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목사/요한계시록

(87) 천년왕국     (계19:17-21)

은바리라이프 2013. 10. 5. 22:17

(87) 천년왕국

 

 

(계19:17-21)

19:17 나는 또 해에 한 천사가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공중에 나는 모든 새들에게 큰 소리로 외치기를, "하나님의 큰 잔치에 모여라.

19:18 왕들의 살과, 장군들의 살과, 힘센 자들의 살과, 말들과 그 위에 탄 자들의 살과, 모든 자유인이나 종이나 작은 자나 큰 자의 살을 먹어라" 하였습니다.

19:19 또 나는 짐승과 세상의 왕들과 그 군대들이, 흰 말을 타신 분과 그의 군대에 대항해서 싸우려고 모여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19:20 그러나 그 짐승은 붙잡혔고, 또 그 앞에서 기이한 일들을 행하던 그 거짓 예언자도 그와 함께 붙잡혔습니다. 그는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과 그 짐승 우상에게 절하는 자들을 이런 기이한 일로 미혹시킨 자입니다. 그 둘은 산 채로, 유황이 타오르는 불바다로 던져졌습니다.

19:21 그리고 남은 자들은 말 타신 분의 입에서 나오는 칼에 맞아 죽었고, 모든 새가 그들의 살점을 배부르게 먹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요한 계시록 중에서 가장 해석상의 논란이 많은 부분에 당도했습니다. 바로 천년 왕국에 관한 내용입니다. 이 19장 후반부와 20장 초반에 나오는 내용을 역사적인 순서로 이해하느냐 아니면 반복적인 기록으로 이해하느냐에 따라 전 천년 설 후 천년 설 무 천년설이 갈라지기 때문에 이 부분의 해석에 있어서 많은 논란이 있는 것입니다.

저는 성경 해석의 일관성으로 볼 때 무 천년설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도 그 관점에서 해석을 할 것입니다. 자세한 내용 분석에 들어가기에 앞서 우리가 이미 배웠던 여러 가지 천년 왕국 설을 간단하게 복습을 하고 넘어가지요.

먼저 한국 교회가 가장 많은 영향을 받았던 전 천년설이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천년 왕국 전에 재림하신다 하여 전 천년설입니다.

그 전 천년설은 예수님께서 천년 왕국 전에 재림을 하시고 천년 동안 지상에서 통치를 하신 후, 사단이 잠깐 놓이게 되어 그 천년 왕국에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을 모아, 곡과 마곡의 전쟁을 하게 되고 주님은 그들을 그 전쟁에서 최종적으로 섬멸하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여신다는 해석이 전 천년설입니다.

 

이 전 천년설에는 역사적 전 천년설과 세대주의적 전 천년설이 있습니다. 둘 다 천년 왕국 전에 예수님께서 재림하신다고 동의 하지만 세대주의적 전 천년설은 예수님께서 7년 대 환난 전에 재림하셔서 성도들은 휴거 되고, 이 땅에 7년 대 환난이 있는 동안 성도들은 하늘에서 7년 동안 혼인 잔치를 한 후에 다시 땅으로 내려와 지상에다 천년 왕국을 건설한다는 설이고 역사적 전 천년설은 예수님의 재림이 7년 대 환난 후에 일어나게 된다는 점이 다른 점입니다.

많은 분들이 한국 교회에 만연하게 퍼져있는 세대주의적 전 천년설로 기울어져 계신 것 같아서 세대주의 적 전 천년설에 대해 조금만 더 부연 설명을 해 드리겠습니다.

세대주의 적 전 천년설에 따르면 7년 대 환난 기간 동안에 적그리스도가 맹위를 떨치고 7년 대 환난 기간 동안, 이스라엘의 남은 자 144.000 명이 구원을 받고 그들의 활약으로 허다한 무리가 구원을 받게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환난 기간 동안 유대인들에게 잘 해준 사람들을 양이라 하고 그들을 핍박한 사람들을 염소라 한다고 마태복음 25장의 양과 염소의 심판을 해석합니다. 그리고 7년 대 환난이 끝날 즈음에 땅의 왕들과 짐승들의 군대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함께 모여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대항하여 아마겟돈 전쟁을 시작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내려오셔서 그 원수들을 멸하시고 아마겟돈 전쟁을 종결하신다고 하지요. 그리고 유대인들과 7년 대 환난동안 순교한 신자들이 천국에서 다시 내려와서 천년 동안 다스리는 이스라엘 왕국이 회복되며 구약의 이사야나 예레미야 서 같은 선지 서에서 이스라엘에게 주어졌던 모든 예언이 다 이루어진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천년 왕국이 끝날 즈음에 사탄이 잠깐 옥에서 풀려 나와서 천년 왕국에 사는 사람 중에 믿지 않는 사람들을 모아 곡과 마곡의 전쟁을 일으키지만, 예수께서 이제 영원히 그들을 불 못에 던져 넣으시고 영원한 새 하늘과 새 땅이 온다는 것이 세대주의적 전 천년설입니다.

이 전 천년설의 내용에 따르면, 이미 영화 된 예수 그리스도와 성도들이 다시 죄와 죽음이 있는 천년 왕국으로 내려와서 살게 된다는 것인데 정말 그게 옳은 해석일까요? 그리고 예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에 죄와 죽음이 존재하게 되고 심지어 그들이 힘을 규합해서 예수님께 대적을 하게 된다는 논리는 저로서는 수긍하기가 어렵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재림이 두 번에 걸쳐 일어나게 된다는 전 천년설의 주장은 마태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마지막 날에 대한 예언과도 대치됩니다.

 

(마24:3-13,29-31)

3        예수께서 감람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종용히 와서 가로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5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

6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끝은 아직 아니니라

7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8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

9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10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시험에 빠져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11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12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13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29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30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31      저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보세요. 전 천년설의 주장처럼 예수님의 두 번의 재림 사이에 천년의 기간이 있고, 심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즉시’ 세상의 종말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후 천년설이라는 것은 이제 이 땅에 복음이 편만하게 전파되어서 그리스도의 푸른 계절이 오게 되고 이 땅이 자연스럽게 천년 왕국 화된다는 주장이지요. 그리고 그 천년 왕국 후에 예수님께서 재림하신다는 설입니다.

그러나 이 후 천년설은 20세기에 들어와서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그 원인은 성경 주석상의 문제라기보다, 역사적 상황이나 역사적 경험으로 인간들 스스로가 이 땅은 천년 왕국 화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개혁주의 신학이 지지하고 있는 무 천년설은 무엇인가?

무 천년설은 천년 왕국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천년이라는 기간을 문자 적으로 보지 말자는 것입니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이미 ‘하나님 나라가 왔다’라고 확언하고 있지요.

 

(마4:17)

17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시더라

 

여기서 ‘가까이 왔다’라고 번역이 된 ‘엥기켄’은 ‘엥기조’라는 동사의 직설법 완료형입니다.

그러니까 그 말은 ‘천국이 예수님과 함께 이미 이 땅에 와 있다‘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히12:28)

28      그러므로 우리가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우리가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다‘에서 쓰인 ’파랄람바노테스‘는 현재형입니다. 그러니까 진동치 못할 하나님 나라는 이미 이 땅에 계속해서 침노해 들어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골1:13)

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여기서도 ‘옮기셨다’라고 번역이 된 ‘메디스테센’도 ‘메디스테미’라는 동사의 직설법 과거형입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님의 나라, 즉 천국으로 ‘옮겨졌다‘는 것입니다.

제가 누누이 말씀드리지만 ‘천국’ ‘하나님 나라‘라는 것은 공간적 개념이 아닌 ’통치의 개념‘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누가 통치하시는가?’

그래서 우리가 구원받기 전에는 사탄의 나라 시민이었던 것이고 우리가 구원 얻은 후에는 하나님의 통치를 즐거워하는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통치에 기꺼이 기쁘게 순종하는 사람들 속에서 경험되는 희열과 평안이 바로 천국의 내용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하나님 나라‘’천국‘을 그리실 때 지금 우리가 이 땅의 가치기준을 가지고 상상하고 있는, 좋은 환경 속에서 천사나 다른 피조물들의 위에 군림해서 그들을 부려먹는 유토피아만을 상상하시면 안 됩니다. 물론 좋을 거예요. 그러나 천국이 그렇게 우리가 기대하는 좋은 곳일 것이기 때문에 여러분이 어려움과 고난을 감수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또 다른 기복주의에 빠져있는 불신자일 뿐입니다. 천국은 자신의 목숨까지도 아끼지 않으시며 원수였던 ’나‘를 사랑해 주신 우리 주님을 사랑하는 자들이 그 주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곳이 천국입니다. 그런 면에서 진짜 성도들은 이미 이 땅에서 천국을 살고 있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개혁주의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선 이후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까지를 바로 상징적인 천년왕국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우리는 성경이 1,000이라는 완전수를 사용해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말세의 기간을 바로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의 왕 노릇, 섬김과 사랑과 용서와 화평과 긍휼의 왕 노릇을 하고 있는 천년 왕국이라고 기록한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상징 적인 천년이라는 기간은 이중적인 내용을 담고 있음을 성경에서 자주 보게 됩니다. 이 말세의 기간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의 왕 노릇을 하고 있는 기간이기도 하지만 그러한 하늘의 왕 노릇을 잘 감당할 수 있는 성도의 성숙과 양육을 위해 하나님께서 고난도 허락하시는 기간이 바로 이 말세의 기간임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 배웠습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이해하시면 됩니다.

이미 묵시 속에서 완성이 되어 있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 역사 속에서 그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의 삶을 배우고 익히고 훈련하고 있는 시간이 바로 이 말세 기간이라고 보시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말세의 기간이 흔히들 말하는 ‘천년 왕국’의 기간이기도 하지만 전 천년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7년 대 환난의 기간도 바로 지금, 이 말세의 기간이라고 보는 것이지요. 이왕 복습을 하는 김에 다니엘서 9장의 내용도 간단하게 복습을 하고 가지요.

 

세대주의적 전 천년설을 주장하는 분들이 7년 대 환난이라는 기간을 잡은 것은 다니엘 서 9장의 내용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다니엘서 9장은 우리가 확실하게 확인하고 있어야 하는 내용입니다.

 

(단9:24-27)

24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되며(영원히 속해지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코데쉬, 거룩한 곳) 기름부음을 받으리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인간 세상의 종말, 즉 영원한 하나님 나라가 오는 시기를 70이레로 기한을 정하셨다는 것을 설명하는 구절입니다. 그 칠십 이레가 가면 이 세상의 종말이 온다는 것입니다.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 왕 때 성전을 재건하라 명령하셨지요. 그 때부터 이 우주의 종말까지를 하나님이 조목조목 기간을 나누어 설명해주시는 장면입니다.)

25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육십 이 이레가 지날 것이요 그 때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거리와 해자가 이룰 것이며

   (이 말은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명령이 난 그 때부터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의 기간이 일곱이레 더하기 62이레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종말까지는 이제 한 이레 남은 거지요? ‘이레’라는 것은 뭐지요?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닷새, 엿새, 이레의 이레인 것입니다. 세대주의자들은 이것을 7년으로 잡아서 다리오 왕 원년서부터 70이레 즉490년 후에 이 세상의 종말이 온다고 주장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성경을 문자 적으로만 해석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490년이 지난 지 오래입니다. 아직 종말이 오지 않았지요? 그래서 남은 한 이레 7년을 뒤로 뺀 것입니다. 그 남은 한 이레, 7년이 언제 올지는 모르지만 그 한 이레, 7년이 환난을 몰고 다가올 것이고 그 7년이 지나면 천년왕국이 오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전 천년설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주장입니다. 그러니까 7년 대 환난이라는 것이 이 다니엘서 9장에서 만들어 진 것입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26절, 27절을 보시면 우리가 지지하고 있는 무 천년설이 훨씬 타당함을 알 수 있습니다.)

26      육십 이 이레 후에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AD30년으로 보자)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훼파하려니와 그의 종말은 홍수에 엄몰됨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이러한 대목들을 가지고 7년 대 환난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27      그 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겠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잔포하여 미운 물건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케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여기보시면 남은 한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이 금지되는 일이 생긴다고 합니다. 제사와 예물이 금지된다는 것은 제사와 예물을 드리는 성전이 없어져 버린다는 말이지요? 언제입니까?

Titus가 AD70년에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해 버렸지요? 그 때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었다는 것은 이제 죄 사함의 길은 제사나 예물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가능해졌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종말까지 남아있던 한 이레의 절반은 예루살렘 성전 파괴라는 것이 자명해졌습니다. 그러면 이제 종말까지 얼마나 남은 것입니까? 반 이레가 남았지요? 3과 1/2

3과 1/2 어디서 많이 들어보시지 않으셨어요? 요한 계시록에 계속 반복해서 나오는 3년 반, 한때 두 때 반 때, 1260일, 42개월 이게 모두 예루살렘 성전 파괴에서부터 종말까지의 기간인 말세의 기간 아닙니까?

 

(계12:14) 

14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

(계11:2)

2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저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 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계11:3)

3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저희가 굵은 베옷을 입고 일천 이백 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보세요. 그 나머지 반 이레 동안에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자녀로 양육되어지는 것이고, 권세를 가지고 복음을 전하는 기간이며, 하나님 자녀로의 성숙을 위해 고난을 받는 기간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전 천년설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7년 대 환난이라는 것은 없으며 지금은 바로 반 이레의 기간, 천국과 고난이 동시에 경험되고 있는 말세의 기간일 뿐이라고 해석을 하는 것입니다.

잘 생각해 보세요. 정말 이 지상에서의 천년 왕국이 있을 것이라면 왜 그 수많은 선지자들이 그 중요한 천년 왕국에 대해 한 마디도 하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세대주의자들의 주장처럼 천년 왕국이 유대인들의 왕국이 회복되는 것이고 성전이 재건되고 구약의 동물 제사가 다시 드려질 것이라면 왜 요한 계시록에서 유대인들에 대한 언급이나 동물 제사의 회복에 대한 언급이 없을까요?

 

제가 지금 여러 가지 천년 왕국 설에 관해 설명을 해 드렸는데 사실 저는 그 모든 ‘설’에 관심이 없습니다. 저는 성경의 일관성 있는 해석을 위해 무 천년설을 지지하는 것뿐이지 ‘무 천년설이 아니면 다 이단이다.‘ 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 천년이면 어떻고 후 천년이면 어떻고 무 천년이면 어떻습니까? 종말론이 조금 다르다고 해서 구원받는 데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 제가 가끔 세대주의적 전 천년설을 공박하는 이유는 종말론 때문이 아니라

극단적인 제대주의자들의 구원론 때문에 그러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의 구원이 어떤 시대에는 율법을 통해, 어떤 시대에는 은혜를 통해 주어진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무시하는 꼴이 되기 때문에 그건 안 된다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제가 오늘 설교를 위해 금요 청년 예배 때 미리 정지작업을 조금 해 두었습니다.

베드로 전서 1장20절에 보면 하나님은 창세전에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준비해 두셨습니다.

 

(벧전1:20)

20      그는 창세전부터 미리 알리신바 된 자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 내신 바 되었으니

         이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 예정되고, 이 마지막 때에 여러분을 위하여 나타나셨습니다.

 

여기서 ‘미리 알리신바 되었다‘라고 번역이 된 ’프로 기노스코‘라는 단어는 ’미리 예정되다, 미리 예견되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이 창조되기도 전에, 천지가 창조되기도 전에 이미 준비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하나님은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구원하시기로 이미 인간이 태어나기도 전에 계획하고 계셨다는 말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세대주의자들의 주장처럼 어떤 세대의 어떤 사람들은 율법으로 구원하시기로 하시고, 또 다른 어떤 세대의 어떤 사람들은 은혜로 구원하시기로 하셨다는 말은 얼토당토한 말인 것입니다. 그리고 극단적 세대주의자들은 ’하나님께서 먼저 유대인들을 구원하시기로 하셨는데 그들이 예수를 거부하는 바람에 홧김에 이방인들을 구원하시기 시작하셨고 그들이 교회다, 그러나 결국 이사야서를 비롯한 선지 서들에서 예언된 유대 다윗 왕국은 반드시 회복되고야 말 것이고 그 유대 왕국의 회복이 바로 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천년왕국이다’라고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에베소서 1장 4절은 뭡니까?

 

(엡1:4-5)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미 창세전에 택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유대인들에게만 예수를 보내셨는데 유대인들이 예수를 거부하는 바람에 이방인들에게까지도 은혜가 부어지게 되었다’라는 세대주의자들의 주장은 이 에베소서의 말씀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어떤 것을 계획하시고 실행에 옮기셨는데 그게 실패할 수가 있습니까? 하나님은 유대인의 구원을 계획하셨는데 그 계획이 실패해서 이방인들이 덤으로 구원을 받게 되었다면 그 하나님이 정말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맞습니까?

 

제가 이러한 몇 가지 이견 때문에 세대주의자들을 때로 공박을 하는 것이지 절대 종말론의 차이 때문에 그 분들을 몰아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뭐가 그렇게 중요합니까? 그 까짓 종말론 몰라도 됩니다. 사도 바울이 이 요한 계시록 보고 죽었습니까? 사도 베드로가 이 요한 계시록을 보고 죽었나요? 그들은 아예 이 요한계시록이라는 책을 보지도 못하고 죽었어요. 그래도 그 분들은 구원받았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구원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와 그 분의 은혜를 발견해 내면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 그리고 그로 말미암는 구원, 그리고 그러한 구원이 왜 필요하게 되었는가?’에 관해서만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그 구원의 이야기를 통해서 잘 포장되고 위장되어 있는 자신의 실체를 알게 되고, 또 하나님의 크심을 알게 되고, 그 하나님으로부터 부어진 감당할 수 없는 사랑과 은혜를 깨닫게 되어 하나님께 항복하고, 순종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로 지어져 가게 되는 것이 성경이 우리 성도들에게 주어진 목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까짓 종말론이 좀 다르다고 해서 구원이 취소되겠습니까?

우리가 정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정말 천년 왕국이 지상에 존재할 것인가? 혹은 예수님의 재림은 언제 올 것인가? 혹은 7년 대 환난은 정말 있는 것인가?’가 아닙니다. 종말은 몇 십 년 뒤에 올 수도 있고 몇 백 년 뒤에 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종말은 여러분이 이 세상을 떠나는 날 닥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육신을 떠나 일단 묵시의 세계로 들어가게 되면 우리는 이 땅에서의 시간과 공간의 개념과는 전혀 다른 곳으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 곳은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곳입니다. 그 곳은 영원한 현재만 있는 곳입니다. 영원한 현재만 있다는 것은 ‘기다림’의 부재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것입니다. 제가 먼저 죽어서 묵시의 세계에 들어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저보다 30년 더 사시다가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면 제가 그 묵시의 세계 속에서 여러분을 30년 동안 기다리게 되는 겁니까? 그 곳은 ‘기다림’이라는 것이 없는 곳입니다. 그 곳의 시간의 개념은 이 땅의 시간의 개념과 완전히 틀린 곳입니다. 영원한 현재만 있는 곳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죽어서 천국에 들어가게 되면 여러분도 거기에 함께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묵시 세계 속에서 천국은 이미 완성이 되어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돌아가시는 날이 여러분의 종말의 날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그 종말의 날이 언제 올 것인가? 예수님이 언제 오실 것인가? 이 땅에 정말 천년 왕국이 있을 것인가?‘가 아니라 ’내가 정말 죽어서 예수님과 만나서 우리 예수님과 영원히 살 수 있는 사람인가? 나는 지금 그 나라를 준비하고 있는가? 나는 지금 하나님께 항복하고, 순종하며, 그 분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지어져 가고 있는가?‘

에 관심을 가지셔야 지요. 그 리고 오늘 본문 같은 종말의 사건들을 보면서 하나님께 항복하지 않고 그 분께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을 거스르는 자들의 말로가 어떻게 될 것인지를 확실히 깨닫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로의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이 정말 성경을 제대로 보고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부디 엉뚱한 것에 시간 빼앗기지 마시고 나는 지금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가 마땅히 해야 할 성도의 본분을 잘 지키고 있는가를 확인하십시오.

리차드 십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예수를 믿으십니까? 여러분 교리를 잘 알고 계십니까? 여러분 성경을 많이 공부하셨습니까? 잘 하셨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십니까? 여러분이 아무리 성경을 많이 공부하고 아무리 교리에 능통하다 하더라도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면 여러분은 신자가 아닙니다.’ 이 말을 명심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