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목사/산상수훈

산상수훈 25 거꾸로 듣는 사람들 마 5:38-42

은바리라이프 2013. 10. 17. 09:15

산상수훈 25 거꾸로 듣는 사람들





5:38-42

38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39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40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41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42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우리는 지난주까지 살인과 간음 그리고 거짓증거에 대한 주님의 가르침에 대해 공부를 했습니다. 넷 중에 셋을 공부한거지요. 이제 하나 남았습니다. 마지막 네 번째가 에스카톨로스 코드란테스, 호리라도 그 부분에서 그게 무슨 말인지 공부했지요? 에스카톨로스 코드란테스 이제 마지막 하나로 완성을 해야 돼요. 마지막 하나가 남았어요. 근데 그건 43절부터 나옵니다


그러면 우리가 오늘 함께 읽은 38절부터 42절까지의 이야기는 어떤 내용일까요? 앞에서 말씀하신 셋을 우리가 우리의 힘으로, 우리의 열심으로, 우리의 능력으로 지켜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주님께서 당신 스스로 우리를 위하여 하실 일에 대하여 삽입시켜 놓은게 오늘 본문의 내용이에요. 그로 말미암아 이제 43절 부터에 고 완성의 부분 사랑이 이제 완료가 되는 거지요. 따라서 오늘 본문은 십자가로 이해를 해야지 이거해 이거해 이거해 그랬쟎아요. 살인 하지마 간음 하지마 거짓증거 하지마 그랬잖아요


근데 우리는 그걸 운명적인 어떤 생내적 성향으로 갖고 태어난단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 힘으로 그것을 안 할 수 가없어요. 그러면 그걸 사랑으로 완료를 할 수가 없잖아요. 그럼 그 중간에 뭐가 있어야 되요? 십자가, 이 내용은 십자가란 말이에요. 그 십자가로 풀어야지 동해보복법에 관한 이야기로 보시면 안되요


동해보복법이 뭐에요? 동일한 해로 보복을 해라 이런말, 동해보복법 이지요 그게. 상대의 눈을 상하게 한자는 눈을 뽑아 버리고, 실제로 그랬어요 고대시대 때. 실수로 눈을 다치게 했잖아요? 그러면 그 사람의 눈을 뽑게 만들었다구요. 그 얼마나 아팠을까요? 여러분. 실수로 눈 다친것은 어쩔 수 없다지만 , 순식간에 되는 거니까, 근데 이제 뽑을꺼야 그런 다음에 그거를.... 근데 그게 실지로 법 이었다니까요. 동해 보복 법. 상대의 손을 상하게 한 자는 손을 짤라 버려요. 지금도 이슬람국가들에서는 동해 보복법이 부분적으로 시행이 되고 있어요. 그래서 막 손목을 작두로 짤라 버리고, 채찍으로 치고 하는 그런 벌들이 지금도 있단 말이지요


그건 그들이 구약을 문자 그대로 이해를 했기 때문이에요. 성경에 근거하여 그런 법을 내리고 있는 거예요. 이슬람 사람들이 믿는게 알라지요그게 알레프, 신 이예요. 하나님이에요. 여러분이 살인과 간음과 거짓증거의 문제에 관해서 공부를 해서 아시겠지만 주님은 그 3가지 말씀을 하실 때, 시작 하실 때 마다 꼭 붙이는 단어가 있어요아쿠오 너희가 들었다 너희는 들었지? 어떻게 들었는지는 몰라요 하여튼 너희는 들었다. 그리고 레오 그리고 아르카이오스라는 단어가 요 3단어는 꼭 들어가 있어요 거기에


레오는 여러번 설명해 드렸으니까 아시죠? 레마의 동사형 레마로 말 했어 내가 말 했어 옛사람들에게 그렇게 말했어. 여기서 옛사람이라고 번역된 말도 아르카이오스는 그냥 예전에 제가 엔아르케 요한복음에 엔아르케 태초에 라는 단어 설명해 드리면서 그게 창세기 1 1절에 베레쉬트와 같은 단어라고 설명을 해 드렸잖아요. 거기서 우리가 공부했던 그 단어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땅의 것으로 하늘의 성전을 설명하기 시작하셨다'가 베레쉬트잖아요. 그러니까 내가 전에 시작부터 베레쉬트, 그때부터 그 보이지 않는 어떤 것을 땅의 것으로 설명하기 시작한 그때부터 너희들에게 '레오' 말했어


그러니까 창세기 1 1절 부터 이 계명은 계속 있어 왔던 거예요. 내가 말 했어 그리고 고 앞에 코티라는 왜냐하면 이라는 단어가 붙어 있어요. 내가 말했기 때문에 너희는 들었어. 그런데 어떻게 들었냐면은 거꾸로 들은 거예요. 그래서 너희가 들었으나 그말은 이거였다 라고 지금 주님이 설명해 주는 거잖아요. 계속해서. 너희는 들었어 내가 시작부터 그렇게 이야기했기 때문에. 그런데 너희는 반대로 듣더라지요사람들이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어떻게 들었어요? 항상 반대로 들어요


살인 하지마 '우푸오뉴오' 이거는 희생제사 드리지 마 라는 거랬지요. 

그렇게 말씀 하시면 진의를 담아 그렇게 하나님이 율법을 주시면 사람들은 '희생제사 해'로 듣는 다구요.

그러니까 구약 내내 희생제사 한거 아니에요. 보세요, 어떻게 들었다는 거에요? 희생제사 해로 들었잖아. 그래서 그 밑에 그건 이런 이야기야 라고 설명을 해 주신거 아니에요


지금 계속해서 그런 방식으로 이렇게 이야기가, 네러티브가 진행 되어 오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간음 하지 말라 우모이큐오 라고 말씀 하시면 그걸 반대로 듣고 계속해서 엉뚱한 율법에 행위를 내어 놓으면서 세상과 간음 하지요? 거꾸로 듣는단 말이에요


거짓증거 하지마 우 에피올케오 그러면 어 그래요 이제 부터는 참된 증거만 할께요 라고 하면서 열심히 거짓 증거를 하잖아요 자기눈에 보이는건 껍데기 뿐 이거든요 그러니까 진짜 참 된거 이야기 할게요, 해 놓고는 눈에 보이는 걸 이야기 하는 거예요. 그게 거짓말 이라고 한다고 했잖아요


그렇다고 그게 나뿐건 아니에요 여러분. 사람은 그럴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하나님 측에서 어떤 일을 행하셔야 하는 거예요 그리고 그 일의 결과로 그들의 그 죄, 거꾸로 듣고 하는 그 죄가 오히려 진리로 완성이 되는거란 말이에요. 하나님이 행하신 어떤 일 때문에 인간들이 그걸 제대로 알아듣고 제대로 해 버리면 안돼요. 그러면 피조물 아니지 하나님이지요. 하나님 측에서 어떤 일을 하셔야 그들이 원래 그럴 수밖에 없는 그것이 진리로 완성이 되는 이 형국이 구원이란 말입니다.


예를 들어 볼게요 살인 하지 말라의 그 구조들 헬라원어로 보면 아쿠오 들었다 예요 

'호 티레오 호 아르코마이오스 우 포뉴오' 에요. 순서대로 직역을 하 면, '너희는 들었다 왜냐하면 내가 도륙하지 말라고 시작부터 말을 했기 때문이다' 내가 그렇게 말을 했기 때문에 너희는 분명히 들었어 그러니까 하나님은 창세기 1장부터 도륙 하지마 이 얘기를 했다는 거예요. 너희는 도륙 하지마, 희생제사 드리지 마, 선악과 따 먹지마 


이게 도륙하는 거니까 희생제사 계속 드리는 거니까. 자기가 선악판단의 주체가 되어서 어떤 일을 할려고 하는거. 근데 그 죽여서 드리는 그 제사 이거는 이 반복하여 드리는 이 포뉴어 가 가지고 있는 뜻이니까 반복하여 습관적으로 뭔가를 죽여서 도륙하여 드리는 제사가 포뉴오 잖아요. 그거 하지마가 살인하지마로 지금 이렇게 번역이 된거 아닙니까!


근데 그 이야기를 듣고 어떻게 들어요? 희생제사 드려요로 듣잖아요. 듣고서 계속 희생제사 드리다가 '아- 짐승의 제사가 어떻게 나의 죄를 대속을 해? 이게 그 이야기가 아니겠구나! 하나님이 준비하신 제물에 의해 영단번에 드려지는 그 제사, 그 제물 그것이 나를 살리는 거로구나!' 라고 알게 됐어요 그렇게 알게 되어 그 죽여 드리는 제사를 누가 완성해 버려요? 누가 끝내 버리죠? 예수님이 자기를 죽여서 제물로 죽여서 끝내버리지요.


그러면 그 다음부터 이렇게 해서 '이 죽여서 드리는 제사 우리가 생래적으로 운명적으로 갖고 있는 성향에 의해 요렇게 밖에 할 수 없는 이런 걸, 예수님이 완료해 버리셨구나'라고 그걸 알게 되는 걸 뭐라고 그래요

진리를 아는걸 살아난다 라고 하는 거예요. 생명을 얻었다. 산다 라고 하는 거거든요 그러면 그렇게 해서 알고 살아난 사람은 이제 어떤 제사를 드릴까요? 바울이 이야기 한 산제사를 드린단 말이에요 이젠. 죽여서 드리는 제사 안 드린단 말이에요. 살아있는 진리로 살아있는 나를 드리는 거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그 희생 제사를 드리는 거, "살인 하지 마"라고 했을 때 그것을 거꾸로 알아듣고 계속해서 도륙하고 희생 제사를 하면서 사도 바울은 그것을 죄라고 그래요 분명히. 그런데 그걸 통하여 그 진짜 희생제사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하나님이 하나님을 위하여 준비하시고 드리는 제사가 뭔지를 알면 그게 바로 생명이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그것도 악이 아니라니까요.


그러면 나중에 가서 여러분이 진리 안에 탁 들어 앉자나요 그럼 이런 마음이 들어 아-- 죄라는건 원래 없었던 거로구나 위험한 발언인데 잘 생각해 보세요 집에 가서 이게 무슨 이야기 인지. -- 이게 진리를 알게 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하나님이 준비하신 과정 속에 있는 어떤 것이였다면 그 희생 제사를 바울이 죄라고, 그게 죄야 라고 반복하여 이야기를 하다가 율법이 죄냐? 라고 한거 이 뜻을 여러분이 이해하면 되요


-- 그게 진리를 알게 하기 위해 하나님이 준비하신 과정으로 준비하신 어떤 거였다면 아--원래 그런건 없는 거였구나! 이것을 알게 된다 말이에요. 그랬을 때, 여러분이 도덕과 윤리나 사회법으로 사람들이 규정하고 판단해 놓은 거기에서 그것으로 사람들을 정죄하거나 심판하거나 그러지 않을 수 있고 그 속에 있는 나를 용서 할 수 있는 게에요


자 그렇다면 그 잘못 들음과 아쿠오 그 잘못 들음과 살아남 사이에 어떤 사건이 있어야 되요 그렇죠?

하나님이 하신 어떤 일이 있어야 되잖아요? 그게 오늘 본문에 내용이란 말이에요. 이 말씀은 레위기에서 인용된 말씀이에요


레위기 24 19 20

19 사람이 만일 그 이웃을 상하였으면 그 행한 대로 그에게 행할 것이니 

20 파상(꺽다, 부러뜨리다)은 파상으로(똑같이 부러 뜨리란 말이죠),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을찌라 

남에게 손상을 입힌 대로 그에게 그렇게 할 것이며


하나님께서 사람이 이웃에게 한 그대로 갚아 주겠다고 말씀 하세요 이건요 이스라엘에게 율법이 주어지기 훨씬 전에 있었던 함무라비 법전의 핵심 내용이에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율법이 주어지기 전에 이미 법으로 존재 했던 거라니까요. 바벨론의 법이에요 하나님은 항상 그래요 사람들이 익숙한 법을 갖고 진리를 설명하는 도구로 사용하세요


그들이 소를 신으로 아니까 소를 갖고 신, 나를 설명하지요. 얘 그 소가 나야 이렇게.

그래서 성경에 소가 그렇게 나오는 거예요


할례? 하나님이 명하시기 전에 고대근동에서 이미 하던 거예요. 그걸 갖고 그게 진짜 뭔지 알어? 를 설명 하시는 분이 하나님 이잖아요. -- 고대근동에 익숙하게 있던 그 법을 갖고 율법, 진리를 설명 하는 거란 말이에요.


20절에 보시면요 파상 쉐베르 꺽다 부러지다 에요. 그 꺽다 부러지다 파상은 파상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라고 해요언뜻 보면 동해보복법 같아 보이지요? 함무라비 법전과 다를 바 없어 보이지 안잖아요 그러나 19절을 제대로 이해를 하면 그 내용이 완전히 다른 내용임을 알 수 있어요. 19절이 원리거든요. 이 원리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갚아. 이거거든요. 그러니까 19절을 잘 이해를 하셔야 그 다음 절이 이해가 가는 거란 말이에요.


19절에 그 이웃은 아미테 에요. 그 단어는 교제하다 라는 단어에서 온 거니까 (친교하는 이웃이 아닌)교제하는 이웃이 뭐에요? 코이노니아 하는 이웃 말씀을 갖고 교제하는 이웃을 가르키는 거에요. 그 이웃에게 상하였으면 이라고 번역이 된 단어는 '나탄 뭄'이거든요. 그러니까 '나탄 넘겨주다' 무엇을 넘겨주냐면, 말씀으로 교제를 하는 이웃에게 '뭄', '점, , 얼룩, 더러움'이란 뜻 이예요. 말씀으로 교제해야 하는 아미트 이웃에게 점과 흠, 더러움으로 넘겨주면 이런 뜻 이예요. 그러면 너도 그 더러움으로 만들꺼야 이런 뜻 이예요 


여기에 앗싸 동사가 있거든요. 점과 흠으로 그 교제하는 이웃에게 넘겨주면 니가 넘겨주면 너도 그 점과 흠이야 점과 흠으로 되게 만들꺼야 이거에요. 그러면 끝나는 거에요. 그렇다면 그 이쉬 라는 그자가 거기에 이쉬 그냥 이것 이렇게 해석하면 되요 남자도 아니에요 사실은. 이쉬 라는 자가 교제를 명목으로 다른 이에게 넘겨주어 그렇게 하나님으로 부터 보응을 받게 되는 바로 그거. 그 뭄이 뭘까? 그걸 알아야 되겠지요


여러분. 점과 흠, 그 움, 점과 흠이 있는 제물은 하나님이 안 받는다고 그러지요? 그러면 점은 뭐고 흠은 뭐에요? 점 있는 분들 계시죠? 몸에 그 점은 날 때부터 갖고 나오는 거예요 그걸 점이라고 해요. 그런데 그 깨끗함에 티로 존재 하는거 근데 그게 날 때부터 갖고 나오는걸 점이라고 하고 그 날 때부터 갖고 나오는 그 생래적 성향을 갖고 어떤 일을 행하여 그게 생체기가 되면 그걸 흠 이라고 해요.


그러니까 흠 이라는건 후천적으로 태어난 이후에 만들어 지는거고 점 이라는건 내가 생내적으로 갖고 나오는 거에요. 그 점에 의해 흠이 만들어져요. 고걸 움 이라고 해요. 하나님은 고게 있으면 그걸 안 받으세요. 제물에 그게 있으면 안 받으세요. 교제 한다고 하면서 인간이 아담들이 생내적으로 갖고 나온 그 선악구조 그걸로 어떤 것을 행하여 그걸 만들어 내면 그게 다 흠 이에요 그걸 갖고 있는 제물은 안 받아 이거에요. 그게 움 이에요.


'나탄 뭄 으로 넘겨지면 너도 그렇게 만들 거야'에서 뭄이 그거란 말이에요.

따라서 레위기 24 19절은 동해보복의 원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에 관한 언급 인거에요. 깨끗한 것이 아닌 더러운 것을 가진 자 그리고 그것을 이웃이라는 이들에게 더럽게 넘겨주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취급 하실까?를 설명하는 내용이란 말이에요.


원래 하나님께서 아담을 창조 하실 때 어떤 계획을 가지고 창조 하셨다고 그랬지요

하나님의 구별된 말씀 이게 아담이란 글자를 파자한 내용이라 그랬죠. 원래 아담, 사람은 하나님의 구별된 진리로 존재하기 위해 그렇게 쑴 세워지기 위해 창조된 거예요.

그게 아담의 존재 목적 이란 말이에요. 그렇다면 아담은 하나님의 진리가 되는 걸 하나님과 하나님의 진리를 받아 그 사람을 받아 하나님화 되는걸 목적으로 하여 사는 거예요. 반드시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야 되요 그분의 숨을 받아야 되요. 그분의 호흡을 받아야 되요. 르와흐를 받아야 생명이 되는 거라 말이지요


그렇게 아담이 하나님의 목적에 맞는 자가 되어서 이제 생기를 르와흐, 진리, 영을 받아, 말씀을 받아 그 진리 하나님이 목적하시는 바가 되면 성경은 그를 가르켜 하아담 이라고 그래요. 관사를 붙여요 거기 앞에다가 아담 앞에다가 하아담 이라고 그래요. 사람이라고 그래요 그거를요 그 하아담은 역시 생육하고 번성하여 하아담에 자손을 낳게 되지요? 그걸 하아담 하벤 이라고 불러요 그러면 그걸 한국말로 번역하면 뭐라고 하겠어요? 그 사람의 그 아들, 인자라고 그래요 


예수님께서 당신을 인자 하아담 하벤 이라고 부르신건 그 인자 아담으로부터 시작된 그 사람의 그 아들이란 말이에요 그런데 진리로 낳는 아들들 요걸 인자라고 그래요 아담이 낳고 그 다음에 또 낳고 그렇게 라인이 계속 이어진단 말이에요. 근데 그게 예수님에게 와서 완료가 되잖아요 아-- 인자가 이거였구나 라고 알게 되고 그 인자로부터 이제 교회가 하아담 하벤 인자로 또 출생이 된다 말이에요. 그래서 하아담의 그 자손, 진리의 라인이 바로 이렇게 낳을 교회를 이야기 하는 거였구나 라고 알게 되잖아요 그래서 그 예수님이 나를 인자라고 한거예요. 예수님이 내가 하아담 하벤이야 라고 이야기 한 거란 말 이예요 


그러니까 인자는 예수님 한분만을 가리키는게 아니예요 진리가 된 하아담(그래서 그 아담이 오실자의 표상 이다라고 한거란 말이예요 계속 그래서 아 담이 오실자 예수의 표상 이라고 이야기 하는 거란 말 이예요) 그 라인의 족보가 누가복음에 나와요. 한번 가 볼까요



누가복음 3 23

23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할( 진리로 가르치세요) 때에 삼십 세쯤 되시니라 사람들의 아는 대로는 (노미조 예요 지난주에 배웠지요 노미조 하지마 노모스가 율법이니까, 노미조 하지마가 뭐예요? 사람들이 날 때부터 갖고 있는 두 마음으로 판단 하지마 그래요 그런데 노미조를 하니까 어떻게 되요? 예수님이 요셉의 아들로 보이는 거예요 ) 요셉의 아들이니 요셉의 이상은 헬리요 하고 족보가 나오지요? 그게 꼭대기 까지 올라가면 38절요 그이상은 에노스요 그 이상은 셋이요 그 이상은 아담이요( 하아담) 그 이상은 하나님 이시니라


그럼 맨 위가 누구? 하나님 하나님이 낳는 거지요 지금 요게요 지금 다 소유격이거든요. 그러니까 원문대로 번역하면 하나님의 아담 아담의 셋 이렇게 번역을 해야 맞는데 지금 거꾸로 번역을 해 놓은 거예요. 하나님이 아담을 낳으시구 아담이 셋을 낳고 이렇게 인자의 라인 하나님이 아담을 낳아 놓았더니 하아담이 진리로 사람을 계속 낳아가는 거예요 그리고는 결국 요셉 그리고 요셉의 아들 요셉이 낳은 예수 거기에서 이렇게 마쳐지는 거예요 요게 인자의 라인이예요 그래서 요 예수가 그 인자의 라인 족보를 완료하는 분으로 그려져 있는거란 말 이예요 이것이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하나님이 하아담 그를 진리로 낳았어요 어떻게? 생기를 부어서 르와흐를 부어 가지고. 다 상징입니다. 그랬더니 그들이 진리로 계속 누군가를 낳아요 그리고 그 낳은 자가 맨 마지막까지 내려가니까 예수예요 근데 이 예수님이 인자로서 교회를 낳는 거란 말 이예요 그리고 예수님이 교회를 진리로 낳게한 그 일을 작은 그리스도들이 그리스도인들 크리스토스가 복수 잖아요 또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여러분들에게 이렇게 진리로 설명을 해 드리는 거란 말 이죠 요게 인자의 족보 인자의 라인이란 말입니다


여기서 30세쯤 이라고 번역된 어구는 30 해처럼 이라고 그랬지요 이 예수님의 나이를 이렇게 추측해 본게 아니에요 30세쯤 되셨을까 가 아니라 30처럼 이예요 30세 처럼 이게 뭐라고 그랬지요?


제가 예전에 한번 설명해 드렸는데

요셉이 메시아의 모형으로 애굽의 총리로 선게 30세지요 그렇게 메시아를 설명하기 위해 몸으로 입으로 설명 하기위해 사는 자를 선지자라고 해요. 제사장은 몇 살부터 할 수 있어요? 30 부터예요 몇 살까지? 50까지 50은 희년 이예요 


그래서 바리세인들이 그런 거지요 예수님 보고 너 50도 못된 놈이 감히 그런 말을 해

이거는 예수님이 50살 만큼 늙었다는 얘기가 아니라 어떤 목사님이 그렇게 설명 하시드라구요 심지어 50살 까지 사셨다구 가르치셨다구 우리 교회도 그 목사님 설교 많이 듣는다고 그러던데 예전에는 한번 또 예수님이 지옥에 내려가서 복음을 전하셨다고 그래 가지고 그냥 또 문제를 일으켰었죠


30에 제사장이 시작되어 50 희년에 완성되기 때문에 30부터 50까지만 제사장 일을 하게 하는 거예요 그래서 바리새인들이 니가 50이야? 50도 안된 놈이 왜 50의 행세를 해? 왜 니가 마치 완성이고 니가 마치 전부인거 처럼 행세를 해 이 말이란 말 이예요 50살 처럼 늙었단 말이 아니라 고생을 많이해서? 아니라니까요 호지 않은 금옷 입고 있었다니까요 금보다 더 비싼


자 그러면 왕 이제 선지자 제사장 30이지요 그럼 오실 왕의 모형이 누구였지요? 다윗 다윗이 왕위에 올라간게 몇 살? 30 그러면 제사장 왕 선지자 이게 누구의 역할 이예요? 다 기름을 붓지요 왜? 메시아의 역할이기 때문에 메시아가 기름을 붓다 말씀으로 덮다 라는 뜻 이예요 기름으로 붓다 금으로 싸다 말씀으로 덮다 다 같은 말 이예요 여러분. 그래서 금하고 기름 하고는 같은 단어로 써요 심지어. 히브리 사람들이.


그러면 한번 보세요 그 메시야는 죽어야 할 우리 대신에 속전으로 오시는 분 이잖아요 구약에 율법에 소가 사람을 받아 죽이면 죽여 버리면 속전으로 얼마를 주게 돼 있어요? 30 으로 주게 돼 있어요. 그러면 소는 뭐라고 그랬어요? 하나님을 모형으로 담고 있는 것인데 그걸 하나님으로 이해하지 못하면 그냥 소 로만 볼 수 있는 거예요 이게 율법 이예요 율법이 모든 인간들을 받아서 죽입니다 율법에 묶이면 다 죽어요 다 사망이란 말 이예요 그런데 이를 살릴 수 있는 속전이 얼마? 30 예수님이 얼마에 팔렸어요? 30에 그러니까 이 30은 메시야의 숫자란 말 이예요 그래서 30 세쯤에가 아니라 30 처럼 시작 하신 거예요 뭐를? 메시야의 사역을


근데 그 앞에 아오고스토스 에이미 라는 어구가 붙어 있어요 예수께서 메시야의 일을 시작 하시자 에이미 Be 동사예요 그처럼 되는 자들이 생겨 나드라는 거예요 그들을 아들이라고 부르잖아요 에베소서에서 나오죠? 우리를 창세전에 아들로 부르셨다라고 그러죠 아들이 뭐예요 그 사람의 그 아들 인자들이 되는 거예요 또 아들이 되는 거예요 


그런데 그 사람들은 그 예수를 선악의 눈으로 판단해서 노미조 해서 요셉의 아들로만 보드라는 거예요 그래서 성경이 그러는거죠 아니다 그 분은 단순히 요셉의 아들이 아니라 인자 하아담 하벤의 라인으로 오신 분이야 그 라인을 완성하시는 분이야 라고 족보를 쫙 펼치는 거예요 그리고 맨 끝에 하나님 완성자 예수 이렇게 족보 제시를 하는 거지요 


그러니까 이렇게 되는 거예요 하나님의 아담 아담의 셋 셋의 에노스 계속 내려가다가 요셉의 예수 이렇게 끝나는 거예요 요셉이라는 단어 얏싸프 는요 뭔뭣을 더해주다 라고 했죠 얏싸프 라는 단어가 뭔뭣을 더 해서 완성 시키는게 요셉 얏싸프예요 야곱의 열두 아들을 누가 완성해요? 요셉은 몇 번째 아들? 11번째 아들 12번째 아들은 베냐민 오른손에 아들 이지요 완성된 아들 이예요 오른쪽은 항상 완성된 아들 요셉이 이 하나를 더하여 아들을 완성 시키는 거예요 12로 그래서 요셉 밑으로 베냐민 하나가 오는 거지요 


그래서 요셉에 아들이 므낫세와 에브라임으로 등장 하는 거예요 아버지는 아들로 말 하는 거니까 여러분 므낫세는 빼앗다 제거하다 없애버리다 란 뜻 이예요 므낫세가 그런데 그 단어는 아랫것으로 해석해 주다 하는 뜻 이예요 므낫세가 아래의 것으로 위엣것을 해석해 주는 말씀으로 오신 분이 누구예요? 예수지요 그분은 제거 되야 하는 거예요 그래서 므낫세가 장자의 자리에서 물러나는 거예요 그러면 그렇게 위엣것을 아랫것으로 설명하는 말씀이 이땅에서 제거 되면 씨가 되어 제거되면 어떤 일이 일어 난다고 그래요? 많은 열매가 맺는다고 그러지요? 에브라임의 단어의 뜻이 많은 열매란 뜻 이예요 


그러니까 요셉은 마지막으로 어떤걸 더 하기 위해 온 자예요 그래서 그렇게 완성 시키는 자 인데 그는 아들로 이야기해야 되는 거지요 그러면 뭐지요? 위엣것을 아랫것으로 설명하는 말씀이 제거되고 죽어서 많은 열매를 맺는거 예수로 이걸 완성하는 자예요 그래서 예수님의 아버지가 요셉 이예요 성경은 그냥 우연히 우발적으로 기록된 단어가 한 단어도 없어요


자 그러면 그 땅에 떨어져 죽은 그 씨에 의해 이제 많은 열매 에브라임이 되면 그 많은 열매는 또 뭘 갖고 있어요? 씨가 있어야 열매예요 씨를 갖지요? 근데 그 씨는 어떤 씨예요? 땅에 떨어져서 죽었던 씨 아닙니까 씨도 없는게 열매인척 하는게 뭐지요 무화과 잖아요 하나님이 저주해 버린거요 너는 수술을 머리를 씨라고 나한테 속이고 있네 이파리만 무성한 것이 열매라고 나를 속이고 있네 그래서 저주해 버린 거지요 그건 꽃 입니다 여러분 열매가 아니라 맛있다고 무조건 열매라고 생각 하시면 안되요 먹는거에 그냥,, 


그러니까 열매 그 열매는 씨를 반드시 가져야 되는데 그 씨는 뭐냐면 하나의 밀알이 되어 땅에 떨어져 죽은 그 씨를 내가 갖는 거란 말이예요 그러면 내가 열매가 되는 거지요 그러면 내가 씨를 간직하고 있다라는건 씨와 내가 연합되어 있다라는거 아예요 따로 떨어져서 씨 열매가 존재 할 수 없는 거니까 그러면 그 씨의 죽음과 살아남에 내가 동참하게 된거란 말이예요 그씨를 진리를 내가 갖고 있다면 그때에 아-- 이게 진리구나 라고 알았어 내가 살았네 그 사람을 보고 살았어? 그래 너 죽었었구나 라고 하는거예요 어떻게 죽어야 되지 이렇게 고민하지 마세요


여러분이 진리를 갖고 아-- 내가 그럼 진리를 갖고 산거네 라고 알았으면 여러분이 죽은 거예요 그게 씨를 가진 자니까 그게 바로 진리가 된 성도의 실존인거죠 그렇게 요셉의 아들 죽음과 열매 맺음으로 인자를 완성하신 그리스도 예수가 낳는 자식들 또 인자들이 나와야 되잖아요 그 족보는 어디에 적혀 있을까요? 여러분 여러분의 족보는 요한복음 1 10절 보세요


요한복음 1 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 하더라


여러분 이거를 예수를 영접해 그러면 너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단다 이렇게 함부로 갖다 쓰시면 안돼요 11절을 잘 보세요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하나도 영접지 아니 했다고 그래요 No body 예요 그런데 바로 그 밑에 영접하는 자가 나오면 돼요? 안돼요? 사람중에 하나도 영접 안 했다고 그러잖아요 근데 그중에 영접하는 자가 나타났다는 거예요? 아니예요 아무도 영접 안해요 인간은요 그러면 누가 영접해야 되요? 오신분이 영접해야 되요 이게 람바노예요 받다 그분이 받는 거예요 영접 하는자 그 이름 누구예요? 하나님 영접하는 자 그 이름을 믿는 자가 아니라 영접 하는 자 그 이름 영접하는 그 하나님을 믿는 자 


하나님이 어떤 이들을 받았어요 아무도 이 예수를 안 받네

씨로 안 담아요 람바노가 받다 담다 예요 아무도 안 담으라고 그래요 아무도 안 담는데 그 분이 자기가 담아요 영접을 해 버리니까 어떤 자들이 그 영접한 그 이름을 믿게 되드라는 거예요 그분이 받았더니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권세다 예요 권세를 주셨으니가 아니예요 권세가 성도예요 하나님의 자녀라는 권세다 힘이다 그래요 우리가 힘 이예요 그힘 그래놓고 이는 혈통으로나 육적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난 자들이다 라고 하는데 단수예요 난 자다 그래요 하나님께로 나 자 하아담 이예요 누가 복음에 족보 기억 하세요 누가 복음 3장에 그 족보 하나님께로 난자야 그래요


14절 그들이 누구냐면 말씀육신이야 그래요. '말씀이 육신이 되어'라고 한국 개역 성경이 번역을 했는데 그러면 에이미 동사가 있어야 되잖아요 Be 동사가 근데 없단 말 이예요 그냥 말씀육신이예요 홀로고스 싸륵쓰 예요 그러니까 그건 이름이란 말 이예요. 앞에서 하나님께로서 난자 그 자의 이름이 말씀육신이야. 


그리고 카이 라는 단어가 있어요 그리고 그렇게 말씀육신 진리를 받아 말씀육신이 된 그 자들 안에(앤)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메'라고 했는데, 성막에 그 성전을 세우다 텐트로 덮다 이런 뜻이란 말 이죠 우리 안에 성전을, 말씀육신이 된 그 안에 성전을 세우시니 그들이 하나님의 독생자에 영광을 나타내더라는 거죠. 그걸 보더라는 거예요. 


독사가 뭐라고 그랬지요? 보이지 않는 어떤 것이, 하나님의 것이 겉으로 들어난 거. 그렇게 그들이 하나님에 의해 영접당하여 그 안에 성전을 갖게 되니 그들의 이름이 말씀육신이 되는데, 그들이 모노게네스(독생자)의 영광이다. 모노게네스는 다 두 마음을 갖고 있는 자들 속에서 유니크하게 진리인 한 마음을 갖고 오신 그분, 그 분이 누구인지를 나타내는 바로 그 예수, 그걸 보더라는 거예요. 그 말씀육신들, 그들은 인자다, 그래요. 


여러분 하나님을 진리를 씨로 담고 있지 못한 그곳은 곧 죽음이예요. 그게 멸망 이거든요. 근데 하나님에 아들이 진리가 씨(제라), 자손이 이 땅에 왔는데 아무도 못 알아봐요. 그리고 영접하지 않았다, 담지 않았다, 그래요 그러면 다 죽는단 말이예요 그래서 의인이 하나도 없었던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을 당했던 거예요. 

? 진리가 없고, 진리가 된 자가 하나도 없어요. 그건 하나의 상징이었어요.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 교회의 대표예요. 우리 이야기하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러 가세요. 그게 목적이셨다면 그냥 얼른 가서 멸망 시키시면 돼요. 근데 굳이 아브라함에게 찾아 오세요. 그래놓고 "내가 내 친구 아브라함에게 감출것이 없다" 그래요. '감싸서 숨기지 않을 거야' 원어로 보면 '네가 될 것을 내가 감싸서 숨기지 않을게' 그래요. 그래놓고는 소돔과 고모라 멸망시키러 간대요. 아브라함이 그래요. 50명 있으면요, 40명 있으면요, 30명 있으면요, 하나님이 계속 들어 주세요 30명이라도 안해, 10명만 있어도 멸망 안시켜. 그 말은 무슨 말 이었냐면, "얘야 믿음의 조상아. 저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 당하는건 그 안에 진리가 없기 때문이야. 진리가 되어 그걸 전하는 자가 없기 때문이야. 그러면 내가 이 이야기를 왜 하겠니? 내가 널 불렀잖아. 네가 진리가 되어 저기에 가면 저기가 왜 멸망하겠니?"를 물으신 거예요.


하나님이 그걸 가르쳐 주기 위해 교회에게 그걸 가르쳐 주기위해 소돔과 고모라는 멸망한 거예요. 

'진리가, 그 씨가 담겨져 있지 않으면 이렇게 멸망당하는 거야'를 보여 주는 거라니까요. 그래서 굳이 아브라함에게 가서 "아브라함아, 이거 봐. 이게 무슨 이야긴지 알아?"라고 묻는 거예요. 그건 교회인 우리에게 물으시는 거예요. 그렇다면 지금 이 세상이 존재하고 있는 이유가 뭐예요? 누군가 진리를 전하고 있기 때문이예요. 진리가 되어 그 진리를 전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는 이렇게 멀쩡하게 존속하고 있는 거예요. 근데 그중에 이제 한사람씩 불려 올라가요. 성경은 그럽니다. 점점 없어진다 그래요 점점점점 없어지다가 계속 없어지는 거예요.


마지막 한 사람이 남겠지요 하나님이 그 진리가 된 그 이를 반짝 들어 끌고 올라 갔을때 이땅은 어떻게 돼요? 멸망이예요. 지금 등불을 계속 하나씩 꺼 가세요. 등잔을 쏟고 계시다구요 그러니까 마지막 그 등잔이 꺼지면 끝이예요, 여기가. 세상은 여러분에게 감사해야 된다니까요. 그들이 살아있는 근거예요. 성도는 그렇게 진리가 되어서 멸망 받을 세상을 건지는 역할로 부름을 받아요. 그렇다고 뭐 대단한 일을 하는게 아니라 어떤 이들이 여러분이 전하는 그 진리로 살아 난다구요. 자기를 용서하는 이들이 생긴다니까요 


"그래요? 그러면 나는 자유네요. 하나님이 다 해결 하셨어요? 감사합니다."

이렇게 자기를 용서 하는 자들이 그 하나님의 용서를 이해하고 깨닫고 자기를 용서할 뿐만 아니라 용서를 전하여 사랑을 하는 자들이 생겨나는거 이게 우리에게 맡겨진 역할이란 말입니다. 그게 인자가 하는 일이었잖아요. 진리를, 말을, 영을 던져 죽어있는 자들을 살려 내는 거, 용서를 이해 시키는 거. 이게 인자의 역할이란 말이예요. 여러분의 역할이란 말이예요. 


그러면 그 마지막 자가 사라지면 예수님이 어떻게 온다고 그래요? 볼찌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구름과 함께 오시리라예요 그거는요 무슨 말일까요 그게? -- 주여 빨리 구름을 타고 오시옵소서. 무슨 손오공 이예요? 오시옵소서 이런 사람들 있지요 여러분!

여러분이 살아서 이땅에서 구름 타고 오는 예수를 보면 여러분은 그 즉시 사망이예요 왜? 마지막 진리가 올라가면 멸망이라니까요. 


그럼 구름은 뭐겠어요? 히브리 사람들에게 있어서 구름이라는 건, 뭉게구름 하얀구름 새털구름 이거는 구름 취급도 안해요 켈리포니아에서는 그건 구름도 아니예요. 구름이 뭐냐면 팔레스타인 땅은 천수답 농사를 짓는 곳이지요비가 와야 겨우 농작물이 자라요. 근데 비가 안 와요. 그래서 그들은 멀리서 먹구름이 요만하게 끼면 감사했어요. 찬송했다니까요. "야- 비 온다, 구름이다" 그랬다구요 그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이끌어낸 구름이 먹구름이라고 쓰여 있어요. 원어에 보면 먹구름! 우리는 먹구름 그러면은 야- 니 앞날에 먹구름 꼈다 그러면 안 좋은거죠? 히브리 사람들은 그게 와야 생명이 산다니까요. 


그래서 히브리 사람들은 '구름' 그러면 '물을 머금은 것'이란 뜻으로 썼어요 그러면 물을 머금은 게 뭐예요? 멤이 '진리, 말씀'이지요? 그러면 그 진리들이 아래에서 그 아랫물로 윗물을 설명할 때 진리들이 하나님께로 올라갔어요. 그들이 다 위의 물, 유리바다란 말이예요. 근데 그 물이, 물을 머금은 것이 예수님과 함께 오는게 뭐예요? 천군천사가 되어서 여러분이 오는 거예요. 구름과 함께, 진리들과 함께 예수님이 오시는 거예요.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올라 가셨다'라는것도 '구름으로 올라 가셨다'라는 말이예요. 

'그 모습 그대로 오신다'는 건 '진리가 되어 올라가신 그분이 진리와 함께 오시겠다'는 거예요. 근데 이 땅에서 그 진리를 내가 보게 되면 나는 진리 아닌 거잖아요. 죽는 거예요. 근데 그분을 기다리고 있어요. 예수 믿는 게 뭔지도 모르고 그냥 멍-하니 그냥 이렇게 동화책처럼 믿는 거예요. 그래서 계시록에서도 그 구름을 '많은 성도들'이라고 그러고요, 히브리서에서도 '구름 같은 허다한 증인'이라고 해요. 교회를.


에스겔 38 9절 보세요

네가 올라오되 너와 네 모든 떼와 너와 함께 한 많은 백성이 광풍 같이 이르고 구름같이 땅을 덮으리라


진리, 성도를 이야기 하는 거란 말이예요.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진리의 구름이 되어서 소돔과 고모라에 존재했다면 그 땅은 불로 멸망되지 않아요. 왜? 물이 있거든요 근데 멸망했다라는건 "아브라함아 너도 아직 진리 아니잖아 니가 진리가 되었으면 내가 너를 거기 보냈을꺼야" -요나처럼 죽어야 할 니느웨 땅에 요나 하나를 진리를 보내서 살려내는 그림이잖아요.- "아브라함아 근데 내가 너를 보낼 수가 없어 니가 진리라 안되면 저들이 저렇게 죽는거야 인자의 라인이 끊기는 거야"를 보여 주는거란 말 이지요 그래서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란 말이지요.


다시 요한복음 1장으로 돌아갑니다 그렇게 진리이신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은 죽은 세상에서 주님이 영접을 하는 거예요. 주님이 영접을 하셔서 그들에게 믿음을 주세요. 심어 버리세요. 그러니까 거기에서 인자의 라인이 연결이 되고 있는 거예요 말씀육신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 인자의 라인 하나님이 낳은 어떤 자들이 생기드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누가복음 3장의 족보는 이리로 이러지는 거예요 이렇게,. 그 모노게네스가 뭘로 가득 차 있다고 그래요 성경이 은혜와 진리로 가득 차 있더라 그러지요 아-- 알고 나니까 하나님이 믿음을 주셔서 하나님이 날 영접해 주니까 아 모든건 은혜요 진리구나! 그거 밖엔 없구나를 보드라는 거예요 독사로 보드라는 거예요 그들이 그러니까 죽어야 할 그 먼지 아파르죠 아파르에 먼지에 담 아담에 담이 피거든요 그걸 합쳐 좋으면 피 피가 부어지면 고게 이렇게 익여져서 존재가 되는 거예요 사람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그때에는 성경이요 앗차르 란 동사를 써요 히브리어에서 창조하다 라는 단어가 바라 앗싸 앗차르 이렇게 있는데 앗차르는 토기장이가 뭔가 만들어 낼때 창조를 이야기 하는거거든요 일부러 왜? 피와 먼지 흙이 익여져야 된다라는 것을 그림으로 보여 주기 위해서 일부러 그런 단어를 쓰는거예요 여러분 히브리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들은요 성경을 읽자나요 그러면은 이해를 못하는 부분이 많아요 성경에 그런 문법적 파격을 굉장히 많이 갖다 쓰거든요 그러니까 진리를 이해하는 이가 아니면 히브리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도 그걸 못 알아 먹어요 그러니까 원어를 아는게 중요한게 아니에요 아니 히브리어 헬라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이 예수를 죽였다니까요 그 성경을 그냥 줬더니 그걸 보더니 예수를 죽이드라니까 그게 중요한게 아니라 그 안에 담겨 있는 그 진리를 아는게 중요한 거예요 그다음에 히브리어 헬라어를 배우던지 말던지 그래야 되는 거예요

--그렇게 죽어야 할 먼지 아파르에 불과한 아담에 진리가 물이 피가 부어지자 그가 사람 구별된 하나의 말씀 모노게네스 독생자로 서더라는 거지요 그런데 물을 받지 못한 자는 어떻게 된다고 그랬어요? 먼지 그러니까 복음을 전하는 자들에 발이 먼지를 발에서 떨어 버리는 거예요 아니야 이거는 피를 못 받았으니까 물 진리를 못 받았으니까 그러니까 그렇게 없음으로 죽어야 할 아파르에 진리의 말씀이 부어져 하아담이 되고 그 하아담에 자손의 라인으로 그 하나님의 자녀로 들어가게 되는 구원의 현실을 아담과 예수가 동시에 설명하고 있는 거예요

-- 창세기 5 3절로 가 볼께요

아담이 일백삼십 세에 자기 모양 곧 자기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여기에서 아담이 하야아담 이예요 그냥 아담이 아니라 이건 살아난 아담 이런거 산 아담의 뜻 이거든요 구원 받은 아담이라고 이야기를 해도 좋아요 그 하아담이 누구를 낳아요? 셋을 낳았다 그래요 셋만 낳았어요? 아니라구요 셋을 낳았다 그래요 그 누가 복음의 족보에서도 역시 셋만 기록돼 있어요 가인과 아벨은 없어요 뭔가 상징이었단 말 이예요 여기에 그 낳다 라는 야라드 라는 동사가 나오는데요 그게 칼 동사로 일반 동사로 그냥 쓰이면 부정 모혈로 낳는거예요 아비가 씨를 주고 어미가 피를 내면서 그냥 육적으로 생물학적으로 낳는거 그냥 야라드 근데 이 동사가 히필 동사로 쓰면요 낳게 하다가 쓰여서 말씀으로 그를 산 존재로 만들다 라는 뜻 이예요 근데 여기에서 히필 동사가 쓰였어요 그러니까 아담이 셋을 그냥 육적으로 낳았다 라는 뜻이 아니라 그 셋을 말씀으로 진리로 산 존재로 만들었다는 뜻 이예요 그래서 히필 동사가 쓰인 거예요 그래서 누가복음에 보면 요 셋만 기록돼 있는거예요 고 족보의 라인에 창세기 10 21절 보세요

쎔은 에발 온 자손의 조상이요 에벨은 히브리 넘어간 자들의 조상 그게 셈이에요 모든 넘어간 자 히브리 이스라엘 진짜 참 이스라엘의 조상은 셈이에요 이 셈이 이름 쉠 이라는 이름 하고 똑같은 그 단어에요 이게

셈은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요 야벳의 형이라 그에게도 자녀가 출생 하였으니 셈의 아들은 누군지 보세요 엘람과 앗수르와 아르박삿 룻 아람 이에요 아르박삿 말고 네명이 더 있어요 그런데 누가복음에는 아르박삿 밖에 기록이 안 돼 있어요 나머지 넷은 어디로 간거지요? 11장으로 가 보세요 10절 셈의 후예는 이러 하니라 또 나오지요

셈은 일백 세 곧 홍수 이년에 아르박삿을 낳았고 다른 사람의 이름은 없어요 인제 요게 히필 동사에요 그러니까 셈의 후예 중에 진리로 낳아진 자는 아르박삿 하나더라 그러니까 여러분의 자식 중에서도 요롷게 진리로 낳아질 사람이 다 되면 좋겠지만 다 아닐 수도 있어요 무섭지 않아요? 그러니까 그 하아담 하벤 인자의 족보는 말씀으로 이어지는 족보란 말 이예요. 진리로 이어지는 족보란 말 이예요 부정모혈로 이러지는 족보가 아니야 그래서 혈통으로나 육적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난게 아니다 라고 이야기 하는 거예요 요한복음 1장에서

그러니까 이 거대한 진리의 족보 속에서 그 인자의 족보 속에서 점 있고 흠 있는 더러운 것 뭄이 카턴 넘겨지면 되요? 안되요? 그 교제 속에서 안되지요 그래서 그렇게 넘겨주는 놈이 있다면은 그렇게 만들어 주께 라고 하신거예요 진리의 말로 낳고 낳아져야 되는게 모든 성도의 교제에 실체란 말 이예요 그 자리에 더러운거 점과 흠 인간의 생내적 율법주의 이것이 계입되어 흠을 만들어 내면 니네 그렇게 해 주께 되게 해 주께 이말 이란 말 입지다 그래서 레위기 24 19절이 행한데로 갚아준다 이게 원리라 말 이예요. 그렇게 말씀 하신 거예요 어떻게 하신다고 그래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할꺼야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할꺼야 그 눈이라는 단어가 아인 이라는 단어 인데요 그 단어도 그냥 눈 이라는 뜻도 있지만 말씀이라는 뜻도 있어요 셈 우물 이라는 뜻 이예요 그게 눈이라고 그래요 또 신약에서의 눈도 역시 말씀이죠? 계시록에 나오잖아요 7눈은 7영이다 영은 뭐? 말이요 생명이다 그랬잖아요

계시록 5 6절 보세요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양이 서 있는데(예수 그리스도지요 )

일찍 죽임을 당한것 같더라 그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

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일곱은 7번 말하다 언약 언약의 말씀 이더라는 거예요 눈이 그렇게 쓴단 말이에요 눈은 눈으로 그렇게 갚아 줄꺼야 근데 좋은 눈 깨끗한 눈을 갖고 있으면 그 눈 그 말씀으로 그렇게 되게 해 줄꺼야 그 말 이예요 눈을 상하게 하면 눈깔 뽑을꺼야가 아니라 하하하

레위기 22 21절 보세요

만일 누구든지 서원한 것을 갚으려 하든지 자의로 예물을 드리려 하여 소나 양으로 화목제물을 여호와께 드리는 자는 기쁘게 받으심이 되도록 아무 흠이 없는 온전한 것으로 할지니

너희는 눈 먼 것이나 상한 것이나 지체에 베임을 당한 것이나 종기 있는 것이나 습진 잇는 것이나 비루 먹은 것을 여호와께 드리지 말며 이런 것들은 제단 위에 화제물로 여호와께 드리지 말라

제일 먼저 나오는게 뭐예요 흠 있는것 중에 눈먼 거예요 눈 먼거 말이 잘못된 것을 가리키는 거지요 하나님께서 동산 중앙에 세운걸 선악과로 보게 되면 망하는 거예요 그 눈은 눈으로 갚아준다 이말이죠 이도 마찬 가지예요 역시 그가 가진 말에 관한 거예요

잠언 25 18

자기의 이웃을 쳐서 거짓 증거하는 사람은 방망이요 칼이요 뾰족한 화살 이니라

죽이는 거다라는 거지요

19절 환난 날에 진실하지 못한 자를 의뢰하는 것은 부러진 이와 위골된 발 같으니라

부러진 이 이가 부러진 자야 이가 부러진 자 그 자도 말이 진리가 아닌걸로 갖고 있는 자야 부러진 이

시편 33 16

저희는 연회에서 망령되어 조롱하는 자 같이 나를 향하여 그 이를 갈도다

많은 군대로 구원 얻은 왕이 없으며 용사가 함이 세어도 스스로 구언하지 못하는도다

이걸 직역을 하면 이런 거예요 더러운 말, 더듬이에 떡으로 이를 간다예요

더러운 말 더듬이가 뭐예요? 말 더듬이 참된 말을 가지고 있지 못한거란 말 이예요 더러운 말, 더듬이는 그 가짜 떡으로 헛것을 씹으니까 이를 간다라는 거예요 성경에서 이를 가는건 뭐라고 했어요 양식이 없음을 가리키는 거라 했지요 그러니까 헛걸 씹으니까 이만 가는 거지요 시편 57 4절 보세요

내 영혼이 사자들 가운데에서 살며 내가 불사르는 자들 중에 누었으니 곧 사람의 아들들 중에라 그들의 이는 창과 화살이요 그들의 혀는 날카로운 칼 같도다

이와 혀는 뭐예요? 말을 내는 거예요 근데 그들에 입에서 나오는 그 이와 혀가 다 뭐예요? 칼과 차아 죽이는 거라는 뜻 이예요 죽이는거 거짓말 가짜 말예요

시편 124 6

우리를 내주어 그들의 이에 씹히지 아니하게 하신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잠언 30 12절 보세요

스스로 깨끗한 자로 여기면서 오히려 그 더러운 것을 씻지 아니하는 무리가 있느니라 하나님이 더러운 것을 씻어 줘야 하는데 나는 깨끗한데 왜 씻어? 율법주의자

13절 눈이 심히 높으며 눈꺼풀이 높이 들린 무리들이 있느니라 14절 앞니는 장검 같고 어금니는 군도 같아서 가난한 자를 땅에서 삼키며 궁핍한 자를 사람 중에서 삼키는 무리가 있느니라 그들을 먹여야 되는데 먹일것이 없으니까 오히려 그들을 삼키는거

아모스 4 6

또 내가 너희 모든 성읍에서 너희 이를 깨끗하게 하며 너희의 각 처소에서 양식이 떨어지게 하였으니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 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씀 이니라

이를 한가하게 하여, 이를 한가하게 하는게 뭐죠? 먹을 양식, 말을 안 준다는 뜻 이예요

아모스 8장에 나오지요 기근 그 기근은 먹을것이 없는게 아니라 말씀이 없는 기근 이예요 너희 각처에서 양식이 떨어지게 하였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 하였느니라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 하였느니라 이는 여호와니라

예레미아 31 29

그때에 그들이 말하기를 다시는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들의 이가 시다 하지 아니하겠고 신 포도를 먹는 자마다 그의 이가 신 것 같이 누구나 자기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으리라

각자가 먹은것에 의해서 이가 시리게 된다는 거예요 이렇게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라는 말은 그가 가진 말대로 보응 하시겠다 라는 하나님의 엄포 였어요 그래서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주님이 말씀 하셨던 고런 에페쏘드들은 전부 말씀 진리에 관한 에피쏘드들 이예요 다

마태복음 8 5절 보세요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여 ( 백부장 장교는 무조건 로마인 이예요 무조건 이방인 이예요 ) 이르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 하나이다 ( 여기서는 여기서 지시하는게 몸에서 따라주지 않는걸 중풍병 이라고 해요 움직이지 못하는거 마비 되는거 죽은 거예요 거의 ) 이르시되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 이건 의문문 이에요. 원어로 보면 내가 가서 고쳐 줄까? 당연히 고쳐 줘야지요

근데 예수님이 물어 보세요 왜? 우리에게 이 백부장이 하는 말을 들려주시기 위해서 그래요 내가 가서 고쳐 줄까? 우리는 전부 그 일로 교회에 나온 다니까요 내 필요 내가 원하는 어떤것 내문제 해결 이런걸 위해 예수님을 찾는 이들이 태반 이잖아요 그때 예수님이 그래 내가 가서 그거 해결해 주랴? 하면 네 그럴거 아냐 우리는 다. 근데 여기서 예수님이 그래 그래서 내가 가서 고쳐 주길 원해? 했어요 그랬더니 8 ) 백부장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내 집에( 이게 성전이란 단어 거든요 호오 라는 관사가 붙어 있어요 다만 말씀으로만 하세요 말씀으로만 하세요 그러면 내 아들이 낫습니다 )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11, 또 저희에게 이르노니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율법주의의 이스라엘 이지요 )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백부장은 왜 아들이라는 단어를 쓰냐면요 아들은 내가 낳아야 할것 이잖아요 내가 낳은것 이지요 근데 그 내가 낳아야 할것이 병들어 있다 죽었다 라는건 뭐죠? 이게 죽어있으면 나도 죽은 거예요 근데 얘가 살아나려면 내가 살아나려면 얘가 살아나야 되거든요 산 것이어야 돼요 그런데 이 백부장이 뭐라고 그러냐면 주님의 말씀으로 내가 아들로 살겠습니다란 뜻 이예요 근데 주님이 그래요 그래 니가 가진 말, 니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말씀을 하시니까 그이 아들이 나았다 그러지요 백부장과 아들을 동일시 이방인을 동일시 시키고 율법주의 이스라엘 요걸 죽은자로 대조 시키는 거예요 그래놓고 뭐라고 그러냐면 이 백부장은 아들로 율법이 뭔지도 모르고 하여튼 그런 이방인은 이아들의 말을 받아 진리를 받아 아들로 살아나는데 구원을 받는데 율법주의자들 그 말이 그 진리의 중요성을 모르는 율법주의 자 나라의 본 자손들은 나가서 이를 갈드라는 거예요 양식이 없으니까요 먹을게 없으니까 진리가 없으니까 그이야기 하는 거예요 그 백부장의 하인이 아들이 중풍병을 고쳤다에 핵심이 있잖아요 그 하인은 나오지도 않아요 여기서 그냥 백부장과 예수의 이야기 라니까요 우리가 주일날 공부 햇던 그 예복을 입지 않았던 그 사람을 주님이 비유에서 어떻게 묘사를 하시지요? 그가 유구무언 이어늘 입이 있는데 말이 없다 그러는 거예요 그 단어는 제갈을 물리다 거든요 제갈을 물려노면 말을 못해요 말이 없는자란 말 이예요 예복이 없는건 말이 없는거야 유구무언 이거늘 그래요 말이 없거늘 그래서 어떻게 해요?

쫓아내서 이를 갈게 해요 하늘에 떡 말이 없으니까 말씀이 없으니까 밖으로 쫓겨나 이를 가는 거예요 혼인잔치에서 쫓겨나는 거란 말 이예요

마태복음 13 41절 보세요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넘어지게 하는게 뭐죠? 발목을 잡는거 야곱 이예요 가짜 말을 가진 자 거짓말을 하는 자 도적 강도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거짓말을 갖고 걸려 넘어지게 하는 자는 이를 간다

마태복음 24 44~ 51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이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의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리라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동료들을 때리며 술친구들과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가 받는 벌에 처하리니 거리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술은 뭐라 했지요? 섞은것을 이야기 한다 그랬지요 술은 항상 섞은것 혼합된것 그걸 히브리어로 바꾸면 아벨 이예요 그게 그래서 술과 항상 성령 깨끗한 말이 같이 비교되어 나오는 거예요 그런데 양식을 주는게 아니라 술을 주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저도 마시고 친구에게 주면 섞은 말 그걸로 비진리 속에서 취해서 가는거 이게 옳은것인거니 이렇게 그러면 어떻게 된다구요? 이를 간다 그러는거죠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이게 뭔지 아시겠지요?

-- 그러면 그 진리의 말씀이 오셨어요 그 씨가 오셨는데 아무도 안 받아 드렸어요 그래서 진리의 말이 없어 아무도 그 안에 가진자가 없어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돼요? 다 그 눈 그 이에 의해 심판 받아야 돼요 그래서 오늘 본문에 39절이 이렇게 이어 지는 거예요

39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이 말은 때려도 참으라는 말이 아니라 이거예요

내 말 잘 들어 내 말 잘 들어 나는 그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라는 율법처럼 악한자를 대적하지 않아 에요 명령어가 아니예요 여러분 내가 그렇게 할꺼야란 뜻 이예요 너희는 이 율법대로 하면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너희들이 뭄 그 점 있고 흠 있는 것을 넘겨주면 이는 이렇게 심판 받아야 되는데 내가 너희를 전부 그렇게 대하면 대적하면 니넨 다 죽는거야

그러나 나는 그런 악한자를 그렇게 율법으로 대적하지 않아 예요 때려도 참아 이게 아니라 참지 말라는게 아니예요 또 잘 참다가 오늘 팍 터뜨리지 마시고,,,, 여기서 악한 자라는 번역된 포네로스가 포노스예요 율법적인 수고에서 오는 고통 그리고 그것으로 괴로워 하는자 수고 하는자 이걸 악한 자라고 번역돼 있어요 나는 그들을 대적하지 않아 어떻게 그들을 대적하지 않을 수가 있어요? 하나님이 말씀 하신건 이루어 져야지 그래서 내가 오른편 뺨을 맞았잖아 여러분 이땅에 와서 뺨을 맞은 분은 예수님 이예요 성경에서 오른편 이라는 건 원래 문자에서 오른쪽은 옳은 이예요 Right 바른 그래서 바른손 이라고도 하잖아요 이게 뭐 바르긴 발라요 오른, , 바른 내가 뺨을 맞아 그 뺨을 맞아서 왼편 뺨을 돌려 댔다는게 아니라 거기에는 왼쪽이라는 단어 자체가 없어요 다른 것으로 너희에게 돌려 줬잖아 이런 뜻 이예요 그걸 그냥 다른것 그러니까 그럼 왼편 뺨 인가? 그래서 이렇게 해 놓은건데 내가 옳은 내가 뺨을 맞아 다른 것으로 너희에게 줬다 그러니까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이건 하나님이 약속 하신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해야 되는데 그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그 뺨을 하나님의 뺨을 옳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가 맞아 너희에게 다른 것으로 돌려 줬잖아 이 말 이예요 십자가란 말 이예요 그래요

이사야서 50 4절 보세요

주 여호와께서 학자들의 혀를 (학자의 혀 말로 도와준다 이런말이 나와요 )내게 주사 나로 곤고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 줄 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들 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 5절 주 여호와께서 나의 귀를 여셨으므로 내가 거역하지도 아니하며 뒤로 물러 가지도 아니하며 6절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모욕과 침 뱉음을 당하여도 내 얼굴을 가리지 아니하였느니라 7절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므로 내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내 얼굴을 부싯돌 같이 굳게 하였으므로 내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할 줄 아노라 8절 나를 의롭다 하시는 이가 가까이 계시니 나와 함께 설 지어다 나의 대적이 누구냐 (나와 다툴 자가 누구뇨 왜 내가 대적 하겠어 ) 내게 가까이 나아올지어다

원래는 죽어야 되는거예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그런데 가까이 나와 왜? 내가 뺨 맞았잖아 내가 침 뱉음 당했잖아 그 말 이예요 그래서 너희에게 뭘로 돌려 줬어요? 생명으로 돌려 줬어요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 앞에서 뺨을 맞으신 거예요 우리에게 그림으로 다 보여 주시기 위해서 이사야 53 4절 보세요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 왜 뺨 맞았어요? 우리는 죄 져서 이렇게 이야기 한다는 거예요 그게 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놈이 하나도 없드라는 거예요 5절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6절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는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 시키셨도다 7절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살육 당하는 도륙장)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8절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나 그 세대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 (아무도 그렇게 생각 안하드라)

베드로전서 2 21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22 그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 23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25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이 길을 잃었더니가 플란나오의 수동태 거든요 속다예요 너희가 전에는 속았더니.

이게 에피스트레포 왼편 뺨을 돌려 주었다라는 말하고 똑같은 말 이라구요

그가 이렇게 우리 대신에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하나님에게 보응을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속았던 우리가 그 목자에게로 돌아 왔다라는 거예요 그 목자를 우리에게 돌려 주셨다라는 거예요 뭘로? 생명으로 그리스도 예수도요 성령으로 말로 영으로 영생으로 그게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오른편 뺨 왼편 뺨의 이야기에요 그냥 꾹 참고 속으로는 벼르면서도 여러분 그러면 우울증이 생겨요 다 폭발 시키는게 좋으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참으라는 말이 아니예요 예수가 그 옳은 분이 그 의인 유일한 의인이 내 대신 그 뺨을 맞아 다른 것으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그 심판이 아닌 다른 것으로 생명으로 줬어 그애기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너희는 이제 그것을 사랑으로 흘려 이게 43절부터 나오는 거예요 다음 주에 이어 보지요. 기도 하겠습니다.

하나님 은혜를 감사합니다 하나님! 나 대신에 유일한 옳은 분인 그리스도 예수가 뺨을 맞으심으로 내가 그 심판에서 벗어났습니다. 거기에 내가 무엇을 도왔으며 어떤 기여를 했습니까? 하나님! 그것을 찬송하는 이들이 그분의 하신 일을 칭찬하며 그걸 누리며 사는게 성도에 삶인데 여전히 법에 묶여 오히려 그분을 만나지 말았으면 하는 나에게 짐을 지우는 분으로 여전히 갖고 있는 그들이 어찌 성도라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 그 진리의 복음으로 자유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합니다 아멘

 

�%�2��� ��� �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

거기에서 그 범위 한계를 벗어나는 건 다 악에서 오는 거야 라고 끝을 맺어 버리죠. 지난 주에 공부했잖아요. 한계를 벗어 나는게 뭐라고 그랬어요. 맹세해. 거짓 맹세해. 그걸 그대로 여기서 설명하는 거예요. 그 한계 넘어 가면, 범위에서 벗어나면 전부 악이야~그러는 거예요. 진리는 진리라고 해. 아닌건 아니라고 해. 라는거죠. 주님이 우리의 머리세요. 그 분이 옳다 라고 하면 옳은 거예요. 그 분이 그르다 하시면 그르다라고 이야기 하면 되요. 우리는 그걸 판단하고 정죄하고 심판할 자격과 능력이 없어요. 그런데 율법주의는 자신이 머리의 역할을 하고 싶어 해요. 선악 판단의 주체가 되어서 선악을 분별하고 자신이 선이라고 생각하는 삶을 추구하고 싶어 해요. 이건 아마 모든 아담들의 인지상정일거예요. 그런데 그게 뭐예요? 선악구조 속에서의 또 다른 죄예요. 내가 선이라고 모든 보편 인간이 선이라고 정의한 그거, 그게 옳은 거니까 ‘그래 인간들이 옳다고 판단했으면 그거 추구하자’ 가 선악과 먹은 거예요. 생명은 선악과의 울타리를 벗어 나는게 생명이라니까요. 주님은 그렇게 해서 열심을 부려 만들어 낸 것들 가져와서 하나님 잘했죠? 라고 갖다 받치면 내가 널 도무지 알지 못한다 라고 말씀하시는 분이예요. 도무지 알지 못한다 가 뭐라고 그랬어요? 어 나 못 봤는데, 그가 죽을때까지 열심히 한거 하나님이 하나도 안 봤다는 얘기예요. 그렇게 억울한 일이 어디에 있어~집 팔아서 헌금하고 일년에 육개월을 선교지에 나가 있었는데 하나님이 그걸 안 봤다니~ 그런데 하나님이 어 나 못 봤는데, 그러신다니까요. ‘에이도’ 라는 단어를 써서 ‘어 안 보였는데 내 눈에는’ 그래요 하나님이.

5:12

12. 내 형제들아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나 땅으로나 아무 다른 것으로도 맹세하지 말고 오직 너희의 그렇다 하는 것은 그렇다 하고 아니라 하는 것은 아니라 하여 죄 정함을 면하라

‘죄 정함을 면하라’ 이렇게 해석해 놨지만 ‘휘포크라시스’ 그게 외식이야~ 그러는 거예요. 그렇게 안하면 그게 외식이야~그러는 거예요. 그게 외식이야~

그러니까 야고보가 산상수훈의 예수님 말씀을 정확하게 이해한거죠. 그걸 그대로 갖다가 쓴거예요. 함부로 선언하지마. 함부로 설교하지마. 여러분 진리를 알게 되면요 눈에 보이는 것들이 전처럼 보이지 않아요. 그냥 진리를 설명하기 위해 동원된 세상, ‘호코스모스’ 가 진리로 옷을 입게 되었을 때 그 껍데기는 사라지고 진리만 남아요. 심지어 예수도 사라지고 그 예수가 품었던 그리스도라는 진리만 남게 되요. 십자가 그거 그렇게 추억하지 않아도 되요. 집집마다 그거 그렇게 안 걸아 놔도 된대니까요. 그거 볼 때 마다 나치 하이 히틀러가 생각나가지고 그거 꺾어 놓은게 그거거든요. 그런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모형으로 또 설명용 교본으로 들어서 썼던 것들, 이런 것들이 그냥 아무런 관심 꺼리가 안돼요. 그래서 요즘 사람들이 뭐 인터넷 세상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민족적 이스라엘의 회복이니 베르칲이니 아마겟돈 전쟁이니 이따위 얘기할 때 근데 그게 뭐~ 나는 그 안에서 진리를 알고 그랬더니 그 껍데기들이 그 하나님이 쓴 도구들이 그냥 진리로 이해되어 지는데 이스라엘이 회복되면 어떻고 회복 안 되면 어떠냐고요. 그 베리칲을 받아야 꼭 마귀가 여러분을 조종해요? 지금 마귀가~ 내가 마귀라며요. 사도 바울이 내가 죄인 중에 괴수다 라고 죽기전에 얘기 했단 말예요. 죄인 중에 괴수가 뭐예요. 마귀. 진리가 없으면 나는 그냥 먼지야 하나님이 언제든지 발에서 떨어 버려도 할 말 없는 먼지 그게 죄인중의 괴수지 뭐예요. 그런데 하나님이 나의 안에 진리를 넣어서 이렇게 아들 삼아 주셔서 난 그냥 찬송할 뿐이야. 뭐 이스라엘이 회복되던 말던 알아서 해~ 거기도 진리가 되는 놈이 있으면 있는 거고 없으면 마는 거고! 베리칲 안심어도 하나님이 진리로 날 붙들지 않으면 나는 그냥 마귀 새끼라니까요. 뭘 그걸 일부러 넣어서 마귀가 조종하겠냐고 그건 뭐냐구요 그 마귀는~그러니까 내 안에 가진게 없으니까 자꾸 밖에서 뭘 찾는 거예요. 가끔 그런 것을 보면 아이 참 되게 심심한가 보다 이 사람들~ 사람들은 몰라요 그냥 껍데기만 봐요. 그래서 이걸 꿈이라고 그러죠. ? 언제가 끝날 거니까 꿈이라고 그래요. 영원으로 존재할 거면 꿈이라고 안그러죠. 꿈이예요. . 그런데 이 꿈도 뭔지를 몰라~그런데요. 여러분 느브갓네살이 자기가 꿈을 꾸고 자기가 무슨 꿈을 꿨는지도 몰라요. 그래놓고는 다니엘을 불러와 갖고 너 내가 무슨 꿈을 꾸었는지도 이야기 하고 그게 무슨 의미인지도 얘기를 해요. 그것을 어떻게 아냐고~그런데 그 꿈의 내용을 아는 이들이 있더라니까요. 이 꿈같은 세상이 뭔지도 알고 그 내용이 뭔지도 알아 그 바보같은 인간, 세상 왕에게 말해주는 이가 있는~그들이 말씀들이예요. 그들이 진리들이라니까요. 그들에게 뭐 이 현상계의 것들이 육을 입고 있는 동안에는 ????가 되겠지만, 뭐 죽고 사는 문제에 것들이겠습니까? 다 하나님이 진리를 설명하기 위해 두고 쓰시는 것들인데~ 뭐 그렇게 대단하게 악한 악당이 있겠으며, 뭐 그렇게 대단하게 선한 인간이 있겠습니까? 그게 그거지 다~그 안에 담겨 있는, 말씀 안에 담겨 있는 그리고 이 ‘호코스모스’ 세상 속에 담겨 있는 그리스도를 발견하십시오. 헛맹세 하지 마세요. 거짓 증거 하지 마세요. 그리고 좀 조용해지세요. 게시판에 쓸데 없는거 올리지 말고~ 맛 집 순례 이런거나 올려요. 그 속에서 진리를 발견하는거야~그게 재밌지~뭘 알지도 못하면서~ 난 그렇게 써 놓으면 설교를 할려고 그러다가 그 사람 상처 받을 까봐 그걸 빼놓고 해야 되~잘 못 써 놓으면~다음주에 이거 설명해줘야지 그러는데 어떤 분이 굉장히 열심히 정리를 잘 해서 올려 놓으면 이거 내가 얘기하면 상처 받을거 아냐 표적 설교한다고~ 맛 집 순례 그런거 하세요 아니면 조용히 침묵하던가~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은혜를 감사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예수를 믿는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진리를 붙들고 있는다는 것 그것이 너무나 왜곡되어지고 너무나 가치 없는 것으로 이렇게 전락해버린 이런 시대에 우리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 하나님이 눈과 귀를 열지 않으면 그것이 절대 진리로 보여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는데 하나님, 내 안에 가진 것을 전하다 보니 듣는 이들에게도 그런 눈과 귀가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 생깁니다. 하나님 그렇게 하나님과 그들 사이를 중매하는 그런 역할들을 우리 서머나 교회 성도들이 잘 할 수 있게 힘 주시고, 용기 주시고 또 힘들 때 위로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