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5:31~32
이렇게 성경을 보고 연구하다가 이제 간혹 음악을 듣습니다. 어떤 음악을 듣느냐면 이제 나이가 들을수록 점점 옛날 적으로 흘러서 한 오륙십년 전 페트 페이지나 수 탐슨이나 쟈니 캐시 같은 굉장히 오래된 그런 음반을 LP로 걸어놓고 차를 한잔 마시죠. 그러면 뭐 지글 지글 지글 뭐 비오는 소리도 나고 워낙 오래된 거니까. 원판도 아니고 다 백판, 청계천에서 옛날에 산 거. 그런 거니까. 그러면 그런 음악을 듣고 있으면 여러분 음악이 좋은 것이 항상 그 음악의 그리움의 끝이 이렇게 닿아 있어요. 그래서 그걸 타고 올라가면 항상 어떤 그리움 같은 것들이 떠올라서 음악들을 듣고는 하는데, 그렇게 제가 미국에서도 그렇게 예전 옛날 음악들을 듣고 그렇게 했었지만, 그 그리움의 실체가 뭘까 생각해 봤어요.
그런데 사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 그리움이라는 건 실체는 아니에요. 여러분이 그렇게 그리워하는 거를 실체로 한번 갖다 줘보세요. 그게 진짜 그게 맞는가? 너무너무 그립고 너무너무 보고 싶고 너무너무 하고 싶던 것을 어느 날 불현듯 하게 됐을 때 그게 정말 내가 그리워하던 그게 맞던가요? 뿐만 아니라 기억이라는 것도 그렇습니다. 제가 일주일에 두 번 선생님하고 하루에 다섯 시간, 여섯 시간 씩 문자 공부를 하는데 제가 미국에 있으면서 가장 가고 싶었던 곳이 제가 다니던 초등학교였어요. 그런데 제가 공부하는 곳이 제가 다니던 초등학교 근처에요. 그래서 조금 일찍 가서 아 그 초등학교 주변을 이렇게 걸어 봅니다. 예전에 제가 늘 걸어서 다니던 그 길이었으니까. 축대도 그대로고 학교 건물도 그대로인 게 있어요. 굉장히 많이 그리워했고 또 꿈도 꾸고 그랬어요. 그런데 가서 실체를 이렇게 보니까 그 내가 가지고 있던 기억이 실체가 오니까 거짓이 되더라고요. 그거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 복음을 그렇게 막연히 기억이나 그리움 그 정도로 갖고 있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그걸 깨기가 싫어 가지고 말이죠. 그건 이렇게 놔두고 거기다가 자꾸 덕지덕지 뭘 붙이니까 이게 이상한 괴물 같은 게 돼 버리는 거죠. 실체가 오면 그 모형과 가짜 거짓은 반드시 사라지게 되어 있어요. 여러분이 들으실 때 그렇게 좀 한번 들어보셨으면 좋겠어요. 여러분이 여태까지 배우고 가지고 있던 것들을 한번 한켠으로 미뤄놓고 새롭게 밑바닥부터 하나하나 한번 쌓아보세요. 그러면 굉장히 수월하고 쉬울 수 있는데, 여러분이 붙들고 있는 거를 놓지 않으려고 그 인본주의와 율법주의라는 거는 아담들의 본능들이기 때문에 놓을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사실은. 그러나 그거를 끝까지 고집하는 한 여러분 귀에는 진리가 안 들려요. 절대로. 여기 저기 사랑하는 우리 아버님 어머님 가족들까지도 다 있는데 제가 헛소리 하겠습니까? 여러분. 영원한 생명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그 가족들이 있는데 제가 헛소리 하겠느냐고요. 목숨 걸고 공부해서 검증하고, 검증하고 또 연구하고 또 연구하고 검토하고 또 검토해서 요만큼 갖고 오는 거예요. 그러니까 한번 마음을 활짝 여세요.
조금 아까 우리 노래했죠? 주님께 내 마음을 엽니다. 진리에 대한 갈급함이 있으면 그런 마음이 생겨요. 나 마음 열 테니까 하나님 그 한마디만 들리게 해주세요. 이러는 거.
오늘로 제가 산상수훈의 간음의 문제 마무리 지으려고 하는데 여러분이 지금 읽으신 31절에 시작이 레오, 흐레오, 레오 라고 읽기도 하고 그 흐레오 단어로 시작을 해요. 그러니까 헬라어나 히브리어는 항상 제일 중요한 단어를 맨 앞에 놓는다고 그랬죠? 히브리어는 이쪽부터 쓰니까 항상 이쪽에 중요한 단어가 가 있고 헬라어는 왼쪽부터 쓰기 때문에 이 왼쪽에 가장 중요한 단어가 와 있어요. 그 레오라는 건 여러분이 잘 아시는 것처럼 레마로 말하다. 라는 뜻이에요. 로고스는 레고고, 레오는 레마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레마로 말하다. 내가 레마로 말한다. 하나님 이 얘기 하시는 거예요. 구약의 어딘가에 아내를 버리거든 이혼증서를 줄 것이라 하였지. 그러는 거예요. 내가 레마로 말한다. 일렀으되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거든 이혼증서를 줄 것이라 하였지. 그러는 거예요.
그러면 그 말이 어디 있는지 찾아봐야 될 거 아니에요. 그게 인제 비블리컬 띠얼리지(biblical theology) 성경 신학 찾아들어가는 거예요. 그래서 어떻게 연결이 되는지 1 사람이 아내를 취하여 데려온 후에 수치되는 일이 그에게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거든 이혼 증서를 써서 그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어 보낼 것이요
여기서 삼년 된 이라고 번역이 된 솨라쉬는 세 살짜리가 아니에요. 세 번째 제물이라는 뜻이에요. 세 번째. 세 번째 제물이 뭐죠? 여러분이 성전에는 제단이 몇 개 있어요? 하나 있나요? 세 개 있어요. 번제단, 이게 제단이죠. 미즈베야흐 라는 단어인데 제단이에요. 그리고 성소로 들어가면 분향단이 있죠? 향단. 그것도 미즈베야흐 제단이에요. 그것도.
그런데 밖에 제물이 죽고 태워지는 그 제단에서는 죽음으로 나는 향기니까 사망의 향기고 안에 있는 제단에서는 물약으로 내는 향기기 때문에 생명의 향기라고 그래요. 그래서 사망의 향기에서 머무르면 안 돼요. 그건 죽음이에요. 사망의 향기에서 반드시 생명의 향기로 들어가야 되요. 그리고 마지막 제단이 법궤 위의 시은자, 몰시스세 속죄소가 제단이에요.
그러니까 거기에서는 어떤 제물이 들여질까요? 여러분? 법궤는 조각 목으로 만듭니다. 조각 목이라는 건 가시나무에요.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배웠죠? 가시나무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거예요. 거기다가 그건 뗄감으로도 못씁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걸로 만들라고 그래요. 거기다가 금으로 씌워버려요. 금으로 씌워버려서 그 보잘 것 없고 쓸모없는 조각 목이 금화 되는 거예요. 그게 속죄소에요. 아주 쓸모없는 조각 목을 하나님이 하늘의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라는 의미가 거기에 있는 거죠.
거기에서 드려지는 제물은 물론 예수그리스도죠? 그러니까 세 번째 제물은 바로 그 예수그리스도를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러나 아브라함이 그걸 알아먹을 리가 없어요. 아직까지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아마르를 말해 주기 위해 다바르 라는 방법들을 쓰는 거예요. 예수그리스도라는 약속의 후손을 설명하기 위해 그런데 아브라함이 이해 못하니까 나에게 아이를 준다는 얘기인가. 그러니까 다바르로 아이를 줘서 설명하는 거예요.
그냥 아마르 약속의 후손을 말해줘도 모르니까 이삭이라는 약속의 후손, 아들을 주어서 이게 그거야 라고 설명해 주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보세요. 그 세 번째 제단에 예수그리스도가 제물로 드려져서 우리가 세 번째 성전으로 올라오는 거잖아요. 그래서 성경에 보면 그리스도가 그리스토스가 복수로 쓰일 때가 있어요. 그리스도들이라고 그러죠. 그리스도가 뭐에요? 기름 부은 받은 자죠?
그런데 그 기름이 옛날에는 올리브기름이었잖아요. 그래서 금이라는 단어, 올리브기름을 짜 놓으면 금색으로 노랗게 변하거든요. 그래서 금으로 쌌다. 라는 건, 기름으로 칠했다는 말과 똑같이 써요. 그러니까 말씀으로 우리를 덮어서 우리를 살려내는 거, 진리로 살려내는 게 바로 구원이란 말이죠.
그래서 이 아브라함이 그걸 이해를 못하니까 이제 첫 번째 제단, 그 제단에서 드려지는 그 제물로 아브라함에게 설명을 해 줄 수밖에 없잖아요. 세 번째 제물이라는 말도 이해를 못하니까 그래서 아브라함이 그 첫 번째 제단에서 드려지는 그 짐승들을 갖고 왔어요. 진짜로. 그래놓고는 시키지도 않았는데 세 번째 제물을 취하라 라고 이야기했는데 취하라 라는 단어는 영접하라 라는 뜻이거든요. 그게. 그런데 아브라함이 못 알아들으니까 아담의 본능으로 아브라함이 그 제물을 하나님께 드릴 때 어떻게 하겠어요? 그 마음이 선, 악 둘로 갈라져 있으니까. 둘로 쪼개겠죠? 하나님은 쪼개란 말 안했거든요.
그런데 인간들은 하나님께 자기가 뭘 드린다고 할 때 항상 자기의 마음과 생각으로 선과 악으로 판단하여 드리게 되어 있어요. 이걸 쪼갠다고 그래요. 이걸 바타하르 라고 그러거든요. 이렇게 종(세로)으로 쪼개 놓는 거를. 그건 나쁜 거예요. 여러분. 쪼개 놔요. 그렇게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선악구조를 갖고 그 제물을 쪼개 버리는 그걸 그게 희생 제사잖아요. 그래서 전 세계 어느 나라에 가도 전부 희생 제사가 있는 거예요. 시키지도 않았는데, 하나님께서 구약에서 율법으로 희생 제사 드려 라고 하는 그 전에는 희생 제사가 없었을 거 같으세요? 있었다니까요. 그래서 하나님이 그걸 그냥 예로 들어서 희생 제사하라고 그런 거예요. 인간들의 본성이에요. 그게.
제물 쪼개서 지 마음대로 하나님께 드리려고 하는 거. 그 상태가 뭐에요. 그게 죄에요. 그걸 악이라고 그러고 그걸 어두움이라고 그래요. 그래서 하나님이 일부러 창세기 15장에 캄캄함이 임했다. 아브라함이 잠들었다. 이건 죽었다. 라는 말이잖아요. 이런 표현을 쓴단 말이죠.
그때 하나님이 이제 내려오시죠. 혼돈과 공허와 흑암 속에 하나님이 언약을 던지는 게 빛이 생기는 거거든요. 하나님이 내려오세요. 그 언약의 현장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말씀하시는데 그 언약이 뭐냐면 너를 애굽의 포로로 만들었다가, 네 후손은 너 안에 포함된 거예요. 네 후손들을 애굽의 포로로 만들었다가 430년 후에 거기에서 끌어낼 거야~ 라는 언약을 주세요. 창세기 15장에서.
왜 그럴까요? 어떻게 나오게 되요? 그 사람들이 거기서? 어린양의 피로 나오게 되잖아요. 세 번째 제물이 뭔지를 설명해 줘야 되잖아요. 이제. 그러니까 다바르가 동원이 돼야 되는 거예요. 네가 지금 세 번째 제물이 뭔지 모르잖아. 당연한 거야. 하나님이 나무라지 않으세요. 당연한 거야. 그러니까 내가 이제 그 아마르 를 다바르 로 이제 가르쳐 줄게. 너희들이 이제 애굽으로 들어가서 400년 동안 종살이를 하다가 나오게 되는데 어떻게 나오느냐면 너희들이 무슨 힘이 있어서 나오는 게 아니라 어린양의 은혜로 나오게 될 거야. 그게 내가 지금 너에게 이야기한 세 번째 제물이란다. 너희들은 죽었다 깨나도 그게 뭔지를 모르니까.
이제 역사를 통하여 가르쳐줄게. 그 언약을 주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은 성도의 역사 속, 일상 속 평안이나 부유함이나 풍요나 이런 거에 관심이 없어요. 그에게 진리를 가르쳐주기 위해 400년 동안 종살이 시키는 게 하나님이라니까요. 그러다가 정신 못 차리면 70년 동안 포로로 보내버리고, 그러나 그렇게 해서 진리를 알아야 사니까.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는 분이지, 여러분의 일상을 해결해 주는, 하나님은 관심이 없어요. 하나님의 개념 속에는 물질이라는 게 없다니까요. 아니 이 흙들을 도대체 뭐 어디다가 쓸려고 이 흙을 가져가겠냐고? 그 안에 있는 영을 가져간단 말이에요. 말씀을 진리를 가져간다니까요.
그게 없으면 뭐에요? 기름 가지지 않은 자, 미련한 자라고 그러죠? 그 미련한 다섯 여자보고 하나님이 뭐라고 그래요? 아 너네 거기 있었니? 나 못 봤다. 그래요. 못 보긴 뭘 못 봐요 열 명이 같이 자고 있었는데, 하나님 눈에는 진리가 기름이 없는 자는 안보인단 뜻이에요. 그런데 무슨 보편구원론이니 이따위 소리가 어디서 나오느냐고요. 그렇게 언약을 주신 하나님께서 이렇게 언약을 마무리하세요.
창세기 15장 16절 16 네 자손은 사대만에 이 땅으로 돌아 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25 너를 송사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송사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주고 재판관이 관예에게 내어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여러분 산상수훈은 십계명 마지막 다섯 계명을 주님께서 설명해 주시는 거라고 그랬어요. 첫째, 둘째, 셋째, 넷째, 다섯째는 하나님이 출애굽기에서 말씀을 해주시죠? 설명해 주세요. 너에게 다른 신을 있게 하지 마라라. 그러죠? 아 하나님이 너에게 다른 신을 있게 하지 마라라. 라고 하나님이 말씀 하셨다면 하나님이 다른 신을 인정하는 게 되잖아요. 그런 말은 아니겠죠? 너는 나를 다른 신으로 섬기지마. 이런 뜻이에요. 그렇게 하나님이 설명을 해주는데 하나님이 뭔지를 아나? 하나님이 누군지도 모르는데, 도대체 우상은 뭐며? 모른단 말이에요. 그건 앞에 다섯 개는 인간들이 모르는 이야기에요. 그래서 뒤에 다섯 개를 설명안하고 제목만 붙여놓은 다음에 예수님이 신약에서 그 산상수훈을 말씀하시는 산에서 그 여섯 번째 계명부터 지금 말씀해 주시는 거잖아요. 설명해 주시는 게 산상수훈이잖아요. 그런데 그 뒤의 다섯 계명을 산상수훈을 다 공부해 보시면 아시겠지만, 네 개로 줄여 버리세요. 살인하지 마, 간음하지 마, 거짓 증거 거짓 맹세하지 마, 사랑해 에요. 도둑질 하지 마가 빠져 있죠. 여러분 보세요. 희생 제사를 계속 드린다는 건, 제물을 계속 도륙하는 거고 그건 예수그리스도의 영단번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는 거라고 그랬습니다. 그게 다 완성했다. 라는 걸 인정하지 않으니까. 계속해서 예수를 죽이는 꼴이 되어서 이걸 살인하지 마. 라고 그랬죠? 그 살인이라는 사람 죽이는 살인이라는 단어는 따로 있다고 그랬어요. 안트로폭토노스 인가 그거요. 여기에서 살인하지 마는 희생 제사, 반복적으로 익숙한 짐승 죽이는 거, 이야기하는 거란 말이에요. 그걸 계속하는 게 살인이라고 그랬어요. 그런데 그렇게 살인을 계속하는 건, 그 신랑을 전적으로 의뢰하지 않는 거니까 신랑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것이고 그걸 간음이라고 한다고 그랬죠? 그러면 그거를 이게 맞는 거처럼 이야기를 하는 걸 뭐라고 그래요? 거짓 증거라고 그래요. 그러면 이걸 다 알아서 아 이게 거짓 증거고 이게 간음이고 이게 살인이구나. 라고 알아서 진리는 그게 아니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하나님이 사랑이신 그분이 당신의 아들을 보내셔서 완료하신 거야~ 라는 걸 내가 받아드리는 걸 하나님을 사랑한다. 라고 그러고, 그거를 그 사랑이신 하나님을 내 이웃들에게 전하는 걸 이웃을 사랑한다. 그래요. 그리고 거짓 증거, 내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을 주셨는데 진리를 주셨는데 그거를 엉뚱하게 율법으로 가르치는 걸 하나님의 말을 도둑질 하는 거죠? 그래서 거짓 증거에다 그거를 붙여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네 개로 말씀하세요. 그러면 이 네 개 중에 지금 산상수훈에서 네 개 중에 마지막 하나로 완성하면 옥에서 나온다. 휠라케에서 나온다고 라고 이야기를 했으니까 그걸 거 아니에요? 뭐에요. 그게? 사랑이에요. 그 사랑을 진리로 네가 알게 되면 너는 나오지 말라고 그래도 자연스럽게 거기서 나온단 뜻이에요. 그래서 사 복음서에 네 번째 것이 요한복음이고요. 요한서신은 다 사랑이 주제에요. 요한 일서, 요한 이서, 요한 삼서 다 사랑이죠? 요한복음 사랑이에요. 그것으로 사랑으로 계명 모든 말씀이 완성이 되지 않으면 아 이거구나 사랑이구나. 결국은. 아가페구나. 하나구나. 라고 완성되지 않으면 너는 절대 거기서 못나온단 뜻이에요. 그 네 개의 마지막 호리, 이걸 네가 완성하지 못하면 넌 절대 못 나온단 뜻이에요. 그걸 바울이 이렇게 얘기해요. 로마서 13장 8절 보세요.
11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이거 같은 거죠? 이제 산상수훈 공부했으니까 알겠죠? 무슨 말인지~)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그게 간음이야~ 이러는 거예요. 사랑이거든요. 완성이. 마지막 것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그래서 성전이 정사각형인 거예요. 성전은 정사각형이고 지성소도 정사각형이에요. 요한계시록에는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정육면체로 나오죠? 정육면체의 총 변이 몇 개에요? 열두 개죠? 제가 뭐라고 물어보면 열둘 아니면, 열 아니면, 일곱, 다섯 이렇게 얘기하면 되요. 열두 개죠. 정육면체. 열두지파, 열두 사도, 그건 어디서 나온 거다? 야곱의 이스라엘의 열두 아들, 그들로 이스라엘이 생기니까. 그래서 그 아들들의 이름을 다 이렇게 설명하면 전부 아들이 되는 이야기란 말이에요. 그게. 그래서 열둘이에요. 그래서 아들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도 열두 살에 성전에 올라가는 거고, 열두 사도, 열두지파 그리고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에도 열둘, 열둘, 열둘이 계속 써있는 거고, 그 열둘 곱하기 열둘 곱하기 충만의 수 천, 히브리 사람들은 일과 천을 같은 단어로 써요. 여러분 숫자로 쓰는 게 아니에요. 십이 곱하기 십이 곱하기 충만, 144,000이에요. 그게. 666 이런 거 다 마찬가지에요. 이게 무슨 베리칩이니 뭐니 이따위 소리들 믿지도 마세요. 베리칩 무슨 얼어 죽을 베리칩, 지금 제가 사대만에 그 네 번째 자손으로 를 설명하고 있는 거예요. 놓치지 마세요. 16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장광이 같은지라 그 갈대로 그 성을 척량하니 일만 이천 스다디온이요 (십이에다가 천을 곱한 거예요. 충만 이라는 뜻이에요. 충만.) 장과 광과 고가 같더라 (정육면체에요.)
이 이야기 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걸 절제를 해 버리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율법으로 절제하면. 그게 악이라는 얘기에요. 그걸 그 율법적 열심을 바울이 엔크라튜오마이(절제) 라는 한 단어로 표현하는 거예요. 예수와 이기기를 경주하려는 자들은 반드시 이러한 율법주의로 달음박질한다. 라는 거예요. 그들의 면류관을 어떤 면류관이라고 해요? 면류관을 주기는 줘요. 다시 보세요. 25절. 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씌워주시는 그 진짜 면류관은 스테바노스, 스테반이라는 이름이 면류관이라는 뜻이에요. 이름이 달라요. 자 고린도전서 9장 26절 보세요. 그렇게 예수와 열심히 달리려고 했던 사도바울이 자기를 어떻게 했는지.
이 긍휼이 사랑이잖아요. 달음박질한다고 네가 스다디온에서 우승할 수 없어. 그런데 면류관은 우승한 사람한테만 준단다. 그런데 네가 달려서 우승하려고 하면 어떻게 되겠니? 너는 당연히 떨어져 그러는 거예요. 그 우승한 이의 편이 돼야 된단 말이에요. 편이, 카탈람바노(상) 그래야 받을 수 있어요.
그 그림을 머릿속으로 한번 잘 그려보세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예수를 상징하는 세 번째 제물을 이야기하셨는데, 아브라함이 첫 번째 제물로 쪼개놨어요. 율법으로 쪼개 놨어요. 은혜의 제물을 이야기하는데, 그렇게 나를 중심으로 나의 마음을 두 마음을 투사하여 양쪽으로 분리하고 나누는 걸 히브리어로 바타르라고 한다고 그랬습니다. 그 상태가 되면 하나님이 내 편에서 나와 하나가 될 수 없어요. 그러면 하나님이 어떻게 해야 되요. 건너가셔야 되요. 그러면 하나님이 건너 가셔서 제물을 경계로 두고 횡으로 경계를 그으시는 걸, 카다르라고 그래요. 그게 이혼증서의 분리라는 뜻이란 말이에요.
단순히 뭐 이혼, 간음 이따위로 이야기하는 거 아니라니까요. 그 이런 융숭 깊은 이야기를 그냥 이혼증서 이렇게 번역을 해 놓으니까. 그냥 그렇게만 아는 거예요. 이혼하면 절대 안 돼. 그래서 이혼한 사람은 교회 와서 얘기도 못해. 이혼했다고. 해라는 것도 아니지만, 그 분리 횡적인 분리를 카라트라고 그래요. 그 이혼증서 세페르케리투트 그 카라트란 말이에요.
그 카라트에 관한 책, 그렇게 카라트 해버리는 책 그게 뭐에요. 성경이에요. 거기에 대해서 설명하는 게, 언약에 대해서 설명하는 게 성경이잖아요. 율법이고 전체 성경이 또 다 그 얘기를 하는 거고, 지금 모든 인류는 그렇게 제물을 사이에 두고 하나님과 카라트 되어 있는 상태에요. 이혼되어 있는 상태에요. 우리가 이혼되어 있는 자라니까요. 지금. 인간들이 율법주의적 희생 제사로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면 그게 바로 이혼인 거예요.
그렇게 이혼 상태를 주님이 뭐라고 그래요. 그걸 간음이다. 그래요. 또. 그런데 그러한 카라트의 상태에서 그 쪼갠 제물이 의미하는 바를 깨닫고 아 제물은 이렇게 선악으로 쪼개서 내가 내 열심으로 드리는 게 아니라 예수그리스도라는 하나 아가페로 하나님이 준비하셔서 가져가시는 거구나. 이렇게 깨닫게 되면 거기에서 내가 어떻게 해야 되요? 열심히 내가 내 열심, 나를 드려서 구원에 도달하려고 했던 그 나가 거기서 죽는 거잖아요. 왜냐면 이거 안 받는다니까. 그러면 이거는 아무것도 아니네. 이렇게 되면 내가 죽는 거란 말이에요. 그때 그 십자가가 참이 되는 거예요.
그런데 내가 그렇게 죽지 않으면 나에게 나의 죽음을 끌어내지도 못하는 그 십자가가 무슨 참이냐고, 거짓이지. 그러니까 십자가는 하나님은 진리를 아는 성도에 의해서 참이 되는 거예요. 그렇게 아 나는 이 쪼갠 제물을 두고 하나님께 내가 이걸 드리는 상태로 이렇게 있으면 안 되는 거구나. 이게 희생 제사잖아요. 저기로 죽어서 넘어가야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거구나.
그걸 뭐라고 그랬어요? 환갑이라고 그랬죠? 그런데 환갑이 제사상이라고 그랬잖아요. 그래서 환갑 맞은 이들을 제사를 드리는 사람 건너편으로 건너가는 거예요. 그런데 그 환갑이 뭐를 전제로 되요? 오십, 지천명, 하늘의 뜻을 알았을 때 환갑으로 가는 거예요. 죽는 거예요. 아 하늘을 하나님이 땅의 것으로 설명했는데 내가 그걸로 하늘을 알았어. 그렇게 해서 갑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하나님께로 건너가는 거예요. Passover 라니까. 우리도 건너간다니까요.
그래서 십자가가 예수의 죽음이 우리에 의해 참이 되는 거예요. 우리대신 드려진 그 어린양이라는 그 제물이 가치 있게 되는 거예요. 그때서야. 내가 제물이 가치 있는 게 아니라 그걸 영광을 돌린다고 하는 거예요. 그게. 그걸 하나님이 반드시 이루시겠다. 라고 하는 게 언약이에요. 따라서 성도는 반드시 그 희생 제물이라는 경계를 건너가야 되요. 하나님 편으로 건너가야 되요. 제물을 사이에 두고 하나님과 경주하면 안 된다니까요. 제물을 사이에 두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게 구약이잖아요. 신약은 건너가서 그 분과 함께 하는 거라고요.
그래서 성경에서 항상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디를 건너가는 것으로 이렇게 묘사가 되는 거예요. 히브리, 히브리인, 히브리가 건너가다. 에요. 제 아이디 하비루죠. 건너간 자라는 뜻이에요. 건너가다. 건너 가, 홍해도 건너 가, 요단강도 건너 가, 광야도 건너야 돼. 다 건너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성경을 그저 법으로만 이해하게 되면 그 성경 때문에 제물이라는 경계를 못 건너가게 되잖아요. 법으로 보게 되면 이게 제물에 관한 책이 되잖아요. 그죠? 못 건너간단 말이에요. 이걸 진리로 이해를 못 하면은. 그러면 그 카라트가 뭐라고 그랬어요? 이게. 이걸 이혼증서라고 한다고 그랬죠? 그러면 그 사람에게 성경이 뭐가 되요. 이혼증서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카라트의 관한 책이라고 하는 거예요. 책. 그냥 카라트의 상태로 굳혀 버리는 거예요. 하나님이요. 너희들 맘대로 믿어.
로마서 1장에 보면 하나님이 그냥 그 마음대로 놔둔다고 그러죠. 그게 무서운 거예요. 여러분. 그래놓고 나중에 뭐라고 그래요? 네들 믿음대로 될지어다. 그러죠. 그건 여러분이 믿는 대로 로또도 맞고 아파트 값도 오르고 그렇게 된단 말이 아니라, 진리를 율법으로 믿게 되면 그 믿음대로 심판 받을 거고 진리를 진리로 믿으면 그걸로 구원 받는단 뜻이다. 믿음대로 될지어다는~ 마음대로 믿어~ 라고 주는 거예요. 성경을요.
신명기 24장의 세페르케리투트는 바로 분리의 책, 단절의 책이라는 거예요. 그 책은 부끄러운 말, 벌거벗은 자들의 말, 에르바다바르 이랬죠? 수치스러운 일 이렇게 번역을 했지만, 그게 새겨진 책, 오해되어진 로고스는 바로 그렇게 벌거벗은 자들의 책이 되잖아요. 표피적으로 읽히는 책이 되면 그게 이혼증서다. 라고 이야기하는 거란 말이에요. 그 책이 누구에게 주어진다고 그래요? 신명기 24장에서. 은혜로 헨 은혜로 만족하지 못하는 자, 은혜가 안에 없는 자, 그들에게는 성경이 이혼증서로 주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그거 갖고 열심히 신앙생활해가지고 완벽하게 이혼당하는 거예요.
그러니 제 마음이 어떻겠어요. 여러분. 목사로서 설교하면서 왜 하필 내가 이 악역을 맡아 갖고, 여러분이 너무 부러워요. 그냥 자기 직업 갖고 또 진리도 이렇게 공부하고 뭐 얼마나 좋아요? 뭐 미사리에 일자리 좀 하나 알아봐 주세요.
자 신명기 24장 1절 보세요. 다시 한번 볼게요. 1 사람이 아내를 취하여 데려온 후에 수치되는 일이 그에게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거든 이혼 증서를 써서 그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어 보낼 것이요 그를 미워하여 이혼 증서를 써서(전부가, 얘는 은혜가 없는 이야~ 그래서 이혼증서를 써서 주면 그 후부가 거기 보면 뭐라고 그래요? 그를 아내로 취한 후부가 죽었다 하자 이렇게 번역이 되어 있는데 그를 위하여 마지막 남편이 죽었다 하더라도 이런 뜻이에요. 그래도 그는 예수가 죽었잖아요. 그런데 그 죽음이 이 책에서 읽혀지지 않으면 그냥 이혼증서일 뿐이라는 얘기에요. 두 번째 남편이 버린 거, 첫 번째 남편이 또 가져가지 마. 이런 지저분한 얘기 써있는 거 아니라고요. 이게. 성경이 뭐 왜 그런 얘기를 쓰겠느냐고요. 이 귀한 이 공간에다가. ‘그 후부도 그를 미워하여 이혼 증서를 써서’) 그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집은 성전이에요.) 내어 보내었거나 혹시 그를 아내로 취한 후부가 죽었다 하자 그건 성전이 더러워지는 거기 때문에 절대로 안 돼 라는 뜻이에요. 이렇게 은혜로 만족하지 못하는 여자에게 성경은 벌거벗은 자의 말이 새겨진 분리의 책이 되고 그는 집에서 성전에서 쫓겨나요. 이혼당하는 거예요. 그리고 그 자체가 바로 간음이라고 그래요. 간음. 그러니까 이 모든 게 다 말, 진리, 언약에 관한 이야기에요. 성경은 도덕, 윤리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진리만 이야기해요. 예수만 이야기한단 말이에요. 그래서 오늘 본문 32절도 음행의 말이라고 기록을 하고 있는 거예요.
본문 32절 다시 보세요.
지금요. 여러분 몸을 사용하여 여러분의 유익을 얻는 게 내 행음이에요. 포르네이야 에요. 그거 안하면 안 돼요. 이 역사 속에서는. 해야 되요. 그걸 하면서 도대체 행음이라는 게 무엇인지를 알면 되요. 죽음이라는 건, 삶이 무엇인지를 알면 그게 죽음이에요. 아 사는 게 이런 거야~ 이게 진짜 사는 거야~ 그러면 그게 죽는 거예요. 아담의 죽음이에요. 그게 기쁨이에요. 여러분 사람이 죽을 때 가장 극한의 쾌락을 느낄 수 있는 게 사람 숨이 넘어갈 때라고 그래요. 그래서 의학에서 브레인페스티발이라고 하잖아요.
그래서 그거를 어떤 사람이 잠깐 경험하고 무슨 사람들이 가끔 영화배우나 이런 사람들 목매달고 뭐 하다가 질식해서 죽죠? 쾌락 얻으려고 하는 거예요. 마라톤 하다가 숨이 껄떡껄떡 넘어갈 때, 그 때 엑스타시를 느낀다고 그러죠? 그래서 하는 거예요. 죽어라고 뛰는 거예요. 사람이 숨이 넘어가면 최고의 쾌락이에요. 그게요. 한번 해보지 마세요. 또. 진짜 가는 수가 있어요. 그러다가. 그런데 어떤 이는 그 영원한 그 기쁨으로 영원히 가는 거고, 어떤 이는 그거 이거 원했던 거야~ 라고 한번 맛보고 영원한 지옥으로 가는 거예요.
네가 원하는 게 네 재물, 네 힘, 네 몸 팔아 원했던 게 이거냐~ 라고 한번 보여주고 가는 거예요. 죽음이 왜 두려워요? 진리를 아는 이들이. 하나도 두렵지 않아요. 오히려 살아서 그 죽음까지 가는 그 시간이 힘든 거예요. 얼마나 고통스럽습니까?
자 여기 보면은 그 로고스포르네이야 말을 가지고 더럽게 장사하는 것, 몸을 파는 것, 그렇게 하면 너희는 반드시 남편에게 버려짐을 당한다. 그거 이외에는 절대 버려지지 않아 그러잖아요. 지금요. 다른 거는 다 용서한다고 우리 지난 시간인가 찾아봤죠. 사람의 죄는 용서를 받으나 그러잖아요. 성령, 영, 말을 훼방 깨다. 말을 깨는 건 절대 용서 못 받아 그러잖아요. 제가 그렇게 설명해 주면 그 주에 그거를 질문하는 분들이 있더라고 안 들었다는 얘기잖아요. 아 얼마나 낙심이 되는지 몰라요. 그런데 성경이 하나님이 우리를 사셨다고 그러잖아요. 너희는 네 거 아니야 그래요. 네가 뭔데 나를 함부로 팔아요. 하나님 앞에 여러분이 여러분을 드린다는 건 지금 여러분을 팔아 드리는 거거든요. 이미 하나님 건데 뭘 드리느냐고요. 하나님의 샀다는데, 아니 제가 여러분들 가지고 다니는 가방 쑥 뺏어가지고 이거 드릴게요. 그러면은 어 미쳤나 그럴 거 아니에요. 하나님도 그럴 거라고 지금. 저거 내가 샀는데 쟤네들이 자꾸 나한테 뭘 준대. 지들 팔아서. 지들이 힘 팔고, 돈 팔고, 지혜 팔고 팔아서 나한테 뭘 준다고 그런다. 내건데~ 그게 포르네이야 라니까요. 로고스포르네이야. 장사하는 거, 나를 파는 거, 나의 봉사 팔고, 나의 지혜 팔고, 나의 노력 팔고 나의 열심 팔아 나의 천국 챙기고 나의 구원 챙기고, 이게 뭐에요? 장사에요. 이게요. 그래서 예수님이 그래요. 성전에 그 예성전이 꼭 그런 거잖아요. 자기가 열심히 희생 제사 드려서 나의 천국, 나의 구원, 나의 영생 챙기는 게 율법이었죠. 그거 보더니 하나님이 그랬다니까요. 내 집을 왜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어 놨느냐고, 거기서 무슨 뭐 새 좀 팔고 양 좀 팔고 그랬다고 예수님이 그거 뭐 화나서 그랬겠어요. 그 구약적 신앙 그 전체를 싸잡아 장사하는 것이라고 하는 거예요. 하나님 걸, 지 맘대로 지 것처럼 파는 게 뭐에요. 강도죠? 그래서 강도의 굴혈이라고 그러는 거예요. 왜 하나님 걸 지 맘대로 팔아먹느냐고요. 하나님의 말씀 갖고, 말 갖고 장사하는 거. 누가복음 19장 45절 보세요.
(기도라는 건 뭐라고 그랬어요? 하나님이 나에게 진리를 흘려주시면 내가 그 진리를 이웃에게 흘려주는 이걸 기도라고 그래요. 이렇게 흘러가는 거를. 그러니까 내 집은 진리가 흐르는 기도하는 집인데, 그래서 예수님이 겟세마네의 기도에 무슨 기도든 하여튼 사람들 꼭 데려 간 거예요. 들려주려고. 그랬더니 걔들이 적었잖아요. 들었단 얘기라고. 그게. 기도를 소곤소곤 해서 그 어떻게 들었겠냐고. 기도라는 거 자체도 이렇게 왜곡되어 있으니 뭐 그런 기도 하지 말라고 그러면 저거 보라고 저 이단이라고 기도하지 말라고 그랬다고~ 엉터리 기도 하지 말란 이야기에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들었도다 하시니라. 강도의 굴혈, 하나님의 말을 갖고 사람으로 장사하는 것, 강도의 굴혈이에요. 거기가. 그래서 산상수훈의 그 거짓 증거 안에다가 도적질을 그냥 끼워 넣어 버리는 거예요. 똑같은 거니까 그리고 일부러 네 개로 맞춰버리는 거예요. 에스카토스코드란테스 그걸 맞추려고요. 굴 하면 생각나는 거 있죠? 아브라함의 믿음의 조상이니까 막벨라 굴, 막벨라가 양 우리라는 뜻이거든요. 양 우리는 구약성경에서 항상 성전을 이야기하죠? 양 우리. 그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이 양 우리로 도둑놈도 넘어간다고 그래요. 그런데 그 양 우리에서 그 도둑놈들한테 붙들려서 잡아 먹히는 놈들 말고 예수님이 말로 불러내는 이들이 있죠? 불러내는 거예요. 양 우리에서, 그런데 막벨라 굴은 뭐에요? 무덤이죠? 옛 성전은 무덤이에요. 거기서 죽어서 나와야 된다니까요. 거기 계속 들어가 있으면 안 돼요. 그건 부정한 곳이에요. 그렇게 불려나온 이들을 에크, 아웃, 레시아, 에클레시아 교회라고 그래요. 천상의 교회. 그러니까 그냥 각자 다니던 교회에서 죽어서 여기 이렇게 모여 있는 거 아니에요. 막벨라 굴에서 나와 가지고 지금 이렇게 모여 가지고 에클레시아 하고 있는 거 아니에요. 그런데 율법주의자들은 어떤 삶을 지향한다고 그래요. 마태복음 23장에 보면 그들은 시장에서 문안받기 좋아한다. 라고 그래요.
시장에서 문안받기 좋아하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쫓아하지 마.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시장은 왜 돌아다니겠느냐고요. 아고라, 성전 마당에서 거들먹거리면서 서서 거기서 괜찮은 종교인 되려고 하는 거, 그거 바리새인이야~ 서기관이야~ 그러는 거예요. 나라는 상품의 가치가 보다 더 훌륭하게 매겨지기를 원하는 게 장사지 뭐에요? 그래서 계시록에 가면 바벨론 거기를 뭐 장사하는 자라고도 이야기하고 상인이라고도 이야기하고 그들이 거래하는 품목 중에 사람의 영혼도 들어가 있는 거예요.
사람들 막 사고 팔다가 결국 사망으로 넘겨버리는 거. 바벨론, 가짜 교회. 바벨론. 바벨이라는 게 말이 혼잡하다. 라는 뜻이잖아요. 바벨이. 섞이다. 혼란스럽다. 바벨탑이잖아요. 그래서 말이 거기서 갈라져 버린 거거든요. 그 바벨론이에요. 거기서 나온 게. 그래서 계시록에서 바벨론 하면은 엉터리 말을 갖고 교회인척 하는 거. 사단의 회라고 그러잖아요. 회가 시나고그 회당이에요. 교회를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런데 사단의 교회가 있다는 거예요.
성경이 이야기하는데. 얼마나 무섭습니까. 그 무슨 뭐 구원 팔아 이런 이단들 이야기하는 거 아니에요. 거기에는 관심도 없어요. 하나님은요. 여러분 인간의 손이 닿으면 모든 게 다 변질이 되요. 이 세상 모든 자연만물이 다 진리로 존재해요. 그래서 자연이에요. 스스로 자, 그럴 연 하나님이 있으라고 한 대로 있다니까요. 그런데 거기에 사람 손이 닿으면 꼭 문제가 생겨요. 사람이 발명한 거, 만든 거 다 마찬가지에요.
여러분 자동차에 치여 죽는 사람이 전쟁에서 죽는 사람보다 훨씬 많습니다. 그런데 전쟁 일으켜 갖고 사람 죽이는 거는 그렇게 광분하고 혈서 쓰고 촛불 들고 나가고 그면서 자동차 없애자는 말은 안 해요. 거기서 더 많이 죽는다니까요. 보세요. 사람이 만들어 놓은 것 중에 진짜 사람에게 이기로 쓰여 지는 게 뭐가 있냐고요. 나 진짜 없애고 말 타고 다니고 이랬으면 좋겠어요. 뭐 급한 것도 별로 없고 그냥 괴나리봇짐 메고 걸어가다가 이렇게 뭐 무도 뽑아 먹고 고구마도 뽑아먹고 이렇게 아 그게 진짜 내 요즘 시골에 살다보니까. 아 시골이 참 좋아요. 특히 말을 보세요. 인간의 손이 닿으면 인간이 그걸 사용하기 시작하면 항상 그건 본질을 잃어버려요. 왜곡된다니까요.
하나님이 네페쉬에다가 생기 르와흐를 부었다고 그러죠? 그래서 생령이 된다고 그래요. 그런데 생령이 뭐냐면 르와흐가 뭐에요? 호흡, 호흡은 숨인데 숨이 들어가면 말이 되요. 숨을 막아버리면 말이 안 나와요. 그걸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이 내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고 했잖아요. 말이란 말이에요. 하나님이 말을 부어야 그게 살아나요.
에스겔서의 그 군대도 마른 뼈, 뼈다귀가 다 맞춰졌어요. 거기에 생기, 말이 들어가야 군대가 되는 거예요. 그 군대가 뭐냐면 그 말을 전하는 자들이에요. 그래서 출애굽기에서 법이 주어지고, 레위기에서 그 법이 세목으로 일상에 적용이 되고, 자 신명기에서 정리가 되고, 민수기에서 어떻게 되요? 민수기에서 군대를 세죠? 신명기에서 들어가는 거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그 그런 거예요. 말이 들어가야 되요. 진리의 말을 할 줄 알아야 되요. 여러분이요. 그런데 그 말을 인간들은 어떻게 써요? 장사하는 데만 써요. 문자라는 게 하나님이 하늘과 신, 하나님을 담아서 문자를 처음 줬습니다. 히브리의 문자를 하나하나 공부하다 보면 창세기 일장부터 계시록 마지막장까지 내용이 그 안에 다 들어가 있어요. 그 알파벳 안에 그러니까 하나님이 원래 그렇게 주셨단 말이에요. 우리에게. 그런데 인간들은 그 문자를 페니키아 때부터 문자를 쓰는데 어떻게 쓰냐면 장사하는 데 써요. 아라비아 숫자 장사하느라고 만들었어요. 그게 인간들의 본능이라니까요. 자기를 팔아 자기를 유익하게 하는 장사,
그런데 성경도 그렇게 써 먹는다니까요. 성경의 말씀, 말도 그래서 전부 자기를 들어내거나 자기의 유익, 결국은 그리로 끌어 당겨요. 말을. 다. 그래서 급기야 이렇게까지 변질 된 거예요.
제가 토플 시험 볼 때만 해도 게이는 죠이 기쁨이었어요. 지금 개인은 다른 말이 됐어요. 말은 계속 이렇게 망가져요. 밥 먹었삼, 말이 이렇게 망가지느냐고. 나는 우리 그 서머나 교회 게시판 보면 맞춤법들, 맞춤법 공부 좀 하세요. 책을 좀 읽던가 아니면 쓰지를 말던가. 말이 자꾸 이렇게 하찮은 게 된다니까요. 신을 설명하고 하늘을 설명한 게 말인데 엉뚱하게 애들 쓰는 말, 보세요. 나는 반은 못 알아듣겠어. 무슨 말인지. 말이 막 망가지고 있다니까요. 그리고 전부 다른 뜻이 되어 가고 있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개역성경을 한글로 갖고 있는데 하나님의 진의를 거기서 발견 할 수가 없는 거라. 오늘날 우리가 쓰는 말이 변해버렸거든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준 뭐 알렙 베이 타오 이런 그 문자들은 전부 하나님을 설명하는데 거기다가 사람들이 자기들의 생각과 지혜를 넣어 지식을 넣어서 그걸 사용하기 시작한 거예요. 갑골문자도 마찬가지에요. 전 세계 문자가 페니키아 문자하고 갑골문자 이 두 군데에서 다 나온 거예요. 그래서 알파벳은 거의 다 흡사한 거고 한자 문화권의 갑골문자도 다 비슷해요. 다 이 두 갈래에서 나온~ 전 세계 언어는 7,000개지만 문자는 30개도 안 돼요. 그런데 다 비슷하다니까요. 이 둘로만 나눠져 있어요. 그런데 그게 원래 다 뜻이 있었다니까요. 하나님이 진리를 설명하기 위해 준 게 르와흐, 말이에요. 글이라니까. 문자라니까요. 그런데 그걸 선악이라는 마음으로 읽게 되면 이렇게 되는 거예요. 오늘날 같이요.
여러분 옛날 선인들이 갑골문자를 가르칠 때 가장 먼저 가르친 단어가 뭔지 아세요? 한일자였어요. 그리고 이걸 태급 태소 태초 이런 식으로 가르쳤어요. 진리를 가르쳤어요. 그리고 이게 하늘이야~ 이렇게. 그리고 모든 글은 다 이 아래로 해석된다. 이렇게 가르쳤다니까요.
그 다음에 가르친 게 이에요. 두 이, 원래 두 이자는 이렇게(?) 생겼어요. 땅의 것이 땅의 것으로 하늘로 올라가는 거예요. 다바르로 아마르를 알아먹는 거예요. 로고스로 레마를 알아먹어 하늘로 가자.
그리고 세 번째는 삼 같죠? 아니요. 보일 시(示)자를 가르쳤어요. 이렇게 두 이자 밑에 내 천자 그걸 알려면 하늘에서 물이 흘러 내려와야 돼~ 세 번. 내 천자로, 물, 그다음에 삼, 하늘, 땅, 중보자, 그렇게 가르쳤다니까요. 갑골문자를요.
그리고 그 다음에 사가 아니라 이걸 이은 왕자(王)에요. 하늘 땅 중보자를 연결하면 왕이다. 다 성경을 이야기하고 있단 말이에요. 원래가
복(福)자도 보세요. 복자가 뭐에요. 보일 시자, 일, 입구, 밭전 아니에요. 밭전 자가 이렇게 되어 있었다고요. 이렇게. 이렇게. 샘이 있는 동산이라는 뜻이에요. 밭전이. 샘이 있는 동산에 하나의 말이 있는 걸 보여주는 게 복이다. 라는 뜻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그걸 갖고 이제 우리가 편안한대로 써먹는 거예요. 하나님은 모든 것에 진리를 담아주는데 그냥 우리가 그걸 임의대로 써버리는 거. 장사하는 데. 나를 팔고 나의 유익을 높이고 나의 가치를 상승시키기 위해서. 우리 점심 드셨나요? 점심이 뭐에요? 어떤 이가 진리를 얻기 위해서 죽간에다가 이 괴나리봇짐에다가 죽간, 옛날에는 목간, 죽간해서 목책, 죽책 그래서 책 있죠? (冊)책자가 이거잖아요. 거기다가 이렇게 글을 써갖고 다녔단 말이에요. 짊어지고 진리를 찾아다니는데 배가 너무 고파 할머니한테 할머니 먹는 떡 좀 주세요. 할머니가 묻습니다. 어디가? 진리를 찾아 갑니다. 그래? 네 마음속에 점찍었니? 네 마음속에 그 진리가 점으로 완성 되어 있으면~ 점찍었다. 라는 건 완성이거든요. 그러면 어디 너 찾아다닐 필요 없어. 그 사람이 거기서 깨달았다고 그래요. 아 그렇군요. 그래 떡이나 먹고 가 그래서 점심이에요. 그런데 그걸 밥 먹는데 쓰고 있다니까. 우리가. 마음에 점찍었니? 이게 점심이란 말이에요. 그런데 그건 다 잊어버리고 점심 먹었어? 그래서 마음에 점을 안에다 찍으면 클 태자가 되죠? 하늘 왕 그래서 하늘의 제사를 지내는 그 산을 태산이라고 그래요.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건마는~ 그건 높은 산이 아니라 얕은 동산이었어요. 옛날에는 제단을 못 만들었기 때문에 제사를 지낼 때마다 그 봉분을 이렇게, 이렇게 흙을 모아서 거기서 제사를 지내서 그 봉분이 제사 제단이에요. 그거요. 봉긋. 그런데 그렇게 제사를 지내던 그거를 뭘 대단한 것인 양 사람들이 못 올라갔다니까 무서워서~ 그걸 안 어떤 이가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산이야 오르고 또 올라가면 그거 왜 못 올라가니? 그런데 왜 무서워 해 그런 거거든요. 태. 이 점이 밖에 찍히면 개가 되는 거예요. 개견. 그래서 왈왈 짓는 거죠? 그 점이 안에서 완성이 돼야 되는데 진리로. 이게 밖에 율법이 되어버리면 왈왈 개소리가 되는 거예요. 그게 이혼증서에요. 법이 돼 버리면.
성경 얘기할 때 다 졸다가 이런 얘기하니까 그냥 말똥말똥해지네. 보세요. 우리는 뭐만 줬다하면 전부 선악으로 바타르 해버려요. 쪼개버린다니까요. 이렇게 써버려요. 말까지도. 하나님이 절대 안 돼 라고 카타르로 쪼개버리세요. 경계를 그어버리세요. 그래서 이렇게 되면 안 되는구나. 우리가 죽고 넘어가면 그 때 연합이 되는 거예요. 그러면 그 때는 그 이혼증서가 뭐가 되겠어요. 청첩장이 되는 거예요. 그러니 한번 생각해보세요. 여러분. 아니 그거를 안 사람들이 이만큼이라도 모여 있는 게 이게 기적이 아니에요? 이 만큼이라도 모여 있는 게 이게 기적이 아니냐고요? 그거에 수긍하고 고개 끄덕이는 사람이 진짜 그렇게 많겠어요? 그러면 그걸 내가 가졌다. 라는 이 사실 이게 나를 행복하게 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엇으로 우리를 행복하게 하냐고요.
아 우주 한번 생각해보세요. 우주. 그 어마어마한 수천억 개 별 중에 그 태양계 그걸 만들어 놓고 지구라는 거 유일하게 살 수 있는 온도를 가진 이 지구, 아니 화성이나 목성 이런 데는 바로 우리 다음다음 별이지만 못살아요. 한쪽은 너무 추워서 한쪽은 너무 뜨거워서 그런데 딱 거기 지구에 우리를 이 살아있는 이 생명체를 넣어 놓으시고 그리고 그 수십억 중에 당신의 영, 진리를 가진 이들을 이렇게 모아서 여기다 이렇게 모아놓은 거예요. 그런데 그런 태양계가 수천억 개가 모여 하나의 우주를 형성하고 그런 우주가 또 수천억 개가 있어요. 하나님이 일부러 그렇게 만들어 놓으신 거예요. 그런 우주에서 그걸 만드신 하나님이 헤치고, 헤치고, 헤치고, 헤치고, 그냥 헤치고 와야 지구에요. 그리고 또 거기서 헤치고, 헤치고, 헤치고, 헤치고, 그래야 노량진이라니까. 그런데 거기에서 또 헤치고, 헤치고, 헤치고 해서 여기, 그런데 거기에 하나님 대접을 받는 어떤 이들이 있다. 라는 게 이게 기적 아니냐고요. 그러면 그거를 아는 우리가 아니 그런 하나님이 그런 어마어마한 우주 속에서 나를 아는 척해주시고 나의 이름을 불러주시고 나의 친구가 되시겠다. 라고 하는 이 사실이 기쁘지 않다면 여러분이 예수 믿는 사람 맞느냐고요?
아니 뭐 UFO 외계인 이런 소리 좀 하지 말아요. 있으면 어떻고, 없으면 어떠냐고요. 그런 게. 아니 여기에 수십억 중에도 진리를 아는 이가 몇 명 안 되는데 뭘 다른 데까지 만들어 놨겠냐고요. 여기서 차고 넘치면 다른 데서라도 데리고 오자 해서 그러면 만들어도 괜찮지만, 여기도 몇 명 안 되는데 뭘 다른 데 까지 만들어 놨겠냐고요. 아 비행접시 이거는 히틀러가 처음에 고안해서 만들다가 죽은 거 아니에요. 그래서 그거 만들던 사람 미국에 다 데리고 와갖고 지금 전투기 개발하고 있잖아요. 그래서 만든 게 스텔스 어설프게 만들었지만. 지금은 역 반사 도료까지 만들어져 갖고 인제 안 보이는 비행기도 만들어요. 아니 그게 뭐가 그렇게 신기하냐고.
어차피 UFO, Unidentified Flying Object 잖아요. 모르는 거. 아니 그게 있다고 치자고요. 있다고 쳐. 그래 아무리 엄청난 문명을 갖고 있어도 그 진리 모르면 그건 오징어라니까. 뭘 그게 궁금하고 신기하냐고요. 그 까짓게. 지금 그 진리를 알고 여기서 하나님과 교금하고 있는 내가 신기한 거지. 그게 여러분을 자유케 해야 되요. 그게 여러분을 행복하게 해야죠.
그게 진짜 나를 자유케 하고 행복하게 한다면 뭐 그런 나를 옭아매고 있는 이 현상계의 일들이 뭐 그렇게 내가 절망에 빠져서 헤어나지 못하는 뭐 그런 일이 되겠습니까. 죽기밖에 더하겠냐고, 그런데 죽으면 브레인페스티발이라며요. 진리를 알고 죽으세요. 그러면 페스티발이 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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