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신학/문화신학

무신론자 호킹

은바리라이프 2012. 8. 20. 15:57

무신론자 호킹





호킹의 <위대한 설계>

무신론자들은 신이 없다고 하면서 끊임없이 신을 의식한다. 그건 ‘있는’ 신에 대한 자신들의 ‘없다는’ 주장의 관철을 위한 불가피한 행동양식일 것이다. 무신론이란 신의 존재에 대한 신앙을 부정하거나 아예 신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사상이다. 무신론은 신을 비롯한 모든 영적인 존재를 부정한다. ‘물리학 문제는 어떤 것이든 계산하기도 전에 풀어버린 천재’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도 무신론자다. 



호킹은 그의 저서 <위대한 설계>에서 우주는 중력에 의해서 만들어졌을 뿐 신이 창조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중력과 같은 법칙이 존재하므로, 우주는 무(無)로부터 스스로 창조될 수 있으며, 창조될 것이며, 자발적인 창조는 무 이상의 것이 존재하는 이유, 우주가 존재하고 인간이 존재하는 이유를 설명한다고 주장한다. 즉, 중력의 존재가 우주의 탄생인 빅뱅을 이끌었으므로 우주의 창조와 존재를 설명하는 데 있어 신이 개입할 영역이 없으며, 신이 개입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은, 물리학계가 전통적으로 신의 존재에 대해 중립적인 입장을 취해 온 것에 따르면 파격이라 할 수 있다. 호킹은 양자이론을 통해 우주가 하나의 역사가 아니라 모든 가능한 역사들, 즉 다중우주(multiverse)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본다. 우리가 보는 우주는 다수의 우주들 중의 하나에 불과하며, 그것들은 무에서 자연발생했다는 것이다.




모순에 빠진 호킹

호킹은 플라톤과 뉴턴과 아인슈타인을 넘어 자연의 4가지 힘과 숱한 물리적 상수들의 값을 종합적으로 설명하는 단일한 이론의 모델로 자신의 M이론(M-theory)을 내세우고 있다. 자연의 4가지 힘이란 중력(만유인력에서 나타나는 힘) 전자기력(+전하와 -마이너스 전하가 끌어당길 때 나타나는 힘) 강력(물질의 최소 입자중의 하나인 쿼크들이 서로 끌어당겨 원자핵이 존재할 수 있게 하는 힘) 약력(중성자가 자연 붕괴하는 힘)을 말한다.


호킹은 M이론을 통상적 의미의 이론이 아니라 다양한 이론들의 집합을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이것은 다분히 과학철학적 시도인데, 아이러니한 것은 호킹이 ‘철학은 이제 죽었다’는 선언을 했다는 것이다. 이 선언은 호킹이 이론물리학의 뿌리가 소아시아 이오니아 지방의 밀레투스에서 시작된 서양철학이라는 걸 몰랐던 자가당착적 발언이 된다.


밀레투스는 주전 6세기경 최초의 과학운동이 일어난 곳이다. 탈레스, 아낙시만드로스, 아낙시메네스, 헤라클레이토스 등이 대표적인 학자들이다. 그들은 자연 속에서 신적인 원리를 찾았다. 탈레스에게는 물, 아낙시만드로스에게는 관찰이 불가능하고 정의를 내릴 수 없으며 시간을 초월해 있는 무한하고 영원한 어떤 것(아페이론: apeiron), 아낙시메네스에게는 공기가 만물의 근원이며 신이었다. 훗날 밀레투스의 학자들에게서 공부한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피타고라스 등을 통해 그리스 철학이 열렸다. 자기의 뿌리를 부인하는 발언으로 인해 호킹은 독서와 배경지식이 부족한 거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을 받게 됐다.



호킹의 멘토, 버트란트 러셀

호킹은 물리학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무신론자가 된 것이 아니라, 무신론자로서 물리학을 무신론 주장에 활용하고 있다. 그가 무신론자가 된 데에는 어머니와 버트란트 러셀의 영향이 컸다. 1930년대부터 공산당원으로 활동한 어머니 이사벨을 통해 무신론과 유물론을 전수받은 듯하고, 13세 때 접한 이래 우상시한 러셀을 통해 무신론이 성숙됐다.

러셀은 프레게,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과 함께 분석철학의 창시자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인물이다. 그는 여러 차례 성경을 탐독 후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라는 책을 쓰고 무신론자가 됐다. 천재적인 두뇌를 ‘하나님은 없다’를 증명하는데 허비했다니 안타까운 노릇이다.


‘기록된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고린도전서 1:19)


그들은 왜 명석한 두뇌를 갖고도, 성경을 읽고도 깨닫지 못할까? 이에 대한 해답이 성경에 있다.

이사야 선지자가 하늘나라에 올랐을 때 주의 목소리를 들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그때 주께서 말씀하셨다.

“이 백성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컨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나님은 그가 택하신 백성이 아닌 자에게는 눈과 귀를 막아 복음을 깨닫지 못하게 하신 것이다.

이것이 구원받는 자의 입장에서는 불가항력적 은혜(Irresistible grace)에 의한 무조건적 선택(Unconditional election)이 된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

천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과 귀와 눈을 가리시기 때문이다. 왜 가리실까? 그들은 이미 창세 전에 멸망받기로 작정된 염소들이기 때문이다.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마태복음25:31-33)

왼편에 있는 자들은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게 된다. 이것이 무신론자들의 운명이다. ‘이유가 무엇인가, 기준이 무엇인가?’ 따지지 말라. 창조주가 그렇게 정하신 것이다. 토기를 지은 토기장이가 귀히 쓸 그릇과 천히 쓸 그릇을 그의 뜻대로 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하는 것이며, 하나님이 주시지 않으면 가질 수 없는 선물인 것이다. 다양한 형태로 죄인의 역할을 하는 성도의 눈과 귀를 열어 그들이 원래 어떤 존재였는지를 알게 하는 것이 바로 믿음이다. 그러므로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살며,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인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로마서1: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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