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주석강해/사도행전

성령 충만한 교회의 생활(1) (행 2:42)

은바리라이프 2010. 7. 24. 22:30

 누가는 오순절 날에 일어난 일에 대해서 소개했습니다. 그는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셨으며, 그때에 무리들이 급하고 강한 바람 소리를 들었고, 타오르는 불이 혀모양으로 나타나서 각 사람 위에 머무른 것을 보았으며,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성도들이 각각 다른 말로 말하기를 시작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누가는 베드로의 설교를 통해서 이러한 사건이 일어나게 된 배경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오순절 사건은 유대인들이 거부하고 죽였던 예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에, 하늘에서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일어난 사건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이제 누가는 성령이 임한 교회에서 일어난 아름다운 열매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순절에 임하신 성령으로 인해 제자들은 성령충만함을 받고, 새로운 그리스도의 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몇 가지 아름다운 열매가 맺혔습니다. 이제 우리는 성령께서 제자들을 통해 나타내신 몇 가지 열매들에 대해서 생각해 볼 것입니다.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는 일에 전혀 힘썼습니다(행 2:42)."

* 배우는 교회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42(상))...."

  성령께서 임하심으로 나타난 첫 번째 열매는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는 일에 힘쓴 것이었습니다. 성령은 제자들에게 임하신 후에 예루살렘에 말씀을 배우는 학교를 여셨습니다. 이 학교의 교사들은 예수님께서 임명하신 사도들이었습니다. 개역 성경에 '사도의 가르침'이라고 된 말은 헬라어 본문에는 '사도들(복수)의 가르침'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당시에 베드로만 성도들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도들도 함께 가르치는 일에 동참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개역성경에서 '가르침"으로 번역된 말은 단수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는 사도들이 각자 성령으로부터 받은 은사를 가지고 성도들을 가르쳤지만, 그들이 가르친 내용은 통일성을 유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들이 가르친 것은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가르쳤던 말씀(20:35)이었으며, 주님께서 그들 눈앞에서 행하신 일들이었습니다. 성령께서 여신 학교에는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믿고 세례를 받은 3.000명의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그 학생들은 신비적인 체험을 중시하고, 지성을 멸시하거나 신학을 경멸하지 않았습니다. 성령은 말씀을 배우는 일을 막지 않습니다. 성령은 오히려 성도들이 진리의 말씀을 부지런히 배우도록 촉구하십니다. 왜냐하면 성령은 본질적으로 진리의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초기 성도들은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인간 교사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성령을 받고 말씀에 굶주림을 느꼈으며, 따라서 적극적으로 말씀을 배우는 일에 참여했습니다. 당시 사도들이 가르쳤던 내용은, 신약 성경에 기록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성도들도 신약 성경을 열심히 배워야 합니다. 성령 충만한 성도는 신약의 말씀을 부지런히 공부할 것이며, 또한 그 말씀에 순종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부지런히 말씀을 배우고 순종하도록 인도하시며, 이끌어 주십니다.


* 교제하는 교회("서로 교제하며...(42(중))")
  성령께서 임하심으로 나타난 두 번째 열매는 교제였습니다. 개역 성경에 "교제"라고 번역된 말(코이노니아)은 "공동"을 의미하는 "코이노스"에서 온 말입니다. 성령 충만한 교회의 성도들이 공동적으로 두 가지를 함께 나누었습니다. 첫째로 그들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함께 나누었습니다. 성령 충만한 성도들은 모두 하나님과 예수님, 그리고 성령님과의 교제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삼위 일체 하나님과의 교제를 함께 누렸으며, 이를 통해서 온갖 귀한 영적 축복들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둘째로 그들은 이웃과 나누는 일에 함께 참여했습니다. 그들은 위로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계속했으며,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서 얻은 것을 가지고 이웃을 섬기고 함께 나누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보낸 첫 번째 편지에서 이방 교회들이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 위해 했던 연보를 "코이노니아"라고 불렀습니다(고후 8:4-"참여함": 9:13-"연보"). 여기에서 코이노니아가 의미하는 것은 어려움을 당한 형제를 돕기 위해 자기의 것을 나누어 주는 것이었습니다. 헬라어로 "코이노니코스"라는 말은 "관대한"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누가는 본문에서 계속해서 성령 충만한 성도들이 자기 소유를 나눈 일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재산을 팔아서 교회에 드렸으며, 교회는 그것을 가지고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성령 충만한 교회는 위로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누렸고, 옆으로는 어려운 형제와 이웃을 섬기고,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과 이웃과의 섬김과 교제는 성령 충만한 교회에 나타난 두드러진 열매 중에 하나였습니다.


* 예배하는 교회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42(하))...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46)..."

  성령께서 임하심으로 나타난 세 번째 열매는 개인적이고 자발적인 예배였습니다. 누가는 성령 충만한 성도들이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썼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성령 충만한 성도들은 섬기고 나누어 주는 일뿐 아니라, 자발적으로 모여 예배 드리는 일에도 힘썼습니다. 여기에서 떡을 떼는 일은 성만찬이나, 성도들의 공동 식사인 애찬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2:46; 20:7; 고전 10:16; 11:23-25). 46절을 보면 '떡을 떼는 것'과 '음식을 먹는 것"이 구분되어 언급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떡을 떼는 것"은 성만찬을 의미하고, "음식을 먹는 것'은 성도들의 공동 식사인 애찬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떡을 떼는 일"은 성만찬을 의미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들은 성만찬 뿐 아니라 기도하는 일에도 힘썼습니다. 초대 교회의 입장에서 성만찬과 기도는 예배였습니다. 이러한 일은 성전과 가정에서(46) 동시에 행해졌습니다. 성령 충만한 성도들이 날마다 성전에 모였으며, 그 후에 다시 각 가정에 모여서 성만찬을 들고 기도하는 일에 힘썼습니다. 그들은 성령을 받고 즉시 그들이 다니던 성전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성령을 받은 후에도 일정 기간 동안 계속해서 성전에 나아가서 유대교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이러한 기록을 보면 이때까지 기독교인과 유대인 사이에 아무 충돌이나 불화가 없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초대 교회의 성도들이 자주 모였던 곳은 성전과 성전 바깥뜰 동편에 있는 솔로몬 행각이었습니다(3:11; 5:12). 그들은 그 곳에서 마음을 같이 하여 예배와 찬양을 드렸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성전에 오는 유대인들을 전도하기 위해서 성전에서 모임을 가졌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이 계속해서 성전에 모이기는 했지만, 그들의 모임은 유대인들의 방식과는 달랐습니다. 유대인들은 대부분 율법의 형식과 전통을 따라 모여서 제사를 드렸지만, 초대 성도들은 성령에 의해 자발적이고, 기쁨이 충만한 상태에서 모였습니다(5:41; 8:8; 11:23; 12:14; 13:48,52; 14:17; 15:3, 31; 16:34; 21:17).

  또한 그들은 집에서 모여서 떡을 떼면서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었습니다. 여기에서 누가는 성전에서의 모임 후에, 다시 각 가정에서 자발적인 모임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개역성경에 '집에서'라고 번역된 헬라어는 "카트 오이콘"인데, 여기에서 전치사 '카타'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다음과 같이 다르게 해석을 할 수 있습니다. 1) "다른 집으로'(방향). 2) '어떤 집들 중에 한 집에서'(선택) 3) "집에서"(장소) 여기에서 집을 의미하는 "오이콘"은 단수로서 관사가 없습니다. 이 말은 제자들이 모여서 떡을 먹던 집이 특별히 정해져 있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위의 세 가지 해석 중에서 1)번, 즉 "다른 집으로"라는 번역이 타당해 보입니다. 그러나 RSV 나 NIV 처럼 '그들의 집에서'(in their homes)라고 번역을 해는 것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이 말을 "그들 각자의 집에서"라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여기에서 떡을 떼는 것은 각 가정에서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성만찬과 애찬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초대 교회 성도들은 넓은 공간이 있는 집을 선택해서, 하루씩 돌아가면서 모였을 것입니다. 그들은 기쁨이 넘쳐서 성전에 모인 후에 다시 이집 저집을 돌아다니면서, 모임을 갖고 음식을 나누면서 교제를 나누었습니다.이러한 모임은 그들이 성전에서 할 수 없었던 일들을 보충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그들은 즉시 유대교 성전 제도를 거부하지 않았으며, 그 부족한 부분을 가정 모임을 통해서 스스로 보충해 나갔습니다. 이와 같이 그들은 공식 행사와 개인적인 행사를 병행했습니다. 공식적인 예배만으로는 채워질 수 없는 요소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정 모임을 통해서 이러한 요소들을 채워나간 일은 지혜로운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이러한 일에 전혀 힘썼습니다. "전혀 힘썼다"고 번역된 말은 미완료 과거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헬라어에서 미완료형은 계속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전혀 힘썼다는 말은 어떤 행동 방침을 전심을 다해서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1:14; 6:4; 8:13; 롬 12:12; 13:6; 골 4:2). 그들은 성전 모임을 가지는 동시에, 자발적으로 가정에서 모이는 일에도 힘썼습니다. 그들은 이러한 일을 잠시 동안만 한 것이 아니라, 일정한 기간 동안 계속해서 가졌습니다. 그들은 가정에 모여서 함께 성만찬을 들었으며, 함께 기도하였습니다. 성령 충만한 교회는 자발적인 모임에 힘쓰는 교회입니다. 성령 충만한 교회는 공식적인 예배에 힘써 참여할 뿐 아니라, 예배 후에도 계속해서 자발적인 모임을 가졌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오늘날에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오늘은 여기에서 마치고 내일 성령 충만한 교회에서 나타난 열매들에 대해서 계속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위한문

1. 성령충만한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배우는 일에 열심인 이유는?

2. 성령충만한 교회가 공동적으로 나눈 두 가지 일은 무엇인가?

3. 성령충만한 교회가 어떻게 개인적이고 자발적인 모임에 힘썼는지 말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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