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목사/산상수훈

산상수훈23 나이 나이 우 우 마5:33-37

은바리라이프 2013. 10. 17. 09:12

나이 나이 우 우





마태복음 5장 33~37
33 또 옛 사람에게 말한바 헛 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3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찌니 하늘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35 땅으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36 네 머리로도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37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


자 이제 우리는 산상수훈의 세 번째 항목 헛맹세에 대한 경고에 당도했습니다. 이 내용은 언 듯 보면 맹세 같은 거는 생각하지도 말고 실행에 옮기지도 말라. 라는 그런 경고처럼 보이죠? 맹세하지 마라라. 정말 그런 이야기를 하신 걸까요? 예수님. 제자들에게. 그러면 우리는 뭐 계약할 때 계약서도 쓰면 안 돼요. 그리고 거기에 도장 찍으면 안 됩니다. 그거 맹세거든요. 사인하시면 안 돼요. 결혼식 때 신랑, 신부의 서약, 혼인서약 이런 거 없애버려야 되요. 우리는 심지어 우리는 성경책에 손 얹고 서약하잖아요. 그런데 성경에서 헛맹세 하지 말라는데, 


솔직히 헛맹세죠? 결혼식 때 뭐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이거 다 거짓말이잖아요. 깊이 생각해 보고 얘기를 했어야지 무조건 ‘네’ 하는 바람에 지금 낭패당하는 분이 많으실 텐데, 헛맹세 그런 거 하지 말라는 거예요. 대통령 취임식 때 대통령이 뭐 국기에 대하여, 나라에 대하여 맹세하는 거 하면 안 되는 겁니까? 뭐 시민권 선서할 때 또 이게 맹세하거든요. 미국 같은 경우에는 국기에 대한 맹세 이런 거 하면 안 되나요? 군대 가면 또 맹세, 국가에 대한 어떤, 어떠한 것을 하겠습니다. 라는 맹세를 암기과목처럼 외워가지고 또 계속 해야 되거든요. 그런 거 하면 안 돼요? 


성경은 그런 얘기하는 거 아닙니다. 우리는 먼저 이 이야기가 구약의 어디에서 인용된 것인지를 찾아 봐야 되겠죠? 왜? 옛 사람에게 말하는 바, 라고 하셨잖아요. 그러니까 구약성경의 어디에 있을 거 아닙니까? 지금 산상수훈은 구약의 그 십계명, 여섯 개의 여섯 번째 계명부터 설명이 되고 있는 거라는 걸 여러분 잊으시면 안 돼요. 그러면 거기로 가보면 있겠죠? 가보죠? 출애굽기 20장 16절



16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찌니라 


이 이야기에요. 바로 이 계명은 예수님께서 인용해다가 쓰고 계시는 거예요. 제가 다음시간에 히브리어의 거짓증거라는 말과 오늘 본문에서 헛맹세로 번역이 된 그 헬라어의 그 상관관계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을 해드리도록 할 테니까. 오늘은 개괄적 내용을 한번 잘 숙지해 보세요. 먼저 이웃이라는 단어를 잘 정의를 해 놔야 거짓 증거가 무엇인지 쉽게 알 수 있죠? 이웃에게 거짓 증거 하지 마라라. 라고 했으니까. 그게 헛맹세하지 말라. 라는 말이거든요. 그러니까 이웃이 뭔지를 알아야, 이웃에게 하는 거짓 증거가 뭔지를 알아야, 헛맹세가 뭔지 알 거 아니에요. 사실은 맹세라는 말도 아니에요. 그거는요. 맹세라는 단어 자체는 우리 게 아닙니다. 맹세를 하고 그 맹세를 성취할 수 있는 이는 하나님밖에 없어요. 그 성경에도 그 맹세는 하나님에게만 쓰여요. 그건 제가 다음시간에 설명해 드릴 텐데, 그 이웃이라고 번역이 된 히브리어 레아는요. 그 라아 라는 동사에서 온 단어인데, 그 라아 가 양을 치다. 꼴을 먹이다. 라는 뜻이에요. 그 단어에 명사형이 레아고 히브리 사람들은 그 단어를 친구, 이웃, 형제의 의미로 썼어요. 그러니까 친구, 이웃, 형제의 그 단어 안에는 항상 그 대상이 필요로 하는 어떤 것을 제공을 하는 것이 함유되어 있어요. 내포가 되어 있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히브리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웃이나 친구는 서로에게 필요한 양식을 제공하고 그가 어려움에 처하지 않도록 잘 돌보고 섬기는 관계를 이야기해요. 그래서 그 예수님의 비유 중에 떡 세 덩이 빌리러 가는 친구 이야기 나오죠? 갖고 마치 지 떡처럼 내놔~ 그러잖아요. 히브리 사람들에게 있어서 당연한 거예요. 그것이. 예수님께서 친구는 벗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자, 라고 정의해 주셨어요. 누구에요? 예수밖에 없어요.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릴 수 있는 자는. 그래서 우리를 친구로 만들어 주신 거거든요. 그러면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서 진정한 이웃이 누구인지를 설명해 줬죠? 누가 이웃입니까? 내가 확 사랑해 버릴 라니까 그냥. 이렇게 물어봤더니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냐? 되물으셨잖아요. 내가 이웃이야~ 라고 이야기 한 거란 말입니다. 내가 이웃이야~ 너를 먹여서 강도 만난 그 자리에서 살려 내는 그 위급한 자리에서 살려내는 내가 이웃이다. 이런 뜻이란 말입니다.


그 예수께서 바로 우리의 이웃이요 형제로 오신 분이었어요. 그걸 가리킨 진술이란 말이에요. 히브리 사람들은요 아주 위급한 상황에 있는 사람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을 형제라고 그래요. 피를 나눈 그런, 그런 형제 brother가 아니에요. 히브리 사람들에 있어서 형제는요. 어떤 사람이 아주 위급한 상황에 처해 있어요. 그래서 내가 그 사람을 도와줄 수 있고 도와줄 마음이 들면 그 사람을 형제라고 그래요. 히브리 사람들은. 그런데 그렇게 도와줘서 그가 회복되어 나 같은 상태가 됐을 때 그걸 친구라고 해요. 그러니까 히브리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친구가 더 깊은 관계에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냥 놔두면 그냥 사망으로 떨어져서 죽을 수밖에 없었던 아브라함을 찾아가서 진리를 전하시고, 바울이 그러잖아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복음을 전하셨다. 그래요. 진리를 전하시고 그가 진리를 받아드리자 내 벗이라고 그래요. 친구라고 그래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갖고 있는 국어사전의 개념 이미 왜곡되어 그 진의를 상실해 버린 그런 개념들은 싹 비우시고 성경을 대하셔야 되요. 그렇다면 형제나 이웃, 그 친구가 위급한 상황의 상대에게 주어서 그를 살려내는 먹여서 살려내는 꼴을 먹이다. 양을 치다. 가 친구라는 단어 안에 들어있는 내용이라고 그랬잖아요. 이미. 그러면 그 친구, 대상에게 이웃에게 주어서 그를 살려내야 하는 것이 무엇이겠어요? 말씀이죠. 복음이에요. 진리란 말이에요. 그걸 섬긴다. 그래요. 그렇게 위급한 상황이 있는 이에게 말씀을 주어서 그를 살려 내는 거. 벌거벗은 그에게 말씀의 겉옷을 입혀 부끄러움을 모면하게 만든 거. 곧 굶어 죽을 그러한 사람에게 말씀을 하늘의 떡을 먹여서 살려내는 거. 이걸 섬긴다. 그래요. 다른 건 그게 떨어지면 또 금방 배고파지잖아요. 살리는 게 아니란 말이에요. 그거는. 유일하게 그를 살려낼 수 있는 건, 그가 육의 목숨이 끊어져도 살아날 수 있는 건 진리, 말씀을 전해서 그를 건져 올리는 거예요. 그래서 그가 진리가 되어 아 이거에요~ 라고 그 상태가 됐을 때 그를 내 친구라고 하는 거예요. 그렇게 교회 안에서 말씀을 주어 이웃을 섬기는 이들을 니콘 이라고 그래요. 집사라고 우리가 번역을 했는데, 예수께서도요 당신을 집사라고 부른 적이 있어요. 그게 집사라면, 누가복음 22장 24절 보세요. 예집사님이 뭐라고 그러셨는지 한번 보자고요.


24 또 저희 사이에 그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난지라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방인의 임금들은 저희를 주관하며 그 집권자들은 은인이라 칭함을 받으나 
26 너희는 그렇지 않을찌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큰 자라는 건 여기서 이제 성숙한 그런 사람, 그 사람들, 그걸 장로라고 불렀는데, 히브리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을 큰 자라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큰 자는 젊은 자, 사람 취급도 안했던 사람이에요. 젊은 자 같고,) 두목은 섬기는 자와 같을찌니라 (이게 집사에요.)
27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물었어요?) 앉아 먹는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

 
앉아 먹는 자는 그러니까 serving 받는 자죠? 서서 섬기는 자는? 서서 섬기는 자는 먹을 거 제공하는 이에요. 종이에요. 세상 속에서 이 코스모스 속에서는 앉아서 먹는 자가 크죠? 왜? serving을 받는 거니까. 그런데 예수님이 뭐라고 그래요?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 서서 섬기고, 먹이는 자로 있다. 이걸 집사라고 그래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다. 이게 집사라는 단어란 말이에요. 예집사님이에요? 예수님은 말씀으로 오셔서 기근 속에 형제를 먹여서 영생으로 살려 내시는 하늘을 섬긴 이로 이 땅에 오신 거예요. 그래서 당신을 디야코너스 집사라고 하시는 거예요. 말씀을 줘요. 그래서 일곱 집사라고 그랬죠? 일곱이라는 것은 숫자라기보다는 일곱 번 말하다. 맹세, 여기서 말하는 맹세, 다음 시간에 설명해 갈 건데, 그건 일곱 번 말하다. 언약, 기둥 이런 뜻이에요. 그래서 일곱 집사는 말씀을 전하는 자에요. 그래서 그 일곱 집사의 대표가 스데반과 빌립으로 딱 그려져 있고 그들이 말씀 전하잖아요. 죽어야 할 자들을 살리고 죽잖아요. 그죠? 그리고 사라지는 거예요. 집사가 하는 섬김은 그거라니까요. 그걸 구제라고 그래요. 성경이 말하는 구제는. 그 단어는 목사라는 의미로도 쓰이고, 종이라는 의미로도 쓰여요. 그래서 목사도 종이에요. 그리고 목사가 말씀을 전하면 그 사람을 디야코너스 집사라고 그래요. 아무튼 그렇게 상대를 디야코너이 섬기는 자를, 그런 이들을 이웃, 형제, 친구라고 그래요. 그리고 그가 이 섬김에 의해 진리로 살아 올라왔을 때 그가 나와 친구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 나라에는 다 친구이고, 형제이고 그런 관계가 성립이 되는 거란 말입니다. 율법이나 도덕, 윤리 이 세상에 물질 등만이 자신들을 살리는 떡이라고 믿고 있는 이들에게 그걸 먹는다고 살 수 있는 게 아니라, 그걸로 생명을 쌓을 수 있는 게 아니라, 하늘의 떡을 먹어야 살 수 있는 거야~ 이걸 섬긴다. 라고 해요. 이걸 가르쳐 주는 거를. 섬김은 그렇게 하늘의 떡, 말씀의 떡이 진짜 영생의 양식인 것을 아는 자들을 가리켜 금식하는 자라고 그래요. 그 사람들이 하늘의 떡이 진짜 양식이야~ 라고 했을 때 물론 이 땅의 떡을 먹죠. 먹으나 그것의 연연하지 않을 수 있는 거를 금식이라고 그래요. 단순히 밥 굶고 그러는 거 금식 아니에요. 성경에서는 그런 거 그런 율법에서 이야기한 건데 그것도 한번 속죄제 한번 하라고 했는데 열심히 일주일에 두 번씩 했어요. 자기들이. 그거 아니라니까요. 여러분. 여기도 다이어트 하느라고 저녁 굶으면서 저녁 금식한다고 그런 사람들 있죠? 아 제발 솔직해집시다. 뭘 저녁 금식이에요. 다이어트 한다고 그러세요. 뭘 밥 굶으면 하나님이 뭐 들어줄까봐 그러는 거예요. 땡깡 부리는 거예요. 지금 아니에요. 밥 열심히 드시고 살 좀 찌면 어때요. 괜찮아요. 뭐 다이어트 하려고 열심히들 그렇게 하세요. 내가 얘기했잖아요. 여자들 오십 너머 77 사이즈 이하는 직무유기. 어딜 오십 너머서 55 사이즈로 다니느냐고요? 이사야서 58장 보세요. 6절.


6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7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이게 금식이래요. 이걸 어떻게 이해하고 계셨어요? 여러분? 이걸 금식이라고 그래요. 내가 가지고 있는 하늘의 양식을 나누어 주는 거예요. 그 말은 그거 양식 아니야~ 그 사람도 금식하게 만드는 거예요. 이 땅의 것으로부터 금식하게 만들어 주는 거예요. 그걸 금식이라고 그래요. 그걸 알아먹으라고 속죄일에 한번 금식해~ 라고 한 거예요. 그 하늘의 떡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으로 이웃을 섬기라~ 이게 금식이에요. 그렇다면 오늘 본문으로 다시 돌아와서 네 이웃에게 거짓 증거 하지 마, 거짓증거 주지 마, 이게 무슨 말이겠어요? 엉터리 말씀으로 그들에게 헛것 주지 마~ 이런 뜻이에요. 그게 네 이웃에게 엉터리 꼴 주지 마~ 너 양 허투루 치지 마~ 이런 말이란 말이에요. 진리가 아닌 가짜 말씀으로 엉뚱한 배 채워주는 거, 그거 헛배 부르게 하는 거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람들의 우상이 자기 배가 되요. 그게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도둑질하는 거예요. 그 말씀이 아닌데 하나님이 주지도 않은 말씀을 지 맘대로 가져다가 엉뚱하게 주는 거. 이걸 도둑질이라고 그래요. 그래서 주님은 산상수훈에서 여덟 번째 계명인 도둑질 하지 말라와 아홉 번째 계명이 거짓 증거 하지 말라. 를 하나로 묶어버린 거예요. 그래서 산상수훈에서는 네 개밖에 없어요. 그러죠? 여섯째 계명부터 나오는데 네 개밖에 없다니까요. 산상수훈에.
여기서 잠깐 하나님을 도둑질 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짚어보고 넘어 가겠습니다. 
요한복음 10장 1절


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이건 아멘, 아멘이에요. 히브리어로 이건 진리란 뜻이에요. 진리로 말한다. 이런 뜻이에요. 여러분 예수님이 사생활이 있었을까요? 없었을까요? 사생활이 있었어요. 그래서 요한복음에 보면 그것까지 다 적으면 너희들의 구원에 별 도움이 안 돼~ 그러는 거예요. 예수님이 하신 일이 너무 많아서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다 못 적어~ 라는 말이 아니라 많은 삶을 이 땅에서 사셨고 행하셨는데 그걸 다 적어버리면 너희들의 구원에 도움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분의 삶 속에서 진리만 적었다란 뜻이에요. 그래서 예수님이 제자들과 이야기를 하실 때 항상 진리를 이야기 했을 때는 내가 진리로 이야기한다. 진실로, 진실로 이르노니,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이야기 하세요. 그런데 그 내용을 얼핏 보면 그냥 일상의 이야기에요. 그러나 그 안에 진리가 담겨 있다. 이런 뜻이란 말이죠.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양의 우리는 히브리어로 막벨라 라고 그랬죠? 막벨라 굴의 그 막벨라 라는 단어가 양 우리라는 말이라고 그랬잖아요.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도둑질하는 놈이다. 라는 말이에요.)


2 문으로 들어가는 이가 양의 목자라 
3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양 우리에서 끌어내는 거죠? 문으로 들어가서 거기서 끌어내는 거예요. 그 우리로 몰아넣는 게 아니라, 그런데 그 양 우리는 구약 성경에서 항상 성전을 지칭한다고 그랬어요. 그 성전에서 끌어내는 거예요. 율법주의 교회에서 끌어내는 거란 말이죠.) 
4 자기 양을 다 내어 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고로 따라 오되 
5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양들은 그 목자의 음성을 알아요. 그래서 거기에 쫓아오게 되어 있어요.) 
6 예수께서 이 비유로 저희에게 말씀하셨으나 저희는 그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니라 
7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진리로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내가 양의 문이야~ 나를 통과하지 않고 들어가는 놈들은 다 가짜다. 그러는 거예요. 지금. 다 도둑놈이다. 그러는 거예요. 절도요 강도라고 그랬으니까)
8 나보다 먼저 온 자는(이게 넘어간 자죠? 먼저 온 게 뭐에요? 예수님보다 먼저 온 게? 율법이잖아요. 제사잖아요. 그건 전부 절도요 강도니 하나님의 양들은 그거 안 듣더라. 그래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진리, 말씀 양식을 얻는 거예요. 예수를 통하여 들어가면)
10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꼴 먹이러 왔어~ 나 섬기러 왔어~ 이런 말이죠. 그 막벨라 굴, 성전에 누가 묻혔죠? 제일 처음 묻힌 여자가 약속의 후손,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신부죠? 그러니까 예수그리스도의 신부를 모형 하는 거예요. 사라는요. 사라가 처음 묻히고 하나님의 신부로 끌어당겨진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이런 사람들이 그 무덤 속으로 다 들어가는 거예요. 거기가 성도의 무덤이에요. 어디가? 성전, 양의 우리, 죽어서 나오는 거예요. 성전은. 교회는요 여러분이 여기에서 일취월장, 승승장구의 비결을 배우는 곳이 아니에요. 여러분은 여기서 죽는 거예요. 이 로컬 즉 지역교회는요 죽는 걸 목적으로 하고 있어요. 여기가 날로, 날로 부흥하고 굉장히 뭐 아름답게 소문이 나고 이러는 게 바람직한 거 아닙니다. 여러분. 지저분하게 소문나는 건 더 안 좋지만, 하여튼. 그런 건 우리의 지향점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러한 신부들의 무덤, 그 성전, 거기에서 우리는 나와야 되요. 신약 성경에서 그 무덤은 나그네의 무덤이라는 단어로 다시 등장하죠? 나그네들의 무덤, 그게 뭐에요? 하겔다마, 피밭, 예수의 피 값으로 제사장들이 어떤 밭을 하나 사서 여기를 우리가 나그네의 무덤으로 삼자. 그러죠? 이게 사도행전으로 가면 사도바울이 에베소서 장로들과 헤어지면서 예수의 피 값으로 산 교회라고 그런단 말이에요. 그게 막벨라 굴이란 말이에요. 그걸 성전이라고 그래요. 거기서 나오는 거예요. 어떻게? 죽어서 나오는 거예요. 그러니까 교회는 여기에서 우리의 자아의 독립성, 뭐 주체성 이런 것들이 계발되고, 뭐 성숙되어 보다 나은 훌륭한 신앙인으로 사람들을 생산해 내는 곳이면 안 되는 거예요. 여기서 아 나는 아니구나. 그리스도가 내 안에 들어오지 않았으면 나는 정말 티끌에 불과한 존재이구나. 하나님 어떻게 그 많은 우주 그리고 그 속에서 찾을래야 찾을 수도 없는 그 지구, 그 안에서 또 찾을래야 찾을래야 찾을 수 없는 한국, 그 안에서 서울 노량진 이 안에 아 어떻게 하나님이 나를 봐 주시고 내 이름을 불러 주십니까? 원래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그건 있을 수도 없는 거라니까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나를 구원 안 하셔야 맞아요. 이리로 가야 되요. 우리는요. 진리를 알면 알수록, 하나님이 내가 뭔데 나를 구원하셔야 되요. 아 하나님이 얼마나 크신 분이고 그 분이 얼마나 위대한 분인지를 우리가 진리를 통해 조금씩 알아 가면 그 분이 나를 구원 안 해야 맞아요. 그런데 그 분이 당신의 마음, 그 진리를 내 마음에 넣어서 나는 너 보는 게 아니라 내 마음, 내 사랑, 아가페, 그 뜻, 내 뜻 내거 찾는 거야~ 이렇게 나를 친구 삼아 주시니 그보다 더 엄청난 일이 어디 있겠느냐는 말이에요. 그게 뭐에요? 내가 죽는 거란 말이에요. 나는 아무것도 아니네요. 이게. 그 죽은 자가 사는 거예요. 그걸 모리아산 위에 이삭이 경험했던 거고,

 

성경은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자라고 기록해요. 그 무슨 말이냐면 죽어서 산 자란 뜻이에요. 죽어서 산자. 나사로가, 엘리야 사도가 뭐라고 그랬어요? 하나님은 돕는 자이다.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 무덤에서 나오는 거예요. 썩은 내 풀풀 풍기면서 피밭에서 나오는 거예요. 그런데 주님은 그 양의 우리에 들어가는 목자는 목사는 그 목자라는 단어가 목사라는 말이에요. 여러분. 그러니까 진짜 목사는 예수님 밖에 없어요. 내가 선한 목사다. 그러죠? 목자가 그 목사란 말이거든요. 그 역할을 하는 게 말씀을 전하는 자니까 목사라고 해주는 거예요. 진짜 목사는 반드시 예수라는 문을 통하여 들어가야지, 예수보다 먼저 온 거, 율법으로 들어가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들은 절대로 양들을 그 우리에서 끌고 나오지 못한다는 말이에요. 하나님의 양들을. 율법으로 안 된다는 거죠. 문은 오직 하나, 그리스도예수 밖에 없다는 거예요. 주님이 그러한 자들을 절도요 강도라고 부른단 말이에요. 도적질 하는 자. 양에게는 양의 꼴을 줘야 되요. 엉뚱한 거 먹이면 안 돼요. 소한테 소는 초식동물인데 뼈 갈은 거, 고기 갈은 거 이런 거 먹이니까 광우병 생기잖아요. 더 크게 키우겠다고 소에게 어떻게, 초식동물에 어떻게 고기를 먹이냐고요. 뼈다귀를 먹이냐고요. 그러면 안 된다는 말이에요. 양은 양의 꼴을 먹어야 되요. 그래야 그 양이 살아서 양문 밖으로 나올 수 있어요. 그런데 어린 양 예수라는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율법을 가지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들은 그 양들에게 먹일 것이 없어서, 엉뚱한 땅의 것을 먹이게 되어 있어요. 그거 먹고 결국 죽어요. 미쳐서 죽어요. 전도서에 나오죠? 인생은 평생 미친 마음만 품다가 미친 짓하다가 가는 거다. 그러잖아요. 광우병 걸려서 그러는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의 양들은 절대로 그들의 말을 안 듣는대요. 거기에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보려고 하는데 뭔가 불편해요. 나중에 못 듣겠어. 반면에 양의 탈을 쓴 가짜 양들은 도적들의 말만 들어요. 그리고는 그들을 쫓다가 결국 사망의 늪으로 영원히 빠져 버리게 되는 거예요. 예수님이 그걸 뭐라고 그러냐면 산 넘고 들 건너 물 건너 열심히 찾아서 하나 전도하다가 배나 지옥자식을 만드는 것이라고 이야기하세요. 열심히 노력 안한다는 거 아니에요. 산 넘고 물 건너가서 전도하러 간다니까요. 율법주의자들, 바리새인들이 데려다가 또 가르쳐요. 열심히. 그래서 배나 지옥자식 되게 만든대요. 여러분 이건 무서운 거예요. 요한복음 8장 43절 보세요.

43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을줄 알지 못함이로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에요.)
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진리가 아닌 걸 이야기하는 건 다 거짓말이에요.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45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 (세상은 진리를 말하면 절대로 진리를 안 믿어요. 누가 믿겠어요? 나는 여러분이 신기해요. 어떻게 여기 와서 앉아 있냐고.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나요. 어떻게 그 사람들이 여기 와서 듣고 있지?)
46 너희 중에 누가 나를 죄로 책잡겠느냐 내가 진리를 말하매 어찌하여 나를 믿지 아니하느냐 
47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누구에게 속했다는 거예요? 마귀에게 속했다는 거예요. 아비가 마귀면 그 진리가 안 들려요. 말라기로 가서 조금 더 제가 부연 설명 해드릴게요. 도적질이 뭔지. 말라기 3장 8절.
8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여기는 하나님의 것, 나의 것 이렇게 번역했지만 하나님을, 나를, 이에요. 히브리어로 보면요. 사람이 어찌 하나님을 도적질 하겠느냐, 그러난 나를 도적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그 도적질이 곧 십일조와 헌물이다. 그러는 거예요.)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여러분 이 이야기는요 네네 십일조 떼먹으면 도적질하는 거다. 이 말 아니에요. 거꾸로 이해하고 있는 거예요. 니들이 지금 하나님인 나를 도둑질하고 있는데, 그게 어떻게 나타나고 있냐면 십일조와 헌물로 나타나고 있다고 그래요. 십일조와 헌물을 마땅히 해야 하는데 니들이 몰래 빼돌려서 그걸 도둑질이라고 지금 하나님이 어떻게 그럴 수 있니? 이런 나쁜 놈들아 이러는 게 아니라고요. 그 행위를 도둑질이라고 그래요. 나를 도둑질 하는 거라고 그래요.) 
9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온 나라가 유대주의가 유대가 율법주의, 유대주의에 빠져 있었잖아요. 온 나라가 나를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나의 집, 성전에 진짜 양식이 있게 좀 해줘~ 진짜 양식이 뭐에요? 말씀, 진리라고 그랬잖아요. 그러면 가짜 양식은 율법, 그러면 온전한 십일조가 진짜 양식이라면 온전한 십일조가 뭐겠어요? 십일조가 뭐에요? 하나님께 드려져야 할 자 대신에 내놓는 속전이 십일조잖아요. 그래서 장자들은 다 내 거야~ 그랬을 때 레위 지파가 장자 대신 하나님께 바쳐졌죠? 그래서 장자들이 내 대신 네가 거기 있으니까 그거에 상응하는 돈을 낼게~가 십일조였잖아요. 그래서 그게 그들의 생활비였잖아요.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께 드려져야 하는데 우리대신 드려진 속전이 누구에요? 예수, 그러면 십일조는 뭐? 예수란 말이에요. 그리스도예수, 그러면 그 그리스도예수 그것으로 내 성전을 채워보라는 거예요. 진리를 채워보라는 거예요. 그게 내 집이 양식으로 가득 차는 것이란 뜻이란 말입니다. 그런데 그걸 모르고 그 진의를 모르고 십일조와 헌물이라는 율법으로 나를 섬기겠다고 하면 그게 무슨 밥이냐? 그게 무슨 양식이니? 그건 네들이 내 말을 나의 진리를 도둑질하는 거다. 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말라기의 이 이야기는. 그러니까 구약식의 십일조와 헌금은 하면 되요? 안 돼요? 안 되는 거예요. 그걸 하라고 사기치고 있잖아요. 이걸 예로 들어서, 거꾸로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걸 거짓말이라고 그래요. 그렇다고 헌금을 또 하지 말라는 건 아니에요. 재정이 몹시 어렵습니다. 더 많이 하게 되죠. 자기 거를 나를 다 달라는 건데 이제 하나님이 넌 내거야 그러는데 이 악당들이 하기 싫으니까 어 이제 안 해도 된단 말이에요. 그러고 반 이하로 뚝 떨어졌어요.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진짜 너희들이 그 진리를 알고 그 성전을 진리로 채운다면 그것 자체가 복인데 어떻게 내가 너희에게 복 안 주겠니? 이러는 거예요. 십일조 꼬박꼬박하면 내가 그걸 배로 튀겨 주게. 이런 말이 아니란 말이에요. 이게.


1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12 너희 땅이 아름다와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갑자기 13절 보세요.)
13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완악한 말로 나를 대적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무슨 말로 주를 대적하였나이까 하는도다


갑자기 말씀, 말로 이걸 결론을 내시죠? 그러면 하나님이 너희가 왜 나를 도적질해, 라고 했을 때 그 도적질은 결국 뭐에 관한 이야기라는 거예요? 말에 관한 이야기라는 거예요. 어떻게 이 율법, 말씀을 표피적으로 껍데기로만 알고 그렇게 십일조와 헌금에만 묶여서, 제사행위에만 묶여서 어떻게 나를 그렇게 곡해하고 거짓말쟁이로 만드느냐? 네들이 나를 도적질하는 거야~ 라는 말이에요. 말라기 이 얘기는. 자 그런데 거기에 Tm인 완악한 말은 하자크다바르에요. 하자크는 쪼개다. 수선하다. 다바르는 제가 말씀드렸죠? 여러분, 아마르와 다바르, 아마르는 진리 자체이고 우리가 알아먹을 수 없는 거예요. 그래서 그걸, 다바르 껍데기로 이야기해 주는 거예요. 레마와 로고스의 관계에요. 그것이. 다바르. 하자크다바르 그러니까 수선된 말, 쪼개진 이런 뜻이에요. 완악한 말이라는 게. 쪼개지고 수선되면 뭐가 되요? 진리가? 율법이 되는 거예요. 그 완악한 말로 네들이 나를 도둑질 하느냐~ 모세가 바로에게 갈 때 내가 말이 어눌합니다. 그러죠? 하나님이 뭐라고 그래요? 내가 말 줄게. 그러잖아요. 그거예요. 여러분. 우리는 우리의 말로 무엇을 전하기 시작하면 그건 멸망에 이르게 하는, 사망에 이르게 하는 엉터리 말이 되요. 완악한 말에 묶여서, 말씀을 율법으로밖에 볼 수 없어서, 십일조와 헌물이라는 율법으로만 하나님을 섬기려하는 자, 그들이 하나님을 도둑질하는 자라는 거예요. 그걸 오늘 본문이 거짓 증거라고 이야기해요. 거짓 증거.
그러니까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 하지 말라. 이건 다 같은 이야기에요. 같은 이야기에요. 그래서 율법은 결국 하나가 되는 거예요. 계속해서 에피뚜미아, 희생 제사 드리면서 제물을 도륙하며 율법을 신앙하는 게 뭐라고 그랬어요? 살인하다. 라고 그랬잖아요. 그게. 살인하지 마가 희생 제자, 습관적으로 도륙하지 마. 라고 그랬으니까. 그게 살인하고, 살인인 거고, 그리스도라는 신랑과 연합이 되어서 오직 은혜 그분의 한쪽, 지체로 이렇게 함몰되어지는 게 그게 구원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가 독립적 존재가 되어 선악구조의 그 안에서 선악의 주체가 되겠다고 하는 게 이혼이잖아요. 그걸 간음이라고 한다고 그랬죠? 그리고 그럴 옳은 걸로 전하는 게 뭐에요? 거짓 증거에요. 똑같은 이야기인 거예요. 이걸 올바로 알아 아 하나님 그러면 우리는 그렇게 우리 측에서 하나님께 드려서 어디에 도달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선물로 은혜로 받는 거예요. 이걸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는 거라고 그러고, 그걸 전하는 걸 사랑을 전한다고 그래요. 그래서 이 네 가지가 사랑으로 완료되는 거고 그것을 예수님이 앞에서 호리라도 갚지 않으면 절대 옥에서 못나와~ 가 호리가 뭐에요? 네 개중 마지막 것이라는 뜻이라고 그랬죠? quarter 그 사랑으로 완료하지 못하면 율법을 다 이해하지 못하면 니들은 율법의 감옥에서 못나온다. 이런 뜻이란 말이에요. 바울은 그렇게 하나님의 진리를 올바로 전해서 하나님의 아들로 탄생하게 하는 자들을 아비라고 불러요. 왜? 아들을 있게 하는 자가 아비잖아요. 씨를 심는 게 아버지죠? 씨를 심는 게 아버지에요. 그래서 씨를 심어 아들을 낳게 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 진리를 심는 자를 아비라고 그래요. 여러분 재미있는 게요. 히브리어 아버지란 말을 파자하잖아요. 그러면 하나님의 집이란 뜻이에요. 아버지라는 게. 하나님의 집이라고 쓰고 그걸 아버지라고 읽어요. 그러면 여러분이 지금 성령의 전이 됐죠? 그걸 뭐라고 그래요? 하나님의 집이죠? 그러면 여러분을 뭐라고 읽는 줄 알아요? 아버지라고 읽어요. 여러분을. 그래서 내가 아버지 안에 아버지가 내 안에~가 그 말이에요. 아버지가 뭐 내 안에 어떻게 들어오겠어요? 아버지라고 그래요. 그리고 율법을 그냥 가르치는 사람, 교훈을 주는 사람을 선생이라고 그래요. 몽학 선생. 고린도전서 4장 14절 보세요.


14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 같이 권하려 하는 것이라 
15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일만 스승, 물이오익파이다고고스, 이게 무수하게 많은 몽학선생이라는 뜻이에요. 몽학선생, 파이다고고스.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


많지 아니하다. 라는 게 우폴로스, 거의 없다. 에요. 그런데 어디서?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말씀을 가르친다고 하는 자들 중에 대부분이 일만 스승, 몽학선생인데 아들을 만드는 아비는 거의 없다. 우폴로스. 거의 없다. 그런데 마지막 때가 되면 사람들이 자기 귀에 재미있고 좋은 이야기, 듣기 쉬운 이야기를 해주는 선생, 몽학선생을 두기를 즐겨한다고 그러잖아요. 거의 없대요. 그러면서 바울이 뭐라고 그래요. 내가, 내가 낳은 아들, 디모데를 보낸다. 라고 그래요. 아들이란 말을 거기 쓰죠? 내가 진리로 낳은 아들을 너희에게 보낸다. 그러고 나서 뭐 한다고 그래요? 내가 각처에서 교회에서 아들을 만들기 위해 가르치던 것을 그 아들이 생각나게 할 거야~ 그러면 디모데가 뭐가 되는 거예요? 아버지가 되는 거예요. 여러분이 그렇게 되면 아버지가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가 되는 거예요. 그걸 뭐라고 그래요? 그리스도인. 그리스도들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삼위일체를 이런 거를 여러분이 그냥 막연하게 관념으로 갖고 있으면 안 돼요. 아버지가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이런 것들이 이 진리 안에서 이해되면 삼위일체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리스도예수께로 인도하는 몽학 선생이 필요 없다는 게 아니에요. 그래서 구약이 있는 거예요. 필요 없는 거면 그게 왜 있겠어요. 39권이나. 필요해요. 그런데 그 몽학 선생의 가르침 수준에 그냥 멈추어서 여타 다른 종교들처럼 다른 종교는 다 그냥 구약이에요. 그래서 성경과 비슷한 내용이 많은 거라고 그랬죠? 종교 경전에. 구약이에요. 그 수준에 멈추어서 청중으로 하여금 선악의 기로에서 이렇게 고민하게 만드는 거, 이거 잘하게 하는 거 아니에요. 여러분, 여러분이 저의 설교를 이 명쾌하고 유창한 설교를 듣고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착하게 살아야 되는데 그래 오늘부터 선하게 살아야지 결정했어요. 그건 선악구조 아래에 있는 거예요. 이해하세요? 그런데 생명은 뭐냐면, 선악구조 밖으로 나가는 거거든요. 여러분이 어떤 유명한 설교자나 아니면 어떤 뭐 도덕 선생, 강연자의 이야기를 듣고 야 그래 여태까지 내가 너무 악하게 살았구나. 이제 선하게 살아야지 라고 결심을 했다면 여러분은 선악구조 아래에서 역시 똑같이 마귀의 행사를 한 거란 말이에요. 잘 이해하세요. 그걸 의문의 직분, 죽이는 직분이라고 그래요. 갈라디아서 3장 23절 보세요.


23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가 율법 아래 매인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믿음이 오기 전에 율법 아래에) 
24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파이다고고스, 이게 일만 스승이에요. 파이다고고스,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25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몽학선생 아래 있지 아니하도다 
(거기 있으면 안 되는 거예요. 그런데 계속 설교자가 그 몽학 선생의 설교를 하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그건 교회 아닌 거예요. 건강한 교회라고 여러분이 착각하고 있는 그게 오히려 교회가 아닌 게 되는 거란 말입니다.) 
26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연합이죠?) 그리스도로 옷입었느니라 

아들이 되는 거예요. 여러분은. 교훈을 받아 그걸 내가 지켜야 하는 어떤 법이나, 그 규범으로 갖고 있게 되면 여러분은 아들이 아니에요. 그 때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된다니까요. 여러분 예수님이 이 땅에서 하나님을 하나님이라고 부른 적이 딱 한번밖에 없어요. 어디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그전에 전부 아버지라고 불렀다니까요 왜? 십자가에서는 죄인이 되어서 죽으셔야 되었기 때문에 그때 하나님이라고 부른 거예요. 하나님은 내 밖에 계신 분이고, 그분이 내 안에 들어와 진리로 계실 때 그걸 아버지라고 읽는 다니까요. 그때 그렇게 아버지가 내안에 있을 때, 내가 아들로 낳아진 거예요. 내가 그 때 아들이 되는 거란 말이에요. 그걸 구원이라고 그러고 그걸 생명이라고 그래요. 그 몽학 선생은 믿음이 오면 사라지는 역할로 주어지는 거예요. 그 몽학 선생으로 아들을 낳지 못하는 자는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 아니다가 바로 이 구절들의 진의란 말입니다. 거기서 멈춰버리면 죽음이에요. 그 전도자는 그 대상들을 아들로 낳아야 되는 거지, 율법의 종으로 만들어 버리면 안 되는 거예요. 두 주먹 불끈 쥐고 나가면서 그래 그리스도인답게 살아야지~ 그렇게 좀 사세요. 그렇게 살지 말라는 거 아니에요. 그런데 그것만이 교회의 목적이 돼버리면 설교의 목적이 돼버리면 그게 죽이는 직분이 되니까요. 그걸 거짓 증거라고 그래요. 다른 게 거짓 증거 아닙니다. 고린도후서 3장 6절 보세요.


6 저가 또 우리로 새 언약의 일군 되기에 만족케 하셨으니 의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 
영음 뭐라고 그랬어요? 말, 요한복음 6장 63절


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성령이에요. 이게. 성령이요 생명이다.) 생명이라


그 말씀이 그 분 안에 들어있을 때 여러분이 산 자가 되는 거예요. 자꾸 어떻게 나는 영생을 얻게 되지? 어떻게 나는 구원을 얻게 되지? 그런 거 궁금해 하지 마세요. 성령이 내 안에 계시다는데 어디 계시지? 여기 계시나? 여기 계시나? 여기 계시나? 성령이 무슨 꼬마 유령 캐스퍼입니까? 이렇게 들어 왔다. 나갔다. 성령은 말, 진리라고 그러잖아요. 뭐 성령이여 오시옵소서. 무슨 귀신 부르는 거랑 똑같아요. 굿할 때 귀신 부르는 거나 그 성령 집회에서 오시옵소서. 하는 거나 똑같아요. 두들기는 것도 거의 비슷하고. 정신이 쑥 빠지죠? 그냥. 요한복음 16장 13절 보세요.


13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자 성령은 진리다. 에요.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진리가 오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성령은 진리에요. 법으로는 절대 생명에 이를 수 없다는 말이에요. 
요한일서 5장 7절 보세요


7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8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


삼위일체도 이렇게 설명하죠? 셋이 합하여 하나라고. 여기서도 성령, 물, 피 이것이 증거 하는 것인데 이것이 셋이 하나다. 그래요. 셋이 하나다. 여기 보면 증거 하는 것을 영, 증거 하는 영, 성령, 푸뉴마를 물이라고도 하고 피라고도 해요. 그래서 성령으로 진리로 오실 그 주님이 물과 피를 흘린 거예요. 이게 나야~ 가르친 거예요. 그러면 피는 뭐에요? 유월절 어린양, 구약 때의 진리의 모형이죠? 제물의 피니까. 물은 뭐에요? 예수님이 십자가 지시기 전에 내가 물이야~ 내가 생수야~ 그랬잖아요. 자 피, 물, 성령, 피, 물, 진리로 이어져야지 그래서 이것이 이 현상계에 나타났던 진리로 이어져야지 그래서 이것이 이 현상계의 나타났던 모형을 없애버리고 아 그게 진리였구나. 라고 나에게 이해되어져야지 이게 거꾸로 가게 되면 뭐가 되요? 피가 물이 되면 저주가 되는 거예요. 애굽의 첫 번째 재앙, 그게 유월절 어린양, 고기 줘~ 로 다시 돌아가는 거예요. 그것이. 그게 아니라 여러분은 그 진리로 생명을 얻는 거예요. 진리로 구원을 얻는 거예요. 자 생각해 보자고요. 이 땅의 모든 것은 진리의 말씀인거고요. 진리의 말씀이어야 하고, 진리로만 이해되어져야 맞아요. 하나님은 영이세요. 안 보여요. 소리도 없어요. 그래서.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당신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나타나는 것으로 당신을 보이셔야 되요. 소리가 없으시니까. 그렇죠? 그걸 말씀이라고 그래요. 그리고 그걸 진리라고 한단 말이에요. 그래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말씀으로 오셨잖아요. 우리 눈에 보이는 분으로 오셨죠? 보이지 않는 영인 하나님을 설명하는 말하는 자로 와서 말씀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분을. 그 분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설명하는 거예요. 그 분의 마음, 아가페를 설명하는 거야~ 그래서 그 분을 말씀이라고 그래요. 현상계의 모든 것도 마찬가지에요. 하나님께서 당신을 눈에 보이는 것으로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이게 다. 그래서 이 전체가 다 말씀이에요. 그런데 그걸 그냥 현상계의 껍데기로만 보게 될 때 그게 진리가 안 되고, 그걸 세상이라고 그래요. 호코스모스, 세상이라고 그래요. 그러나 호코스모스로 진리를 하나님을 알게 되었을 때 그 호코스모스가 진리, 하늘이 되는 거란 말이에요. 그 호코스모스 안에는 예수도 들어가 있고, 성경도 들어가 있고, 나도 들어가 있고, 이 우주도 들어가 있고, 다 들어가 있어요. 그런데 여러분이 성경을 그냥 표피적인 문자로만 보게 되고 예수를 이천년 전에 우리를 위해 죽으신 어떤 분 그리고 그분이 지신 그 십자가를 여전히 내 밖의 어떤 타자로 놓고 그것을 논하고 있고, 이것을 설명하고 있고, 이걸 추억하고 여기에 감동하고 있게 되면 여러분은 그걸 진리로 못 받은 거예요. 그건 내 밖에서 그렇게 우리에게 놀람거리가 되거나 토론의 꺼리가 되거나 우리가 감동하고 추억하는 꺼리가 되어서는 안 되는 거예요. 그것이 이 역사 속에서 우리에게 말씀으로 말하려고 했던 게 내 안에서 이해되어지면 그건 없어지는 거예요. 아 그거는 우리에게 뭘 가르쳐주기 위해 데이코누미 쇼한 거였구나. 쇼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지난 주 설교 제목을 십자가는 쇼다. 그랬다가 마지막에 바꿨는데 왜? 저 놈이 드디어 미쳤구나. 그럴까봐. 그런데 진짜에요. 진리가 된 이들에게는 그건 아무것도 아닌 거예요. 아 하나님이 진리, 뭘 말씀하기 위해 골고다에가 그걸 세웠구나. 그 피라는 건 우리에게 뭘 설명하기 위해 하나님이 이 땅에 모형으로 흘려 낸 그런 거였구나. 거기에도 안 묶이는 거예요. 십자가에도 안 묶이고, 피에도 안 묶이고, 십자가 이전의 예수에게도 안 묶이는 거예요. 내 안에 그것을 가졌으니까. 진리를 가졌으니까. 그 때 내가 그 나의 섬김의 대상이요. 추억의 대상이었던 예수를 죽였다. 라고 하는 거예요. 그 때에. 그러면 내 안에 그리스도와 나가 사는 거예요.

 

그래서 십자가 지기 이전의 예수를 그리스도예수라고 안 불러요. 그냥 예수에요. 당시에 히브리 사람들이 제일 많이 갖고 있던 이름이 예수였어요. 그래서 예수야~ 그러면 10명 중에 8명이 돌아봐요. 그 이름 하나님의 이름이겠습니까? 가장 흔한 이름, 그래갖고 네셔널지오그래픽 TV 같은 데 보면 뭐 예수라는 이름이 적혀 있는 무덤 속에 항아리가 발견됐다. 그 옆에 마리아라는 그 신부의 무덤이 또 발견됐다. 그래갖고 예수님과 마리가 결혼했다고. 그 이름이 제일 흔한 이름이었어요. 철수, 영희. 참 시간들도 많아요. 성경이 이해가 안 가니까 그런 거라도 찾아다니는 거예요. 생각해 보세요. 잃어버린 법궤를 찾아서, 법궤가 예수, 진리를 설명하는 건데 진리를 알게 됐으면 그게 왜 있어야 되요. 하나님이 그래서 없애버린 거예요. 그런데 그걸 찾아다니느냐고요. 지금. 잃어버린 법궤를 성배는 왜 찾아다니느냐고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거는요. 그런데 이 인간들이 진리를 모르니까 그런 게 있으면 전부 우상으로 섬기려고 찾아다니는 거예요. 오죽하면 그 놋 뱀까지도 두고두고 닦아 가면서 우상으로 썼겠어요. 놋 뱀을. 그렇게 그 하나님께서 이 호코스모스라는 그 울타리, 경계 안에 담아 놓은 그게 진리고, 그걸 엉터리로 넘어 들어가 다른 게 가르치는 걸 거짓 증거라고 그래요. 그러니까 이 울타리를 넘어가면 안 돼요. 그래서 성경에 보면 한계, 경계라는 말이 굉장히 많이 나와요. 그거 넘어가면 안 된다고. 그거 도둑질하는 거야~ 오늘 본문에서 헛맹세라고 번역이 된 에피올케오가 그 내용을 다 담고 있는 단어에요. 에피 라는 접두어, 넘어가다. 올케오가 경계, 한계에요. 경계, 한계를 넘어가면 그게 도둑질이야~ 거짓 증거야~ 헛맹세야~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에피올케오. 그 올코스라는 단어가요 사실 호로스라는 단에서 나왔거든요. 그러니까 호로스는 뭐라고 그랬어요? 호호로스 산, 성전이라고 그랬죠? 그러니까 성전에 담아둔 하나님의 진리, 그걸 넘어가서 엉뚱하게 지 생각들로 율법으로 가르치는 걸 거짓 증거라고 해요. 이게. 에피올케오가 그 단어에요. 그 성전 넘어, 그 성전의 경계 밖, 그 성전의 한계 밖, 그거 넘어가서 가르치면 그거 거짓 증거야~ 이런 뜻이에요. 그 내용만 가르쳐~ 이런 뜻이에요. 고린도후서 10장 12절 보세요.


12 우리가 어떤 자기를 칭찬하는 자로 더불어 감히 짝하며 비교할 수 없노라 그러나 저희가 자기로서 자기를 헤아리고 자기로서 자기를 비교하니 지혜가 없도다 (이게 자기 안에 자기의 표준과 척도가 있어서 그걸로 자기를 평가 하고 자기를 스스로 칭찬한다는 거예요.) 
13 그러나 우리는 분량 밖의 자랑을 하지않고(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분량이 있어요. 그런데 그 밖에 자랑을 하지 않고 다른 이들은 하더라는 거죠?) 오직 하나님이 우리에게 분량으로 나눠 주신 그 분량의 한계를 따라 하노니 곧 너희에게까지 이른 것이라 
(너희에게까지 이른 게 뭐겠어요? 복음이에요.)
14 우리가 너희에게 미치지 못할 자로서 스스로 지나쳐 나아간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너희에게까지 이른 것이라 
15 우리는 남의 수고를 가지고 분량 밖에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믿음이 더할수록 우리의 한계를 따라 너희 가운데서 더욱 위대하여지기를 바라노라 
(제가 국어를 잘하는 편인데, 난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이게. 무슨 말인지 진짜 알고 읽으셨어요? 난 모르겠어요. 무슨 말인지. 이게.) 
16 이는 남의 한계 안에 예비한 것으로 자랑하지 아니하고 너희 지경을 넘어 복음을 전하려 함이라 
17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할찌니라 (이거는 알겠어요.)
18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니라


이 말은 시중의 주석집에 나와 있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이 복음을 전하는 곳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에 대한 변명이 아니에요. 내가 다른 사람 복음 전하는 곳에 가서 또 복음을 전한 건, 그들의 자랑을 내가 뺏으려고 한 거 그런 거 아니야~ 이런 말로 주석 집에 써 있거든요. 성경이 왜 그런 이야기를 적겠느냐고요. 이 귀한 책에다가. 여기 보면 분량과 한계라는 말이 자주 나오죠? 여러분 그 단어가 한계, 이게 카논 이거든요. 그게 케논이에요. 뭐에요? 정경, 성경, 그 성경의 하나님이 심어 놓은 진리가 있는데 그 밖의 어떤 것, 그걸 갖고 그것이 유례한, 유례하게 한 그것이 내어놓게 한 어떤 것으로 자랑하는 자들이 있다. 라는 거예요. 정경 밖의 어떤 것으로. 우리는 그것 밖의 어떤 것으로 자랑하지 않아~ 라는 거예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그 분량으로만 자랑해~ 라는 거예요. 복음으로만 자랑해. 그러나 그 밖의 어떤 것으로는 절대 자랑하지 않아~ 그 한계를 벗어나는 걸, 오늘 본문이 에피올케오 거짓 증거라고 한 거예요. 이 말이에요. 바울이 그걸 설명해 놓은 거예요. 이렇게. 그런데 16절을 보면 남의 한계 안에 예비한 것으로 자랑하지 아니하고 어구가 있어요. 알로트리오스카논에이스호토이모스카이카오마임 여기서 알로트리오스는요 알로, 알라가 다른 이거든요. 트리오스는 여러분이 잘 아는 트리오에요. 다른 셋이에요. 그냥 남이 아니라 다른 셋, 하나님이 셋이죠? 하나님의 숫자잖아요. 하나님의 숫자가 삼인데 다른 셋이 있대요. 그 다른 셋의 카논, 케논, 정경, 그 한계밖에 분량, 다른 셋의 정경, 그것으로 자랑하는 건 옳지 않다는 거예요. 우리는 그것으로 자랑하지 않아~ 라는 말이에요. 다른 셋의 정경이 뭐겠어요? 율법이죠? 카논, 그 말대로 그냥 척량 자로만 쓰는 거예요. 성경을. 케논은 그게 아닌데, 성경은 그게 아닌데, 카논, 케논이 측량 자잖아요. 측량 자로만 쓰이는 거. 심판의 도구로만 쓰는 거. 그게 다른 셋의 케논이에요. 개역 성경이 오히려 여러분의 성경이해를 방해하고 있는 거예요. 지금요. 그래서 교사가 필요한 거예요. 그 다른 셋, 피와 물을 진리의 성령으로 완성하지 못하게 하는 그 다른 셋, 그게 요한계시록 13장에 나오잖아요. 용, 바다짐승, 땅 짐승 이렇게. 그런데 용이 성부의 역할을 하고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이 죽었다가 살아난 것처럼, 성자의 역할을 하죠? 땅에서 올라온 짐승이 그 성자를 이게 진짜 우리가 섬겨야 할 존재야~ 라고 표적과 이사를 동원하여 그를 섬기게 한다고 그래요. 거기서 표적과 이사는 단순히 기적 뭐 이런 것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는 것을 가지고, 에요. 그게 sign이잖아요. 눈에 보이는 거. 거기에서 아주 유치하고 지저분하게 간 게 신비주의고, 눈에 보이는 것으로 성자를 이게 우리가 섬겨야할 거야~ 라고 이야기한다는 거예요. 그걸 666이라고 그래요. 777이 하나님이죠? 안식의 수, 하나님의 수, 777. 거기에 미치지도 못하면서 그대로 흉내 내고 있는 게 666이에요. 그게 마귀의 세력이에요. 그게 거짓 선지자, 적그리스도 그런단 말이에요. 성경이. 그러니까 적그리스도, 거짓 선지자는 뭐 미래의 어느 날 아마겟돈에 그냥 예수님과 전쟁하기 위해 창 들고 막 서있는 이게 아니라 아니 사도요한이 적그리스도가 지금 와 있다고 그러는데 무슨 미래에 언제 와요? 요한이 그러잖아요. 벌써 와있다. 그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을 왜곡하는 거. 아마겟돈이라는 거 자체가 므깃도의 언덕이라는 말이잖아요. 이스라엘이 전쟁하는 곳이에요. 거기에 이스라엘의 병기 창고가 있었다고요. 솔로몬과 다윗이 거기다가 병기 창고를 만들어 놓고 이스라엘은 말을 타고 전쟁을 하면 안 돼요. 왜? 이사야서에 보면 말은 곧 육체니 그런단 말이에요. 그래서 너희들은 말을 육체를 의지하지 마. 그래서 이스라엘은 전부 걸어서 전쟁하러 갔어요. 남들은 전부 말 타고 전차타고 전쟁하러 왔는데 전쟁이 일어났다 그러면 이스라엘 사람은 므깃도로 열라게 달려 가갖고 그 병기 창고에서 창 꺼내갖고 므깃도에서 기다렸다니까요.

항상 하나님은 하나님의 대적들을 동쪽에다 두죠? 동쪽.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저주받아서 갔다 그랬잖아요. 동쪽이 대적자라는 뜻이에요. 그 단어 자체가. 거기에서 대적 자들이 이스라엘을 정신 번쩍 들게 하기 위해 오면은 이스라엘을 므깃도 언덕, 아마겟돈에서 전쟁하게 했다니까요. 그래서 이들이 정신이 들면 이들이 다시 돌아갔어요. 그 이야기에요. 역사 내내 있는 이야기에요. 그거는. 그래서 그 아마겟돈, 거기에서 진리와 대적하는 자는 내 안에 있어요. 가장 먼저. 자 그 적그리스도, 거짓 증거, 거짓 선언으로 거짓 맹세로 결론 나게 만들어 버리는 그게 엔타이크라이스트 적그리스도에요. 그런데 여러분 성경을 예수를 그냥 표피적으로만 보면 여러분에게 그 성경이 적그리스도가 되요. 잘 이해하셔야 되요. 예수가 적그리스도가 되요. 여러분이 그 예수를 진리로 이해하지 못하면. 15절에 남의 수고라고 그러죠? 다른 셋의 수고, 거기서 그 수고로 번역이 된 코포스가 율법적 수고를 이야기하는 거예요. 율법의 짊을 지고 열심히 힘들게 낑낑대는 거를 코포스라고 그래요. 그래서 다른 셋의 수고, 남의 수고 이렇게 번역해 놓은 거예요. 그 다른 셋, 남의 수고로 뭘 자랑할 게 있냐고요. 세상이나 그들을 가치 있게 평가해 주고 박수쳐 주지, 성도들이 그걸 갖고 뭘 자랑할 게 있냐고요. 없단 말입니다. 그건 사망으로 가는 마귀의 멍에인 거예요. 여러분, 여러분이 지금도 여전히 예수님이 이 땅에서 행하신 일에 관심을 두고 감동을 받게 되면 여러분은 자꾸 예수 앞에서 면목이 없어서 뭔가 해야 되겠다는 강박에 싸이게 되요. 패션오브크라이스트 같은 거 보면서, 저렇게 아프셨어~ 어으 끔찍해~ 나를 위해 저렇게 십자가에 못 박히셨단 말이야~ 에휴 그런데 내가 아무것도 안하면 정말 이게 인간이냐~ 이렇게. 안 그래요? 여러분은 또 다른 어떤 짊을 지게 된다니까요. 예수님은 말씀으로 이 땅에 오신 분이란 말이에요. 그런데 요한복음이 그 말씀은 하나님이다. 그래 버린다니까요. 그 말은 뭐에요? 안 보이는 하나님을 예수님이라는 이 육이 그리고 그 분의 말과 그 분의 행하신 일들이 다 하나님을 설명하는 거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말씀이에요. 그러니까 십자가도 그렇고 그 분의 고난의 삶도 그렇고, 그 분이 행하신 기적, 말씀하신 비유, 그 모든 내용들이 다 말씀이에요. 그런데 거기에서 우리가 아 그거에요? 바로 그거, 그걸 얘기하기 위해 이렇게 많은 비유를 하시고 이렇게 많은 기적들을 보이셨고 그러면 그건 이젠 나한테 아무것도 아니라니까요. 여전히 은 이빨, 금이빨 이야기 하고, 무슨 손무시기 장로인지 돌아다니면서 병고치고 다니는데, 그런 거에 쫓아다니고 이런 거 보면은 이 사람들이 뭘 믿고 있나? 저는 지금도 과연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있나? 이런 생각이 들어요. 그게 왜 그렇게 뭐 이가 그렇게 신기하고 뭐가 그렇게 놀랍습니까? 병 나으면 안 죽어요? 곧 죽어요. 뭐 짜릿한 경험했어요? 전기가 그냥 몸에 한번 오세요. 내가 확실히 해 주게. 그냥 전기고문을 해서라도 아주 그냥~ 그게 여러분의 신앙에 어떤 도움이 되던가요? 솔직히 여기서 거품 물고 쓰러졌다 일어난 사람 많이 있을 거 아니에요. 그게 지금의 여러분의 신앙에 어떤 도움을 줬어요? 눈에 보이는 건 여러분의 영생에 아무런 도움이 안 돼요. 그런 거에 끌려 다니지 마세요.


내 안에 진리가 없고 믿음이 없으니까 자꾸 뭔가를 경험하고 싶은 거예요. 자꾸 뭔가를 듣고 싶은 거예요. 자꾸 뭔가를 보고 싶은 거예요. 아니에요. 가부좌하고 앉아가지고 음 하고 앉아 있어요. 그냥 좋아~ 뭘 중얼중얼 기도 안하고 그냥 가만히 앉아서 진리를 묵상하면 그냥 좋아~ 그게 꿀 송이 보다 단 말씀 묵상,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 한 말씀 묵상이 바로 그거에요. 뭐 그냥 열심히 읽었더니 너무 달어~ 너무 쉬워~ 거짓말이에요. 졸려죽겠드구만, 뭐 그렇게 달데~ 베고 자기도 좋아 높아서~ 뭘 그렇게 달아요? 그게. 그걸 진리로 이해했을 때 그게 너무 좋은 거지~ 너무 좋은 거지~ 자 그렇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으로 주시기 위해 다바르, 호코스모스, 레고 이렇게 껍데기를 주신 거, 그것들이 뭔가를 이해했을 때 우리는 아 이거구나. 하고 그것에서 자유로워지는 거예요. 그걸 아들을 죽인다. 라고 하는 거예요. 이제 생각해보세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의 후손을 주셨죠?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의 후손을 약속했을 때, 그 이삭 약속한 거 아니었어요. 교회, 우리, 아브라함, 너, 이해 못하니까 하나님이 그러면 하나님이 나에게 아들을 주신다는 말인가? 그 수준으로 내려가셔서 이삭이라는 아들을 다바르, 모형으로 준 거예요. 설명하려고. 그런 모형으로 주어서 아브라함이 아 그거였어요. 라고 알았으면 이 모형이 있어야 요. 없어야 되요. 그래서 모리아 산으로 끌고 올라가 죽인 거예요. 이건 죽어도 되는 거네~ 이렇게. 바로 그 예수를 죽이라는 얘기에요. 그것이 이 천년 전에 저 가나안 땅에 팔레스타인 땅에 오신 어떤 목수의 아들이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고 죽으셨대~ 그래 믿기지는 안지만 믿어야지, 믿어야 돼, 믿고야 말거야~ 아 난 믿는 거야~ 이렇게 해서 믿어지는 게 아니라니까요. 여태 그렇게 믿고들 계셨잖아요. 안 믿어지면서 그냥 믿는 것처럼. 믿고야 말거야~ 해서 믿는 게 아니라 내가 거기서 죽는 거라니까요. 그러면 믿고 자시고 할 것도 없어요. 그때 진짜 예수가 거기서 죽으신 게 되는 거예요. 아니면 그건 그냥 관념일 뿐이에요. 쇼라니까요. 성도는 그렇게 역사 속에 잠시 오셨던 그 아들을 추억하는 게 아니라 그 아들 안에서 은혜로 사랑으로 아들이 되는 거예요. 아들이 되는 거예요. 아들이 된다는 건 내 안에 아버지를 갖는 거예요. 그러면 여러분이 또 아버지가 된다고 그랬죠? 그러면 뭐 세상에 두려울 게 뭐가 있어요. 그게 아니라 여전히 미안하고 겸연쩍은 마음에 아 뭐라도 좀 해야지~ 그래서 그냥 가기 싫은 새벽기도 맨 날 가고, 집 팔아서 헌금하고 그러다가 지옥 가는 거예요. 그러면 정말 자유가 뭔지 깨달을 수 가 없어요. 그렇게 할 때는 뭔가 내가 하나님 앞에서 떳떳한 것 같고,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정작 사망이 여러분을 부지불식간에 덮쳤을 때 두려워서 미쳐요. 그 때는 내가 아무것도 할 힘이 없을 상태이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방종 하라는 거 아니에요. 그래 내가 이제 진리가 되었으니 그러면 이제 내가 뭐 술을 마셔도 그게 무슨 흠이 되겠으며, 그래 내가 욕지거리를 해도 그게 무슨 큰 흠이 될까? 여러분 그건 자유라고 하지 않아요. 무식한 거지. 자유는 그 법을 밟고 올라가는 거예요. 거기에 흔들리지 않게 되는 거, 그래 맞아~ 내가 지금 뭐 그렇게 사는 거, 하나님이 그거 카운트 안하는 거 알아 왜? 내가 진리가 됐으니까. 그렇지만 나는 그 사랑을 또 흘려야 되잖아~ 그런데 다른 이들이 아직 믿음이 없는 이들이 나의 그걸 보고 그걸 안 듣거나 아니면 내가 그들이 진리가 되는데 방해가 되면 어떡해? 물론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죠? 그러나 우리의 마음속에 그런 마음이 어떻게 안 생기냐고요. 그래서 그까짓 거 그러면 이게 더 소중하니까. 안 해도 돼. 이걸 자유라고 그래요. 그냥 지 맘대로 막 살아버리는 걸 자유라고 하지 않는다니까요. 적그리스도, 거짓 선지자는 다른 게 아니에요. 거짓 증거, 완악한 말, 그것으로 사람들을 율법으로 묶어버리는 거. 그게 적그리스도에요. 요한이서 1장 7절 보세요.


7 미혹하는 자가 많이 세상에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것이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


여기에서 에이셀코마이 임하다. 라고 번역이 된 이 단어는 현재형이거든요. 그러니까 옛날에 예수님이 육체로 오셨던 것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이 육신들 안에 그리스도가 임해 있다. 라는 걸 부인하는 거. 임하지 않았으니까 섬겨야 되잖아요. 미안해 해야 되고 끊임없이 감동해줘야 되고 그걸 적그리스도다. 라고 한다고 그래요. 그걸 미혹한다고 그래요. 
자 마태복음 24장 23절 보세요.

23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왜? 네 밖에 있는 게 아니니까.) 
24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며(표적과 기사, 세미온테라스는 겉으로 드러나는 것으로 라는 거예요. 표피적인 것으로. 호코스모스로.)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25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26 그러면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광야는 어디? 교회.)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어디 있어요? 내 안에 있어요. 그래야 그리스도인이에요. 그런데 내 안에 그리스도가 있다. 라는 건 뭐다? 어디에 계실까? 진리의 말씀이 나에게 이해되어 졌을 때 그리스도가 내 안에 있다. 그러는 거예요. 영지주의적 설명하는 게 아니에요. 여러분. 잘 알면 되? 걔네들은 아는 게 뭔지도 몰라요. 아는 건 그렇게 지식으로만 아는 걸 이야기하는 게 아니에요. 여러분. 설명할 수 없지만, 그 상태 있는 이들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거에요. 이심전심. 영화미소. 요한일서 4장 1절 보세요.

1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영은 곧 뭐다 그랬어요? 요한복음 6장에서 말. 말을 다 믿지 말고 말들이, 그 말이)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 
2 하나님의 영은(말은) 이것으로 알찌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여기 그리스도예수라는 말이 나오죠? 십자가 이후에요. 그러니까 이거를 예수님이 옛날에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으로 이해하면 안 돼요. 그리스도예수가 에이스, 육체 안으로 오신 것, 그걸 시인하는 것이 하나님께 속한 말이다. 에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3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이것도 여기 빼먹고 번역을 해 놨는데, 육 안으로 육체 안으로 오신 그리스도예수를 시인하지, 여기서 그냥 예수라고 써버리면 안 되는 거예요. 사실은요. 그리스도예수여야지, 원문은 그리스도예수에요. 육체 안으로 들어오신 그리스도예수를 시인하지 않는 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말)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이제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요한의 시대에 그게 벌써 있었단 말이에요. 그 말이. 가짜 말, 거짓말, 거짓 증거, 그래서 주님이 이 땅에 떠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산에다 모아놓고 얘기하는 거예요. 거짓 증거 하지 마. 거짓말 하지 마. 그러는 거예요. 그걸 뭐 그냥 헛맹세하지 말라고 그랬다고 결혼식 때 맹세 안 하는 청년 봤어요. 내가 주례를 서는데 성경책으로 때릴 뻔 했다니까. 그건 나를 가르치겠다는 거 아니에요. 지금. 하여튼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그렇게 법으로 읽어갖고 그렇게 지키면 잘하는 건지 알아요. 따라서 우리는 하는, 땅, 예루살렘, 머리 이런 것들을 가지고 거짓 증거 하지 말고 진리는 진리라고 얘기하고 아닌 건 아니라고만 이야기하면 되는 거예요. 쓸데없이 딴 소리하지 말고. 이게 나이 나이 우 우 에요. 오직 너희 말은 너희가 할 수 있는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게 나이 나이 우 우 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번역을 해 놔갖고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렇게 해 놓으니까 뭘 어떻게 하라는 건지. 나이라는 말이 진리라는 말이에요. 나이 나이 진리는 진리라고 말하고, 우 아닌 건 아니라고만 이야기하면 되. 다른 거 거짓 맹세 할 필요 없어. 하늘, 땅, 성전, 예루살렘, 머리 이런 것 두고 그런 걸로 그게 다음 시간에 제가 설명할 건데, 그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호코스모스로 준 것들이에요. 그걸 가지고 표피적으로 엉뚱한 얘기하지 마. 이거에요. 그냥 나이 나이 우 우 그것만 얘기 해~ 이런 뜻이에요. 여러분 말씀 속에서 그 호코스모스 속에서 진리를 배우면 되는 거지. 그것을 법으로 읽어서 거짓 증거, 거짓말을 전해서 다른 이들을 율법의 짊 속에 던져 버리면 안 되는 거예요. 난 뭐 한국에서 청년 목회 한다는 사람들 청년들 막 선동해 갖고 직장도 때려 치게 하고 어디 장기 선교사들로 막 보내고 뭐 일 년에 한 다섯 번씩 저 아래로 그냥 장기 선교 가갖고 얘들 그냥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이렇게 다니게 하는 그 사람들 보면 야 어떻게 사역이 진짜 몰라서 저러는 건가 아니면 얘들 선동해 갖고 지 세력을 키우려고 저러는 건가 아주~ 그거 아니에요. 여러분. 그거 진짜 거짓 선지자에요. 청년의 때가 가장 선동당하기 쉬운 때거든요. 얘 네들은 불만 살짝 떼 주면은 목숨도 바치려고 그래요. 그리고 그렇게 몇 명 늘어나면 청년 목회 하는 건 쉬어요. 알아서 굴러가요. 거기다가 스타 몇 명만 심어주잖아요. 물 좋다고 사람들 왕창 몰려요. 방법을 몰라서 안하는 거 아니에요. 하나님이 두려워서 안 하는 거지. 그런 거 부러워하지 마세요. 그리고 두 주먹 불끈 쥐고 뭔가 해보겠다. 이거 보다는 그래 어떻게 내가 이 진리를 깨닫게 되었지? 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며 가세요. 그러면 되는 거예요. 그 이 현상계에 물론 힘든 거는 알아요. 저나 저희 집사람도 뭐 정말 암흑 같은 동굴, 여러분이 겪고 계시고 또 겪으시는 것 그것 이상으로 통과해서 여기까지 왔어요. 지금도 마찬가지에요. 우리는 죽는 날까지 이 현상계 속에서는 그렇게 가게 될 거예요. 그러나 그 때마다 진리로 자유 하는 거예요. 거기서 벗어나는 거예요. 그리고 이렇게 많은 동지들이 함께 가는 동지들이 있다. 라는 걸로 위안을 얻으시면 되요. 하 지금 다 이해가 안 가는데, 괜찮아요. 매주 한 시간 반씩 이렇게 설명해 드릴 거니까. 조금 있으면 이해가 갈 거예요. 이게 무슨 말인지.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은혜를 감사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도대체 우리가 어떻게 이걸 알게 됐습니까? 어떻게 우리 안에 그 그리스도가 이렇게 들어오시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지 않으셔도 우리는 아무 말을 할 수 없는 그런 자들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이 감히 우리가 추측도 못하고 상상도 할 수 없는 그 하나님이 우리를 벗이라고 불러주신다니, 하나님 다른 거 잃어도 괜찮습니다. 그 사실만 꼭 우리 마음속에 간직하고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훌훌 털고 떠날 수 있게 도와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