으면 그 때가 낮의 날입니다그런데 그 날이 열두시간이라고 합니다열두시가 아닙니다열두시간입니다열두시간은 아들을 만드는 시간이라는 의미를 가진 것입니다그때에 빛으로 오신 주님을 알아보면 산다는 겁니다

 

그런데 어느 누구도 빛이신 주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빛이 와 있는데 모든 인간들이 전부 밤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그 대표가 바로 죽은 나사로입니다율법의 굴(옛 성전)에 갇힌 죽은 자입니다밤에 속한 자입니다. 10절에서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밤에 다니는 자는 빛을 그 안에 가지지 못한 자라고 하십니다빛은 밖에 있으면 안 된다는 겁니다

 

밖에 있는 빛으로 예수님이 오셨어요불기둥구름기둥으로 하나님이 앞장을 서셨습니다그걸 하나님이 밖에서 남편이 되신 것이라 말씀하시지요그럼에도 이스라엘은 진리가 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밖에 있는 말씀은 를 살려 내지 못합니다그 말씀이 내 안의 것이 되어 마음으로 되어지면 그게 진리의 빛으로 나를 살려내는 것입니다그 반대가 되면 나도 죽고 남도 죽이게 되는 거고요.

 

빛이신 주님께서 어두움의 굴로 가셔서 그 안에서 죽어 있는 나사로를 살려 내십니다. ‘나사로(엘레아자르)’라는 이름은 하나님이 도우셨다라는 뜻이라 했습니다그에게 을 던지십니다. ‘나사로야 나와라’ 거기서 나와야 산다는 것입니다옛 성전의 율법에서 나와야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그런데 거기서 나올 수 있는 방법은 예수님의 말씀밖에 없어요그 말씀이 나사로 안으로 들어가 그를 굴 밖으로 끌어내는 겁니다나사로는 어두움의 율법에서 풀려나 은혜의 빛 안에서 자유와 해방을 누리는 겁니다 

  

 

(11:43-44)

43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44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빛이신 주님께서 굴에 갇힌 죽은 자에게 말씀의 빛을 던지십니다. ‘밖으로 나오라(듀로 엑소)’ 그랬더니 죽은 자가 수족이 묶인 채로 율법의 굴에서 나옵니다얼굴에는 수건까지 덮여 있습니다당연히 앞을 못 보는 소경입니다모든 것을 풀어 주라 하십니다그게 어두움에서 빛으로 살아나는 성도의 현실인 것입니다말씀입니다율법의 행위가 아닙니다그 에피소드 속에서 나사로가 한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하나님의 말씀이 홀로 일을 하십니다그러나 말씀을 율법의 행위로 보게 되면 그는 빛이라고 아무리 우겨도 여전히 어두움인 것입니다. 

   

 

(6:22-23)

22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23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 

 

우리가 호 코스모스의 세상을 보는 눈을 어떻게 가지느냐에 따라 빛에 거할 수도 있고 어두움에 거할 수도 있다는 그런 말입니다율법의 눈으로 성경을 비롯한 세상의 모든 것을 바라보면 그것이 바로 어두움에 거하는 것이라는 겁니다그런데 하나같이 그걸 빛으로 오해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그래서 주님께서 경고하시는 겁니다. ‘네가 빛이라고 갖고 있는 게 실상은 어두움이라면 어떻게 하려고 하느냐?’ 그러면 정말 큰일 나는 거지요그래서 우리는 늘 깨어서 근신해야 하는 것입니다. 

 

 

(살전5:5-8)

5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6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 할지라

7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8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근신하여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여기에서 깨어 근신하라는 말은 술에 취하지 말고 분별의 눈을 가지라는 뜻입니다성경에서 술이라는 것은 항상 섞은 것을 상징한다고 했습니다섞은 것즉 진리가 아닌 말씀에 취해서 잠자지 말라는 것입니다예수님께서 나사로가 잠자고 있다고 말씀을 하셨지요그 말입니다나사로처럼 율법의 굴에 갇혀 있으면 그게 바로 잠자는 것이고 섞은 것에 취해 있는 것이라는 그런 말입니다그게 어두움에밤에 속한 자들의 삶이라는 겁니다그러면 낮에 속한 이들은 어떤 모습으로 사나요? 믿음과 사랑과 구원의 소망을 입고 산다는 것입니다법이 아닙니다행위가 아닙니다믿음이고 사랑입니다그것으로 구원에 이름을 아는 것입니다그게 빛의 삶입니다.

 

그런데 창세기 1장에 의하면 빛은 곧 이고 은 곧 이며 그 빛은 어두움이 무엇인지를 나타내어 보여주는 것이라 했습니다그러니까 어두움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알면 그게 곧 빛이라는 얘기지요그렇다면 어두움을 통해 빛을 깨달은 성도에게 있어서 어두움이 정말 나쁘기만 한 것이겠습니까그러면 우리는 하나님마저 악한 존재로 만들어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45:7)

7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   

 

하나님께서 빛도 지으셨고 어두움도 창조하셨답니다그리고 평안(샬롬)도 창조하시고 환난()도 창조하셨답니다그 모든 일은 전부 하나님의 행하심에 의해 나타난 것이라는 말입니다여기에서 환난이라고 번역이 된 는 이라는 단어입니다. ‘을 하나님께서 아싸(되게 하다창조하다)’하셨다는 것은 충격적인 말이 아닌가요평안(샬롬)을 설명하시기 위해 ()’이라는 것을 창조하여 그것이 이 되게 하셨다고 하는데 그 이 뭡니까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은 천지안으로 다 수렴이 됩니다그 천지를 진리로 보지 못하면 그게 전부 악인 것이고 그것을 진리로 보게 되면 그게 바로 샬롬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진리를 깨닫게 하시는 역할로 오시는 성령의 이름이 엘로힘 루아흐인 것입니다.그 단어를 파자해 보면 하나님께서 가르치시는데 진리를 소리로 주신다죄로 시작하여입니다. ‘루아흐가 레쉬와 헤드라는 문자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문자의 의미가 시작하다’, ‘입니다그래서 창조 기사에서도 흑암에서부터 시작이 되는 겁니다어두움죄로 시작하셔서 빛과 의를 설명해 내시는 것이 성령인 것입니다그게 이 땅의 것들이거든요하늘의 것을 땅의 것을 시청각 교재로 삼아 설명해 주시는 것입니다따라서 우리는 이 땅의 것을 통하여 하늘의 것을 깨달아 마음으로 가질 수 있어야지 그 땅의 것으로만 받아들여 거기에 매이거나 묶이면 안 되는 것입니다그런 자들은 하늘의 상(말씀을 올바르게 받아 가감 없이 전하여 그리스도의 사역에 동참하는 것)(고전9:18)을 받은 자들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만들어낸 상을 가진 자라는 말입니다그게 오늘 본문 5절의 내용입니다기도할 때 회당에서큰 거리 어귀에서외식하는 자들처럼 하지 말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잘 아시겠지요? 6절은 다음 주에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