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목사/산상수훈

산상수훈21 간음하는 자들아 양고기 카니발을 멈춰라 마 5:32

은바리라이프 2013. 10. 17. 09:10

마태복음 5:32
3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저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린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자 여러분이 잘 아시는 카니발이라는 단어는 라틴어 까르네레바레에서 나온 단어입니다. 까르네레바레, 그 단어를 직역하면 고기여 안녕~ 이란 뜻이에요. 카니발이라는 단어 자체가. 고기여 안녕~ 그러니까 고기를 안 먹는 게 카니발이에요. 사실은요. 고기를 먹지 않는 게 잔치다. 이런 말이죠. 그런데 사람들은 그 카니발 기간 동안에 술과 고기를 실컷 먹죠? 전 세계 리오 카니발을 비롯해서 수많은 카니발이 있는데 그 어떤 카니발에서도 술과 고기가 빠지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엉터리 잔치를 벌이고 있는 거예요. 진짜 카니발의 의미는 고기 먹는 것을 멈추고 그거 안 먹어도 만족한 상태의 자신을 축하하는 걸 까르네레바레 라고 그래요. 그까짓 거 안 먹어도 행복한 나, 이걸 축하하는 게 진짜 잔치란 말이죠.

 

그렇게 고기를 먹지 않는 카니발이 구약 성경에도 나오는데 그 절기가 무교절이에요. 

히브리어로 무교절을 읽으면 하그하마초트 에요. 그 하그하마초트는 하그라는 단어와 하마초트 란는 단어의 합성명사인데 하그는 카니발, 축제일, 뭐 경축일 그런 뜻이고 종교적인 목적을 가지고 하나님께 경배하는 종교적 기념일, 뭐 이런 걸 가리키는 거죠. 하그. 하마초트는 정관사 그를 뜻하는 하와 얻다. 흡수하다. 뻗다. 라는 동사에서 파생한 마초트와 결합이 되어서 누룩 없는 그 떡, 그런 의미에요. 


누룩 없는 그 떡, 그것만 가지고 잔치, 카니발을 벌이는 게 하그하마초트에요. 따라서 무교절을 뜻하는 하그하마초트는 누룩 없는 떡의 축제일, 그때는 절대 고기를 먹어서는 안 돼요. 제단에 바쳤진 고기 먹는 일은 유월절에서 끝나야 한다. 라는 그런 의미에서 유월절이 끝나자마자 이어지는 무교절에는 절대 고기를 먹어서는 안 돼요. 


사흘 간 땅에 묻어 두었던 누룩 없는 떡만 먹어야 되요. 왜 사흘일까요? 예수그리스도 누룩 없는, 죄 없는, 떡으로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거예요. 그걸 먹는 게 잔치에요. 하그하마초트. 그걸 칠(7)일 간 먹어야 되요. 칠(7)은 완전수죠? 안식의 수, 그러니까 하나님의 수 삼(3)과 인간의 수, 세상의 수가 사방, 계시록에 보면 사(4), 많이 나오잖아요. 그게 이게 이 땅의 숫자란 말이에요. 하늘의 수 삼(3)과 땅의 수 사(4)가 합쳐지면 칠(7)이죠. 그게 연합되는 게 안식이에요. 


그래서 이제 히브리 사람들은 칠(7) 그러면 안식, 그래서 이 역사 전체 우리가 성도가 살아가는 역사 전체를 칠(7)이라고도 하고 그걸 칠(7), 칠(7), 49해서 49 다음 해가 50 희년이잖아요. 그래서 그 안식 이전에 그 숫자를 49라고 해서 사람들이 49제 지내는 거 있죠. 그게 구천이 떠도는 영혼이 49일 동안 구천을 떠돈다고 그러잖아요. 동양학에서는 팔천다음에 구천이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여덟 번째 하는 다음이. 그 구천을 떠도는 자들이 안식으로 들어가는 제사 드리는 게 49제인데 그 사람들은 뭔지 모르고 지내는 거예요. 그게 다 성경이 나온 거란 말입니다. 49제 지내란 말 아니에요. 

 

그게 칠(7)일 동안에 그 무교병만 먹어요. 맛없는 떡이에요. 인간의 입맛에는 안 맞는 떡, 누룩이 안 들어간 떡을 어떻게 먹어요. 유월절이 출애굽이라면 무교절은 광야 교회의 역사 속 삶을 의미해요. 그래서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고기를 추억하면 안 되는 거였어요. 광야교회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교회가 있는 교회시대 그러면, 세대주의자들이 나눠놓은 그런 시대 같아서 별로 쓰고 싶지 않지만, 그 교회가 있는 이 역사 동안에 그게 광야 교회에요. 그걸 광야라고 그래요. 그냥. 그 역사 동안에 우리는 고기를 추억하면 안 된단 말이에요. 


당시 고기라는 건 전부 신에 제단에 바쳐진 제물이었기 때문에 그래요. 그 전체를 아울러서 한방에 끝낸 게 어린양 제사란 말입니다. 그래서 유월절을 지나 홍해를 건넜으면 더 이상 뒤를 돌아보면 안 돼요.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면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는 게 그런 말이란 말입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고기를 추억했다는 건 또다시 희생 제사를 그리워했다. 라는 그런 의미에요. 그거 안 해도 된다고 하나님이 어린양 제사를 본보기로 보여 주신 게 유월절이죠? passover 넘어 간 거란 말이에요. 이미. 


사람들은 그게 뭔지도 모르고 여전히 불안해 떨면서 제단의 고기를 그리워하고 있었던 거예요. 안 하면 불안해요. 인간들은. 가만히 있으라고 그러면 불안해해요. 그건 아담들의 본능인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고기를 주시고는 그 고기가 아직 잇 사이에 있을 때 그러죠? 성경이. 잇 사이에 있을 때, 씹기도 전에 저주를 퍼부어 버리셨어요. 여러분 뭐 먹다가 맞으면 그거 얼마나 불쌍한지 아시죠? 그렇게 맞은 거예요. 광야에서. 그 먹다가. 하나님의 어린양이 하나님께 영단번에 바쳐지는 십자가 사건이 유월절이 품고 있는 내용이었기 때문에 더 이상 제단의 제물로서의 고기는 출애굽한 자들에게 있어서 추억거리로 조차 존재하면 안 되는 거예요.

 

창세기 1장 20절 이하를 보면요 하나님께서 다섯 째날 창조를 하시면서 물, 그 아랫물이에요. 거기에는. 아랫물에 생물이 번성케 하라고 말씀을 하셨어요. 물에. 그 단어가 정확히 번역하면 우글우글 거리다. 에요. 우글우글 거리다. 그게 아랫물 속 생물들의 특징이며 본질이에요. 첫째 날, 둘째 날, 셋째 날은 넷째 날, 다섯째 날, 여섯째 날을 설명해 주고 있다고 그랬잖아요. 


그러니까 아랫물 속에 생물이 우글우글하게 하다. 이 말이 생육하고 번성하다. 라고 거기서 번역이 됐는데, 여러분 구더기떼 본 적 있어요? 재래식 화장실 같은데 가보면 구더기 떼가 정말 우글우글할 때 있어요. 그 단어에요. 이게요. 하나님께서 아래의 인생들을 이렇게 내려 보실 때 바로 그렇게 보시는 거예요. 아 우글우글하다. 그 예뻐 갖고 그거를 뭐 여러분 어디 떠다가 이렇게 보관하시고 그런 적 있나요. 그건 죽이는 거예요. 우글우글하는 거예요. 


그런데 우글우글한 것들이 그 자리에서 우글우글하는 거, 그렇게 움직이며 우글우글 떼를 지어서 우글우글하면서 어디로 자꾸 나가죠? 나가면 죽는 거예요. 사실은요. 그게 인생의 모습이에요. 그래서 그 단어가 거기 있는 거고, 지옥의 모습을 구더기가 우글우글하게 죽지 않는 곳. 이라고 하는 것이죠. 그게 이 세상이에요. 


이 땅의 특징은 항상 떼를 지어 힘을 모아 우글우글하면서 움직이는 거예요. 안 그러면 불안해요. 그게 율법주의라고 그래요. 그게 희생 제사 계속 드리는 그런 인간들의 모습이란 말입니다. 그런데 영원의 특징은 움직임이 없다. 그래요. 성경에서. 하나님은 움직이는 그림자도 없다고 그러죠. 영이시기 때문에 없다. 라는 말의 의미보다는 영원 속에서는 어떠한 이 땅적 차원의 그런 움직임이 없는 곳이 영원이다. 라는 의미에요. 


그래서 하나님이 하나님 백성들에게 너희는 가만히 있어. 가만히 있어~ 그러는 거예요. 가만히 있어. 우글우글 거리지 마. 가만히 있어. 그게 영원의 특징이에요. 그건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고정되어 있으라는 말이 아니라 나의 자원으로 움직이지 않고 은혜의 생명력에 의해 움직여지는 곳 그런 의미에서 가만히 있어. 라는 거예요. 우글우글 거리지 말고, 그래서 성경은 그렇게 여러 곳에서 제발 하나님이 하시는 걸 좀 봐 그러는 거예요. 움직이지 마. Stop 이라고 하는 거죠. 그렇게 우리는 가만히 있는 와중에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완성하시는 그 세계, 거기를 하나님 나라라고 그래요. 


거기서는 그러한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찬송하는 소리만 들려야 되요. 그걸 잔치라고 그래요. 어린양의 혼인잔치는 바로 하나님의 영광과 그 분이 하신 일만 찬송되는 곳이에요. 그게 진짜 잔치란 말이에요. 거기는 술과 고기가 필요 없다. 그래서 까르네레바레 잔치라고 하는 거예요.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술은 누룩으로 발효를 시켜서 본질을 변이시켜낸 섞은 거죠? 술은 항상 섞어야 되요. 그렇게 누룩이 들어가면 항상 섞은 것이 나오게 되요. 본질에서 변질이 된 섞은 거. 그건 사람을 미혹하고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역할을 해요. 그래서 항상 술과 성령, 술과 바른 말, 이 진리가 대조되어 나오는 거예요. 누룩이 들어간 떡도 마찬가지에요. 본질을 변이시켜서 사람의 입맛에 맞추어 내는 역할을 하는 거. 섞어서 사람이 맛있어 하게끔 만들어 내는 거. 변질시켜 내는 게 누룩이란 말이에요. 그래서 출애굽 이후의 무교절에는 누룩이 들어간 떡을 먹으면 안 돼요. 예수님께서도 바리새인들에게 누룩을 조심하라고 그랬죠? 진리에다가 다른 말 섞은 자들 그들 조심해. 이런 뜻이에요. 은혜에다가 율법 섞지 말라는 거예요. 그건 쉬운 말로 진리를 사람의 입맛에 맞게 다시 요리하지 마. 이런 뜻이에요. 그걸 누가 하죠? 율법주의자들이 하죠. 진리를 진리 안에는 은혜만 들어있어요. 그런데 그걸 율법주의자들, 대제사장들이 성전에서 한 일이 그거에요. 율법주의자들이 사람의 입맛에 맞게 요리를 해요. 그리고는 이게 하나님이 맛있어 하는 거겠지~ 라고 너스레를 떠는 게 율법주의에요. 그래서 오늘날 요리사들의 복장이 제사장의 복장과 흡사하죠? 관을 쓰고 제사장들이 고기를 쪼개 놓고 거기다가 붓는 게 포도주, 기름, 소금이에요. 요리하는 거예요. 하나님이 드시기 좋게~ 그러나 하나님은 그거 안 받는다는 거예요. 다 모형이란 말입니다. 그게. 하나님이 스스로 요리를 하셔서 받는 게 하나님이 시작하는 그리고 완성하는 제사에요. 그 제사는 하나님이 한번 드리고 마는 거라니까요. 율법에 묶인 사람이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이 기뻐하는 제사는. 이스라엘이 그토록 추억했던 출애굽 이후의 그 고기가 바로 누룩과 섞인 술이요. 떡인 거예요. 먹고 싶은 거예요. 매력 있는 거예요. 그래서 고기, 고기 하는 거예요.

 

그러나 제물은 이제 더 이상 필요치가 않아요. 아니 있으면 안 돼요. 그건 하나님이 하신 일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하는 불신앙이거든요. 그런데 이 믿음 없는 자들이 불안해서 자꾸 또 다른 희생 제사를 드리고 싶어 하는 거예요. 그래서 새벽에 기도, 새벽 기도 안 나가면 뭔가 찝찝해 갖고 졸려 죽겠는데 나가서 졸다가 오더라도 나가죠. 그 식구들은 쫄쫄 굶고 회사가고 금식도 하고 봉사도 하고 선교도 가고 헌금도 하고 별 거다 하는데 그게 다 나쁘다는 말이 아니에요. 우글우글 움직이기 위해서 억지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니까요. 그걸. 그걸 희생 제사라고 그래요. 또 다른 고기를 추억하는 거라고 그래요. 그거를. 고기는 더 이상 유월절 어린양 이후에 나타나면 안 되는 데 또 고기, 고기 하는 거. 왜? 그게 매력적이고 그게 내 입맛에 맞아요. 그게 익숙해요. 선악과 따먹은 인간들은. 습관이 되어 있다니까요. 젖어 있어요. 거기에. 안하면 불안해요. 그래서 그들의 잔치는 고기로 드리는 잔치요 술로 드리는 잔치요 맛있는 유교병으로 드리는 잔치가 되는 거예요. 사람 입맛에 맞죠? 감동적이기도 해요. 만족감도 줍니다. 여기를 우리가 천국잔치라고 그러죠. 예배 이야기하는 거예요. 지금. 여러분 원래 예배라는 건 그 천국 백성들의 잔치는 사람의 입맛에 맞으면 안 돼요. 그러니까 보편적 사람, 보편적 인간들이 진리도 모르는 이들이 와서 다 야 오늘 은혜 받았어. 오늘 감동 받았어. 하고 가면 그건 가짜에요. 사람의 입맛에 맞으면 안 돼요. 진리는. 예배는. 그 잔치는. 누룩 없는 떡이어야 된다니까요. 먹고 퉤퉤 뱉어야 되요. 사람의 감정을 자극해서 감동을 주고, 사람의 자존심을 한껏 세워줌으로 해서 기고만장하게 만들고, 사람의 행위를 칭찬해서 으쓱하게 만들어주는 잔치는 술과 고기로 하는 잔치에요. 성도들의 잔치는 사람의 가능성과 거기서 나온 모든 행위가 죽고, 그게 희생 제사라고 했으니까 그게 고기에요. 그게 죽고 고기 없는 잔치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왜? 어린양이라는 고기가 이미 드려졌기 때문에 여러분의 잔치에는 여러분의 입맛에 사람으로서의 육으로서의 여러분의 입맛에 맞는 그 고기 없다니까요. 모든 행위가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로 살아나는 잔치여야 되요. 그래서 마음 한켠에서는 반드시 곡소리가 나야 되요. 지금. 내가 아파요. 죽어야 된다니까요. 그거에 맞아서. 그러니까 한쪽에서는 곡소리가 나는데 이 죽음이 곧 살아남으로 인지되는 사람들, 그 부활의 환호가 잔치란 말이에요. 죽음으로 살아나는 나의 행위, 나의 희생 제사는 부정되고 영단번에 완료된 유월절 제사가 찬송이 되는 현장, 그게 성도의 축제에요. 그걸 예배라고 그래요. 그래서 잔치는 보편적 인간들, 아담들 입맛에 안 맞아요. 성도들의 입맛에만 맞아요.

 

제가 이메일을 하루에도 수십 통, 수백 통씩 이렇게 받는데 쭉 읽어보면 진짜 야 이거 정말 입맛에 맞는 거네요. 하고 쫙 끌려오는 사람이 있는 가하면, 여전히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는 사람이 있어요. 입맛이 안 맞아요. 막 불평해요. 그러면 안 오면 돼지~ 요리사가 내 놓는 음식이 그것밖에 없는데 어떻게 해요. 더 맛있는 걸, 달라고 그러면. 롯이 소돔과 고모라에서 거저 빠져 나올 때 천사들과 나눠 먹은 게 뭐에요? 무교병이에요. 양 안 잡았어요. 자기를 저주의 불에서 건지러온 사자들에게 왜 그 까짓 양 한 마리 안 잡고 맛없는 무교병만 내 놓고 나눠 먹었을까요? 여러분? 출애굽이거든요. 롯의 출애굽. 출애굽 할 때 어린양 고기 다 먹고 무교병 먹잖아요. 그 사람들이. 뭐에요? 롯을 건지기 위해 천사들이 갔다. 라는 건 이미 양이 잡혀 죽은 후라는 거거든요. 그래야 이 사람이 나올 수 있어요. 소돔과 고모라에서. 소돔과 고모라를 애굽이라고도 하고, 세상이라고도 하고 계시록에 보면 그러잖아요. 예루살렘이라고도 하고, 그러니까 이미 어린양의 제사가 드려진 거예요. 물론 상징적인 거예요. 그래서 거기에는 고기가 있으면 안 돼요. 그래서 롯이 무교병만 나눠 먹고 나와요. 거기서. 그런데 롯, 너의 희생 제사는 필요 없다. 는 거예요. 이미 제사가 드려졌다. 라는 거예요. 그러나 그것이 육으로서의 너의 입맛에는 안 맞을 거다. 라는 거예요. 세상 사람들은 그 은혜를 이야기하면 뭐 개 풀 뜯어먹는 소리 하냐고 그래요. 야 인간을 뭐로 보고 손발 묶인 그런 인형처럼 이야기하느냐고 막 화를 내다니까요. 우리는 뭐냐고, 은혜를 안 받아드려요. 그래서 무교병이에요. 맛없어요. 그러나 그걸 먹어야 살아요. 그래서 주님께서도 오늘 본문 바로 위에 그 살인에 관한 계명에서 이렇게 말씀 하셨던 거예요. 마태복음 5장 23절 보세요.


23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만한 일이 있는줄 생각나거든 
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뭐 제사를 드릴 때에 누구랑 이렇게 싸운 그런 일이 있으면 가서 화해하고 와서 제사 드려라. 이런 말 아니에요. 예물이라고 번역이 된 헬라어 ‘도로’는 제물이라는 뜻도 있지만 선물이라는 뜻도 있어요. 제물은 곧 선물이다. 그 단어의 이 내용이 들어가 있는 거예요. 내가 희생 제사의 제물을 하나님께 드리게 되면 희생 제사의 제물을 성전에 가서 하나님께 또 드리게 되면 나는 나를 구원하러 온 이미 십자가에서 도륙되어 죽은 그 형제에게 카타, 반하게 되는 거죠? 그죠? 그걸 뭘 원망할 만한 일이 있거든 이렇게 번역을 했는데 카타에요. 반하는 것이다. 라는 뜻이에요. 네가 제물을 갖고 번제단 이란 말이거든요. 번제단에 드리러가다가, 드리러 가는 것은 너를 구하러 와서 이미 제물을 도륙되어 죽은 그 형제에게 반하는 것이다. 라는 뜻이죠.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요? 놓고 가서 그 형제가 한 일을 알아라. 화목하고 화해하고 와라. 라는 거예요. 그러면 그가 가진 그 제물, 그가 드리는 그 예배가 이제는 뭐가 되요? 아 이거는 내가 드리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나에게 준 선물이구나. 가 되죠? 그 얘기 하는 거예요. 가서 화해하고 와서 드려라. 그러면 그게 선물이 된다. 라는 거예요. 여러분 구원은 우리가 하나님께 뭘 드려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게 아니라. 선물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거라면서요. 성경이 명확하게 이야기하고 있잖아요. 나의 제물은 하나님이 나에게 선물로 준 거지 하나님은요 여러분 거 안 받아요. 여러분 안에 있는 예수를 받는다니까요. 그러니까 그거 여러분이 만든 거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내거 아니라니까요. 선물로 준 거란 말이에요. 그래서 ‘도른’ 이에요. 선물이에요. 우리에게 예배를 드릴 때도 이게 내가 하나님을 섬긴다. 뭘 드린다고 생각하면 여러분은 오산이에요. 이걸 선물로 주신 거라니까요. 하나님이. 그런데 여기 와서 이거 해 놓고 일주일을 안심하면 산다니까요. 사람들이. 나 뭐 했다고. 얼마나 잘못 알고 있는 거냐고요. 우리가. 예수를 섬기러 와요. 여기에. 하나님께 뭘 드리러 온다니까. 아니 그거 아니라고 하나님이 와서 죽었는데, 여전히 와서 섬기고 여전히 와서 드리겠다는 거예요. 아 내가 섬김을 받으러 왔니? 섬기러 왔어~ 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는데 여전히 아니에요 내가 섬겨 드릴게요. 이러는 거예요. 그러니까 뭘 어떻게 섬길 건데요. 예수는 어떻게 믿을 거예요.

 

내가 아주 기초적인 질문부터 하게요? 왜 예수님 당시에 그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안 믿었을 까요? 실제 그분이 오셨는데 인간은 예수를 보고 예수를 못 믿는 존재라는 걸 보여 준거예요. 그래서 성령이 와서 진리로 깨닫게 해주는 걸 예수 믿는다. 그래요. 예수님이 지금 여러분 눈앞에 나타나도 여러분은 그 말씀이 여러분을 이 눈을 띄워주고 귀를 열게 해주지 않으면 그 예수 못 알아본다니까요. 그런데 자꾸 예수를 믿겠다는 거예요. 그 어떤 예수요? 이천년 전에 유대 땅에 오셨던 그 예수 믿겠다는 거예요. 주 예수를 믿으라는 건 부활하신 그리스도 예수를 믿으라는 거예요. 그 말은 그 예수가 담고 있는 그 진리 전체를 성령을 통하여 깨닫는 거. 그걸 예수 믿는다. 라고 하는 거지. 그 분을 막연히 이천년 전에 나를 구원하기 위해 오신 어떤 분으로 놓고, 그래서 날 위해 죽으신 분으로 놓으면 그 죽음은 나와 아무 상관이 없다니까요. 그 분이 죽은 게 뭐요? 아니 그 분이 죽어서 내 죄를 속했다면서요. 진짜 믿겨져요? 그거? 그렇게 믿는 게 아니라니까요. 막무가내로. 그 분이 죽었는데 여러분의 죄가 어떻게 사해졌냐고요. 그 분의 죽음이 내 안에서 진리로 이해가 되어 질 때 아 그래서 나의 옛 사람은 이미 죽은 거고 내가 우글거리지 않아도 되는 거구나. 할 때 그 죽음이 내 죽음이 되는 거잖아요. 그걸 예수 믿는다. 라고 하지 여러분이 이천년 전에 오신 그분을 추억하고 섬기면 안 된단 말이에요. 그러면 그게 여러분 것이 아니에요. 그것도 한 우상이라니까요. 내 것도 아닌 거, 그냥 어떻게든 붙들고 있으려고 하는 그거. 성경은 그렇게 나의 것으로 하나님께 드리려 할 때, 그걸 살인이라고 하잖아요. 도륙하지 마. 라는 뜻이라고 그랬잖아요. 희생 제사 하지 마. 살인하지 마. 이게. 예수를 또 죽이는 거니까요. 그걸 간음이라고 그래요. 그 분의 죽음, 나의 죽음, 그 분의 부활과 나의 부활이 하나여야 되는데 그분과 내가 동떨어져서 그분은 내 섬김의 대상이 되어 있으면 그게 간음이라고 그랬잖아요. 하나여야 하는 게 떨어지는 걸, 이혼이라고 하고, 그걸 간음이라고 한다니까요. 원래 사람을 죽이는 살인이라는 단어는 따로 있어요. 안트로폭토노스 라는 단어가 진짜 사람을 죽이는 살인이에요. 반면에 산상수훈의 쓰인 살인은 푸호노스 에요. 그 단어는 도살하다. 상습적으로 죽이다. 습관적으로 죽이다. 반복하여 죽이다. 잡아서 신에게 드리다. 라는 뜻이란 말이에요. 그렇게 신과 내가 타자로 존재하면서 한 쪽은 섬김의 대상이 되고, 한 쪽은 섬겨야 하는 종의 상태가 되면 계속해서 나는 그분께 뭘 바쳐야 되는 희생 제사를 반복해야 하는 자가 된단 말이에요. 그걸 살인이라고 그래요. 도륙하지 마. 에서 도륙이 그 단어라니까요. 그러니까 산상수훈에서 말하는 살인과 간음은 정확하게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그 단어. 살육하지 마. 살인하지 마. 도륙하지 마. 여기에서의 그 푸호네오 라는 이 단어를, 푸호노스 라는 이 단어를 히브리어로 바꾸면 솨하트에요. 히브리어도 두 단어가 있어요. 살인이라는 단어에. 그 솨하트 라는 단어, 예수님이 지금 여기에서 산상수훈에서 쓴 푸호노스의 단어의 히브리 단어가 솨하트 인데 그 단어가 어디 쓰였냐면 레위기 1장 3절에 쓰였어요. 보세요


3 그 예물이 소의 번제이면 흠 없는 수컷으로 회막 문에서 여호와 앞에 열납하시도록 드릴찌니라 
4 그가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찌니 그리하면 열납되어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 
5 그는 여호와 앞에서 그 수송아지를 잡을 것이요(이 송아지 죽이는 걸, 솨하트 라고 그래요. 예수님이 이 단어를 갖다 쓰셨다니까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가져다가 회막 문앞 단 사면에 뿌릴 것이며

 
그렇게 제물을 반복적으로 잡는 걸 솨하트 라고 그래요. 여러분 하루에 제사장이 제사를 몇 번이나 드렸을 것 같아요? 제사장이 뭐 대단하게 거룩한 거 하는 거 아니에요. 짐승 죽여서 그 피 받아서 반은 바닥에 뿌리고 우슬초로 자기 에봇에 발라~ 이건 빨면 안 돼요. 그러니까 제사장의 옷은 피투성이 옷이에요. 더럽고 냄새나는 피투성이 옷, 예수님이 입은 피 옷이 그 옷이라니까요. 우슬초로 자기 옷에 발라야 되요. 한 두 번이 아니라 하루 종일 아니 일 년 365일. 그리고 바닥에다가는 피를 계속 부어야 되요. 피바다 위에 피 옷 입은 자가 그 저주의 제사를 드리는 게 성전 제사라니까요. 사실은. 그거 반복하는 거, 하나님이 그게 피비린내가 구수해서 아니면 그 짐승 태우는 냄새가 좋아서, 홀랑 다 태워서 드려야 되거든요. 그래서 제사 드리라고 그랬겠냐고요. 그거 하지 말라고 그 제사 지내라고 한 거예요. 지내보고 그게 진짜 너희들의 죄를 대속할 거라고 생각 하냐~ 이거 알아먹으라고 하라고 그런 거라니까요. 주님께서 그 솨하트, 라짜흐 라는 단어가 진짜 사람 죽이는 건데, 그 단어를 안 쓰시고 솨하트 라는 단어를 산상수훈에서 끌어다 쓴단 말이에요. 이 단어를. 그러니까 십계명에 그 라짜흐를 예수님이 산상수훈에서 십계명에는 거기에 대한 설명을 안 해 주잖아요. 육계명부터. 그러니까 예수님이 산상수훈에서 그 육계명부터 설명하시는 거잖아요. 지금. 그런데 그걸 솨하트로 갖고 와서 설명하신단 말이에요. 하나님인 그분이. 그게 무슨 뜻이었는지 아니? 상습적으로 희생 제사, 번제 드리지 말라는 소리야 이렇게 설명해 주시는 거예요. 그 사람을 죽이는 살인은 요한복음 8장에 나와요 43절 보세요.


43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을줄 알지 못함이로다 
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이게 살인이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살인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이 마귀, 다이모니온 악한 말이라고 했잖아요. 푸뉴마 다이모니온 그 마귀가 살인하는 자인데 그 살인의 내용이 뭐냐면 나쁜 말이에요. 진리가 아닌 말, ‘진리가 그 속에 없음으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이게 살인이야~ 그러잖아요.)
45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 
46 너희 중에 누가 나를 죄로 책잡겠느냐 내가 진리를 말하매 어찌하여 나를 믿지 아니하느냐 
47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내가 그 제사를 완성하러 왔다. 라고 하는데 너 그런 말 함부로 하면 죽여 버릴 거야~ 그러더니 계속 희생 제사 드렸잖아요. 그걸 살인이라고 그래요. 그걸 마귀의 일이라고 그래요. 내가 진리를 말하는데 네가 진리를 못 알아듣고 그냥 로고스로만 알아듣는 구나~ 그게 마귀고 그걸 살인이라고 그래~ 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거예요. 안트로폭토노스, 푸호노스와는 완전히 다른 말이란 말이에요. 그런데 그걸 거짓을 말하는 것, 진리를 모르는 것, 진리를 말하지 않는 것이라고 그래요. 그러니까 거짓이라고 그래갖고 뭐 여러분 예수 믿으면 복 받습니다. 병 낫습니다. 은 이빨이 금이빨로 변합니다. 이런 거짓말 말고요. 그거는 말도 아닌 거고. 재미있죠? 말이 아닌 거, 이 진리가 아니라는 뜻이거든요. 말도 아닌 게 뭐에요? 개 소리에요. 그런 소리 하는 게 아니라. 거짓을 말한다는 건, 뭘 말하는 자 라는 말을 히브리어로 바꾸면 선지자에요. 그게. 그래서 거짓 선지자 그러는 거거든요. 거짓을 말한다는 건, 거짓이 뭐에요? 참을 설명하기 위해 모형으로 준 걸, 거짓이라고 그래요. 짝퉁은 진짜와 똑같이 만들어야 짝퉁이지 아니면 다른 상품이라니까요. 그걸 가짜라고도 하고 거짓이라고도 해요. 그런데 그 가짜와 거짓을 통하여 진짜와 참을 진리를 알게 되면 이것도 가치가 있는 거란 말입니다. 그런데 그 진리를 이야기하지 않고 이 껍데기만 그냥 이야기하는 거. 그러니까 성경을 그냥 표피적으로만 이야기해서 착하게 잘 삽시다. 좋은 사회 만듭시다. 건강한 교회 만듭시다. 가 거짓말이에요. 그 안에 들어있는 예수와 그 안에 들어있는 구원의 이야기, 그 이야기로 풀어내지 못하고 그냥 그렇게 이야기해버리면 그게 거짓말이에요. 그런데 그게 뭐라고 그러냐면 예수님이 살인이라고 그래요. 그거를. 그리고 그걸 간음이라고 한다니까요. 껍데기만 보는 거. 그 안에 들어 있는 진리를 보지 못하는 거. 그러니까 여러분이 한번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이 여태까지 감동받은 설교가 뭐에요? 눈물 철철 흘리면서 주먹 불끈 쥐고 그래 나가서 착하게 살 거야~ 이렇게 만들어 준 그 설교를 좋은 설교라고 믿고 있었잖아요. 여태까지. 그게 거짓말이라니까요. 나에게 또 다른 희생 제사를 하게 만드는 그게 거짓말이라고 그러는 거예요. 하나님이요. 성전에서 희생 제사 또 지내~ 율법은 홀이라도 남김없이 다 지켜~ 그래야 착한 사람 되는 거야~ 그래야 성도다운 거야~ 이런 거. 창세기로 가보게요. 최소의 번제가 제물이 어떻게 설명되는지 보세요. 창세기 22장 6절


6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취하여 그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7 이삭이 그 아비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가로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가로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가로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제물을 어디에 있습니까?)
8 아브라함이 가로되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제물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이게 여호와 이레 에요. 제물은 하나님이 준비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창세기 3장에서도 하나님이 제물을 잡아 제사를 지내신 거예요. 우리의 부끄러움을 가리려고. 제물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물로 주는 거지, 우리가 하나님께 바치는 게 아니란 말이에요. 그런데 인간들은 항상 선악의 주체로 선 자기들의 생각대로 뭐든지 둘로 쪼개요. 이게 제물 맞아~ 이렇게. 그리고는 한 쪽을 택해야 되요. 거기에서 수고가 일어나고 고통이 오고 눈물과 아픔이 생기는 거예요. 계속 선택해야 돼. 갈팡질팡 해야 되. 이건가 저건가. 이거 해 놓고 두려워하고, 이거 해놓고 기뻐하고 또 부끄러워하고 절망하고 인간들의 희로애락이 전부 거기서 나오는 거예요. 창세기 15장에서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3년 된 제물을 준비하라~ 그래요. 쪼개라고 안 그랬어요. 그런데 제물을 준비하라~ 그러면 인간들은 습관적으로 둘로 쪼개요. 이게 인간들의 선악구조 속에서 인간이 드리는 제물이에요. 자기가 옳다 생각하는 그걸 드리려고 한다니까요. 그랬더니 하나님이 어떻게 해요? 혼자 건너가세요. 그걸 원어로 보면 아브라함의 반대편으로 하나님이 넘어 가시는 거예요. 그럼 너 나랑 하나 아닌데. 이렇게.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요? 그거 쪼개지 마~ 제물은 내가 홀로 내가 친히 나를 위하여 준비하는 거니까. 그거 네가 그렇게 쪼개기 시작하면 네가 언약의 나와 언약의 당사자로 주체로 서려고 하면 너는 뭔가 잘못 생각하는 거다. 라는 거예요. 이게 아브라함의 실수였잖아요. 언약은 쪼개는 게 이게 언약이라는 뜻이거든요. 나 홀로 이루는 거야~ 해서, 홀로 넘어가시는 거예요. 그래야 제물이 하나가 될 수 있어요. 인간들이 쪼개는 선악으로 쪼개는 그 제물이 너는 언약의 당사자가 아니라 언약의 수혜자라는 거예요. 잘 생각해 보세요. 출애굽기 20장에 십계명 수여 사건은 아직 성막이 지어지기 전에도 일어난 사건이죠? 그 후에 성막에 대한 식양 주셨단 말이에요. 그러면 성막이 지어지기도 전에 하나님이 야 도륙하지 마. 라고 했어요. 그래 놓고 성막을 주신다음에 거기서 양으로 희생 제사 해 그랬단 말이에요. 그러면 하나님이 율법을 주시면서 그거 해~ 라고 하신 건 이미 하나님이 알려 주려고 한 그 열, 그 진리 그걸 가르쳐주기 위한 도구일 뿐이지, 그게 가치가 있는 게 아니겠죠? 생각해 보세요. 성막이 지어지기 전에 지금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에서 진리로 설명을 해 주죠?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이 우리를 살리는데, 그가 입을 여러 가라사대~ 가 산상수훈이니까. 우리를 살리는 진리의 말이란 말이에요. 그런데 뭐라고 그러냐면 그게 사실은 희생 제사 드리지 마. 솨하트였어 라짜흐가 아니었단다. 라고 했단 말이에요. 그러면 성막이 지어지기 전에 그걸 누군가 알아들었다면 그 성막이 지어졌을 때 그 번제단에서 양이 한 마리라도 죽었을까요. 죽으면 안 되는 거예요. 왜?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신 하나님이라는 제물이 죽어야 할 자리니까. 그러니까 율법이라는 건 여러분들에게 지켜서 하나님을 기쁘게 해달라고 준 게 아니라, 성경 말씀이 그렇단 말이에요. 그걸로 진리를 알라고 준 거예요. 해 보고 과연 너희 힘으로 그게 되더냐~ 를 묻고 싶은 거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희생 제사 드리리라고 해 놓고는 하나님이 또 다른 데에서는 야 내가 뭐 그 기름이 구수해서 바치라고 그러는 줄 아냐~ 살 찐 희생의 제물, 아 나 배불러~ 그러시는 거예요. 드리라는 거예요. 말라는 거예요. 거기서 진리를 알아먹으라는 거예요. 그런데 이스라엘은 계속해서 희생 제사 드리면서 도륙하지 마. 살인하지 마. 를 어기고 있었던 거잖아요. 그래서 예수님이 오셔서 성령으로 진리로 그들에게 그걸 이해시켜주는 거예요. 희생 제사를 드렸어도 상관없고, 지금도 드리고 있어도 상관없어요. 아 이게 예수님이 하지 말라 거였는데, 를 알면 진리를 아는 거예요. 그리고는 점차 안 하려고 하게 되겠죠? 이게 진짜 하나님께 나를 드리는 거란 말이에요. 거기에서 진짜 헌금이 나오고 진짜 봉사가 나오고 진짜 선교가 나오고 그러는 거예요. 이젠 내가 드리는 게 내 거가 아니라 하나님 거라는 걸 알기 때문에 더욱 더 풍성하게 드린다니까요. 그래서 역사 속으로 예수께서 오신 거예요. 그리고는 영단번에 드려진 제사, 십자가를 골고다에다가 꽂아 버린 거예요. 이제 살인하지 마. 이렇게 제물이 드려졌단다. 이제 희생 제사 드리려고 하지 마. 자꾸 하나님께 뭐 드리려고 하지 마. 네들 거 하나님이 받을 거 아무것도 없어. 그러는 거예요. 하나님 나라의 삶의 원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선물을 받고 그 분을 찬송하는 거지, 하나님의 흙으로 만들어 낸 너희 것, 그 땅의 것, 흙의 것이 땅의 것이지 뭐에요. 그거 하나님께 바치라고 그러는 거 아니야~ 그 이야기하시는 거예요. 
사무엘상 15장 19절 보세요.

 

19 어찌하여 왕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고 탈취하기에만 급하여 여호와의 악하게 여기시는 것을 행하였나이까 
20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나는 실로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여 여호와께서 보내신 길로 가서 아말렉 왕 아각을 끌어 왔고 아말렉 사람을 진멸하였으나 
21 다만 백성이 그 마땅히 멸할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길갈에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양과 소를 취하였나이다 
22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23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구원은 심판은 말의 문제이지, 행위의 문제가 아닌 거예요. 말을 버리고 말을 곡해하면 그래서 그 말에 순종하지 못하면 그걸 진리로 못 알아들으면 이 왕들은 즉시 폐위되는 거예요. 그 원래부터 왕도 아니에요. 그건요. 아말렉에 가서 다 죽이고 오라고 그랬어요. 애기까지. 짐승까지 다 죽여라. 하나님이 명령하신 겁니다. 그런데 사울이 왕도 살려오고 또 살찐 거, 아주 몇 마리 살려 왔어요. 왜 살려 왔어? 그랬더니 하나님께 드리려고요. 그랬단 말이에요. 그 웬만하면 아 자식 기특하구나. 그래야 되지 않아요? 인지상정이면 그런데 하나님이 뭐라고 그러냐면 너는 그걸로 끝이다. 그래요. 누가 너한테 그런 거 가져오라고 그랬니? 내 말을 알아들으라고 그랬잖아. 그런데 사울이 지가 그렇게 얘기해요. 21절 보세요. ‘그 마땅히 멸할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 몇 개 가져왔어요. 그러면 우리 인간이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좋은 게 뭐라는 거예요. ‘마땅히 멸할 것’ 이에요. 그 중에 가장 좋은 거 몇 개를 갖고 와서 하나님께 드린다고 하는 게 우리의 모습이라니까요. 하나님이 마땅히 멸해야 할 땅의 것, 멸하라 라고 하신 땅의 것, 그 중에 좋은 거 몇 개 갖고 와서 하나님께 드린다고 그거 받겠느냐고요. 안 받으세요. 그 속에서 내 말을 알아들으라는 거예요. 도대체 내가 무슨 말을 너희에게 하려고 하는지를 알아들으라는 거예요. 하나님이 기뻐하는 건 번제나 제사의 행위가 아니라 당신의 말을 진리로 듣는 것이라고 그래요. 그걸 순종이라고 그래요. 호세아서로 가보세요. 5장 1절


1 제사장들아 이를 들으라 이스라엘 족속들아 깨달으라 왕족들아 귀를 기울이라 너희에게 심판이 있나니 너희가 미스바에서 올무가 되며 다볼 위에서 친 그물이 됨이라 
2 패역자가 살륙죄에 깊이 빠졌으매(이게 솨하트에요. 똑같은 단어에요. 또. 살육죄. 살인하지 마. 에서의 그 살인죄. 살륙죄에 깊이 빠졌으매) 내가 저희를 다 징책하노라 
(보세요. 제사장, 이스라엘 족속, 왕족들 이게 뭐에요? 다 우리를 가리키는 거예요. 네들이 살인 죄 졌다. 그러는 거예요. 살인죄 졌어~ 살인하지 말라는데, 그거 하고 있어. 제사장들이 누구 죽일 사람이에요? 죽은 것도 안만지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하나님이 살인죄 졌다. 그런단 말이에요.)
3 에브라임은 내가 알고 이스라엘은 내게 숨기지 못하나니 에브라임아 이제 네가 행음하였고 이스라엘이 이미 더러웠느니라 
4 저희의 행위가 저희로 자기 하나님에게 돌아가지 못하게 하나니 이는 음란한 마음이 그 속에 있어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까닭이라 
5 이스라엘의 교만이 그 얼굴에 증거가 되나니 그 죄악을 인하여 이스라엘과 에브라임이 넘어지고 유다도 저희와 한가지로 넘어지리라 
6 저희가 양떼와 소떼를 끌고 여호와를 찾으러 갈찌라도 만나지 못할 것은 이미 저희에게서 떠나셨음이라 
7 저희가 여호와께 정조를 지키지 아니하고 사생자를 낳았으니 그러므로 새 달이 저희와 그 기업을 함께 삼키리로다


희생제사 드리는 거, 율법으로 하나님께 가려고 하는 거 그걸 도륙, 살인죄라고 해요. 그러면서 그걸 또 뭐라고 그래요? 3, 4절에 행음이라고. 그러니까 헬라어 모이큐오는 마음으로 짓는 죄, 간음이고 그게 포르뉴오로 나오면 그걸 행음이라고 그래요. 그 포르노라는 단어. 그 포르뉴오, 그 행음이라는 거예요. 네들이 제사지내고 계속해서 율법으로 나에게 오려고 하는 게 바로 살인이고 도륙이고 그리고 그게 행음이다. 포르뉴오. 그리고 그 행음을 뭐라고 그러냐면 교만이라고 네들 거를 내가 받는다고 진짜 생각하는 거야~ 이게 교만이에요. 이것이요. 교만은 퇴망(?)의 선봉입니다. 저희가 아무리 양떼와 소떼를 끌고 하나님 앞에 와서 제사를 드리고 제물을 드려도 하나님이 안 만난다는 거예요. 이미 떠났다. 그들에게서는 이미 떠났다. 라고 하세요. 그러니까 헛 제사 드린 거예요. 이스라엘은요. 헛 제사 드린 거예요. 하나님이 받지도 않는 그런 제사. 그리고는 그게 사생자를 낳는 것. 이라고 그래요. 성도는 율법을 통하여 아 그게 예수 믿으라는 거였구나. 예수를 낳아야 되는데 율법의 묶이면 예수가 아닌 아들이 아닌 사생자를 낳아요. 여러분 왜 아이가 엄마 뱃속에서 열 달 만에 나오는 줄 아세요. 열이 완성이 돼야 생명이 나오는 거예요. 지금 LA 남가주 서머나 교회 제 제자 중에 청년부 때부터 저랑 같이 있었는데 그런 친구가 우리 교회도 하나 있어요. 순영이라고 지금 서울대 화학과 교수하고 있는데 둘 다 청년부 때부터 저랑 같이 있었던 친구, 스승의 날 때마다 유일하게 카드 써주는 사람, 오늘 내일 인제 애를 낳아요. 이메일이 왔더라고요. 스승의 날이라고. 그래서 제가 그 말을 해줬어요. 열이 깨지고 생명이 나오는 그 진리를 처절하게 몸으로 깨달으라고. 그게 얼마나 고통스러우며 그러나 영광스러운 것인지. 십의 그러니까 우리가 십진법 쓰죠? 그 십진법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숫자가 얼마나 많아요. 그게 율법이에요. 그거나 그거를 하나로 끌어내는 게, 진리로 끌어내는 게 생명을 낳는 거란 말이에요. 그게 깨지고 엄마 뱃속에 아이가 들어 있는 게 알 속에 들어 있는 거잖아요. 알이 깨지고 생명이 나오는 거란 말이에요. 그런데 알이 깨지기 위해서는 여러분 밖에서 누가 그걸 깨뜨려 주면 안 돼요. 그러면 그 안에 있는 게 죽어요. 안에서 깨고 나와야 되요. 성경에 나오는 감옥이라는 단어들 있죠. 그게요. 밖에서 가두는 게 아니라 지가 들어가서 안에서 문 잠그는 감옥에요. 다. 그래서 계시록에 보면 예수님이 밖에서 문 두드리는 거예요. 네가 열고 나와야 되요. 진리로. 그래서 여러분이 여기서 여러분을 용서 못하면 여러분은 감옥에 갇혀 있는 거예요. 여러분이 그걸 열고 나와야 된다니까요. 진리로. 아 그런 거였어요. 내가 이제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네요. 야 옛날의 상처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에게 은혜로 허락해 준 거네요. 이렇게 진리로 거기서 벗어나는 걸 자유라고 그래요. 감옥에서 나오라는 거라고 그래요. 그게 지옥에서 나오는 거예요. 그 안에 있었던 여러분은 거기서 죽는 거예요. 아니구나. 그건 다 모형이었던 거구나. 진리를 깨닫게 해주기 위한 가짜, 짝퉁, 거짓이었던 거구나. 이거 깨닫는 거. 바울이 내가 만삭되지 못한 자란 말 하죠? 바울이 칠삭둥이나 팔삭둥이였다는 말이 아니라 바울이 철저한 율법주의자였잖아요. 그리고 자기는 생명을 낳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보니까 자기는 율법에 묶여서 생명을 낳는 열을 깨지 못한 자라는 거예요. 그래서 만삭되지 못한 자라고 자기를 가리키는 거예요. 그러나 난 생명 낳았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 생명을 전하러 다닌 거예요. 예수님이 나에게 호라오 보여주셨어요. 자기를. 그랬더니 아 그게 그거였구나. 나는 만삭되지 못한 상태에서 하나님을 위한다고 생명을 낳고 있다고 열나게 뛰어다녔는데 아니었구나. 만삭되지 못한 자였구나. 그런데 이제 알았어요. 생명으로 낳았다니까요. 그러고 나니까 아들을 전하러 다녀요. 목숨 걸고. 
마태복음 15장 4절 보세요.


4 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거늘 
5 너희는 가로되 누구든지 아비에게나 어미에게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것이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6 그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 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 

인간들은 이렇게 하나님께 뭘 드려서 말씀을 폐해요. 진리를 깬다니까요. 에게 블라스펨(blasphème) 이에요. 이게 훼방이라는 단어에요. 진리를 말을 깨는 거. 구원은 말, 진리를 갖는 거예요. 그래서 그 법을 내 심비에 새긴다. 라고 하는 거예요. 뭘 어떻게 새겨요? 어디다가? 그 내 밖에 수많은 법들이 예수로 사랑으로 이해되어져서 내가 마음에 그걸 갖고 있으면 내 마음에 그게 새겨졌다 그러는 거예요. 그 얘기는 이제 그 어떤 법도 법으로 작용이 안 되기 때문에 그 어느 누구도 참소를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그가 영생을 가졌다. 라고 하는 거란 말이에요. 그 진리를 가진 자들의 그 내적 예배, 진리로 소통하는 예배를 세바조마이 라고 해요. 그 세바조마이 가 된 사람이 모여서 그 진리를 나누는 걸, 외적 예배, 프로스쿠네오 이거. 이 외적 예배에요. 공적 예배라고도 그러죠. 요한복음 4장에 보면 주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신령과 진리로 그 푸뉴마나 진리, 알레떼이아가 같은 거예요. 푸뉴마도 내 말이 영이요. 진리라고 그랬잖아요. 생명이라고 그랬잖아요. 그리고 진리도 말이요 진리에요. 같은 말이에요. 진리 안에서 진리로 예배하는 것, 그게 세바조마이 거든요. 그런데 그 진리를 가진 자들이 이런 모형으로서의 예배도 드려야 된다고 그래요. 주님이 프로스쿠네오 라고 한다고요. 그래서 이건 중요한 거예요. 무슨 건방떨고 집구석에 앉아가지고 인터넷으로만 보는 거 이거 안 된다니까요. 지들이 뭔데 거기에 앉아 있냐고 우린 다 나와 갖고 프로스쿠네오 할 때가 온다고 그래요. 그러나 어떻게 알고세바조마이 들이 모여서, 프로스쿠네오 하라고 그래요. 그런데 세바조마이 안 된 이들이 그 세바조마이 로 나누는 그 프로스쿠네오 현장을 와 봤을 때 재미가 없어요. 뭔 소리인지도 모르겠고 자기의 자존심만 팍팍 긁는 것 같고, 자기가 여태까지 이루어 놓고 해 놓은 것들을 다 부정하는 것 같고, 아 재미 없어. 그들이 재미있어 하는 건, 여기서 열심히 선동해 주고 주먹 불끈 쥐게 해주고 우리는 나가면서 그래 살아보자. 이렇게 해 주는 걸 좋아하죠. 그리고는 나와서 개뿔이나 하는 것도 아무것도 없어요. 그러면 뭐 조금 해 놓고 얼마나 그걸 수첩에 적어놓고 자랑을 하는지 안 그래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아는 자들이 드리는 예배, 모르는 자들이 드리는 예배를 나누신 거예요. 요한복음 4장 22절 보세요.


22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유다지파에게서 남이니라. 에요. 예수에게서 난단 말이에요. 구원은 나에게서 나는 거란 말이에요. 너희들이 아무리 행여 너 지금 그리심산, 시온 산 얘기하면서 대단히 열심히 하는 것 같이 나한테 얘기하는데 구원은 유다지파 나에게서 나는 거다. 이야기 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신령과 진리로 푸뉴마, 알레때이아, 진리로 예배하는 게 진짜 예배야~ 그렇게 그리심산, 시온 산 나누면서 어떤 게 더 잘 드리는 거예요. 네들이 네들 판단하는 거 이게 다 헛된 제사란다. 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거 모르고 드리는 거야~ 그러나 우리는 알고 드린다. 그래요. 알고 진리를 알고 예배하는 거. 이게 세바조마이 라는 말이죠. 자 이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는 창세기에 이삭의 아내 리브가를 약속의 후손인 이삭의 아내로 불러오는 그 그림을 해석하고 완성하는 그림에요. 그래서 우물가로 아내를 부르러 어떤 이가 가는 거예요. 신부를 부르러. 그런데 가서 아브라함에 그 종에게 뭐 달라고 그러라고 그래요? 우물가에 가서? 여자를 만나거든 물 달라고 그러라고 그러잖아요. 그래서 예수님이 찾아가서 우물가에 가서 물 줘~ 그러는 거예요. 그런데 아브라함이 뭐라고 그러냐면 거기에서 물이 너에게 오거든 그 여자 데리고 와~ 이 약속의 자손의 신부야 라고 이야기하죠. 예수님이 우물가로 오세요. 오시더니 다짜고짜 물 줘~ 그래요. 진짜 목말라서 그런 거면 어떻게 해서든지 뺏어서 마셨을 텐데 물도 안 마셔요. 끝가지. 그런데 물 줘~ 그래요. 거기에서 그가 예수께 드릴 수 있는 제 안의 생수, 진리, 성령, 푸뉴마가 있었으면 그 는 아버지에게 신부로 끌려가는 거예요. 그런데 이 여자가 뭐라고 그러냐면 왜 나에게 물을 달라고 그래요. 물 긷을 그릇이 없어요. 아니 어떤 정신 나간 여자가 물 긷을 그릇도 안 갖고 우물가에 와요. 그 말은 당시에 유대인들은요 사마리아인들의 우물 그 물 긷는 그릇에 뜬 물을 안 먹었어요. 혹 유대인이 사마리아 땅을 지날 갈 때는 지가 물을 먹어야 되니까 그릇을 갖고 다녔단 말이에요. 그런데 이 여자가 보니까 그릇도 없어~ 예수님이 그 그릇 갖고 갔겠냐고 그 물 아닌데 어차피. 그러니까 그 여자가 물 긷을 그릇도 없는데 어떻게 물을 줍니까? 라고 한 거예요. 정신 나간 여자가 아니라, 그랬더니 예수님이 물 이야기로 끌고 가시죠. 나에게 진짜 목마르지 않는 생수 있는데 그거 줄까? 그래요. 그래서 그 여자가 그 생수를 받아 그 생수를 품게 되면 그 생수를 퍼 줄 수 있게 되죠. 그러면 종에게 끌려 아버지께 가는 거예요. 내 신부에요. 이렇게. 요한복음 4장 14절 보세요.

14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15 여자가 가로되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상징이지만 예수님은 그녀에게 물을 쏟아 부으세요. 어떤 식으로 쏟아 붓느냐면 그녀가 여태까지 남편이라고 붙들고 있었던 다섯 가지 계명, 이걸 부수는 거예요. 그리심 산, 시온 산 이따위 소리하고 있으니까 율법에 묶여 있는 거잖아요. 이걸 네가 그 동안에 너를 신부로 맞아 너를 존재되게 하는 거라고 믿었던 게 다섯 남편이지? 그러는 거예요. 그러나 그 남편은 가짜다. 라고 하는 거예요. 그거 깨 버리는 거죠. 그랬더니 이 여자가 갑자기 그걸 알아들어요. 어떻게 알아들었는지는 모르겠는데 나가더니 와 저분이 내가 옛날에 뭐했는지를 다 알고 계셔~ 그래요. 그 말은 나에게 뭘 얘기해줬다. 이런 말이 아니라 내가 누군지를 알고 계시네. 내가 그동안 뭘 했는지 어떤 존재인지 나의 처음자리를 알고 계시는 분이 그걸 알려주면서 그거 하면은 안 돼 이야기를 했다. 라는 거예요. 그러면서 나가더니 내가 한 일을 다 알고 계시다. 라고 이야기를 해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거기에서 추수 이야기를 하신다고요. 복음은 저런 거다. 믿음은 저런 거다. 저러한 것들이 추수의 대상이다. 라고 이야기를 하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구원은 어떤 행위를 해냈느냐에 달린 것이 아니라 생수, 진리를 가졌느냐 아니냐에 달려 있는 거예요. 다른 말로 옳은 말을 가졌느냐 푸뉴마다이모니온 악한 말을 가졌느냐 귀신, 마귀, 사단이라고도 이야기하잖아요. 그거를 악한 말이에요. 그게. 악한 말을 가진 자가 살인한 자요. 간음한 자요. 거짓 선지자요 거짓 교사인 거예요. 
마태복음 15장 18절 보세요.


15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입에서 나오는 게 뭐에요? 술 먹고 토하는 거 말고, 말. 말이에요. 인간의 입에서 나오는 건 마음에서 나오는데 인간의 마음은 날 때부터 두 개에요. 선, 악. 그죠? 그래서 그 입에서 나오는 건 마음에서 나오는 게 다 악해요.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게 사람을 더럽게 하는 거예요. 부정하게 하는 거예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그 말이 뭐냐면 나쁜 말, 옳지 않은 말, 비진리가 뭐냐면 악한 생각, 살인, 간음, 음란, 도둑질, 거짓 증거, 훼방 산상수훈에 다 나오는 거죠? 그게 나쁜 말이란 말이에요.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거. 율법, 도덕, 윤리 그런 거, 어기는 건 사람 더럽게 하는 거 아니야 하는 거예요. 여러분 이거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에요. 자 간음, 살인은 이미 충분히 공부하셨으니까 이제 잘 아실 거고. 율법주의, 희생 제사 이런 거라고 그랬어요. 악한 생각이라는 건 율법적 사고를 말하는 거예요. 거기에서 악한이라고 번역된 헬라어 포노스가 율법주의 아래에서의 수고, 짐 있죠? 수고하고 무거운 짐. 포노스에요. 그게 악한 마음, 선악구조 속에서의 마음이에요. 그게 악한 마음이에요. 악한 생각이에요. 그게. 그런데 사람의 마음속에는 그 악한 게 생래적으로 장착이 되어있어요. 음란은 그 모이큐오 간음의 그 행함. 포르네이야 로 나타난 거라고 그랬어요. 음란. 거짓증거는 뭐라고 그랬죠? 성전과 율법을 그냥 껍데기로만 얘기해 주는 게 거짓 증거라고 그랬습니다. 그리고 훼방, 브라스페이미아는 말을 깨는 것 이라는 단어라고 그랬어요. 그 단어 자체가. 말을 깨는 거. 옳은 말을 비 진리로 깨버리는 거. 훼방. 그러니까 마음에서 나오는 악한 것들은 전부 진리에 관한 것들인 거예요. 뭐 이런 게 우리가 하지 말아야 할 어떤 세목을 나열해 놓은 거라면 더 많아야 되요. 이거는요. 왜 요것만 이야기하느냐고요. 자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 생수가 부어지지 않은 자에게서는 이것밖에 나올 게 없어요. 악한 물, 아랫물, 악한 말, 비 진리 밖에 나올 게 없으니까 그 여자가 예수께 줄게 없었던 거예요. 그러나 예수님은 그 여자를 신부로 반드시 끌고 가야 되요. 그러면 이 여자 측에서 어떤 마음이 들도록 해야겠어요? 예수님이? 아 목말라~ 아 목말라~ 나에게 물 좀 주세요. 이 자리로 끌고 내려가는 거예요. 아 목말라~ 나는 그 물 없으면 죽는구나. 나 여태 다섯 남편, 그 헛깨비 같은 다섯 남편 신뢰하고 신앙하고 살았던 나는 헛깨비구나 신기루구나. 이거 알게 하는 거예요. 물 주세요. 의의 주리고 목마르게 만드는 거예요. 그거 없으면 죽어요. 이렇게. 그 단어가 상대적 빈곤이 아니라 절대적 빈곤을 가리키는 단어라고 그랬잖아요. 이거 없으면 죽는 거.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거 말고. 여러분 성도라는 사람이 구원을 얻은 후에 가장 먼저 통과해야하는 자인식이 뭔지 아세요? 아 나 정말 구원 받아서는 안 되는 족속이 구나 이거 알아야 되요. 나라는 존재는 진짜 구원 받을 자격도 없고 아니 하나님이 누군데 나라는 인간이 왜 그 분한테 구원을 받아야 되요. 내가 뭔데~ 아니 얼마 전까지 없음이었던 아파르, 흙, 더스트였던 내가 왜 하나님께 당신은 나를 구원해 주셔야 되요. 라는 말을 할 수 있는 그런 자로 여겨져야 되냐고요. 나는 그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도저히 구원받을 자격도 없고 구원 받아서도 안 되고 그래서 포기해야 되는 자여야 되요. 첫 번째 자인식이. 그게 성도의 육의 죽음이에요. 그런데 희한하게요. 내가 죄인 중의 괴수 맞구나. 아 그러니까 나는 포기, 나는 지옥가야 마땅해. 이 자리에서 구원이 빵 터져요. 그걸 생명이라고 그래요. 거기에 사용되는 모든 게 다 선입니다. 여러분 은혜라는 게 뭡니까? 하나님이 99.999 프로 하고 내가 0.001프로 하는 게 만약에 은혜라면 하나님의 은혜라는 99.999 프로가 나의 0.001 프로에 의해 완성이 될 수도 있고 미완성으로 끝날 수도 있는 거죠? 이걸 무슨 놈의 은혜라고 그래요. 은혜는 100%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는 거예요. 우리에게 0.0001 % 라도 맡기면 그건 은혜 아니에요. 그거에 의해 내가 못하면 하나님의 은혜도 무용지물이 되어버리는 그런 그 따위 은혜는 없어요. 그러나 그렇게 100% 하나님의 은혜로 내가 구원을 영생을 얻을 수 있다. 라는 것을 아는 그 자리까지 내려가는 걸 내가 경험해 내야 되기에 100% 내가 하는 거라고 그러고 100% 하나님이 하는 거다. 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내가 열심히 노력해서 그 하나님의 구원에 보탬이 된다. 라는 말이 아니라. 고린도전서 6장 12절 보세요.

12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아무에게든지 제재를 받지 아니하리라 
(모든 것이 내게 가하다. 라는 것이 옳다. 라는 말이에요. 모든 것은 내게 옳다. 왜? 가짜도 짝퉁도 진리를 품고 있으면 옳은 거예요. 모든 것이 내게 옳으나 그게 진리로 내게 이해되어지지 않으면 그건 유익한 건 아니다. 그 말이에요. 모든 것이 내게 옳으나 내가 그거에 제재, 어거, 제약받지 않는다. 라는 거예요. 그게 옳다고 해서 그게 나를 묶을 수 없어. 왜 나는 이미 알았어. 라는 말이에요.)
13 식물은(이게 제물이 드려지는 고기라는 단어에요.) 배를 위하고() 배는 식물을 위하나 하나님이 이것 저것 다 폐하시리라 몸은 음란을 위하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며 주는 몸을 위하시느니라


(여기서 이 배는 텅 빈 배에요. 원어로 보면. 그러니까 진리가 들어 있지 않은 텅 빈 성전, 거기에는 제물인 고기밖에 들어갈 게 없어요. 왜 귀신이 물 없는 곳 찾아나갔다가 깨끗이 소제되어있고 아무도 없으니까 도로 돌아오잖아요. 일곱 귀신, 그거 일곱 마리 데리고 들어왔다는 게 아니라 완전한 마귀라는 뜻이에요. 제 힘으로 깨끗하게 하는데 물이 없어요. 은혜가 없어요. 진리로 채워지지 않은 그게 완전한 마귀라는 뜻이에요. 그래서 일곱 귀신인 거거든요. 그 배, 텅 빈 배는 진리로 채워지지 않는 그 배, 너희의 신은 배요. 에서 그 배, 그 배는 고기를 필요로 하죠? 고기도 그 배를 위해 있어요. 그런데 하나님이 이것도 저것도 다 폐한데요. 어차피 그건 모형이니까. ‘몸은 음란을 위하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며 주는 몸을 위하시느니라’ 몸은 그러한 음란, 그러한 간음, 그러한 희생 제사를 위해 존재하는 거 아니라는 거예요.)


14 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 
(누가? 하나님이. 그의 권능으로 살리는 거예요. 네들이 제사 안 지낸다고 안 살려주고 그러는 거 아니라는 거예요.)
15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기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창기의 지체는 뭐에요? 희생 제사 계속 드리면서 내 반쪽인 신랑 말고 내 열심과 노력이라는 다른 신랑, 세상이라는 신랑을 내가 붙들고 있는 게 창기의 지체란 말이에요.)
16 창기와 합하는 자는 저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 육체가 된다 하셨나니 
(네가 그걸 남편으로 알고 있으면 너는 그게 예수로 알고 있지만 그게 예수 잘 믿는 율법 잘 지키고 도덕, 윤리 잘 지키고 훌륭한 신앙인이 되는 걸, 그걸 예수의 아내 되는 거라고 알고 있으면 너는 그 예수가 하나가 될 텐데 너는 창기 되는 거라는 뜻이에요. 이거 무서운 말이에요. 그 남편 열심히 쫓아가보라는 거예요. 너 나중에 어떻게 되는지.)
17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진리인 거예요. 여기에서 지체라는 단어를 구약에서 찾아보면요. 창세기 2장에 갈비대, 쩨라 라는 단어에요. 이게 지체에요. 그 쩨라는 갈비대가 아니라 몸의 한 측면 있죠? 부분. 사람이 이렇게 생겼잖아요? 그럼 이걸 쪼개요. 이 반, 쩨라에요. 그리고 이 반을 떼어서 여자를 만들었어요. 갈비뼈가 아니라 반을 떼어서 여자를 만들고 살로 채우는데요. 살이라는 그 단어가 생식기라는 단어에요. 그래서 여자와 남자는 하나가 될 수 있는 거예요. 요철처럼. 그렇게 돼 있는 거예요. 하나님이 그걸 예수라는 신랑과 여자라는 신부, 교회라는 신부가 어떻게 하나 되는지를 가르쳐주기 위해 이렇게 남자와 여자를 만들어 놓은 거예요. 그런데 이 반쪽이 다른 것과 하나가 되어 버리면 어떻게 되요? 큰일 나는 거예요. 여러분. 이 신랑이라는 존재가 없으면 이 여자가 사람이 되질 않아요. 이걸 이렇게 합쳐놔야 하나님이 단수로 사람 그랬거든요. 그런데 이걸 갈라서 남자와 여자를 만들어 놓고 거기다가 생식기를 딱 달아 놨어요. 이게 하나가 되지 못하면 이게 사람이 안 되는 거예요. 하나로 연합이 돼야 되요. 그래서 결혼을 한 몸이라고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하나님이. 예수와 우리 이야기하는 거란 말입니다. 그런데 이 여자가 한 몸이 되어 사람, 하나님 나라의 그 사람, 하나님 나라의 백성, 예수를 머리로 한 지체가 되어야 되는데 엉뚱한 데 가가지고 그걸 남편으로 알고 있네요. 율법을. 이 은혜를 남편으로 알아야 여기에 딱 붙어서 하나가 되는데 율법한테 가갖고 이게 내 신랑이라고 그 여자 처럼요. 그러면 어떻게 되요? 그걸 죽은 거라고 그래요. 그게 간음이란 말이에요. 다른 데 가서 붙어 있는 거 여러분 하나님께서 하와를 만들면서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다고 그랬죠? 좋지 못하다. 라는 뜻이 악하다. 라는 뜻이에요. 악이라는 단어가 거기서 처음 나오는 거예요. 악하다. 그런데 워낙 원래 독처했던 분이 누구에요? 하나님이에요. 하나님이 거기서 법을 하나 제정하시는 거예요. 홀로 독처하는 건, 악이야 라고 이야기했어요. 그런데 인간들이 예수와 연합되어 하나로 존재하려고 하지 않고 선악과 따먹고 독처하기 위해 다 나가 버린 거예요. 이게 악이란 말이에요. 하나님이 당신도 그 신부라는 교회가 없으면 악이 되기로 결정하신 거예요. 이게 은혜에요. 우리는 그 분을 감지 할 수 없고, 상상할 수도 없는데 그 아버지, 그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그런 일을 행하셨다니까요. 감히 상상하고 상상할 수도 없고 감지할 수도 없는 그 분이 우리를 위해 당신의 반쪽을 아주 쪼개버렸단 말이에요. 그리고는 내 신부야 얼른 내 품에 안기라고 쫓아다니는 거예요. 여러분에게. 물주겠다고요. 하나님의 아들이 바로 그 하나님의 사랑을 이 땅에 모형으로 드러내기 위해 예수로 오신 거예요. 그리고 죽으신 거예요. 그래서 그 분이 하나님을 설명했기에 그 분을 말씀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리고 그 말씀을 진리라고 하는 거예요. 거기에 우리가 뭐 어떤 주장을 할 수 있으며 뭘 드려 그 분을 기쁘게 할 수 있냐고요. 고기로 드리는 카니발, 그건 가짜에요.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선물로 주는 그 제물, 그 어린양이라는 예수그리스도 그 안에서 여러분은 이미 하나님께 드려졌어요. 그래서 이 현상계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고 여기서도 여러분은 용서할 수 있고 그 용서로 다른 이들을 감히 용서해 버리는 거예요. 내가 진리를 설명해서 그가 그거에요? 그러면 나도 이 감옥에 있을 필요 없네요. 감히 내가 그를 용서한 거라니까요. 그걸 용서라고 그래요. 꿍 하고 벼르고 있으면서도 용서하라니까 하지만 너 언제가 걸리면 죽인다. 진짜. 이거가 아니라. 그런 용서하라는 게 아니에요. 그리고 그렇게 진리를 하나로 뭉뚱그려 전해 주는 걸 사랑이라고 그래요. 그를 하나님과 연합시킨 사랑하게 만드는 거기 때문에 이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이 어디에 있냐고요? 성경은 그런 거예요. 다른 이야기 없어요. 보세요. 제 설교에 이렇게 익숙해진 분들이 제가 여기서 엉뚱하게 다른 이야기나 하고 정치이야기나 하고 그러면 그거 들을 수 있겠어요? 듣다가 나갈 걸요. 그러한 종류의 프로스쿠네오 아 내 입맛에 안 맞아~ 이렇게 된다니까요. 입맛이 바뀌어요. 그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가짜로 모형으로 짝퉁으로 그러나 가치있게. 그려놓은 영상을 잠깐 보고 찬양하고 기도하고 마치겠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로마서 5:8”


살았다고 하면서 과연 우리가 어떻게 해서 살아난 것인지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어떠한 손해를 희생을 감수하신 것인지에 대해서 그렇게 무관심하게 산다면 정말 우리가 구원받은 사람이 맞겠습니까? 여러분. 아버지가 아들을 찾아다닙니다. 우리 때문에 죽은 그 아들을 찾아다니면서 우리에게 물으세요? 말씀으로 찾아 와서. 내 아들 혹시 봤냐고? 당신 때문에 죽은 내 아들 혹시 봤냐고. 아들을 빼앗긴 이에게 무엇을 주면 그가 행복해 할까요. 여러분이 그 아들로 가셔야 되는 거예요. 다른 거 바칠 것 없어요. 그게 복음입니다. 제발 좀 알아들으세요. 찬송하고 예배 마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