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목사/산상수훈

산상수훈(24) 일곱 번 말하는 분, 하나님 마5:33~37

은바리라이프 2013. 10. 17. 09:13

산상수훈(24) 일곱 번 말하는 분, 하나님





5:33~37

33. 또 옛 사람에게 말한바 헛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3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35. 땅으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36. 네 머리로도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37.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


우리는 지난주에 맹세라는 단어 홀코스라는 단어의 원의를 추적해서 그 헛맹세 라는게 하나님께서 그 호코스모스 세상이라고도 하고 겉으로 나타난 어떤 것 히브리어로 하면 굳이 바꾸면 판임이라고 바꿀 수 있죠. 그 호코스모스 안에 담아주신 그 담장 그 한계를 벗어나서 엉뚱한 말로 왜곡시키는 것, 거짓 증거라고 했죠.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그 홀코스 맹세라는 단어는 히브리어 솨바에서 나온 단어거든요. 오늘은 그 솨바라는 단어를 중심으로 해서 맹세의 부분을 다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이 솨바 맹세하다 라는 단어는 히브리어 쉐바에서 나온 단어인데요 부엘쉐바 아시죠? 똑같은 단어예요. 쉐바, 그 쉐바의 의미가 일곱이라는 뜻이예요. 일곱, 사람들이 부엘쉐바를 일곱 우물이라고도 해석을 한 거죠. 사실은 일곱우물 아니예요. 거기에 우물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따라서 맹세하다 그 솨바는 일곱 번 말하다가 되요. 일곱 번 말하다


그렇게 히브리사람들은 일곱 번 말하다 라는 말에 의미로 맹세, 언약, 약속 이라는 말로 써요

일곱 번 말하다를 왜 그들은 맹세, 언약, 약속 이라는 단어를 일곱 번 말하다 라는 내용으로 사용하는가

, 일곱 번 말하다 이게 맹세, 언약, 약속이예요


그리고 그들은 그걸 스타우로스 기둥으로 표기를 해요. 그래서 예수님이 달린게 십자가라고 하지만 사실은 기둥이예요. 그 십자가는 사실 태양신을 섬기던 이들의 표식이었어요. 문양이었어요. 그래서 나치표시 있죠. 이것도 십자가의 변형이예요. 불교의 만자 있죠. 그것도 십자가의 변형이예요. 그것은 원래 태양신의 문양이었어요. 콘스탄틴 대제가 로마의 국교를 기독교로 받아들이면서 기독교의 대표적인 표식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자기가 태양신을 섬겼던 사람이잖아요. 그래서 그 십자가를 가져다가 쓴 거예요. 사실은요. 그래서 예수님이 이렇게 안달렸을지도 몰라요. 여러분. 기둥이란말예요 스타우로스는 그냥 기둥이예요. 십작가가 아니예요. 원래가, 그냥 우리가 십자가라고 부르는 거죠.


창세기 1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창조를 시작하시면서 안식까지 일곱 번 말씀하세요. 일곱 번 말합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것처럼 그 안식은 여섯 번째 날 자칼과 네케바 굳이 남자와 여자, 신랑과 신부 이렇게 번역해 보자구요

자칼과 네케바의 탄생으로 완결이 되죠. 그 둘이 한 몸이 되는 것, 요게 이제 안식의 그 완료 지점이란 말이죠


그 자칼과 네케바는 신랑이신 그리스도 예수와 신부인 교회의 이야기예요. 그 둘이 하나로 연합이 되어서 신랑이 신부가 되고, 신부가 신랑이 될 때 안식이 찾아오는 거예요. 그러면 더 이상 하나님이 할 일이 없어지잖아요. 그죠? 그런데, 창세기의 그 창조 이야기는 둘씩 짝을 이루고 있는거라고 했죠. 첫째날과 넷째날, 둘째날과 다섯째날, 셋째날과 여섯째날 이렇게 짝, , 짝이잖아요. 그쵸? 그 셋째날에 어떤 창조가 일어나죠? 여섯째날 자칼과 네케바가 이제 연합이 되니까 셋째날을 우리가 살펴봐야 되잖아요. 셋째날에 어떤 창조가 일어납니까? 물과 뭍이 갈라지고 씨 맺는 채소, 씨 맺는 나무가 등장하죠. 여러분 채소라는건 광합성을 해야 비로소 살 수 있는거 아니예요? 근데 태양은 식물의 광합성를 도우는 태양은 넷째날 만들어졌단 말예요. 셋째날 만들어진 그건 뭐냔 말예요. 어떻게 존재하죠 그게?



1:11~12

11.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 하시매 그대로 되어 12.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여기서 씨라고 번역이 된 단어가 제라 후손이예요. 자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약속의 후손, 자손을 언약으로 주시죠. 고때 그 단어가 이 씨예요. 제라란 말이예요. 동일한 단어란 말입니다. 11절 후반부를 직역하면 그 안에 그 후손 그 씨를 가진 열매 내는 나무란 뜻이예요. 신약에 무수히 등장하는 열매 맺는 나무의 이야기가 여기에 처음 등장하는거예요. 단순이 씨가진 채소, 씨가진 나무 그런걸 창조했다라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씨가 씨를 갖게 되면 여자가 남자의 씨를 갖게 되면 생명을 잉태하고 탄생케 하는 것처럼, 이 자칼과 네케바가 이제 하나가 되어서 어떤 존재, 사람이 되어 하나님과 함께 안식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씨 후손이 필요하다 그래서 셋째날 제라 씨, 그 씨를 가진 사람이 생명이라는 열매를 내잖아요. 그죠? 그 이야기와 이렇게 연결시켜 놓은거란 말예요.


바로 이러한 언약의 이야기를 하나님이 일곱 번 말하여 완성하시죠. 그게 안식이잖아요. 완성이 그걸 솨바라고 그래요. 맹세라고 그래요 그것을, 마찬가지예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약속의 후손, 씨를 주시겠다 라고 약속하시는데, 몇 번 말하는 줄 아세요? 일곱 번 말해요. 요한계시록에서도 일곱 인이 나오고, 일곱 나팔이 나오고, 일곱 대접이 나오죠. 일곱 인은 뭐예요? ‘떼라’ 그러잖아요 열리는거예요. 비밀인 묵시, 진리가 ‘인’ 떼어지고, ‘나팔’ 말해지고, 결국 대접, 대접은 뭐죠? 등경위에 있는 기름 담는 성서의 그 촛대 있잖아요. 촛대의 일곱 대접이예요. 요걸 하나하나 부어버리면 어떻게 되죠? 빛이 꺼지는 거예요. 마지막게 쏟아지면 끝나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이 그러잖아요. 빛이 아직 있을 때 왜? 꺼져가는 등불도 내가 죽기전까지는 끄면 안되는거거든요. 그래서 꺼져가는 등불도 끄지 않는 하나님,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면 마지막 등불이 꺼지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이 뭐라고 하냐면, 빛이 있을 때 다니라고 그래요. 그러나 내가 가면 네 안에 빛을 가지고 있어야 너는 살아! 그래요. 그 대접이란 말이죠. 그게 맹세예요 다.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 이게 하나님의 맹세에,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 그것을 가리키는거란 말예요. 이렇게 맹세는 당신 자신의 열심과 능력으로 참 성전을 완료하시겠다라는 하나님의 맹세인거예요. 인간의 맹세는 없어요. 하나님의 맹세예요.



9:1

1. 지혜가 그 집을 짓고 일곱 기둥을 다듬고


기둥이 뭐라고 했죠? 언약, 약속이예요. 이 어절을 히브리원어로 보면 호크모트바나바이트하치아부아무드쉐바 지혜, 지혜는 항상 성전 짓는 지혜라고 했습니다. 지혜가 성전을 짓는데, 이 바이트가 집이 성전이거든요. 성전을 짓는데, 일곱 기둥, 약속, 언약, 언약을 새겨서 짓는다라는 말이예요. 이것을 맹세라고 그래요. 솨바라고 그래요. 일곱 번 말하다. 따라서 맹세라는건 하나님의 것이지 사람의 것이 아닌거예요. 일차적으로. 그런데 사람이 그 맹세에 기여를 하겠다고 두 주먹 불끈 쥐고 나서면 어떻게 되는 거죠? 그게 거짓 맹세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런 말씀을 주셨던 것입니다.



19:12

12. 너희는 내 이름으로 거짓 맹세함으로 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니라


거짓된 이름으로 맹세하지 말아라 그래요. 그렇게 거짓된 이름으로 맹세를 하면 하나님의 이름이 더러워진다 그래요. 이것을 히브리 원문으로 직역하면 이러합니다. 내 이름 안에서 거짓을 위해 일곱 번 말하지 말아라 그러면 내 이름이 더러워진다. 내가 일곱 번 말한 것 그 맹세의 진위를 갖고 거짓을 위해 사용하지 말라는 거예요 그러면 내 이름이 더러워진다 그래요. 성경에 여러분 이름이 많이 나오죠. 확실히 알고 가세요. 여기에서 더러워진다 라고 번역이 된 ‘하랄’ 이라는 단어가 얼룩지게 만들다 예요. 알록달록 얼룩지게 만들다. 점 있게 만들다. 너희들이 거짓을 위해 내가 일곱 번 말한 것, 내 맹세를 사용하면, 성경을 너희들이 거짓을 위해 사용하면 내 이름을 얼룩덜룩하게 만드는거야 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여러분 율법에 보면요. 점 있고 흠 있고 얼룩덜룩한 것을 제물로 드릴 수 있어요? 없어요? 못 드려요. 그런데 인간들은 점 있고 얼룩덜룩한 가짜 제물 만들기에 달인들이예요. 하나님이 안 받으시는 걸 정말 열심히 만들어 내는게 인간들이예요. 그 대표 주자가 이스라엘이 되기 전에 야곱이죠. 야곱은 강도, 발목을 잡는 자, 실족 시키는 자예요. 걸어가는 사람 발목 잡으면 어떻게 되죠? 넘어져요. 야곱이라는 이름이 강도잖아요. 그 말은 남의 것을 훔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을 강도 주지도 않았는데 갖다가 지 맘대로 쓰는걸 도적, 강도 그래요. 야곱의 이름이예요. 이게. , 그렇게 하나님의 말을 갖다가 지 맘대로 써버리면 그걸 듣는 이들이 실족한단 말입니다. 이게 야곱의 이름이예요 그것이.



30:32~39

32. 오늘 내가 외삼촌의 양떼로 두루 다니며 그 양 중에 아롱진 자와 점 있는 자와 검은자를 가리어내며 염소 중에 점 있는 자와 아롱진 자를 가리어 내리니 이 같은 것이 나면 나의 삯이 되리이다


그건 하나님이 안 받는 건데, 하나님이 안 받아도 괜찮아요. 내 것이 되면 무조건 만들어내는 거예요. 인간들은. 야곱은. 내 것이 되면. 나에게 유익이 되면. 나의 가치에 도움이 되면 무조건 만들어내는게 야곱이예요. 인간이이란 말입니다.


33. 후일에 외삼촌께서 오셔서 내 품삵을 조사하실 때에 나의 의가 나의 표징이 되리이다 내게 혹시 염소 중 아롱지지 아니한 자나 점이 없는 자나 양중 검지 아니한 자가 있거든 다 도적질한 것으로 인정 하소서

34. 라반이 가로되 내가 네 말대로 하리라 하고 

35. 그 날에 그가(라반이) 수 염소 중 얼룩무늬 있는 자와 점 있는 자를 가리고 암염소 중 흰 바탕에 아롱진 자와 점 있는 자를 가리고 양 중의 검은자들을 가려 자기 아들들의 손에 붙이고 (하얀 것만 남기고 얼룩덜룩하고 점 있는 거는 전부 아들의 손에 붙여서 사흘길 떨어진 곳에 떨어뜨려 놨어요. 그러니까 야곱의 손에는 하얀 것 밖에 없는 거예요

36. 자기와 야곱의 사이를 사흘길이 뜨게 하였고 야곱은 라반의 남은 양떼를 치니라 (남은 양떼는 모두 하얀 거죠.그런데 야곱이 뭐 하나 보세요

37. 야곱이 버드나무와 살구나무와 신풍나무의 푸른 가지를 취하여 그것들의 껍질을 벗겨 흰 무늬를 내고

38. 그 껍질 벗긴 가지를 양떼가 와서 먹는 개천의 물구유에 세워 양떼에 향하게 하매 그 떼가 물을 먹으러 올 때에 새끼를 배니 39. 가지 앞에서 새끼를 배므로 얼룩얼룩한 것과 점이 있고 아롱진 것을 낳은지라


어떤 주석서에 보니까 이렇게 하면 진짜로 얼룩덜룩한게 나온다고 뭐 억지로 꿰맞춰 놨던데, 이렇게 한다고 얼룩덜룩한거 안생겨요. 괜히 따라해 보지 마세요. 여기에서 아롱지게 만드는거, 점 있는 것으로 만드는거, 검은 것으로 만드는거 이것을 ‘하랄’ 이라고 그래요. 더럽히는거. 인간이 자기의 꾀로 자기의 소유를 늘리고 자신의 가치를 축적하는데 그 모든게 다 하나님이 안 받으시는 것이더라를 보여주는 거예요


흰 것을 줬더니 자기의 유익을 위해 결국, 얼룩진 것으로 바꾸어 내더라는 거예요. 그리고는 성경이 뭐라고 하면은 그가 부자가 되었더라 라고 그래요. 성경이 금하는 부자예요. 그건. 부자가 되었다. 야곱이 주님께서 절대로 바늘귀 문으로 못 들어간다 라고 하는 약대가 되어 버린 거예요. 부자가 되어 버린 거예요. 그래서 환도뼈가 부수어지고, 환도뼈는 남자의 씨가 담긴 그릇이라고 그랬죠. 자손이 담긴 그릇 뭐예요? 예수 씨를 담고 오셨잖아요. 진리를 담고 오신 분이 부수어 지는 거예요. 죽는겁니다. 그 야곱이 그 은혜에 의해 이스라엘로 바꾸어 지는 거예요. 승리죠. 이게 거짓 맹세에 내용이예요


그래서 얍복강 이전의 야곱이 항상 거짓말 하는 자로 나오는 거예요. 아버지속여, 형 속여, 외삼촌 속여, 다 속이는 자로 나오는 거예요. 야곱이. 거짓말, 나쁜 말을 가진 자로 등장을 하는 거죠. 그렇다면 도대체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이기에 하나님은 그 이름을 이토록 소중하게 말씀하실까?



19:12~13

12. 그 눈이 불꽃같고 그 머리에 많은 면류관이 있고 또 이름 쓴 것이 하나가 있으니 자기 밖에 아는 자가 없고 13.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그리스도 주님이예요. 주님의 이름이 뭐라고 그래요? 하나님의 말씀이래요. 그러죠? 주님의 이름이 하나님의 말씀이래요. 요한복음에도 나오잖아요. 그런데 그 말씀은 자기만 아는 말씀이래요. 아무도 그 이름 그 말씀의 진위를 알아먹지 못해요. 그래서 그 분이 직접 오셔서 그 이름을 말씀해 주셔야 되요. 여러분 이름이라는 것이 뭐죠? 특히 고대시대 때 이름은 그 존재의 내용이며 그 내용의 축약을 이름이라고 그래요. 그래서 이름을 함부로 안 지어요. 성경에 나오는 이름은 전부 일반명사로 해석을 해야 되요. 다 이름이 괜히 준 게 아니예요. 제자들의 이름도 다 의미가 있어요. 이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을 내용으로 담고 있는 거니까, 자기밖에 모르는 것이 당연하죠? 하나님을 누가 알아요? 그죠? 그래서 그 이름 그 하나님 축약된 하나님을 설명하는게 뭐죠? 말씀이잖아요? 그래서 그 이름을 말씀이라고 하는 거예요. 내용이란 말예요 하나님의 내용



1:1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 하나님의 이름이 말씀이예요. 그렇다면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해서 그 이름을 허위로 사용하여 거짓 맹세를 하면 그 이름이 더러워진다 라는 레위기의 말씀이 무슨 의미겠어요? 진리의 말씀, 하나님을 설명하는 그 진리의 말씀을 엉뚱하게 사용해서 그 진리를 왜곡시키지 말라는 뜻이예요. 그게 내 이름 더럽히지마, 거짓 증거 해서 내 이름 더럽히지마가 그 말이란 말예요. 맹세라는건 하나님의 것인데 왜 너희가 그 맹세의 주인공이 될려고 그래~ 선악의 주체는 하나님이야. 그런데 왜 너희가 선악 판단의 주체가 될려고 그래~ 똑같은 말이예요. 맹세는 우리가 내고 우리가 지켜내는게 아니라 하나님의 맹세가 던져지면 우리가 그 맹세 안에서 하나님의 맹세 안에서 맹세의 열매로 지어지는거예요. 우리는. 그러니까 맹세를 하는게 아니라 그 하나님의 맹세가 되는 거예요. 내가. 그래서, 성경은 맹세를 하라고 이야기 할 때 항상, ‘아싸’ 동사를 쓴다고 그랬죠? 그건 ‘되다’ 라는 뜻이지, ‘행하라’는 뜻이 아니란 말예요. 맹세가 되어라. 하나님이 맹세하신 그 내용, 그 성취가 되어라 지~ 맹세해! 서원해! 그런 말이 아니란 말예요.


10:20

20.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를 섬기며 그에게 친근히 하고 그 이름으로 맹세하라


자 개혁성경으로만 보면 하나님이 일구이언하는 것 같잖아요. 맹세하지마! 그래 놓고 여기서는 또 그 이름으로 맹세하래요. 조금 아까는 그 이름으로 맹세하지마! 그래 놓고.

여호와 하나님 만이 경외의 대상이다. 그러니까 너희는 그 분에게 ‘친근히’가, 짝 달라 붙으라는 뜻이예요. 연합. 짝 달라 붙어서 그 진리로 맹세의 성취물이 되어라 라는 그 뜻이예요.


맹세해~ 이런 말이 아니라. 여기에도 역시 이름이 나오죠. 그 이름이라는 히브리어가요 ‘쉠’이라는 단어인데, 그 단어를 파자해 보면 ‘쉰’과 ‘멤’ 이예요. 히브리어 자음 알파벳은 모두 다 의미와 뜻을 갖고 있습니다. 그 알파벳만 다 알면 성경 전체를 쉽게 알 수 있어요. 내용만 알면은. ‘쉰’ 이라는 문자가 ‘분석된’ 이란 뜻이고 ‘멤’ 이라는 문자가 ‘물’ ‘말씀’ 이란 뜻이예요. 그러니까 이름 ‘쉠’이라는 단어에 그 원의는 ‘분석된 말씀’, ‘온전한 것으로 이해되어진 말씀’ 이예요. 그게 이름이잖아요


그 존재의 내용을 분석하여 올바로 이해하여 내가 갖고 있는거. 그걸 ‘쉠’이라고 해요. 이름이라고 그래요. 그 단어가 ‘솸’ 이라는 단어와 자음이 같아요. 히브리어의 모음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요. 그냥 소리를 내기 위해 붙여 놓은 거예요. 그래서 히브리어는 모음을 다 빼고 그냥 이해를 해야 되요. 그 ‘쉠’ 과 ‘솸’ 은 같은 자음이예요. 그러니까 정확하게 그 두 단어는 같은 내용을 갖고 있는 건데 그 ‘솸’은 사전적 의미가 ‘거기’예요. 그래서 ‘솸’ 에 그 ‘물’ ‘마임’ ‘멤’ 이라는 단어를 붙여버리면 ‘샴마임’ 하늘이 되요. 거기에 물이 있다. 진리의 말씀이 있는 거기를 ‘하늘’ 이라고 그래요 성경은요. 거기에 물이 있다


물이 없으면 사막, 먼지예요. 그래서 ‘시몬’ 이라는 이름이 사막, 먼지라는 뜻이라고 그랬죠. 그 ‘시몬’을 ‘베드로’, ‘반석’은 뭐라고 그랬어요? ‘물을 내는 것’ 이라는 뜻이예요. 반석이라는 단어 자체가. ‘시몬’ 말이 없는 먼지, 사막을, 광야를 물을 주어 물을 내는 자로 만드는게 시몬, 베드로란 말입니다.


자 그러니까 그 이름이라는 단어는 ‘물이 있는 거기’, ‘진리가 있는 거기’ 그런데 구약에서는 항상 성전에서 물이 흘러 나오죠? ‘성전’을 이야기해요. 그런데 여러분이 진리를 담게 되면 여러분 안에서 진리, 물이 흘러 나오죠. 예수님도 그러잖아요. ‘성령 받아라’ 그러면 너네 ‘배’에서 그게 ‘성전’이란 뜻이거든요. 배에서 물이 흘러 나올거다 그래요. 여러분 이야기 하는 거예요. 그게 하늘이예요 하늘. 성전이요. 참 성전. 그래서 진리를 품은 성도를 요한계시록 19장에서 이름을 지었는데 뭐라고 그래요? ‘하나님의 말씀들’ 이라고 그러죠. 우리 주일 날 찾아 봤잖아요. 성도들을 ‘하나님의 말씀들’ 이래요.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들’ 이래요. ‘진리가 된 자들’ 이라는 뜻이죠. 그런데요. 그 ‘솸’ 이라는 히브리어는요 ‘쑴’ 이라는 단어에서 나왔거든요. 그 ‘쑴’ 이라는 단어는 설립하다, 세우다, 설치하다 라는 뜻이예요. 그거는 성전을 세울 때 쓰는 단어거든요. 그런데 거기에서 이 ‘솸’ 이라는 단어가 나온다니까요. ‘거기에 물이 있다’ 가 뭐라고 그랬어요? ‘물이 흘러 나오는 것’, ‘참 성전’ 여러분이 하나님의 처소, 성전이잖아요. 성경은 다 일관성 있게 그 얘기만 하고 있어요. 우리 얘기하는 거예요. 우리.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누구라고 그래요? 어린양의 신부, ‘나’ 천국은 여러분이라니까요 하나님 나라는 여러분 란 말이죠. 그래서 베드로가 여러분을 거룩한 나라 라고 하는 거예요. 그 성전을 이야기 하는데 그 ‘쑴’ 이라는 단어 세우다, 설치하다 이 단어에서 ‘거기에 물이 있다’ ‘거기’ ‘솸’ ‘이름’ 이 단어들이 거기서 나왔다니까요. 그러니까 다 이렇게 연결이 되 있단 말예요. 그 단어가 어디에서 제일 처음 쓰였냐면



2:7~8

7.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아담이예요)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이건 ‘생기’ ‘호흡’ ‘르와흐’ 진리를 받은 사람이예요 이게 하아담이예요 이것이 관사가 붙어요 거기에는. 진리를 받은 사람, 생령이 되니까 그걸 뭐라고 하냐면) 8.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고


하아담, 그 사람, 성전이 된 사람이죠? 호흡을 영을 넣어버렸잖아요 하나님이. 진리의 말, ‘물’ 넣어버렸단 말예요. 그러면, 하아담이 되어서 그 사람이 성전이 되는 거죠. 하나님의 진리, 하나님이 들어간 거란 말예요. 그게. 교회의 모습이라니까요. 그거를 에덴에다가 두었다고 하는데 그 단어가 ‘쑴’ 이예요. 설치했다, 세웠다 이렇게. 그러면 아담이 뭐라는 거예요. 성전이라고 지금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 ‘쑴’ 이라는 단어가 똑같이 쓰인 곳이



40:18

18. 모세가 성막을 세우되(이거예요 이 단어예요. 그런데 ‘아담을 에덴에다 두었다’ 할 때 이 단어를 쓴단 말예요) 그 받침들을 놓고 그 널판들을 세우고 그 띠를 띠우고 그 기둥들을 세우고


하아담 속에 들어 있는 우리요. 교회. 우리를 성전으로 세우는게 하나님의 목적이었다 라는걸 보여주는 거예요. 그 아담이라는 단어를 파자하잖아요. 여러분 그 아담이라는 단어가 ‘알레프’로 시작해요. 그게 하나님이라는 뜻이라고 했죠. ‘소‘ ‘하나님’ ‘사람’ 이렇게 세 가지 뜻이 있는데 ‘알렙’ 그리고 ‘달렙’ 구별된 이란 뜻이예요. 그리고 ‘멤’ ‘물’ 이라고 했죠. ‘말씀’ 그러면 ‘아담’, ‘사람’ 이라는 그 이름의 뜻이 뭐예요? ‘구별된 하나님의 말씀’ 구별된,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들이 아담이예요. 원래 인간의 존재 목적이예요. 그게. 창조의 목적이라니까요. 그래서 결국, 계시록에 가면 우리가 말씀들로 완성이 되는 거예요. 그 말씀은 뭐라 그랬어요. 하나님을 설명하는 진리니까 여러분이 하나님화 되는 거예요. 정말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 ‘하나님의 진짜 처소가 된 자’ 그게 하아담이예요.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께서 아담을 성전으로 세우셨다 라고 ‘쑴’ 이라는 단어를 써서 이렇게 기록을 하고 있는 거죠.

따라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지 말라’ 라는 말은 ‘스스로 성전으로 완성되어 질 수 있다’는 다른 말로, ‘스스로 말씀을 지켜 내가 성전이 될 수 있다’ 라는 그런 율법주의적 발상으로 말씀을 해석해서 엉뚱하게 전하고 행하지 말라 라는 말이예요. 그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 맹세 하지마 라는 뜻이예요. 그 이름이라는 단어 자체가 ‘하나님이 성전을 세우시다’ 이런 뜻이라니까요.



16:16~18

16. 사람들은 자기보다 더 큰 자를 가리켜 맹세하나니 맹세는 저희 모든 다투는 일에 최후 확정 이니라 17.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치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에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18.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치 못할 사실을 인하여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하여 가는 우리로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16. 사람들이 이 맹세, 저 맹세로 자기들의 맹세를 드러내려고 막 다투지만, 이게 율법주의자들의 삶이예요. 내 맹세가 최고야. 이거 반드시 이룰거야. 다투지만, 맹세라는건 최후 확정, 예수께서 최후로 확정하신 그것이 맹세라는 거예요.

17. 맹세는 하나님꺼란 말예요. 그걸 예수로 최후 확정 해버렸다 라는 뜻이예요. 창세전 언약을 하나님이 예수로 최후 확정해 버렸다 라는 거예요. 그 맹세를.

18. 맹세는 하나님꺼라는 거예요. 그리고 예수로 그 맹세가 최후 확정됐다 라는 거예요.



7:20~21

20. 또 예수께서 제사장 된 것은 맹세 없이 된 것이 아니니 (누구의 맹세. 하나님의 맹세, 언약) 21. 저희는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었으되 오직 예수는 자기에게 말씀하신 자로 말미암아 맹세로 되신 것이라 주께서 맹세하시고 뉘우치지 아니하시리니 네가 영원히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제사장 즉, 그 율법주의의 그 제사장, 그건 하나님의 맹세와 아무 상관없는 것이라는 거예요. 영원한 제사장은 그리스도 예수 밖에 없다 라는 것이죠. 그건, 하나님의 맹세에 의해 되어진거 라는 거예요.



7:28

28. 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거니와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케 되신 아들을 세우셨느니라


여기 단어 똑같습니다. 세우셨느니라 하나님의 맹세예요.

그렇다면, 맹세는 하나님의 것이라면 이런 대목은 어떻게 이해해야 되요.



신명기 23:21~23

21. 네 하나님 여호와께 서원하거든 갚기를 더디 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반드시 그것을 네게 요구하시리니 더디면 네게 죄라 22. 네가 서원치 아니하였으면 무죄하니라마는 23. 네 입에서 낸 것은 그대로 실행하기를 주의하라 무릇 자원한 예물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 네가 서원하여 입으로 언약한 대로 행할지니라


여기 보시면 분명히 우리 입에서 나와야 하는 서원이 있대는 거죠? 그 서원이 뭐겠어요? 자식이 없는 사람이 하나님 제게 자식을 주시면은 이 자식은 하나님께 꼭 받치겠습니다. 이게 서원인가요? 하나님 이번 일만 잘 되게 해주시면 제가 재산의 반을 드리겠습니다. 서원인가요? 하나님 제가 대학에만 붙으면 선교사로 5년간 봉사하겠습니다. 이거 서원인가요? 그냥 감정적으로 욱해서 그런 서원 많이 해봤죠? 그러구는 불안해가지고 말이야. 그 정신병 걸린 사람 많대요. 옛날에 그 여의도에서 뭐 무슨 대회 했었잖아요? 그 때 몇 만명이 나왔잖아요 서원했잖아요 헌신했잖아요 근데 살다보니까 바빠서 그것을 못한거예요. 그걸 평생 그것을 강박으로 갖고 있으면서 정신병자가 된 사람이 여럿 있대요. 그러면 그게 서원이라면 그리고 그걸 반드시 갚아야 하는거라면 하나님은 우리가 준다고 그러면 뭐든지 그냥 넙죽 넙죽 다 받아야 되나요? 그걸 하나님이 어디에 쓰냐구요 갖다가. 진리가 되지도 않는 쓰레기 같은 마귀 새끼를 내 아들 받친다고 했으니까 하나님께 드릴께요 라고 하나님께 주면 그걸 하나님이 어디에 가져다 쓰냐구요? 우리가 하나님께 받칠 수 있는 것 중에 하나님의 풍유에 도움 되는게 뭐가 있어요? 하나님 나라에 가져가서 쓸 수 있는게 뭐가 있냐구요? 근데 마치 선심 쓰듯이 하나님 이거 해주면 내가 이거 드릴께요 이걸 서원이라고 그런다니까요. 걱정 붙들어 매시고 편안하게 주무세요. 하나님은 그런 말 안 들으세요. 죄송하지만


21절 보시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 서원하거든’ 이라는 어구가 있어요. 그건 네 하나님 여호와가 주신 진리의 맹세를 네 입으로 그 진리를 말했거든 이런 뜻이예요. 그 일곱 번 말한걸 네 입으로 말했거든 이런 뜻이예요. 그러면 어떻게 하라고 그래요. 갚기를 더디 하지 말래요 여기서 갚다 라고 번역이 된 단어가 ‘샬롬’ 이예요. 그러니까 뭐냐면 네가 그 진리를 들어서 이해해서 네 입으로 그걸 말했다면 그 진리가 되어라 라는 뜻이지 얼른 갚어라 가 아니란 말예요. 이게. ‘샬롬’ 이라는 단어가 평강이라는 뜻도 있지만, 완성, 성전을 완성하다 이런 뜻도 있잖아요. 그래서 솔로몬이 전 짓기를 마쳤다 이걸 ‘샬롬’ ‘샤람’ 이라고 그래요. 네가 그 진리를 입으로 말했거든 그 진리가 되어라 그걸 방해하거나 더디게 하면 그게 죄란다. 이런 뜻이예요. 네가 말한 서원은 다 지켜 이런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반드시 찾으신다고 그러죠. 두 번이나 반복해서 써요 그 단어를. 무슨 말이냐면 네가 입으로 진리 진리 하는데 네 안에서 하나님이 그 진리를 네가 입으로 낸 진리를 반드시 찾으신다 그러니까 그 진리로 진리가 되어라 예요. 그걸 갚아라 라고 번역을 해 놓거예요. ‘다라쉬’ ‘다라쉬’ 반드시 찾으신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 안에서 반드시 찾으신다는 그 ‘샬롬’이 뭔지도 한번 규명을 해보잔 말예요.



14:26~27

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 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26. , 말씀 진리를 풀어서 설명하여 이해시켜 준대는 거죠 성령이, 성령이 곧 말이니까 진리니까. 27. 여기서 세상이라고 번역된 이 단어가 ‘호코스모스’ 예요. ‘호코스모스’는 단순히 이런 세상 인간들 사는 이 세상을 지칭하는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이지 않는 그 묵시를 설명해 주기 위해 차서대로 준 것. 그 안에는 성전, 성경, 인간 이 세상 다 들어가 있는거죠. 그 ‘호코스모스’ 그 껍데기로써의 그 ‘호코스모스’ 가 주는 평강이 아니라는거예요. 그걸 법으로 율법으로 껍데기로만 읽어서 그걸로 평강에 도달하려고 그러면 안된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실려고 하는 평강은 진리의 말씀 그 껍데기 안에 들어 있는 그 내용으로 주시는 이 ‘호코스모스’ 와는 다른 ‘평강’이다 그러는거죠. 그게 세상이 줄 수 없는 ‘평강’ 이라고 하는거예요. 세상이 줄 수 없는 ‘편안함’ 이런게 아니란 말예요. 뭘 편안해요 편안하기는. 솔직히 그렇게 따지면 세상이 주는게 훨씬 편안하지. 돈 있어 봐요 편안하게 살아요. 그런 종류의 편안함 평강 아니란 말예요. 이 ‘호코스모스’ 적이지 않은 그 ‘샬롬’ 그거 하나님이 ‘다라쉬’ ‘다라쉬’ 반드시 찾으실꺼예요. 네 안에서. 그 뜻이예요. 그리고는 22절에서 ‘네가 서원치 아니하였으면 무죄하니라마는’ 이라고 선언을 해버리죠. 서원을 안했으면 넌 죄가 없는건데 서원을 해서 너는 죄가 있는 자가 됐다. 이렇게 이해를 한다 말이죠. 이건 그 말이 아니라 너는 약속을 하지 못한다. 너는 애초에 그런 능력이 없다. 그래서 너희들이 서원을 했다고 하더라도 네 말로. 그건 너희들에게 죄가 되지 않는다. 라는 뜻이예요. 그러니까 자유하세요. 그때 그냥 내가 실수했다고 그러세요. 선동당해 갔고, 선수들이 있잖아요. 선동 잘하는 선수들.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약속을 내어 놓지 말라는 거예요. 하나님의 약속을 말하라 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약속을. 그걸 말하라 그걸 서원이라고 그래요. 그리고 그 약속은 우리 안에 ‘샬롬’ 으로 완성이 될 것이며, 성전으로 완성이 될 것이며 그 ‘샬롬’ 을 하나님이 반드시 찾으신다는 거예요. 그리고는 23절로 이어지죠. 이거 다시보죠.



23. 네 입에서 낸 것은 그대로 실행하기를 주의하라 무릇 자원한 예물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 네가 서원하여 입으로 언약한 대로 행할지니라


이 말은 네가 입으로 낸 약속 하나님의 약속 일곱 번 말하신 그 약속 네가 입으로 낸 그 약속 그 약속의 말씀대로 되어라 예요. ‘아싸’ 동사란 말예요. ‘실행하기를 주의하라’ 라고 해 놨으니까 꼭 실행해 이런 것 처럼 보이죠? ‘아싸’ 동사예요. ‘되다’ 라는 거예요. 되어라. 그 ‘자원한 예물’ 이라는 그런 단어는 아예 원문에 나오지도 않아요. 추측해서 써 놓은 거지 이거는. 이건. ‘자발적으로 한 말’ 이런 뜻인데 그걸 그렇게 번역을 해 놓은 거죠. 네가 자발적으로 하게 된 그 진리의 말 그건 그 언약대로 되어야 하는 말이다. 라는 말이예요. 굳이 직역을 하면 ‘네가 가지고 있는 풍성한 선물은 너의 입안의 그 말이다’ 예요. 자원한 예물, 네가 꼭 드리겠다고 한 예물은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바쳐야 돼~ 이런 말이 아니란 말예요. 하 이런 거로 협박해서 사기를 쳐야 되는 건데^^ 그러니까 이 구절들도 우리에게 서원을 해라 그리고 서원한 것은 꼭 지켜라 라고 요구하는 내용이 아니라 하나님의 맹세, 일곱 번 말 하신 그 맹세를 잘 배워서 입으로 말하고, 그 말처럼 되어라 라는 뜻이예요. 그런데, 이런 구절들을 사용해서 사람들을 이렇게 착취해 내는 사람들이 많죠. 그러니까 교회 가는게 겁이 나는 사람이 있다고. 돈 내라고 그러지. 심지어 교회 건물 짓는데 지하를 포크레인으로 파야 되는데 교인들한테 삽을... 돈 아낀다고...교대로 24시간 그 파라고 해서 몇 백 평 되는걸 팠대요 진짜로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남편이 그 삽을 찾는 모습을 보며... 이렇게 하면서도 교회를 계속 나가야 합니까? 이렇게 상담하신 분 있더라고요. 그거 안파도 되요. 그렇게 헛소리를 하는게 이런 말씀을 갖고 이렇게 사람들을 협박하고 회유하고 선동하는데 쓰는 이걸 거짓말 이라고 해요. 그걸 하나님의 말을 도둑질 했다고 그래요. 하나님이 주지도 않았는데 지 맘대로 써 먹은 거니까 그걸 도둑질 이라고 해요. 다시 한번



19:11~12

11. 너희는 도적질하지 말며 속이지 말며 서로 거짓말 하지 말며 12. 너희는 내 이름으로 거짓 맹세함으로 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니라


속이다, 거짓말 하다, 도적질 하다 ‘가나부’ 인데 이걸 같이 써버리죠? 도적질이라는건 단순히 남의 것을 훔쳐가는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 ‘진리’를 도적질 하는 그것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여기에서는. 그래서 전부 말과 연결이 되어 있잖아요. 그렇게 도적질 하고 강도질 하는 자 이름을 가진게 야곱이었잖아요. 발목을 잡는자, 실족 시키는 자

그래서, 주님이 이렇게 말을 이으시는 거죠.



5:34~36

3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35. 땅으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36. 네 머리로도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여기 보면 ‘호우라노스’ ‘호게’ ‘히에로솔루마’ ‘호케팔레’ 이렇게 나와요. 하늘, , 예루살렘, 머리 그것 안에서 여기 또 다른 단어예요. ‘옴누하지마’ 이게 선언하지마. 설교자들이 특히 잘 들어야 되는데 선언하지마 네 맘대로 하늘 안에서, 땅 안에서, 머리 안에서, 예루살렘 안에서 그거의 껍데기로 선언하지마 이런 뜻이예요. 함부로 가르치지마. 선언하지마. 말하지마. 그런데 그게 다 뭐였어요. ‘호우라노스’ ‘호게’ ‘예루살렘’ 다 뭐예요? 성전을 가리키는 거잖아요. 이게 눈에 보이는 나타나는 성전, 그것 안에서 그것으로 함부로 선언하지마. 이러는 거예요. ? 거기에는 진짜 내용이 있는거야. 그게 그 뒤에 붙은 말들이예요. .

34절부터 보세요. ‘하늘로도 말라’ ‘호우라노스’ 단순예요. ‘하늘’ ‘우라노스’ 이 ‘우라노스’ 는 ‘호로스’에서 온 단어라고 그랬죠. , 그 산, 거기에서 ‘호르니스’ 가 되면 ‘새’ 가 되죠. 성전은 가죽으로 덮고 거기에다 새의 날개를 그렸어요. 그래서 ‘공중에 나는 새를 봐라’ 그러면 그 새를 이야기 하는 거예요. 성전 그 성전을 봐~들에 피는 백합화를 봐~성소 안의 등대 다, 성전 이야기 하는 거죠. , 성전 그런데 그 성전을 나타난 모습 그대로 이해하고 전해버리면 절대로 안돼! ? 그 하늘은 하나님의 보좌야 그래요. 그러면 하나님의 보좌가 뭐예요?



22:1~2

1. 또 저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 부터나서 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보좌는 ‘열두 가지 실과’ 아들이죠. 그거요. 열둘은 항상 아들이라고 그랬어요. 루벤부터 시작해서 베냐민으로 끝나는거. 루벤, 베냐민 그죠? 봐라 이게 아들이야~베냐민, 이게 완성된 아들이야~열 둘이죠. 그러니까 ‘열두 가지 실과’ 를 맺히게 하는 생명수, 물이 뭐겠어요? 그래서 에덴에서도 네 물이 흐르는 거예요. 강이. 말씀이예요. 진리, 생명의 말씀. 그 말씀이 흘러 나오는 곳을 ‘보좌’ 라고 그러잖아요. 그러니까 그 하늘로도 선언하지마. 함부로. ? 그건 그 성전은 하나님의 말씀이 담겨져 있는 것이지. 그 보좌지. 그 껍데기로써의 ‘호코스모슨’ 는 사실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거야. 그게 진짜 내용이 아니야. 그러는 거예요. 그리고는 땅으로도 맹세하지 말라 그래요. ? 땅은 하나님의 발등상임이니까 그래요. ‘발등상’ 이 뭐예요? 발 놓는 곳, 발을 두는 곳. 성경을 보면요. 보좌, 발등상, 예루살렘 이건 같은걸 이야기해요 다. 성전이예요.



43:2,7

2.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동편에서부터 오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많은 물소리 같고 땅은 그 영광으로 인하여 빛나니


하나님의 음성이 많은 물소리 같다라는건 하나님의 음성이 뭐 콸콸콸 이런게 아니라 진리의 소리란 뜻이예요. 그래서 계시록에서도 많은 물 소리가 나오는거예요. 진리, 물 많은 이라는건 아주 양 많다는게 아니라 ‘완전한 물’ 그 소리


7.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는 내 보좌의 처소, 내 발을 두는 처소(이게 발등상이죠), 내가 이스라엘 족속 가운데 영원히 거할 곳이라(내 처소라는거죠) 이스라엘 족속 곧 그들과 그 왕들이 음란히 행하며 그 죽은 왕들의 시체로 다시는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보세요 보좌, 발등상, 이스라엘 족속 이걸 다 성전이라고 그래요)



3:17

17 그 때에 예루살렘이 여호와의 보좌라 일컬음이 되며(다 같은거죠. 지금 오늘 본문에 나오는 내용들이잖아요. 이게. 하늘로, 땅으로, 예루살롐으로도 맹세하지마. ? 그게 보좌이고, 발등상이고 이렇게 나오는 거잖아요) 열방이 그리로 모이리니 곧 여호와의 이름으로 인하여 예루살렘에 모이고 다시는 그들의 약한 마음의 강퍅한 대로 행치 아니 할 것이며



66:1~2

1.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을꼬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 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어서 다 이루었느니라


에게 샤람, 샬롬이예요. 내가 짓는거야 집은. 처소는 내가 짓는거야. 그런데, 너희들이 내가 거하는 처소를 율법으로 제사로 열심히 희생제사 지내면서 짓겠다고 하는거구나~그러잖아요. 율법주의가 내가 거룩한 하나님의 성전으로 열심히 지어져 가야지~ 이게 율법주의잖아요. 그거 아니다 라고 하는거예요. 그건 하나님이 다 완료하시는거죠. 그런데 그 성전을 있는 그대로 보고 그냥 표피적으로 이해하게 되면 그 성전은 곧 섬김의 대상이 되고 그래서 이디오피아 내시가 삼천킬로 밖에서 제물 끌고 온거예요. 성전에. 그래서 빌립이 내년부터는 오지마~그리고 보낸거예요. 이사야서를 설명해주고, 신약으로. 내년부터는 오지마~안 와도 돼! 섬김의 대상이 돼버려요. 껍데기로 보면. 그리고 그 성전은 인간들이 해야 할 일로 가득찬 수고하고 무거운 짐의 집이 되어 버리는 거란 말예요. 그건 하나님의 말씀을 도둑질하여 잘못 전하는 거라 그랬죠. 그래서 주님은 율법주의 성전을 부수시면서 강도의 굴혈, 도적의 굴혈 이라고 그런 거예요. 내말을 왜 너희들 맘대로 바꿔가지고 가서 엉뚱한데 거짓을 설명하는데 쓰니? 거짓말하지마. 거짓이라는거 자체가 참을 설명하는 모형을 거짓이라고 그러잖아요. 그러죠? 짝퉁이 뭐예요. 진짜 루이비통을 루이비뚱으로 비슷하게 만드는 것을 거짓이라고 그러잖아요. 그런데 이건 이거와 비슷하지 않으면 안된대니까요. 따른 제품이예요. 그러니까 가짜, 거짓 이런게 나쁜게 아니라구요. 그것으로 진짜를 알아 먹으면 그것 자체가 하늘이라고 그랬잖아요. 그런데 그걸 그냥 있는 그대로 보이는 대로 전해 버리는 것을 거짓말 이라고 그래요. 그걸 거짓 선지자 라고 한다니까요. 성경에 나오는 수 많은 하라, 하지말라의 명령들을 그대로 사람들에게 전해 버리면서 그 진리, 진위를 설명해 주지 않고 사람들 협박하고 그 사람들에게서 열심을 끌어내려고 하는 그것, 이걸 거짓말이라고 해요. 도둑질이예요. 그것이. 그것을 강도의 굴혈이라고 하는 거예요. 율법주의의 성전을.

주님께서 그 성전을 ‘호게’ 그 땅을 발등상, 당신의 발등상이라고 이야기를 하신건 주님은 교회의 머리죠. 진리예요. 머리예요. 머리. 여기에서 다 나오는거예요. 그런데 이 머리를 진리를 주님을 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해서는 뭐가 가야 되죠? , 그래서 아름답도다 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그러는거예요. 그러니까 진리가 된 자들을 성경이 발 이라고 써요. 말씀들을 성경이 발이라고 부른다니까요. 그래서 그걸 실어 나르는 자들, 진리를 실어 나르는 자들, 그 안에서 진리인 생수를 흘러 넘치게 하는 자들을 성경이 발이라고 그러고 발을 아름답다 라고 그래요.



10:14~15

14.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15.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이여 함과 같으니라 (발이여)


그렇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진리를 담은 그 발들을 놓는게 말씀으로 가득차 있는게 성전이지. 그거 갖고 엉뚱하게, 이 땅이 뭐예요. 눈에 보이게, 이 자연이라 것 자체가, 만물이라는 것 자체가, 땅이라는 것 자체가 묵시를 눈에 보이는 것으로 이렇게 설명해 놓은 거잖아요. 해서 노자가 경치를 이렇게 보고 있는데 제자가 스승이 경치에 취해 있는 줄 알고 ‘스승님 경치가 참 아름답죠’ 그러니까 노자가 뭐라고 그래요. 네가 아름답다고 이야기 하는 그 순간 이 자연이 훼손됐다라고 그래요. ? 이 자연은 그 내용을 담고 있는게 아니거든요. 노자는 그걸 보고 있었는데, 봤는지 모르겠어요. 하여튼 그런걸 가지고도 우리는 진리를 알 수 있다는 말이예요. 그게 땅이이예요. 그런데 그 땅은 말씀들을 놓은 거지. 발등상, 발을 두는 곳이지 그것 자체로서 무슨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는게 아니라는 거예요. 내 발등상이야~ 내 발을 두는 곳이야~그러니까 그 아름다운 발들이 가서 주님의 생수 생명의 물을 전하죠? 그때에 그 발이 가는 곳에서 진리를 갖지 않은 이 먼지들이 그 물을 받으면 진리가 되고 그리스도인이 되는데, 안 받으면, 먼지로 존재하는 거예요. 그래서 주님이 제자들을 보내면서 너희들의 말을 받지 않거든 먼지로 떨어 버려라! 먼지 털고 와 그런게 아니라~너희 사마리아 땅 갔다 와서 꼭 먼지 털고와~ 그게 아니라, 먼지로 물을 안 받으면 먼지니까. ‘아파르’ 니까. 먼지로 털어버려~그래서 예전에는 어떻게 해서든 설득시켜야 되는데~이것 때문에 제가 스트레스 많이 받았거든요. 요즘은 그냥 툭툭 털을려고 그래요. 안 받으면 그 까짓 거 뭐~ 대단한 사명감 이런 것도 없어졌어요. ? 워낙 없으니까. 못 알아 듣는게 당연한 거거든요. 먼지를 툭툭 터는 거지~ 그리고 사실 그렇게 내 안에 있는걸, 내 입으로 내 말로 이야기를 하면 그 자체가 벌써 로고스가 되기 때문에, 그렇게 막 하고 싶지도 않아요. 나는 인터넷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뭐 그렇게 그냥 글들 쓰고 뭐 싸움박질 하고 돌아다니고, 욕지거리 하고 이런 사람들 보면 얘들이 진짜 뭐 아는 건가? 참 그럴때 많아요. 뭘 안다면 진짜 저런 짓을 할까? 그냥 단순히 자기가 갖고 있는 지식들을 자랑하고 싶어하는 거지. 제대로 알면 알수록 침묵이예요. 침묵. 조용히 숨는다니까요. 뭐 그렇게 인터넷상에 돌아다니면서 뭐~ 그런거 하지 마세요. 조용히 진리로 존재하면 그 안에서 하나님이 일 하신다니까요. 그리고 예루살렘으로도 선언하지말라 그래요. ? 예루살렘은 뭐라 그랬어요? ‘야라’ 와 ‘샬롬’ ‘야라’가 가리키다죠. 지월록 있잖아요 달을 가리키는 손, 그때 달을 보라 그랬더니 이걸 보고 있네 인간들이~성경 안에 진리를 담아서 진리 보라 그랬더니 글자만 보고 있어 문자만, 예수 안에 진리를 보라 그랬더니 예수만 붙들고 있어 주여! 어찌 하오리까! 예루살렘은 ‘샬롬’이 무엇인지 가리키는 거지. 그것 자체가 뭐냐 그게. 그런거예요. 그것 자체가 뭐야? 그건 큰 임금의 성이다. 큰 임금의 성. 그 말은, ‘만왕의 왕’ 이라는 말있죠 여러분. 많은 세상의 왕들 중에 그중에 제일 위대한 왕이라는 말이 아니라, 성경은 하나님의 진리를 받은 자들을 ‘발’ 이라고도 하지만, 그 단어를 ‘바실유’ 그래서, 왕 이라는 단어로도 써요. 발을 왕이라고, 그래서 여러분을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하는 거예요. 베드로가. 그러니까 그 왕들 중에 하나, 그 왕들 중에 첫 번 왕 이게 ‘만왕의 왕’ 이예요. 그럼 ‘만주의 주’ 는 뭐겠어요? 주가 뭐예요? 주는 곧 그리스도인이라고 성경이 해석해 줬잖아요. 그러면 만주, 많은 그리스도가 있다는 거죠? 그래서 크리스도TM가 복수로 쓰인 적이 많다고 그랬잖아요. 이 주가 된 자들의 왕 ‘주’ 그러면 ‘만군의 주’ 는 뭐겠어요? 하나님의 말씀이 되어 그것으로 누군가에게 진리를 전하면, 그 안에 ‘비질리’ 와 전투가 일어나잖아요. 그래서 진리가 된 자들을 군대라고 한다고 그랬어요. 그래서 민수기에서는 군인들의 숫자만 세는거예요. 그리고 그들이 가나안에 들어가는 거라구요. 만군의, 이 군대에 왕, ‘주’



1:4~5

4.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와 그 보좌 앞에 일곱 영과 5.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여기서 땅의 임금들이 바로 성도, 여러분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렇지 않고 이 땅의 임금들을 뭐 진짜 임금, 대통령 이런 것으로 해석을 하면 안되는거죠. 일곱 교회, 언약의 백성들에게 말씀이 전해져요. 말이 전해져요. ‘일곱 교회에게 편지하노니’ 그러잖아요.

‘보좌’ ‘일곱 영’ ‘증인’ 다 뭐예요? 말과 관계 된 거죠? 보좌에서는 말, 물이 흐르고, 일곱 영은 말이라고 했으니까. ‘완전한 말’ ‘일곱 번 말하다’ 의 그 말, ‘일곱 영’. ‘증인’ 말로 본 것을 설명하는 거예요. 그 분을 ‘땅의 임금들의 머리’라고 그래요. ‘만왕의 왕’ 그 큰 임금에게서 평강이 완료되어서 교회에게 전해지는 거죠. 그러니까 예루살렘도 역시 하나님 홀로 완성하시는 그 ‘샬롬’ ‘평강’ 그 하늘 성전의 모형인거예요. 그러니까 껍데기만 보고 예루살렘으로 맹세하지마. 선언하지마. 율법 가르치지마! 그러는 거예요. 예루살렘이 율법주의의 본산이잖아요. 메카잖아요. 마지막으로 ‘머리로도 말라’ 그래요. 그러면서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다’ 라고 이유를 대죠. 무슨 머리를 두고 맹세하는 사람 있어요? 그렇게 이해하는 사람들도 있던데. 그 말이 아니죠.

구약시대에는 문둥병이 걸리면 털이 희게 된다 라고 그렇게 이제 털이 희게 되면 얘는 문둥병 걸리 자고 ‘부정한 자’ 다 라고 제사장이 선언해 버려요. ‘부정한 자 나가!’ 밖으로 쫓아내는 거예요. 털이 다시 검게 되면 ‘나았네’ 라고 하고, 그러니까 자기들이 갖고 있는 그런 규정 그리고 자기들의 눈, 자기들의 선악 구조로 정하고, 부정한 것을 지들 맘대로 판단하고 정죄하고 심판해 버리는 거죠. 그래서 성경이 뭐라고 그러냐면 그 문둥병은 하나님이 주시는 거다 그래요. 그러니까 머리털이 희게 되는 것도 하나님이 희게 하는 거고, 문둥병 걸리게 하는 것도 하나님이 하게 하는 거고, 낫게 하는 것도 하나님이 하게 하는 거예요. ? 뭔가 이유가 있어서. 문둥병 걸렸다고 다 죄인이고 다 지옥가요? 아니잖아요? 그런데 뭔가 설명하기 위해 하나님이 그랬다면 너희들이 그것만, 껍데기로만 보고 너희들 머리로 얘는 정해 부정해 이렇게 율법주의적으로 판단하거나 심판하지 말아라 라는 뜻이예요. ? 머리는 너네 주님이니까. 그리스도니까. 왜 니가 머리 역할 하려고 그래. 그러니까 그 머리로도 선언하지마. 맹세하지마. 함부로 죄다 아니다 판단하지마. 잘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 죄라는게 선악과 라는게 그게 뭔지를 가르쳐서 생명을 설명할려고 하는 거였다면 그게 뭐 애시당초의 죄입니까 그게? 여러분이 거기까지 당도하면 죄와 선이 하나가 되는 거예요. 그러면 함부로 남 판단 안 할 수 있다니까요. 자기들의 율법과 도덕 가지고, 윤리와 도덕 가지고. 하나님이 정하다 그러면 정한 거고, 하나님이 부정하다 그러면 부정한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나이’ ‘나이’ ‘우’ ‘우’ 하면 되는 거예요. 네 진리네요. 네 아니네요. 그러면서 마지막에 뭐라고 그러는지 보세요.



5:37

37. 오직 너희 말은 (너희들이 할 말은 맹세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나이’ ‘나이’ ‘우’ ‘우’ 해 진리는 진리다 라고 하고 아닌건 아니다 라고만 이야기 하면 돼)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


거기에서 그 범위 한계를 벗어나는 건 다 악에서 오는 거야 라고 끝을 맺어 버리죠. 지난 주에 공부했잖아요. 한계를 벗어 나는게 뭐라고 그랬어요. 맹세해. 거짓 맹세해. 그걸 그대로 여기서 설명하는 거예요. 그 한계 넘어 가면, 범위에서 벗어나면 전부 악이야~그러는 거예요. 진리는 진리라고 해. 아닌건 아니라고 해. 라는거죠. 주님이 우리의 머리세요. 그 분이 옳다 라고 하면 옳은 거예요. 그 분이 그르다 하시면 그르다라고 이야기 하면 되요. 우리는 그걸 판단하고 정죄하고 심판할 자격과 능력이 없어요. 그런데 율법주의는 자신이 머리의 역할을 하고 싶어 해요. 선악 판단의 주체가 되어서 선악을 분별하고 자신이 선이라고 생각하는 삶을 추구하고 싶어 해요. 이건 아마 모든 아담들의 인지상정일거예요. 그런데 그게 뭐예요? 선악구조 속에서의 또 다른 죄예요. 내가 선이라고 모든 보편 인간이 선이라고 정의한 그거, 그게 옳은 거니까 ‘그래 인간들이 옳다고 판단했으면 그거 추구하자’ 가 선악과 먹은 거예요. 생명은 선악과의 울타리를 벗어 나는게 생명이라니까요. 주님은 그렇게 해서 열심을 부려 만들어 낸 것들 가져와서 하나님 잘했죠? 라고 갖다 받치면 내가 널 도무지 알지 못한다 라고 말씀하시는 분이예요. 도무지 알지 못한다 가 뭐라고 그랬어요? 어 나 못 봤는데, 그가 죽을때까지 열심히 한거 하나님이 하나도 안 봤다는 얘기예요. 그렇게 억울한 일이 어디에 있어~집 팔아서 헌금하고 일년에 육개월을 선교지에 나가 있었는데 하나님이 그걸 안 봤다니~ 그런데 하나님이 어 나 못 봤는데, 그러신다니까요. ‘에이도’ 라는 단어를 써서 ‘어 안 보였는데 내 눈에는’ 그래요 하나님이.



5:12

12. 내 형제들아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나 땅으로나 아무 다른 것으로도 맹세하지 말고 오직 너희의 그렇다 하는 것은 그렇다 하고 아니라 하는 것은 아니라 하여 죄 정함을 면하라


‘죄 정함을 면하라’ 이렇게 해석해 놨지만 ‘휘포크라시스’ 그게 외식이야~ 그러는 거예요. 그렇게 안하면 그게 외식이야~그러는 거예요. 그게 외식이야~

그러니까 야고보가 산상수훈의 예수님 말씀을 정확하게 이해한거죠. 그걸 그대로 갖다가 쓴거예요. 함부로 선언하지마. 함부로 설교하지마. 여러분 진리를 알게 되면요 눈에 보이는 것들이 전처럼 보이지 않아요. 그냥 진리를 설명하기 위해 동원된 세상, ‘호코스모스’ 가 진리로 옷을 입게 되었을 때 그 껍데기는 사라지고 진리만 남아요. 심지어 예수도 사라지고 그 예수가 품었던 그리스도라는 진리만 남게 되요. 십자가 그거 그렇게 추억하지 않아도 되요. 집집마다 그거 그렇게 안 걸아 놔도 된대니까요. 그거 볼 때 마다 나치 하이 히틀러가 생각나가지고 그거 꺾어 놓은게 그거거든요. 그런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모형으로 또 설명용 교본으로 들어서 썼던 것들, 이런 것들이 그냥 아무런 관심 꺼리가 안돼요. 그래서 요즘 사람들이 뭐 인터넷 세상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민족적 이스라엘의 회복이니 베르칲이니 아마겟돈 전쟁이니 이따위 얘기할 때 근데 그게 뭐~ 나는 그 안에서 진리를 알고 그랬더니 그 껍데기들이 그 하나님이 쓴 도구들이 그냥 진리로 이해되어 지는데 이스라엘이 회복되면 어떻고 회복 안 되면 어떠냐고요. 그 베리칲을 받아야 꼭 마귀가 여러분을 조종해요? 지금 마귀가~ 내가 마귀라며요. 사도 바울이 내가 죄인 중에 괴수다 라고 죽기전에 얘기 했단 말예요. 죄인 중에 괴수가 뭐예요. 마귀. 진리가 없으면 나는 그냥 먼지야 하나님이 언제든지 발에서 떨어 버려도 할 말 없는 먼지 그게 죄인중의 괴수지 뭐예요. 그런데 하나님이 나의 안에 진리를 넣어서 이렇게 아들 삼아 주셔서 난 그냥 찬송할 뿐이야. 뭐 이스라엘이 회복되던 말던 알아서 해~ 거기도 진리가 되는 놈이 있으면 있는 거고 없으면 마는 거고! 베리칲 안심어도 하나님이 진리로 날 붙들지 않으면 나는 그냥 마귀 새끼라니까요. 뭘 그걸 일부러 넣어서 마귀가 조종하겠냐고 그건 뭐냐구요 그 마귀는~그러니까 내 안에 가진게 없으니까 자꾸 밖에서 뭘 찾는 거예요. 가끔 그런 것을 보면 아이 참 되게 심심한가 보다 이 사람들~ 사람들은 몰라요 그냥 껍데기만 봐요. 그래서 이걸 꿈이라고 그러죠. ? 언제가 끝날 거니까 꿈이라고 그래요. 영원으로 존재할 거면 꿈이라고 안그러죠. 꿈이예요. . 그런데 이 꿈도 뭔지를 몰라~그런데요. 여러분 느브갓네살이 자기가 꿈을 꾸고 자기가 무슨 꿈을 꿨는지도 몰라요. 그래놓고는 다니엘을 불러와 갖고 너 내가 무슨 꿈을 꾸었는지도 이야기 하고 그게 무슨 의미인지도 얘기를 해요. 그것을 어떻게 아냐고~그런데 그 꿈의 내용을 아는 이들이 있더라니까요. 이 꿈같은 세상이 뭔지도 알고 그 내용이 뭔지도 알아 그 바보같은 인간, 세상 왕에게 말해주는 이가 있는~그들이 말씀들이예요. 그들이 진리들이라니까요. 그들에게 뭐 이 현상계의 것들이 육을 입고 있는 동안에는 ????가 되겠지만, 뭐 죽고 사는 문제에 것들이겠습니까? 다 하나님이 진리를 설명하기 위해 두고 쓰시는 것들인데~ 뭐 그렇게 대단하게 악한 악당이 있겠으며, 뭐 그렇게 대단하게 선한 인간이 있겠습니까? 그게 그거지 다~그 안에 담겨 있는, 말씀 안에 담겨 있는 그리고 이 ‘호코스모스’ 세상 속에 담겨 있는 그리스도를 발견하십시오. 헛맹세 하지 마세요. 거짓 증거 하지 마세요. 그리고 좀 조용해지세요. 게시판에 쓸데 없는거 올리지 말고~ 맛 집 순례 이런거나 올려요. 그 속에서 진리를 발견하는거야~그게 재밌지~뭘 알지도 못하면서~ 난 그렇게 써 놓으면 설교를 할려고 그러다가 그 사람 상처 받을 까봐 그걸 빼놓고 해야 되~잘 못 써 놓으면~다음주에 이거 설명해줘야지 그러는데 어떤 분이 굉장히 열심히 정리를 잘 해서 올려 놓으면 이거 내가 얘기하면 상처 받을거 아냐 표적 설교한다고~ 맛 집 순례 그런거 하세요 아니면 조용히 침묵하던가~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은혜를 감사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예수를 믿는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진리를 붙들고 있는다는 것 그것이 너무나 왜곡되어지고 너무나 가치 없는 것으로 이렇게 전락해버린 이런 시대에 우리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 하나님이 눈과 귀를 열지 않으면 그것이 절대 진리로 보여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는데 하나님, 내 안에 가진 것을 전하다 보니 듣는 이들에게도 그런 눈과 귀가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 생깁니다. 하나님 그렇게 하나님과 그들 사이를 중매하는 그런 역할들을 우리 서머나 교회 성도들이 잘 할 수 있게 힘 주시고, 용기 주시고 또 힘들 때 위로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