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목사/에배소서

(71) 세월을 아껴서 해야 할 일(IV) (엡5:15-18)

은바리라이프 2013. 10. 5. 12:35

(71) 세월을 아껴서 해야 할 일(IV)




(엡5:15-18)

15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16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17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18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우리가 지금 몇 주째 우리 성도가 세월을 아껴서 해야 할 일에 대해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우리 성도는 구원에 관한, 영생에 관한 것에만 집중을 하고 공부를 해야 함을 공부했습니다. 그럼 이제 마지막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특징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함께 보겠습니다.

자기 자신에게 이러한 특징들이 나타나는지 잘 확인해 보세요.

첫 번째로 구원받은 사람들은 다른 신자들과 그리스도인의 삶을 친밀하게 나누게 됩니다.



(요일1:6-7)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이거니와

7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빛 가운데 행하는 구원받은 사람들은 반드시 서로 사귐이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사귐”“코이노니아”“교제, 자선, 우정, 함께 나누다“이런 뜻입니다.

초대 교회 때 모든 교회가 자기 가진 것을 다 내 놓고 유무상통했던 것 기억나시죠?

우리가 교회가 무엇인지 알고 우리가 정말 한 지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성도라면 우리에게는 당연히 그런 우정과 나눔과 자선의 사귐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고후8:1-5)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서 마케도니아 여러 교회에 베푸신 은혜를 여러분에게 알리려고 합니다.

2그들은 큰 환난의 시련을 겪으면서도 기쁨이 넘치고, 극심한 가난에 쪼들리면서도 넉넉한 마음으로 남에게 베풀었습니다.

3내가 증언합니다. 그들은, 힘이 닿는 대로 구제하였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힘에 지나도록 자원해서 하였습니다.

4그들은, 성도들을 구제하는 특전에 동참하게 해 달라고, 우리에게 간절히 청하였습니다.

5그들은, 우리가 기대한 이상으로, 먼저 자기를 주님께 드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에게 바쳤습니다.


그리스 지방을 둘로 나누어서 윗 쪽 지역을 마게도냐라고 하고 남쪽 지역을 아가야, 혹은 헬라라고 부르지요. 그 마게도냐 지역에는 바울이 2차 3차전도 여행 때 세운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같은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 지역 교인들은 아주 가난한 사람들이 대 부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교회가 핍박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다는 소식을 듣고 이 마게도냐 교회 교인들이 평생 본 적도 없는 예루살렘 교회 교인들을 위해 자기 소유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내 놓았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 형제들의 구제에 동참하게 해 달라고 통 사정을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운명 공동체인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멤버 누구와도 여러분은 바로 그러한 사귐을 가져야 하는 분들입니다.


그 사귐은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하고만 나누는 사귐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정말 그러한 교회의 교제가 있습니까?

그런데 예수 믿는다는 사람들이 정작 고민이 있으면 고등학교 동창하고 소주 한잔하면서 이야기는 할지언정 자기 교회 교인들하고는 절대 상의 안 합니다. 왜 그렇지요? 상대방에게 신뢰가 안 가기 때문입니다. 내가 보기에는 그 상대방도 작은 일 하나 가지고도 해결하지 못하고 쩔쩔 매고 있는데 나의 문제들을 풀어놓아 봤자 소문만 나지 절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들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내가 어려울 때 남에게 도움을 받아 본 기억이 없기 때문에 교회 안에 어려운 일이 생겨도 누구를 도울 줄 모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안에서 하나가 되었다고 입으로는 떠드는데 여전히 각개 전투를 하고 있습니다.이건 우리 성도들이 총체적으로 회개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 스스로가 그렇게 교회 안의 불신과 괴리를 가져오게 한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교회 안에서 형제자매들과 함께 말씀과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통찰력을 나누기를 즐기고 또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자라며, 그리스도와 더욱 가까워지고 더욱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삶을 살기 위하여, 다른 그리스도인들에게 적극적으로 배우기를 원하고 있다면 그리고 다른 형제자매들의 아픔과 고통이 여러분의 아픔과 고통으로 다가온다면 여러분은 구원받은 사람 맞습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그러한 교제를 통해 천국의 삶을 미리 맛보게 됩니다. “아 천국에서 우리는 이렇게 아름다운 사귐 속에서 살게 되는 것이구나.”하고 경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짜 구원을 받은 사람들은 다른 세상 사람들과의 교제보다는 교회와의 교제를 사모하고 거기에서 행복을 느낍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백성들은 “교회”라는 무리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는 개별 적으로 존재할 수 없고 함께 가야만 하는 운명 공동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 됨을 방해하고 오히려 분열과 다툼을 조장하는 사람들은 정말 교회가 뭔지를 모르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교회는 반드시 그들의 삶 속에서 바른 교제가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요일3:14-15)

14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15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우리가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무엇으로 알게 된다고 합니까? “형제를 사랑하는 것”으로 구원받은 사람인지 아닌지의 여부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형제들 미워하지 마세요. 만일 여러분이 계속해서 그렇게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을 놓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구원받은 사람 아닐지 모릅니다. 그렇게 누군가를 계속 미워하는 사람은 살인하는 자라고 성경이 이렇게 명확하게 진술하고 있지 않습니까? 심지어 그 사람은 영생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무서운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사랑해야 할 대상은 여러분에게 잘해 주는 사람만이 아닙니다. 나에게 잘 해주는 사람만 사랑하는 것은 죄인들도 그렇게 할 수 있다지 않습니까?



(눅6:31-33)

31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32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뇨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느니라

33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를 선대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뇨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


사도 바울은 성도들의 사귐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롬12:9-16)

9사랑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10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15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

16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 높은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말라


우는 사람들과 함께 울어주고 즐거운 사람들의 즐거움을 함께 기뻐해 주세요. 그리고 16절의 말씀처럼 다른 사람들이 나를 “잘난 사람”으로 평가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내가 지혜 있고 똑똑한 사람이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지 마세요. 그건 형제 사이의 균열만을 초래할 뿐입니다.


겸손하세요. 제발 잘난 척만은 하지 마세요. 정말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자신을 희생해서 남의 기쁨을 위해 살게 됩니다. 도널드 휘트니 목사님께서 그 분의 저서에서 자기 교회의 어떤 집사님 자랑을 하신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집사님은 남을 섬기는 것을 기쁨으로 삼는 분이셨답니다. 그 집사님은 교회 안에 홀로 사는 어르신들이나 바쁜 홀어머니들의 집에 예고도 없이 잔디 깎는 기계를 들고 나타나서 지저분한 잔디를 말끔히 깎아 놓고는 금방 사라지는 그런 분이셨답니다. 한 번은 그 분이 직장에서 어려움을 당하고 있었고 그 어려움 때문에 집도 이사를 하게 되는 등 아주 힘든 상황이었는데도 그 분은 여전히 잔디를 깎는 기계를 들고 나타나서 몰래 힘든 교인들 집의 잔디를 깎아 주고 가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성도는 종종 자기의 특권이나 안락을 포기하면서 다른 이들을 섬기는 아름다운 마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기 아버지와 그 아버지의 자녀들인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이 이 세상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 그러한 모습이 보인다면 여러분은 구원받은 분이 확실합니다.

두 번째로 구원을 받은 사람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깊이 깨닫는 사람입니다.



(요일1:8-10)

8만일 우리가 죄 없다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9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10만일 우리가 범죄 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여러분은 이 부분을 잘 이해하셔야 합니다. 거듭난 사람들은 이제 죄가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 죄는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시는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구원을 받은 나의 행위 속에 여전히 그 죄의 잔재가 남아 있음을 항상 인식하는 것을 “죄에 대한 인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조금 이해하시기 쉽게 설명을 해 드리면 죄의 색깔을 초록이라고 가정해 보자고요. 나는 이제 죄에서 해방되었고 죄와는 상관없는 자가 되었다는 것을 성경에서 배웠음에도 내가 나의 행위를 볼 때 나의 손끝과 발끝에서 늘 초록색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는 것을 보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거듭난 하나님의 백성들은 자기들이 최선을 다하고 헌신적으로 섬길 때도 자신의 마음속에 이기적인 태도가 있다는 것을 알아챕니다. 심지어 그리스도를 닮은 행동을 할 때도 자신의 생각은 죄악 된 것이라는 것을 인식합니다. 겉으로는 선행을 행하며 빛 된 삶을 살지만 내면에는 여전히 죄의 어두움이 깔려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게 바로 죄에 대한 인식입니다.


그러니까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성도들은 이제 그 죄가 무엇인지를 인식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그 자신의 삶 속에 남아있는 죄의 속성과 잔재에 괴로워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비록 그것이 아주 작은 먼지 같은 더러움이라 할지라도 성도는 그 작은 것 안에서 죄의 무서움과 더러움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이 어떤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을 한 뒤에 그 행동을 보시고 실망하실 하나님 아버지를 생각하며 몹시 슬퍼하며 부끄러워하며 마음 아파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아직 그리스도인이 아닌 것입니다. 죄 사함을 경험해본 사람만이 죄를 심각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딤전1:15)

15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디모데서는 사도 바울이 말년에 로마 감옥에서 쓴 편지입니다. 그 노사도가 자신을 가리켜 “죄인 중의 괴수”라고 부릅니다. 그 말 “프로토스 에이미 에고”는 현재형입니다.

“나는 과거에 죄인 중의 괴수였다“가 아닙니다. ”나는 지금 죄인 주의 괴수이다“입니다.

하나님은 너무 순결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우리의 작은 티도 견딜 수 없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죄에 대한 인식이라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구원받은 사람은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 노력합니다.

성공과 실패는 이차적인 문제입니다. 내가 비록 자주 실패할지라도 내 삶의 전 영역에 있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 위해 그 분의 말씀에 순종하려 노력을 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구원받으신 분이 맞습니다.



(요일2:3)

3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4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5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케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저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성도들은 그들 속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성령 하나님이 맺으시는 열매가 반드시 맺히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요일3:21-24)

21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22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23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24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는 주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삶을 돌아 볼 때 여러분 안에 계신 성령이 맺으시는 열매를 발견하곤 하십니까? 고단하고 곤고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희락과 기쁨이 있으십니까?

눈을 감으면 절로 눈물이 나는 그런 힘든 처지에서도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인내와 사랑과 평화의 열매가 나타나고 있습니까?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만을 떠올리고 그 분과 함께 할 그 영원한 천국을 생각하면 어느새 그 아픔들이 그 소망 속으로 녹아 들어가 버립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분명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입니다.

네 번째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은 세상의 원리와 방식을 싫어하게 됩니다.

(요일2:15-17)

15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16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17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벧전4:1-4)

1그리스도는 육신으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여러분도 같은 마음으로 무장하십시오. 육신으로 고난을 받은 사람은 이미 죄와 인연을 끊은 것입니다.

2이제부터는 육신의 남은 때를 인간의 욕정대로 살지 말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3여러분은 지난날에, 이방 사람들이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하였으니, 곧 방탕과 정욕과 술 취함과 환락과 연회와 무분별한 우상 숭배에 빠져서 살았습니다. 그것은 지나간 때로 충분합니다.

4그들은, 여러분이 자기들과 같이 그런 지나친 방종에 빠지지 않는 것을 이상히 여기면서, 여러분을 비방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 세상만을 알고 있고 이 세상 것만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영원한 하늘의 것과 하나님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그 하늘의 것을 향한 우리의 마음을 빼앗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거듭난 사람들은 점점 이 세상의 원리와 방법과 힘 속에서 불편함을 느끼게 됩니다.

다섯 번째로 거듭난 사람들은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며 그 분과 같이 되기를 열망합니다.

(요일3:2-3)

2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3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거듭난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겠다는 그 분의 약속을 성취할 날을 간절히 기다립니다. 왜요? 이제 이 땅의 원리와 이 땅의 보물들과 이 땅의 힘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은 이제 그 새 하늘과 새 땅의 삶에 대해서 아주 궁금해 합니다. 마치 결혼식 날을 기다리는 신부와 같이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에 속한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서 함께 하게 될 날을 기대감을 가지고 기다립니다. 성도들은 여전히 죄에 대해 자유롭지 못한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이러한 죄와 고통과 슬픔과 질병으로부터 영원히 자유롭게 되는 그 곳의 삶을 기다리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과 같이 되어서 영광스러운 빛난 옷을 입고 있는 자신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자주 그 하늘나라의 삶을 기대 속에 묵상하십니까?

여섯 번째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죄보다는 의를 더 많이 행하게 됩니다.

(요일3:7-10)

7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8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9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

10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나나니 무릇 의를 행치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여기서 “의를 행한다.“라는 단어는 현재형입니다. 헬라어의 현재형은 진행적이며 습관적인 행동을 나타낼 때 쓴다고 했지요? 그러니까 성도들은 의로운 행위를 습관적으로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성도는 죄를 전혀 짓지 않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습관적으로 의를 행하게 된다는 말은 죄를 짓되 전혀 그 죄에 무감각한 사람처럼 습관적으로 죄를 짓지 않고 오히려 실수는 할지언정 의로운 삶에 대한 열망이 끊임없이 솟아나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의로운 삶이 어떤 삶이라고 했지요? “의”“짜다크” 내가 하나님과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그 관계가 요구하는 책임과 의무를 성실하게 수행하는 삶을 “의로운 삶”이라고 했지요?

우리가 그 삶을 추구하고 있느냐 이 말입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지난 수년간의 삶을 돌아 볼 때 그러한 의로운 삶을 더 많이 추구하고 죄 된 것을 덜 행하는 쪽으로 습관이 변했습니까? 이전보다 하나님께서 옳다고 하시고,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일을 더 많이 행하려고 나의 삶이 변해가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구원받은 분이 맞을 것입니다.

일곱 번째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은 진리의 말씀이 선포될 때 감사함과 기쁨으로 받아들입니다.

(요일4:5-6)

5저희는 세상에 속한 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저희 말을 듣느니라

6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

오순절 날 성령이 강림하시고 최초의 예루살렘 교회가 탄생했습니다. 그 교회가 맨 처음으로 한 활동과 그들이 느꼈던 열망이 뭡니까?

(행2:42)

42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꺼이 배우고 그 가르침에 따른 삶을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마4:4)

4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성도들은 자신들은 떡이 아닌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말씀이 바로 선포되어질 때 기쁨으로 받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삶으로 옮기는 노력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 이런 것들이 간략하게 살펴 본 구원을 받은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지금까지 이야기를 들으시고도 내가 진짜 구원을 받은 사람인지 아닌지 헛갈리는 분들이 계시지요? 어떤 이야기를 들으면 구원을 받은 사람 같기도 하고 어떤 이야기를 들으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러신 분들이 많으실 것입니다. “이 3주간에 걸친 구원 확신에 대한 강의를 듣고 나는 더 많이 고민하게 되었다“ ”진짜 내가 구원받은 사람인지 아닌지 더 많이 고민하게 되었다” 이런 분들 한번 손들어 보세요.

대부분 그런 고민을 심각하게 해 보신 분들은 구원을 받으셨을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구원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절대 자신의 구원의 문제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구원을 받은 사람임에도 그렇게 구원에 대한 확신이 수시로 흔들리는가?

마지막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꾸 그 확신이 흔들리는 이유에 대해 살펴보고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로 구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꾸 자기의 구원이 불안하게 느껴지는 사람들은 자기가 알고 있는 자기의 죄를 다루지 않을 때 그런 불안함에 빠지게 됩니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죄라고 보여주신 것을 지속해서 범하게 될 때 그리고 우리 양심이 계속 가책을 주는데도 그 죄에 계속 거할 때 우리는 구원의 확신을 잃게 됩니다.

(시66:18)

18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성도가 죄에 빠져 있을 때는 기도를 해도 하나님이 나와 아무 상관없는 분처럼 느껴지게 됩니다.

(사48:22)

22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

이 말씀은 불신자들에게 하신 말씀이지만 성도들에게도 적용이 되는 원리가 있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죄라고 보여주신 것을 자꾸 행하게 되면 우리에게서 평안과 확신이 금방 떠나가게 됩니다.

존 칼빈이 자기와 교리가 다른 세르비투스를 불태워 죽인 일이 있습니다. 화형을 시켜버린 것입니다. 그 때 칼빈이 그 일로 상당한 기간 자신의 교리는 물론 본인의 구원의 확신까지 흔들렸던 경험을 그 분의 강해 설교 집에 적어 놓고 있습니다. “내가 수호하고자 하는 교리가 무엇인가? 은혜와 사랑의 교리가 아닌가? 나는 그 사랑의 교리를 수호하고자 한 생명이 비명을 지르며 불 속에서 타 죽어 가는 모습을 통쾌하게 지켜보았다. 이것이 정말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한 성도의 모습이란 말인가?”

그 위대한 존 칼빈도 자신이 저지른 죄 앞에서, 비록 잠시였지만 자신의 구원에 대해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죄와 악에 거할 때 그 죄와 악은 스스로 자해 능력이 있고 파괴적인 힘을 갖고 있어서 우리의 영적 생명력을 파괴해 버립니다. 우리는 그 때 우리의 구원에 관해 확신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이 해서는 안 될 일을 하셨을 때 심히 마음이 괴롭고 구원에 관한 확신이 흔들리는 것을 경험해 보신 일이 있으실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 더러 죄를 멀리 하라고 권고하시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게으름으로 인해 구원의 확신을 잃을 수 있습니다.

시험이 코앞에 닥쳤을 때 공부는 해야 하는데 공부는 하기 싫고 게으름을 피우고 있을 때 얼마나 불안하던가요? 차라리 마음 다잡고 앉아서 공부를 하면 오히려 속이 편할 텐데 알면서도 게으름 때문에 마음 졸이면서도 그냥 뒹굴뒹굴 하지요. 그렇게 게으름에서 오는 불안함이 우리의 구원의 확신을 앗아갑니다.

여러분이 하루를 보내면서 어디에 어떻게 여러분의 시간을 쓰는지 한번 잘 기록해 보세요?

어디에 가장 많은 시간을 쓰세요? 잠자는데, TV 보는데, 자신의 배를 위해 일하는데, 밥 먹는데, 운동하는데 성경은 얼마나 보세요? 기도는 얼마나 하십니까? 내 시간을 쪼개서 누군가를 섬기기 위해 일부러 시간을 내 보신 적이 있으신 가요? 그러니까 걸핏하면 “진짜 내가 구원받은 사람 맞나?” 이런 불안함에 시달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작 부지런을 떨어야 할 곳에 시간을 쓰지 않고 나의 편안함과 나의 자랑을 위해서 안 해도 되는 것들에 시간들을 쓰기 때문에 구원의 확신이 수시로 흔들리는 것입니다.

(롬12:10-11)

10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11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여러분,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똑같이 24시간입니다. 그 동일한 시간 속에서 우리가 부지런을 떨기 위해서는 잠을 많이 줄이셔야 합니다. 잠은 4-5시간만 숙면을 하면 거뜬히 견딜 수 있습니다. 제가 그 정도 잡니다. 그 정도만 자도 사회생활 하는데 아무 지장 없습니다.

우리가 요즘 새벽에 사도행전을 공부하고 있는데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서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 아세요? 낮에 11시부터 4시까지 당시 사람들이 쉬던 시간에 두란노 서원에서 하루 다섯 시간씩 설교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 나머지 시간에는 열심히 일해서 자기 생활비를 벌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밤에는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또 설교를 했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잠은 언제 자요? 그렇게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주님 앞에서 열심히 살기 위해서 잠을 줄여가며 부지런을 떨었습니다.

(고후11:23-28)

23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군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24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25세 번 태 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26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27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28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이렇게 열심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았던 사도 바울의 입에서도 “오호라 나는 곤고한 몸이로다,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내랴” 라는 고백이 나왔습니다.

하물며 우리처럼 이렇게 신앙생활에 게으른 사람들은 어떠하겠습니까? 당연히 구원의 확신이 흔들릴 수밖에 없지요. 게으르지 마세요. 세월을 아끼십시오.

세 번째로 그리스도인들이 성숙되어져 갈수록 사탄은 그들을 의심과 미혹으로 점점 거센 공격을 해 오기 때문에 때때로 성도들이 구원의 확신을 놓치게 되는 것입니다.

마틴 루터나 스펄젼 같은 훌륭한 신앙의 선배들이 어떻게 그렇게 구원의 확신을 놓칠 수 있었는가? 바로 사탄의 공격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말씀 위에, 진리 위에 바로 서 있는 사람들은 이내 그 진리로 그 의심을 타파해 버릴 수가 있습니다.

(눅24:25-32)

25가라사대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26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27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32저희가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에 엠마오로 내려가는 제자들이 의심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그가 우리를 구속할 자라고 믿었노라, 그런데 사흘이 지났는데도 아무런 변화가 없다. 우리는 속은 거야”

그 때 예수님께서 어떻게 그들의 의심을 확신으로 바꿔 주십니까? 성경을 풀어 주심으로 그들을 다시 확신 속으로 끌고 들어가십니다. 성경을 풀어 주시니까 그들의 마음이 다시 뜨거워 졌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말씀 위에 바로 서게 되면 아무리 사탄이 의심의 화살로 공격을 해 온다 하더라도 우리는 이내 극복해 낼 수 있습니다.

네 번째로 성도들의 구원의 확신이 흔들리는 것은 그들이 고난이나 어려운 환경에 처해질 때 구원을 의심하게 됩니다.

우리는 때때로 삶이 너무 버거워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하고 외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우리 신앙의 선배들도 그러한 고통 속에서 하나님께 탄식을 했던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시102:1-7)

1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시고 나의 부르짖음을 주께 상달케 하소서

2나의 괴로운 날에 주의 얼굴을 내게 숨기지 마소서 주의 귀를 기울이사 내가 부르짖는 날에 속히 내게 응답하소서

3대저 내 날이 연기 같이 소멸하며 내 뼈가 냉과리같이 탔나이다

4내가 음식 먹기도 잊었음으로 내 마음이 풀 같이 쇠잔하였사오며

5나의 탄식 소리를 인하여 나의 살이 뼈에 붙었나이다

6나는 광야의 당아새 같고 황폐한 곳의 부엉이 같이 되었사오며

7내가 밤을 새우니 지붕 위에 외로운 참새 같으니이다

여러분도 이런 탄식 속에 떨어져 보신 적이 있으시지요?

예를 들어 깨어진 인간관계나 이루지 못한 꿈, 그리고 가족들의 사고나 죽음, 사업의 실패, 불임, 불행한 결혼생활 이런 것들이 우리 삶에 닥칠 때 우리는 종종 “하나님께서 나를 대적하고 계심에 틀림없어, 내가 진짜 그분의 자녀라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나에게 이런 일을 허락하시겠는가?” 이런 생각이 들것입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아니죠. 그건 정말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지 모르는 무지의 소치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시켜 선을 이루어 내시는 분이십니다. 심지어 사탄의 시험과 사탄의 공격까지도 이용하셔서 우리의 자녀 됨을 만들어 내시는 분이십니다.

욥을 고난 속으로 몰아넣은 것이 누구입니까? 사탄입니다. 그렇지만 그 사탄은 임의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공격할 수가 없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재가 아래 일어나는 것입니다.

욥이 기도합니다. “하나님 내가 도대체 뭐라고 이렇게 하나님이 침 삼킬 시간도 주시지 않고 괴롭히십니까? 저 좀 풀어 주세요.” 하나님이 안 놔주십니다. 하나님의 목적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안 놔주십니다.

바울이 몸에 병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다른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는데 피해가 막심합니다. 이 병 좀 낫게 해 주세요”

바울은 그 병을 사단의 가시라고 불렀지요? 바울은 그 병을 사단이 주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성도의 기도를 들으시고 사단의 공격에서 풀어주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라고 그 공격을 “은혜”라고 표현을 하십니다. 그리고는 죽을 때까지 안 고쳐 주셨습니다. 왜 그러셨나요? 사도 바울에게 유익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자고 할까봐, 삼층 천에 가서 하나님까지 만나고 온 사람이라 자칫 교만해 질까봐, 하나님께서 사단의 공격과 시험에 그대로 노출시켜 두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그러한 어려운 일들을 당하셨을 때 어디로 가셔야 합니까? “하나님 왜 나를 대적하세요?” 로 가셔야 합니까? 아니지요. “하나님 지금 저에게 무엇을 가르치시기 원하세요?”“제가 무엇을 끊어내야 하나요?” 이리고 가셔야지요. 그러한 어려운 일들 때문에 구원의 확신이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구원의 확신이 더욱 더 견고해 지셔야 지요. 히브리서 기자처럼 오히려 그 상황 속에서 적자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하시는 실력자들이 되십시오.

(히12:5-6)

5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6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스티븐 차녹이 말합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손아래 놓인 원숭이다” 정확한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거룩을 위해 사탄까지도 방법과 수단으로 사용하고 계신 분입니다.

그러니까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여러분의 구원의 확신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그게 사탄의 시험이라 할지라도 우리에게는 유익인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우리에게 때때로 고통의 시간을 허락하심으로 우리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닌 믿음으로 신앙의 길을 행하게 하기 위해서 눈에 보이는 것들을 쳐 버리시는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상황 속에서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만을 의지하는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우리를 훈련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형통할 때도 감정에 의해서 살지 않으며 흑암 중에서도 믿음으로 사는 것을 배우기를 원하십니다.

기도가 응답되거나 감동적인 예배를 드리거나 나의 모든 일이 잘 풀릴 때는 신실한 믿음을 갖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기도 응답이 오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도 우리가 기도하며, 우리의 순종에 하나님께서 전혀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일 때에도 순종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때때로 눈에 보이는 것들을 쳐보시기도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때에도 진리의 말씀 위에 굳게 서서 넉넉히 그 상황들 속에서도 감사와 찬양과 예배를 할 수 있는 실력자들로 자라나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그러한 상황 속에서 이런 찬양을 드렸습니다.

(시42:5)

5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우리는 이렇게 우리가 구원의 확신을 잃어버릴 수 있는 여러 가지 이유와 상황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여러분 중에서도 지금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서 확신을 잃어버리신 분이 계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세 주에 걸쳐서 공부하신 내용을 가지고 여러분이 어느 지점에서 그 확신을 잃어버리셨는지 정확하게 진단하십시오. 그리고 그리로 가셔서 그 문제를 해결하시고 다시 그 확신을 찾아오셔야 합니다.

천로 역정의 그 크리스천이 영광의 성에 들어갈 수 있다는 그 확신의 두루 마리를 잃어버렸을 때 곰곰이 생각하다가 자기가 잠자던 곳에서 잃어버렸다는 것을 확인하고 그리로 가서 그 확신을 다시 회복한 것을 기억하세요? 여러분이 어디에서, 어떤 상황에서 그 확신을 잃어버리셨는지 지금 확인하세요. 그리고 그리로 가십시오. 그리고 회복하세요.

여러분의 습관적인 죄 때문에 확신을 상실하셨다면 그리로 가셔서 그 죄를 잘라내고 회복을 하세요. 여러분의 게으름으로 여러분의 확신을 상실하셨다면 그리로 가셔서 그 게으름을 몰아내십시오. 여러분의 어려운 상황이 여러분의 확신을 빼앗아 가 버렸다면 얼른 그리로 가셔서 감사의 찬송으로 확신을 빼앗아 오십시오.

최종 정리를 하겠습니다. 제가 지금 여러분에게 여덟 가지 질문을 드릴 것입니다.

여러분이 정말 구원받은 분이 확실한지 아닌지 마음속으로 저의 질문에 답을 해 보세요.

(1)여러분은 “내가 구원받았다”는 확신을 갖기를 긴급하고 간절하게 원하십니까?

만일 그렇다면 여러분은 구원받은 분이 맞습니다. 구원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은 확신을 얻는 것은 긴급하지도 간절하지도 않습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그러한 간절한 열망과 긴박함이 있으시다면 여러분은 구원받으신 분이 맞습니다.

(2)여러분은 자신이 예수님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고 있는 데 대해 진정으로 슬퍼하십니까?

“주님 제가 주님보다 다른 세상 것을 더 사랑하는 것이 정말 싫습니다.” 이런 기도를 드려 본 적이 있으세요? 그렇다면 여러분은 구원받으신 분이 분명합니다. 오직 그리스도인만이 그런 고민을 할 수 있습니다.

(3)여러분은 종종 (비록 자주 실패한다 할지라도) 다시는 죄를 짓지 않고 언제나 순종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변화시켜 주십사 하고 간절하게 기도하십니까?

성령께서 내주 하시는 사람들은 때때로 불순종할 때가 있지만 그들은 죄의 영향력에서 해방되기를 간절하게 원합니다.

(4)여러분은 누군가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라고 물었을 때 즉각적으로 “구원”이라고 대답하실 수 있으세요? 그럼 여러분은 구원받으신 분이 확실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가족, 친구, 직업, 재산 그 어떤 것보다 자신의 구원이 중요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5)여러분은 부유하거나 유명하거나 매력적인 불신자의 환경과 나의 처지가 바뀌었으면 하고 진지하게 원한 적이 있습니까? 여러분이 내가 구원을 포기하고라도 예수를 믿지 않는 유명 연예인이나 복권 당첨자나 스포츠 영웅 같은 사람들과 나의 처지가 바뀐다면 언제든지 바꿀 수 있다고 자주 생각하신다면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간혹 그런 유혹을 받더라도 이내 소름끼치게 그런 유혹에 넘어간 자신을 질책하게 되어 있습니다.

(6)여러분은 여러분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면 기꺼이 그리고 습관적으로 하나님을 거스려 죄를 범할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렇게 의도적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더러운 세상의 유익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뻔뻔스럽게 침을 뱉을 수가 없습니다.

(6)여러분은 다음 두 그룹 중에서 어느 쪽을 진정으로 좋아하십니까?

(하나님, 그리스도, 성령, 은혜, 영광, 거룩, 하늘나라)

아니면 (돈, 쾌락, 명성, 집, 소유, 토지, 그리고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것)

(7)여러분은 부유하고 유명하고 매력적이며 운동도 잘하는 그런 사람보다 경건하고 거룩한 사람을 더 존경합니까? 아니면 세상 적인 힘을 소유한 사람을 더 존경하며 좋아합니까?

(8)여러분은 말씀 듣기, 성경 읽기, 혹은 예배가 없어도 만족하며 살 수 있으세요?

그리스도인들은 만일 누군가가 이러한 것들을 빼앗아 간다고 할 때 “당신이 원한다면 나의 모든 것을 빼앗아 가도 좋습니다. 그러나 이것들만은 안 됩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세월을 아껴서 바로 이러한 일들을 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만일 아직도 구원의 확신이 없으시다면 지금 바로 하나님 앞에 무릎 꿇어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그 확신을 회복시켜 달라고 간절히 간구하세요. 그게 바로 지금 여러분이 해야 할 일입니다. 절대 게으르지 마십시오. 세월을 아끼세요.

어떤 선비가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뱃사공이 자기를 별로 존경의 눈빛으로 봐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잘난 척을 좀 할 양으로 사공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여보시오, 사공 당신은 논어를 아십니까?” 사공이 대답합니다. “아니요, 저는 논어를 들어 본 적도 없습니다.” 선비가 옳다꾸나 하고 받아쳤습니다. “그럼 당신은 사 분의 일은 죽은 목숨이구려” 다시 선비가 물었습니다. “그럼 대학은 아시오?” 사공이 말했습니다. “아니요, 저는 대학이라는 것을 본 적도 없습니다.” “그럼 당신은 반은 죽은 목숨이구려”

이 선비가 의기양양해서 다시 물었습니다. “그럼 맹자는 들어 보셨소?” 사공이 대답을 했습니다. “아니요, 저는 맹자를 공부해 본적이 없습니다.” 선비가 말했습니다. “허허 그럼 당신은 살아 있어도 산 사람이 아니구려.”

그 때 그 나룻배의 바닥에서 물이 새기 시작했습니다. 사공이 노를 바삐 저어서 육지에 당도하려 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그 배에 물이 점점 차서 이제 곧 강에 빠지게 되었을 때에 사공이 덜덜 떨고 있는 선비에게 물었습니다. “선비님, 수영을 할 줄 아십니까?” 그 선비가 말했습니다. “난 수영을 할 줄 모르오.” 사공이 말했습니다. “어허 그럼 당신은 죽은 목숨이구려, 안녕히 가시오.”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떤 것을 소유하고 얼마만큼 높은 지위에 올라가느냐 하는 것은 우리의 죽음 앞에서 무용지물일 뿐입니다. 우리의 죽음 앞에서 우리가 내 놓아야 할 것은 “왜 내가 너를 이 천국에 들여 보내줘야 하지?” 라는 하나님의 질문에 정확한 대 답을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구원의 확신” 여러분은 여러분의 인생의 시간들을 그 확신을 좀 더 명확하게 여러분 마음속에 각인 하는 데에 쓰셔야 하는 것입니다.

그 확신이 점점 명확해 질수록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 속으로 한 발 한 발 깊이 들어 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전에 제가 아는 목사님께서 괌에 가족 여행을 떠나셨던 적이 있습니다. 원래 대한항공을 예약했었는데 갑자기 일이 생겨서 그 비행기 10분 뒤에 떠나는 아시아나로 급히 비행기를 바꿔 타셨습니다. 무사히 괌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호텔에서 잠을 자는데 한국에서 계속 전화가 오더랍니다. 그래서 확인해 보니 바로 그 목사님께서 타려고 했던 대한항공 여객기가 괌에서 추락을 해서 승객이 200명 이상 모두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던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순간 그 목사님과 가족들이 전부 얼음처럼 굳어 버렸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기적 같은 생환을 하게 되면 돌아다니면서 “하나님께서 나를 축복하셔서 이렇게 살려 주셨다고” 간증을 하고 다니지 않습니까? 그러면 그 비행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전부 하나님이 저주하신 분들입니까?

그 목사님 가족이 그 자리에 전부 무릎을 꿇고 앉아서 기도를 드렸답니다.

“하나님 저희는 지금 천국 가는 것이 훨씬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극적인 상황을 만드셔서 저희를 살려 놓으셨습니다. 그럼 저희는 지금부터 어떻게 무엇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 이제 저희 가족은 덤으로 사는 인생이오니 항상 매 순간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하며 살라고 이렇게 살려 놓으셨는지를 생각하며 행동하게 해 주세요“

여러분, 우리의 기도가 바로 이러한 기도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정말 죄와 허물로 죽었던 자들이었다는 것을 믿는다면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죽었던 나를 살려 놓으신 구원에 관한 확신이 있다면 우리도 이 목사님 가정처럼 “하나님 제가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입니까?”를 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그 구원이 얼마나 값진 것이며 그리고 그 값진 구원이 이미 나에게 임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보다 더 시급하고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지금 이 시간부터 그 걸 확인하는 데 여러분의 에너지를 쏟아 부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