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목사/비유강해

비유강해 12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눅20:9-19>

은바리라이프 2013. 10. 16. 13:11

비유강해 12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20:9-19>

 

악한 포도원 농부의 비유입니다. 흔히들 구원받은 성도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내어 놓기 위해 착하게 살고, 섬기며 사랑하는 삶을 살자 라는 교훈으로 이해하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이 비유의 청자는  누구보다 성실하고 진지한 삶을 살았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오히려 그러한 바리새적 인간들의 더러운 외식을 깨시면서 착한 일을 많이 해라가 아니라 그게 정말 하나님이 원하시는 착한 일이야?’를 묻고 게십니다.

 

오늘날 기독교가 바로 이 부분을 오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선악 판단 기준에 근거한 착한 일을 요구하신다고 믿고 그러한 일에 매진하는 것이 바로 하늘의 열매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자들에게 2000년 전의 예수가 다시 오셔서 너희는 여전히 은혜의 구원 앞에 스스로의 잘난 행위를 챙기고 있느냐? 회개하라!’라고 한다면 나의열심을 무시하고 내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그 존재가 비록 예수라 할지라도 용서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우리의 죄를 해결하시고 우리를 당신의 나라로 옮기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신처럼 살고 싶어 하는 우리의 옛 자아와 이 사망의 땅에 대한 부정이 성육신과 십자가의 목적이었습니다. 그 십자가로 말미암아 우리의 옛 자아는 이미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것이 되었습니다. (2:20) (5:24) 둘 다 과거 시제입니다. 우리는 이미 십자가에서 죽었고 우리의 정(파테마, 인간관계어서 얻는 힘과 만족) 과 욕심(에피뒤미아, 정욕이나 욕망) 도 십자가에서 다 죽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우린 오히려 그 정과 육이 인생의 목적인 것처럼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십자가는 무엇을 이루고 간 것입니까? 여기에 십자가의 이중적 메세지가 담겨 있습니다. 십자가는 2000년 전 골고다 위에 섰지만 이미 창세전 하나님의 작정 안에서 영원 속에 섰습니다. 그렇게 영원 속에 선 십자가는 온 역사를 아우르며 그 역할을 합니다. 운명적, 신분적, 선언적으로 우리의 옛 자아를 죽였지만 현재우리 인생 속에서 그 십자가의 현실을 실재화하여 경험케 하는 것입니다. 바로 나를 죽여 남을 살리는 하나님 나라 삶의 원리로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육적 삶이 부수어지고 폭로된 나의 처음 자리, 죽은 흙에 불과한 그 자리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덮여 순종의 피조물로 살게 됩니다.

 

하지만 인간들의 자아성취와 자아실현의 욕구는 십자가의 은혜를 배척합니다. 스스로 신이 되려는 가증한 욕구는 더욱 교활해져 도덕과 윤리, 종교 행위라는  정당한 논리까지 갖추며 위장합니다. 무소유의 삶을 실천함으로 세상의 칭송을 받았던 어느 종교인의 삶이 바로 그 예입니다. 피조물인 인간에게 소유라는 것이 있을 수 있습니까? 버리자는 말은 내 소유가 있다는 전제에서 나오는 말입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이 뭐라 하십니까? (19:27,29-30) 베드로의 버림은 결국 보상을 바라는 자기 자신이라는 우상을 위한 것이었음을 예수님은 폭로해 버리십니다. 인간은 원래 자기 소유가 없는 죽은 흙입니다. 유일하게 가진 내 것은 밖에 없습니다. 그것을 깨닫고 선악 판단의 주체가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것이 라는 소유를 버리는 인간들의 진짜 무소유의 삶, 자기부인의 삶인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머리에 두고 오늘 본문으로 돌아가 봅시다. 이 비유 앞에는 참 성전으로 오신 예수님이 예루살렘 입성 후 율법을 상징하는 성전에 들어가셔서 무언가를 가르치시는 내용이 나옵니다.바로 옛 성전의 한계, 무용함 즉 구원은 율법의 행위나 혈통으로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만을 의지해야 한다는 십자가 복음을 가 르치십니다.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그런 예수에게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냐고 묻습니다. 예수님은 자칭 세상 권세자라고 생각하는 모든 아담들에게 참 권세가 무엇인지를 가르치십니다. (20:25-28) (10:17-18)

 

예수님이 이 땅에 내어놓고 가신 권세는 아버지의 계명을 받고 이 땅에 내려와 그 분의 명령에 순종하여 자신의목숨을 버리는 권세였습니다. 그러한 권세에 대한 말씀에 이어 포도원 농부의 비유가 던져집니다.구약에서 인용한(5:1-7) 이 비유에서 포도원과 포도나무는 이스라엘 족속, 즉 집단적으로 창세전에 구원받은 교회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그 포도원은 를 얻은 포도원입니다. 주인이 따로 있다는 말입니다. 바로 교회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라는 말입니다. 그것이 교회라면 반드시 맺혀야 할 열매는 무엇입니까? 주인의 이익, 즉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는 자기부인과그 영광에 대한 찬양의 열매입니다.

 

그런데 구약의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속으로는 율법과 제사를 지키는 자신들의 열심을 영광으로 챙기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선지자들이 계속 보내집니다. 스스로 주인됨의 권리를 찾으려는 자들에게 주인의 종들이 와서 그들 이 내어놓는 자기 열심말고 다른 열매를 내놓으라고 요구합니다. 그게 무엇이었나요? ‘회개하라였습니다. 그런데 스스로의 종교적 열심과 도덕적 착함에 젖어 있던 농부들은 종들의 요구를 이해할 수도 없었고 오히려 종들을 때려 죽입니다. 그것은 포도 열매가 아까워서가 아니라 주인이 맺으라는 열매가 아예 없었기 떄문입니다.

 

주인은 그 패역한 농부들의 행사를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아들을 보냅니다. 아들은 자신이 죽을 것을 뻔히 알고도 그들에게 갑니다. 당시 지주들은 부유해서 개인 사병들이 있었음에도 홀로 보내집니다. 열두 영도 더 되는 사병(천사)들을 마다하고 홀로 포도원에 내려가 자기 열심의 영광만 챙기며 엉뚱한 열매만을 내어놓는 악한 농부들에게 아들은 맞아 죽습니다. 주인은 지금 바로 그것이 하늘의 권세라는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게 구원이요 십자가 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다른 모든 예수님의 비유는 듣는 사람들이 하나도 알아듣지 못하는 데 유독 이 비유만은 그 청자들이 알아듣습니다. (20:16,19) 하늘의 비밀은 선택 된 하나님 백성들만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알아 들었다는 것은 이 비유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바로 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을 받은 이후에도 악한 포도원 농부들처럼 여전히 라는 세상적 권 세만을 위해 살아갑니다. 그런 자들의 운명이 오늘 본문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 다. (20:15-16) 주인이 원하는 열매를 맺으라고 아들까지 보냈는데 그 아들마저 죽여버린 포도원 지기들을  주인이 어떻게 해야 옳습니까? 다 죽여야 합니다. 그런 데 주인은 다른 해결책을 내어 놓습니다. (20:17-18) 바로 그들이 죽인 아들, 건축 자들의 버린 돌을 모퉁이돌로 삼아 새로운 포도원을 건설하는 것입니다.

 

선악과를 따 먹고 하나님처럼 살겠다고 나선 이 세상의 건축자들은 너희의 가능성 을 부인하고 예수의 은혜만을 의지하라는 주인의 요구를 받아 들이지 않습니다. 주인이 모퉁이돌로 삼으라고 보낸 예수라는 주춧돌을 죽여서 교회의 담장 밖으로 던져 버리고 저마다 도덕과 윤리, 사회개혁, 구제, 봉사라는 자신들만의 집을 짓습 니다. 그런 자아의 건축은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파괴됩니다. (고전3:10-15)

 

예수라는 터 위에 예수가 지으시는 집이 진짜 집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만 받으십니 다. 그런데 예수라는 터 위에 인간들이 자기 가치 챙기기의 일환으로 내어놓는 모든 행위는 다 불에 타버릴 손해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오늘 본문에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20:18)  포도원을 자기의소유로 삼으려고 하는 못된 인간들의 건축물을 그들에 의해 버려진 은혜의 돌, 에수가 박살내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새 집이 됩니다. 그래서 그 깨어짐이 은혜의 깨어짐, 거룩한 깨어짐입니다.

 

그러한 자아 성취의 건축물이 깨어지는 과정을 성경이 고난이라고 부릅니다. 성도는 자신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그 진짜 권세를 받아 누리는 것을 알기에 그러한 고난이 닥쳐왔을 때 감사할 수 있습니다. 예수라는 은혜의 모퉁이돌에 의해 자아의 건축물이 부숴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하나님 제 가치 챙기기의 열매인 이 헌 집을 얼른 가져 가시고 예수 그리스도가 준비하신 은혜의 새 집을 주세요라고 기도할 수 있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십자가를 배우세요. 그 속에서만 진짜 열매가 맺혀질 수 있습니다. 열매를 요구하는 주인의 아들을 죽인 악한 농부들의 이야기가 착한 일을 해야한다는 도덕적 요구가 아닌 것을 아시겠지요? 오히려 그런 선한 행위로 자신의 더러움을 위장하고 가리는 모든 자아 건축을 중단하라는 일갈이라는 것을 절대 잊지 마십시오.

 

 

 

 

 

 

 

 

 

 

<질문과 토의 >

 

1이 비유를 이해할 때 꼭 숙지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착하고, 선하고, 성실해 보이는 삶을 통해서도 자기의 영광와 유익만을 챙기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포도원 농부들의 모습에서 보여진 이 속성을 설명해 보십시오.

 

-     농부들은 세를 얻은 포도원(교회)에서 주인된 하나님에 대한 인식없이 주인의 이익이 아닌 자신들의 이익만을 열심히 내며 그것으로 만족하며 살았습니다.

-     그래서주인이 원하는 열매를 요구하는 종들을 죽이고 결국 아들까지 죽임으로 포도원의 주인이 되려 했습니다.

 

 

2 포도원 주인은 아들까지 죽인 농부들을 진멸하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또 다른 결론을 냅니다. 구원의 진의를 보여주는 본문 구절과 연결하여 설명해 보세요.

 

-     본문 17절의 그러면이라는 접속사가 담고 있는 내용으로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렇게 되지 말게 해주세요라고 하는 자들에게 어떤 권세에 의해 구원이라는 것이 성취될 것인지를 설명해 주십니다. (18)

-     포도원을 자기 소유로 삼으려고 하는 못된 인간들의 건축물을 그들에 의해 버려진 돌, 예수가 박살내 버립니다. 그래야 은혜의 새 집이 세워집니다

 

 

3 우린 구원을 받은 후에도 여전히 십자가에 못 박았다는 정(파데마)과 욕심 (에피뒤미아)의 마음으로 삽니다. 그렇다면 성도의 인생에서 십자가는 어떤 역동적 힘으로 역사하고 있습니까?

 

-     십자가는 2000년 전 운명적으로 신분적으로 선언적으로 우리의 옛 자아를 죽였습니다. 그러나 현재진행형의 우리 인생 속에서 그 십자가의 현실을 실재화하여 경험케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     나의 처음된 자리를 폭로시키고 이 세상 속에서의 자아성취나 성공, 번영등을 꿈꾸는 자아건축의 현장에서 나를 죽여 가십니다. 그것이 내가 죽고 남을 살리는 하나님 나라의 삶의 원리인 것을 배우게 하십니다

 

 

4이 비유의 청자는 결론적으로 입니다. 지금 내게 주시는 메세지가 무엇입니까?

서로의 삶에서 허락하시는 상황과 생각의 과정들을 배운 내용과 함께 나눠봅시다.

 

 

 

 

 

 

 

(20:9-19)

9비유로백성에게말씀하시되한사람이포도원을만들어농부들에게세로주고타국에가서오래있다가

10때가이르매포도원소출얼마를바치게하려고한종을농부들에게보내니농부들이종을심히때리고거저보내었거늘

11다시다른종을보내니그도심히때리고능욕하고거저보내었거늘

12다시세번째종을보내니이도상하게하고내어쫓은지라

13포도원주인이가로되어찌할꼬내사랑하는아들을보내리니저희가혹그는공경하리라하였더니

14농부들이그를보고서로의논하여가로되이는상속자니죽이고그유업을우리의것으로만들자하고

15 포도원밖에내어쫓아죽였느니라그런즉포도원주인이이사람들을어떻게하겠느뇨

16 와서그농부들을진멸하고포도원을다른사람들에게주리라하시니사람들이듣고가로되그렇게되지말아지이다하거늘

17 저희를보시며가라사대그러면기록된바건축자들의버린돌이모퉁이의머릿돌이되었느니라함이어찜이뇨

18 무릇이돌위에떨어지는자는깨어지겠고이돌이사람위에떨어지면저로가루를만들어흩으리라하시니라

19 서기관들과대제사장들이예수의이비유는자기들을가리켜말씀하심인줄알고즉시잡고자하되백성을두려워하더라

 

(2:20)

내가그리스도와함께십자가에못박혔나니그런즉이제는내가산것이아니요오직내안에그리스도께서사신것이라이제내가육체가운데사는것은나를사랑하사나를위하여자기몸을버리신하나님의아들을믿는믿음안에서사는것이라

 

(5:24)

그리스도예수의사람들은육체와함께그정과욕심을십자가에못박았느니라

 

(19:27,29-30)

27 이에베드로가대답하여가로되보소서우리가모든것을버리고주를좇았사오니그런즉우리가무엇을얻으리이까

29 또내이름을위하여집이나형제나자매나부모나자식이나전토를버린자마다여러배를받고또영생을상속하리라

30 그러나먼저된자로서나중되고나중된자로서먼저될자가많으니라

 

(20:25-28)

25 예수께서제자들을불러다가가라사대이방인의집권자들이저희를임의로주관하고그대인들이저희에게권세를부리는줄을너희가알거니와

26 너희중에는그렇지아니하니너희중에누구든지크고자하는자는너희를섬기는자가되고

27 너희중에누구든지으뜸이되고자하는자는너희종이되어야하리라

28 인자가온것은섬김을받으려함이아니라도리어섬기려하고자기목숨을많은사람의대속물로주려함이니라

 

(10:17-18)

17 아버지께서나를사랑하시는것은내가다시목숨을얻기위하여목숨을버림이라

18 이를내게서빼앗는자가있는것이아니라내가스스로버리노라나는버릴권세도있고다시얻을권세도있으니이계명은내아버지에게서받았노라하시니라

 

(5:1-7)

1내가나의사랑하는자를위하여노래하되나의사랑하는자의포도원을노래하리라나의사랑하는자에게포도원이있음이여심히기름진산에로다

2땅을파서돌을제하고극상품포도나무를심었었도다그중에망대를세웠고그안에술틀을팠었도다좋은포도맺기를바랐더니들포도를맺혔도다

3예루살렘거민과유다사람들아구하노니이제나와내포도원사이에판단하라

4내가내포도원을위하여행한것외에무엇을더할것이있었으랴내가좋은포도맺기를기다렸거늘들포도를맺힘은어찜인고

5이제내가내포도원에어떻게행할것을너희에게이르리라내가그울타리를걷어먹힘을당케하며그담을헐어짓밟히게할것이요

6 내가그것으로황무케하리니다시는가지를자름이나북을돋우지못하여질려와형극이날것이며내가또구름을명하여그위에를내리지말라하리라하셨으니

7대저만군의여호와의포도원은이스라엘족속이요그의기뻐하시는나무는유다사람이라그들에게공평을바라셨더니도리어포학이요그들에게의로움을바라셨더니도리어부르짖음이었도다

 

(고전3:10-15)

10 내게주신하나님의은혜를따라내가지혜로운건축자와같이터를닦아두매다른이가그위에세우나그러나각각어떻게그위에세우기를조심할찌니라

11 이닦아둔것외에능히다른터를닦아둘자가없으니이터는곧예수그리스도

12 만일누구든지이나은이나보석이나나무나풀이나짚으로이터위에세우면

13 각각공력이나타날터인데그날이공력을밝히리니이는불로나타내고그불이각사람의공력이어떠한것을시험할것임이니라

14 만일누구든지그위에세운공력이그대로있으면상을받고

15누구든지공력이불타면해를받으리니그러나자기는구원을얻되불가운데서얻은것같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