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목사/요한계시록

(88) 최후의 전쟁, 그리고 작은 전쟁들     (계19:17-20:3)

은바리라이프 2013. 10. 5. 22:18

(88) 최후의 전쟁, 그리고 작은 전쟁들

 

 

(계19:17-20:3)

19:17 나는 또 해에 한 천사가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공중에 나는 모든 새들에게 큰 소리로 외치기를, "하나님의 큰 잔치에 모여라.

19:18 왕들의 살과, 장군들의 살과, 힘센 자들의 살과, 말들과 그 위에 탄 자들의 살과, 모든 자유인이나 종이나 작은 자나 큰 자의 살을 먹어라" 하였습니다.

19:19 또 나는 짐승과 세상의 왕들과 그 군대들이, 흰 말을 타신 분과 그의 군대에 대항해서 싸우려고 모여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19:20 그러나 그 짐승은 붙잡혔고, 또 그 앞에서 기이한 일들을 행하던 그 거짓 예언자도 그와 함께 붙잡혔습니다. 그는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과 그 짐승 우상에게 절하는 자들을 이런 기이한 일로 미혹시킨 자입니다. 그 둘은 산 채로, 유황이 타오르는 불바다로 던져졌습니다.

19:21 그리고 남은 자들은 말 타신 분의 입에서 나오는 칼에 맞아 죽었고, 모든 새가 그들의 살점을 배부르게 먹었습니다.

20:1 나는 또 한 천사가 1)아비소스의 열쇠와 큰 사슬을 손에 들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밑바닥이 없는 깊은 곳'을 일컫는 그리스어

20:2 그는 그 용, 곧 악마요 사탄인 그 옛 뱀을 붙잡아 결박하여,

20:3 2)아비소스에 던지고 닫은 다음에, 그 위에 봉인을 하여 천 년 동안 가두어 두고, 천 년이 끝날 때까지는 민족들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사탄은 그 뒤에 잠시 동안 풀려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밑바닥이 없는 깊은 곳'을 일컫는 그리스어

 

 

우리는 지난주에 여러 가지 천년왕국설에 관해 공부를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내린 결론이 ‘전 천년 설, 후 천년 설, 무 천년 설 이렇게 여러 가지 천년 왕국 설이 있지만 그러한 종말론에 관심을 갖기보다 우리는 오늘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 우리의 종말 속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각오로 오늘을 준비하며 살자‘ 라고 결론을 맺었지요? 그러나 우리 교회는 성경 해석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무 천년설을 지지하며 요한 계시록 19장 후반부와 20장 초반부를 무 천년설에 근거하여 해석할 것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지난 주 설교가 방송에 나가고 세대주의적 전 천년설을 지지하는 분들로부터 전화를 많이 받았습니다. 동의할 수 없다는 내용이 태반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떡하지요? 저는 오늘 본문을 해석하면서 또 세대주의를 난도질 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확하게 성경만을 근거로 설명을 해 드리겠습니다.

 

지난주에 공부하신 내용을 잠깐 다시 떠 올려 보시면, 무 천년설은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 때 이미 하나님의 백성들이 생겨나게 되었고,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침노해 들어 온 것이고, 그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 주님 다시 오실 그 날까지 하늘의 왕 노릇을 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하늘의 왕 노릇은 자기를 비우고, 자기를 낮추어서 하나님과 다른 이들에게 유익이 되는 삶이기 때문에 우리의 오염된 육체로는 쉽게 이를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징계와 고난을 동원해서 우리가 하늘의 왕 노릇을 잘 할 수 있게끔 만들고 계신 기간이 바로 그 기간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세대주의자들이 말하는 천년 왕국과 7년 대 환난의 기간은 동일한 기간이며, 바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간이 그 기간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시편 몇 구절을 보면서 조금 더 부연 설명을 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시2:7-8)

7        내가 영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8        내게 구하라 내가 열방을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이 구절은 지금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하시는 영(令), 명령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예수님한테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라는 표현을 쓰십니다. 이 구절을 가지고 여호와의 증인들이 예수님은 나중에 창조된 피조물이라고 우기지요. 아닙니다. 예수님은 창세전부터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존재하셨던 하나님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창세전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장자 이셨고 그 장자가 첫 창조의 모든 것들의 머리가 되셔서 만물을 다스리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새 창조가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또 다시 그 새 창조에 관여하셔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제는 영원히 타락할 수 없는 새 창조를 하시는 데 그 새 창조도 예수님을 통해 하시기로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기꺼이 그 새 창조 사역을 맡으셨고 그 새 창조의 방법으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새 창조는 영적으로 완성이 된 것이지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새 창조를 영적으로 완성하신 예수님의 부활 때, 하나님은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라는 표현을 쓰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낳았다‘라는 표현을 존재론 적으로 이해해서는 안 되고 ’직능 적, 기능적‘관점으로 이해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영적으로 새 창조는 완성이 된 것이고 바로 그 때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열방을 유업으로 주셨고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라는 영(令)을 내리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하나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 때 이미 이루어졌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시72:7-11)

7        저의 날에 의인이 흥왕하여 평강의 풍성함이 달이 다할 때까지 이르리로다

8        저가 바다에서부터 바다까지와 강에서부터 땅 끝까지 다스리리니

9        광야에 거하는 자는 저의 앞에 굽히며 그 원수들은 티끌을 핥을 것이며

10      다시스와 섬의 왕들이 공세를 바치며 스바와 시바 왕들이 예물을 드리리로다

11      만 왕이 그 앞에 부복하며 열방이 다 그를 섬기리로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십자가에서 마귀를 결박시켜 버리셨고 예수님은 만왕의 왕으로 등극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때 이미 예수님의 왕국은 시작이 된 것이지요.

그러니까 ‘앞으로 몇 년 후에 천년 왕국이 올까, 난 7년 대 환난을 지나게 될까? 아니면 그 전에 휴거 하게 될까?’ 이런 것에 관심 가지지 마세요.

오늘 본문도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을 천년 왕국의 시작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20장 2절과 3절을 보시면 용, 마귀 사단이 천년 왕국이 시작되는 그 시점에 무저갱에 결박당한다고 나옵니다. 그러니까 마귀가 결박당하는 바로 그 때에 천년 왕국이 시작된다는 것이지요. 이 부분은 전에도 여러 번 설명을 해 드렸지요. 사단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지금 완전 무장해제 당한 상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말은 사단이 이제 하나님의 백성들을 참소 할 근거가 없어져 버렸다는 의미라고 했지요? 우리의 죄를 지적해서 하나님 앞에 고자질을 해야 하는데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몽땅 가져가 버리셨기 때문에 사단은 우리를 정죄 할 수 없습니다. 그게 바로 ‘사단이 무저갱에 갇혔다‘라는 구절의 의미인 것입니다. 전에도 여러 번 설명해 드렸으니 잘 이해하실 수 있지요?

 

(계20:2-3)

2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잡아 일 천년 동안 결박하여

3        무저 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인봉 하여 천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다가 그 후에는 반드시 잠간 놓이리라

 

2절의 ‘결박하다‘’에데센‘이라는 단어와 똑같은 단어가 마태복음 12장에 나옵니다.

 

(마12:29)

29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늑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늑탈하리라

 

이 구절은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시자 유대인들이 ‘저가 마귀의 힘을 빌려 귀신을 쫓아낸다.’고 예수님을 중상했을 때 예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께서는 사단을 결박하시고 그 사단의 세간인 귀신들렸던 자들, 다른 말로 죄인들을 늑탈하시러 오신 분이라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것을 미리 상징적으로 표징으로 보여주신 것이 병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신 일들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나라는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묵시 속에 완성이 된 것이고, 사단은 예수님의 초림 때 결박당한 것입니다.

 

(눅10:17-18)

17      칠십 인이 기뻐 돌아와 가로되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18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여기도 보시면 예수님의 제자70명이 전도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주님께서 그 일을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교회의 구원과 다른 말로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사단의 결박은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이지요.

 

(요12:31)

31      이제 이 세상의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 임금이 쫓겨나리라

 

헬라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 왔을 때 예수께서 ‘이제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이제 세상의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 임금이 쫓겨나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쓰인 ’쫓겨나다’‘에크발로’는 오늘 본문의 ‘무저갱에 던지다‘의 ’발로‘와 같은 어근의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은 사단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말미암아 꼼짝없이 무저갱에 던져지게 될 것이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제 사단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지심으로 말미암아 무저갱에 결박이 되었다는 것이 확실해졌지요? 그러니까 사단이 무저갱에 갇혀있는 천 년 왕국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 때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면 요한 계시록의 중간 중간에 사단이 성도들과 싸워서 이긴다는 말이나 땅의 왕들을 미혹해서 군대를 모은다는 말은 무슨 뜻이겠습니까?

분명 사탄은 철저하게 패배하고 결박당하여 무력한 존재가 되어버린 반면(계 12:7-12, 17:8, 11, 마12:25-30, 눅11:14-26, 골 2:15, 히 2:14) 또 다른 측면에서는 성도들과 싸워 이기고(계13:7)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가지고 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모순처럼 보이는 문제에 대해서 사탄의 이중적 측면을 기억해야 합니다. 누차 말씀드린 대로 이러한 사탄의 공격은 우리 성도들의 구원을 궁극적으로 방해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결코 제지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단에게 성도들을 공격하도록 허락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사단의 발악은 오히려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의 거룩에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에베소서의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공부하면서 사단의 공격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 하나님께 사용되어지고 있다는 것을 배웠지요. 그런 의미에서 사단이 지금 결사적으로 성도들을 공격하고 있음에도 ‘사단은 결박당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삿3:1-4)

1        여호와께서 가나안 전쟁을 알지 못한 이스라엘을 시험하려 하시며

2        이스라엘 자손의 세대 중에 아직 전쟁을 알지 못하는 자에게 그것을 가르쳐 알게 하려하사 남겨두신 열국은

3        블레셋 다섯 방백과 가나안 모든 사람과 시돈 사람과 바알 헤르몬산에서부터 하맛 어구까지 레바논산에 거하는 히위 사람이라

4        남겨두신 이 열국으로 이스라엘을 시험하사 여호와께서 모세로 그들의 열조에게 명하신 명령들을 청종하나 알고자 하셨더라

 

보세요. 이스라엘의 대적을 남겨두신 분이 누구이십니까?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스라엘을 죽이기 위해 남겨진 자들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영적 성숙을 위해 남겨진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20장 3절의 ‘마귀가 천년 후에 잠깐 동안 풀려난다.’는 말은 무슨 의미이겠습니까? 이제 마지막 때가 되면 성도들을 향한 사단의 공격이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거세지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제 20장 1절에서 3절까지는 해결이 됐습니다.

 

그럼 그러한 관점을 가지고 19장 마지막의 최후의 전쟁을 한번 풀어보자고요.

19장17절부터 21절까지에는 두 가지의 환상이 등장합니다.

17절이 ‘내가 보매’라는 단어로 시작되고 있고 19절이 ‘또 내가 보매’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17절과 18절 그리고 19절부터 21절까지의 내용은 같은 사건을 반복해서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계19:17-18)

17      또 내가 보니 한 천사가 해에 서서 공중에 나는 모든 새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와서 하나님의 큰 잔치에 모여

18      왕들의 고기와 장군들의 고기와 장사들의 고기와 말들과 그 탄자들의 고기와 자유 한 자들이나 종들이나 무론대소하고 모든 자의 고기를 먹으라 하더라

 

한 천사가 공중의 모든 새들에게 큰 음성으로 외칩니다. ‘왕들의 고기와 장군들의 고기와 장사들의 고기와 말들과 그 탄자들의 고기와 자유 한 자들이나 종들이나 무론대소하고 모든 자의 고기를 먹으라.‘ 그렇게 이야기가 한번 끝나는 것입니다. 새들이 고기를 먹습니다. 그리고 19절부터 ’또 내가 보매‘로 시작되는 다른 환상이 나옵니다. 그런데 17절과 18절의 이야기가 거기에서 똑같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19절부터 21절을 잘 보시면 또 새들이 짐승과 거짓선지자, 그리고 나머지들을 다 먹습니다.

 

(계19:19-21)

19      또 내가 보매 그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 군대들이 모여 그 말 탄 자와 그의 군대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키다가

20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이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이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지우고

21      그 나머지는 말 탄 자의 입으로 나오는 검에 죽으매 모든 새가 그 고기로 배불리우더라

 

여기를 잘 보시면 짐승들 뿐 아니라 나머지까지 다 죽었습니다. 만국이 멸망한 것입니다. 그런데 20장에 가면 또 곡과 마곡의 전쟁이 나옵니다. 그리고 이미 19장에서 만국이 다 멸망했는데 20장 3절에서 만국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계20:3)

3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다가 그 후에는 반드시 잠간 놓이리라

 

그러니까 오늘 본문 19장 후반부의 전쟁은 요한계시록 전반에 걸쳐 반복되어 기술되어 있던 바로 그 전쟁이 또 반복해서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세대 주의자들의 주장처럼 역사적인 순서로 역사적인 사건들이 기록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제가 조금 더 확실하게 확인을 시켜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 19장 17절 이하의 전쟁은 에스겔서38장과 39장을 그대로 옮겨다 인용한 것입니다.

요한 계시록 20장에 곡과 마곡의 전쟁이 나오지요?

 

(계20:7-9)

7        천년이 차매 사단이 그 옥에서 놓여

8        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리니 그 수가 바다 모래 같으리라

9        저희가 지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두르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저희를 소멸하고

 

그 전쟁이 에스겔서 38장에 이미 예언되어 있습니다.

 

(겔38:2-3,22-23)

2        인자야 너는 마곡 땅에 있는 곡 곧 로스와 메섹과 두발 왕에게로 얼굴을 향하고 그를 쳐서 예언하여

3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로스와 메섹과 두발 왕 곡아 내가 너를 대적하여

22      내가 또 온역과 피로 그를 국문하며 쏟아지는 폭우와 큰 우박덩이와 불과 유황으로 그와 그 모든 떼와 그 함께 한 많은 백성에게 비를 내리듯하리라

23      이와 같이 내가 여러 나라의 눈에 내 존대함과 내 거룩함을 나타내어 나를 알게 하리니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겔39:6)

6        내가 또 불을 마곡과 및 섬에 평안히 거하는 자에게 내리리니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요한 계시록 20장의 그 곡과 마곡의 전쟁과 단어들까지 똑같지요? 39장17절로 가면 그 곡과 마곡의 전쟁에 오늘 본문 19장의 새들이 등장합니다.

 

(겔39:17-20)

17      너 인자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는 각종 새와 들의 각종 짐승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모여 오라 내가 너희를 위한 잔치 곧 이스라엘 산 위에 예비한 큰 잔치로 너희는 사방에서 모여서 고기를 먹으며 피를 마실지어다

   (오늘 본문 19장17절 이하와 단어들까지 똑같지요?)

18      너희가 용사의 고기를 먹으며 세상 왕들의 피를 마시기를 바산의 살찐 짐승 곧 수양이나 어린양이나 염소나 수송아지를 먹듯 할지라

19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예비한 잔치의 기름을 너희가 배불리 먹으며 그 피를 취토록 마시되

20      내 상에서 말과 기병과 용사와 모든 군사를 배불리 먹을지니라 하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러니까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오늘 본문은 에스겔서의 곡과 마곡의 전쟁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 것인데 오히려 39장의 내용을 19장에 38장의 내용을 20장에다가 옮겨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19장 17절 이하를 역사적인 순서로 해석을 하는 것은 구약의 말씀과 요한계시록의 문학적 구성을 전혀 무시한 해석이 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계시록 19장 17절 이하에 나오는 전쟁과 계시록 20장 7절 이하에 나오는 곡과 마곡의 전쟁은 같은 전쟁을 다른 관점에서 보여주는 장면인 것입니다. 19장에서는 짐승의 멸망이라는 관점에서, 그리고 20장에서는 사단의 멸망이라는 관점에서 그 마지막 전쟁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 전쟁은 16장에서도 이미 등장한 전쟁입니다.

 

(계16:12-16)

12      또 여섯째가 그 대접을 큰 강 유브라데에 쏟으매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되더라

13      또 내가 보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14      저희는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임금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

15      보라 내가 도적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16      세 영이 히브리 음으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으더라

 

바로 아마겟돈 전쟁이지요. 이 아마겟돈 전쟁은 용, 사단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세 더러운 영이 나와서 세상의 왕들을 모아 여호와의 큰 날, 즉 마지막 심판의 날에 치르게 될 전쟁입니다.

그런데 14절의 ‘전쟁‘’폴레몬‘ 앞에 ’톤‘이라는 정관사가 붙어 있습니다.’톤 폴레몬‘입니다.

‘그 전쟁‘입니다. 그렇다면 그 아마겟돈 전쟁은 앞에서 설명한 어떤 사건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이지요? 앞서서 등장한 그 전쟁이 뭘까요?

 

(계15:1)

1          또 하늘에 크고 이상한 다른 이적을 보매 일곱 천사가 일곱 재앙을 가졌으니 곧 마지막 재앙이라 하나님의 진노가 이것으로 마치리로다

2           

요한이 일곱 대접에 대해 기술하면서 이 일곱 대접 재앙이 마지막 재앙이며 이것으로 세상은 막을 내릴 것임을 먼저 언급합니다. 그리고 16장 21절에서 진짜 끝이 납니다.

 

(계16:19-21)

19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만국의 성들도 무너지니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 앞에 기억하신바 되어 그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으매

20      각 섬도 없어지고 산악도 간 데 없더라

21      또 중수가 한 달란트나 되는 큰 우박이 하늘로부터 사람들에게 내리매 사람들이 그 박재로 인하여 하나님을 훼방하니 그 재앙이 심히 큼이러라

 

역시 에스겔서의 곡과 마곡의 전쟁에서 쓰인 단어들이 그대로 쓰이고 있지요? 그런데 이 부분은 악의 세력을 총칭하는 바벨론이 멸망하는 부분입니다. 아마겟돈 전쟁은 바로 이 전쟁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마겟돈 전쟁 앞에 ‘톤’이라는 정관사가 붙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바벨론의 멸망이라는 대접 재앙을 17장과 18장에서 다시 풀어서 설명해주지요?

17장과 18장은 음녀 바벨론의 멸망에 관한 기록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19장에 들어와서 11절 이후에서 다시 그 전쟁을 반복해서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계19:19)

19      또 내가 보매 그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 군대들이 모여 그 말 탄 자와 그의 군대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키다가

 

그리고 그 전쟁이 다른 관점에서 또 20장7절 이후에서 다시 반복되어 기술되는 것입니다.

 

(계20:8)

8        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리니 그 수가 바다 모래 같으리라

 

여기도 똑같이 싸움이라고 번역이 된 ‘폴레몬’ 앞에 ‘톤’이라는 정관사가 붙어 있습니다. ‘톤 폴레몬’ 앞에서 말한 ‘바로 그 전쟁’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19장의 그 전쟁이 20장 7절 이후의 곡과 마곡의 전쟁이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정리를 해 보면 계시록에서 반복해서 등장하고 있는 마지막 재앙과 바벨론의 멸망, 그리고 아마겟돈 전쟁과 곡과 마곡의 전쟁은 모두 같은 전쟁을 반복해서 다른 관점으로 설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려우셨지요? 지금까지 들으신 것은 다 잊으셔도 됩니다.

그냥 ‘그 전쟁들이 다 같은 것을 설명하는 것이구나.‘라고 만 알아두시면 됩니다.

중요한 것은 이겁니다. 분명 전쟁은 실재하고 있고 실재했으며 실재할 것이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가 이미 앞에서 다 공부한 부분이지만 그 모든 마지막 때의 전쟁들은 마지막에 한번 딱 일어나고 마는 전쟁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존재하는 역사의 모든 현장에서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는 전쟁이라는 것입니다.

분명 결국에는 마지막 결전의 날이 있겠지만 우리는 그 전쟁의 연장선상에서 끊임없이 작은 전쟁들을 치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전쟁의 내용이 뭐냐는 것이지요. 여러분, 그 전쟁의 발단이 뭐였지요?

하나님을 섬기던 천사가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자기의 힘으로 자기의 삶을 책임지겠다고 나선 것에서부터 시작된 전쟁입니다. 그리고 땅으로 쫓겨난 사단이 역시 에덴동산에 세워진 다스림과 순종의 질서를 깨버리는 것으로 그 전쟁은 계속해서 진행되어지게 된 것이지요.

그러니까 하나님과 마귀와의 전쟁은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자신의 힘을 키워, 하나님과 상관없이 스스로를 책임지겠다는 쪽과 그 걸 절대 묵인하실 수 없다는 하나님과의 전쟁인 것입니다. 쉬운 말로 나는 ‘나’의 힘으로 ‘나’만을 위해 살겠다고 하는 자들과 ‘너희는 하나님을 의존해서 살아야 하는 존재야’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과의 전쟁이 바로 영적 전쟁의 실체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힘을 의존하는 자들을 무장해제 시키시는 전쟁을 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그렇게 마귀와 마귀의 다스림을 받고 있는 죄인들이 추구하는 것은 한 마디로 ‘자기 가치 향상’입니다. ‘내가 우주의 중심이다’라는 것이지요. 그게 성경이 말하는 ‘죄’입니다.

하나님은 그 것을 향해 칼을 뽑아 드신 것입니다. 결국 모든 피조물은 오늘 본문의 내용처럼 하나님의 발 앞에 굴복할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러한 마귀 적 지향이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 속에도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하나님의 백성들 속에 남아 있는 마귀 적 본능들을 하나하나 깨 가는 전쟁을 성도의 삶 속에서 일으키고 계십니다.

그리고는 결국에는 성도 안에 남아 있는 그 더러운 것들을 다 전멸시키시고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그 모든 더러운 것들을 새가 뜯어먹게 만드실 것이고, 성도들을 정 금 같이 단련해 내실 것입니다.

우리가 요한 계시록을 통해 읽어내야 하는 것이 바로 그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인간의 역사 속에서 계속해서 그 전쟁에 승리하고 계시며, 결국에는 완전한 승리를 거두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서 계속 승리를 하고 계시다는 것이 무슨 말이겠습니까? 우리 성도의 인생 속에서 우리가 하나님 말고 힘으로 의지하고 있던 것들이 자꾸 내게서 잘려 나가게 되는 일이 일어나게 된다는 뜻입니다.

남편과 두 아들과 풍요한 재산을 가지고 모압으로 갔던 나오미를 하나님만을 의지하도록 완전히 발가벗겨서, 남편과 두 아들을 죽이시고 알거지를 만들어서  다시 가나안으로 몰고 들어오시는 그 하나님, 그 것이 바로 승리의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자신의 힘을 버리고 더러운 죄를 버리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만드시는 그 일이 바로 하나님의 승리라는 것이지요.

우리가 예수를 믿게 되면 바로 그 전쟁 속으로 투입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를 믿는다는 것을 장미 빛 환상으로 기대하시면 안 됩니다. 십자가라는 것은 단순히 죄를 용서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십자가는 인간의 죄를 공박해 들어오는 불도저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십자가 앞에 서게 되면 인간은 그 복음이라는 불도저에 밀려 오징어포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예수를 믿는 그 날부터 복음이라는 불도저에 밀려 매일 매일 오징어포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어렵습니다.

 

마태복음 2장에 보면 두 부류의 인간이 나옵니다. 한 부류는 이 세상에서의 왕의 자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어린 아기들을 죽이는 일을 서슴지 않는 헤롯으로 대표되는 부류이고 다른 한 부류는 어린 아기 예수 때문에 애굽으로 나사렛으로 아기에 의해 정처 없이 끌려 다니는 요셉과 마리아로 대표되는 부류입니다. 하나님은 헤롯처럼 하나님을 버리고 스스로 왕의 자리에 올라 자기 자신을 보호하고 타인을 통제하는, 죄인들에게 찾아와서 그들의 죄를 백일하에 낱낱이 드러내고, 결국에는 자신의 소원과 자신의 꿈을 죽이고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를 좇아, 어린양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는 자로 만드시는 것이 바로 복음인 것입니다.

잘 생각해 보세요. 조용하고 평온했던 유대 땅에 예수라는 어린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대 살육이 벌어집니다. 하나님은 거짓과 위선으로 위장하고 있는 죄를, 예수를 보내 전부 들춰내시는 것입니다. 잘난 척하지 말고 너희들의 실체를 보라는 것입니다. 그게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위력이며 십자가의 효력인 것입니다.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존경받으며 잘 살던 바리새인들에게 예수님이 나타나자 그 존경받던 바리새인들이 마치 인간의 탈을 쓴 좀비들처럼 예수님을 못 죽여서 안달을 부립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가시는 곳에는 죄가 백일하에 드러나게 됩니다. 그 것은 ‘너희들이 어떤 존재인지 바로 인식하라는 것입니다. 너희들은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고는 절대 의롭게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 알라’는 것이지요. 그러한 복음 앞에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들이 서게 되면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하고 하나님께 항복하게 되는 것이고, 은혜를 입지 못한 자들은 더욱 더 악해 져서 심지어 하나님을 죽이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그 모든 죄의 세력들은 하나님에 의해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예수를 믿고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되면 바로 그 전쟁이 여러분 속에서 시작이 되지요. 예수를 믿으면 금방 성자가 될 줄 알았는데 예수 믿기 전보다 죄를 더 많이 짓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보신 적 없으십니까? 여전히 변하지 않는 내 모습에 고통스러운 밤을 보내 보신 적 없으세요? 그건 여러분이 전보다 더 악해진 것이 아니라 십자가가 여러분의 실체를 낱낱이 드러내고 있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어 이거 뭐야, 난 내가 꽤 괜찮은 인간인 줄 알았는데 아니네.’ 하고 자신의 실체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게 신앙생활입니다.

감추어져 있는 환부는 절대 수술을 할 수가 없지요? 그래서 하나님은 여러분에게서 도려내야 할 부분들을 계속해서 들추어내십니다. 그리고 그 환부를 인식하게 만들어서 치를 떨게 만드시고 그 환부를 도려내시는 전쟁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가 예수 그리스도의 전쟁의 대상이 바로 우리 성도라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어차피 사단의 세력은 다 불 속으로 던져질 것입니다. 그 때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사단의 세력의 파편들 또한 지옥의 불로 던져 버리시기 위해 하나님은 그 더러운 것들을 십자가로 복음으로, 말씀으로 도려내고 계신 것입니다. 여전히 우리 속에 남아 있는 그 오염과 부패들을 도려내고 계신 것이 바로 우리의 신앙생활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게 되면 정말 은혜롭기만 합니까? 우리가 이 더러운 육신을 입고 있는 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떨어지면 우리는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죄를 공박해 들어와 그 죄를 들추어내고 그 내 살처럼 달고 살던 죄를 잘라내라고 요구하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할 때 고통스러워야 합니다. 그러나 그 고통이 지나간 뒤에 우리에게 주어질 영원한 안식이 어떤 것임을 알기에 기쁨 속에 그 고통을 감수하는 것입니다. 그게 신앙생활입니다.

여러분이 매주 제 설교를 들으시면서 이구동성으로 ‘우리 목사님 말씀 참 은혜롭다’라고만 이야기하시면 전 설교를 정말 잘 못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제 설교를 들으시면서 ‘왜 저 인간은 맨 날 나하고 싸우자고 덤벼들어?’라고 생각이 드셔야 합니다. 그런 생각 안 드세요? ‘우리 목사는 맨 날 나하고 싸우자고 시비 거는 사람 같아‘ 맞습니다. 저는 매주 몇 번씩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여러분의 오염과 부패와 싸우자고 덤벼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여러분 안에 있는 오염과 부패를 향해 메스를 들고 덤벼들기 때문에 여러분은 제 설교를 들으시면서 고통스러워야 합니다. 제가 막 미워져야 합니다. 그 사람들이 설교를 잘 들으신 것입니다. 말씀을 전하는 목사는 절대 성도들에게 인기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말씀이 변함없이 제대로 전해지면 목사와 성도들은 원수가 되기 마련입니다.

갈라디아서 4장에 보시면 바울이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처음에는 나를 천사와 같이 예수와 같이 영접했고 나에게 눈이라도 빼 줄 것처럼 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지금 너희들은 날 원수로 대하고 있다. 나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똑같은 복음을 전했는데 왜 너희들이 나를 원수로 대하고 있느냐?‘

성도라는 사람들이 처음에 얼마간은 못 들어 본 이야기, 생소한 이야기 해 주니까 ‘우리 목사 참 똑똑하다. 공부 많이 했다’하고 잘 듣습니다. 그런데 1년이 가고 2년이 가고 세월이 자꾸 흐르는데 계속해서 말씀이 자기들을 공격하면 그들이 하나 둘 씩 등을 돌리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왜 예수께서 ‘내가 너희들에게 검을 주러 왔다’고 하셨는지 아시겠어요? 복음은 우리를 도려내는 하나님의 무기입니다.

왜 오늘 본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의 무기가 ‘말씀의 검’인지 아시겠지요.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안에 있는 더러운 것들을 각을 떠버리기 때문입니다.

 

(요12:48)

48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날에 저를 심판하리라

 

하나님의 말씀은 죄를 심판하시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본문의 내용처럼 마지막의 그 심판을 면하기 위해 이 인생동안에 계속해서 그 말씀 앞에서 심판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게 신앙생활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반복해서, 또 점층적이며 점진적인 방법으로 우리 성도들에게 일어난 일과 우리 성도들이 마땅히 살아내야 할 바와 종국에 이 세상이 어떻게 끝이 날 것인가에 대해 설명하고 지적하고 경고함으로써 우리를 양육하고 우리를 성숙으로 인도하며 우리의 거룩을 완성시켜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다른 것에 관심 두지 마시고 오늘도 ‘나를 죽여 남을 살리는 십자가로 인도하고 계시는 예수 님’께로 여러분의 발걸음을 한 발 더 옮기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