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목사/비유강해

비유강해 9 반석위에 지은 집과 모래 위에 지은 집 <마7:21-29>

은바리라이프 2013. 10. 16. 13:09

비유강해 9

반석위에 지은 집과 모래 위에 지은 집




<7:21-29>

 

 21.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24.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25.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26.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27.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28.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래니   
 29.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저희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많은 분들이 행함이 있는 믿음과 행함이 없는 믿음의 대조로 이해하고 있는 비유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행함의 유무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29절에 보면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이 크게 놀랐다고 합니다그 이유는 율법을 연구하고 율법지킴을 강조하던 서기관들의 가르침과 달랐기 떄문입니다. 이 비유를 잘 보면 두 집 모두 외형으로는 구별이 되지 않는 것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집의 외형에 관한 것이 아니라 기초에 관한 문제입니다. 쉬운 말로 어떤 행위를 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기초 위에 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따라서 이 비유를 인간의 율법지킴과 행함에 관한 강조로 해석하면 안됩니다.

 

22절을 보면 주님께서 성도의 행함에 관해 언급을 하십니다. 그런데 그 행함은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행함이어야 합니다.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고 귀신들린 자도 고치고 권능과 기적을 행한 것이 아버지의 뜻대로 행했다고 주장하는 자들 앞에 주님은 불법이라고 못박습니다. 그렇다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6:38-40)

38.내가 하늘로서 내려 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39.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요11:24, 요17:12
 40.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그 아들을 믿고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따 먹고 자신들의 영광을 위해 존재하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창조된 피조물이 스스로의 힘으로 생명나무에 도달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시도로 내어 놓는 모든 종교적 열심, 선행체계, 지식체계로는 생명나무로 향하는 길이 열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길이 좁은 길입니다. 그 길은 오직 예수로만 열립니다. 예수님의 공로와 은혜를 믿는 믿음으로만 그 길은 열립니다.

 

하지만 선악의 주체가 되어 스스로 하나님처럼 된 인간들은 절대 은혜 앞에 항복하지 않습니다. 기어이 자신들의 행위를 보태려 합니다. 평생 주님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선행도 했지만 그 이유는 결국 자신들의 영광 챙기기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 행하는 모든 착한 일과 종교 행위가 오늘 본문에 나오는 불법을 행함입니다. (7:23) 그들이 아무리 애타게 주님의 이름을 불러도 모두 지옥행입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그러므로라는 접속사로 반석 위에 지은 집과 모래 위에 지은 집으로 이어집니다.

 

바로 위에서는 엉터리 행함을 내어놓는 자들에게 저주가 떨어지는 장면이 나오고 이어지는 내용은 또 행함을 내어 놓으라입니다. 도대체 그 행함은 어떤 행함입니까? 반석 위에 집을 짓는다는 것은 어떤 것을 말하는 것입니까? 그 반석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고전10: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고전3:10-11)

10.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찌니라   
 11.이 닦아 둔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여러분은 이 비유를 읽으면서 누가 모래 위에 집을 짓겠는가?’라고 의문을 가지지 않았습니까? 팔레스타인엔 와디라는 것이 있습니다. 건기에는 단단하고 견고해 교통로로 쓰이기도 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우기가 오면 그 와디는 금새 질퍽한 수렁으로 변하고 심지어 비가 오고 창수가 나면 물이 흐르는 물길이 되는 곳이 와디입니다. 그러니까 모래 위에 지은 집이라는 것은 겉으로는 전혀 티가 나지 않는 훌륭한 종교 행위와 착한 일처럼 보이지만 나중에 심판대 앞에 나아갔을 때는 주님에 의해 더러운 외식으로 판정되는 그런 행위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반석 위에 지은 집은 선한 행위와 열심있는 종교 행위를 많이 내어놓는 성도의 삶이고 모래 위에 지은 집은 야고보서의 행함이 없는 믿음이라는 식의 해석은 이 비유의 진의를 정면으로 거스리는 것입니다. 무엇을 해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만을 의지한 성도의 행함은 어떤 면에서 모래 위에 지어지는 집보다 행함이 덜해 보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깊이를 모르는 자들은 그 불안함을 채우기 위해 오히려 지나친 선행과 깨끗함을 추구하게 되니까요. 바리새인들이 바로 그런 자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를 한 번 돌아봅시다. 우리의 행위가 정말 내 자존심과 영광 챙기기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고 자신할 수 있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창수가 나면 사라질 모래 위에 지은 집이요 저주받을 불법일텐데 그것으로 하나님 앞에 자복하고 회개하신 적 있습니까? 그렇게 오랜 신앙생활과 말씀 공부를 했음에도 여전히 진정한 헌금을 하지 못하고 우쭐대고 뿌듯해하며 봉사나 구제를 행하는 모습이 폭로당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내가 바로 불법을 행하는 자라는 고백과 눈물을 흘리신 적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보고 싶으신 눈물은 바로 그런 눈물입니다.

 

따라서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이들의 삶 속에는 하나님의 폭력적 경륜에 의해 깨끗하고 선한 행위보다는 더럽고 추악한 모습이 더 많이 폭로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앞에서 자신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박살내고 자기 의로 겹겹이 둘러있는 무장을 햬체시키는 것이 올바른 설교자의 임무인데 거짓 선지자들은 사람을 붙들기 위해 인간의 자존심을 부추기는 설교를 하며 그들의 에너지와 소유를 노략질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바로 위에 거짓 선지자에 대한 경고가 붙어 있는 것입니다. (7:15-20)

 

박태선이나 문선명같이 이미 이리로 밝혀진 자들 말고 양의 옷을 입은 이리는 정말 옳아 보이고, 깨끗해 보이며, 정직해 보이는데 실상은 양들을 노략질하는 이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열매의 이야기를 하시면서 그들을 분별하라고 하십니다. 세상이 내어놓는 구제의 열매, 청빈의 열매, 선한 삶이라는 열매 말고 그들이 절대 내어놓을 수 없는 특별한 열매를 말합니다. 바로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구하는 믿음입니다. 갈라디아서는 그 열매를 세분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5:22-23)

 22.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여기서 성령의는 소유격이 아닌 주격입니다. 성령이 맺으시는 열매라는 뜻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그 자체가 자기 긍정을 부인하는 대전제를 함의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완전한 나의 부정이 성령이 맺어가는 열매입니다. 그 열매를 맺는 주체가 누구라고 가르치십니까


(15:4-5)

4.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11:24) 

24.네가 원 돌감람나무에서 찍힘을 받고 본성을 거스려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얻었은즉 원 가지인 이 사람들이야 얼마나 더 자기 감람나무에 접붙이심을 얻으랴   


이게 바로 우리의 실존입니다. 유일하게 좋은 나무이신 예수님에게 접붙임을 받은 나쁜 나무가 바로 우리입니다. 우리는 창세기의 아담 안에서 가시와 엉겅퀴를 내어 놓을 수 밖에 없는 저주받은 존재들입니다. 반석 위에 집을 지은 것처럼 스스로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여러 행위들을 내어 놓지만 사실은 나쁜 열매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오늘 분문 바로 위에서 말씀하신 좁은 문, 좁은 길의 비유도 다른 시각으로 봐야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7:13-14)

13.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은 길이 바로 창세기에 나오는 생명나무로 가는 길입니다. 하지만 이 길은 엄밀히 말하면 아무도 못 들어가는 길입니다. 그 길 끝에 좁은 문이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 말씀을 육신의 편안함과 연결시켜 육적 고난이 좁은 길, 좁은 문이라고 생각하시지만 그건 너무 가난한 해석입니다. 인간은 모두 자신의 가치와 영광 챙기기로 일생을 올인하는 존재입니다. 그것을 위해 자신의 상함도 감수하고 심지어 목숨도 내어 놓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자기 만족, 자기 자랑을 위해 고생도 마다않고 열심을 내어 가는 길은 전부 넒은 길, 넓은 문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만을 바라며 그 분 앞에 납작 엎드려 자기를 해체하고 부인하는 길이 좁은 길, 좁은 문입니다. 그 길은 아무나 못 갑니다. 오직 예수를 믿음으로 갈 수 있는 길입니다


(10:7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14:6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심지어 애를 써도 못들어갑니다


(13:24)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이렇게 좁은 문, 좁은 길은 하나님의 편애, 즉 은혜를 받은 자들이 철저히 자신의 무력함을 고백함으로 갈 수 있는 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풍성한 행위를 내어놓는 넓은 길을 가는 자들과 달리 자신들의 착한 행위에 자신이 없습니다. 그것이 진정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인지 자신의 영광을 챙기기를 위한 것인지 생각하고 고민하고 기도하며 갑니다.

 

하나님이 막아 놓으신 생명의 길은 우리의 어떤 수고와 노력으로도 갈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만 의지해야 됩니다. 그 예수를 아십니까? 여러분은 지금 여전히 스스로 생명나무 실과를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열심히 자기 영광을 위하여 착하게 살고, 봉사도 하고, 순교도 하며 넓은 문으로 들어가는 거짓 선지자들처럼 모래 위에 집을 짓고 계십니까? 아니면 나의 어떤 수고와 노력도 하나님 앞에 더러운 걸레(64:6)에 불과한 것임을 알고 하나님의 의만 겸손히 받으며 좁은 길,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자들로  열심히 반석 위에 집을 짓고 계십니까? 

 

 

 

 

 

<질문과 토의>

 

1.오늘 본문의 비유는 어떤 행위를 했느냐는 집의 외형이 아닌 어디에 기초를 두고 있는가에 관한 것이라고 했습니다.그런데 본문에선 계속해서 행위에 관한 얘기가 나옵니다. 기초를 구분하는 행함의 차이에 대해 말해 보세요.

 

-     그 아들을 믿고 영생을 얻는 것이(6:40)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성도의 행함이요 그리스도 예수라는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자들입니다.

-     반면에 열심히 선지자 노릇하고 권능도 행하며 입으로는 주여 주여를 외치지만 결국 자신의 영광을 챙기기 위한 행한 모든 행함은 주님 앞에서 기각당합니다. 그것이 모래 위에 자기 집을 짓는 자들입니다.

 

2.  보여지는 삶에서는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자들의 행위가 더 훌륭하거나 감동스러워 보이고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자들의 행함은 열심도 없고 나약해 보이기도 합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     예수의 은혜와 긍휼과 사랑과 공로 위에 진짜 믿음의 집을 짓는 이들의 삶 속에는 하나님의 폭력적 경륜에 의해 외부로 드러나는 선한 열심과 부지런한 종교 행위가 감추어지고 오히려 더럽고 추한 모습이 폭로되면서 자기부인의 자리로 끌려가기 때문입니다.

-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높이려는 자들은 도덕과 윤리, 선행등으로 열심히 자기의를 쌓아 휼륭한 종교 행위로 가장함으로 보여지는 모습에선 오히려 깨끗하고 선한 삶의 모습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3. 우리는 원래 가시와 엉겅퀴만 내어 놓는 저주받은 존재들입니다. 그런 우리가 어떻게 거짓 선지자의 미혹에서 벗어나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까? 그리고 그 열매는 무엇입니까?

 

-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에게 요구하는 열매는 세상이 내어 놓을 수 없는 특별한 열매, 믿음을 말합니다.

-     우리는 예수님에게 접붙임을 받은 존재입니다. (11:24) 내가 아닌 성령이 주체가 되어 내 안에서 자기 자랑으로 내어 놓는 선한 행위들이 점점 소멸되고, 결국 스스로의 힘으로는 절대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열매를 맺을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달아 철저히 은혜만을 붙잡는 자리로 내려가는 것이 성도의 행함이요, 믿음이며 좋은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4. 그 길이 창세기에 나오는 생명 나무로 가는 좁은 길의 삶입니다. 바로 예수가 좁은 길이요 좁은 문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아무도 못들어 가는 그 길은 오직 하나님의 편애에 의한 은혜로만 갈 수 있는 길입니다. 반석 위에 지은 집과 동일한 의미의 이 뜻을 연결시켜 얘기해 봅시다.

 

<성경본문>

 

( 7;21-29)

21 나더러주여주여하는자마다천국에다들어갈것이아니요다만하늘에계신내아버지의뜻대로행하는자라야들어가리라

22 그날에많은사람이나더러이르되주여주여우리가주의이름으로선지자노릇하며주의이름으로귀신을쫓아내며주의이름으로많은권능을행치아니하였나이까하리니

 23 그때에내가저희에게밝히말하되내가너희를도무지알지못하니불법을행하는자들아내게서떠나가라하리라

 24 그러므로누구든지나의이말을듣고행하는자는그집을반석위에지은지혜로운사람같으리니

 25 비가내리고창수가나고바람이불어그집에부딪히되무너지지아니하나니이는주초를반석위에놓은연고요

 26 나의이말을듣고행치아니하는자는그집을모래위에지은어리석은사람같으리니

 27 비가내리고창수가나고바람이불어그집에부딪히매무너져그무너짐이심하니라

 28 예수께서이말씀을마치시매무리들이그가르치심에놀래니

 29 이는그가르치시는것이권세있는자와같고저희서기관들과같지아니함일러라

 

 

(6;38-40)

38 내가하늘로서내려온것은내뜻을행하려함이아니요

 39 나를보내신이의뜻을행하려함이니라나를보내신이의뜻은내게주신자중에내가하나도잃어버리지아니하고마지막날에다시살리는이것이니라

 40 내아버지의뜻은아들을보고믿는자마다영생을얻는이것이니마지막날에이를다시살리리라하시니라

 

 

(고전10:4)

4 다같은신령한음료를마셨으니이는저희를따르는신령한반석으로부터마셨으매그반석은곧그리스도시라

 

 

 

(고전3:10-11)

10 내게주신하나님의은혜를따라내가지혜로운건축자와같이터를닦아두매다른이가그위에세우나그러나각각어떻게그위에세우기를조심할지니라

 11 이닦아둔것외에능히다른터를닦아둘자가없으니이터는곧예수그리스도라

 

 

(7:15-20)

15 거짓선지자들을삼가라양의옷을입고너희에게나아오나속에는노략질하는이리라

  16 그의열매로그들을알지니가시나무에서포도를, 또는엉겅퀴에서무화과를따겠느냐

 17 이와같이좋은나무마다아름다운열매를맺고못된나무가나쁜열매를맺나니

 18 좋은나무가나쁜열매를맺을수없고못된나무가아름다운열매를맺을수없느니라

 19 아름다운열매를맺지아니하는나무마다찍혀불에던지우느니라

 20 이러므로그의열매로그들을알리라

 

 

(5:22-23)

22 오직성령의열매는사랑과희락과화평과오래참음과자비와양선과충성과

 23 온유와절제니이같은것을금지할법이없느니라

 

 

(15:4-5)

4 내안에거하라나도너희안에거하리라가지가포도나무에붙어있지아니하면절로과실을맺을수없음같이너희도내안에있지아니하면그러하리라

  5 나는포도나무요너희는가지니저가내안에, 내가저안에있으면이사람은과실을많이맺나니나를떠나서는너희가아무것도할수없음이라

 

 

(11:24)

24 네가원돌감람나무에서찍힘을받고본성을거스려좋은감람나무에접붙임을얻었은즉원가지인이사람들이야얼마나더자기감람나무에접붙이심을얻으랴

 

 

 

 

(7:13-14)

13 좁은문으로들어가라멸망으로인도하는문은크고그길이넓어그리로들어가는자가많고

14 생명으로인도하는문은좁고길이협착하여찾는이가적음이니라

 

 

(10:7)

7 그러므로예수께서다시이르시되내가진실로진실로너희에게말하노니나는양의문이라

 

 

(14:6)

6 예수께서가라사대내가곧길이요진리요생명이니나로말미암지않고는아버지께로올자가없느니라

 

 

(13:24)

24 좁은문으로들어가기를힘쓰라내가너희에게이르노니들어가기를구하여도못하는자가많으리라

 

 

(64:6)

6 대저우리는다부정한자같아서우리의의는다더러운옷같으며우리는다쇠패함이잎사귀같으므로우리의죄악이바람같이우리를몰아가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