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목사/비유강해

비유 강해 10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눅10:25-37>

은바리라이프 2013. 10. 16. 13:10

비유 강해 10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10:25-37>

 

여러분이 잘 아시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 비유는 이웃을 잘 섬기는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자는 교훈이 아니라 오히려 너는 선한 이웃이 될 수 없다는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진정한 하나님의 노마드인 성도그 대표적인 사람 아브라함의 얘기와 신약의 관련 성구들을 통해 이 비유를 설명하겠습니다.

 

노마드란 정처가 없는 유목민을 뜻합니다. 철학자 들뢰즈에 의해 철학 용어로 쓰이면서 노마디즘이란 현대 사상으로 많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개념입니다. 이 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살아가는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사상이나 사회는 곧 정형화, 고착화되어 단단한 틀에 갇혀 버리게 되는데 그렇게 코드화 되어 버린 사상이나 사회체계는 필연적으로 억압과 지배체계를 갖게 되고 거기에는 당연히 소외계층을 내어 놓게 됩니다. 그러한 모순점을 발견하고 거기에서 밖으로 튕겨져 나오는 것이 바로 노마디즘입니다.

 

그렇게 모든 인간은 자신의 유익과 안주를 위해 탈영토화, 탈국가화, 탈고착화를 시도하는데 문제는 그 틀을 꺠고 나가는 운동이 반복적으로 계속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역사는 탈주의 궤적입니다. 바벨론의 전신인 갈대아 우르에서 나온 아브라함으로 시작된 구약이 어떻게 끝이 납니까? 제 발로 바벨론으로 들어가 포로가 되는 것으로 끝납니다. 끊임없이 탈주를 시도하는 인간들은 결국 인간들의 국가로 귀소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엄밀히 말해 인간이 돌아가려 하는 세상 국가는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나라입니다. 거기에서 탈주하지 못하는 이들은 아무리 노마디즘에 의해 탈주를 시도해도 결국 라는 이기적 왕국으로 귀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순환하는 탈주의 궤적에서 완전한 탈주를 하는 이들이 있으니 그들이 바로 성도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에 의해 진짜 노마드가 됩니다. 스스로의 자아 챙기기 작업을 거치면서 또 다시 자아라는 고착화의 틀 속으로 돌아가는 세상과 달리 절대 자기 자신이라는 나라로 돌아 갈 수가 없는 자들 입니다. 옛 사람이라는 자기 속의 나라가 하나님의 은혜에 의헤 계속해서 파괴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 옛 사람의 소멸로 광야같은 이 땅에서 이방인으로 나그네로 진정한 하나님의 노마드로 살게 됩니다.

 

그 대표적 사람이 아브라함입니다. 바벨론에서 이끌려 나와 모리아산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끊임없이 흘러야 했습니다. 갈대아 우르에 사는 형편없는 우상장수에게 하나님의 언약이 떨어집니다. 아브라함은 실패와 미성숙과 어리석음을 폭로당하지만 하나님의 주권과 믿음, 은혜의 왕 노릇 속에서 믿음의 조상으로 만들어 집니다. 죽어야 할 자가 하나님이 준비하신 약속의 후손의 죽음으로 대신 살아나는 것이 모리아산 사건입니다.

 

그런 모리아 산에서의 아브라함의 행위는 하나님의 은혜로격발되어 거저 얻게 되는 성도의 행위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2:21-26) 그런데 이 말씀을 로마서 4장과 비교를 해보면 (4:1-3) 서로 다른 얘기를 하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이 둘은 정확하게 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야고보가 말하는 행함은 일차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대속 제물에 접붙여지는 하나님의 행함에 의해 주도된 결과론적 행함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행함은 당신의 백성을 갈대아, 바벨론, 이 세상 국가에서 반드시 이끌어 내어 자기 자신이라는 옛사람의 심장에 칼을 꽂는 완전한 자기 부인의 자리로 완성을 시키십니다. 그것이 아브라함의 삶에서 격발되어 나온 행함이라는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행함에 근거한 자기부인의 행함이 없는 믿음이 죽은 믿음입니다. 십자가 은혜에 의지하지 않고 인간 측의 노력과 공로를 개입시키는 것이 가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얘기 끝에 기생 라합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라합은 가나안 여인입니다. 저주받은 함의 후손이 애굽이고 가나안입니다. 하나님의 덮어줌의 은혜를 꺠닫지 못하는 세상 사람의 상징입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은혜로 이스라엘이 끼어듭니다. 사람 취급도 못 받던 창녀 라합 속에 이 땅에 그런 모습으로 오신 예수가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헤로 자기 나라를 떠나 진정한 노마드가 되어 하나님의 나라로 편입이 되어 들어가는 구원의 시나리오입니다.

 

결국 라합의 행함은 인간의 도덕과 윤리라는 선악 판단기준에 의한 행함이 아니라 죄인을 건지시고 부인시켜 가시는 하나님의 행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행함에 접붙임을 받는 은혜의 구원입니다. (2:1-4, 10-12) (3:17-18) 이 모두는 산상수훈에서 배운 내용입니다.  ‘라는 존재가 완전히 부정되는 신앙의 여정 속에 하나님 은혜의 필연성이 확인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염두에 두고 오늘 본문을 해석해 봅시다.

 

영생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묻는 율법사에게 예수님은 선한 사마리아인의비유를 들어 영생의 본질을 설명해 주십니다. 한마디로 네가 진짜 누구를 사랑할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느냐?’라고 물으시는 것입니다. 율법으로 영생에 이를 수 있다고 믿고 있고 또 그렇게 행하고 있다는 율법사에게 너는 누구도 사랑하고 도울 수 있는 존재가 아닌 네가 바로 은혜와 긍휼을 입어야 할 강도 만난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강도 만나 거반 죽어있는 자는 결국 무엇을 강탈당한 것입니까? 바로 하나님을 잃은 상태를 말합니다. 그 상태가 율법주의, 인본주의의 모습입니다. 여전히 율법지킴으로 자기 영광을 챙기려는 제사장과 레위인은 그 강도 만난 자를 도울 수 없습니다. 이웃 사랑은 사람의 행위에서 생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율법주의의 이방인이자 유대주의의 원수인 사마리아인이 나타납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형식적 율법의 땅에 진짜 선한 이방인이 원수들의 땅으로 들어와 자신의목숨을 걸고 원수를 살려냅니다. 그게 바로 영생이고 구원입니다. 구원은 죄인이 하나님과이웃을 사랑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선한 이웃인 예수에 의해 사랑을 받고섬김을 받아 주어지는 것이라는 것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선한 이웃으로 오신 예수님의 공로만 의지하여 면목없는 강도 만난 자의 모습으로 영생을 얻는 존재들입니다. 조금이라도 힘이 남아 있었다면 강도 만난 그 사람은 원수인 사마리안인의 도움을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거반 죽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만을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상태, 자기가 완전히 부인되는 자리를 말합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은헤가 부어져 생명을 얻습니다.

 

여전히 이 세상 힘의 원리인 인본주의에 젖은 죄인들은 세상의 이방인인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지 않습니다. 자신들이 죽은 자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게 바로 세상에 대해 살았고 하나님에 대해 죽은 자들의 삶입니다. 진짜 세상에 대해 죽고 하나님에 대해 산 자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떠나서는 자신들이 죽은 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티끌처럼 삽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살았다고 펄떡이는 당신의 백성을 거반 죽여 가시는 것입니다. 그게 성도의 신앙생활이며 이 땅에서 나타나는 성도의 영생입니다.

 

 

 

 

 

 

 

 

 

 

 

 

 

 

 

 

 

 

 

 

 

 

 

 

<질문과 토의>

 

1.영생을 얻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어오는 율법사에게 예수님은 비유를 통해 영생을 설명하십니다. 어떤 내용입니까?

 

-     비유 속의 강도 만난 자가 바로 우리입니다. 우린 누구를 사랑할 수도 도와줄 수도 없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죽어있는 상태의 율법주의,유대주의(세상)의 모습입니다.

-     그 자리에 자신의 목숨을 걸고 십자가의 삶으로 오신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이원수인 우리(강도 만난 자)에게 부어져 살아납니다. 그것이 영생입니다.

 

 

2.‘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는 결론으로 우리의 행위를 요구하는 것 같지만 야고보서에 나오는 아브라함과 라합의 행함을 예로 들며 전적 하나님의 행함으로 인한 구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린 어떻게 이웃 사랑의 그 행함을 할 수 있습니까?

 

-     먼저 우리에게 선한 이웃으로 오셔서 사랑이라는 진리를 흘려 강도 만난 자의 상처를 싸매고 고쳐주신 하나님의 그 사랑을 마음으로 가지는 것입니다.

-     그 사랑을 가졌을 때 우린 아버지의 사랑을 가진 자, 사랑이 된 자로 내 안의 진리를 흘려 보낼 수 있게 됩니다. 그것이 이웃 사랑입니다.

 

 

 

3.끊임없이 자기 자신이라는 나라로 돌아가려는 이 땅의 노마드 인생들과는 달리 성도의 삶에는 옛 사람을 죽여 라는 왕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하나님께로 이끌리는 참 노마드의 삶이 주어집니다. 모리아 산에서 이삭의 가슴에 칼을 들기까지 이끄신 하나님의 인도를 여러분의 인생에선 어떻게 경험하고 계십니까?

 

 

 

 

 

 

 

 

 

 

 

 

 

 

 

(10:25-37)

25 어떤율법사가일어나예수를시험하여가로되선생님내가무엇을하여야영생을얻으리이까

26 예수께서이르시되율법에무엇이라기록되었으며네가어떻게읽느냐

 27 대답하여가로되네마음을다하며목숨을다하며힘을다하며뜻을다하여주너의하나님을사랑하고또한네이웃을네몸과같이사랑하라하였나이다

 28 예수께서이르시되네대답이옳도다이를행하라그러면살리라하시니

 29 이사람이자기를옳게보이려고예수께여짜오되그러면내이웃이누구오니이까

 30 예수께서대답하여가라사대어떤사람이예루살렘에서여리고로내려가다가강도를만나매강도들이그옷을벗기고때려거반죽은것을버리고갔더라

 31 마침한제사장이그길로내려가다가그를보고피하여지나가고

 32 또이와같이한레위인도그곳에이르러그를보고피하여지나가되

 33 어떤사마리아인은여행하는중거기이르러그를보고불쌍히여겨

 34 가까이가서기름과포도주를그상처에붓고싸매고자기짐승에태워주막으로데리고가서돌보아주고

 35 이튿날에데나리온둘을내어주막주인에게주며가로되이사람을돌보아주라부비가더들면내가돌아올때에갚으리라하였으니

 36 네의견에는이세사람중에누가강도만난자의이웃이되겠느냐

 37 가로되자비를베푼자니이다예수께서이르시되가서너도이와같이하라하시니라

 

 

(2:21-26)

21 우리조상아브라함이그아들이삭을제단에드릴때에행함으로의롭다하심을받은것이아니냐

 22 네가보거니와믿음이그의행함과함께일하고행함으로믿음이온전케되었느니라

 23 이에경에이른바아브라함이하나님을믿으니이것을의로여기셨다는말씀이응하였고그는하나님의벗이라칭함을받았나니

 24 이로보건대사람이행함으로의롭다하심을받고믿음으로만아니니라

 25 또이와같이기생라합이사자를접대하여다른길로나가게할때에행함으로의롭다하심을받은것이아니냐

 26 영혼없는몸이죽은것같이행함이없는믿음은죽은것이니라

 

 

(4:1-3)

1 그런즉육신으로우리조상된아브라함이무엇을얻었다하리요

 2 만일아브라함이행위로써의롭다하심을얻었으면자랑할것이있으려니와하나님앞에서는없느니라

 3 성경이무엇을말하느뇨아브라함이하나님을믿으매이것이저에게의로여기신바되었느니라

 

 

(2:1-4, 10-12)

1 내형제들아영광의주곧우리주예수그리스도를믿는믿음을너희가받았으니사람을외모로취하지말라

 2 만일너희회당에금가락지를끼고아름다운옷을입은사람이들어오고또더러운옷을입은가난한사람이들어올때에

 3 너희가아름다운옷을입은자를돌아보아가로되여기좋은자리에앉으소서하고또가난한자에게이르되너는거기섰든지내발등상아래앉으라하면

 4 너희끼리서로구별하며악한생각으로판단하는자가되는것이아니냐

 

10 누구든지온율법을지키다가그하나에거치면모두범한자가되나니

 11 간음하지말라하신이가또한살인하지말라하셨은즉네가비록간음하지아니하여도살인하면율법을범한자가되느니라

 12 너희는자유의율법대로심판받을자처럼말도하고행하기도하라

 

 

(3:17-18)

17 오직위로부터난지혜는첫째성결하고다음에화평하고관용하고양순하며긍휼과선한열매가가득하고편벽과거짓이없나니

 18 화평케하는자들은화평으로심어의의열매를거두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