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G뉴스/문화읽기

'서불과차 흔적' 추적해 보니 [독자리포터가 간다] '진시황 불로초 설화' 부산 콘텐츠화 가능할까?

은바리라이프 2012. 4. 2. 12:42


'서불과차 흔적' 추적해 보니

배너
[독자리포터가 간다] '진시황 불로초 설화' 부산 콘텐츠화 가능할까?
부산의 서불과차 설화를 뒷받침하 듯 패총이 무더기로 발견된 영도구 동삼동 하리마을 전경.
진시황의 영생을 기리는 불로초를 찾아 떠난 서불, 그는 과연 부산을 과차(過此) 했을까? 서불 설화는 2천년 이상 긴 시간 동안 구전되면서 수 많은 버전을 양산했다.

일본에서는 일본열도를 '서불의 귀착지'로 설정해 서불 기념비, 사찰, 무덤 뿐 아니라 풍속까지 만들어냈다. 대만도 뒤늦게 동참했지만 지금은 서불 설화를 콘텐츠화하는데 전력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최근 들어서야 학술적으로 재조명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진시황 상상도.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서불과차 설화가 곳곳에 각인돼 있다. 그 중 부산, 남해도, 거제도, 제주도 등은 대표적인 서불과차 설화의 유적지다. 하지만 아쉽게도 다른 지역에 비해 부산의 관심은 아직까지 그다지 크지 않다. 서불과차를 기념하는 비석조차 하나 없다.

10여년 전 설화 채집에 나섰던 정상박 동아대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는 여러 현장에서 서불 설화를 접했다고 밝혔다. "조선조 유학자들은 과학과 합리성을 중시했습니다. 그럼에도 서불과차에 대한 각자를 여러 군데 남겼습니다." 서불과차설을 입증해 줄 문서가 많다는 얘기다. 그는 "10여년 전만해도 남구 문현동 일대에 서불과차 설화를 들려줄 노인들이 많았다"며 "그 이유는 지금의 부산정보과학고 절벽에 서불 각자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 각자는 지난 1959년 사라호 태풍으로 사라졌다고 정 명예교수는 답했다.

실제로 사라호 태풍을 기억하는 주민은 더러 있었으나 정작 그때 쓸려나간 서불과차 각자를 기억하는 사람은 만날 수 없었다.

서불과차를 스토리텔링으로 재구성한 사람은 또 있다. 동아대 정용수 교수인데, 그는 지난 2009년 서불과차지로 영도를 설정하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 그는 "삼신산은 동해에서 나타나는 신기루"라며 "그 신기루가 바로 조개로부터 만들어졌다는 데서 서불과차 설화의 유래를 찾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예기'나 '사기'와 같은 옛 문헌에 조개가 토하는 기운으로 신기루가 발생한다는 기록을 찾을 수 있습니다. 삼신산에 관한 수많은 고대 문헌도 삼신산이 신기루였다는 것을 부정하지 못합니다. 이로써 불로초가 있는 삼신산은 곧 해상 신기루를 뜻한다고 추정할 수 있는데, 그런 점에서 조개가 많이 생산된 영도가 서불의 불로초 신화를 뒷받침해줄 지역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는 영도의 동삼동패총이 그 증거이며 구석기 시대 유물부터 다양하게 용례로 발굴되는 조개는 서불이 들렀던 시기에도 분명히 귀중하게 취급됐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500여명을 거느리고 불로초를 찾아 나선 서불 흔적이 동삼동 패총에 숨어 있다는 얘깁니다." 조개는 때때로 화폐로도 사용됐다.

증거는 또 있다. 봉래산, 방장산, 영주산으로 일컬어지는 삼신산의 명칭을 감안할 때 영도의 봉래산은 결코 범상치 않다는 말이다.

서불의 불로초 원정대는 설화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많은 의문을 제기하는 거대 서사시이다. '국제서복학회'에서 정기적으로 학회를 열어 서불 설화를 연구하고 있기도 하다. 학회는 오는 9월 26일 제주도에서 같은 주제의 연구 발표회를 갖는다. hoy722@naver.com
 
이지은 독자리포터
동아대 국어국문학과 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