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주석강해/사도행전

선천성 앉은뱅이가 일어남(1) (행 3:1-6)

은바리라이프 2010. 7. 24. 22:35

 누가는 지금까지 성령 충만으로 나타났던 초대교회의 열매들을 소개했습니다. 성령 충만한 성도들은 열심히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깊은 영적 교제를 나누었으며, 또한 어려운 형제를 돕는 일에 함께했습니다. 그들은 성전에 모여서 모임을 가진 후에, 다시 각 가정에 모여 만찬을 들고, 기도하며, 찬미하는 일에 힘썼습니다. 그들은 온 백성들에게 칭찬을 받았으며, 주님께서 그 교회에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증가시켜 주셨습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태어난 주님의 교회는 성령의 바람을 받으면서, 돛을 올리고 선교의 항해를 떠날 출발점에 서게 되었습니다. 이제부터 시작되는 3-4장에는 중요한 4가지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 성령님은 베드로를 통해서 앉은뱅이를 일으켜주시는 기사와 표적을 보여주셨으며, 2) 베드로는 그 일을 통해서 다시 한 번 무리들 전도했습니다(3장). 그러나 이로 인해 교회에 큰 폭풍우가 몰아치기 시작했습니다. 그 폭풍우는 유대 당국자들의 박해와 위협이었습니다. 교회는 박해와 위협으로 크게 흔들렸지만,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그 위협을 극복해 나갔습니다(4장).


* 성전에 올라간 베드로와 요한

  "제 구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쌔(1)..."

  누가는 앞에서 사도들로 인해 많은 기사와 표적이 일어났다고 말했습니다(2:43). 이제 그는 이러한 표적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한 사건, 즉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였던 자를 고친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교회는 큰 부흥이 일어나게 되었으며, 유대 당국자들의 박해를 불러오게 되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제 9시(오후 3시) 기도 시간에 기도하기 위해서 성전에 올라갔습니다. 경건한 유대인들은 하루에 3번, 즉 3시(오전 9시), 6시(12시), 9시(오후 3시)에 기도했습니다(단 6:11; 9:21). 그러나 이것은 강제적인 규율이 아니라, 일반적인 종교 관습이었습니다. 유대인에게 제 9시는 오후 예배를 드리는 시간이었습니다(출 29:39). 요세푸스(Josephus)는 이른 아침과, 제 9시에 공중기도 순서가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모였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함께 어업에 종사한 동업자였으며(마 4:18,21;  눅 5:10), 함께 사도직을 받고(1:13; 마 10:2), 예수님의 인정과 사랑을 받은 동료였습니다(마 26:37; 눅 8:51; 9:28). 그들은 예수께서 수난을 받을 때에도 함께 행동했으며(눅 22:8; 요 18:16),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증거한 동역자 였습니다(8:14). 베드로와 요한은 성격의 차이는 있었지만, 모든 면에서 함께 행동했습니다(눅 22:8; 요 13:24-25; 18:16-17; 20:2). 그들은 12제자 중에서 중심 역할을 했습니다. 여기에서 "성전에 올라갔다"는 말은 미완료 시제로서 정확하게 말하면 "그들이 올라가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누가는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을 향해 올라가는 과정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두 사도는 기도하기 위해 성전에 올라갔을 수도 있고, 또한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시간에 성전에 가서 복음을 전하려고 성전에 올라갔을 수도 있습니다.


* 성전 문 앞에 앉은 앉은뱅이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2)."

  그때에 사람들이 날 때부터 앉은뱅이로 태어난 사람 하나를 그 곳에 메고 왔습니다. 이 사람은 중간에 사고로 다친 것이 아니고, 태어날때 부터 하체가 마비된 선천성 장애자였습니다. 그는 40세나 되었지만 심한 장애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구걸을 통해서 살아갔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구걸할 수 있도록, 사람이 많이 모이는 기도 시간에 그를 성전 문 앞에 데려다 주었습니다. 유대교에서는 구제를 큰 미덕으로 여겼기 때문에, 성전에 올라오는 사람들은 곧잘 거지에게 동냥을 해주었습니다. 그러므로 당시 성전이나 전각 입구에는 구걸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걸인들에게 있어서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성전 문앞은 동냥을 위한 최고의 장소였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날마다 그 걸인을 기도 시간에 미문이라고 하는 성전 문 앞에 데려다 주었습니다. "미문"(the Beautiful Gate)은 외관상으로 장엄하고 화려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보입니다. 이 미문이 어느 문을 가리키는지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제시되고 있습니다. 1) 이방인 뜰로 들어가는 성전 동편 바깔 문인 수산 문. 2) 이방인 뜰에서 여인의 뜰로 통하는 니카노르 문. 그런데 이 두 가지 견해 중에서 두 번째 견해가 보다 많은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주후 5세기 이후로 많은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전 바깥 뜰 동쪽에 있는 동문(수산문)을 미문으로 간주해 왔습니다. 그러나 요세푸스와 미도트의 기록를 보면, 미문이 니카노르 문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문은 약 23m의 높이에 거대한 이중문이 달려있었습니다.


* 그 걸인이 두 사도를 주목함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 가려함을 보고 구걸하거늘(3), 베드로가 요한으로 더불어 주목하여 가로되 우리를 보라 하니(4), 그가 저희에게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5)..."

  앉은뱅이 걸인은 성전 문 앞에 있다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으로 들어가려는 것을 보고 그들에게 적선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여기에서 '구걸하거늘'이라고 번역된 말(에로타)은 미완료 시제로서, "계속해서 손을 내밀어 구걸 행위를 하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 걸인은 간절하고 정중하게 두 사도에게 한 푼 도와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때에 베드로가 요한과 가던 길을 멈추고, 함께 그 걸인을 주목했습니다. 이 일은 베드로가 요한보다 보다 주도적으로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베드로는 제자들과 함께 있을 때에 항상 대변자 역할을 해왔습니다(마 16:13-16). 베드로와 요한은 구걸하는 걸인을 자세히 주목했습니다. 사도들은 성령의 감동을 느끼고 구걸하는 걸인을 주목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사도들은 걸인에게 "우리를 보라!"고 말했습니다. 사도들은 그 걸인에게 귀한 선물을 주기 위해서 우리를 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걸인은 그 말을 듣고 두 사도를 바라보았습니다. 여기에서 "바라보았다"는 말(에페이켄)은 미완료 과거 능동태로서, "주의를 집중해서 두 사도를 바라보았다"는 말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몇 푼 던져주고 성전으로 들어가버렸습니다. 그러나 두 사도가 정색을 하고 멈추어 서서 "우리를 보라"고 말하게 되자, 그 걸인은 무언가를 얻을 기대감으로 사도들을 바라보았습니다.


*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걸으라!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6)..."

  그 걸인이 두 사도를 바라보았을 때에 베드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다." 베드로는 그 걸인이 원하는 은과 금은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청빈한 삶을 살았으며, 혹 물질이 있었다 해도 교회에서 공동으로 관리했을 것입니다(행 2:44-45). 그러나 우리는 꼭 사도들이 물질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베드로가 돈이 있었다고 해도, 그 걸인에게 더 귀중한 것을 주려고 이렇게 말했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이 말을 한 후에 바로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준다"고 말했습니다. 베드로는 은과 금보다 더 귀한 하늘의 선물을 그에게 주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베드로는 그 걸인을 향해 이렇게 외쳤습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두 사도가 소유한 최고의 보물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얻으려고 세상의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은 그들이 원하는 것을 얻었습니다. 베드로는 자신들과 동행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그 걸인에게 주었습니다. 그는 부활하고 승천하여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왕의 이름으로 앉은뱅이를 향해 "일어나 걸으라!"고 명했습니다.

  땅과 하늘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우주를 다스리는 예수님에게 앉은뱅이를 일으키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여기에서 "걸으라!"고 번역된 말(페리파테이)은 시작과 계속의 뜻을 가진 현재 명령형으로, "걷기 시작하라! 그리고 지금부터 계속 걸으라!"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이러한 베드로의 명령은 우주의 왕의 이름으로 선포된 권위있는 명령이었습니다. 앉은뱅이가 이 말을 믿었다는 기록은 없지만, 그가 사도의 말을 거부하지 않은 것을 보면, 예수님을 믿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 걸인은 베드로가 외치는 권위 있는 명령에 순종하였으며, 바로 그때에, 성령의 큰 능력이 그 걸인에게 임하게 되었습니다. '걸으라!'는 베드로의 명령이 떨어지는 순간, 성령님은 그 걸인의 영혼을 움직여 주셨으며, 40년 동안 말라 붙었던 그의 하반신에 생명의 능력을 불어 넣어 주셨습니다.
 

 


위한문

1. 누가가 앉은뱅이를 고친 사건을 기록한 이유가 무엇인지 이야기 해보자.

2. 베드로와 요한이 제 9시에 성전을 찾은 이유는 무엇인가?

3. 베드로가 은과 금 대신 앉은뱅이 걸인에게 준 것은 무엇인가? 우리도 이러한 고백을 할 수 있는지 솔직하게 말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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