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목사/에배소서

(70) 세월을 아껴서 해야 할 일(III) (엡5:15-18)

은바리라이프 2013. 10. 5. 12:34

(70) 세월을 아껴서 해야 할 일(III)

(엡5:15-18)

15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16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17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18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우리는 지난 시간에 가짜 구원 확신에 관한 것들을 공부했습니다. 어떤 것이 가짜 확신이었지요? 자신의 체험과 경험을 가지고 구원을 확신하고 있는 사람, 그리고 공적인 자리에서 공적인 반응을 한 것을 근거로 구원 확신을 갖고 있는 사람, 자기의 선행을 근거로 구원을 확신하고 있는 사람, 자신의 종교 행위를 가지고 구원을 확신하고 있는 사람, 그리고 자기 삶의 변화를 가지고 구원을 확신하고 있는 사람, 이렇게 가짜 확신 속에서 정작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일을 외면한 채 살아가는 많은 자칭 그리스도인들이 있다는 것을 공부했습니다. 오늘은 그렇게 가짜 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특징부터 공부를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가짜 구원확신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그들에게 나타나는 특징이 있습니다.

첫 번째로 그들은 “당신들 혹시 가짜 확신을 갖고 있는 걸지도 몰라”라고 가짜 확신에 대해 경고를 들을 때, 화를 내던지 아주 무관심합니다.

영적으로 건강한 그리스도인들은 가짜 확신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 같은 것을 들으면 겸손한 반응을 보입니다. 프린스톤의 걸출한 신학자인 하지“진짜 확신과 가짜 확신 사이의 분명한 차이들 가운데 첫째는 진짜 확신에는 겸손이 수반된다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깨어있는 사람들은 늘 스스로 속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기 때문에, 겸손하게 자신을 돌아봅니다. 그들에게는 구원이 너무나 소중한 것이기 때문에 어떤 경고도 무시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근신하고 깨어있기를 원합니다. 왜냐하면 마귀가 우는 사자처럼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후13:5)

5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여기서 “너희는 너희의 구원을 시험하고 확증하라” “도키마조”“페이라조”“자세히 조사해서 확실하게 확인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우리의 구원의 문제에 있어서는 늘 긴장을 늦추면 안 되는 것입니다.

스코틀랜드의 신학자 존 머레이는 “진정한 확신을 얻는데 가장 방해가 되는 태도는 바로 구원을 너무나 쉽고, 값싸고,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우리는 자세히 조사하고 심사숙고해서 정말 나의 구원 확신이 바른 것인가를 항상 확인해야 합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가 구원의 확신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결론을 내리지 못했지요. 성경공부가 끝나고 우리 청년 한 명이 제 사무실로 찾아왔습니다. 제가 제일 신뢰하는 청년입니다. 그 청년이 사색이 되어서 저에게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목사님 제발 지금 결론을 가르쳐 주세요. 지금 목사님이 가짜 구원의 확신에 대해서만 말씀하시고 끝내셨는데 혹시 제가 오늘 가다가 죽을 수도 있잖아요. 그러니까 오늘 꼭 결론을 알고 가야 하겠습니다.” 하고 졸랐습니다. 제가 시간이 없어서 책을 한 권 줬습니다. 그리고 교만해 질까봐 말은 안 했지만 속으로 “넌 분명 구원받은 사람 맞아, 걱정 말고 가” 라고 말해 줬어요. 진짜 구원들 받은 사람들은 구원이 너무나 가치 있는 것이기 때문에 혹시 내 구원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하고 항상 시험하고 확증하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가짜들은 자기의 구원을 시험해 보고, 조사해 보라고 권고를 하면 화를 냅니다.

그건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는 집을 짓고 있는 사람에게 건축 감리사“다시 한 번 그 집이 안전하게 지어지고 있는지 확인하라”고 권고를 하면 화를 벌컥 내서 자신의 약점을 감추려고 하는 악덕 부실 시공업자의 심리와 같은 심리인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의 구원에 대한 확신이 모래 위에 지어졌을지도 모른다는 무시무시한 가능성에 직면하지 않으려는 마음 때문에 더욱 거센 저항을 하는 것입니다.

존 맥아더 목사님은 거기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현대 기독교에서 확신은 너무도 자주 무시되거나 혹은 주장할 자격도 없는 사람이 마음대로 자신들의 구원의 확신을 엉터리로 주장하고 있습니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이 자기에게 “당신은 구원 받았어“라고 말해 주었다고 해서 자기들이 구원을 받았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을 시험해 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기들의 확신을 확증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구원에 대하여 의심하는 것은 영적인 건강과 성장에 해가 된다는 가르침만을 받고 있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이 수많은 사람들이 영적으로 건강하거나 혹은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를 전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가짜 확신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특징은

때로 그들은 지나치게 율법적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교회 출석, 선행, 혹은 성경 공부, 기도, 금식 같은 종교 행위율법적으로 잘 하고 있다는 것을 근거로 하여 가짜 확신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 것을 안 하고 있을 때는 불안해서 못 견디게 됩니다. 따라서 지나친 열심을 부리기도 하고 그렇게 따라오지 못하는 사람들을 향해 분노하며 정죄합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있어서 구원의 확신은 그들이 읽은 성경 장수로 계산이 되지 그들의 삶에 어떤 변화가 얼마나 일어 났는 지로 평가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들의 기도의 횟수도 셉니다. 그리고 자기가 얼마나 교회 예배를 성실하게 빼 먹지 않고 참석했는지도 꼬박꼬박 셉니다. 내가 얼마나 금식을 많이 했는지도 꼭 기억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로 가짜 확신을 가진 또 다른 부류의 사람들은 자기들의 불순종을 합리화하며 교회 생활에 전혀 무관심합니다. 교회에 출석한다는 것만 빼면 불신자들하고 전혀 다를 것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부류의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히12:14)

14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그들은 그냥 교회에 나와 주기는 하는데 전혀 삶에 변화가 없습니다. 여전히 술집 출입을 하고 여전히 불법을 행하고 교회에 와서는 교회 멤버들과 사귀거나 교제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것들이 바로 우리가 신앙생활을 통해서 이룩해야 할 거룩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며,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것이라는 걸 그들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가짜 확신을 갖고 있는 사람일 가능성이 아주 높은 사람들입니다.

가짜 확신을 가진 사람들의 네 번째 특징은 성경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거나 혹은 매우 잘 안다고 자랑을 합니다. 양극으로 갈라집니다.

예를 들어 자신의 체험이나 선행 등을 구원 확신의 근거로 삼은 사람들은 그들에게 더 이상 성경이 필요 없다고 생각합니다. 눈만 뜨면 예수님이 나타나고 눈만 뜨면 십자가에서 피가 줄줄 흐르고 눈만 뜨면 예수님의 음성이 들리는 데 왜 그들에게 성경이 필요합니까?

어제 어떤 선배 목사님께서 사무실에 방문하셔서 말씀하시는데 풀러 신학교를 졸업하신 버뱅크에서 목회 하는 어떤 목사님에 대해 이야기 해 주셨습니다. 그 목사님은 성경에 대한 지식이 거의 전무하신 분이랍니다. 그런데 그 분이 어떻게 목회를 하시는가 하면 자기한테 좀 엉기는 사람이 있으면 데려다가 안수 기도를 해 버린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해서든지 그 사람을 넘어뜨려 버린답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꼼짝을 못하고 나가지도 못하고 붙들려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자꾸 불어난답니다. 그 목사님이 부리는 신통 술이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것입니다. 저한테도 그런 안수를 권장하시더라고요. 그리고 우리 교회에 암 환자들이 몇 분 계시다고 하니까 “그건 하나님께서 목사님께 신유 은사를 주셔서 그들을 고치게 해서 교회를 크게 부흥시켜 주시려고 그러는 거니까 매일 매일 안수해 드리래요. 그러다 한 명만 나으면 교회는 저절로 커진다는 겁니다. 그건 어떤 의미에서 가짜 확신을 가진 사람들을 양산하는 마귀 집단이지 교회가 아닙니다. 말씀이 없이 입만 열면 “축복“ 그리고 모이면 와글와글 소원기도나 하는 집단이 어떻게 교회입니까? 성경을 무시하고 세워지고 지속되는 교회는 없습니다.

여러분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병 고치는 기적이나 귀신을 쫓아내는 기적은 단순히 “기적”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병자들의 병을 고치신 것은

그 분이 메시아라는 것을 입증하는 행위였습니다.

(사35:1-6)

1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 같이 피어 즐거워하며

2무성하게 피어 기쁜 노래로 즐거워하며 레바논의 영광과 갈멜과 사론의 아름다움을 얻을 것이라 그것들이 여호와의 영광 곧 우리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리로다

3너희는 약한 손을 강하게 하여주며 떨리는 무릎을 굳게 하여주며

4겁내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는 굳세게 하라, 두려워 말라, 보라 너희 하나님이 오사 보수하시며 보복하여 주실 것이라 그가 오사 너희를 구하시리라 하라

5그 때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

6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벙어리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구약 이사야서에 이렇게 메시아가 오시면 이러한 일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언이 되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수천 년 동안 메시아를 오매불망 기다려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시기 전부터 가짜 메시아들이 들끓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오셔서 이사야서에 예언 된 그 메시아의 일을 행하심으로 구약에 능통했던 유대인들에게 그 분이 진짜라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 예수님의 기적입니다.

(눅4:40-41)

40해 질 적에 각색 병으로 앓는 자 있는 사람들이 다 병인을 데리고 나아오매 예수께서 일일이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고치시니

41여러 사람에게서 귀신들이 나가며 소리 질러 가로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꾸짖으사 저희의 말함을 허락지 아니하시니 이는 자기를 그리스도인 줄 앎이러라

(눅16:17-19)

17예수께서 저희와 함께 내려오사 평지에 서시니 그 제자의 허다한 무리와 또 예수의 말씀도 듣고 병 고침을 얻으려고 유대 사방과 예루살렘과 및 두로와 시돈의 해안으로부터 온 많은 백성도 있더라

18더러운 귀신에게 고난 받는 자들도 고침을 얻은지라

19온 무리가 예수를 만지려고 힘쓰니 이는 능력이 예수께로 나서 모든 사람을 낫게 함이러라

보세요, 왜 병 든 사람들을 고쳐 주시는데 그들의 병이 나았다는 표현과 함께 “귀신이 나갔다”는 표현을 쓰는지 아세요? 예수님께서 오셔서 병든 자를 고치시는 것은 사탄의 세력에게 잡혀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자유롭게 풀어 주기 위한 구원의 예표라는 것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지금도 분명 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의 병을 고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이제 성경이 완성되었고 그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우리는 확실하게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여러분이 그러한 기적들만을 바라보고 말씀에 불성실한 신앙생활을 하신다면 여러분은 기적을 좇는 분들이지 예수 그리스도를 좇는 하나님의 백성은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행19:13)

13이에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적으로 악귀 들린 자들에게 대하여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의 전파하는 예수를 빙자하여 너희를 명하노라 하더라

(마12:7)

27또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너희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 그러므로 저희가 너희 재판관이 되리라

보세요. 가짜들도 귀신을 쫓아냅니다.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중들도 암도 고치고 귀신도 쫓아내고 많은 기적을 행한다고요. 그런데 말씀을 등한시하고 그 기적만을 의지해서 자신의 구원을 확신하고 있다면 그건 너무 위험한 일 아니겠습니까?

반대로 어떤 사람들은 성경을 많이 공부해서 모든 삶의 모양들을 성경으로 풀어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성경 지식이 그들의 삶의 방식까지 바꾸지는 못한 상태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은 자신의 부족한 삶을 감추기 위해서 자신의 성경 지식을 자꾸 자랑하고 싶어 하게 되는 것입니다.

(고전4:19-20)

19그러나 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의 말을 알아 볼 것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 보겠노니

20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조직 신학을 줄줄이 꿰고 있고 성경을 달달 외우고 있음에도 삶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능력이 나오지 않는 그런 사람은 교만한 사람이라고 부르지 그리스도인이라 부르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럼 진짜 그 사람이 성경을 제대로 많이 아는 사람인지 아니면 가짜 확신을 가진 엉터리인지 어떻게 구별할 수 있습니까? 그 사람 주변에 그 사람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모이고, 아프고 상처받고 외로운 영혼들이 격려를 받고 위로를 받고 일어서게 되면 그 사람은 진짜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줄줄 외우고 있는데 정작 사람들이 상처를 받고 떠나고 오히려 그 앞에서 주눅이 들고 하면 그 사람은 100% 가짜입니다. 왜요?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 말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바른 성경 지식은 능력이 있어서 반드시 그 능력의 산물인 삶의 열매를 맺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열매가 나타나지 않으면 가짜지요.

패트릭 오브라이언Master and Commander: The far side of the world라는 소설을 보면 나폴레옹과의 전쟁 당시에 무적의 함대라 불렸던 영국 함대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함대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함장이었던 잭 오브리 장군의 배 서프라이즈 호가 신출귀몰하는 프랑스 전함 아케론 호를 좇는 이야기입니다. 그 영국 전함인 서프라이즈 호에 탄 선원들은 모두 기독교인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항해를 하는데 자꾸 불운이 겹치자 선원들이 성경 요나서를 펴 들고 그 배 안에 있는 요나를 찾습니다. 그 요나 때문에 하나님께서 자기들의 배를 저주하신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결국 한 사람을 지목하고 그를 왕따 시켜서 자살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게 영국 함대의 관례였습니다. 그리고 그 죽은 사람의 장례식에 모두 모여 요나서를 읽고 주기도문을 암송합니다.

미국 사람들이 아메리카 인디언들을 죽일 때 성경의 가나안 정복 전쟁을 근거로 죽인 것을 아십니까? 이렇게 가짜들은 성경의 지식을 가지고 다른 이들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죽여 버립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성경지식으로 다른 이들을 오히려 절망하게 하고 부끄러움을 느끼게 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 자신의 똑똑함으로 다른 사람들이 무식하다는 것이 드러나는 것을 똑똑하다고 그러지 않습니다. 정말 똑똑함과 지혜로움은 그가 가진 지식으로 다른 사람들이 유익을 보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성경을 열심히 공부하셔서 그 성경 지식이 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고 화평을 나누어주는 능력으로 발휘되도록 사셔야 하는 분들입니다. 마치 성전 미문에 앉아있던 앉은뱅이가 베드로의 사랑을 입고 그 베드로를 뒤에 가서 꼭 안아준 것처럼 그렇게 다른 이들에게 감사하고 따뜻한 존재가 되셔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자들이 그 은혜에 대한 반응으로 우리 예수님처럼 바로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서 공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섯 번째 가짜들의 특징은 “그들이 진리에 지속적으로 저항한다는 것”입니다.

진리에 저항한다는 말은 그들이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라고 말하면서도 진리인 성경을 전혀 읽지 않고 성경 말씀에 대한 가르침이나 설교 듣는 것을 지겨워하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은 그런 사람들은 절대 구원받은 사람이 아니라고 단호하게 잘라 말합니다.

(살후2:10)

9그 악한 자는 나타나서 사탄의 힘을 빌어 온갖 종류의 거짓된 기적과 표징과 놀라운 일들을 행할 것입니다.

10그리고 온갖 악랄한 속임수를 다 써서 사람들을 멸망시킬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진리를 받아들이지도 않고 사랑하지도 않기 때문에 구원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 주일에 “진리“히브리어로는 ”아만“ 헬라어로는 ”알레떼이아“에 대해 공부를 했지요? 그 진리를 보는 세 가지 관점 중에서 ”윤리적 참“의 개념을 갖고 그 진리가 참 하나님 자신이며 그 참 하나님을 가시적인 육신으로 설명해 주시러 오신 분이 예수님이시며 그 예수님에 대한 기록이 성경이라고 했지요? 그래서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이라고도 부르고 진리라고도 부르는 것이라 설명해 드렸습니다. 지금 데살로니가 후서 2장의 말씀은 그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배우고 읽는 것을 사랑하지도 않고 받아들이지도 않는 자들을 가리켜 ”구원을 얻지 못한 자들“이라고 명확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지금까지 제가 열거해 드린 가짜 확신을 가진 사람들의 특징이 혹시 여러분의 삶 속에서도 나타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이렇게 가짜 확신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에 관해 살펴보았습니다. 가짜 확신은 아예 확신이 없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입니다.

존 번연의 천로 역정에 보면 주인공 “크리스천“이라는 사람이 멸망의 도시를 떠나서 순례를 떠납니다. 그는 갈 곳을 몰라 이리 저리 헤매다가 ”전도자“라는 사람을 만나서 드디어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알게 됩니다. 그 ”크리스천“은 그 전도자가 가리키는 작은 문을 통과하여 좁은 길로 순례를 합니다. 그는 그의 동료인 ”소망“이라는 사람과 함께 강 하나를 건너게 됩니다. 그 강은 ”죽음”이라는 강입니다. 크리스천은 갑자기 자기가 과거에 저지른 죄들이 생각났습니다. 그리고는 큰 혼돈과 공포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나 이내 마음의 평안을 찾고 그의 동료인 소망과 함께 그 강을 건넙니다. 그런데 그 크리스천이 강을 건너기 전에 “무지”라는 사람을 만납니다. 그 “무지”라는 사람도 천성을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무지”라는 사람은 너무 게을렀습니다. 천성을 향해 가기는 가는데 누구보다 천천히 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무지는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을 하는 다른 사람들과 순례 여행을 하기보다는 자기 혼자 하기를 더 좋아했습니다.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가면 게으름을 피울 수도 없고 너무 불편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무지”도 자기 동료인 “헛된 소망”이라는 사람과 함께 역시 그 죽음의 강을 건넜습니다. 그 “무지”와 “헛된 소망”은 그 강 앞에서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당당하게 그 죽음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렇게 크리스천과 소망이 강을 건너서 그 죽음의 강물에서 나올 때는 천성 문이 활짝 열리고 빛나는 옷을 입고 있는 사람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는 말로만 들었던 위대한 신앙의 선배들이 모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무지와 헛된 소망이 죽음의 강에서 나올 때 그들을 맞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그 무지와 헛된 소망은 그 강 너머에 있는 문이 자신을 향해 활짝 열릴 것이라는 것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고 그 천성의 문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그런데 그 문은 크리스찬과 소망에게 열렸던 것처럼 열리지 않았습니다. 무지와 헛된 소망은 그 천성 문을 힘껏 두드렸습니다. 누군가 그 성 위에서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하고 소리를 쳤습니다.

무지가 외칩니다. “이 문을 좀 열어주세요, 저는 이곳에 들어가야 할 사람입니다” 그 때 그들을 내려다보던 분이 무지와 헛된 소망에게 두 천사를 내려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 무지와 헛된 소망을 꽁꽁 묶어서 그 영광의 문과는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언덕 곁의 한쪽 문으로 던졌습니다. 그리고는 그 검은 문을 열고 그 무지와 헛된 소망을 힘껏 그 아래로 던져 버렸습니다. 그 때 크리스천이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심지어 하늘 문에서도 지옥으로 통하는 길이 있음을 보았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하늘의 영광의 문으로 가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순례자라고도 하고 소망과 확신도 있다고 자신하는데 하늘나라 입구에서 붙들려 영원한 지옥으로 던져질 사람들이 아주 많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우리가 그 헛된 확신에 거하지 않고 진짜 확실한 소망과 함께 천성의 문을 통과할 수 있습니까? 아니 우리가 이 땅에서 온전한 확신을 할 수 있긴 있는 것입니까?

(요일5:13)

13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이 구절을 헬라어 원어에 맞게 좀 더 충실하게 번역을 하면 이렇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고 너희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고 확신하게 하기 위해서 이것을 썼다” 그러니까 요한일서만 잘 공부해도 우리는 확신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지요? 요한 일서의 기록 목적이 바로 확신이니까요.

(요20:31)

31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한은 요한복음의 기록 목적도 너희가 예수를 믿고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어차피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들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미 구원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불신자가 성경을 읽고 그 내용을 터득하고 이해해서 구원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구원받은 자들이 그 구원에 대해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늘나라의 비밀이 기록 된 것이 요한복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분명 우리는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벧후1:10)

10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하리라

베드로는 성도들에게 말합니다. “부르심과 택하심, 즉 구원을 더욱 굳게 확신하도록 노력하라“ 그러니까 분명 우리는 천로역정에 나오는 ”무지나 헛된 소망“ 같은 그런 사람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가짜 확신과 구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진짜 확신에 거할 수 있으며, 진짜 내가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는 바른 기초가 무엇이겠습니까?

조금 더 질문을 쉽게 바꿔 드리겠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죽음의 강을 건너서 하나님 앞에 섰을 때 하나님께서 천성 문 앞에서 “내가 왜 너를 여기에 들여보내야 하지?”라고 물으셨을 때 여러분은 뭐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그 때 만일 여러분의 대답이 “내가”로 시작이 되면 여러분은 망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고 확신할 때, 그 근거가 단 0.1%로 라도 내게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모두 가짜 확신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바른 인식과 하나님의 하신 일에 대한 올바른 통찰과 하나님의 약속은 진리라는 깨달음 속에서 확신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딤후1:12)

12이를 인하여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표준 새 번역)

그러므로 나는 이런 고난을 당하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나는 내가 믿는 분을 잘 알고 있고, 또 내가 맡은 것을 그분이 그 날까지 지켜 주실 수 있음을 확신합니다.

사도 바울의 확신의 근거가 뭐였습니까? 그가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고 바로 그 분이 끝까지 자신을 지켜줄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는 확신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이 얼마나 긍휼이 많으신 분이시며 그 분이 얼마나 사랑이 많으신 분이시며 얼마나 용서가 풍성한 분이신 지를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성경을 진지하게 연구하지 않고 자신의 구원을 확신한다는 것은 언어도단인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공부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성품을 알 수 없고 그 하나님의 성품을 알지 못하면 우리의 구원 확신의 기초를 자꾸 나와 나의 체험 속에서 찾게 되기 때문입니다.

(요17:3)

3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 그러한 성품을 지니고 계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역사적인 사건에 우리 구원 확신의 기초를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어떤 일을 하셨습니까?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인간으로 보내셨습니다.

(딤전1:15)

15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그분은 구약에 예언된 대로 실제로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나셨습니다.

(마2:1)

1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그리고 나사렛에서 자라셨고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골고다의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마27:26-50)

26그래서 빌라도는 바라바는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한 뒤에, 십자가에 처형하라고 넘겨주었다.

27그 때에 총독의 군인들이 예수를 총독 관저로 끌고 들어가서, 온 부대를 다 그의 앞에 불러 모았다.

28그리고 예수의 옷을 벗기고, 주홍색 옷을 입힌 다음에,

29가시로 면류관을 엮어 머리에 씌우고, 오른손에 갈대를 들게 하였다. 그리고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유대인의 왕 만세!" 하면서 희롱하였다.

30또 그에게 침을 뱉고, 갈대를 빼앗아서 머리를 쳤다.

31이렇게 희롱한 다음에, 그들은 주홍색 옷을 벗기고, 그의 옷을 도로 입혔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그를 끌고 나갔다.

32그들은 나가다가, 시몬이라는 구레네 사람을 만나서, 강제로 예수의 십자가를 지고 가게 하였다.

33그들은 골고다 곧 '해골 곳'이라는 곳에 이르러서,

34포도주에 쓸개를 타서, 예수께 드려서 마시게 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 맛을 보시고는, 마시려고 하지 않으셨다.

35그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고 나서, 제비를 뽑아서, 그의 옷을 나누어 가진 다음

36거기에 앉아서, 그를 지키고 있었다.

37그의 머리 위에는 "유대인의 왕 예수" 라고 적은 죄패를 붙였다.

38그 때에 강도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는데, 하나는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달렸다.

39지나가는 사람들이 머리를 흔들면서, 예수를 모욕하며

40말하기를 "성전을 허물고 사흘 만에 짓겠다던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너나 구원하여라.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아라" 하였다.

41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율법학자들과 장로들과 함께 조롱하면서 말하였다.

42"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나, 자기는 구원하지 못하는구나! 그가 이스라엘 왕이시니,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오시라지. 그러면 우리가 그를 믿을 터인데!

43그가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으니까, 그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으니, 하나님이 원하시면, 이제 그를 구원하시겠지."

44함께 십자가에 달린 강도들도 마찬가지로 예수를 욕하였다.

45낮 열두 시부터 어둠이 온 땅을 덮어서, 오후 세 시까지 계속되었다.

46세 시쯤에 예수께서 큰소리로 부르짖어 말씀하시기를 "엘리 엘리 레마 사박다니?" 하셨다. 그것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 하는 뜻이다.

47거기에 서 있는 사람들 가운데 몇이 이 말을 듣고서 "이 사람이 엘리야를 부르고 있다" 하고 말하였다.

48그러자 그들 가운데서 한 사람이 곧 달려가서 해면을 가져다가, 신 포도주에 적셔, 갈대에 꿰어서, 그에게 마시게 하였다.

49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어디 엘리야가 와서, 그를 구하여 주나 두고 봅시다" 하고 말하였다.

50예수께서는 다시 큰소리로 외치시고 나서, 숨을 거두셨다.

그리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고 모든 것을 다 이루시고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마28:1-6)

1안식일이 지나고, 이레의 첫날 동틀 무렵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러 갔다.

2그런데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났다. 주의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 무덤에 다가와서, 그 돌을 굴려 내고, 그 돌 위에 앉았다.

3그 천사의 모습은 번개와 같았고, 그의 옷은 눈과 같이 희었다.

4지키는 사람들은 천사를 보고 무서워서 떨었고, 죽은 사람처럼 되었다.

5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하였다. "무서워하지 마십시오. 나는, 그대들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찾는 줄을 압니다.

6그는 여기에 계시지 않습니다. 그가 말씀하신 대로, 그는 살아나셨습니다. 와서 그가 누워 계시던 곳을 보십시오.

(행1:6-11)

6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7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

8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9이 말씀을 마치시고 저희 보는데서 올리워 가시니 구름이 저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더라

10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옷 입은 두 사람이 저희 곁에 서서

11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 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여러분 이 모든 기술들이 역사 적인 사실이라는 것을 믿으세요? 이 모든 것들이 신화나 설화가 아닌 역사적인 사실이기에 우리의 구원은 흔들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2,000년 전에 골고다 언덕 위에 실제로 십자가가 섰습니다. 지금 그 십자가를 다시 뽑아 버릴 수가 없습니다. 왜요? 이미 일어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그 십자가의 사건이 불변의 역사적 사실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십자가를 근거로 구원을 확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감정이나 체험은 언제나 변합니다. 체험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습니다. 그런 신비적인 체험을 한 것을 가지고 “난 구원받은 게 확실해” 이렇게 구원 확신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 체험이 없어지면 그 다음부터는 붙잡을 것이 없습니다. 우리의 감정이나 기분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기분이 holy 할 때는 구원받은 것 같다가 남편이나 아내와 다투었다거나 중독 된 죄를 끊지 못하고 또 저질러 버렸다거나 할 때는 “내가 진짜 구원받은 것이 맞나?” 이렇게 우리의 기분은 조변석개합니다.

우리는 실제로 하나님께서 이 역사 속에서 행하신 일과 사건을 구원 확신의 근거로 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워터게이트 사건에 대한 거짓 증언으로 닉슨 대통령이 물러나는 사건이 있었지요? 그 때 그 닉슨의 증언을 사실로 조작하는데 미국 최고의 천재 변호사들이 붙어서 그 사건을 조작했습니다. 그 때 그 보좌관들의 리더가 챨스 콜슨이었습니다. 하지만 단 18일 만에 그 사건은 거짓으로 들통이 났습니다. 그들은 모두 감옥에 가게 되었지요. 챨스 콜슨은 그 일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납니다. 챨스 콜슨이 그의 책 Loving God라는 책에서 왜 자기가 그렇게 그 사건을 진실로 조작하려고 했는지에 대해 자세하게 기록을 합니다.

그는 닉슨의 보좌관으로 있으면서 미국 내 어떤 공무원의 임명권과 해임 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언제든지 전용 여객기를 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세계 어느 곳에 가서도 자기 전용 전화를 즉시 설치할 수 있었습니다. 그 시절은 핸드폰이 없던 시절이니 대단한 것이죠. 그리고 그가 움직일 수 있는 국가 예산이 수억 불에 달했습니다. 웬만한 나라의 대통령보다 훨씬 큰 권력을 누리고 있었기 때문에 찰스 콜슨과 그 천재 변호사들은 목숨 걸고 닉슨을 보호하려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거짓은 18일을 넘기기가 힘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가 이야기하기를 “만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과 복음이 거짓이라면 2,000년 전에 유대 땅에 있는 보잘것없는 어부들이 그 사건을 조작해 낸 것이라면 그 사건들이 2,000년 동안 이렇게 사람들을 변화시켜가며 진리로 내려올 수 있었겠는가?”

“만일 그 사건들이 모두 거짓이었다면 지금의 나처럼 엄청난 이권이 달려 있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그 사건을 들먹이는 것만으로도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시대에 그들이 그 거짓된 사실들을 진리로 우겨 댈 이유가 무엇인가?” “그리고 그 사실들은 어떻게 이렇게 2,000년 동안 진리가 되어 내려올 수 있었겠는가?” “부활은 사실이다”

맞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은 모두 사실입니다. 그리고 성경에 기록된 모든 사건들은 실제로 일어난 역사적 사건들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몇 명의 어부들이 그 진리를 오늘 날까지 이렇게 지켜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주의해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제가 지금 말씀드린 이 모든 것들을 지식 적으로 이미 다 알고 계신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그렇지만 제가 “하나님께서 이 역사 속에서 행하신 일”을 구원 확신의 근거로 삼으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그런 지적 동의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역사적 사실에 자신을 의탁하는 것까지를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은 귀신들도 압니다.

(눅4:41)

41여러 사람에게서 귀신들이 나가며 소리질러 가로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꾸짖으사 저희의 말함을 허락지 아니하시니 이는 자기를 그리스도인 줄 앎이러라

(약2:19)

19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요2:23-24)

23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 이름을 믿었으나

24예수는 그 몸을 저희에게 의탁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우리가 어떤 역사적 사실을 인지했다고 해서 그 것이 곧 구원으로 연결이 되지는 않습니다.

제가 조지 워싱턴의 전기를 읽고 조지 워싱턴의 생애와 업적과 죽음에 대해 많이 알지만 그 조지 워싱턴이 저에게 해 줄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저는 그를 의지하지 않고 그 또한 저에게 무엇을 해 줄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에 나의 전 존재를 의탁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이 역사 속에서 행하신 역사적 사실들을 알고 그 사실에 나를 의탁하고 있다면 우리는 바른 확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약속들을 우리 구원 확신의 근거로 삼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아주 많은 약속들을 하셨습니다.

(요3:16-17)

16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7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요5:24)

24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행2:21)

21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

(행16:31)

31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

(요11:25-26)

25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성경에는 이렇게 수많은 하나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 약속을 믿으십니까?

(벧후1:4)

4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삼하7:28-29)

28주 여호와여 오직 주는 하나님이시며 말씀이 참되시니이다 주께서 이 좋은 것으로 종에게 허락하셨사오니

29이제 청컨대 종의 집에 복을 주사 주 앞에 영원히 있게 하옵소서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사오니 주의 은혜로(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종의 집이 영원히 복을 받게 하옵소서 하니라

하나님은 반드시 그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구원을 확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정리를 해 보겠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구원을 확신할 수 있습니까?

첫 번째로 하나님은 사랑과 온유와 긍휼과 오래 참으심과 용서와 자비하심과 공의의 하나님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두 번째로 그러한 속성을 지니고 계신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의 구원을 위해서 인간의 역사 속에서 행하신 일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고 그 일에 우리를 의탁하고 있는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하나님은 어떤 약속들을 하셨으며 그 하나님은 반드시 그 약속들을 지켜내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믿고 계십니까? 그러면 여러분은 구원받으신 분이 맞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은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성경 안에 모두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성품을 가지고 계신지 그리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어떤 일을 하셨는지, 그리고 그 분께서 어떻게 인간의 역사를 경륜해 가시는지, 그리고 그 분은 우리에게 어떤 약속을 하셨는지가 아주 자세하게 기록된 것이 성경입니다.

그러니까 구원의 확신을 자신 있게 가지고 있는 사람일수록 성경을 더욱 궁금해 합니다. 오직 성경 안에만 자신의 구원에 대한 설명이 나와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성경 앞에 더욱 더 진지해 집니다.

(딤후3:15-17)

15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16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오직 성경만이 구원받은 성도들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만들 수 있고 심지어 선한 일을 행할 수 있게 하는 힘도 그 성경에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구원을 받은 사람들은 말씀으로 구원을 받은 것이고 말씀에 의해 성화 되어져 가기 때문에 당연히 구원받은 사람들은 말씀을 사모하며 궁금해 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신30:11-14)

11내가 오늘날 네게 명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

12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올라가서 그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할꼬 할 것이 아니요

13이것이 바다밖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바다를 건너가서 그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할꼬 할 것도 아니라

14오직 그 말씀이 네게 심히 가까와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보세요, 구원받은 사람들은 이미 그 진리이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안에 들어와 계시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말씀을 사모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울러 우리는 말씀을 통해 그 말씀만이 우리가 풀어야 할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도 아는 사람들입니다.

(눅1:37)

37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살전2:13)

13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

이렇게 말씀 속에 능력이 있고 그 능력이 자신의 구원을 더욱 더 확고하고 확실하게 그리고 견고히 깨닫게 해 준다는 것을 아는데 어떻게 구원의 확신을 사모하는 사람들이 성경을 등한시하겠습니까?

자신의 구원과 성화에 관심이 있고 자신의 불가능함도 아는 사람이 그 능력의 말씀을 사모하지 않는다는 것은 언어도단입니다.

이렇게 여러분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만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해서 말씀드리지만 다른 체험이나 여러분의 기분이나 감정, 종교 행위- 이런 것으로 확신을 가지시면 안 됩니다.

해리 아이언 사이드 목사님이 시카고 무디 메모리얼 교회에 시무하실 때 어떤 노인 한 분이 찾아오셨답니다. 그 노인은 평생 구원 확신에 대해 갈등을 하신 분이었습니다. 그 분은 자신의 구원 확신의 증거를 오랜 세월 찾아왔었는데 아직도 그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어떻게 해야 내가 구원을 받았다는 증거를 찾을 수 있냐고” 목사님께 자문을 구했습니다.

그 때 해리 아이언사이드 목사님께서 그 노인에게 물었습니다.

“어떤 증거를 원하십니까?“ 아이언사이드 목사님의 물음에 그 노인은 ”뭔가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증거를 찾기 원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아이언사이드 목사님께서 다시 물으셨습니다. “그렇다면 만약 천사가 나타나서 ‘당신은 구원 받은 사람이 맞습니다.‘라고 말해주면 당신은 당신의 구원을 확신하시겠습니까?” 그 노인이 대답했습니다. “그럼요, 천사가 나타나서 나의 구원을 말해 준다면 그건 틀림이 없을 테니까요” 아이언 사이드 목사님이 다시 물으셨습니다. “그런데 만일 당신이 죽기 바로 직전에 사탄이 나타나서 “그 때 그 천사가 바로 나였다“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분명 성경은 사탄이 광명 한 천사로 나타나서 우리를 미혹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 천사로 가장한 사탄에게 속아 당신이 평생 구원받은 줄 착각하고 살다가 죽음의 강을 건널 때 그게 아닌 줄 알게 되었다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그 노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아이언 사이드 목사님께서 계속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천사의 음성보다도 훨씬 더 믿을 만하고 더 권위가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게 바로 성경입니다. 이 성경에 이렇게도 명확하게 우리의 구원에 대한 비밀이 자세하게 기록이 되어 있는데 왜 엉뚱한 곳을 찾아다니며 당신의 구원을 확인 받으려 하십니까?” 정확한 지적입니다.

심지어 어떤 분들은 점쟁이한테 점 보러 갔다가 “당신이 모시는 분과 내가 모시는 분이 달라서 점괘가 안 나온다”는 그 말 한마디 듣고 “와 난 정말 구원받은 사람이 맞아” 그렇게 확신하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제가 아는 목사님 어머님께서 점쟁이한테 그런 기쁜 소식을 듣고 자기가 속해 있던 성가대에 가서 그 이야기를 간증했더니 그 다음 날 그 성가대 대원들 전부 그 점쟁이 집에서 친목 계 했다는 거 아닙니까? 구원의 확신이 없으니까 점쟁이한테라도 가서 자기가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확인 받고 싶은 거예요.

아닙니다. 우리는 오직 성경을 통해서, 그리고 말씀을 깨닫고 이해시켜 주시는 성령 하나님의 내적인 조명을 통해서만 구원을 확신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음 주에 계속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